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카페에 기록된 내용 일부
휘 봉생(鳳生)의 호는 헌재(軒齋)로 1325년 문과에 급제하고 보문각의 제학(정 3품)과 제거(종2품)에 올랐으며, 손자 휘 술(述)은 소윤(종4품)으로 3형제를 두어 호군공의 증손에서 3종중을 이루는데 장손 휘 포(布)는 찰방공파, 휘 습(襲)은 진사공파, 휘 기(綺)는 사정공파로 분파되어 계대되고 있으나 후손은 미약한 편이다.
☞ 이상과 같이 이암공과 호군공의 족보와 사적을 살펴 보았으나, 현존하는 묘소나 단소, 비갈, 묘갈 등 전함이 없고, 행적이나 후계들도 특별함이 묘연하고, 후손들의 무지로 자세히 설명드리지 못함이 애석하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휘 鳳生의 아드님으로 기록된 휘 술(述)은 광흥창주부를 역임하신 분인데
이분의 후손이 뿌리를 찾지 못해 경주이씨 일부 파보에 이와 같이 기록되었다가
옛 문헌이 발견되어 현재 재령이씨로 뿌리가 밝혀진 상태입니다.
따라서 휘 鳳生의 아드님으로 정확히 기록된 문헌은 저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휘 술(述)이란 분이 재령이씨라는 증거는 이분의 증손자 두분의 문과방목과 성종실록 및
옛 묘비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또 1497년 아들에게 남긴 유계(遺戒)의 내용이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재령이씨 원주파로 후손이 원주영월 제천 일대에 살고 있으며 묘소는 원주 만종과 영월 수주면에 있습니다.
경주이씨 호군공파계도에 포(布) 습(襲) 기(綺) 세분의 아드님들의 기록은 어디에서 어떻게 찾았는지 알수가 없는 내용이네요. 현감공 휘 포(布)의 사위는 원주인 元孝而인데 원주시 만종의 묘비에 정확한 기록이 있으며 현감공의 손자 휘 운(芸)은 1483년 성종때 문과급제한 기록이 있으며
이 기록에 의하면 父는 文發 祖는 布 증조는 술(述) 재령인으로 나와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경주이씨에 한때 입(入)하였던 기록입니다.
첫댓글 (그러면 휘 술(述)이란 분이 재령이씨라는 증거는 이분의 증손자 두분의 문과방목과 성종실록 및
옛 묘비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또 1497년 아들에게 남긴 유계(遺戒)의 내용이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재령이씨 원주파로 후손이 원주영월 제천 일대에 살고 있으며 묘소는 원주 만종과 영월 수주면에 있습니다)
이수님 올려주신글잘보았습니다. 윗괄호에 대한자세한 자료도 올려주심히 이해하기가쉬울꺼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