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휴암 좌선문(休休庵 坐禪文) Ⅲ
7월 6일 화요공부방은
7시30분 요가를 시작으로 7시 50분 염불, 8시 좌선, 8시10분 교무님 설법 받드는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교무님 설법 받들기 전 성가 부르시는 모습들..
★교무님 설법
" 휴휴암 좌선문은 한문풀이 시간이 아니다.
문장을 통해서 좌와 선의 자리를 연마하고 느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대종사님 당대부터 불조요경 시간에 활용하신 요경이다.
수많은 불조요경 가운데 이 경을 채택하신 이유는 대종사님이 밝혀주신 무시선에 가까운 경이기 때문이다.
(앉아서만 하는 좌선이 아니고 동정간에 하는 선을 표현한 경전이다.)"
☞이번 화요공부방에는 처음오시는 분이 많았고, 휴휴암 좌선문의 전반에 걸쳐 정리하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지난주 화요공부방 내용을 참고하시면서 보시면 도움이 많이 되실것 같습니다.
# 夫坐禪者(부좌선자)는 須達乎至善(수달호지선)하야 當自惺惺(당자성성)이니
"대범 좌선이라 하는 것은 모름지기 지선의 자리에 사무쳐서 마땅히 스스로 성성하게 함이니"
지선(至善) :
지선의 자리는 관조하는 것이지 생각으로 사량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 끊어진 자리에서 합일하는 것.
선을 통해서 단전이나 호흡에 마음을 두나 나중에는 주한다는 생각마저도 끊어진다. 오직 호흡만 있을 뿐이다.
(원적무별한 진경)
성성(惺惺) :
초롱초롱하다. 두렷하다.(지선의 자리에 그쳐서 두렷하다. 걸림이 없이 끌림이 없이 두렷하다)
그러나, 분별주착이 들어가면 이것이 곧 망념이고, 이것이 곧 잡념이며, 이것이 동할 때는 불의가 되는 것이다..
좌선이란 텅빈 자리에서 두렷한 생각을 이루어 내는 것을 말하며, 때가 끼지 않는다.
☼
지선(至善) = 체(體) = 좌(坐) = 정(定)
성성(惺惺) = 용(用) = 선(禪) = 혜(慧)
체와 용은 설명의 방식이다. 일원상서원문에서도 유상과 무상으로 설명해 주셨다.
체와 용은 하나이다.
일원상 서원문에 유상으로 보면, 무상으로 보면 하고 설명해 주셨듯이
체로 보면 지선이요, 용으로 보면 성성이다. 결코 둘이 아니다.
손이 바닥과 등이 있지만 결국 손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 截斷思想(절단사상)호대 不落昏沈(불락혼침)을 謂之坐(위지좌)요
"온갖 생각을 끊고 끊으되 혼침한 데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이르되 좌라 하고"
안으로 밖으로 온갖 분별망상을 끊어내는 것 --> 여기에 그치면 혼침에 빠진다.
더 나아가 혼침에 빠지지 않는 것 --> 이것이 좌 이다.
# 在欲無欲(재욕무욕)하고 居塵出塵(거진출진)을 謂之禪(위지선)이며
"욕심경계에 있으되 욕심이 없고 티끌 세상에 살되 티끌에 벗어나는 것을 이르되 선이라 하며"
재욕무욕 :
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욕심이 나지만 그 욕심에 끌려가지 아니하는 것.
거진출진 :
바쁜 직장생활속에서도 청정한 내 본래의 마음은 텅 빈 자리에 주 하는 것.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차이 :
재욕유욕하고 거진거진 하는 사람은 비 종교인이다.
이유는 내 마음의 선의 세계를 추구하지 못한다. 진리의 세계를 간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外不放入(외불방입)하고 內不放出(내불방출)을 謂之坐(위지좌)요
"바깥 경계가 안으로 들어오지도 아니하고 안 마음이 바깥 경계로 나가지도 아니하는 것을 이르되 좌라 하고"
외불방입 : 바깥경계가 안으로 들어오질 않는다.
내불방출 : 경계에 뺏기지 않는 그 마음을 지킨다.
예) 백화점에서 옷을 봤다. -> 육근(안)이 식을 일으킨다 -> 마음을 뺏겨 예상에 없는 지출을 한다. : 보통사람
-> 마음의 검문소를 잘 설치하여 마음공부를 잘 한다. : 공부인
# 無着無依(무착무의)하야 常光現前(상광현전)을 謂之禪(위지선)이며
"주착하는 데도 없고 의지하는데도 없어서 떳떳한 광명이 앞에 나타나는 것을 이르되 선이라 하며"
주착한바 의지한 바가 없다. -> 수많은 경계속에서 살지만 재색명리에 내가 주착한 바가 없다.(무착무의)
--> 자성의 광명이 항상 눈앞에 전개된다 (상광현전) --> 이것이 선이다.
보통사람은 자기의 관념, 자기의 애고에 집착이 있다.
알면 안다는 것에, 모르면 모른다는 것에, 잘하면 잘한다는 것에...
그러나 실제 마음자리는 무착무의가 내 마음자리이다.
불나방은 불에 타죽는 줄 알면서도 불 속으로 들어간다.
--> 이것이 착이다. 그렇게 무섭다.
두번째로 무서운 것은 습관이다.
습관을 뜯어고치는 종교 봤는가? 습관을 개조하는 것이 바로 좌와 선이다.
심리학에서의 통계에 의하면 아무리 습관을 고친다 해도 전체의 20% 정도밖에 변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원불교 교법은 그렇지 않다.
대종사님은 사실적 종교 신앙이라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삼학팔조, 사은사요를 밝혀주셨고, 이렇게 구체적으로 밝혀 주신 법을 통해 --> 실질적인 문제들을 실천하여 기질변화를 가져온다.
# 外撼不動(외감부동)하고 中寂不搖(중적불요)를 謂之坐(위지좌)요
"외경이 흔들어도 움직이지 아니하고 중심이 적적하여 요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이르되 좌라 하고"
외감부동 :
흔든다는 것은 잡을 것이 있어야 하는 것. -> 잡히면 부동이 되지 않는다. 왜? 흔들어버리니까..
특별한 신심과 서원이 있는 사람과 참마음 자리를 아는 사람은 상대가 나를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다. 잡히지 않는다. 잡힐 실체가 없기 때문에..
중적불요 :
어떠한 경계가 와도 마음의 중심을 바로 잡아서 요동하지 않는 것.
보통사람은 경계가 왔다하면(시험이 떨어졌네, 무시하네, 이뻐하네 등등등) 외부 경계가 탓이 된다. 경계가 나를 가지고 놀아버린다.
-> 이것이 노예생활이다. ->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하는 마음) -> 술, 여행, 수면으로 해결하려 한다.
# 廻光返照(회광반조)하야 徹法根源(철법근원)을 謂之禪(위지선)이며
"밖으로 쏠리는 정신 빛을 돌이켜 비쳐서 자성 본원에 사무치고 있는 것을 이르되 선이라 하며"
현대사회에 온갖 경계가 난무한다. 그러나 사실은 사은의 은혜가 넘쳐나는 것이다.
성리에 근간한 사람은 너와 나가 하나인 관계를 안다. 이 속에서 경계가 나와야 하고, 이 속에서 분별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밖으로 쏠리는 정신을 회광반조하여 철법근원을 할수 있는 것이다.
# 不爲逆順惱(불위역순뇌)하고 無爲聲色轉(무위성색전)을 謂之坐(위지좌)요
"역경과 순경에도 끌리는 바가 없고 소리와 색에도 굴리어 가는 바가 없는 것을 이르되 좌라 하고"
☞성색 : 색성향미촉법을 줄여서 하는 말..
안이비설신의(육근)가
색성향미촉법(경계)을 만나
끌려가는 바가 없다..
성품 -> 정신 -> 마음 -> 뜻 -> 행위
참 마음 자리 옷이구나 좋다. 사야지
>>> 좋다 나쁘다 생각은 들지만 그 마음이 뜻으로 가지 않았다.-> 마음을 챙겼다.
# 燭幽則明逾日月(촉유즉명유일월)하고 化物則德勝乾坤(화물즉덕승건곤)을 謂之禪(위지선)이며
"깊숙한 데 비치매 그광명이 일월에 넘치고 만물을 화육하매 그 덕이 건곤에 승하는 것을 이르되 선이라 하며"
촉유즉명유일월 :
참마음이라는 것은 일월보다 밝다. 귀신같이 다 안다.
화물즉덕승건곤 :
만물을 길러내되 그 덕이 천지보다 음양보다 더 승한다.
-> 천지가 세상 만물을 살린다 해도 중생의 마음을 밝히지 못한다.
-> 부처님의 마음, 참마음이라는 것은 죄업의 중생을 선업의 세계로 인도하니 능히 그 덕이 건곤에 승하는 것이다.
일원상의 진리에 보면,
"장중(손바닥)에 한 구슬같이 드러나며...(<- 성성하므로.)" 라는 표현이 있다.
진리의 세계는 내가 보이던 안보이던 우주만유가 다 성성하게 나타나고 보이는 것이다.
# 於有差別境(어유차별경)에 入無差別定(입무차별정)을 謂之坐(위지좌)요
"차별있는 경계에서 차별없는 정에 드는 것을 이르되 좌라 하고"
온갖 일 속에서 차별 속에서 사나 내 마음은 차별이 없는 그런 경지에 들어간다. -> 일 없는 심경.
보통사람은 "나 바쁘니까 조용히 해!" 한다.
아무리 바빠도 내 신심과 서원을 여의지 않고, 공심을 여의지 않고 그 가운데에서 바쁜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온갖 일 속에서도 일 없는 심경으로 안정을 찾고 바쁠수 있다.
# 於無差別境(어무차별경)에 示有差別智(시유차별지)를 謂之禪(위지선)이니
"차별없는 경계에서 차별있는 지혜를 나타냄을 이르되 선이라 하나니"
차별없는 경계에서 차별있는 지혜를 나타냄.
"일이 없을 때엔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한다. 준비한다."
동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고, 정하여도 분별의 착이 없어야 한다.
보통사람은 일 없을때 자버리거나 TV본다. 어떻게 살 것인가?
☞김법해 교우님과 김혜향 교우님이 보이네요~^^
# 合而言之(합이언지)컨댄 熾然作用(치연작용)이나 正體如如(정체여여)를 謂之坐(위지좌)요
"종합하여 말할진대 천만경계에 치연히 작용하나 마음의 정체가 여여 부동함을 이르되 좌요"
치연히 작용하나 정체는 여여하다..
동하여도 분별이 끌리지 아니하는 것 -> 이것이 좌이다.
# 縱橫得妙(종횡득묘)하야 事事無碍(사사무애)를 謂之禪(위지선)이니
"종으로나 횡으로나 묘용을 얻어서 일 일에 걸림없음을 이르되 선이니"
종횡으로 참 마음을 발견하고, 잃지 않아서 일일에 걸림이 없다 -> 이것이 선이다.
# 略言如是(약언여시)나 詳擧(상거)인댄 非紙黑能窮(비지묵능궁)이라
"대략 말하면 이와 같으나 자상히 들기로 하면 지묵으로 능히 다할 바가 아니라"
비지묵능궁 : 지묵으로 능히 할수 없다.
그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앞으로 설명이 이어지겠습니다.
# 那伽大定(나가대정)은 無靜無動(무정무동)하고 眞如妙體(진여묘체)는 不生不滅(불생불멸)이라
"나가의 큰 정은 정도 없고 동도 없으며 진여의 묘한 체는 생도 아니요 멸도 아니라"
나가대정 = 용(龍)상(象)대정 :
용은 수 백년간 정에 들어야 여의주를 문다.
코끼리는 한발을 내딛지 않으면 다른 한발을 절대 떼지 않는다.
-> 정체가 여여해서 안정되게 딱 정해버리는 것
大定 -> 大慧 (큰 지혜는 큰 정에서 나온다) :
면접볼 때 떨다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나온 사람 -> 평상시 정하는 것이 부족했다. 그래서 동 할때 정에 바탕하지 못했다.
무정무동 : 정도 없고 동도 없다.
시끄러운데 처해있어도 내 마음은 외감부동하고 중적불요하다. -> 그것이 나가대정이다.
원래 마음자리가 무정무동이다. 그러기 때문에 또한 능정능동이다.
정에 치우치면 그것 또한 참정이 아니다.
참 동과 참 정은 동 할때는 능히 동하고 정 할때는 능히 정한다.
동 중에도 내 마음자리를 잃지 않는 것이며, 아침에 선 할때는 철저하게 정 하는 것
참 마음자리는 동도 없고 정도 없다.
자기 마음에 일원상의 진리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은 참 마음자리에 안정을 취할수 있다.
내 마음에 욕심만 품고 다니고, 내 마음에 의두거리가 없이 다니면 오직 동 밖에 없다.
진여묘체는 불생불멸이라. : 묘한 진여의 본체자리는 불생불멸이라.
☼ 예1) 교무님 간사때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 화장실이 8개 였다.
코가 향기의 경계를 만났다. 보통사람은 얼굴 피하며 마지못해 닦는다.
그러나 나는 참 마음자리에 바탕해서 했다. 불구부정했다.
그 현상자체가 더럽고 그렇지 않고가 없이 불구부정이고, 참 마음자리가 또한 그렇다는 것이다.
☼ 예2) 사업이 잘됐다. 안됐다.. 시험이 붙었다. 떨어졌다..
보통사람은 고와 락을 왔다갔다 하면서 산다..
텅빈 진공의 자리에 가면 고락을 지켜본다..
"아~ 내가 지금 사업이 잘됐구나.. 내가 지금 시험에 떨어졌구나.." 이렇게 지켜보는 것.
증감의 세계에 빠지지 않고 절대의 세계에서 상대를 수용하며, 상대를 활용한다. -> 지선의 자리다.
왜 불생불멸해야 하고, 부증불감 해야 하고, 불구부정해야하는가?
내 마음의 실체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 視之不見(시지불견)하고 聽之不聞(청지불문)하며 空而不空(공이불공)하고 有而非有(유이비유)라
"보아도 보이지 아나하고 들어도 들리지 아니하며 공이로되 공도 아니요 유로되 유도 아니라"
시지불견 : 보기는 보는데 보이지 않는다. -> 볼래야 볼수 없다.
청지불문 : 들을래야 들을수 없다.
☼ 예) 컵은 실체가 있어서 보인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어서 볼래야 볼수가 없다..
분명히 듣는 실체가 있는데 대체 무엇이 듣는가?
귀가 듣는가? 귀를 통해서 듣는다.
마음이 듣는데, 마음의 실체가 어딨나?
--> 공이불공, 유이비유
분명히 있는 것은 없는 것으로,,
없는 것은 앞으로 분명히 있어지는 것으로..
# 大包無外(대포무외)하고 細入無內(세입무내)하며
"크기로는 바깥없는 데까지 포함하고 가늘기로는 안 없는 데까지 들어가며"
대포무외 :
크다 하면 작다는 것에 상대한다.
너무 크기 때문에 상대할 것이 없다..
세입무내 :
너무너무 작아서 안이 없어..
철저하게 자기관리하며, 자기관리 할것도 없는 것으로 자기 관리?
☼ 예) 일제의 교육을 받은 사람은 철저하게 자기관리한다..
그러나 용납성이 없다.. 절대 꼴을 못봐준다.. -> 유형의 마음세계로 관리하니 국한이 있고, 자기의 기준을 넘어가면 용납할수 없는 것이다.
# 神通智慧(신통지혜)와 光明壽量(광명수량)과 大機大用(대기대용)이 無盡無窮(무진무궁)하나니
"신통과 지혜와 광명과 수량과 대기와 대용이 다함이 없고 다함이 없나니"
신통지혜 : 신령스럽게 통해버린다. (=공적영지) ☼ 예) 누가 날 싫어하면, 좋아하면. 말 안해도 다 느끼고 안다.
내 마음에 실체가 없기때문에 다 통한다. 무형의 세계이기 때문에 다 통한다..
광명수량이 무진무궁 : 수량이 한량이 없다. -> 영생
내가 있으면 국한이 있다.
(내가 얼마 했는데.. 쫌 했는데.. -> 내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없으면 국한이 없다.
# 有志之士(유지지사)는 宜善參究(의선참구)하야 以大悟爲則(이대오위즉)하면
"뜻있는 수도인은 마땅히 잘 참구하여 크게 깨치기까지 한정하고 공부하면"
유지지사 : 뜻이 있는 선비(수도인, 구도인, 공부인), 즉 "뜻이 있는 나는"
의선참구
참 : 대타적 : 스승에게 배워서
구 : 대자적 : 자기 스스로 연구한다.
이대오위즉 : 크게 깨달아서 준칙을 삼을것 같으면(공부할것 같으면)
# (하)地一聲後(하지일성후)에 許多靈妙皆自具足(허다영묘개자구족)하리니
"홀연히 깨치는 한 소리에 허다한 영묘가 다 스스로 구족할지니"
하지일성 :
하지 : 툭 터져버린것, 열려버린것.
☞하 : 배를 육지로 끌어내리는 소리, 큰소리 하
허다영묘 : 모든것이 신령스럽고 묘해서
개자구족 : 스스로 넉넉히 다 갖추어진다.
# 豈同邪魔外道 以傳授(기동사마외도이전수)로 爲師佐(위사좌)하고 以有所得(이유소득)으로 爲究竟者哉(위구경자재)아
"어찌 저 사마 외도의 전수하는 것만으로써 스승이니 제자니 하며, 또는 얻은 바가 있는 것으로써 구경처를 삼는데 비할 바이랴. "
☞사좌 = 사자지간 = 사제지간 (스승과 제자)
우리가 도를 전해준다. 전해 받는다. 내가 얻었다. 내가 깨달았다 그러는데..
실체가 없는데, 주고 받고 할것이 있겠는가?
옛말에
"眞僧은 下野한다 : 진짜스님은 들로 간다.
假僧은 入山한다 : 가짜스님은 절로 들어간다."
깨달음을 얻었다 하는 것도 짝하는 것이다.
의두요목 중
"세존이 열반(涅槃)에 드실 때에 내가
녹야원(鹿野苑)으로부터
발제하(跋提河)에 이르기까지
이 중간에 일찌기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노라 하셨다 하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질문
☎혜원 : 무착무의라고 하는데, 依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법이나 스승에 의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교무님 : 여기서의 의지는 부정당한 데에 의지하는 것이다. 법신불 보다는 재색명리에 의지하는 것!
정당한 것은 사은이고, 진리와 법과 스승과 회상이다.
☎혜원 : 서원을 이루겠다고 하는 것도 한편으론 착이라고 할 수 있지 않는가?
☺교무님 : 그것은 유념이다. 유념은 용(用)이다.. 철저하게 쓰겠다는 마음.. 이 유념이 욕심에 바탕하고 상대에 바탕한 유념이라면 그것은 허망하다..
따라서 지선의 자리에 근간해서 진공의 자리에 근간해서 유념을 잡아라.
법상, 비법상 : 법이 아닌 법에서 법이 나와야 한다. 그것이 참 법이다.
원각가(圓覺歌)
: 정산 종사께서 일원의 진리를 원만하게 깨치시고 그 기쁨을 찬탄하시며,
삼학 팔조와 사은 사요의 공부로써 대원정각의 큰 도인이 되기를 권장한 가사.
1932년(원기 17) 〈월보〉 38호에 처음 발표하였슴. 총 252구로 구성된 장편가사
★ 정산종사님 소개
: 정산종사님은 1900년에 출생하시어 1962년에 열반에 드심.
7세 : 한학을 공부 하심.
9세 : 통감을 자주 읽으심 (과거 성현의 책들. 내용들)
10세 : 예화 소개
정산종사님이 어머니와 밭을 따라 가시던 중, 정산종사가 누구랑 얘길 하시고 돌아오신다.
어머니가 물으신다. "그 사람 아는 사람인가?"
정산 종사 말씀하신다. "행색이 범상치 않아보여 도인 인 듯 싶어 몇가지 이치를 물었더니. 하나도 모르더라."
11세 : 사서를 통달하심. 큰 스승님 만나게 해달라 기도하심 (거북바위)
13세 : 결혼하심
15세 : 도를 구하고자 가야산으로 가셔서 치성을 드림
이때 쓰신 시 "천리를 단숨에 훨훨부상할 붕새여, 10년을 조롱에 갇힌 학의 신세 답답하여라."
당시 정산종사님의 마음을 엿볼수 있는 시입니다.
18세 : 전주대원사에서 3개월간 유숙 -> 육도사생의 이치가 떠오르심
"후일에 위대한 사업을 이루어서 명전백세하게 하여 주십시요" 하며 기도하심.
19세 : 정읍화해리 해운할머니를 만나 집에 모셔져서, 한달후에 대종사님을 만나신다. 19세때 출가하심.
영산에 오셔서 정산종사님을 땅굴에 넣으셨다.
대종사님이 정산종사님의 몸이 아파도 큰 도인을 만들기 위해서 가둠 : 영통의 기운을 잠재우기 위해..
정산종사님은 내가 철 없었을때 부질없이 나타났던 것이다라고 영통을 표현하심..
25세 : 연구부장
28세 : 경성 출장소 2대 교무 -> 정식 특신급
29세 : 영광 교무
32세 : 예비 법마상전급
33세 : 원각가 발표. 원각가를 노래화 한 곡 -> 성가 106장
다음 화요공부방(7/13)에서 원각가의 내용을 가지고 교무님 설법 받드는 시간 갖겠습니다.
이번 공부방에서 나누어 드린 책자 꼭 챙겨오시길 바랍니다.
★ 새로오신 교우님
황제선(지은) 교우님(좌측사진) : "화요공부방 나오면서 마음공부 하려 합니다. " - 용인교당에서 오셨습니다.
김호겸(호겸) 교우님(가운데사진) : "작년에 왔다가 올해 두번째로 왔습니다. 졸업하고 서울에서 근무하게 되면 나오고 싶습니다." - 이제선 교우님 학교 후배이십니다.
이덕신(희상) 교우님(우측사진) : "오늘 와서 좋은 것 배우고 갑니다." - 이제선 교우님 학교 후배이십니다.
"만나 뵙게 되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이렇게 맺어진 인연을 세세생생 소중한 법연으로 이어질수 있길 바랍니다."
이번 화요공부방에서 사진촬영으로 수고해주신 김선익 교우님~ 감사합니다!
첫댓글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원진교우님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화요공부방 분위기가 그대로~~ 황제선 교우님, 김호겸 교우님, 이덕신 교우님 만나뵙게 되어서 반가와요~!!1
담에 또 나가고 싶은...
정성과 노력이 가득담긴 후기.. 정말 감사합니다^^ 선익교우님~ 사진 참 잘찍으시네용~~ ㅎㅎㅎ
아아-ㅂ- 가고싶었는데ㅠ 시험기간이라 참석도 못했다죠-ㅂ-하핫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