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정신세계의 원형을 찾아서
신화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김산해 지음
차례
제2장 수메르 판테온
신들의 대부 안 / 아누
넘버 2 엔릴 / 엘릴
지혜로운 창조자 엔키 / 에아
어머니 닌마흐 / 닌후르쌍 / 닌투 / 마미 / 아루루
달(月)의 신 난나 / 씬과 우르의 파멸
정의로운 태양의 신 우투 / 샤마쉬
전투적인 사랑의 여신 인안나 / 이쉬타르
네르갈과 에레쉬키갈의 사랑
전사 닌우르타와 신왕위 계승전
양치기 두무지 / 탐무즈의 비애
폭풍과 비의 신 이쉬쿠르 / 아다드
엔키의 장자 마르둑 / 아쌀루히
제3장 에누마 엘리쉬
하나-그때 위에
하나-압수ㆍ뭄무ㆍ티아마트만 있었다
하나-신들, 탄생하다
하나-압수, 자식들의 소란을 견디지 못하다
하나-티아마트, 남편의 제안을 거절하다
하나-뭄무, 곁다리를 들다
하나-에아, 압수를 잠재우다
하나-압수, 에아의 새 거처가 되다
하나-마르둑, 탄생하다
하나-50의 위엄이 마르둑에게 있었다
하나-마르둑, 침입하다
하나-신들, 티아마트에게 호소하다
하나-티아마트, 전쟁을 준비하다
하나-킨구, 초고속으로 승진하다
둘-에아, 급보를 전하다
둘-에아, 출전하다
둘-위기가 오다
둘-영웅, 등장하다
둘-마르둑, 단서를 달다
셋-가가, 한몫하다
넷-신왕 마르둑, 막강한 전력을 갖추다
넷-마르둑, 흔들리다
넷-마르둑, 맞불 놓다
넷-티아마트, 깨지다
넷-티아마트 졸개들, 무장해제당하다
넷-킨구, 체면 구겨지다
넷-전쟁이 끝나다
넷-기적이 일어나다
다섯-신들의 자리가 정해지다
다섯-티아마트 몸통으로 하늘과 땅이 창조되다
다섯-티아마트, 땅으로 살아 있다
다섯-아퀴가 지어지다
여섯-사람, 창조되다
여섯-신들의 문이 세워지다
여섯-마르둑, 정식으로 신왕에 등극하다
일곱-신왕 마르둑, 50가지 이름으로 칭송되다
제4장 베레쉬트
욕깨나 받아먹어도 싸지 싶은 맘으로
날조된 우주론
그랬다, 실로 그랬다!
미꾸라지, 용이 되다
마르둑 종들의 날조
유일신 사상은 애초부터 없었다
유대 인들의 수난
날조의 또 다른 주인공, P
엘로힘 창세기의 스타일
창세기 짜깁기
시방, 그렇게 해볼 꼭지가 물러 있다
P, 허두를 떼다
P도 베끼고 J도 베끼다
신통방통하기만 한 일
P, "천상의 대충돌"을 모두 꺾자 놓다
P의 말장난, 깊은 물과 바람
첫째 날과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
일곱째 날
P 대 J
제5장 신들의 폭동
신들이 강림하다
착륙지를 물색하다
최초의 도시 에리두
에리두가 무너진 뒤에
라르싸와 니푸르
신들이 인간 대신에
신들의 영역
"40의 마ma" 동안 노역하다
폭동이 일어나다
엔릴, 포위되다
신들의 비상대책회의
해결책
좋습니다
내 아들, 침대에서 일어나라
그들이 흙 운반용 삼태기를 들도록 할 겁니다
원시 노동자 룰루
제6장 인간의 창조
나는 당신들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남자 일곱, 여자 일곱을 만들다
산파의 여신, 산모의 자궁을 열다
숨을 불어넣어 생명을 만들어내는 집
신의 유전자로 탄생한 인간
엔키와 닌마흐의 어깨 겨룸
닌마흐, 일곱의 기형아를 만들어내다
엔키, 조산아를 고안해내다
"생명 유전공학 실험실"의 수장 엔키
벨루스 신의 "추한 존재들"
야만인 엔키두
엔키두의 직립보행
신의 유전자와 땅의 유전자
내가 만들었다! 내 손으로 해냈다!
엔릴의 역습
압주, 무너지다
그리고 아담을 데리고 와서
"갈비뼈"로 말장난 치다
인간의 고향
압주 대 압주
제7장 인간의 지혜
사육 동물처럼 벌거벗긴 채로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인간, 신처럼 지혜를 터득하다
지혜와 섹스
지혜도 영생도 안돼!
사실은
최초의 인간 아다파
영생을 찾아 나선 반신반인
뱀에게 빼앗긴 불로초
길가메쉬의 미인계
너는 알게 되었다. 이제 너는 신처럼 되었다
에타나 왕의 고민
독수리와 뱀의 다툼
에타나의 하늘여행
독수리의 추락
너희들은 신이냐 인간이냐
신들의 정원 딜문
생명의 여신 닌티
엔키와 엔릴의 끝없는 대결
엔키와 나하쉬
엔키와 닌기쉬지다
수메르와 이집트
J의 고통
"낙원 이야기"의 진실
농부 카인, 양치기 아벨을 죽이다
두 계보의 충돌
편집자의 노아에 대한 배려
야훼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 때
살인자의 계보에서 벗어나다
두 계보는 동일한 하나의 전승을 모방하고 있다
지우쑤드라, 크시수트로스가 되다
바빌로니아 족보와 앗시리아 족보
계보의 말놀음
수메르 왕명록과 일곱 현인 전설
제8장 생존자
엘릴, 심기가 어지러워지다
아트라하시스의 하소연
엘릴, 다시 시도하다
신이시여!
음식으로 딸을 준비하였다
엘릴, 분노하다
왜 내가 맹세해야 합니까
에아도 맹세했다
엔키, 속으로만 홀로
잘 알아듣거라
벽에 대고 내가 말하겠다
압수로 내려가서 내 신과 살아야 합니다
배를 만들다
배가 뜨다
남풍
아, 슬프다!
신들, 걸귀 들리다
도피한 녀석이 있었단 말이야?
세상에서 가장 유창한 변론
생존자
신들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야훼의 후회막급
네필림과 젊은 아눈나키
여신들이 부족했다
극히 성스러운 밀경
200의 신들이 내려오다
라멕의 충격
"지켜보는 자들"과 노아
단죄의 화살은 인간 쪽으로만
새로운 가이드라인
수메르 신들, 야훼와 엘로힘으로 변신하다
일인다역의 대모순
인간의 시대
참고문헌
일러두기
하나-본서의 수메르와 악카드에 관련된 신의 이름이나 땅의 이름이나 사람의 이름 등은 국제 음성기호 표기법과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과는 달리 "앗시리아 학"에서-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수메르가 이미 곳곳에서 파헤쳐진 마당에 "수메르 학"이라고 써도 괜찮을 분위기가 얼마든지 조성되어 있건만 왜 아직도 이런 명칭을 고집하는지 답답한 면도 없지 않으나 하여튼-가급적 음역되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하였다. 예를 들면 신의 이름 "NIN.HUR.SAG, Ninhursag"는 "닌후르사그"가 아닌 "닌후르쌍"으로, 도시의 이름 "LA.AR.SA, Larsa"는 "라르사"가 아닌 "라르싸"로, 사람의 이름 "Sargon"은 "사르곤"이 아닌 "싸르곤"으로 표기하였다. 그러나 성서의 지명이나 인명은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일반적인 표기법에 따랐다.
둘-문장 중에 매우 빈번히 나오는 쉼표(,)는 수메르에 생소한 한국 독자들을 위해 숨고르기를 하면서 천천히 읽어달라는, 특히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고전의 제왕이나 다름없는 수메르 전승을 읽어나갈 때 적절히 쉬어가며 즐겨달라는 당부의 뜻이지만, 실제로 이런 작위가 하나의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책을 내면서
인간의 뇌에 잠재된 기억의 불꽃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인간의 가슴에 불타는 사랑의 정열은 어디로부터 출발한 것일까?
인간의 고통에 웅크린 전쟁의 씨앗은 무엇으로부터 연유한 것일까?
인간의 운명에 기대선 저승의 그림자는 누구로부터 다가서는 것일까?
영생할 수 없는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생사의 갈림길에서 평생 방황하다 결국은 죽고 말았던, 태초부터 지금까지 살다 간 숱한 인간의 영혼은 어디에서 떠돌고 있을까?
동양과 서양으로 "나뉘어 있는" 신화와 역사와 문명은 양측의 끝없는 교류 속에 장구한 세월의 수레바퀴를 타고 인간의 삶을 이끌어 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앞자리에서 인간의 영혼을 다스렸던 건 신화였다. 신화 속에서는 인간과는 전혀 다른 "신 神 이라는 영생불멸자"가 "나약한 필멸자"를 창조하여 그 위에 군림하면서, 하늘과 별과 땅과 온갖 생명을 손아귀에 쥐고는, 그들끼리 사랑하고, 그들끼리 싸우고, 그들끼리 화해하면서, 인간에게는 그들의 피조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가르쳐주고, "인간 대리인"을 내세워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리하도록 하였다. 신화에서 출발한 "얼굴 없는 종교들"은 인간사에 시시콜콜 관여하면서 행불행을 신의 이름으로 나누어주었고, 온 땅에 경계선을 긋게 하였으며, 민족들을 끼리끼리 뭉치게 하였으니, 그 "믿음의 칼자루"는 상대편을 업신여기고, 전쟁을 일으키고, 먹고 먹히는 "피의 역사"를 주도하다시피 하였다.
신화 속에 인간이 있었다.
그 속에서 인간과 신들이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나름의 신화 속에 살고 있었다.
신화와 신화가 충돌하면 전쟁이 일어났다.
신화와 신화가 화합하면 평화가 찾아왔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곳에서 신화는 출발하였다. 서양인들의 그리스ㆍ로마 신화와 문명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부터, 히브리 인들의 경전이 서구의 믿음을 휘어잡고 있었던 때보다 아주 먼 옛날부터, 근동 近東 에서, 인류 최고문명의 발상지 메소포타미아 땅에서, 서남아시아 페르시아 만에 인접한 태양이 떠오르는 동방의 땅 한모퉁이에서,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끼고 있던 신들의 땅에서, 시원 始原 의 수메르에서 최초의 신화와 문명과 역사는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런 수메르를 제쳐두고 그리스 인과 히브리 인의 유산과 전승들이 거지반 2000여 년간 서양인들의 정신세계를 농락하여왔다. 허나 땅 속에 파묻혀 있었던 "최초의 황금 무더기"가 발굴되면서부터 그리스ㆍ로마의 신화와 문명과 역사는 "본고향"이라는 명성을 잃어야만 했고, 히브리 경전의 창세기는 약 2600년 이전 신화시대의 믿음을 홀로 주도했다는 "고집"을 꺾어야만 했다. 둘 다 수메르의 후임자로 드러났고, 둘 다 고대세계의 주인 자리에서 깨끗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ㆍ로마 신화는 최초의 수메르 신화가 가장 완벽하게 변형된 최후대의 신화였으며, 히브리 경전에서 드러난 전승은 최초의 수메르 전승을 가장 완전하게 돌려 베낀 최후대의 믿음 방식이었다. 애초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유일신"이 나타나 세상을 혼란에 빠뜨렸던 것이다.
약 4000여 년 전 수메르 도시국가들은 거의 2000년 동안 이어왔던 삶의 흔적을 덮고 모두 땅에서 사라졌으며,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가 그 뒤를 이어받아 고대세계를 평정하였다. 막강한 두 제국의 주도권 다툼은 대략 1500년간이나 계속되었는데, 이 땅 저 땅으로 떠돌아다니던 히브리 족은 수메르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약 1000년 세월이 지나서야 다비드의 노력으로 예루살렘에 최초의 왕국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강대국에게 조공이나 바치면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였던 "신생 소국"은 단 500년도 버티지 못하고 멸망하였다. 약 2500여 년 전 페르시아라는 제3의 제국이 등장하면서 바빌론이 무너지자, 그나마 남아 있던 수메르의 그림자는 더 이상 꿈틀거리지 않았고, 200여 년 뒤 페르시아를 제압하고 유럽ㆍ아시아ㆍ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여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켜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뒤로, 수메르는 인간의 기억 속에서 아득히 멀어져만 갔다. 그러나 이제 "최초의 자리"를 향한 진검 승부는 끝났고, 진실은 밝혀졌다!
"세계 최고의 지성인들"이 서로들 앞다투어 수메르를 파헤치고 있었다. 고고학자들과 탐험가들은 수메르의 유물과 유적을 세상에 내놓았고, 문자 해독가들은 수메르 어를 해독해냈으며, 언어 연구가들은 점토판에 새겨져 있는 기록들을 일일이 옮겨놓았다. 예를 들면, "신 神 "에 해당하는 설형문자를 보고 "DIN.GIR"라고 음역 音譯 하는 작업이었다. 대장정이었다. 필자는 워낙 아둔하여 지혜롭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언어"가 험난한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허나 시방 20년 세월의 인고 忍苦 를 넘기고 그 장애물을 힘겹게 하나둘 밀어제치면서 "먼 옛날의 천기"를 누설하고 있다. 하여 독자들이 이 졸저의 속 알을 깨본다면,
문명의 고향 수메르가 세상 빛을 보게 된 "대강"을 알게 될 것이고(1장),
신화의 원조 수메르 판테온에서 반드시 만나야 할 신들과 그들의 사연을 눈 구경할 수 있을 것이고(2장),
수메르 만신전의 후임자인 "바빌로니아 창세기"라는 천상의 대혈전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고(3장),
히브리 성서의 "천지창조 신화"가 어떤 식으로 전임자인 바빌로니아 창세기를 모방하여 만들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4장),
태초의 수메르 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이 땅에 살면서 일으킨 폭동과, "사람"이 창조된 직접적인 이유를 "수메르 창세기"를 통해 접할 수 있을 것이고(5장),
수메르 신들이 생명 유전공학의 지혜를 동원하여 사람을 만들어내는 생생한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듯 "수메르 창세기"를 통해 체험할 수 있을 것이고(6장),
신들과 인간이 충돌하여 일어난 수메르와 그 후임자들의 갖가지 전승을 맛볼 수 있게 될 것이고(7장),
신들이 일으킨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단 한 명의 수메르 생존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8장).
허나 그 무엇보다도 "에덴 동산 신화"의 진정한 원전은 수메르 신화임을 속속들이 집어내고, 그 속에 감추어진 "참"을 밝혀내어, 기나긴 세월 동안 "인간의 의식을 잡아둔 답답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내는 희열을 맛보게 될 것이다. 게다가 안ㆍ엔릴ㆍ엔키ㆍ닌후르쌍ㆍ난나ㆍ우투ㆍ인안나 같은 수메르 큰 신들의 "아수라장"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삶을 지속할 수 있었는지도, 이스라엘 민족 신 야훼가 어찌어찌 하여 수메르 신들의 역할을 모두 꿰차고 "유일신"이 되는 변고가 있었는지도 분명 알게 될 것이다. 수메르 창세기를 활짝 펼쳐서, 인간의 오욕칠정과 희로애락의 잣대처럼 행세했던 히브리 족 창세기 "베레쉬트Bereshit"를 쓴 작가들이 숨겨놓은 신들의 행적을 남김없이 죄다 만인 앞에 고할 것이다.
필자는 이번 졸저를 쓰기 위해 서른여덟 종의 고대 텍스트를 활용했으며, 필요에 따라 별도로 "텍스트 원문"을 삽입하는 경우에는 각 행의 내용을 여러 번 읽고 확인하여 한글로 옮겨놓았다. 그런 과정에서 발생될 수 있는 오류는 전적으로 필자의 책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나 이 언어에서 저 언어로 다시 쓰는 일은 시간과 노동을 끈질기게 투자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겠지만, 참으로 힘든 건, 고래의 전승 속에 감추어진 "지혜"를 알아낼 수 있는 통찰력으로 "수메르 숲"을 내려다보는 일인 게다. 여기 사용한 텍스트는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굴된 점토서판 중에서 필자가 집필의도에 따라 취사선택한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수메르 신화는 단시일 내에 끝장낼 수 있는 짧은 여행길이 절대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수없이 후회했다. 그러나 어찌하랴. 돌이킬 수도 없고 빠져나올 수도 없는 걸 말이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지리산 구산산방에서
김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