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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토론방 백제의 금동관모에 대하여
원한의 거리 추천 0 조회 1,923 15.02.16 18:26 댓글 1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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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2.17 12:45

    첫댓글 삼국시대 당시 한중일 세나라 중 백제의 관모와 복식이 가장 균형과 조화미, 패션감각이 탁월했던 것 같습니다. 백제문화가 결코 중국에 뒤처지지 않았다는 증거가 금동관을 통해서도 확인되네요. 금동관이 출토되는 곳은 백제의 영토인 만큼 일본규슈지방도 백제 영역임을 보여준다 할 것입니다. 조속히 한국사교과서에 중국선진문물 운운하는 표현은 삭제학 규슈지방을 백제 영역으로 그려넣어야 할듯 싶어요.

  • 작성자 15.02.17 13:02

    백제의 금동관모에 세련미가 있다는 점에는 공감이 가지만, 백제의 금동관이 출토된다고 그 곳이 곧바로 백제의 영토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리고 좋으나 싫으나, 웅진~사비 시기에 이르면서 백제가 중국 남조의 영향을 상당수 받은 것은 부인하기 힘든 일입니다.

  • 작성자 15.02.17 13:03

    한편 일본 열도 내에서 한반도 계통의 횡혈식 석실분이 다수 발견되고 있고 한반도에서 전래된 문화의 흔적도 어느정도 발견되고 있으나, 마찬가지로 영산강 유역이나 사비 지역에서도 왜계 묘제가 다수 나오고 있고, 한반도 남부에서도 왜계 갑주가 출토되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박천수 쌤의 "새로쓰는 고대 한일교섭사"를 추천드립니다.

  • 15.02.17 20:06

    @원한의 거리 금동관을 백제왕이 지방 제후에게 하사한 것이라면 출토지역이 당연히 백제 영역이 되는거죠. 그리고 영산강일대에 발굴되는 묘제(전방후원분?)와 갑주가 어떤 기준으로 왜계 것이라 단정 하는지요. 마한계 혹은 백제계 것이 일본으로 전래 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겠는지요. 양직공도에 그려진 백제사신과 왜국사신을 비교해 보아도 문화수준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바 영산강 일대 묘제와 갑주가 왜계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할 것입니다.

  • 15.02.17 20:09

    @원한의 거리 웅진~사비성 시기에 남조의 영향이라고 하는 것은 국가간에 문화교류의 단순한 잔영에 불과하지 백제를 압도했다는 증거는 되지 못할터입니다. 백제문화의 일본전래는 과소평가하면서 남조문화의 백제 전래는 과대평가하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 15.02.17 20:36

    @大欽茂 마한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했으면 영산강의 전방후원분으로 진화하는 과정이 영산강 유역에서 발견이 되어야죠. 그리고 왜계 갑주로 분류되는 것 역시 출토량으로보나 변천 과정으로 보나 일본 열도를 중심으로 출토/발전하고 있으니 왜계 유물로 파악하는거죠.

  • 15.02.17 20:38

    @大欽茂 고고학 자료 중에서 가장 보수적으로 유지되는 묘제 형식에서 백제가 남조의 그것으로 교체되는 반면에 일본의 묘제는 백제식으로 교체되지 않으니 남조의 백제 영향력이 백제의 일본 영향력보다 크다 혹은 모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강했다라고 해석하는 게 올바릅니다만.

  • 작성자 15.02.18 02:46

    @大欽茂 1. 영산강 일대에서 발견되는 전방후원분은 시기가 5~6세기에 한정되어 있으며, 고고학적으로 볼 때 그 형성과정이 열도에서 상세히 관찰되는 반면, 한국에서는 그런 면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되는 왜계 갑주도 그 출토량이나 형성과정이 열도 내에서 더 뚜렷이 보입니다.
    2. 그렇다면 묻고 싶습니다. 백제의 무령왕릉 등이 남조의 벽돌무덤 풍으로 건축되었는데, 그러면 백제는 남조의 지배를 받았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열도에서 백제의 금동관모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그 곳이 백제의 영역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대흠무 님이 말씀하신대로 그것도 일종의 문화교류의 일종으로 볼 수 있지요.

  • 15.02.18 14:34

    @원한의 거리 영산강일대에서 발견되는 전방후원분을 축조했던 주민들이 일본열도로 이주하게 됨으로 그곳에서 더욱 발전했다고 보여지고요. 왜계 갑주도 초기에 사용하던 주민들이 일본열도로 건너감으로 더욱 발전과정을 밟으며 대량 생산되었다고도 볼 수 있죠. 금동관모는 백제의 제후 수장들이 하사 받은 것이라는 연구가 있는만큼 규슈가 한때 백제의 영역일 가능성이 농후하죠. 일본서기에도 열도에 담모라(=담로)가 있다는 기록도 있으니 더욱 그렇죠. 남조의 영향으로 축조된 벽돌무덤은 무령왕릉 하나 밖에 없고 계속 굴식돌방무덤이 축조되고 있거늘 무슨 묘제 교체라 주장하는지요.

  • 15.02.18 14:40

    @버섯모듬 묘제는 한번 구축되면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산강일대 왜가 도래한 이후 열도의 토양과 기후에 적응 과정에서 왜국 나름대로 묘제가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백제가 남조와 교류한 것은 모방이니 강한 영향력을 운운하고 왜국이 백제를 모방하고 강한 영향력을 받은 것은 과소평가하니 이런 소아병적인 해석이 어디에 있는지요.

  • 15.02.18 14:48

    @大欽茂 대흠무님 논리대로 열도가 백제 영향을 받은 것을 토대로 열도가 백제의 영토라고 하면 남조 영향을 받은 백제는 남조 영토가 되어야죠. 똑같이 영향을 받았는데 열도는 백제 영토고 백제는 독립국입니까. 그런 이중 잣대는 소아는 커녕 유아도 안 할 겁니다.

  • 15.02.18 14:53

    @大欽茂 야요이 도래인은 이미 기원전 4~5세기에 한반도에서 열도로 들어갔는데 기원후 5 세기에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왜계고분을 가지고 도래인 이야기를 꺼냅니까. 열도로 들어갈 때 타임머신이라도 탔나보죠?

  • 작성자 15.02.18 16:06

    @大欽茂 영산강 일대의 전방후원분은 그 시기가 5~6세기에 그치는 반면, 열도 내의 전방후원분은 4세기를 전후한 고분시대부터 보이기 시작하거니와, 그 형성과정도 열도 내에서 확인될 뿐, 한반도 내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전방후원분은 어디까지나 왜계 고분일뿐입니다. 왜계 갑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백제의 벽돌무덤은 중국 남조와의 교류의 영향일뿐입니다. 이를 확대해석할 생각은 없거니와, 대흠무 님이야말로 후다야마 쪽에서 나온 백제 금동관모 하나로 그런 주장을 하시는 것은 이중잣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논리라면 송산리 고분군에서 나온 2개 정도의 벽돌무덤으로 근거로 백제는 남조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궤변도 가능해집니다.

  • 작성자 15.02.18 15:58

    @大欽茂 그리고 일본서기에 무슨 담모라가 열도에 있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담모라(聃牟羅)를 말씀하시는 듯 한데, 담모라는 탐라 즉 오늘날의 제주도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 15.03.05 22:13

    @원한의 거리 역사는 흐름을 중시해야지.어떤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전체를 해석하는건 지양 해야 한다고 봅니다..전방후원분의 전신은 주구묘이고.주구묘는 한반도에서

    열도 왜로 갔다는게 일반 정설인걸로 압니다..가야 와 영산강 지역은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열도로 이주 하였고 여러 영향을 끼쳤다는건 부인 할 수 없을겁니다.

    즉, 주구묘의 풍속을 가진 영산강 집단이 열도에서 주구묘를 전방후원분으로 발전 계승시키다가...5~6세기 ..열도에서 크게 성장한 영산강 가문이..백제의 남하정책에

    대항하여 큰 군사집단을 파병하였고..그 흔적이 나주 뿐만 아니라 ..영산강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는 전방후원분이 아닐까 싶은데요...

  • 15.03.05 22:22

    @그리운길 동성왕 이후의 무녕왕, 성왕의 기록을 보더라도.. 동성왕 과 군사 500인.
    그리고 동성왕의 무진주 친정 이러한 역사 사건으론 영산강을 비롯해 흩어져 있는 전방후원분을 설명할 수 없다고 보는데요...

    남조 와 백제..그리고 왜 의 문화 얘기는 말장난으로 하시는 거겠죠...문화를 어떤 씩으로 받아들이고..어떠한 영향을 끼쳤느냐에 따라서 해석을 하는거라는 걸 무시한채.
    그런 말을 하시는것 보니...말장난으로 밖엔...

  • 작성자 15.03.16 09:51

    @그리운길 저도 그정도 가능성까지는 부인하지 않습니다. 한반도의 주구묘가 왜계 전방후원분의 형성 과정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조유전 선생이나 강인구 선생 등을 비롯한 여러 고고학자들도 주장한 바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 한반도 주구묘와 전방후원분의 상관관계도 확실히 결론이 나지 않았을 뿐더러, 전방후원분이 설마 한반도 주구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일본 열도에서 생겨났으며 또한 발전했습니다. 전방후원분 자체는 결국 왜계 고분으로 보아야 합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불교가 전파되었다고 해도 중국의 불교문화와 한국의 불교문화가 엄연히 구분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 15.02.17 13:41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 작성자 15.02.17 14:51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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