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창원지방법원에서는 사무관들과 새내기 직원들과의 점심식사가 있었다. 새내기 직원들이 모두 9명이어서 사무관 쪽에서도 9명이 나갔다. 그들은 새내기답게 파릇파릇하고 활력이 넘쳤다. 마치 내 새내기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새내기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나도 의문이다. 사전에서 '새내기'라는 용어를 찾아보니 <‘신입생’ 또는 ‘신출내기’의 뜻으로, 새로 만들어 쓰는 말>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신입생'은 괜찮은데 '신출내기'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뭐든 생각하기 나름일 것이다. 좋게 생각하면 좋게 보이고 나쁘게 생각하면 나쁘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채 시인은 자신의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으되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
털려고 들면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고 들면 못 덮을 허물없으되
누구의 눈에 들기는 힘들어도
그 눈 밖에 나기는 한 순간이더라.
귀가 얇은 자는 그 입 또한 가랑잎처럼 가볍고
귀가 두꺼운 자는 그 입 또한 바위처럼 무거운 법
생각이 깊은 자여!
그대는 남의 말을 내 말처럼 하리라.
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넓음은 사람을 따르게 하고
갚음은 사람을 감동케 하니
마음이 아름다운 자여!
그대 그 향기에 세상이 아름다워라
사무관을 대표해서 개인회생을 담당하고 있는 옥정호 사무관이 인사말을 했다. 그는 달변은 아니지만 그가 하는 말에는 항상 진실이 담겨 있었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고 그런 이유 때문에 그의 말에는 진실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신규직원들도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는데 모두들 말을 잘했다. 사실 말이라는 게 그렇다. 공식적인 자리건 비공식적인 자리건 누가 말을 시키면 대부분 당황하기 마련이다. 작년에 퇴직하신 P과장님은 어떤 행사나 모임이 있을 때마다 항상 그에 맞는 한두 마디 인사말을 준비해간다고 했었다. 또 어떤 과장님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마다 모여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숲속에 있는 나무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떨리지를 않고 생각했던 대로 말이 술술 잘 나온다고 했다. 어쨌든 행사나 모임 등에 나갈 때는 행여 말을 시킬지도 모르니 인사말 한두 마디 정도는 준비해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싶다.
양측 인사말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삼겹살이었는데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이게 얼마 만에 씹어보는 고기인가! 나는 지난 6개월을 돌아보았다. 말 그대로 먹는 것에 관한한 지옥 같은 생활이었다. 오른쪽 위와 왼쪽 아래 어금니를 각각 3개씩 뽑다보니 음식을 씹을 수가 없었다. 치과병원에서 새로 치아를 해 넣을 때까지 임시로 사용하라며 부분 틀니를 만들어주긴 했지만 잘 맞지를 않았고 음식을 씹을 때 잇몸이 아파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지난주 수요일에 왼쪽 치아를 해 넣고 시범적으로 일주일간 사용해보라고 했는데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삼겹살을 씹어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어쨌든 나는 치아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아들아, 양치질을 거르면 안 된다. 그렇다고 빡빡 닦지는 말거라. 평생에 걸쳐 즐거움의 반은 먹는 것이다"라며 치아의 중요성을 강조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신규직원들에게 법원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며 위로를 해주었다. 사실 '위로'라는 말과 '칭찬'이라는 말처럼 사람들에게 점수 따는 말도 달리 없을 것이다. 위로를 받고 기분 나빠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칭찬을 하면 고래도 춤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특히 관리자들은 '위로'와 '칭찬'이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닐 정도로 가까이 해야 한다. 어떤 백 마디의 말보다도 이 두 마디 말만 잘 활용한다면 유능한 관리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큰애가 공무원에 마음이 있기도 해서 시험공부를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노량진고시학원에서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2년을 했다는 직원도 있었고 3년을 했다는 직원도 있었다. 내가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었을 것이라고 하자 그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노량진고시학원에 가지 않으면 합격할 수 없느냐고 다시 물었고 민사과에 근무하는 정00실무관이 독특한 대답을 했다. 노량진고시학원에 가지 않아도 합격할 수는 있다. 단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집에서든 어디에서든 노량진고시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처럼만 하면 합격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를 못하다. 그래서 수많은 '공시족'들이 노량진고시학원을 찾게된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독하게 마음을 먹어도 혼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정00실무관의 말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나는 새내기 한분 한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들 중에는 실무수습을 나한테 받은 직원도 있었다. 나는 그때 그들에게 "법원생활에서 좌우명으로 삼아도 좋을 금언 두 개를 소개하겠습니다. 군림과 역지사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군림 (君臨)이란 남을 업신여기는 것이고,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의미입니다. 이 두 가지만 가슴에 새기고 있으면 법원 생활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했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이 말을 잊고 살았던 듯싶다. 그래서 정년을 3년도 채 남겨 놓지 않은 지금 많은 회한에 잠겨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오는데 출입문 바로 위에 걸린 시계가 오후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는 12시 50분이었다. 일부러 직원들이 제 시간에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도록 주인이 10분 빨리 해놓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주인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밖에 나왔을 때는 가을 햇볕이 따갑게 내려쬐고 있었다.
(9.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