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빈다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if
내가 만약 공공기관의 장이 되어도
나는 내 이름을 적을 때 해월이라는
법명으로 적을것이고 다른 분들에게도
그렇게 적어 달라 요청하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만약 머리를 기르고
환속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 이상은.
그런데 오늘 불교계에서 만든 사학인
모 종립대학교 총장 이름이 거명된 것을 보니
속명을 적고 뒤에다 총장이라 썼습니다.
본인은 그리 해 달라
주문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그 총장은 출가한 스님이고
엄연히 스님으로서 총장이 된 사람입니다.
과거에 총장을 하신 지관스님도 있었지만
그분도 출가 전의 속명을 사용하거나
속명으로 언론에 나온 적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이번 총장의 경우는 좀 류가 다른 느낌입니다.
총장의 이름은 속명으로 적어 놓고
옆에 선 이사장도 스님인데
이사장은 법명으로 적어놓으니
같이 찍은 사진에 소개하는 이름이 제각각입니다.
일반 언론에서만 그런게 아니고
불교계 언론에서도 그렇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썩 보기좋은 호칭은 아니라 여겨집니다.
교계 언론에서라도 그같은 호칭을 바꾸고
일반에도 알려서 바로잡도록 함이 어떨까 합니다.
아니면 이사장 이름도 속명으로 쓰던지요.
ㅎㅎ
이것은 조금 아니다 싶어 궁시렁댑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말하시기를
사대강의 물이 흘러서 바다에 들어 가면
각각의 이름을 잊고 바다라고 하는
한가지 이름을 쓰게 되는 것처럼
그대들이 서로 각각 사성계급에서 출가하였더라도
일단 출가한 이상은 자기의 출신 종족은 버리고
오직 우리는 석자釋子 즉 석가모니의 자식들이라 하라
하신 대목이 있습니다.
물론 자식이라 하여 육체적인 자식이 아니고
부처님의 정신을 따르는 제자라는 말일 것이니
그런 까닭에 예전 스님들은 법명을 받으면
자기 법명앞에 석釋이라는 성을 붙여서
해월 같은 경우 석해월이라 사용하였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같은 법명을 가진 이가 많아지다 보니
편의상 앞에 성을 속가의 성을 붙여
쓰는 경향도 생겨나긴 하였으나
일단 출가를 하고 세속과의 인연을 접었으면
그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자기의 본분과
성명 삼자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승가가 자기 이름을 잃어 버릴 때
세상은 그를 향해 무엇이라 지칭할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천하의 소동파가 교만이 하늘을 찌를 때
거사의 성이 무엇이요 묻는 스님에게
칭(秤저울 칭)가요 라고 대답합니다.
蘇씨가 칭가라 하였을 때 상대되는 스님은
얼른 그 의미를 깨닫고 벽력같은 소리를 내지릅니다.
깜짝 놀라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정신을 못차리고 있을 때 스님은 묻습니다.
이 소리가 몇근이나 나가는고?
스님의 공부한 근대를 달고자 온 사람이요
라는 의미의 칭가라는 소리를 들은 스님은
벽력같은 고함 소리로 이 근대를 달 수 있느냐 물었으니
묻기도 잘하였고 대답 또한 기가 막힌 한 수 입니다.
그런 지혜로 대학의 총장으로서
본분사를 잘 지켜 나가주기를 바랍니다.
공주 상왕산 원효사 심우실에서
나무석가모니불
첫댓글 佛 고 맙 습 니 다 佛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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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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