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게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야구 시즌도 끝나고 해서 예전부터 써보고 싶었던 테니스에 대한 얘기를 좀 써봤습니다.
근데 막상 쓰기 시작하니까 좀 제대로 써보자는 욕심이 생겨서 너무 길어졌네요..그래서 시리즈로 올려보겠습니다.
테니스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재밌는 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신 분들은 너무 길어서 지루하실 수도 있음에 주의해 주세요..^^;;;;
1 - 80년대의 1인자 이반 렌들과 완성형 파워 테니스의 시작
초등학교 5학년 때 우연히 집 앞에 테니스장에서 레슨을 받기 시작하면서 테니스에 대한 관심을 키웠던 것 같습니다. 때마침 저랑 띠동갑이었던 첫째 누님께서 테니스 코치분과 결혼을 했고, 당시 홍대에 다니던 셋째누나가 학교 테니스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월드 테니스’ 라는 잡지를 매달 구매해 보기 시작했는데 누나 덕분에 그 잡지를 거의 달달 외울 때까지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 재밌더라구요. 어쩌면 이 글을 쓰게 되었던 가정적 환경을 가졌었나 봅니다. ㅋㅋ
지금은 테니스라는 종목이 전세계적으로 글로벌화되어 로저 페더러나, 라파엘 나달, 혹은 세레나 윌리엄스, 마리아 샤라포바 같은 선수들의 이름이 낯설지가 않은데, 80년대만 해도 테니스는 거의 유럽과 미국 그리고 호주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스포츠였고, 유럽 백인들이 정해 놓은 여러 가지 규범과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들만의 문화가 자리잡은 일종의 귀족 스포츠였습니다. 예를 들면 참가하는 선수들은 모두 흰색 계열의 옷과 신발만 신어야 했고(그래서 저도 초등학교때 집앞 테니스장에 레슨받으러 갈 때는 항상 흰 색 운동화, 일명 테니스화를 신고 갔습니다) 지금은 거의 다 바뀌었지만, 윔블던에서는 아직도 저 드레스코드가 지켜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테니스가 유럽과 호주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가진 스포츠였고, 지금도 그렇다는 겁니다.
그럼 80년대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제가 테니스를 처음 배웠던 초등학교 5,6학년이었던 시절에는, 현재 영국의 앤디 머레이의 코치인 이반 렌들이 존 메켄로 같은 라이벌들을 제치고 근소하게 랭킹 1위를 차지하던 시절이었을 겁니다. 사실 80년대는 은근 춘추 전국시대라고 불릴만 한데 그 와중에 가장 길게 랭킹 1위를 고수한 선수가 바로 이반 렌들이었습니다. 90년대의 피트 샘프라스, 2000년대의 로저 페더러 만큼의 지배력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80년대 넘버원이 누구냐?라는 질문에 전문가들이나 팬들은 이반 렌들의 손을 들어줬고 그게 당연하다고 봅니다.
참고로 테니스 선수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는 1순위가 4대 그랜드 슬램 우승 횟수, 2순위가 랭킹 1위를 차지한 기간이라고 봅니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두 분야 독보적인 1위는 누구나 예상 가능하겠죠? 바로 로저 페더러네요..
앤디 머레이(좌)와 그의 코치였던 이반 렌들(우)
다시 이반 렌들로 넘어오면 이 선수는 체코 출신입니다. 80년대만 해도 아직 냉전시대가 종식되기 전이기 때문에 서방 진영에서는 동구권 출신 선수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반 렌들은 실력에 비해 정말 인기가 없는 선수였습니다. 게다가 코트에서는 항상 무표정에 감정표현도 없었고 결정적으로 존 메켄로나 지미 코너스 같은 미국 선수들과의 묘한 라이벌리 때문에 보이지 않는 관중들의 적대감과도 싸워야 했던 선수였습니다. 메이저 대회와 ATP투어(랭킹 포인트를 따기 위한 대회) 경기들 중에 동구권에서 열리는 대회는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이반 렌들은 후에 미국으로 귀화하긴 합니다. 그의 라이벌이라고 불리웠던 존 메켄로(오히려 이 선수가 전세계적으로는 더 유명했을 겁니다)도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선수였습니다. 워낙 코트에서 이런저런 사고?를 치는 다혈질이었기에.. 그래서 두 선수가 붙으면 항상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데 둘 다 항상 신경질적이고 심판한테 항의하느라 경기 시간 지연되고.. ㅋ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반 렌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해 드린 이유는 이 선수는 오늘날 테니스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완성형 파워 테니스를 80년대에 이미 구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누구나 비슷해 보이는 오늘날의 완성형 파워 테니스보다는 80년대 90년대 테니스가 더 재미있었던 이유가 선수들마다의 개성이 너무나 두드러진 플레이스타일 때문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90년대로 넘어가면 자세히 언급해 드리겠습니다)
이반 렌들의 플레이 스타일이 오늘날 테니스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는 당시에는 아무도 생각 못했고, 실제로 이반 렌들을 그 선구자로 보긴 힘들 수도 있습니다. 다만 분명한건 그가 80년대에 가장 긴 랭킹 1위를 고수했고, 4대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8회나 우승했다는 레전드인 것만은 분명하며,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피트 샘프라스에 의해 더욱 세련되어졌으며 로저 페더러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반 렌들은 테니스 역사에 있어서 분명 의미 있는 선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선수 시절의 이반 렌들
이반 렌들과 피트 샘프라스는 재미있는 인연이 있습니다. 렌들은 전성기의 끝무렵인 80년대 후반에 자신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었던 서독의 보리스 베커(뒤에 자세히 소개할 예정입니다) 때문에 번번히 윔블던에서 좌절합니다. 바로 베커의 엄청난 강서브에 고전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본인의 서비스 리턴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리턴을 향상시키고자 연습상대를 구하게 됩니다. 연습상대의 조건은 서브만 강하면 되는 선수였는데 당시 랭킹 1위였던 렌들은 이제 겨우 성인 테니스계에 들어온 풋내기 피트 샘프라스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샘프라스는 정말로 서브만 강한 선수였고, 준수한 백핸드를 가지고는 있었지만 정말 형편없는 포핸드 스트로크를 가지고 있는 선수로 평가받았습니다.(그 완벽했던 피트 샘프라스의 모습을 보면 상상도 못할..) 샘프라스 입장에서는 너무나 감사한 제안이었죠. 세계 랭킹 1위가 같이 연습하자는데.. 결국 이 제안의 결과는 win-win이었습니다. 렌들은 그렇게 바라던 윔블던에서는 결국 우승하지 못하게 되지만 이듬해 호주오픈에서 2연패에 성공하며 건재함을 과시했고, 샘프라스는 본인의 약점을 놀라울 정도로 발전시키면서 완벽한 선수가 되기 위한 기초공사를 다져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바로 이 사건 때문에 샘프라스가 렌들의 스타일을 받아들이며 완성형 파워테니스의 계보를 잇게 되지 않았을까 라고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결국 나중에 샘프라스는 같이 훈련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렌들을 3-2로 이깁니다. 렌들은 어쩌면 호랑이새끼를 키운건지도..)
지금은 테니스의 전설이 된 피트 샘프라스(좌)와 이반 렌들(우)
완성형 파워 테니스(확립된 용어는 아닙니다)라는 것은 테니스의 모든 기술들을 전부 갖춤과 동시에 더욱 파워에 의존하는 플레이스타일을 말합니다. 서브, 서비스 리턴, 포핸드 백핸드 스트로크, 발리와 같은 네트 플레이, 드롭샷, 패싱샷, 풋웍, 체력, 경기운영능력, 멘탈까지 테니스가 요구하는 거의 모든 부분을 다 골고루 잘 할 수 있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파워와 스피드를 기본적으로 장착하지 않으면 위에 열거한 저런 기술들이 아무리 좋아도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이 오늘날 남녀 테니스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현대 테니스는 generalist + power + speed를 모두 갖춰야 합니다. 한 두 가지만 특출나게 잘하는 specialist는 살아남기가 힘듭니다. 이 완성형 파워 테니스의 끝판왕은 의심의 여지없이 로저 페더러가 되겠구요. 노박 조코비치가 한때 페더러보다 더 완벽한 모습을 보였던 적이 잠깐 존재했었다고 봅니다.(아주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여성부로 넘어가면 세레나 윌리엄스 같은 저랑 치고박고 싸우면 100전 100승 할 것 같은 누님(제가 나이가 훨씬 많지만 누님이 맞습니다)만 봐도 파워 테니스가 어떤 느낌인지 잘 아실거라 믿습니다.
이 완성형 스타일을 대세가 되도록 만들었던 선수는 제 생각엔 이반 렌들의 도움을 받은 피트 샘프라스입니다. 피트 샘프라스가 남자 테니스의 춘추 전국시대를 종결짓고 독보적인 1위가 된 이후 완성형 파워 테니스를 갖추지 못하면 랭킹에서 살아남는 것이 힘들어졌다고 봅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2000년대 초반 등장한 강서브로 유명한 미국의 앤디 로딕 같은 경우는 주니어 시절 피트 샘프라스의 뒤를 이을 유망주로 주목받았으나 고작 커리어 초기에 획득한 US오픈 우승이 메이져 대회 우승의 전부입니다. 그 이유가 이 선수는 서브와 포핸드 스트로크의 파워만큼은 정말 역대급으로 강했지만 백핸드와 발리가 너무 약했고 경기를 운영하는 패턴 또한 단조로워서 상대방에게 읽히는 순간 그대로 멘탈을 잃어버리는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로 멘탈도 약했습니다. 페더러같은 무결점의 선수를 만나면 금방 그 약점이 드러나게 되죠. 특히 페더러는 모든 기술에 A+점수를 주고 싶은데, 유독 제가 감탄하는 분야가 패싱샷입니다. 로딕의 이해할 수 없던 플레이 중의 하나가 발리를 그렇게 잘하지 못하면서 걸핏하면 네트로 돌진했는데 페더러의 패싱샷에 불쌍할 정도로 번번이 당하곤 했습니다. 페더러와의 상대전적이 3승 21패인 것을 보면 그저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로딕이 그저그런 평범한 선수라는 것은 아닙니다. 페더러에 유독 약했을 뿐이지, 그래도 나름 훌륭한 선수였습니다. 혹시라도 계실 로딕 팬님들께서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길..ㅠㅠ)
로딕처럼 완성형 파워 테니스에 조금씩 미치지 못하는 많은 선수들이 랭킹과 트로피를 위해 싸우고 있을 때, 때마침 페더러가 등장하게 되고 대부분의 선수들이 페더러의 플레이를 반면교사로 삼으면서 2000년대의 테니스는 피트 샘프라스가 이끌던 시대보다 더욱 진보하였고, 선수들의 플레이가 좀 더 스피디해지면서 갈수록 선수들은 더 완벽해져야하는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피트 샘프라스 이전, 즉 유럽과 미국의 세력이 균형을 이루면서 각자의 개성이 두드러졌던 자기만의 special한 테니스를 추구했던 시절이 가장 재밌었다고 봅니다.
첫댓글 안드레 애거시 선수도 생각나네요
제가 제일 좋아했던 선수가 안드레 애거시입니다.. 나중에 90년대로 넘어가면 애거시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호날두리 문외한으로 기억의 시작이 애거시와 샘프라스 였던지라 ㅋㅋ
잘봤고 담편기대하고있겠습니다
그냥 전문가 칼럼같네여;;; 잘봤습니다.
어느 대회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랜들과의 경기에서 마이클 창의 투혼도 기억나고 안드레 아가시는 데이비스컵하러 우리나라 자주오다가 갑자기 세계랭커 되고 뭐 이런거 어렴풋이 기억나네요ㅎㅎ
에공 부족한 글인데 감사합니다;;; 근데 데이비스컵이 아니라 88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렸던 투어 대회인 KAL 오픈 대회에 애거시가 출전하면서 인연을 맺었죠..당시 18세의 긴머리 휘날리며 준우승을 차지했었습니다^^
@호날두리 맞네여 칼컵ㅎㅎ 그시절 우리나라도 유진선선수나 또 한분 계셨던거 같은데ㅎ
소중한 글 감사합니당
@조운자룡 유진선 선수라면 복식 단짝이었던 김봉수 선수 아니었을까요?
@호날두리 노갑택 선수였나? 이름만 얼핏 기억나네요
@야 그만싸워 오 김봉수 노갑택 두 이름 다 들어본거 같네요ㅎ
보리스베커와 라이벌중에 스테판에드베리도 있었는데..
네 다음편이 그 두사람의 라이벌리에 대한 글입니다..제가 사실 테니스를 보기 시작한 것도 그 두 선수 덕분입니다..^^
@호날두리 혹시 월드테니스 보유하고계신거 있으세요? 저도 초딩때 선수생활하면서 거기에 사진도실리고 했었는데..찾아보구싶네요ㅎㅎ
@야 그만싸워 저한테는 없구요 아마 저희 셋째 누님이 결혼하면서 전부 다 가져갔는데 지금도 있을 지는 확실히 모르겠네요 ㅠㅠ
@호날두리 벌써 30년이 다되가네요ㅠ
@야 그만싸워 그러게요.. 그 시절이 참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야 그만싸워 댓글 다시 읽어보니 월드테니스에 사진도 실리셨다구요? 와 엄청 유망주셨군요 멋지십니다..저도 레슨받으면서 선수되고 싶다는 생각 많이 했는데 코치 선생님이 극구 말리더라구요..ㅎㅎ
@호날두리 쑥스럽긴하지만..초2때 시작해서 3,4학년때 유망주소리좀듣고 스카웃제의도 받았는데 바로 그만두게되었죠ㅠ 스토리가 복잡하긴하지만ㅋㅋ
너무재미있네요 이제 2년차인데 어릴때부터 테니스하셨단게 질투납니다 ㅎㅎㅎ
저 중학교 1학년때까지 딱 3년하고 말았습니다 질투안하셔도 되요 ㅎㅎ완전 취미수준이었으니까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도 고양시 사는데 일산분 반갑습니다 ㅎㅎ
아 재밌네요 이반렌들경기를 보며 상당히 진보적인 플레이를 한다 생각했는데. . . 발리 포핸드 백핸드 모두 현대로 가져와도 뒤쳐지지않을 정교하고 강했던거같아요 아마 라켓과 스트링의 발전이 큰 몫을 했겠죠 그나저나 당시에 레슨을. . . 여유가 있는 집 자제분이셨군요^^
넵 솔직히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잘살았습니다..근데 고2때 아버지가 사업하시다가 사기를 당해서 망했는데 그때부터는 정말 너무 가난하게 살았죠..저희 집이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었죠 ㅠㅠ
암튼 렌들은 시대의 선구자라고 봅니다 아이디가 로저 페더러시네요..테니스팬분이라 반갑네요 ㅎㅎ
@호날두리 대학때 조금 치다 결혼후 본격적으로 운동합니다 제인생에 가장 잘한 것 중 하나가 테니스인 것같아요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즐찾 했어요 페더러 젤 좋아하는 선수입니다 ㅎㅎ
@Roger Federer 테니스 정말 좋은 운동이죠 ㅎㅎ 기회되면 다시 꾸준히 쳐보고 싶은데 삶이라는게 참 쉽진 않네요ㅠㅠ 저를 즐겨찾기하는 분들은 주로 메갈이나 워마드에서 건너오신 분들인데 테니스 레전드분께서 즐찾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나브라틸로바 만드리코바 우리나라 여자선수 이덕희 80년대에 티비에서 무슨 대회라고 보았던 기억이
네 저도 그 대회 기억이 나네요.. 아마 팸 슈라이버와 이름이 기억이 안나는 이쁘장하게 생긴 여자 선수 한 명 더 왔던 기억이...ㅠㅠ
@호날두리 와 그거 기억하시나봐요 제 기억으로는 82년 아니면 83년 으료 기억하는데 기억하기에는 세계 최고 선수들 어쩌고 저쩌고 했엇던 ㅎ
@군탈수사대장 급시우 네 생방으로 경기 봤습니다.. 여자테니스도 무척 좋아했거든요 ㅎㅎ TV에서 엄청 홍보하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분명 4명이 왔는데 나머지 한 선수가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요 ㅠㅠ 만들리코바도 미모가 괜찮았죠 ㅎㅎ
처음 본 테니스 경기가 안드레 애거시랑 어떤 노장선수의 스페셜매치였는데 그게 이반 랜들인가요? 애거시가 이리저리 쳐대도 다받아내던 선수였는데 결과는 애거시 패ㅜㅜ
음...스페셜매치면 이벤트성 경기였나요? 말씀하신 그 경기는 무슨 경기인지 잘 모르겠네요..ㅠㅠ
@호날두리 아, 그렇군요. 아는 지인 하나가 명지대 테니스쪽 전공해서 명지대학교에서 은근히 많이 쳤는데, 나름 체력 좋다고 자부하건만(농구는 풀타임 다 뛸정도) 테니스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농락 당하고 체력은 체력대로 힘들고ㅠㅠ 고급스포츠같달까나..
@난 소중하니깐..... 잘치면 재밌고 못치면 너무 힘든 운동이죠 ㅋㅋ 명지대가 예전에 테니스로 유명한 학교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애거시랑 노장이라면 지미코너즈정도 아니었을까요?
@야 그만싸워 진짜 모르겠네요ㅠㅠ 당시 제가 초딩떄여서리ㅠㅠ 그냥 애거시가 한창 떠오르던 최고선수였고, 그 노장선수는 이제 은퇴각이었는데 애거시가 겁나 휘둘리다가 진 경기였습니다..
@난 소중하니깐..... 저도 가물가물한데 느낌이 코너스였을거같아서ㅋㅋ
이런글이 있었는걸 한달지나서야 봤네요 이런글들이 많아져서 스게가 더 풍성해졌으면 좋겠네요 저는 90년대 활약한 마이클창이 가장 좋아했던 선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