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한 소리는 녹둔도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들 귓가를 스쳐 멀리 추도까지 뻗어 나갔다. 추수에 열심인 장졸들도 그 깊고 그윽한 소리에 웃음빛을 띠었다. 이제 곧 하얀 쌀밥과 비계가 둥둥 뜨는 고깃국에 걸쭉한 탁주가 놓인 저녁상이 차려질 것이다. 북삼도(평안도. 함경도. 황해도)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장졸들에게는 얼마 만에 먹어 보는 햅쌀밥인지 모른다.
이순신은 목책에 서서 맞바람을 맞으며 북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두 눈에는 핏발이 섰고 갈라 터진 입술에는 검붉은 피딱지가 앉았다. 대풍 소식을 접한 후부터 더욱 근심이 커졌다.
'풍년가 부르며 무사히 추수를 끝낼 수 있을까?'
"군졸들은 날 불사신으로 생각해, 허허. 하지만 양미간이나 심장에 화살을 받고 죽지 않는 인간이 있겠는가. 장수가 생사를 함께할 의지를 보여야 군졸들이 진군 북소리를 반기고 퇴각 나팔소리를 아쉬워하는 법. 부자지병이라지 않는가? 군졸들에게 장수는 곧 아비인 게지.
이경록이 떠나자 이순신은 날발 등에서 내려 잠시 길가에 쉬며 숨을 골랐다. 방가지꽁과 배초향. 수리취 꽃 냄새가 코로 밀려 들어왔다. 고개 들어 높푸른 가을 하늘을 우러렀다. 이렇게 앉아 쉰 적이 언제인지 몰랐다. 북삼도에 배속된 후 단 하루도 풀꽃과 하늘을 마음 편히 살핀 적이 없었다. 시간을 쪼개어 목책을 정비하고 군졸들을 독려했으며 흑각궁을 들고 사대에 섰다. 그런데도 녹둔도를 지켜 내지 못했다.
녹둔도의 좌절로부터 서른 세 해 전인 갑인년1554년 여름. 아이들 셋이 한양의 필동을 지나 목멱산 자락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주위는 벌써 어둑어둑했다.
셋 중 앞장서서 흰노루오즘과 둥근노루오줌 사이로 성큼성큼 산길을 오르는 아니는 벌써 몸집이 쳥년 같았다.
"목멱산에 치우 발자국이 있는데도 그걸 적은 서책이 없다면 그건 좁은 소견을 지닌 샌님들에게 문제가 있는 거라고. 함께 가. 가 보면 알 거 아냐?"
두 소년은 비보라를 맞으며 왼쪽 길로 뛰어 내려갔다.
지난 봄 산과 텁석부리 꺼칠한 수염 같은 여름 산은 완연히 달랐다.
입궐 준비를 서두르던 아침에 받은 서찰이 떠올랐다. 아산에 있는 이요신이 이 년 만에 보낸 서찰이었다.
"봄이로세. 벌깨덩굴 막 피기 시작할 때 헤어진 후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는데, 시간은 빨리 흐르고 ...우리 형제 중에는 그래도 순신이가 가장 나은데, 무슨 생각이 그리도 많은지 팔도를 제 집처럼 떠골기만 하는군. 혹시 틈을 내어 순신이를 가까이 만날 날이 있거든 부디 자네가 충고해주기 바라네."
'날 미행했구나. 왜 내 뒤를 밟은 것일까?'
흠칫 놀라는 사이에 도사는 이미 몸을 돌렸다. 이순신은 후다닥 일어서서 도사를 붙들려고 했다. 대체 어떤 내력을 가진 어른인지, 무엇 때문에 능주까지 뒤를 밟았는지 캐묻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달음박질쳐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도사님! 어디로 가십니까?"
대답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바람처럼 왔다 가는 인생에 가는 곳은 어디고 오는 곳은 또 어디겠는가. 인연이 있으면 또 보겠지! 허허허, 허허허허."
류성룡은 가슴이 답답해 왔다.
'무엇이 순신이를 이토록 짓누르고 있을까. 무엇이, 해진 옷을 입고 배를 곯으면서도 치면 되튈 듯 당당하던 그 아이를 이토록 초라하게 가라앉혀 버렸는가.'
"자네 평중 소식 들었나?"
이순신이 두 눈을 끔벅이며 고개를 저었다.
"평중은 지금 함경도 무산 근처 충산이란 곳에 권관으로가 있다네. 이달 초하룻날 두만강을 건너온 야인들과 싸워 이겼다는군. 겨우 군졸 열넷을 이끌고 말이야."
"멋지군요......"
이순신은 말끝을 흐렸다.
'모두들 나보다 앞서 가는구나. 평중 형님은 함경도에서 야인과 싸워 이겼고, 이현 형님은 벌써 병조 좌랑이시다. 그 재주와 학덕으로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 그래도 너무 멀리 가는구나.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아, 나는 지금 어디 서 있는 것이냐.'
"맛이나 빛깔이 조선에서 최고라는 우통수(오대산 서대 아래 함천에서 나는 물. 서쪽으로 수백 리를 흘러 한강이 된다)도 시시때때로 변하죠. 발바위 샘물은 묘시(새벽 5시~7시)에 담아 와야 합니다. 그런데 진시(아침 7시~9시)에 물을 떴기 때문에 스승님께서 노여워하시는 겁니다. 내일은 묘시에 길어오십시오."
"무고불기(無高不企)라 하였습니다요."
"바라보지 못할 만큼 높은 곳은 없다? 하하하. 정말 대단한 놈이로군. 한데 넌 나를 믿느냐?"
"......"
갑작스러운 질문에 임천수는 즉답을 못했다.
"지금부터 이놈은 대장을 모시고 조선 땅에 내릴 겁니다요. 그러곤 제법 긴 시간 동안 산을 타고 강을 건너겠지요.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고 서로 오해가 생길 수도 있습죠. 돈을 먼저 내십시오. 돈을 내지 않는 사람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요."
하지만 그 말 속에 언뜻언뜻 묻어나는 이순신을 향한 은근한 관심에는 어쩐지 마음이 움직였다. 박미진은 지금 마주 앉은 이가 그리는 사람의 아내임도 잊은 듯 자분자분 생각을 털어놓고 있었다.
"사형이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모르시진 않겠지요? 너무 혼자 멀리 가 있기 때문에 보통 사람은 그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스승님께서도 그러셨어요. 한번 날면 붕이 될 터인데 계속 날개를 접으려고만 한다고요. 날개를 접고 낑낑대며 걷는 것도 안타깝지만 과연 날개를 폈을 때 누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요."
마지막으로 사내아이가 남았다. 와키자카가 화살을 꺼내 시위를 당기며 아이를 찾았지만 그 아이는 이미 까마득히 달아났다. 허공을 나는 듯 대단한 속도였다. 와키자키가 화살을 내려놓으며 피식 웃었다.
"나는 발 같은 놈이로군!"
금오산 일대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다. 검은 연기가 산 전체를 뒤덮었고 불에 타고 칼에 베인 시체들이 나뒹굴었다. 피비린내와 연기 냄새가 폐를 채우고 가슴통을 긁어 댔다. 두 눈 가득 고여든 눈물이 뺨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백성들이 왜 이렇게 헛되이 죽어야 한단 말인가. 산 전체가 개 한 마리 남기지 않고 완전히 도륙당하는데 이 나라는 무엇을 한 것인가. 백성을 지키지 못하는 나라가 도대체 나라란 말인가.'
'사림과 훈구가 다 무엇인가. 나라에 옮음을 다시 세우고 성군이 선정을 펼진다 한들, 오랑캐가 이리 쉽게 강토를 짓밟고 노략질을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북삼도와 하삼도가 편치 않은데 어찌 밝고 평화로운 시절이 왔다 하겠는가. 그무엇보다도 백성을 지켜야 한다. 백성에게 편안한 잠자리와 그득한 밥, 따뜻한 옷을 약속해야 한다. 나에게 힘이 있다면 백성을 지키는 데 쓰겠다. 백성을 위해 살고 백성을 위해 죽겠다.'
붉게 충혈된 눈에서 쉬지 않고 흐르는 눈물 속에 금오산을 불사른 화마보다 더 뜨거운 불꽃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제1권 終 (2021.4.2 11:28 금)
원균도 콸콸 쏟는 탁주를 마다하지 않고 받아 마셨다. 탈영병이자 결사대였던 열둘은 거듭거듭 고맙다는 절을 하면서 곰비임비 술을 따랐다.
사내는 공손히 시관들에게 읍한 다음 정탁과 마주보며 앉았다. 정탁이 응시자 명부를 보며 물었다.
"보인 保人 이순신. 창신교위 이정의 셋째 아들로 충청도 아산에서 왔군. 을사년생이니 서른두 살이고. 서책은 가까이하는 편인가?"
"재앙을 가져오는 다섯가지 큰 잘못을 외워 보겠는가? '유씨가훈'에 있느니라."
이순신이 막힘없이 답했다.
"첫째는 편안함만을 추구하여 담박한 생활을 좋아하지 않는 겁니다. 둘째는 공맹의 도리를 알지 못하고 성현의 가르침을 좋아하지 않는 겁니다. 셋째는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미워하고 아첨하는 자를 좋아하는 겁니다. 넷째는 노는 걸 좋아하고 술을 즐겨 마시는 겁니다. 다섯째는 벼슬을 얻기 위해 높은 아첨하는 겁니다."
"용재(성현의 호) 대감이 쓴 칠언고시 호가곡을 옲겠습니다."
석 점, 넉 점 북두성 밝고
한 박拍, 두 박 오랑캐 피리 소리.
피리 소리 흐르는 城성에 거리 가득하니,
변방 사람 듣고 눈물을 줄줄.
달 아래 고향 집 생각, 너무나도 그립네.
"그 서책에서 용재 대감은 부휴자 입을 빌려 천하를 다스리는 이치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십니다. '천하를 다스림에 방도가 있으니 오직 공정할 따름이다. 임금은 공정해야 하니, 작위를 내리는 것이 공정하고 상을 내리는 것이 공정하며 형벌을 쓰는 것이 공정하고 법을 지키는 것이 공정해야 한다. 신하도 공정해야 하니, 관청 일을 함에 사사로운 일을 꾀하지 않고 공공장소에서 사사로운 이익을 말하지 않으며 공적인 관직에 임하여 사사로운 은혜를 베풀지 않고 공변된 의리를 따라 사사로운 욕심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임금이 공정하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사사로우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신하가 공정하면 몸이 편안하고 사사로우면 몸이 위태해진다.' 공정함보다 더 중요한 이치는 없을 듯합니다."
지금 선비 된 자들은 그렇지 않아 벼슬길에 오르자마자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에 힘써 작게는 뇌물을 받고 크게는 가렴주구를 행하며, 파리처럼 앵앵거리고 승냥이처럼 탐을 내어 끝을 모른다."
이순신이 문을 닫고 나가자 정탁은 기쁨을 찹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순신! 사리 분별이 분명하고 박학한 사람이로다.
그제야 이원익은 류성룡과 이순신의 인연을 이야기했다.
이원익이 사족처럼 물었다.
"한데 저토록 시문에 능한 이가 왜 문과가 아니라 무과에 응시했을까요?"
정탁이 펼쳐 둔 '소학'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정언은 별것이 다 궁금하구려. 식년 무과에 온 사람을 식년 문과로 가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우린 응시자들 중에 뛰어난 이를 가려 뽑으면 그만이오."
(전류리 포구는 너무나 하얗게 반짝여서 사람들을 차라리 내몰고 있었고, 그리하여 북한여인이 손질하던 생선한마리를 역시 남자 하나가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그 옆 길하나 건너 언덕 위에는 벚꽃이 충절을 환히 밝히고 서 있는 '표충사'가 있었다. 문수산이 오른쪽에 보였고, 길은 강화도로 접어들고 있었는데 언덕을 올라가면서 시선을 끄는 하얀 꽃길. '올 때 저길 들러보고 싶다' 고려산을 가려하였으나 코로나가 막고 있어서 갈 수 없었지. 눈 닿는 곳에 계곡이 온통 하얗길레 그곳을 향하였다네. 석물을 제작하는 공작소는 소나무 울타리가 클래식했고 그 계곡은 시조들, 봉씨와 또 다른 민씨(?) 들이 차지하고 있었지. 그 위와 아래에서 두릎을 몇개 운좋게 따고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네. 옛날과 달라서 이젠 외부인이 아무 산에 가서 나물을 뜯을 수 없어. 범죄를 지으며 다시 길을 내려와 할머니 입석불을 보았다네. 시조를 잘 키워준 은혜로 몇대 후손이 새겨 놓았다는 석조여래입상. 그 주위에는 벚꽃이 진달래가 온통 흐드러지게 청춘을 불태우고 있었지. 나물이 별로 없는 산. 소나무로 둘러쌓인 석공장을 지나쳐 강화풍물시장을 찾았네. 그리고 Seaside cc를 내려다보며 나무의자와 참나무순. 필드의 벚나무와 목련과 각색의 산벚꽃... 아, 내가냐? 니가냐? 불쌍한 것이냐. 훌륭한 것이냐. 골프장 안의 인간과 밖에 산 위에 있는 인간. 잠을 자면서 아내의 전화에 깼더니 정서진이었다. 산파가 무리진 강화 입구를 틀어쥔 무명산에서 오후가 봄날과 함께 짓무르다. )
4월 8일, 다른 군졸이 물었다.
"검술이나 봉술에 비해 궁술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참고 또 참는 인내다. 검술이나 봉술은 나아가 싸우면 되지만, 궁술은 적이 먼저 최대한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고요를 참지 못하고 섣불리 화살을 날렸다간 대패를 면할 수 없다."
답을 마친 이순신은 사대로 올라섰다. 전동에서 철전을 하나 뽑아 흑각궁에 실었다. 류성룡이 온화하게 미소짓는 모습이 스치고 난 자리에 서익의 날카로운 눈초리로 노려보는 모습이 머물렀다. '관례를 따르렸다! 네까짓 게 뭔데 관례를 따르지 않는 것이냐.'
이순신은 훈련원 봉사로 근무한 지 여덟 달 만에 충청 병사 아래 군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듬해인 경진년1580년 초여름.
이순신은 전라도 흥양현에 있는 발포 만호로 임명되었다.
전라 좌수사 성박이 그 나무를 베어 거문고를 만들어 올리라고 명하자 이순신은 그 일의 사사로움을 지적하면서 단칼에 거절했던 것이다. 성박이 이순신을 좌수영으로 불러들여 화를 내며 꾸짖었을 때, 이순신은 담담하게 이렇게 답했다.
"장군께서 아무리 전라 좌수사라 할지라도 휘하 군영에 있는 관아 기물을 마음대로 운용하는 것은 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 일이 오랜 관례였다고 해도 이제 잘못을 바로잡아야만 합니다."
사사건건 법을 내세우고 의를 따지는 이순신이 껄끄러웠던 전라 좌수사 성박과 그 후임인 이용은 이순신을 다른곳으로 전출하거나 파직하려고 했다. 이용은 고과(이조나 병조에서 일 년에 두 차례씩 관원의 공과를 조사하는 일)를 할 때 이순신에게 가장 낮은 평점을 주었지만, 때마침 전라도 도사로 와 있던 중봉 조헌이 그 부당한 고과를 정정하기도 했다.
보름 후, 이순신은 군기軍器를 제대로 보수하지 않았다는 죄로 파직되었다. 이순신은 간단히 짐을 꾸려 발포를 떠났다. 군졸과 백성들은 흥양현까지 따라오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임오년1582년 정월에 발포 만호에서 파직된 이순신은 넉 달 만에 훈련원 봉사로 복직했다. 이듬해인 계미년 여름에는 함경남병사의 군관으로 옮겼다가 초겨울에 다시 건원보 권관이 된 것이다. 등과한 지 어언 칠 년, 불혹을 코앞에 두었지만, 이순신은 가장 낮은 벼슬인 종구품에서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그 말이 김우서를 더욱 화나게 했다.
"내 군령을 따랐다면 크게 졌을 거라 이 말인가?"
"소장은 군령을 어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울지내를 생포할 수 있는 계책을 짜서 소장 나름대로 써보았을 뿐입니다. 이번 전투에 잘못이 있다면 소장이 그 벌을 받겠습니다."
이순신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또박또박 따지듯 답했다. 김우서는 점전 자신이 궁지로 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분이 더욱 상했다.
'벌을 받겠다고? 종구품 권관 따위가감히 북병사인 내게 이렇게 대들어도 되는 것인가.'
"그만 물러가라. 다시는 마음대로 허황한 계책을 쓰지 마라. 내게 반드시 사전 보고를 하고 허락을 받으라. 앞으로 이런짓을 할 텐가?"
그런데 잠시 시선을 내리고 침묵하던 이순신이 물러서지 않고 버텼다.
"또 이런 기회가 있다면...... 소장은 똑같은 계략으로 울지내를 잡겠습니다."
"감히...... 감히!"
김우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양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청년 시절의 지독했던 방황은 어디서 출발했던가. 바로 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보인 의로운 삶을 본받지 않고 서울에서 아산으로 낙향했던 아버지가 싫었다. 아버지가 부르면 산이나 들로 달아났고, 공맹의 도리를 물으면 짐짓 모른 체했다. 그렇게 반항하면서 미움을 키웠지만 그만큼 또 아버지와 터놓고 이야기할 날이 있으리라 기대했다.
등과한 후 아산에 내려갔을 때, 아버지 이정은 자랑스러운 낯은 커녕 근심 어린 눈빛으로 셋째 아들을 바라보았다. 희신, 요신 두 형이 기뻐하며 축하주를 권할 때도 아버지는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다음 날 아침 문안을 위해 안방에 들어가니 아버지는 이미 낚싯대를 들고 길을 나선 후였다. 칭찬은 아니더라도 함나디 덕담은 기대했건만 셋째 아들과 마주 앉는 것조차 피했던 것이다.
겉보기에는 여유 있고 넉넉하며 부드러운 호인이지만, 이정은 금강석보다 단단한 껍질로 속을 보호한 채 한누를 살았다. 이제 영원히 벗길 수 없는 죽음으라는 껍질이 그위에 하나더 씌워졌다.
신사년 1580년에 둘째 형 요신이 먼저 세상을 하직했고, 경진년 1581년에 큰형 희신마저 뒤를 따랐다. 이순신은 두 형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또다시 해를 넘겨서야 아버지 부음을 접한 것이다.
아버지에게 집은 마지막 기착지가 아니라 잠시 머물다 떠나는 역참이었다.
형님!
언젠가 아버지는 "요신이는 꼭 날 닮았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때는 요신 형님처럼 열심히 서책을 읽고 시문을 공부하는 사람이 어찌 음풍농월로 세상을 떠도는 아버지와 닮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하나 돌이켜 생각하니 아버지 말씀이 틀리지도 않은 듯합니다. 요신 형님은 애초부터 청운의 길에 관심이 없으셨지만, 요신 형님은 서애 형님과 나란히 홍문관에 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요. 서애 형님과 나란히 홍문관에 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요. 서애 형님은 요신 형님이 등과하지 않고 충청도 땅에서 육빙(이규보가 「詩魔文」에서 말한, 인생을 살 때 참고해야 할 여섯 가지) 이나 논하다 돌아가신 것을 지금도 애석하게 생각하십니다. 아버지처럼 낚시를 하든, 형님처럼 조용히 난을 치든 속 깊은 근심은 하나였습니다. 斯道사도를 온 세상에 퍼뜨리려고 애쓰다가 헛되이 실패하느니 차라리 마음을 닦는 데 힘쓸 뿐 아예 그 길에 들지 않겠다는 단호함. 하지만 이 아우는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순신은 발을 걷고 천천히 초막 밖으로 나섰다.
"평중 형님이 말하더군요. 원칙을 지키는 것은 옳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니, 항의한 후엔 어울려 우굉(소뿔로 만든 술잔)을 기울여라. 한 잔 한 잔 마시는 술이 느는 만큼 그 사람들도 진심을 알아줄 것이다. 하나 아버지, 소자는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는 냉수 한 사발도 나눠 마시고 싶지 않습니다. 마음에 사특함이 없이 언행을 올바르게 하였을진대 무엇 때문에 사사로운 정으로 이해를 구하여야 합니까. 나아길 때 俠협을 생각하고 들어올 때 義의를 곱씹으면서, 오직 나라의 기둥과 서까래를 바로 세우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일에 매진하면 그뿐입니다.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 그것이 바로 장수가 할 일이지요."
이정이 말했다.
"허허허, 그래서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게다. 조금만 부드럽게 조금만 천천히 사시라는 권유를 물리치셨지. 이제 불혹으로 접어들었으니 네 길은 네가 알아서 가거라. 다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가솔들 얼굴을 떠올리기 바람다. 가솔들이 네 발목을 잡아서도 아니 되지만 그렇다고 너 혼자뿐이라는 생각으로 살지는 말란 뜻이다."
"한 가지 여쭈어도 될른지요?"
손을 내맡긴 채 박초희가 처녀치마 꽃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말해보오."
박초희는 아버지에게 이별을 고할 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꽃잠(신랑 신부가 첫날밤에 같이 자는 잠) 은 보통 신부 집에서 자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데 밤이슬을 맞아 가며 보성으로가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조창국이 곧바로 답했다.
"결례인 줄은 아오. 하나 열흘 전 하동 쪽에 왜구들이 나타났다 하오. 보성도 안전하지 못하오. 이런 때에 집을 비울 수 없어 그랬소."
달아나기에는 이미 늦었다. 당의를 입은 신부가 뛰어 봤자 곧 잡힐 것이다. 숨죽이고 웅크려 왜구들 눈길을 속이려고 했다. 잠자리난초와 개불난초의 향내가 코를 찔렀다.
'벌써 십육 년이나지났구나!'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배에서 뛰어내려 구사일생으로 탈출했을 때 임천수는 스물여덟 살이었다. 와키자카 가문의 조선 다기 거래를 독차지하여 단숨에 윤 도주 자리를 빼앗고 하삼도에 있는 강상해고를 지배할 수 있다고믿었을 만큼 패기 넘쳤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야스하루는 임천수가 생각한 대로 호락호락 움직여 주지 않았다. 오히려 임천수를 이용해 동생의 복수를 하고 임천수와 천무직을 수장하여 금오산(이 금오산은 구미의 금오산이 아닌듯하다)에서 저지른 학살을 덮으려고 했다.
겐소가 답했다.
"바로 보셨습니다. 대열을 흩뜨리고 마구잡이로 달려들어 일단 백병전에 들어가면 조총인들 막대기와 다를 바가 없겠지요. 하지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조총을 든 군사들이 세 겹으로 열을 지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삼열 횡대로 늘어서서 첫줄은 총을 쏘고, 다음 줄은 심지에 불을 붙이고, 마지막 줄은 돌아와 총탄과 심지를 준비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일본에서는 수많은 전투를 통해 이 전술을 몸에 익혔습니다. 갑옷도 종잇장처럼 뚫는 조총 부대가 조선 땅에 발을 들이면 창이나 칼로는 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허어!"
시문을 한 편 한 편 읽어 가던 류성룡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냉수 한 그릇을 마신 후 자세를 고쳐 앉았다. 서안에 쌓여 있던 문서들을 내려놓고 난설헌이 쓴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새벽닭이 울 때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영롱함은 허고에 핀 꽃이나 물속에 비친 달과 같았고 기개는 백두 한라와 다투었다. 무장의 바다에서 철갑상어가 장난하고 학문의 숲에서 기린이 뛰노니, 자못 열사烈士의 기풍이 있었다.
'미숙(허봉의 자) 집안 사람들은 어찌 이다지도 뛰어난고. 형제들 재주만 해도 아름다운 이름을 전할 터인데 그 누이마져 보통 사람이 이를 수 있는 경지를 넘어섰구나. 구름을 몰듯 바람을 꾸짖듯 호탕한 시들이로세. 우주를 사당祠堂삼고 오악五嶽을 제기 취급하는구나. 동방의 문부(글 창고)가 따로 없도다.'
십여 년 전, 율곡 이이가 "적이 우리를 이기지 못하도록 먼저 준비해서 우리가 적을 이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자."라면서 군사를 기르자고 했을 때 앞장서서 반대한 이가 바로 동인에 속한 신진 사류였던 류성룡, 김성일, 허봉이었다.
선조가 즉위하면서 조선은 바야흐로 새로운 태평성대를 열어가고 있었다. 퇴계 이황, 율곡 이이, 화담 서경덕, 남명 조식 등이 이룩한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왕도정치를 위한 초석을 닦았고 신립, 이릴 등 용장들이 줄지어나타나 함경도와 평안도에서 크고 작은 승리를 거두어 여진족 걱정도 다소 접을 수 있었다. 명나라가 조선에 전쟁을 걸어 오지 않는 한 평화는 오랫동안 지속될 것 같았다.
허탈한 표정을 한 율곡 얼굴이 류성룡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나 그때 일을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 보이지 않는 전란 때문에 백성들을 동원하고 군량미를 징발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 중에서 최악이다. 그리고 지끔까지 아무 조짐도 없으니.... 율곡은 틀렸다.'
경연장에서 선조는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과인은 어떤 임금인가?"
신하들이 앞 다투어 대답했다.
"전하께서는 요순 같은 임금이십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선조는 입에 발린 대답이 싫지많은 않았다. 그때 김성일이 큰 소리로 아뢰었다.
"전하께서는 요순도 될 수 있고 걸주桀紂도 될 수 있사옵니다."
선조가 표정을 순식간에 굳혔다. 신하들은 김성일이 제 무덤을 스스로 팠다고 생각했다. 홍문관 수찬으로 경연에서 논의들을 기록하는 기사관까지 겸하던 류성룡이 보다 못해 나섰다.
"김성일이 걸주에 비유한 것은 전하께서 걸주와 같은 폭군이 되시자 않도록 경계한 것이오니, 모두 전하를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했사옵니다."
그제야 선조는 화를 풀고 김성일을 친찬한 후 경연을 끝냈다. 김성일은 그렇게 강직하고 꼿꼿한 위인이었다.
금빛으로 여의주와 봉황 그리고 꽃구름이 조각된 보개(양산처럼 어좌를 덮는 덮개)가 오늘따라 아름다움을 더했다. 불혹에 가까운 선조는 얼굴에 자신감이 넘쳐 났다.
열여섯 살에 보위에 오른 후 벌써 이십삼 년 동안이나 옥좌를 지키고 있었다.
즉위 초에는 유선록, 근사록과 같은 책을 간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묘사화 때 억울하게 처형당한 조광조를 증직하여 사림들 칭송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을해년1575년 동서 분당을 기점으로 당쟁이 격화되던 이십대 후반에는 잠시 주색에 빠지기도 했지만 계미년과 정해년에 야인들이 함경도를 침입한 후로는성심을 되찾고 정치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내일 왜국으로 떠날 상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 서장관 허성이옵니다."
영의정 이산해가 맨 처음 처리할 안건을 꺼냈다.
선조는 진작부터 정철이 지은 가사를 읽었고 그 미인이 바로 선조 자신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동인으로부터 탄핵을 당한 후 강원도, 전라도, 함경도에서 외직으로 떠돌다가 고향인 창평에 머물면서 재기를 노리며 임금을 위해 언문 가사까지 짓는 정펄이라면 언젠가 유용하게 쓸 날이 있으리라 여겼다.
정여립이 역모를 꾸몄음이 밝혀졌을 때 선조에게는 이 일을 책임지고 조사할 위관이 필요했다. 처음 위관으로 임명된 우의정 정언신마저 정여립과 서찰을 주고 받은 사실이 발각된 후로는 믿을 사람이 없었다. 이산해와 류성룡은 정여립과 같은 동인이었고 윤근수나 윤두수는 그릇이 작았으며 이항복과 이덕형은 아직 어렸다. 그때 정철이 역적을 체포하여 엄히 다르리라는 비밀 차자를 올렸다. 선조는 정철에게 일을 맡기기로 한 후 밤새 정철이 쓴 언문 가사와 시조를 다시 읽었다. 임금을 향한 충정이 새로웠다.
"정여립이 퍼뜨린 참어(유언비어)는 무엇 무엇인가?"
정철은 준비해 온 문서를 참조해 가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두 네 가지이옵니다. 첫째는 목자망전읍흥, 이씨가 망하고 정씨가 흥한다는 것이옵니다. 둘째는 전주에 왕의 기운이 있다는 것이옵고, 셋째는 뽕나무에 말갈기가 나는 집안에서 왕이 난다는 것이오며, 넷째는 정씨가 계룡산 아래에 도읍을 정한다는 것이옵니다. 모두 역적 정여립이 왕이 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사옵니다."
정여립.
경오년 1570년에 등과하여 율곡과 우계(성흔의 호)에게배웠으며, 계미년 1583에는 예조 좌랑에까지 오른 위인이다. 이듬해 율곡이 세상을 떠나자 스승을 비판한 후 동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비를 배신한 위연과 같다면서 선조가 멀리하자, 의갱(개미 굴)같은 벼슬살이를 접고 고향 전주로 낙향하였다.
정해년 1587년 왜구가 서해안으로 침입하자 전주 부윤 남언경은 정여립에게 도움을 청했다. 전주에는 왜구와 맞서 싸울 충분한 병력이 없었던 것이다. 정여립은 자신이 조직한 대동계 계원들을 이끌고 왜구들을 격퇴했다.
정여립은 진안 죽도에 서실을 지어 놓고 학문과 무술을 가르쳤다. 제자를 받아들일 때 신분이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았으며, 모든 사람이 평등한 대동 세계건설을 주장하였다. 이는 정주학을 기반으로 하여 왕을 정점으로 하는 사농공상을 신분 제도로 운영해 온 통치 이념에 정면으로대립하는 사상이었다. 그런데도 정여립이 이끄는 대동계는 칠 년이 넘도록 아무 제재도 받지 않았으며 왜구를 물리친 후로는 전주 부윤이 직접 대동계를 후원하고 보호하기까지 하였다. 지방에서 사림은 그만큼 크고 강했던 것이다.
황해도 안악 군수 이축이 장계를 올려 정여립이 한양에 반군을 투입하여 이씨 왕조를 무너뜨리려 한다고고변했을 때, 선조는 전주 부윤이 정여립과 친분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분노했다.
이른바 '기축옥사'였다. 명분은 역적을 처단하는 것이었지만 어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선조는 기어오르는 사림을 꺽어 흔들리는 중앙 집권을 강화하고 싶었다. 정철이 호남 사림은 물론이고 퇴계와 남명 아래에 있는 영남 사림까지 조사하려 했을 때 선조가 묵인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왜구들 침입을 방비하기 위해 수사水使로 쓸 만한 장수를 대신들이 추천하였사옵니다."
좌부승지 황우한이 영의정 이산해로부터 문서를 맏아 올렸다. 선조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장수들 이름을 쭉 훓었다.
"이순신이라! 이순신은 녹둔도에서 싸움에 져 백의종군했던 조산 만호가 아닌가? 작년에 정언신도 그를 추천한 적이 있지만 과연 수사 일에 적합한 인물인지 모르겠다. 현감으로 족한 위인이 아닌가?"
"그대와 이순신 그리고 원균이 모두 건천동에 살았다?"
"그러하옵니다."
"일찍이 퇴계는 '임금은 마땅히 인혜仁惠해야 하고, 신하는 마땅히 공경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理다.'라고 말했사옵니다. 임금을 공경하지 않고 힘으로 제압하려 드는 신하는 참된 세상 이치를 거스르는 자이옵니다.'
심수경은 원칙론에 머물렀다. 임금다움을 논하기에 앞서 신하다움을 강조한 것이다. 그 말은 또한
"천하 만물은 만인 소유이니 누군들 왕이 아니겠는가."
라고 주장하는 정여립에 대한 반박이기도 했다.
"건천동 바깥에는 장수가 없어?" 라는 질책이 귓전을 오랫동안 맴돌았던 것이다. 밖으로 나서다 말고 몸을 돌려 텅 빈 어좌를 바라보았다. 가슴속에 묻어 두고 하지 않은 이야기가 혀끝에 맴돌았다.
'전하!
신이 이순신을 천가한 까닭은 순신과 신이 같은 마을에 자랐기 때문도 아니옵고, 그형과 신이 친구이기 때문도 아니옵니다. 순신이 품성이 뛰어나고 무예가 출중한 것은 재삼 강조해도 부족함이 있사옵니다. 하나단지 그 때문에 신이 순신을 거듭 천거하지는 않았사옵니다. 그 조부 이백록은 일찍이 정암을 도와 이 나라를 더욱 강하고 아름답게 가꾸고자 노력하였사옵니다. 비록 순신이 무장의 길을 가고 있으나 그는 곧 사림의 피와 살을 이어받은 것이옵니다. 정암이 없었다면 신이 없는 것처럼, 정암이 없었다면 순신 또한 없었으리라 사료되옵니다. 신이 순신을 아끼는 것은 지연도 학연도 아니옵니다. 제 미천한 지인지감(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강조할 마음도 없사옵니다.
다만 신이 생각하옵건대, 순신 같은 장수는 조선에 단 한 사람뿐이옵니다. 활을 든 사림, 그 사람이 곧 이순신이옵니다. 사림이 조정 공론을 이끄는 동안에는 사림이 품은 뜻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장수가 변방을 굳건히 지킬 필요가 있사옵니다. 순신이라면 그 소임을 충분히 해내리라 믿사옵니다.
문신과 무장이 뜻을 하나로 모으는 것을 누구보다도 싫어하시는 전하가 아니시옵니까.
류성룡은 퇴청 이후 저녁상도 물리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중국 지명은 비교적 상세했으나 왜국은 그 크기와 형태가 예측하기 어려웠다. 사과 모양처럼 생긴 겨우 경상도만 한 섬 하나가 거제도 아래 붙어 있을 뿐이다.
왜승 겐소가 말한 바에 따르면, 왜국은 조선 침략을 위해 대군 이십만 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저렇게 작은 땅덩어리에서는 만 명도 모으기 힘들 것이다.
"스승님, 너무 노여워 마십시오. 얼마남지 않은 호시절, 놓치기가 아까워 이런답니다. 가을두(加乙頭, 서울 마포 양화도 북쪽 언덕의 절승지)에 올랐는데 흑첨(낮잠) 한 식경, 민들레 겉절이에 술 한 잔 마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죽은 네 형을 생각해라. 사물(四勿. 공자가 안연에게 가르친 예에 의해 경계해야 하는 네 가지 조목.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듣지 말며, 말하지 말며, 움직이지 말라고했음.)을 잊었느냐?"
허균은 소맷자락에서 둘둘 만 종이를 쓰윽 꺼냈다. 입에서는 여전히 술 냄새가 풍겼지만 두 눈은 샘물처럼 맑고 차가웠다.
"스승님, 이건 명나라 역관으로부터 얻은 것입니다."
허균은 「천지도」를 펼쳤다. 영길리(영국)와 불랑서(프랑스)가 지도 중앙에 있었다.
'왜국이 저렇게 크단 말인가.'
"어디서 이런 잡도를 구했느냐? 명나라가 세상 중심인 것은 천하가 아는 일이다."
허균은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허균은 탁자 옆에 놓여 있는 허난설헌 유고를 가리켰다. 그리고 수줍은 듯이 말했다.
"누이 문집에 발(책 끝에 본문 내용을 간추리거나 간행 경위를 요약해 적은 글)을 써 주십시오."
'그 뜻이었느냐? 술 취한 척 내게 와서 설레발을 치면서 지도 두 장과 맞바꾸려 한 것이.'
류성룡은 쓴웃음을 지었다. 허균이 하는 말을 따라가다 보면 늘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허균은 허성보다 강하고 허봉보다 지혜로웠다. 한없이 속되고 천박하게 보이지만 천하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류성룡은 그런 허균이 허봉처럼 헛되어 부러져 삶을 탕진하는 것을 막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 밤 불러서 시문과 예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허균은 품에 안기에는 너무 날개가 큰 송골매였다. 술김에 뇌까리는 시는 이미 이태빅과 같은 경지에 이르렀고 함부로 내뱉는 말에는 제자백가에서얻은 깨달음이 녹아 있었다.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허씨 집안 세 천재와 사귄 것을 기뻐하면서, 또한 그중 둘을 벌써 잃은 것을 슬퍼하면서.
哭子
지난 해 사랑하는 딸을 잃었고 去年喪愛女 거년상애녀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今年喪愛子 금년상애자 → 시 창작의 동기
슬프고 슬픈 광릉 땅이여. 哀哀廣陵土 애애광릉토 → 감정 이입
두 무덤이 마주 보고 있구나. 雙墳相對起 쌍분상대기
백양나무에는 으스스 바람이 일어나고 蕭蕭白楊風 소소백양풍 → 배경=심리
도깨비불은 숲속에서 번쩍인다. 鬼火明松楸 귀화명송추 → 쓸쓸한 심회
지전으로 너의 혼을 부르고, 紙錢招汝魂 지전초여혼 → ‘제망매가’ 연상
너희 무덤에 술잔을 따르네. 玄酒存汝丘 현주존여구 → 명복과 축원
아아, 너희들 남매의 혼은 應知第兄魂 응지제형혼
밤마다 정겹게 어울려 놀으리. 夜夜相追遊 야야상추유 → 축원과 화자의 자기위안
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 縱有服中孩 종유복중해
어찌 그것이 자라기를 바라리오. 安可糞長成 안가분장성 → 죽은 자식에 대한 죄책감
황대 노래를 부질없이 부르며 浪吟黃坮詞 낭음황대사
피눈물로 울다가 목이 메이도다. 血泣悲呑聲 혈읍비탄성 → 극한적 슬픔 토로
『주역』 중에서 이순신은 천지 만물이 품고 있는 속성을 묘사한 「설괘전」 삼장을 특히 좋아했다.
"우레로 움직이고, 바람으로 흩뜨리고, 비로 윤택하게 하고, 해로 마르게 하고, 산으로 멈추게 하고, 연못으로 기쁘게 하고, 乾건(하늘)으로 통치하고, 곤坤(땅)으로 저장한다.
"한양 분위기는 어떤가? 역적들을 여전히 잡아들이고 있나?"
류용주는 꾸부정한 어깨를 펴며 빙긋 웃어 보였다.
"웬걸요. 요즈음은 주춤합니다. 저잣거리에 걸렸던 역적들 머리도 사라졌고 우상 어른도 이쯤에서 마무리되지 않을까 생각하시는 눈칩니다.ㅇ"
'다행이로군. 정언신 대감이 귀양 간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서애 대감이라도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안심이야.'
"일찍이 함경도 관찰사를 지낸 나암(정언신의 호) 대감도 늘 자네의 활솜씨가 놀랍고 진법을 다루는 깊이 또한 남다르다 칭찬하였다네."
일몰과 함께 몰려들기 시작한 밑턱구름(땅 위로 바짝 내려앉은 구름)은 자정 무렵 기어이 비를 뿌렸다. 얼음 알갱이가 섞인 겨울비였다. 최중화는 곤하게 잠든 박초희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중화는 먼저 양 무릎 아래 족삼리足三里에 뜸을 놓았다. 막힌 혈맥을 풀고 사지에 기운을 소통시키기 위해서였다.
"혈은 근심 때문에 줄어들고 기는 슬픔 때문에 약해지므로, 겉에서는 위기가 소모되고 속으로는 영榮이 허탈해집니다."
이순신이 그 말을 잘랐다.
"최 의원은 박초희가 아기를 죽였다고 생각하는가?"
최중화는 발목에서 침을 뽑던 오른손을 움찔 떨었다. 이순신은 일 년 넘게 치료받으면서도 단 한 번도 관아 일을 꺼내지 않았다.
이순신은 밤낮 없이 공부에 매진하는 최중화를 아꼈다. 그 몸에서 운명이라는 불춤에 호되게 당하고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려는 자가 어쩔 수 없이 드러내는 쓸쓸함이 풍겨 나왔기 때문이다. 한번 뒤처진 길을 따라잡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아득히 앞서 가던 상대가 뒷보습마저 흐릿해질 때, 그때부터는 오직 자신과 싸우는 길만이 남는다. 이대로 무너질 수없다는, 이대로 패배를 자인할 수 없다는 자존심 하나만 남아 그 인간을 자멸로부터 구하는 것이다.
정읍 현감이 된 후로 이순신은 아내 방 씨와 첩 부안댁 처소를 피했다. 남솔이라는 짐까지 진 마당에 마음 편히 처첩을 품을 수 없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밤을 꼬박 세워 가며 서책을 읽고 공무를 보았다.
(2021.04.08 목요일 오후 14:36 2권 終)
(2021.04.11, 21:07)
제3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종육품 현감이었던 자가 하루 아침에 정삼품 수사가 된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정운은 온종일 소나기술만 마셨다.
정운은 적과 싸워 패한 적이 없었다. 벼슬이 오르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조정에 연줄을 대지 못해서였다.
정운이 진정 참을 수 없었던 건 능력도 없는 자가 하루아침에 수사 자리를 꿰차고 내려오는 것이다.
턱수염을 쓸던 신호가 정운 얼굴을 쏘아보았다.
"입 다물지 못할까! 말을 할 때는 먼저 그 뜻을 헤아려 보라고 몇 번이나 일렀거늘.. 정삼품 좌수사를 두고 하룻강아지를 입에 올리다니 네가 정신이 있는 놈이냐 없는 놈이냐?"
비나리(환심을 사려고 아첨함)도 치지 말고 불뚝성도 내지 말라 이 말일세. 내 말뜻 알겠는가?"
왼팔에 부목을 댄 녹도 만호 정운과 제대로 오금을 펴지 못하는 전라 좌수사 이순신은 마주 앉아 서로를 칭찬했다
"장군, 정말 대단하십니다. 소장, 활을 잡고 나서 오늘 처음 패했소이다."
김완은 미안한 기색도 없이 문뱃내(술 취한 사람 입에서 나는 냄새)를 풍기며 킬킬킬 웃다가 딸꾹질까지 곁들였다. 손을 들어 그땎지도 허공에서 불타고 있는 일곱 연을 가리켰다.
"창자가 썩을 만큼 마시세, 만 동이 술.
쓸개가 거칠어질 만큼 부르세, 미치광이 노래."
이순신은 장수들이 권하는 술을 마다하지 않았다. 어금이 저리고 어깨가 욱신거렸지만 오늘 밤만은 만취하고싶었다. 전라좌수영에 속한 장수들은 진흙에 묻힌 옥돌들이었다.
'저들과 함께 술 마시고 사냥 다니고 전투를 벌이리라. 생사고락을 같이하리라.'
굳게 결심하는 이순신 머릿속으로 류성룡이 서찰에 적어보낸 『삼략三略』의 한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전투 중에 술이 한 통 들어오자 장수는 그것을 강물에 쏟게 했어. 그리고 장졸들과 함께 그 물을 마셨다네. 술 한 통을 들이붙는다고 강물이 술맛을 낼 리야 있겠는가? 그런데도 장졸들은 기꺼이 목숨을 바쳐 싸웠지. 장수의 마음이 그들에게 미쳐 감읍케 했기 때문이야. 여해, 전라 좌수영 장졸들을 이처럼 대하게."
선조는 신하들이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자고 건의하자마자 이를 단호하게 물리쳤다. 당근과 채찍을 바꾸어 쥔 군왕 앞에서정펄은 덫에 걸린 생쥐 신세로 전락했다. 동인들이 품은 불만을 해소하고 서인들이 틀어쥔 권력을 견제하려면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이다. 정철은 삭탈관직을 당했고 류성룡이 좌의정으로 옮겨앉았다.
논어 술이편에 나오는 낯익은 대목이었다.
"나는 맨손으로 범을 잡으려 하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려다가 죽어도 후회함이 없는 자와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반드시 일에 임하여 두려워하고, 도모하기를 좋아하며, 성공하는 자와 함께하리라."
이 글은 애제자 자로가 삼군을 통솔한다면 누구와 함께할 것이냐고 여쭌 말에 공자가 답한 것이다.
한호는 귓속으로 광해군의 쩌렁쩌렁한 외침이 들리는 듯했다.
"승리를 얻어 내지 못하는 용기는 만용이다. 지피지기하지 못하는 자들이여, 사부급설(한 번 입 밖에 낸 말은 사마가 쫓아도 붙잡지 못한다)이라는 교훈을 아로새기라."
류성룡은 늙은 노복에게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이르고는 뒤돌아섰다. 광해군은 자리를 잡고 앉아서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류성룡은 눈을 내리깔고 이제 열일곱 살이 된 광해군이 움직일 때마다 하나하나 신경을 곤두세웠다.
'고난이 닥칠 때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바다처럼 넓게 생각하고, 기회가 오면 맹수처럼 덤벼드는 눈부신 청년 광해여. 왜 이토록 누추한 몰골로 이 야심한 시각에 날 찿아왔는가.'
장자가 왕통을 잇는 전통에 따른다면 아무일 아닐 건저 문제를 둘러싸고 사정이 복잡해진 것은 인종부터 선조까지 벌써 삼 대에 걸쳐 정통성 있는 왕자가 옥좌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십이대 임금인 인종이 후사도 없이 세상을 떠났기에 친동생이 왕위를 이었으니 곧 명종이었다. 명종 역시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자, 인종의 서제인 덕흥군의 이들 균이 사복(왕위를 계승함) 하니 곧 선조였다. 그러니까 명종과 선조는 적통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선조역시 중전인 박 씨에게서 아직 아들을 보지 못했고 후궁들만 왕자를 생산했을 따름이었다.
(오늘 집자는 이것으로 끝내자. 영자처형이 장모 사진을 하나 보내왔다. 실내에서 음료를 앞에 놓고 시선이 멀다. 쓸쓸히 늙고 계시는구나! 후회와 자책이 자심하다. 젊은 날 한때 함양과 여원재를 여행했었지. 가야산 해인사와 삼국유사 일연의 절.. 안타깝다 코로나로 인해 만날 수 없는 것이... 21.04.11, 21:51)
2021.04.12, 월 09:29
광해군은 그 학문과 품성이 청년 세종에 비견될 정도였다. 그래서 서인인 좌의정 정철, 해원 부원군 윤두수, 동인인 영의정 이산해, 우의정 류성룡도 모두 광해군을 마음에 두었다. 그러나 선조는 지금처럼 우순풍조(농사가 잘되도록 비가 때를 맞추어 오고 바람이 고르게 붐) 한 태평성대에 세자 책봉을 서두르는 것은 임금에 대한 불충이라고 각책했다.
처음 말을 꺼낸 정철을 삭탈관직했을 뿐만 아니라 윤두수, 윤근수, 백유성, 류공진 등 서인들을 외직으로 내몰거나 귀양을 보냈다. 이산해를 비롯한 동인들은 몸을 사린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결국 건저 문제로 가장 손해를 본 쪽은 서인이었고 광해군 역시 선조 눈 밖에 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기축옥사로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동인들만 어부지리를 취한 꼴이 되었다.
류성룡은 신하들이 관직을 잃거나 천극(귀양살이 하는 죄인 거처를 가시나무로 울타리를 둘러 출입을 제한하는 일)되는 지금 상황을 화씨의 구슬에 비겼다.
초나라 사람 화씨가 초산에서 얻은 옥돌을 임금에게 올렸는데 신하들이 그 옥돌을 돌이라고 하여 화씨의 두 다리를 잘랐다는 이야기였다.
군왕에게 바른 말을 전하기는 어렵고 그로 인해 화를 입기는 쉽다는 뜻이다.
광해군은 박학과 달변으로 소문난 류성룡이 임기응변하여 매끄럽게 넘어가자 속으로 감탄을 터뜨렸다.
'상대 마음을 먼저 헤아리고 비유로써 자기 입장을 드러내는 사람. 유연하기가 물과 같고 빠르기가 제비와 같은 사람.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기회 앞에서 위기를 가늠하는 사람. 역시 소문과 한 치도 틀림없군.'
"일찍이 주자께서는 君을 이끌어 당으로 삼는 것을 꺼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전하께서도 붕당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하셨지요. 문제는 붕당을 이룬 무리가 군자인가 소인인가를 살피는 것이옵니다. 서인이라하여 무조건 배척하고 동인이라 하여 덮어 놓고 옹호한다면, 그것이 곧 소인의 당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생전에 율곡은 정치란 상대가 있기 마련이며 논쟁을 거쳐 도에 가가가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때 류성룡은 그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허봉, 김성일 등과 함께 율곡을 탄핵했다. 그 결과 동서 장쟁이 격화되었고, 기축옥사와 건저 문제를 통해 양쪽 다 막대한 피를 흘린 것이었다.
일찍이 퇴계는 불교, 도교와 함께 관중, 상앙, 한비자로 대표되는 법가들을 망국을 재촉하는 이단으로규정한 바있었다.
법가는 공맹과는 비교도 되지 못할 만큼 저급한 사상이었지만 그 안에는 약육강식하는 현실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대감! 지금 이 나라가 흔들리는 까닭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이는 신권이 왕권을 누르고 있어서입니다. 아바마마께서 이병二柄(군주가 신하를 형벌과 은덕을 사용하여 다스리는 방법)의 묘로 중신들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시지만 역부족입니다. 신하들이 파당을 지어 법을 어기고 사사로이 이익을 취하는데도 합당한 벌을 내리지 못하고 계십니다. 군왕은 신하를 법에 따라 엄격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호랑이가 개를 굴복시킬 수 있는 건 발톱과 이빨이 있기 때문입니다. 엄정한 법이 있어 신권을 제한하고 군왕이 신하들을 한 점 거리낌 없이 다스릴 수 있어야만 나라 기틀이 바로설 것입니다."
"백성이 불변하는 법에 얽매여 군왕을 따르는 것은 매 맞기를 두려워하여 쟁기를 더 빨리 끄는 황소와 다를 바 없사옵니다. 인간이란 무릇 도와 예에 따라 상하 관계를 맺게 마련이온데 한비는 그관계를 짐승들처럼 힘에 따르는 것으로 바꾸었사옵니다. 불변하는 법에얽매이면 백성들은 그법의 맹점을 찾아 사사로운 이익을 얻기에만 진력할 것이옵고, 결국에는 의리나 정도를 잊고 수치를 모른 채 오직 이익만을 좇는 짐승이 될 것이옵니다."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운 자와 농사에 힘쓰는 자는 후하게 상을 주어야겠지요. 그대신 서책이나 뒤적이며 음풍농월로 세월을 죽이는 자들, 허황된 말과 글로 미래를 점치는 자들은 엄하게 벌해야 할 것입니다.
광해군이 이의를 제기했다.
"도를 깨치는 학이 궁극적으로 하나라면, 도를 깨친 신하가 도에 이르지 못한 군왕을 징벌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탕왕과 무왕은 스스로를 의롭다고생각하여 모셨던 군왕을 시해했습니다. 이를 정당하다고 보십니까? 그렇다면 천자국 은나라를 치려고 떠나는 제후국 주나라 무왕을 비난하며 수양산에서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가 보여 준 의로움은 무엇입니까?"
류성룡은 임금의 도와 신하의 도가 하나라는 정의에서 신권이 왕권을 압박할 수 있는 힘을 유추해 낸 그영특함에 새삼 놀랐다. 광해군은 늙은 고양이가 생쥐를 어르듯 대신들을 주무르는 선조에게서 균형 감각을 물려받은 것은 물론이고, 멧돼지처럼 밀어붙이는 저돌성과 상대 약점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까지 지니고 있었다. 지나치게 강함만을 추구하며 감정을 쉽게 표출하는 것이 약점이었지만, 그야 세월과 함께 여러 부침을 겪으면서 여유와 포용력으로 바뀌어 갈 터였다.
반성하면서 다른 사람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총聰, 마음속에 있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을 명明, 내가 나 스스로를 이기는 것을 강彊 이라고 하옵니다. 소생은 이 셋을 항상 마음에 담고 지냅니다마는, 나리께서는 그중에서도 강에 마음을 두심이 어떠하온지요?
용이 되기 위해 천 년 세월을 하루같이 기다리는 이무기 같은 마음을 지니시옵소서."
어둠이 서서히 걷혔다. 마당을 비질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 왔다. 가야 할 시간이었다. 어둑새벽 시린 바람이 얼굴로 확 밀어닥쳤다. 눅눅했던 마음이 한결 풀어진 느낌이었다.
'때가 오면 제가 간고(자식이 부모 뜻을 이어받아 잘 조처함)의 직책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나대용이 거리낌 없이 답했다.
"산꼭데기에 오르기 전까지는 정상을 바라보며 한마음으로 뭉칠 수 있지만, 정상에 오른 후에는 그 마음이 갈가리 찢어지게 마련입니다. 한 고조가 개국공신들을 무참히 참살한 것도 그 때문이지요.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시 기로에 서 있을 겁니다. 함께 섬나라를 통일하기 위해 합심한 가신들을 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산꼭데기를 하나 더 만들어 시간을 벌 것인가. 소장이 보기엔 후자들 택할 것 같습니다."
이순신은 공대원의 메밀눈(작고 세모진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패배를 죽음과 맞바꾼다면 강병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왜군 열 명을 상대하기 위해서 우리 군사가 몇 명이나 필요하다는 말이냐?"
"적어도 백 명은 있어야 대적할 수 있습죠."
"왜군이 배를 타고 황해도와 평안도 그리고 하삼도를 넘나든다면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하삼도에 상륙한 왜군들을 이일, 신립 등 용장들이 힘을 합하여 막아 낸다 하더라도 결국 전쟁은 조선 수군이 바다를 지킬 수 있는가 없는가에서 판가름 나리라."
이순신은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한 채 천천히 새벽 바닷가로 나왔다. 판옥선 두 척이 찰랑대는 물결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눈발이 얇게 깔리기 시작한 모래사장을 이순신은 말없이 걸었다. 반백이 된 수염이 좌우로 휘날렸고 손에 쥔 장검이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좌수영을 나서면서부터 습관처럼 같은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천하의 눈으로 사물을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없고, 천하의 귀로 들으면 들리지 않는 것이 없으며, 천하의 지혜로 생각하면 알지 못할 것이 없다."
"적과 싸우려면 천시를 얻어야 하고(有天), 전투에 필요한 재물을 갖추어야 하며(有財), 완벽한 전략을 짜야 합니다(有善)." 권준은 작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눈동자는 새벽별처럼 반짝였고 혀는 해초보다 길고 부드러웠다.
"경오왜변을 아십니까?""
경오왜변은 중종 5년 1510년에 일어난 변란으로 부산포, 제포, 염포 등 삼포 왜인들이 함께 난을 일으켰기에 삼포왜란이라고도 불렸다. 경오년에 도원수 유순정 대감이 쓴 것인데 수중 철쇄를 그린 상세한 도안과 설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함정을 많이 둬야 하는 건 전적으로 동의하오. 한데 그 철쇄는 실제로 배치되었소?"
"아닙니다. 조정에서 허락까지 받았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요."
권준이 그사정을 설명했다.
"유순정 대감이 자리를 옮기고 다음해에왜국 사신이 찾아와서 백배사죄하는 통에 흐지부지 끝나 버린 것입니다. 그 후에도몇 차례 왜변이 있었지만 아무도 수중 철쇄를 기억하지 못한 듯합니다. 노략질이나 일삼는 변변찮은 왜구라면 애써 철쇄를 만들 필요가 없겠지만 전면전에서는 비수 서너 개쯤 숨겨 둘 필요가 있겠지요."
전쟁이란 결코 사사로운 감정이나 원한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지요. 전쟁은 칼과 창을 들고 벌이는 정치입니다. 공맹과 같은 현인들은 만백성을 仁으로 다스리는 것이 정치라고 하셨지만, 그 말은 인간이 도달하고픈 이상향일 뿐입니다. 무릇 정치란 자기 이익을 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지요. 전쟁은 가장 강력하고 극단적인 정치라 하겠습니다.'
이억기는 정종의 열 번째 아들인 덕천군의 후손으로 선조에게는 십이촌 조부뻘이 된다. 신유년 1561에 태어난 이억기는 어려서부터 장수의 꿈을 키웠으며, 무과에 급데한 후 경흥 부사와 온성 부사로 있으면서 야인들과 맞서 큰 공을 세웠다. 북병사 이일이 그 무공을 높이 사 '좌억기 우원균'으로통했으며, 우의정 정언신이 추천하여 순천 부사로 부임했다가 서른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전라 우수사에까지 올랐다.
"그래서 이상한 건 당분간 쓰시마로 귀향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답니다."
공대원이 마쓰다에게 다가가서 다시 물었다. 그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이마에 식은땀까지 맺혔다.
"왜는 내년 봄에 조선을 칠 계획이라고 합니다. 간자들은 각자 맡은 길을 안내해야 하기에 귀향할 필요가 없답니다."
나대용이 긴 지휘봉을 들고 설명을 했다.
"다음은 현재 조선 수군이 주력으로 쓰는 판옥선입니다. 백구십 명까지 탈 수 있으며 대맹선보다 갑절 이상 큽니다. 이 빼는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엄격히 구분하는 데 특징이 있습니다. 노를 젓는 격군들은 갑판 아래에 숨어서 배를 조정하며 활과 창을 든 군사들은 갑판 위에서적을 내려다보며 전투를 벌입니다. 검에 능한 왜군들이 오로지 못하도록 배를 크게 만들고 상갑판을 높였으며 그 결과 우리 수군이 능한 활을 좀 저 멀리까지 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선두와 선미가 상대적으로 낮아서 적이 침탈하기 쉬웠으며, 상갑판 위에 있는 군사들이 완전히 노출되어 적이 활이나 창으로 공격할 때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판옥선을 보강할 때에는 왜군들 침탈을 어렵게 만들면서 우리 군사들 피해를 가장 적게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자, 이쪽을 보시지요. 거북선입니다. 태종대왕 시절에는 중맹선이나 대맹선을 개조했기 때문에 위용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판옥선 하체는 그대로 두고 그 위에 거북선을 만들 계획입니다. 우선 상갑판을 완전히 복개한 후 그 위에 과선처럼 칼과 창, 송곳 따위를 꼿습니다. 그리고선두에는 용머리를 달아서 그입으로대포를 발사하고, 선미인 거북꼬리로도 역시 대포를 쏘는 것입니다. 외판 두께를 네치 이상으로하여 당파에 용이하도록 하고, 좌우로 여섯 개 이상 포를 동시에 쏠 수 있도록 포혈을 만듭니다. 여덟개에서 열 개씩 노를 좌우에 달아 속력을 높이고 돛을 달아 바람도 이용합니다. 쉽게 불이 붙는 것을 막고 칼과 송곳들을 고정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철판을 목판 위에 덧씌울 수도 있습니다."
呼韻(운자를 불러 읊다)
이달
曲欄晴日坐多時 閉却重門不賦詩 곡란청일좌다시 폐각중문불부시
墻角小梅風落盡 春心移上杏花枝 장각소매풍락진 춘심이상행화지
맑은 날 굽은 난간에 오래 앉았지만
중문까지 닫아걸고 시도 아니 짓네.
담장 구석 작은 매화 바람에 다 떨어지니
춘심은 살구꽃 가지 위로 옮겨 가누나.
〈불일암 인운 스님에게 주다(佛日庵 贈因雲僧)〉
山在白雲中 산은 백운 속에 있는데
白雲僧不掃 승려는 흰 구름, 쓸지 않네
客來門始開 객이 와서 비로소 문을 여니
萬壑松花老 온 골짜기가 송화 가루라
白犬前行黃犬隨 野田草際塚??
백견전행황견수 야전초제총류류
老翁祭罷田間道 日暮醉歸扶小兒
노옹제파전간도 일모취귀부소아
흰둥이가 앞서고 누렁이는 따라가는데
들밭머리 풀 섶에는 무덤이 늘어서 있네
늙은이가 제사를 끝내고 밭 사이 길로 들어서자,
해 저물어 취해 돌아오는 길을 어린 아이가 부축하네
- 손곡 이달의 시'제총요(祭塚謠); 제사를 끝내고'
(부론면 손곡리. 공양왕이 그랬고, 이달과 허균도 그러했다. 반란의 괴수가 된 이괄의 저항정신도 이 지역에서 키워낸 것이었다. 스스로 미륵이 되고자 했던 궁예가 왕건에게 참패한 것도 부론면과 문막 일대이다. 부론면엔 뜻은 크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쓰러져간 역사적 인물들이 많다.)
첫날은 영평永平에서 출발하여 단발령을 넘은 후 헐벗은 신갈나무로 둘러쌓인 장안사에서 유숙했다. 둘째 날엔 시왕백천동으로 들어가서 깍아지른 바위너설과 솟구치는 시내를 구경하고 영원사에서 묵었다.
그다음날엔 망고대를 가까스로 오른 후 송라암에서 쉬었다. 넷째 날에는 진헐대를 거쳐 개심사에 이르렀다. 개심사 산문 밖에서 허균 일행을 맞은 사람은 뜻밖에도 서산대사 휴정이었다. 휴정은 아버지 허엽과 호형호제하는 각별한 사이로 시문에 두루 능한 고승이었다.
"어서들 오시오. 시선詩仙이 다 되셨구려."
합장을 하는 휴정의 희고 긴 수염이 땅에닿을 지경이었다.
"옛말에 중생 몸은 太虛와 같으니 번뇌는 어느 곳에서 다리를 편히 할 것인가라고 했지요. 번뇌는 집착에서 오고 집착은 또 다른 집착을 낳게 마련이외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한자리에 모였지만 어제 서로가 머무는 곳을 알지 못했고 내일 또 서로 다른 길로 떠날 것이외다."
휴정의 웃음과 이달의 울부짖음
속세를 떠나 깨달음을 좇는 두 사람에게 전쟁이란 도대체 무슨 뜻이 있을까? 새로운 깨달음을 위한 화두일까? 더럽고 추악한 욕망을 샅샅이 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까?
'저 둥근 달처럼 웃지도 울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존재할 자신이 없다면, 다가오는 운명을 관조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도와 예, 아름다움과 격조로는 전쟁을 막을 수 없다. 세상에 나아가 정치를 배워야 한다. 힘과 권위로써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한다.'
허균이 술을 한 잔 들이켠 후 물었다.
"내년 봄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하실 건지요?"
"보아하니 네 놈은 은근히 전쟁을 기다리고 있구나."
"전쟁을 기다리다뇨?"
"세상을 단숨에 쓸어버릴 기회를 찾고 싶은 거겠지. 하나 세상 일이란 처음도 끝도 없는 법. 억지로 매듭지으려 들다간 제 목숨만 갉아먹어."
두 사람은 배를 타고 삼일포로 다시 나왔다. 허균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발맘발맘 이달 뒤를 따랐다. 이 눈물 많은 스승과 헤어질 때가 온 것이다.
허균은 스승이 쓴 시를 평하기 위해 아껴 두었던 문장을 하나씩 끄집어냈다. 언젠가 논할 자리가 있다면 단숨에 써 내려갈 마음으로 준비해 둔 것이다.
손곡 이달이 쓴 시는 이백에 근본을 두었고 왕유(당나라 시인)와 유장경을 드나들어 기운이 다사롭고 풍취가 뛰어나며 빛이 곱고 맑아 담담하다. 그 곱기는 남위(춘추시대의 미녀)가 옷을 차려입고 밝은 화장을 한 듯하고, 그 온화함은 봄볕이 온각 풀을 덮은 듯하며, 그 맑음은 서리 같은 물줄기가 큰 골짜기를 씻어 흐르는 듯하고, 그 울림이 청아함은 마치 높은 하늘에서 학을 타고 피리 부는 신선이 오색구름 밖을 떠도는 듯하다. 끌어당기면 노을빛 비단이나 미풍에 흔들리는 잔물결 같고, 깔아 놓으면 구술이 앉고 옥이 달리며, 두드리고 갈면 비파처럼 애절하고 구슬처럼 울리며, 억제하고 누르면 말이 걸음을 멈추고 하늘로 오르던 용이 몸부림을 거둔다. 그 일없는 때에 천천히 산에서 구름이 바위에 걸려 흰옷도 되고 푸른 개도 되는 듯하다.
개원, 천보, 대력 사이에 놓아도 왕유 들 대열에서 결코 뒤떨어지지 앟을 것이다. 우리나라 여러 이름난 시인들과 비교하면 그 사람들 또한 눈이 휘둥그레져 구십 리나 물러설 것이다. (04/12 월, 11:52 눈이 감긴다. 이만 終)
허균은 계속해서 떠돌아다녔다.
기축옥사 때문에 전라도는 입신양명할 길이 막혀버린 죽은 땅으로변했다. 적어도 정여립에 대한 분노를 시도때도 없이 폭발시키는 금상이 통치하는 동안에는 전라도 출신 중 그 누구도 중용될 수 없을 터였고 그 틈을 타서 기호와 영남 출신 사림들이 조정 주요 관직을 빠짐없이 독차지하였다. 이제 전라도는 곡물이나 꼬박꼬박 갖다 바치는 예속지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무섭게 신중한 사람!'
허균은 그 대목이 마음에 들었다.
'혹여 서애 대감이 과대평가하신 것은 아닐까.'
허균은 이순신을 따라다니는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녹둔도 패전은 물론이고, 북병사 이일에게 대들면서 패전 책임을 회피한 일, 정읍 현감으로 있으면서 남솔을 일삼았으며, 동인에 아부하였기에 벼락출세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소문이 번잡한 것은 순리대로 몸을 맡기지 않아서일 것이었다. 관행을 따르지 않고 자기 길만을 고집하기에 보자기를 뚫고 나오는 송곳처럼 자꾸 지적당하고 비난받는 것이었다.
'모처럼 사람다운 사람을 만날지도 모르겠구나.'
'이쪽에서 진심을 내보이기 전에는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않겠군.'
허균은 미리 준비한 지도 석 장을 꺼냈다.
허균이 이순신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전쟁에서는 전략을 세우는 게 가장 중요하지요. 많이 생각한 자가 적게 생각한 자를 이긴다 함은 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조선은 삼면이 바다고 북방은 험준한 산맥으로 가로막혀 있소. 동남쪽을는 왜구와 이웃해 있고 북으로는 말갈과 여진이 위협하고 있소."
'서애 대감이 호랑이 새끼를 키우고 계셨군. 하지만 저렇게 입이 가벼워서야 제 목숨 하나 건사할 수 있을가?'
류성룡은 날아오는 화살이라도 능히 품을 만큼 넓은 아량을 지녔다. 허균은 아직 류성룡에게서 처세술까지는 배우지 못한 듯이 보였다.
"천하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백성들 뜻이지요. 지금은 법을 받들면서 윗사람에게 부림당하는 항민이거나 불만을 가슴 깊이 묻고 시름하고 탄식하며 윗사람을 탓하는 원민에 머물고 말지만, 언젠가는 세상을 갈아엎기 위해 떨쳐 일어설 豪民호민이 나타날 것입니다."
"호민이 무엇이오?"
"호걸 호, 백성 민. 의를 알고 협을 좇는 호걸 같은 백성들입니다. 진나라가 망한 것은 진승과 오광 때문이고, 한나라가 멸망한 것은 황건적에서 비롯했으며, 당나라도 왕선지와 황소가 난을 일으켜 끝내 망하고 말았습니다."
'당장 대의를 함께할 순 없지만 침착하고 신중하게 상대 속마음을 파악하는 태도는 참으로 훌륭하군. 앞만 보고 내달리는 장수들과는 근본이 달라. 당장 내 못을 쳐도 할말이 없는 상황에서도 다시 한 걸음 물러선 것도 멋지다. 어떤 치욕을 당해도 맡은 일을 끝까지 할 재목이야. 아직 전쟁이 터지지 않았으니 쉽게 마음을 돌리지는 못하겠으나 전쟁이 터지면 충정도 바뀌리라. 그때 다시 와서 물으리. 누가 이 환란을 책임져야 하느냐고.'
박초희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순신의 움푹 팬 눈을 들여다보았다. 박초희는 그런 눈을 가진 사내를 두명 알고 있었다. '조창국과 사화동.....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준 남자들.'
기묘년에 사약을 마시고 쓰러진 조 정암 선생에서부터 불타는 금오산 가마들과 노량 앞바다에 잠긴 후 떠오르지 않은 박미진까지! 그 쌓인 불행과 울분, 슬픔과 고통의 고리를 끊고 싶었다. 박초희마저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면 더 이상 희망을 꿈꿀 수 없을지도 몰랐다.
임진년1592년 이월
가장 나이가 적은 신립이 상석을 차지한 것은 종이품인 한성 판윤이었을 뿐만 아니라 임금이 총애하는 왕자 신성군의 장인이기 때문이다.
원균은 신묘년 1591년 이월에 전라 좌수사로 임명되었다. 이일이 탑전에서 직접 임금께 아뢴 결과였다. 짐을 꾸리고 여수로 낙향할 채비를 서두르던 차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사간원에서 원균을 탄핵하는 소를 올린 것이다. 고적(인사 고과)에서 하를 받은 사람을 반 년도 지나기 전 당상관 반열에 올릴 수는 없다는 게 겉으로 드러난 이유였다,
신립이 코웃음을 쳤다.
"그게 다 칼자루도 쥘 줄 모르는 서애 때문이라오. 하삼도 감사들을 시켜 미친 듯이 성을 쌓고 있고. 하나 왜놈들을 물리치는 데 성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지... 활을 쏘고 말을 달려 쓸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우리가 언제 성벽에 숨어서 왜놈들과 싸운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소?"
"그렇지. 자넨 내려가서 경상, 전라에 있는 여러 수사들을 먼저 휘하에 두도록 하게. 경상 좌수사인 박홍이야 운이 좋아서 그 자리에 앉았을 뿐이니 논외로 치고, 전라 우수사 이억기와 전라 좌수사 이순신을 자주 불러 가르치도록 해. 이억기는 함경도에서 함께 야인을 막은 적도 있으니 말이 통할 테고, 문제는 이순신이야. 자네도 알다시피 어디 정삼품 수사에 합당한 재목인가? 녹둔도에서 똥오줌도 가리지 못하고 줄행랑을 친 겁쟁이지. 그때 목을 베었더라면 지금처럼 괜한 걱정을 할 필요도 없을 터인데. 서애를 등에 업고 기고만장하다는 소문이니 자네가 단단히 혼내 주게. "
원균은 서둘러 무옥의 몸속으로 돌진했다. 무옥은 엉덩이를 들어올리며 성급함을 다독거릴까 말까 잠시 생각했다. 원균은 항상 무옥의 애무가 끝나기를 기다려 주던 남자였는데 오늘은 술을 다 마시기도 전에 다짜고짜 옷고름을 틀어쥔 것이다.
'당신 기쁨이 하늘에 닿았네요. 큰 승리에서도 결코 마음을 풀지 않던 당신이 이렇게 활짝 내 품에뛰어들 줄이야! 그래요, 오늘은 당신 뜻대로 하세요. 하늘에 닿은 당신 기쁨을 나누어 주세요.'
무옥은 양팔로 등을 힘껏 감싸며 이슬처럼 흩날리는 땀방울을 핥았다.
"무옥아! 무옥아! 무옥아!"
원균은 연신 무옥의 이름을 되뇌며 귓볼과 목, 젖가슴을 물어 뜯었다. 무옥은 양 손바닥으로 원균의 등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둘 사이의 사랑은 전쟁보다도 더 지독했다.
임진년 1592년 삼월 십일일 새벽,
전라 좌수사 이순신은 놋대야에 얼굴을 담그고 눈을 끔벅끔벅거렸다. 벌겋게 실핏줄이 돋은 흰자위가 바늘로 찌르는 듯이 따끔거렸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시야가 흐리고 어둑어둑하다. 몇 번 눈두덩을 비빈 후에야 사물을 분간할 수 있었다. 닭울 녘부터 고기잡이를 시작한 어선들이 섬을 돌아 나왔고 장찰을 든 초군들이 목석처럼 서 있었다. 하루가 시작됨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천하제일 용장이라 해서 얼마나 대단한 장순가 궁금했는데, 어림없지! 거북선이 가진 진가도 알아보지 못하는 장수라면 용기가 있으면 뭣 해? 바다에서는 용기로 싸우는 게 아냐. 아군 군선이 적군 군선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아무리 용감해도 질 수밖에 없지."
임진년 사월 일일 오시.
임천수가 굽은 허리를 천천히 펴 하늘을 바라보았다. 곱추가 된 후로는 하늘 보는 일이 거의 없었다. 조금만 턱을 쳐들어도 옆구리가 결리고 두 발이 딱딱하게 굳었던 탓이다. 그래도 오늘만은 꼭 하늘을 보고 싶었다. 사실 이번 거래는 정말 미친 짓일지도 몰랐다. 왜란이 터지지 않으면 다시 한 번 쫄딱 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임천수로서는 한 번 더 모험을 걸 수밖에 없었다. 소광통교에서조금씩 이문을 취하는 것으론 조선 제일 장사꾼이 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윤 도주에게 복수하는 것도 헛된 바람으로 남을 것이었다.
'조선 팔도에는 큰 불행이지만 내게는 마지막 기회다. 반드시 이 기회를 꽉 붙잡아야 한다.'
임진년 사월 십이일.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들에는 노란 번행초와 하얀 쇠별꽃이 어지럽게 피었다. 아침부터 예하 장수들이 좌수영으로 모여들었다.
나대용이 선소에서 만든 거북선을 공식적으로 여러 장수들 앞에 선보이는 날이었다. 이순신은 진해루에서 장수들과 함께 원추리 토장국으로 아침 겸 점심을 먹었지만 나대용과 송희립은 마무리를 위해 식사조차 건너뛰었다.
정운이 호랑이 수염을 부르르 떨며 먼저 목소리를 높였다.
"왜구들 배는 날아갈 듯 빠른데 판옥선에 개판까지 씌운 배로 어찌 그들을 쫓을 수 있겠습니까? 잘못하면 쇠 무게에 눌려 침몰할 가능성도 큽니다. 지금이라도 거북선 만드는 일을 그만두시지요. 바람 먹고 구름 똥 싸는 짓입니다."
이순신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앞으로 먼저 나아갔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바다뱀들이 온다. 바다 건너 조선을 삼키기 위해 왜국 정예병들이 온다. 왜군들과 처음으로 맞서 싸우는 것은 경상도 좌우 수군 몫이다. ...그러나 왜군을 얕잡아 보고 달려들면 작은 승리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패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마구잡이로 힘만 믿고 싸우려 들면 패배를 불러오기 쉽다. 그렇다면 그 다음엔 나 전라 좌수사 이순신과 전라 좌수군이 남해 바다를 지켜야 한다.
오늘은 그런 의미에서 무척이나 중요하다. 거북선이 위용을 드러내어야 정운을 비롯한 제장들도 내 뜻을 따르리라. 어떤 위기가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으리라. 비록 많은 거북선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장졸들은 거북선을 보며 승전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얻을 것이다. 성공해야 한다, 꼭!'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인 후 명령을 내렸다.
"총통을 쏴라."
"총통을 쏘랍신다!"
나대용이 복명복창을 하자 이언량이 좌우로 흔들던 깃발을 올렸다 내렸다.
펑.
소리와 함께 지자총통이 화약 연기를 뿜으며 일제히 발사되었다. 높은 물기둥이 치솟았다가 떨어지며 크게 바다를 흔들었다. 놀란 바닷새들이 시끄럽게 울어 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장졸들 속에서 환호가 절로 나왔다. 속도를 늦추지 않고서도 총통이 동시에 불을 뿜은 것이다.
이순신은 나대용의 양손을 굳게 잡았다.
"수고했다."
말썽쟁이 아들을 처음으로 칭찬하는 아버지 같은 표정이었다.
나대용이 두 눈에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고마우이. 정말 고마워.'
이순신이 뒤돌아서서 장졸들에게 외쳤다.
"오늘 선소에 속한 장졸과 일꾼들은 밤이 새도록 대취하라. 술은 얼마든지 있다. 너희들 덕에 전라 좌수군은 열 배, 아니 백 배는 더 강해졌느니라. 내 어찌 위하지 않고 오늘 밤을 보낼 수 있으리."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진해루에서 가져온 술과 안주가 굴강주위에 가득 쌓였다.
"정 만호! 표정이 왜 그런가? 자, 어서 한 잔 해. 판옥선에 거북선까지 있으니 전라 좌수군은 열 배는 더 강해질 걸세. 나 군관을 비롯하여 선소 소속 군졸들도 열심히 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 이 공은 우선 좌수사께 돌아가야 마땅해. 참으로 대단한 집념 하닌가."
장졸들 사이를 한 바퀴 돌고 온 이순신이 정운에게 다가왔다. 정운은 고개를 돌려 일부러 모른 체했다. 이순신이 밝은 음성으로 말했다.
"정 만호! 나랑 잠시 걸읍시다. 세검정을 둘러보는 게 어떻겠소?"
신호가 등에손을 대고 정운을 가만히 떠밀었다.
"정 만호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소. 장졸들이 날 어찌 보고 있는지 잘 아오. 아직 장졸들에게 완벽한 믿음을 주지 못한다는 것도. 정 만호는 경상 우수사 원균 장군에게 버금갈 만한 수군 최고 맹장이 아니오? 그런 정 만호가 앞에서서 기강을 세운다면 장졸들이 기꺼이 따르리라보오. 전투가 시작되면 정 만호에게 선봉을 부탁할까 하오. 정 만호와 같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장수가 투지 있게 장졸들을 이끌지 않는다면 설령 거북선 백 척이 있다 해도 어디에쓰겠소. 정 만호 뜻은 어떠시오?"
임진년 사월 십삼일 아침.
류성룡은 헐허증으로 꼬박 열흘을 누워 있었다. 훈(어지러움)이 워낙 심해서 뜰을 산책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선조는 직접 내의원에 명하여 병을 살피게 하였다. 격무에 시달려 기가 많이 쇠하였을 뿐 큰 병은 발견되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노모를 모시고 싶다는 상소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루한 봄비가 닷새를꼬박 내려 순백색 은난초 꽃잎을 모두 떨어뜨렸다.
정탁은 '정여립' 당으로 몰려 작년에 억울하게 죽은 정언신에 버금갈 만큼 병법에 조예가 깊었으며, 두 차례나 명나라에 다녀온 덕분에 명나라와 왜국실정에 밝다는 점을 류성룡은 높이 평가했다. 또한 정착은 이순신, 권율, 김시민, 등 신진 장수들을 천거함으로써 외란을 대비하려는 류성룡에게 큰 힘이 되었다.
서른 살 젊은 나이로 당상관인 대제학에 오른 이덕형은 매사에 신중하고 말을 아끼는 위인이었다. 도승지 이항복과 함께 장난꾸러기로 온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어린시절 풍문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덕형은 이순신을 전라 좌수사로 임명하는 것도 반대했다. 아무런 전공도 없는 사람을 정삼품 수사에 올려놓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류성룡은 따로 불러서비대발괄하다시피 부탁했다.
"이순신은 내 분신일세. 만약 이순신이 제대로 수사 노릇을 못하면 내가 물러나지. 제발 내 지인지감을 믿어 주시게."
"이 현감은 다른 장수들과는 다르다네."
"무엇이 다르단 말씀이십니까?"
"매일 『소학』을 읽는다네."
"『소학』이라고요!"
"그렇다네. 장수들 중에 과연 이 현감처럼 날마다 정암 선생을 본받으려고 애쓰는 이가 있겠는가? 소학은 사도斯道를 지키는데 근본이 되는 서책일세. 피비린내 나는 무경칠서를 앞세우는 것보다 날마다 소학을 뒤적이면서 먼저 공맹의 도를 따져 보는 장수가 한 사람쯤은 조선에 있어야 하지 않겠나. 활을 든 사림이 말일세."
선조는 군졸들을 직접 거느리고 있는 장수들을 한 자리에이년 이상 머물지 못하게 했으며 한양에 있는 동안에는수시로 충성심을 시험했다. 이름 높은 장수일수록 더욱 혹독하게 다루었다.
'이일처럼 팔도에 이름난 장수가 반역을 모의한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지. 의리를 앞세우며 편 가르기를 즐기는것은 칼을 찬 장수들이라면 삼황오제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속성이 아닌가. 원균. 이억기. 이순신이 모두 이일 휘하에 있었던 장수들이었다면 일단 이일을 위협해 버릇을 고쳐 놓을 필요가 있지. 인간이란 본래 은혜를 쉽게 망각하고 변덕이 심하여 염치를 모르는 동물이 아닌가.'
결심을 굳힌 류성룡이 떨리는 음성으로 아뢰었다.
"전하, 대마도에 수많은 왜군이 집결해 있다 하옵니다. 곧 경상도와 전라도에 왜국 정병이 쳐들어올 것이며, 그러고 나면 제승방략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옵니다. 속히 영을 내리시어 작년에 쌓은 성을 중심으로 군사들을 모으고 진을 튼튼히 지키도록 하시옵소서."
"불윤!"
목소리에짜증이 배어 있었다. 왜국 정벌을 논의하는 마당에 왜구들 노략질에 대비하자는 주장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좌상은 점점 율곡을 닮아가는구나. 예전에 율곡은 양병을 주장할 때는 앞장서서 비난하더니 이제 와서 마음이 바뀐 것이냐? 왜구들 노략질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설령 왜구가 바다를 건너 온다손 치더라도 선례에 따라 막으면 된다. 더군다나 좌상이 올린 계책대로 새롭게축성도 했고 신 장군이 순변까지 마쳤는데 걱정할 것이 무엇이냐? 꼬리조팝나무처럼 움츠러들려구만 하는구나."
정치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자리가 아니다. 조정에는 언제나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있게 마련이며, 군왕은 그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럴 때 군왕이 늘 옳고 그름을 정확히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군왕은 다만 신하들 말을 듣고 그 책임을 물을 따름이다. 훗날 신립이 주장한 게 틀렸다면 류성룡을 칭찬하면 되고 신립이 옳았다면 류성룡을 벌하면 그만이다.
군왕은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아니 되며 고독을 두려워해서도 아니 된다. 군왕을 속이거나 농락할 수 없음을 신하들에게 똑똑히 가르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하들을 수시로 시험할 필요가 있다. 옛 군왕들이 때때로 법을 어기거나 예절을 무너뜨린 것은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백성들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리고, 미색을 탐하며, 멀리까지 군사를 일으킴으로써 신하들 태도를 살피는 것이다. 이때 법이나 예절보다 군왕을 위하는 신하는 끝까지 살아남지만, 군왕보다 나라를 걱정하는 신하는 반 이상 죽음을 당하며, 군왕을 비난하는 신하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 군왕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하를 참형에 처해야만 신하들이 법보다 군왕을 더 두려워하게 된다.
때때로 군왕이 넓은 아량을 베푸는 것은 두려움에떠는 신하들을 다독거리기 위함이다. 원망하는 마음이 하나로 뭉치기 전에 흩어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사돈인 신립에게 자주뜻을 묻거나 나이 어린 이덕형에게 가끔씩 어주를 내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군왕의 길,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길인가.
선조는 어전 회의를 끝마친 후 모처럼 후원 산책에 나섰다. 십년 전까지만 해도 신하들과 함께 시도 짓고 술도 마시느라 자주 드나들던 곳이다. 율곡이 죽고 사림이 동서로 나뉜 후로는 후원출입을 자제했다. 어심을 드러내도 좋을 노신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정여립의 난 후에는 쉴 새 없이 신하들을 몰아치느라 한가로이 꽃구경, 연못 구경을 다닐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만은 봄꽃들을 두루 살피며 그동안 시름을 잊고 싶었다.
광해야 너는 아느냐? 군왕이란 항상 거대해야 한다는 것을, 깊고 넓고 끝 간 데 없어야 한다는 것을! 군왕이 무엇인가에 얽매이고 의지하는 순간부터, 한계를 솔직히 드러내는 순간부터 신하들은 역심을 품는 법이다. 그러므로 이 아비는 광풍처럼 이 옥좌를 지킬 것이다. 군왕인 나 자신조차도 어떤 용단을 내릴지 모르게 할 것이다. 광해야, 너는 아느냐? 평화로운 호시절에는 누구나 군왕을 위해 목숨을 마칠 것처럼 교언을 남발하지만 정말 필요할 때에는 아무도 군왕 곁에 머무르지 않는다. 군신유의나 부자유친을 논하지 마라. 군왕에게는 의리도 정도 헛될 뿐이다. 광해야, 알겠느냐?'
'이제 서서히 광해를 목 조르고, 광해와 내통하고 있는 류성룡을 내치는 일만 남았군. 아울러 류성룡이 쫓겨나면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이순신도 제거해야지. 젊은 시절부터 대나무처럼 뻣뻣하여 여러 번 윗사람들과 충돌했던 자가 아닌가. 혹여 류성룡이 귀양이라도 가면 의를 내세워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그런 자에게 장졸들을 수천 명이나 맡기는 것은 아주위험한 일이지. 첫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주상 마음을 움직여야지. 신성군이 왕위에 오르면 세상은 나 윤환시 것이되는 거야.'
임진년 사월 십삼일.
쓰시마 섬을 떠날 때부터 흩뿌리던 빗방울이 물안개를 몰고 왔다. 바람 방향이 시시때때로 변하여 돛을 펴기는 적절치 않았다. 급히 움직이는 노를 따라 전선 칠백여 척이 높은 파도를 가로질렀다.
갈매기들이 어지러이 먹구름 가득 낀 허공을 날았다.
고니시가 천주교도인 반면 가토는 독실한 일련종 신도였다. 가토 쪽에서는 늘 고니시를 제 힘으로승리 한 번 거두지 못한 장사꾼이라 업신여겼고, 고니시 쪽에서는 가토를 지략이 없이 피만 좋아하는 난폭한 자로 경원시하였다.
조선 정벌을 위한 전진 기지인 쓰시마 섬의 도주 소 요시토시가 고니시 사위였기 때문에 정벌군 내에서는 고니시가 영향력이 약간 더 강했다.
요시토시는 생각할수록 입맛이 씁쓸했다.
"무슨 기도를 올렸는가?"
"화평을 간구했습니다."
고니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화평이라...... 예수께서 약속하신대로 부활이 실제로 이루어진 후에도 화평은 없었지. 참으로 화평이 필요하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기는 힘들어."
설사 조선군이나 명군에게 패하더라도 외국과 전쟁을 함으로써다시 찢길 수도 있는 일본 전국을 봉합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는 태합의 뜻이 담겨 있는듯도 했다. 당장 다음을 노리고 웅크리고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이 목소리를 줄이고 있었으며 태합의 마음을 일고 공공연히 전쟁을 선동하는 영주들도 있었다.
'이제 저 땅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매일매일 전투를 이어가야 한다. 최소한 한양을 빼앗고 평양에 닿을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겠지. 한양에서 조선 국왕을 사로잡는 것이 최선이고 평양에 닿기 전에는 반드시 생포해야 한다. 그길이 희생을 가장 적게 남기고 전쟁을 끝내는 길이다. 만약 명나라가 끼어들어 전쟁이 길어지면 무고한 생명들이 수없이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 길만은 피해야 한다.'
저물 무렵, 고니시가 이끄는 제1군은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부산포 건너편 해안에 닿았다.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임진년 사월 십오일 저물 무렵.
율포 만호 이영남은 잔뜩 화가 난 얼구롤 진해루 앞마당에 서 있었다.
"왜군이 쳐들어왔다는데, 왜 이리 늦장을 피우는 것이오?"
목청을 돋웠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좌수영 장졸들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왜군이 쳐들어왔다는 말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이영남은 원균이 보낸 서찰을 당직 군관에게 맡기고 돌아갈까 생각도 해보았으나, 이순신이 그 서찰을 읽고 혹여 겁이라도 먹지 않을까 염려되어 마음을 돌이켰다. 당직 군관인 나대용이 옆문을 통해 나왔는데, 검은 눈동자를 굴리며 계속 왼발을 떨고 있었다. 당장 그릇이라도 깨어지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염주괴불주머니 꽃처럼 누렇게 뜬 피부와 깡마른 볼이 신경질적으로 보였다. 이영남은 예의를 갖춘 후 소매에서서찰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하나 진정 우스운 것은 천도天道를 살피지 않고 작은 능력을 과신하는 거라네. 성공과 실패, 사람과 죽음, 승리와 패배는 지극히 작은 차이에서부터 비롯되는거야. 아무리 노력해도 항상 불길한 기운이 조금씩은 깃들게 마련이지. 하지만 노력하면 천의를 살필 수 있게되네."
"장수가 함주로 군사를 움직일 수는 없는 법이니 어명이 내리기 전엔 마음대로 전라 좌수영을 벗어나 경상 우수영으로 들어갈 순 없으이.일단 장계를 올린 후 출전 준비에 만전을 기하다가 어명이 내리면 경상 우수영으로 가서 힘껏 싸우겠네."
이영남은 이순신에게서 원했던 답을 듣자 휭하니 마당으로 내려선 후 쇠박달나무숲을 지나 해안으로 뛰어 사라졌다.
'왜군들 전략이 무엇인지, 어떤 무기를 사용하는지를 잘 알 수 없는 지금으로서는 무조건 참아야 한다. 왜군들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강점과 약점을 보일 때까지 자중하고 또 자중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어서 무릎을 꿇고 엎드리세요. 어서요!"
동치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나 소은우는 무릎을 꿇는 대신 사발 꾸러미를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제일 앞에 서 있던 왜장이 총을 내려놓고 양손을 땅바닥에 대며 엎드린 것이다. 그러자 나머지 왜군들도 따라 했다.
"아니, 이건 금오산 다완이 아닙니까? 이십 년 전 금오산 일대의 가마가 불에 찬 후 질박하고 은은한 금오산 다완은 사라졌다 들었습니다. 한데 이게 몇 갭니까? 열 개씩이나 가지고 계셨군요."
열 여섯 철부지로 궁에 들어온 뒤 많은 일이 있었다. 첫 십 년간은 퇴계와 율곡이 가까이서, 멀리서 선조를 도왔다. 두 사람은 군왕의 도와 덕치의 위대함을 쉽게 설명해 주었다.
퇴계와 율곡이 세상을 뜬 후로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동서로 나뉜 신하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두 사람을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
'퇴계와 율곡이 그렇듯 소인배라면 그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과인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선조는 역정을 내기도 하고 달래 보기도 했지만 신하들은 막무가내였다. 요순도 공맹도 잊고 당폐(임금과 신하)의 엄격함마저 사라졌다. 급기야 정여립이 도당을 모아 난을 일으켰다.
선조는 인빈을 구석구석 어루만졌고, 인빈은 손길이 닿을 때마다 부르르 몸을 떨었다. 선조는 그 감칠맛 나는 몸부림이 좋았다. 창덕궁을 가득 덮은 안개가 살랑대는 간들바람을 따라 천천히 후원으로 움직였다. 차디찬 겨울이가고 바야흐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온 것이다. 바삐 진둥걸음을 옮기는 궁녀들 얼굴에도 봄은 피어났다. 성은을 기다리며 한뉘 늙어 가는 궁녀들도 봄 냄시가 싫지 많은 앉은 모양이었다.
윤환시는 자웅눈(한쪽은 크고 한쪽은 작게 생긴 눈)을 치뜨며 어명을 걸고 넘어졌다.
류성룡은 두 사람을 볼 때마다 이십여 년 전 젊은 날을 회상하곤 했다. 김성일, 허봉과 함께 홍문관에 파묻혀 학문을 익히던 시절, 붕당을 만들려는 서인에게 정면으로 달려들던 시절, 의로움이란 잣대만으로 세상을 살피던 시절이었다. 오십 줄에 들고 보니 의라고 믿었던 것이 불의로 밝혀지기도 하고 불의라고 치를떨었던 것이 의로 돌아오기도 했다.
류성룡은 율곡을 탄핵하는 소를 올린 것이 못내 후회스러웠다. 류성룡은 율곡이 동도 없고 서도 없으며 동도 옳고 서도 옳다고 한 말을 미봉책으로만 받아들였다. 어찌 하늘 아래 옳은 것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주장은 천하를 속이고 군왕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 여겼다. 탄핵을 당한 율곡이 들려준 말이 귀에 쟁쟁했다.
"무왕과 백이숙제는 둘 다 옳은 것이라네.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 폭군 주를 쳐서 세상을 평안하게 했으니 옳은 것이고, 백이숙제는 신하가 임금을 죽일 수 없다는 도를 따른 것이니 그 또한 옳지 않겠는가?"
그때는 율곡이 세상을 보는 넓고 부드러운 시선을 따라가지 못했다. 젊은 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세상을 읽는 눈이 부족했다. (파주 자운서원 옆의 땅을 보러 간 적이 올봄에 있었다. 율곡 이이. 그가 오늘 이렇게 내 마음속으로 진중하고 다정하게 걸어와 손을 건넸다. 선조가 북으로 피난갈 때 율곡은 화석정에서 영령으로 바라보며 곡을 했었을 터. 오늘 류성룡은 율곡의 가르침을, 그의 지혜와 경륜을 존경하고 있다. 나도 율곡 이이가 점차 시야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는데 류성룡이 그것을 깨우쳐주고 있다. 율곡의 '격몽요결'이 내 서재에 있어서 가서 꺼내보고 왔다. 시간을 내어 율곡의 글도 정독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전쟁이 터진 이상 무엇보다도 먼저 오성과 한음, 저 두 젊은 천재들을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동이니 서니 북이니 남이니 하면서 편 가름에 익숙한 대신들과 전쟁을 논할 수 없다. 의와 불의가 힘의 논리로 바귄 현실을 사심 없이 받아들이고 탑전에 당언(바른 말)할 신하가 필요하다.'
"아마도 이 장군은 패하기가 쉬울 것이오."
이항복이 놀란 토끼 눈으로 되물었다.
"패하다니요? 천하제일 용장이 아닙니까? 야인과 싸우면서 단 한 차례도 물러선 적이 없는......"
"천하제일 용장? 아마 그 뜬구름 같은 명성과 자만심이 화를 부를 것이오. 이 장군은 용기는 있으되 슬기가 없고, 자기 능력만 과신하며 주위 조언을 듣지 않는 장수라오. 나아가지 않고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지킨다면 왜군과 대적할 수 있지만 속전속결로 승리를 재촉한다면 단숨에 무너지고 말 것이오. 우린 아직 왜군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조차 모르오. 동래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걸 보면 왜군들이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알 수 있소."
"장수가 전투에서 패하는 데는 열 가지 잘못이 있는 법이오. 용기는 있으나 죽음을 가볍게 여기고, 적군을 만나서 허둥대며, 욕심을 앞세워 이로움을 취하고, 마음이 약해 죽여야 할 자를 죽이지 못하며, 지혜는 있으되 두려움을 모르고, 남을 함부로 믿고, 청렴함을 내세워 부하를 보살피지 않고, 계책이 있다고 조심하지 않거나, 모든 일을 자기 혼자 꾸려 나가려 하고, 게을러 모든 일을 부하들에게 맡기는 것."
"어쨌든 도승지가 전하를 모시고, 대제학이 왜장들을 맡고, 내가 명나라를 오가면 틀림없이 승리할 길이 열릴 게요."
"대감 뜻에 따르겠습니다."
두 사람은 공손히 류성룡에게 예를 표했다.
성정각을 나온 세 사람은 봄 풍경을 완상하며 장승걸음을 옮겼다. 색색 가지 꽃과 나무들이 시야를 어지럽혔고 봄꽃 냄새가 마음을 흔들었다. 어디에도 피 냄새는 나지 않았다. 졸졸졸 흘러가는 금천교 밑 냇물이 유난히 맑았다. 전화가 이곳까지 미치면 이 평화는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외해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전언을 품고 가배량으로 돌아온 이영남은 매우 놀랐다. 이순신 앞에서 경상 우수군이 무적임을 자랑하고 온 게 쑥스러울 정도였다. 판옥선이 겨우 세 척, 협선과 포작선을 합쳐도 열 척이 되지 않았다. 팔관 십육포에 소속된 판옥선이 모두 모인다면 사십 척이 넘을 것인데, 한심한 일이 아닐 수없었다.
원균은 부들부들 떨며 고함을 내질렀다.
"두고 보자, 이놈들! 군령을 어긴 놈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참형에 처하겠다. 남해로부터는 소식이 없는가?"
원균은 남해 현령 기효근이 어찌 되었는가가몹시 궁금했다. 다른 장수들은 다 도망간다고 해도 기효근만은 달려와 주리라 믿었던 것이다. 이영남이 힘주어 답했다.
"늦어도 내일까지 도착하겠노라는 연통이 왔습니다."
"내가 앞장설 터인즉 그대들은 뒤를 따르시오. 곧장 옥포 쪽으로 돌아서 가덕도를 지나 부산으로 갑시다."
가배량에서 부산포로 가는 뱃길은 두 달래였다. 하나는 내해를 따라 한산도를 왼쪽으로끼고 좁은 칠천량 해협을 지나 가덕도로 빠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율포와 지세포를 돌아 외해로 나가서곧장 가덕도로 향하는 것이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므로 원균은 지름길인 후자를 택했다.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 둬. 전투에서 제일 먼저 죽는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야. 두려움이 없다면 죽음은 결코 우리를 쓰러뜨리지 못한다."
원균이 이끄는 경상 우수영 선단은 어둑새벽이 올 때까지 지세표 앞바다에서 맴돌다가 날이 밝자 가덕도로 방향을 잡았다. 지세포에 정박해서 잠시 숨을 돌리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원균은 이마저 묵살했다.
펑.
갑자기 포 소리가 크게 울렸다. 언덕 위로 새까맣게 왜군들 머리가 드러났다.
"적이다!"
옥포 만호 이운룡이 탄 배가 황급히 다가왔다.
"장군, 배를 돌리시지요. 왜군들이 해안마다 가득합니다. 이대로 계속 나아갔다가는 격군들이 모두지쳐 회군하지 못합니다. 해안에 잠시 정박하여 쉴 곳도 없지 않습니까. 옥포로 피신한 후 후일을 기약합시다. 전라좌수사께 도움을 청합시다.'
"돌격 깃발을 올려라! 진군 북을 쳐라!"
비호가 좌우로그려진 붉은 깃발이 올랐다. 심장 박동보다 더 크고 급박한 북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적선입니다!"
배들이 두꺼비 등판처럼 바다에 울룩불룩 모습을 드러냈다. 갈매기 떼가 끼룩 끼루룩 울며 주위를 빙빙 돌았다. 이미 이운룡과 우치적이 탄 판옥선을 비롯한 나머지 군선들은 뱃머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조금 더 나아가다가는 원균이 탄 판옥선만 고립될 것이다.
탕.
그 순간 총성이 울렸다.
탕탕 탕탕탕.
상갑판에 있던 궁수들이 깜짝 놀라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군졸들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필 엄두도 내지 못했다. 포성과 총성 속에서 원사웅이 다급하게 청했다.
"아버님, 퇴각 명령을 내리십시오. 다른 군선들은 이미 뱃머리를 돌렸습니다. 이대로는 고립되어 몰살당합니다."
원균은 살아남았다는 부끄러움으로 두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우치적은 분을 참지 못하여 머리를 쥐어뜯었고, 기효근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늦게 도착한 데 대해 용서를 빌었다. 모두 침통한 얼굴이었다.
남해 현령 기효근이 나섰다.
"장군, 남해로 옮기시지요. 이곳에서는 왜선들이 기습하면 당해 낼 재간이 없습니다. 남해에는 소장이 축적해 둔 군량미와 무기들이 있습니다."
"이왕 힘을 합쳐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면 남해 대신 전라 좌수영이 있는 여수로 곧장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원균이 버럭 화를 냈다.
"안 돼! 이런 몰골을 전라 좌수군에게 보여 주잔 말인가? 죽더라도 경상 우도 바다를 벗어날 수 없어. 임지를 벗어난 장수가 어찌 장수일 수 있는가. 남해는 여수와 지척이니 내가 남해로 가면 소문이 곧 좌수영에까지 미칠 것이다. 그러니 남해로도 가지 않겠다.
기효근이 중재안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곤양으로 가시지요. 남해에서도 가깝고 여차하면 진주성에 있는 군사들과도 연락을 취할 수 있습니다. 멀리 한산도까지 척후를 보내고 창선도에 매복을 심어 둔 후 바다와 육지를 오가며 왜적과 맞선다면 능히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오늘은 완벽하게 지고 말았다.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꽁무니를 뺀 것이다.
'분하다!'
문 밖에서는 원사웅이 두 눈을 부라리며 치욕을 곱씹고 있었다. 갑판을 두드리는 빗방울이 그들 부자 마음을 따갑게 채찍질했다.
(21.04.12, 20:55, 3권 終)
2021.04.
이일은 적진을 간망(적의 동태를 멀리서 살핌) 하기 위해 척후를 내보내는 법이 없었다. 왜군은 조선군이 진을 친 상주 남쪽 장천리를 겹겹이 에워싼 채 기습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일은 단신으로 포위망을 뚫고 충주를 향해 살걸음으로 달아났다.
'신립이 패하면 무조건 몽진해야 한다. 충주에서 한양은 지척이니 머뭇거리다가는 모조리 생포될 수 있다. 우선 개성으로 가고 그 다음은 평양, 그리고 그 다음엔 어디로 가야 하나. 굼벵이처럼 느린 어가행렬이 개성에 닿을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한음 이덕형이 그일을 할 수 있을까.'
"누구를 세자로 삼아야 하겠는가?"
류성룡이 이산해 쪽을 곁눈질했다. 광해군은 이미 이산해와 뜻을 합쳤다고 했다. 그러나 이산해는 손바닥으로 붉은 눈시울만 훔칠 뿐 도무지 입을 열지 않았다.
"화근은 미리부터 잘라내야 한다. 그래서 세자책봉을 서두르는 것이야. 과인 뜻을 알겠는가?"
'전하께서 제일 염려하는 화근이 광해군이란 말인가. 공론에 밀려 세자에 앉히는 게 아니라 광해군을 제거하려고 한발 뒤로 물러선다? 책임과 의무를 부여한 후여차하면 약점을 물고 늘어지겠다고?'
경복궁에 이어 창덕궁과 창경궁도 불길에 휩싸였다. 뒤늦게 몽진 소식을 듣고 분노한 백성이 일으킨 방화였다.
'저 불꽃을 보라. 산산이 부서지는 전각을 보라. 이 나라 주인인 내가 거처하던 궁궐을 저렇듯 폐허로만들 수가 있는가. 괘씸하구나. 무엄하구나. 왜란이 없었더라도기회만 있으면 저렇듯 불을 지를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게다. 내 어찌 역심을 품은 저들을 그냥 둘 수 있으랴.
나는 돌아온다. 돌아와서 반드시 새로운 궁궐을 세우리라. 오늘 밤 궁궐을 짓밟은 저 간두(간악하여 남을 해침)한 무리들을 모조리색출해서 거열형에 처하리라. 구족을 멸하리라. 기다려라. 목멱산이여! 이 치욕을 말끔히 씻기 위해서라도 저 거대한 불기둥을 잊지 않으리라. 천 배 만 배로 갚아 주리라.'
"한 근이라니? 백 근을 받아도 부족해."
임천수가 쥐눈으로만 웃으며 싸늘하게 대답했다.
"한 근 드리고 소인 놈이 잘 아는 사공에게 부탁하여 강화도까지 무사히 모시도록 합죠. 목숨값에 비단 이백 필이면 적당하다고봅니다요."
전라 좌수사 이순신은 생각에 잠긴 채 진해루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몽진을 떠난다면 어디로갈까. 왜군이 난바다를 건너왔다는 걸 감안한다면 강화도는 위험천만이다. 여차하면 명나라로 건너갈 수도 있는 개성이나 평양을 선택하지 않을까. 왜군들도몽진 행로를 짐작하고 있겠지. 저들이 전라도를 끼고 돌아 황해를 타고 곧바로 북진하면 조선 조정은 독 안에 든 쥐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수군 폐지 문제는 결국 왜국을 정벌하려는 선조의 주장과 맞물려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장수들 대부분은 수군이 육군에 차출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닷세 전, 이영남은 무릎을 꿇고 읍소하면서 구원병을 청했다. 이순신은 바쁜 일을 핑계로 하여 한나절이나 버려두었다가 냉정하게 거절했다. 벌써 네 번째였다.
이순신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정운이 입을 벌린 채 주춤했다. 낙안 군수 신호가 어서 앉으라며 턱짓을 했다. 정운은 달아오른 양 볼을 손바닥으로 훔치며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이순신이 고개를 들고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왜선들이 부산포와 동래 연안에 왔을 때 조선 수군이 나아가 막았더라면, 그래서 왜군들이 뭍에 오르지 못하도록 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재앙은 없었을 것이오."
이들을 수족같이 부리려면 죽음까지 같이하겠다는 의리와 한점 사심없이 오직 조선을 위해 싸운다는 명분을 함께 내보여야 한다. 의리 없는 명분은 한낱 헛소리에 지나지 않아 막상죽을 위험이 닥치면 제 살 길을 찾아 흩어지게 될 뿐이며, 명분 없는 의리는 단지 호기에 지나지 않아 바깥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바름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헤매게 될 뿐이다.
가배량 방어와 척후를 위해 남겨두었던 우후 우응진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청야 전법에 따라 경상 우수영에 있는 무기고와 곡물창고를 불태운 후 십여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곤양으로 왔다. 경상 우수영이 남김없이 불탔다는 소식이 퍼지자, 경상 우수군에 속한 여러 관과 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곤양에 집결해 힘을 모아 함께 싸우자는 공문을 계속 띄웠지만, 일단 겁을 먹고 꼬리를 내린 장수들은 쉽게 합류하지 않았다. 왜군이 거제도 가까이 접근했다는 풍문만 들어도 무기고와 창고를불태우는 건 물론이고 군선까지 가라앉히고 육지로 달아났다. 어떤 변명을 대든, 경상 우수군이 궤멸한 것은 우수사 원균이 가장 책임이 컸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산성을 지키며 목숨을 부지하기보다는 들판을 내달려 죽음을 택하리라.'
이는 신립과 이일, 그리고 원균이 다함께 품은 신념이었다.
이영남은 새삼 경상 우수군이 처한 처지가 떠올랐다. 탈영병이 늘고 장졸들 수가 줄어들수록 상벌은 더욱 엄해졌다. 평소라면 곤장이나 하옥으로 처리할 사건들도 곧바로 목을 베는 일이 빈번했다.
'이대로 가면 경상 우수군은 자멸할 것이다. 더 이상 군사들을 위협하여 용기를 강요해서는 아니 된다.'
이영남은 문득 원균이 한계를 보이고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을 찾는 유연함과 두려움많은 장졸들을 다독일 여유가 원균에게는 부족했다. 장졸들을 옥죌 줄만 알았지 그차혹한 고통이나 상처는 전투 중에 누구나 겪는 것이라며 애써 무시했던 것이다.
옥포 선창 앞 바다에서 왜선들은 처차한 꼴로 불타올랐다. 장병검(바다에 빠진 적의 목을 베거나 배에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는 데사용하는 자루가 긴 낫 모양의 무기)으로 왜군 목을 따는 군졸이 여럿 눈에 띄었다. 거둔 수급에 따라 전공이 정해지기 때문에 서둘러 왜군들 시체에 접근한 것이다. 전투가 끝나기도 전에 수급을 자르기 시작한 군졸도있었고, 서로 자신이 죽인 왜군이라며 다투는 군졸까지 있었다.
"전투에서 승리하면 그 공은 우리 모두의 것이오. 어찌 수급이 많고적음으로 전공을 가리겠소. 적이 눈앞에 있는데 수급을 다투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소? 병법에도 이르기를, 칼날 앞에서 승리를 다투는 자나 패배한 뒤에 후회하는 자는 뛰어난 장수가 아니라고 했소이다."
옥포 앞바다에서 조선 수군은 왜 대선 열세 척, 중선 여섯 척, 소선 두 척 등 모두 스물여섯 척을 분멸했다. 바다 싸움에서 거둔 첫 승리였다.
"그렇소. 달천達川 앞에 배수진을 치고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하오. 앞으로 다른 장수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힘껏 용맹을 떨쳐 장렬하게 산화하신 신 장군을 배워 왜군과 맞서야 할 것이오."
이순신은 잠시 말이 없었다. 원균이 두눈을 끔벅 감았다 뜨며 다시 물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점이라도 있소?"
이순신이 비로소 답했다.
"적을 줄여 보고 나를 높여 보는 건 장수가 가장 피해야 할 일입니다. 조령에 장졸을 매복시키고 퇴로를 미리 살펴 적이 지칠 때까지 굳건히 지키고, 혹여 죽가부적으로 패하더라도 다시 싸울 수 있도록 희생을 줄였어야 합니다."
장졸들은 아무 말 없이 형형한 눈으로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찰싹되는 파도 소리가 간간이 침묵을 깨고 어둠 속으로 퍼져 나갔다. 가슴을 한껏 펴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랑스러운 부하들, 목숨을 걸고 전투를 치른 장졸들이 그곳에 있었다. 비로소 이순신은 승장이 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어둠 덕분에 춘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왜군을 공격하는 건 정의가 불의를 덮치는 것이며, 강물을 터서 조그마한 모닥불을 끄는 것과 같다. 병락에 따라 군대를 이끌어 승리를 구하는 것은 장수의 몫이며, 적과 싸워 승리를 취하는 것은 군졸의 용맹에 달려 있다.
권준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박초희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전쟁은 무기를 들고 맞서 싸우는 것만이 아니지. 상대방 사기를 떨어뜨리고 유능한 적장을 물러나게 하기 위해 온갖 책략과 술수를 쓰는 것 또한 전쟁이야. 지금 수많은 간자들이 이 수사 주위를 맴돌며약점을 찾고 있지. 자, 생각해 보세. 지금과 같은 전쟁 중에 이 수사가 아산에 있는 처첩 외에 또 다른 여자를 두고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
"의령에 사는 유생 곽재우가 의병을 일으키면서 돌린 격문이옵니다."
이순신은 황급히 격문을 펼쳐 들었다.
"들어라!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는 것을 의병義兵이라 하며, 천명을 거스르고 침입해 온 오랑캐를 몰아내는 군사를 응병應兵이라 한다. 의병과 응병이 전투에서 이기는 것은 하늘의 이치라고 했다.
지금 우리는 왜란을 평정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으니 의병인 동시에 응병인 것이다. 우리는 죽기로 싸워 위로는 주상 전하를 받들고 아래로는 만백성을 도탄으로부터 구할 것이다.
청사에 영원히 빛날 위대한 대의에 동참하라."
이순신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남명 선생 제자답게 의리를 아는 사내로군. 이를 기화로 하여 방방곡곡에서 의병들이 나선다면 전쟁은 다르게 진행되리라. 구렁이처럼 길게 늘어서 북으로 진격하는 왜군들 후방을 의병이 겁없이 찔러대면 적은 군량미를 조달하는 데에도 커다란 곤란을 느끼게 되리라.'
"왜군이 부산포에서부터 치고 올라오자 경상도에 있는 수령들은 지레 겁먹고 관할 지역을 벗어났습니다. 경상 감사 역시 지리산으로 몸을 피했고 관군들도 식솔을 거느리고 수령 뒤를 따랐죠. 자연히 무기고와 곡물 창고는 지키는 군사 하나 없이 덩그러니 남게 되었습니다. 도둑 떼와 의병들이 앞 다투어 그곳을 털었죠. 도둑질을 하든, 왜군과 싸우든 무기와 식량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니까요. 소식을 접한 수령들이 도둑과 의병을 구분하지도 않고 몽땅 역적으로 몰아 장계를 올린 것입니다. 이 와중에 곽재우도 의병과 도둑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곽재우는 직접 조정에 소를 올려 김수의 비겁함을 낱낱이 밝힌 다음, '김수는 아비도 무시하고 임금도 무시하여 불충불효하며 패전을 기뻐하고 왜적을 맞아들였다.'라고 아뢰었답니다. 조정에서는 경상 감사가 보낸 장계와 곽재우가 올린 소를 놓고 옥신각신하다가 결정을 보류한 채 우선 곽재우를 의병장으로 인정했다고 합니다. 왜놈들은 붉은 두루마기를 입은 곽재우를 홍의장군이라 부르며 피한답니다. 하여튼 잘못 의병을 일으켰다가는 역적으로 몰려 죽을 판이니 누가 선뜻 대의에 동참하겠습니까?"
이순신은 이운룡 등을 이끌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사정으로 자리를 옮겼다.
"역시 좋은 일! 논어를 읽는 장수가 어디 흔한가? 이 만호가 평소에아끼는 글귀를 하나 만들어 주시구려."
"장군!"
이운룡이 난처한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럼 외람되지만 옮겨보겠습니다. 소장은 '강의목눌근인剛毅(굳셀의)木訥近仁'이란 글귀를 늘 마음속에 새기고 지냅니다."
이순신이 그 뜻을 풀었다.
"강직하고 과감하며 질박하고 입이 무거우면 인仁에 가깝다. 참 좋은 말씀이오. 자로편에 나오는 말이지, 아마?"
좌수영 장수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앉아 있는 사람은 전라 좌수사 이순신과 경상 우수사 원균, 그리고 순천 부사 권준뿐이었다. 주먹다짐이 시작되려는 순간, 권준이 고함을 질러 꾸짖었다.
"멈추시오! 부끄럽지도 않소? 이런 아귀다툼을 왜군들이 보면 뭐라 하겠소? 주상 전하께서는 몽진 중이신데도 장수들만 믿겠다는 비망기까지 내려 보내셨소. 한데 지금 그대들은 누구를 향해 주먹질을 하는 게요? 차라리 자기 얼굴에 침을 뱉으시오들."
원균이 반쯤 감았던 눈을 크게 부릅떴다. 형님 소리를 대신한 '원 장군'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던 것이다. 두 사람 눈이 허공에서 격렬하게 얽혀 들었다.
"좌수사! 똑똑히 들으시오. 장계를 올렸다 하여 잘못이 모두 없어지는 게 아니오. 장계는 그렇듯이 소상히 올리면서 왜 나나 기현령에게는 불을 지른 까닭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은 게요? 내 허락 없이 경상 우수영에 관한 관과 포를 손대는 일이 또 벌어지면 가만 있지 않을 것이오. 이런 일이 두 번 생기면 그때는 나 원균에 대한 배신으로 받아들이겠소. 이 수사는 전공에 굶주린 이리요?"
"내가 보기엔 원 장군이야말로 전공에 굶주려 있소이다. 작은 승리를 탐한 끝에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가리지 않고 오로지 돌진하여 수많은 장졸을 잃고 전선들을 망실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조선 수군은 단 한 번만 패하여도 모든 걸 잃는 것이니 자중하여 병략을 짜고 신중하게 진군하여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전혀 듣지 않으셨군요. 자리를 바꾸어 장군이 제 자리에 섰다 해도 그리했을 청야 일을 트집 잡는 건 무엇 때문입니까? 장군도 이미 경상 우수영을 같은 이유로 불태우지 않았소이까."
'왜국과 싸우는 건 용맹으로 장졸들을 선동해서 될 일이 아니다. 형세를 잘 읽고 병략을 치밀하게 짜서 장졸을 지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냉혹하게 적군과 아군의 형세를 헤아려야만 승리할 수 있다. 권준과 함께 전략을 짜고, 어영담과 함께 지형지세를 살피고, 나대용.이언량과 함께 판옥선을 개량하며, 변존서와 함께 군사들에게 사예를 가르치고, 김완, 배흥립과 더불어척후를 세우고 연통하는 방법을 고안해야 하리라. 옥포에서처럼 싸우기 전에 이미 승리를 결정짓고 나서 움직여야 한다.'
<陣中吟 진중음> |
天步西門遠 천보서문원
君儲北地危 군저북지위
孤臣憂國日 고신우국일
壯士樹勳時 장사수훈시
誓海魚龍動 서해어룡동
盟山草木知 맹산초목지
讐夷如盡滅 수이여진멸
雖死不爲辭 수사불위사
임금의 행차는 서문에서 멀어지고,
왕자는 북쪽 땅에서 위태롭다.
외로운 신하는 나라를 걱정할 날이요.
사나이는 공훈을 세워야 할 때이다.
바다에 맹세하니 물고기와 용도 감동하고
산이 맹세하니 초목도 알아준다.
원수를 모두 멸할 수 있다면
비록 죽음일지라도 사양하지 않겠노라.
이순신은 이어서 다음 종이를 폈다. 옥포 해전 전후사정을 상세히 적은 장계 초본이었다.
권준은 좀 더 강력하게 출정을 막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으윽...., 윽!"
그때 이순신의 눈까풀에 가늘게 경련이 일었다. 시뻘건 피가 등을 타고 발뒤꿈치까지 흘러내렸다. 이순신이 권준을 알아보고호른손을 들어 가까이 오라는 시늉을 했다. 권준이 다가가서 고개를 숙이자 농담을 건넸다.
"이, 이것이었소? 이제...... 지나갔으니, 당분간 죽을 일은 없겠구려."
"그럼, 자 시작할까?"
탄환이 뼈를 건드리는 고통에 어깨를 조금씩 떨면서도, 이순신은 물수제비를 뜨는 차돌멩이처럼 가볍고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병법서에서도 친하면 떼어놓는다고 하였다. 이순신에게 정운은 그능력이 믿음직스러우면서도 비탈길에 박힌 칼바위처럼 불안한 구석이 있었다. 성미가 급한 불같은 정운은 왜선과 정면으로 맞설 생각뿐이었다.
'상대를 제압하는 데는 때가 있는 법. 지금이 정 만호 마음을 열 기회다.'
정운은 백호처럼 눈동자에 푸른빛이 흘렀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그 눈빛만으로도 기가 꺾일 만큼 강렬했다. 한마디로 용장이었다.
'이 사람 마음을 얻으려면 닥쳐온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밀려드는 운명에 정면으로 맞서는 기개를 보여야 한다. 때를 따르지 않는 용기는 만용에지나지 않으며, 순리를 따르지 않는 기개는 결국 패도로 떨어짐을 보여 주리라. 나이순신이 죽음 따위에 어쩔 줄 몰라하는 겁쟁이가 아니라 하늘이 정하는 바에 따라 움직이는 대장부임을 알려 주겠다.'
정운은 독주를 이순신 어깨에 콸콸콸 내리부었다. 살점이 씻겨 내려가면서 이순신은 다시 얼굴이 일그러졌다. 살점이 씻겨 내려가면서 이순신은 다시 얼굴이 일그러졌다. 장검에 가슴을 벤 듯한 싸한 아픔이 턱밑까지 차 올라왔던 것이다. 칼끝이 예리하게 상처를 비집고 어깨뼈를 송곳처럼 찔러 댔다. 그때마다 저절로 몸이 퉁퉁 위로 튕겨 올랐다. 이를 악물고 뒤로 젖힌 채 흘러나오는 눈물을 삼켰다. 이제껏 고통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손끝에서발끝까지 창에 난자당하는 듯한 아픔이었다. 그아픔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 것 같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심장이 뚝 멎는 느낌이 왔다. 마침내 칼끝이 엄지손톱만 한 철환에 닿은 것이다.
"이거다!"
까마득히 멀리서 정운이 외치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이순신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배를 타서는 아니 된다. 저곳은 사지다. 망자들만이 갈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많다.'
"핑계 대지 마라. 그깟 것들은 한낱 신기루에 불과하다. 넌 네 야망만을 채우려 하는 게 아닌가? 네 명예에만 매달리는 게 아닌가? 네 운명만을 뛰어넘으려는 게 아닌가? ...너는 매일매일 죽음 이후를 그리지 않았는가? 남들이 보내는 시선을 너의 죽음 뒤까지 이어서 살피지 않았는가? 먼 훗날에 올 가장 칭송받고 존경받는 순간들을 위하여 오늘 하루를 죽이지않았는가? 불멸을 꿈꾸지 않았는가? 두려워 말고 배에 오르라. 이 베는 네게 집이자 거울이요, 몸이자 옷이다."
배에 오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웃고 있었다. 뒤돌아보고싶었지만 고개를 움직일 수 없었다.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이순신은 괴성을 지르며 돌아가겠다고 발버둥쳤다. 그럴수록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이렇게 회생하셨으니 다행입니다. 소생 점괘가 틀리고도 기쁘기는 이번이처음입니다."
이순신은 손을 뻗어 권준의 양손을 움켜잡았다. 권준은 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의 도리는 혼자 깨우친다 하더라도 삶의 이치는 권준, 이 사람과 함께 짚어 나가리.'
遊香峰(유향봉)/ 西山大師
步步又步步 (보보우보보)
層厓幾重重 (층애기중중)
白雲生洞壑 (백운생동학)
忽失香爐峰 (홀실향로봉)
汲澗燃秋葉 (급간연추엽)
烹茶一納胸 (팽차일납흉)
野來巖下水 (야래암하수)
魂也御飛龍 (혼야어비용)
明朝府天下 (명조보천하)
萬國列如峰 (만국열여봉)
걷고 걷고 또 걷고 걸어
포개진 벼랑 몇 겹이던가
흰구름 큰 골짜기에서 일어나니
갑자기 향로봉 잃는구나
시냇물 긷고 낙엽태워
차 달여 모두 앞에 바치네
밤이 되어 바위 아래 잠자니
魂은 나르는 용을 지배하네
내일 아침 천하를 굽어 보면
온 세상 창날처럼 벌어지리.
登香爐峰(등향로봉)
萬國都城如蟻室(만국도성여의실)
千秋豪傑若醯鷄(천추호걸약혜계)
一窓明月淸虛枕(일창명월청허침)
無根松風韻不齊(무근송풍운부제)
만국의 도성은 개미집과 같고
천추의 호걸들은 초파리와 같구나.
밝은 달 아래 맑은 허공을 베개 삼으니
한없는 솔바람의 곡조가 아름답도다
선조는 휴정을 무죄 방면하며 묵죽 한 폭을 하사했다. 그리고 이런 시를 한 수 내렸다.
묵죽시(墨竹詩)
葉自毫端出(엽자호단출) 根非地而生(근비지이생)
月來無見影(월래무견영) 風動不閒聲(풍동불한성)
잎사귀는 스스로 붓 끝에서 나왔고
그 뿌리는 땅에서 나지 않았네.
달이 돋아 와도 그림자 볼 수 없고
바람에 움직여도 소리 들리지 않네.
소상(瀟湘)의 한 가지 竹이
聖主의 붓끝에서 나왔어라.
山僧의 향불 사르는 곳에
잎마다 가을 소리 띠었고녀.
瀟湘一支竹(소상일지죽) 聖主筆頭生(성주필두생)
山僧香爇處(산승향설향) 葉葉帶秋聲(옆옆대추성)
"유정은 우리네 인생에서 쌓이고 또 쌓이는 의심을 푸는 법을 안다네."
"의심을 푼다? 어떻게 말인가?"
"처음 만났을 때 이런 선게(부처님 가르침을 운문으로 표현한 짧은 글)을 풀어 놓더군. '만 가지 의심을 한 가지 의심에 함께 뭉쳐서/ 의심해 가고 의심해 오면 그 의심 스스로 보리./ 제 아무리 용을 잡고 봉을 치는 솜씨라 해도/ 한 주먹으로 쳐서 철성 문을 무너뜨리리
만의도취일의단(萬疑都就一疑團)하고 의거의래의자간(疑去疑來疑自看)이니라
수시나룡타봉수(須是拏龍打鳳手)하야 일권권도철성관(一拳拳倒鐵城關)이니라
남명 선생 외손서가 되는 곽재우가 의병을 일으켜 그 별호를 홍의장군이라 한다네. 당직(말이충성스럽고 마음이 곧음) 한 남명 선생 학통이 그대로 살아 있어서 국난을 당하니 그 제자들이 나서는구먼. 휴정, 자네도 남명 선생을 뵌 적이 있지?"
"뵈었다마다. 손수 쓰신 단장短章 한 폭까지 받았다네. 그 기개가 하늘을 뚫고 두류산을 무너뜨릴 정도였네. 올바른 길이라면 목숨을 걸고 나서라고 누누이 말씀하셨지."
'아버지는 나를 털끗만큼도 믿지 않는다. 그래서 빈궁 목숨을 담보로 내게 권력을 떼어 주며 생색을 내는 것이다. 이틀 만에 분조를 꾸리기란 불가능하다. 신하들 수도 절대 부족하고 분조를 호위할 군사는 열명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난 아버지 은혜가 강과 바다처럼 깊고 넓다고 말해야 한다. 이다지도 좁고 흙탕물 튀는 하해가 있단 말인가?
전쟁이 끝나는 날, 조선은 날 주인으로맞으리라. 민심을 끌어 모아 천명을 받들리라. 그러므로 내 아버지여! 아무염려 마시고 압록강을 철퍽철퍽 건너가소서. 아버지가 버리고 떠난 이 나라 조선은 이 천덕꾸러기 아들 광해가 혼자 지키겠습니다.'
유월 십사일 자정, 좌의정 윤두수는 고언백에게 사백명이 넘는 군사를 맡겨 은밀히 능라도에서 대동강을 건너 왜적을 치도록 했다. 처음에는 기습을 당한 왜군들이 허둥지둥하며 자멸하는 양상을 띠었지만 동이 트자 전세가 뒤집히기 시작했다. 삼백 명이 넘는 군사들이 쓰러졌다. 왕성탄을 건너 장졸 백여명이 돌아왔으나 이어 걷잡을 수없는 일이 벌어졌다. 대동강 물이 불어 강을 건너지 못하던 왜군들이 왕성탄 쪽 수심이 얕다는 것을 알고 밀물처럼 몰려든 것이다.
국사창황일國事蒼黃日 수능이곽충誰能李郭忠 거빈재대계去邠在大計
회복장제공恢復仗諸公 통곡관산월痛哭關山月 상심압수풍傷心鴨水風
조신금일후朝臣今日後 영복갱서동寧復更西東
나라 일로 황급할 때에
누가 이곽 같은 충성을 낼 것인가
서울을 떠남은 큰 계책을 생각해서인데
후일의 회복은 제공을 힘입어야지
관산 달빛에 울음이 절로 나고
압록강 바람에 마음이 아프구나!
조정의 여러 신하여, 오늘날 이후에도
또다시 서니 동이니 할 것인가
(21/4/17, 토욜 집자 終. 내일 아침일찍 담양행 예정. 초승달이 저녁 중천을 지났고 관악산을 넘어오는 불빛이 네다섯개 반짝인다. 어느 순간 빛을 발하며 나타나는 비행기의 라이트. 아마도 어디쯤에서 몸을 틀어 정주행하면서 불빛이 비추는가 보다. 옥상은 쌀쌀하다. 어제 삼곶리 가시오가피 나물 뜯다. 산벚꽃과 길가벚꽃이 동시에 핀 삼곶리는 환하다. 박태기꽃이 집집마다 짙게 붉칠하였고, 대광리 경기집의 파리는 너무나 영악했다. 두릅을 완상하는 어머니들. 북쪽 마을은 어딘가 낮고 키를 잔뜩 낮춘다. 멀리 산 아래 평지에 분홍빛 도화꽃이 눈길을 끌정도로 이채로웠다. 화석정을 들러 귀로에 들다.)
(4월 19일 월요일, 어제 담양 사랑병원에 입원하여 폐의 물을 빼신 장모님을 뵙다. 코로나 이후 처음이다. 그나마도 침대를 끌고 내려와 간신히 뵐 수 있었다. 당신은 그리움에 지친 물속 깊은 눈으로 한없이 나를 바라보셨다. 그리고 소리내지 않는 기침을 하시면서 우신다. 가슴이 찢어질듯 아프고 목이 멨다. 마스크 사러 뛰어가는 담벼락에 씀바귀가 노랗게 꽃을 피웠고, 마치 그것은 어머니의 최후의 미소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더라. 오래오래 마스크쓰시라고 다섯통을 샀더니 간호조무사가 한통만 받았다. 귀로에 진남처남네 들르고 처남댁에서 머우도 땄다. 삼태기처럼 안온한 양지, 마을 입구의 곰솔이 인상깊다. 전형적인 시골 아버지 어머니의 큰딸이었을 처남댁. 그녀는 창백하고 쪼그려앉았고 한잔 받았다. 처남의 마음이 앞서가는 설명을 웃으며 듣다. 원동리 처형네 농가는 굉장하다. 꼼장어구이에 서천막걸리를 춘태에게 얻어 먹다. "무조건 몸에 좋은 건 먼저 먹어. 그래야 아내를 건사하지!" 남자가 먼저 찌그러져서 아내의 구박덩이가 됨을 경계한 언어다. 그의 신념이 새삼스럽게 가뭄에 비오듯이 몸에 들어오넹. 내 돈으로 기름을 육만원어치 넣고 교대로 운전하면서 밤 열시쯤 귀가. 머우 손질하고 자정에 누웠다. 아내는 끙끙 앓았다.)
류성룡이 오른팔을 힙겹게 들었다. 휴정이 힘껏 그 손을 부여잡았다.
"소승이 여기까지 온 것도 바로 그 일을 위해서입니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불제자들도 나라를 구하는 싸움에 동참하려 합니다. 소승 문하에서 특히 유정은 무예에 능하고 신망이 두터우니 중히 쓸 만합니다.'
'그대를 부를 마음은 없었노라. 불제자들 도움을 받아 이 나라를 지킬 일은 없을 줄 알았노라. 여기까지 쫓겨 온 과인을 보니 어떠한가?'
휴정은 아무 표정도짓지 않았다. 웃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으며 눈동자를 돌리지오 않았고 콧구멍을 벌렁거리지도 않았다. 전혀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없었다.
"암자에서 되새기는 문장을 말해 보아라."
휴정이 답했다.
"망령된 문장들을 어찌 감히 아뢸 수 있겠습니까? 하나 아직도 글에 갖혀 있는 소승이기에 이런 말을 되짚어 보고 있긴 하옵니다. '빈 골짜기는 응답을 잘하고, 빈 방은 햇빛이 밝다(空谷善應虛室生白)."
"빈 골짜기, 빈 방이라!"
선조가 잠시 혀끝으로 문장을 감으며 말뜻을 새기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꾸짖었다.
"무엄하구나. 과인이 묵죽까지 내려 정여립일을 불문에 붙였거늘. 아직도해를 입을까 두려워 미리 조심하는 것인가?"
월인이 고개를 들었다. 성노를 이해할 수없었던 것이다.
"한 생각이 선하면 상서로운 구름이 모이고 한 생각이 악하면 거센 바람이 불고 사나운 비도 내린다고 하였사옵니다. 어명을 더 잘 받들기 위해 몸도 마음도 비우려 했을 뿐이옵니다. 굽어살피시옵소서."
"남이 듣지 않기를 바라면 말하지 말 것이며 남에게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면 행동하지 말라고(뼈아프게 체득한 욕망인내의 논지이다. ) 하였느니라."
내가 그 자리를 스스로 원하는 건 모양이 좋지 않다. 가긴 하되 최대한 물러나며 자질이 부족함을 아뢰는 게 어심을 편하게 하고 또 우리에게 좋지 않겠느냐? 하고초(여름에 꽃이 피자마자 죽는 꿀풀) 신세를 면하려면 어쩔 수없지."
휴정이 답을 미루고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월인도 그 눈길을 받자 더 말을 보탤 수 없었다.
"어떤 경우를 당해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태어나지 않음이라 하고, 태어나지 않는 것을 생각 없음이라 하며, 생각이 없는 것을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그동안 너를 곁에 둔 것은 네가 그이치를 깨닫기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전라 순찰사 이광, 충청 순찰사 윤국형, 경상 순찰사 김수의 연합군이 한양으로진격하다가 용인에서 궤멸되었고, 평양성까지 함락되었다. 여기서 더 지체하다가는 의주로 피한 조정이 압록강을 건널지도 몰랐다.
'전라도만 안전하면 무엇 하는가. 머리 잘린 팔이 힘을 쓸 수 있는가.'
이영남의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이런 의문이 맴돌았다.
사천이나 당항포에서 조선 수군이 아무리 전과를 올려도 왜 수군은 부산포로 물러가 휴식을 취하며 기력을 회복하면 그만이었다. 부산포 앞바다만 봉쇄하면 보급로를 잃은 왜적은 자멸할 것이다. 대다수 장수들은 이렇게 생각했지만 이순신은 신중론을 폈다. 부산포 앞바다를 봉쇄하면 물론 최상이겠지만, 먼저 조선 수군이 부산포에모인 왜선들을 모조리 분멸할 수있는가를 곰곰이 따져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순천에 사는 갑부 정사준이 군량미 삼백 석을 보내온 것은 지난 유월 그믐이었다. 형 사익, 동생 사횡, 사정과 함께 좌수영을 찾은 정사준은 이미 무과에 급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려서부터 총포에 관심을 가져 집안에 직접 대장간을 설치하고 승자총통과 쌍혈총통을 만들기까지 했다. 이순신은 정사준을 훈련 주부로 삼고 왜군으로부터 빼앗은 조총을 연구하도록 했다. 사거리나 성능에 대하여 알면 좀 더 쉽게 격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1.4.19. 20:59 제4권 終)
이순신이 이날 가라앉힌 왜선은 대선 서른다섯 척, 중선 열일곱 척, 소선 일곱 척으로 모두 쉽아홉 척에 이르렀다. 전사한 장수 중에는 와키자카가 아끼던 부장 와키자카 사헤에와 와타나베 시치에몬도 끼어있었다. 한산도 앞바다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여 김해 방향으로 달아난 왜선은 대선 한 척과 중선 일곱 척, 소선 여섯 척 등 열네 척에 불과했다. 수군 200여 명을 이끌고 한산도에 상륙한 부장 마나베 사마노주는 패전 책임을 지고자결하고말았다.
이 한산도 앞바다 싸움으로 조선 수군은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했고, 왜군의 수륙병진책을 좌절시켰다. 이후로 왜 수군은 이순신이 지키는 남해 바다를 넘보지 못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시 나아가 싸우기보다 물러나지키기에 초점을 맞추라는 명령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권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빙그레 미소를 띠었다.
"다음에 원 수사는 틀림없이 부산포를 치자고 할 겁니다. 그땐 어찌하시겠습니까? 부산포에는 왜선이 500척 넘게 정박해 있지요. 부산포까지 가는 해로에는 왜 수군이 군데군데 복병을 숨겨 두었을 것이며 거제도에서 출항하여도 하루만에 부산포에서 전투를 치르고 귀영하기는 어렵습니다. 부산포 앞바다에서 야영을 하는 건 호랑이 입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기회를 살피며 더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 원 수사는 한산도 승전을 등에 업고 틀림없이 부산포를 치자고 할 겁니다."
돌림병은 허균의 가족만을 괴롭힌 것이 아니었다. 피란민 중에는 이런저런 역질에 걸려쓰러진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계곡마다 썩어 가는 시체들이 즐비했고, 열에 들떠 나무 그늘 아래에서 숨을 헐떡이는 환자들이 헤아릴 수 없었다. 못 먹고 못 입은 위에 한낮의 땡볕과 한밤의 추위를 되풀이 겪다 보니 몸은 저절로 쇠약해지고, 몸도 씻지 못하고 짐승과 부대껴 한뎃잠을 자며 들끓는 이와 더러운 물에 괴로움을 당하다 보니 온갖 돌림병이 불쑥불쑥 일었다. 특히 어린애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어린것을 먼저보내고 울다 지쳐 넋이 빠진 어미들도 돌림병에 걸려 쓰러지곤 하였다. 일단 병에 걸려죽으면 가족조차 손대기를 꺼렸다. 그 시신들은 이제 깨끗이 염을 해 묻어야 할 혈육이 아니라 병독에 전 고깃덩이에 불과했다.
"한 세상 어물쩍 사는 놈들은 시에 담을 필요가 없지. 그깟 인간들은 이 세상에 차고넘치니까. 그러나 극단은 달라. 원대하기로는 진시황이 있고 제갈공명이 있어. 즉흥으로는 이백을 따를 자가 없고 끈기로는 사마천이 첫손가락일 게야. 그들처럼 살기는 힘들겠지만 그들이 서고자 했던 곳이 어디인가를 짐작할 수는 있다는 뜻이야. 나는 늘 그런 극단의 사람들을 그리워했네. 할 수만 있다면 새로운 극단에 나 스스로를 서고싶었다. 서얼 출신인 내가 그들을 닮을 수는 없겠지. 한데 전쟁이 터지고 화적 떼에 끼면서 나는 새로운 극단을 찾았다네. 인간이 얼마나자기 자신을 사랑하는가를 목격한 것이야. 인간이란 결국 자기애에갇힌 짐승일 따름이지. 시든, 문명이든, 가족이든, 국가든 이 모두는 결국 자기애의 정당화에 다름 아니라네. 전쟁이 이 모든 이치를 명확하게 해주었네. 각자의 자기애를 조절하고 중화시키던 여러수단들이 왜놈들 조통 앞에일순간에 사라져 버렸지. 그때부터 모든 말과 행동이 순수해졌네. 아무런 도덕적 제재나 죄의식이 없는 가운데 평범한 인간들이 자기애의 진수를 보여주기시작한 거야.
이백이 서역에서 찾아 헤맸던 인간이 바로 이곳에 있었어. 인간의 갈비뼈를 빨고 내장을 게걸스럽게 꺼내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인간들, 삶의 활력을 찾는 인간들! 완전히 다른 인간이지. 결코전쟁 전으로되돌아갈 수 없는 인간이야. 한계를 넘어서 저쪽으로 가 버린 인간이지. 나는 비로소 다시 시 쓸 생각을 한다네. 지금까지의 내 시가 서책에 있은 인간들을 향한 그리움이자 갈망이었다면 지금부터는 내가 서 있는 이곳에 관한 시를 쓰겠네. 알겠는가? ......알 턱이 없지. 자네가 어찌 그 끔찍하고 아름다운 나날을 이해하리."
이달의 몸이 완전히 뒤로 넘어갔다. 마룻바닥에 사지를 뻗고 누워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기 시작했다. 스승은 야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스승이 당나라 시들을 가르치면서 입버릇처럼 되뇌던 말이 떠올랐다.
"시는 몸으로 쓰는 것이다. 몸이 채워지지 않고는 아무런 말도 만들 수 없으니 비유를 버려라. 직접 부딪쳐 익힌 것이 아니라면 비유는 한갓 뜬구름이거나 빛 좋은 개살구이니라."
아침부터 조정에는 활기가 넘쳤다. 남쪽 바다에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는 원균, 이순신, 이억기가보낸 선단이 갓밝이 즈음 의주에 닿은 것이다. 석 달은 족히 지내고도 남을 곡물과의복이 배마다 가득 실려 있었다. 감선철악(나라에 큰 화가 있을 때 임금이 근신하는 뜻으로 수라상의 가짓수를 줄이고 음악과 가무를 중지하는 일)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선조 역시 크게 기뻐하며 선단을 이끌고 온 장수를 만나고자 했다.
칠월 중순, 요동 부총병 조승훈이 이끄는 명나라 기병 4,000명이 평양성을 공격하다가 완패한 후로는 백성들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좌의정 윤두수의 죽 찢어진 눈매를 떠올렸다.
류성룡보다 열 살이나 연상인 윤두수는 타고난 체력과 담력을 바탕으로 흔들리는 조정 중론을 이끌고 있었다. 의주까지 물러난 선조 마음을 돌래 내부를 막은 데는 윤두수 공이 컸다.
퇴계와 율곡이 떠난 후 류성룡과 윤두수는 각각 동인과 서인의 중심이 되었다. 십여 년이 넘도록 정적으로 지내 온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의식했고 때로는 상대 얼굴에 상처를 입혔다. 윤두수의 목청이 올라가면 류성룡의 발걸음이 기민해졌고, 류성룡의 문장이 빛을 발하면 윤두수의 호방함이 조정을 흔들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대결은 류성룡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는 듯했다. 건저 문제에 연루되어 정철, 윤근수와 함께 귀양을 떠난 윤두수는 유배지인 회령에서 가슴앓이를 심하게 했다. 류성룡이 회령으로약첩을 지어 보낸 것은 평생 숙적에 대한 마지막 예우였다.
그러나 윤두수는 거뜬히 병을 이겨 냈을 뿐만 아니라 왜군이 충주를 지나치자마자 천점(왕의 낙점)을 받고 화려하게 조정으로 복귀했다. 상황은 반전되어 영의정까지 올라갔던 류성룡의 면직되었고 윤두수는 단숨에 좌의정이 되어 조정을 손아귀에 틀어쥐었다. 의주까지 몽진 길을 안에서 지휘한 것도 윤두수였다. 류성룡은 아무 관직도 받지 못한 채 몽진 대열에 끼었다.
그러나 삶의 초라함과 비참함을 맛보기 직전, 윤두수는 뜻밖에도 류성룡을 다시 조정으로 부르도록 임금을 설득했다. 류성룡을 내치자는 동생 윤근수를 윤두수는 이렇게 꾸짖었다.
"조선이 온전하게 나라 꼴을 갖추어야 동인도 있고 서인도 있는 법이다. 이 나라엔 서애만 한 인물도 드물다. 죽은 정승이 산 개만 못하다는 말이 있지만, 서애를 버리는 것은 군사 만 명을 잃는 것이야."
드디어 선조는 요동으로 들어가는 것을 잠시 유보하기로 어심을 돌렸다.
왜군이 영변까지 올라오면 그땐 지체없이 압록강을 건너겠다."
"압록강을 건너시면 아니 되옵니다."
"영변에서 의주는 지척이다. 앉아서 죽으란 소린가?"
"아니옵니다. 영변까지 왜적이 올라오면 그땐 군선을 타고 전라도로 내려가셔야 하옵니다. 원균과 이순신이 완전히 해로를 장악했사오니 아무런 어려움없이 전라도에 닿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류성룡은 가슴이 뜨끔했다. 그가 이순신으로부터 수군의 움직임을 은밀히 전해 듣는 것처럼, 윤두수도 원균과 연통을 취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일단 내부를 막은 것은 큰 수확이라고 여겼던지 류성룡에게 인사를 건넸다.
"고맙소."
"고마운 건 오히려 접니다. 좌상의 용기에 탄복했소이다."
"앞으로도 서로 힘을 합치도록 합시다."
"이르다뿐입니까."
그러나 그 후로 두 사람은 뜻을 맞출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윤두수는 의주에서 임금을 호종했고 류성룡은 어명을 맏들어 평안도와 함경도 일대를 돌면서 군량미를 모았다. 안주는 평양에서 의주로 가는 길목에 있기에 물물교환이 성행하여 곡물을 구하기 쉬웠다.
'오늘따라 윤두수가 못내 그립구나. 그와 나는 왜 동서로 나뉘어 아등바등 다퉜을까. 그의 용기에 내 균형 감각을 합쳤더라면 이렇게 맥없이 왜군에게 한양을 내주지는 않았으리라.
불전이굴인지병 不战而屈人之兵
선지선자야 善之善者也
전쟁(戰爭)을 하지 않고
적(敵)을 굴복시키는 병법(兵法)이
최선의 이상(理想;善)인 것이다. (제갈공명과 위나라 사마의의 城 전투)
심유경은 웃음을 뚝 멈추고 정색을 하며 물었다.
"나는 조선과 왜와 여진이 모두 힘을 합쳐 명나라를 치지나 않을까 걱정했소이다."
류성룡이 깜짝 놀라며 말까지 더듬었다.
"장군께서는 안록산과 사사명이 난을 일으켰을 때 회흘과 토번에 원병을 청했던 일을 아시겠지요? 난이 평전된 후 당나라가 두 오랑캐에게 얼마나 고생을 겪었습니까? 조선은 결코 그 같은 일을 감내하지 않을 겁니다. 안심하십시오."
"미안하이. 내게도 비방이 없네그려. 돌리병이 어전까지 침범치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시게."
류성룡은 좋은 말로 허준을 위로했다.
"대감! 청이 하나 있사옵니다."
"말해 보시게."
"팔도에서 수많은 백성이 돌림병으로 죽어 간다고 들었사옵니다. 해로운 병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사옵니다. 소인은 그 병마들과 직접 부딪치고 싶습니다. 원컨대 소인이 함경도와 강원도로 갈 수 있도록 전하께 아뢰어 주시옵소서."
허준은 신성군 병을 고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었다. 더 이상 몽진 대열에 끼어 탁상공론을 할 것이 아니라 돌림병 환자들과 직접 부딪쳐 병마를 물리치고 싶으리라.
어쨌든 고니시의 군대를 평양에 주저앉힌 것은 심유경의 공이다. 그의 입찬소리처럼 왜군은 50일 동안이나 평양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흘 안에 압록강 물을 마시겠다느니, 분조를 이끌고 있는 세자를 볼모로 보내라느니 하는 오만한 요구가 있었지만 위협에 그쳤을 뿐이다.
이여송이 이끄는 명군 3만 명이 압록강을 건넌 것이 작년 십이월 이십오일이었다. 선발대로 건너와 있던 군사들과 함친 구원병은 4만 명이 헐씬 넘었고, 여기에 평안도 관군과 의병 15,000명을 더하니 조명 연합군은 6만 명에 육박했다.
'이여송, 이여송, 이여송이라!'
류성룡은 이여송의 이름을 몇 번이나 되푸이해서 읊조렸다. 이여송의 부모가 조선인이라는 소문이 평안도 일대에 좌악 퍼졌다. 이산 독로강 부근에 살다가 살인죄를 저질러 요동으로 달아났다는 것이다. 이여송 형제들은 장수의 자질이 특출나서 여송은 물론 아우 여백, 여장, 여매, 여오, 여정이 모두 벼슬이 총병에 이르렀다. 백성들은 이여송이 조선인 후손이므로 더욱 힘써 조선을 도우리라고 기대했다.
류성룡은 문득 좌의정 윤두수가 작년 시월에 보낸 서찰 중 한 구절을 떠올렸다.
...우리는 피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오.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칼과 활에 맞아서 죽어 간 백성들 저주가 들리지 않소? 이 전쟁이 끝나면, 그 원혼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제일 먼저 우리 목을 바쳐야 할 것이오.
죄를 따지자면 임란 직전 귀양을 떠났던 윤두수보다 좌의정이었던 류성룡의 죄가 백배는 더하리라. 한양을 버렸으며 평양을 지키지 못한 것 역시 그가 책임질 몫이다.
'그래도 윤두수가 있기에 전하께서 성심을 바로잡으시는 것이다. 작년 십일월 오일 신성군이 기어이 세상을 버렸을 때도 윤두수가 앞장서서 전하의 슬픔을 위로하고 나랏일을 보살피도록 주청했지. 내의원 허준에게죄가 돌아가지 않은 것도, 전하께서 요동행을 고집하지 않은 것도 모두 그이가 조정 중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이와 같아야 한다. 내 나이 벌써 쉰둘, 아쉬울 것이 무엇이겠는가.'
"변방에서 자식을 잃은 임금은 하늘을 우러러 큰 울음을 터뜨리고, 나약한 신하는 이웃 장수의 도움으로 생명을 부지하는구나. 밤은 깊고 길은 멀고 강물은 얼어붙고 백성들은 죽어가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으리오. 모든 것은 나라를 망친 간신들 탓이라네. 내 탓이라네."
"왜놈 아아들이 다 어디로 갔슴매?"
"간밤에 다 도망갔지비. 대동강을 난 소문들 있지 않소? 장경문과 대동문으로 빠지나가 꽁공 언 대동강을 건넜습네다."
왜군이 얼어붙은 대동강을 건너올 것을 염려하여 대장 이일이 군사들을 미리 대동강가에 매복시켜 두었었다. 그런데 전투 한 번 벌이지 않고 왜군들은 무사히 빠져나갔다.
'심어 두었던 복병들을 누가 미리 거두어들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콰르릉 쾅!
갑자기 대포 소리가 진동하더니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왜군들이 모조리 달아난 평양성을 향해 명군이 대포를 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저 대포에 맞을 사람은 성안에 있는 조선 백성뿐이다. 성 밖의 조명 연합군은 왜군이 물러간 사실을 모르는 것인가? 서둘러야 한다. 급히 함구문으로가서 왜군이 철수했음을 알려야 한다.'
'저들은 지금 수급을 모으고 있다. 조선인의 수급을.'
그들은 문을 굳게 닫고 아우성치는 백성들을 노루 몰듯 몰고 다니며 목을 베었다. 끝없는 비명과 울부짖음과 피 흘림. 류용주는 손바닥으로 양 볼을 세차게 때렸다.
'제발 꿈이기를. 이 모든 것이 한순간의 악몽이기를!'
이여백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절뚝거리며 가마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 병이 위중하여 군대를 움직일 수 없다며 퇴각 명령을 내린 다음 위호를 받으며 황급히 돌아가 버렸다. 군령이떨어지자마자 강을 건너기 위해 나루에 늘어섰던 명군이 순식간에 어선들을 장악했다. 그러고는 강 건너편에 내렸던 군사들을 다시 실어 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처음부터 명군은 강을 건널 마음이 없었던 줄을 그제야 알았다.
"송 경략(송응창)의 공문이 도착했소이다. 왜군을 추격하지 말라는 엄명이오. 나도 대감과 함께 왜군을 공격하고 싶으나 이 일은 내 손을 벗어난 듯하오. 물러가시오.'
조선군은 길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자정 무렵부터 도둑고양이처럼 이동을 시작했다. 명군 눈을 피해 움직이는 것이므로 더욱 입조심을 했다. 고언백이 이끄는 조선군은 인시(새벽3시)가다 되어 노량 나루에 무사히 도착했다. 고언백은 먼저 십여 명의 척후를 내려 보냈다.
그때 갑자기 주위가 환해지더니 칼을 빼어 든 명군들이 나타나서 척후의 목을 베어 버렸다. 순식간에 머리 잘린 시체들이 나뒹굴었다. 이여송이 이런 일을 짐작하고 군사들을 잠복시켰던 것이다. 고언백은 한양으로 철군할 수밖에 없었다.
노량 나루 도강이 실패했다는 보고를 받은 류성룡은 다른 나루를 찾아 보도록 했다. 그러나 이미 명군이 도강이 가능한 나루를 모두 점령한 후였다. 처음부터 조선군의 동정을 은밀히 살폈음이 분명했다.
그 밤부터 류성룡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짧게 보면 불의와 부덕이 앞서 가는 것 같지만 넓고 길게 보면 세상만사가 정의와 덕으로 귀속된다오. 공자께서 춘추를 지으신 것도 역사가 대의에 있음을 드러내기 위함이지 않소? 왕조는 창업, 수성, 경장, 멸망의 길을 가지만 역사는 오로지 대의에만 속한다는 걸 명심하시구려. 지금의 혼란에 마음 아파 하지 말고 오직 천리의 뜻을 좇아 대도를 찾도록 하시오. 이 모든 더럽고 추악한 세상일을 기억하였다가 필주를 행사하는 것이 어떻겠소? 서애라면 대의에 합당한 글을 남길 수 있을 것이오. 부디 사마천의 궁핍했던 삶을 기억하오. 공자께서도 평생을 멸시와 천대 속에서 지내지 않으셨소? 서애! 역사의 자리에 서시오. 사사로운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역사의 장강에 몸을 담그시구려. 그곳이 그대와 내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자리요. 힘을 내시오. 서애!"
5권 終 21.04.20, 13:06
6권 집자 시작, 21. 05. 05 18:37
선조는 눈을 들어 뒤뜰을 쓰윽 한 번 훑었다. 가지가 부러진 노간주나무와 모로 쓰러져 뿌리를드러낸 갈참나무가 눈에 띄었다. 그 아래 피어있는 견우화(나팔꽃)도 붉은 잎이 거의 시들었다.
'황량하도다. 생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구나. 휘휘 바람이 불 때마다 숨을 헐떡이며 마지막 생명줄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구나. 아! 내 백성도 이아 같으리.'
"진주성은 어찌 되었는가?"
윤환시가 시선을 내리깔고 머뭇거렸다. 선조의 얼굴에 노여움이 서렸다.
"빨리 고하지 못할까?"
"진주에 급파되었던 화, 뇌, 운이 오늘 새벽에 도착하였사옵니다. 보고를 듣자니 3만 명이 넘는 왜군이 진주성을 포위한 채 밤낮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하옵니다. 지난달 스무이튿날부터 전투가 시작되었사온데 경상 우병사 최경회, 충청 병사 황진, 김해 부사 이종인, 사천 현감 김준민, 남포 현령 송제, 진주 목사 서예원, 진해 현령 조경형......"
"그만! 과인이 어디 장수들의 이름을 불러 달라고 했느냐?"
"의병장으로는 창의사 김천일, 복수장 고종후, 우의병부장 고득뢰, 좌의병부장 장윤......"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모조리 죽였다 하옵니다."
"이...... 개만도 못한 놈들!"
선조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조명 연합군이 부산포까지 왜군을 밀어붙이고 수군이 배후를 치면 전쟁이 끝나리라고기대했다. 그러나 왜군은 진주성을 함락시킬 만큼 아직 건재하다. 백성과 장졸을 몰살시킨 것은 힘을 과시하기위함이리라.
"장수들 간에 이견이 있었다 하옵니다. 도체찰사 권율은 진주성을 비우고 일단 후퇴하였다가 왜군과 맞서기를 바랐는데 경상 우병사 최경회와 충청 병사 황진이 강력하게 반대했던 듯하옵니다. 왜군은 이 틈을 타서 진주성을 포위하고 원병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길목을 차단한 후 성을 함락시켰사옵니다."
특히 도체찰사 권율과 전라 좌수사 이순신은 아직 전면전을 벌일 때가 아니라는 장계를 어명을 어기면서까지 올렸다. 조목조목 따지고 드는 그 장계들을 읽을 때면 가슴이 답답해 왔다.
평양이 탈환되자마자 원조와 분조가 곧바로 합쳤지만, 일월 이십일 정주에서 상봉한 부자는 따뜻한 덕담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마음만 먹었다면 함께 자리를 마련할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작년까지 어심은 신성군에게 가 있었고 신성군이 죽은 다음에는 슬픔을 달래느라 광해군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세자는 삼도 수군 통제사라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보느냐?"
벌써 넉 달이 넘도록 삼도 수사들을 총지휘할 새 벼슬자리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류성룡과 이덕형, 정탁 등은 이순신을 추천했고 윤두수와 정철, 이일 등은 원균을 지지했다.
"수군은 연합 함대로써 왜적과 맞서 왔사옵니다. 그 함대에 으뜸 장수를 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네 생각도비변사 중론과 같구나. 그렇다면 누가 그 자리에 올라야 하겠느냐?"
"......"
일찍이 신립, 이일을 도와 함경도 육진에서 공을 세웠고 경상도가 초토화되었을 때도 경상 우도 바다를 떠나지 않은 맹장이다. 그들 두 사람이 뜻을 합치지 못하고 심하게 쟁공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조명 연합군이 평양과 한양을 수복한 것도 군량미와 무기 그리고 군졸들이 전라도에서 끊임없이 보충된 덕에 가능했사옵니다. 전라도가 조선 팔도를 먹여 살렸다는 속언도 있지 않사옵니까. 전라 좌수영과 경상 우수영을 살피시옵소서. 경상 우수영은 군량미가 부족해서 조정에 도움을 청하고 있사옵니다. 이것이 물론 원균보다 이순신이 더 낫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사옵니다. 경상 우수영 군선들이 군량미를 모을 틈도 없이 인접한 왜선들과 맞서 싸웠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겠지요. 하나 경상도 군사들은 굶주리고 전라도 군사들은 허기를 면하고 있는 것만은 엄연한 사실이옵니다. 그러므로 소자는 왜군을 몰아낼 때까지는 전라도를 중심에 둘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옵니다."
광해군은 다소곳이 뒤따라 일어나서 마당까지 선조를 배웅했다. 마당 한가운데 이르렀을 때 선조가 갑자기 휙 돌아섰다. 입김이 닿을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뚫어져라 광해군 얼굴을 살핀 다음 낮고 굵은 어투로 다짐하듯 말했다.
"자고로 무武는 나라의 화근이다. 장수가 신망을 얻으면 나라를 어지럽히게 되느니라. 장수에게 전권을 주지 않는 것이 최선일 터이나, 어쩔 수 없는 경우를 당하면 군왕은 쉬지 않고 장수를 감찰해야 한다. 알겠는가? 세자는 과인 말을 가슴에 꼭 새기도록 하라."
박초희는 맨 끝으로 다섯 명을 이끌고 산에 올랐다. 하늘빛 용담꽃들이 계곡마다 가득 피어 있었다. 오늘은 오직 황정黃精만 찾을 참이었다.
원균은 장수들이 기다리는 군막으로 건너갔다. 우수영 장수들이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그가 상석에 앉자마자기효근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밤부터 한산도에서 잔치가 열린다고 하오. 삼도 장수들은 모두 참석하라는 통제사 전갈이 왔소이다."
"...이 수사가 갖지 못한 미덕이 원 수사에게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원 수사에게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는 장점들이 이 수사에게 더 많이 있다오."
경쾌선이 한산도로 접근하자 협선 두 척이 재빨리 다가왔다. 이물에 서 있던 나대용이 환하게 웃으며 깃발을 흔들었고 이영남도 왼손을 들어 화답했다. 흉측하게 부어오른 눈두덩으로 통제사를 만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한산도에는 이미 많은 장수들이 모여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특별히 안주로 옥잠화 맨드라미 부침을 곁들인 대육(말이나 돼지 등을 통째로 찌거나 삶아서 만든 요리)이 나왔고, 뜰에서는 웃통을 벗은 군졸들이 한창 갑을창 시범을 하고 있었다.
"부산포까지 후퇴한 왜군은 경상도 해안 곳곳에 성을 쌓으며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부산포에 웅거한 적을 한꺼번에 궤멸할 힘이 없습니다. 삼도 수군도 장기전에 대비하여몇 가지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선 저 언덕 위에 삼도 장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군중회의를 할 수 있도록 운주당運籌堂을 지을 겁니다. 언제든지 전황을 숙지ㅏ고 전략을 짜기 위해 필요한 곳이지요. 또한 둔전을 광범위하게 경작할 계획입니다. 이곳에서 무과武科를 치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작년 부산포 앞바다 싸움에서 확인된 왜선들 규모는 470척을 헤아리오. 왜 수군이 어떻게 움직이든 우리가 그자들을 바다에서 완전히 제압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군선 250척 정도는 필요하오."
그동안 꾸준히 만들고 지은 군선이 120척 남짓인데 그 두 배에 해당하는 군선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도원수와 의논하여 수군에 속한 고을 장정이 결코 육군으로차출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소."
"너무 늦게까지 즐긴 듯합니다."
이순신이 가볍게 웃어 보였다.
"조선 수군은 오랫동안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왜선과 싸웠네. 하룻밤만이라도 그 수고를 풀어 주어야지. 더 큰 승리를 위해서 말이야."
두사람은 흰털귀룽나무가 유난히 많은 언덕 위에 나란히 서서 넓게 펼쳐진 달구리(이른 새벽 닭이 울 때) 바다를 바라보았다. 공기 중에 흩날리는 차가운 물방울이 얼굴을 훑고 지나쳤으며 초겨울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장군! 원 수사와 화해하십시오."
이순신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화해라......?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나와 원 수사를 놓고 흥미진진하게 떠들겠지. 하나 나랑 원 수사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쁜 사이가 아냐.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우리 두 사람이 공을 다투다가 틀어진 사이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진실은 그게 아닐세. 우리 둘은 이 전쟁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고, 사람을 이끄는 방식이 달라. 나도원 수사도 그 사실을 잘 알고있네. 내가 그의 마음을 알듯이, 그이도내 마음을 알 거야. 그리고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내게는 원 수사가 꼭 필요하다네. 누가 그만큼 용맹하고, 누가 그처럼 휘하 장졸들을 단숨에 사로납을 수 있겠는가."
그가 지닌 막막한 절망을, 거기서 뿜어 나오는 삶의 쓰라림을, 고비를 넘은 자의 여유로움을 더듬을 수 있었다. 그리고문득 몸속에서 무수한 빛망울들이 자라나는 느낌을 받았다. 험난한 봉우리를 넘은 거인의 크고 넓고 따뜻한 손이 매서운 비바람으로부터 그 빛 망울들을 지켜 주고 있었다.
고니시는 세스페데스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저는 조선 정벌군을 이끌고 있는 처지입니다. 무익한 피를 흘리는 것을 원치 않으나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이 년 동안 조선에서 흘린 피의 대가는 거두어야지요. 최소한 조선 땅 절반만이라도차지하지 않고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곳은 일본에 있는 주님의 자녀들이 마음껏 주님 가르치신 길을 따르는 땅이 될 수 있습니다."
허성은 『학산초담』의 내용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파근파근한 걸음을 멈추고 손이 가는 대로 서책을 펼쳤다. 손곡 이달이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가 눈에 쏙 들어왔다.
도망(悼亡) 죽은 아내를 애도하며
羅想香盡鏡生塵 (나위향진경생진) 깁 방장엔 향(香)내 사라지고 거울엔 먼지 가득한데
門掩桃花寂寞春 (문엄도화적막춘) 문은 닫히고 복사꽃 피어나 봄은 더욱 쓸쓸하구나
依舊小樓明月在 (의구소루명월재) 작은 누각(樓閣)엔 옛날처럼 달이 밝은데
不知誰是捲簾人 (부지수시권렴인) 누가 있어 저 주렴(珠簾) 걷을 것인고
秋草前朝寺(가을 풀 우거진 지난 왕조 고려의 절)
殘碑學士文(비석엔 당시 선비들의 글귀만 남았구나)
千年有流水(천년이 지나도록 물은 계속 흘러가고)
落日見歸雲(지는 해에 돌아가는 구름을 본다)
조선시대 중기 문인 백광훈(白光勳 1537~1582)이 지은 홍경사(弘慶寺)라는 시 한 편이다. 백광훈은 이달(李達), 최경창(崔慶昌) 등과 함께 삼당파(三唐派) 시인으로 불렸다. 백광훈은 이 시에서 고려시대 융성하게 창건됐다가 폐허가 된 홍경사 옛 터의 모습을 통해 유한한 인간사의 무상함을 표현하고 있다.
충남 천안시 성환읍 대흥리 319-8번지에 소재하고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호 지정됐다.
이순신이 광채가 이는 듯한 눈으로정경달을 바라보았다.
"반곡! 옳은 지적이오. 내가 가장 고심하는 부분을 꼭 집어내었소. 현재 조선 수군은 17,000명에가깝소. 한 사람마다 아침저녁으로 다섯 홉씩 나눠준다면 하루에 적어도 백 섬 넘는 양식이 필요하고, 한 달이면 3,400여 섬이 사라지오. 경상 우도 고을에선 나올 군량미가 전혀 없고, 전라도에 열 개 남짓한 고을들도 피란민을 구제할 곡물을 제하고 나면 군량미는 사실상 매우 적다오. 이리저리 아무리 고심을 해도 오월 중순이면 군량미가 다 떨어지오. 참으로 큰일이 아닐 수 없소. 아무리 배가 많아도 격군이 없으면 배를 움직일 수 없소. 격군이 있다 해도 군량미가 없는데 어찌 팔뚝 힘을 쓸 수 있겠소. 아, 장차 이 일을 어찌해야 하겠소?"
"그렇게 하리다. 어려움을 줄여서 아뢰라는 충고는 받았지만 조선 수군이 겪는 힘겨움을 있는 그대로 아뢰라는 청은 반곡 그대가 처음이오. 내 곁에 오랫동안 머물러 주오. 둔전과 곡물은 물론 통제영 안팎 살림을 투명하게 살펴주오. 부족한 부분,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있다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지적하기 바라오. 특별히 시간을 내어 전라도 관과 포를 모두 둘러보고 어려움을 살펴주오."
갑오년 삼월 십오일 아침.
충청도 홍주에 자리를 잡은 분조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분주하게 움직였다. 분 병조 판서 이항복은 벌써 사흘 밤을 꼬박 새워 포병수들을 훈련시킬 계획을 짜고 있었다.
이여송
(2021.05.06, 14:30)에 있는 장수 담종인은 왜군 진영을 자유롭게 오걌으며 삼도수군 통제사 이순신에게 왜선을 공격하지 말라는 내용의 '금토왜적사패문'까지 보냈다. 이 와중에도 심유경은 계속 부산포 왜군 진영과 명나라 조정을 드나들었다.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러더니 이여송은 작년에 명나라로 돌아가고 새해 들어 경략마저 송응창에서고양겸으로 바뀌었다. 명나라와 소통이 더더욱 단절되는 느낌이었다.
"세자 저하! 지금 조선은 명나라가 저울질을 못하도록 강경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사옵니다. 그래야만 명나라가 왜와 협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사옵고 조선 조정이 말하는 바에도 귀를 기울일 것이옵니다."
이영남은 왼손을 돌려 허리춤에 감춘 도원수권율이 준 밀서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순신이 세 녹명관(과거 시험을 관장하는 관리) 중에서 이영남을 권율에게 보낸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한산도 별시 준비 현황을 보고하면서 따로 밀서를 교환할 필요가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수군 장수 선발은 이 통제사에게 전권을 주겠다. 다만 너무 엄격하게 시험을 봐서 급제자를 적게 내는 일이 없도록 유념하라고 전하라."
그는 하삼도 뱃길은 물론이고 해류와 해저의 깊이, 철에 따라 바뀌는 어류까지도 손바닥 보듯이 알고 있었다. 출정에 앞서 장수들은 어영담 설명을 통해 전투를 벌일 바다를 속속들이 이해했고, 그만큼 자신감에 넘쳐 왜선과 맞설 수 있었다. 어영담은 걸쭉한 농담과 구수한 이야기로 장수들 마음까지 풀어 주었다.
장졸들은 이순신에게서 치밀함을, 원균에게서 용맹스러움을, 이억기에게서 우직함을, 권준에게서 총명함을, 신호에게서 엄격함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어영담에게서 여유와 넉넉함을 배웠던 것이다. 어영담을 잃는 것은 삼도 수군으로서는 두 눈이 뽑히는 것과도 같았다.
이순신은 문방사우를 가지런하게 놓은 후 허리를 곧게 펴고 눈을 감았다. 이영남이 먹을 다 갈자 이순신이 중필을 들어 먹을 듬뿍 바른 후 단숨에 써 내려갔다.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도다.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이도다.
사월 육일과 칠일에 있었던 활쏘기는 철전과 편전을 한 순씩 쏘았다. 사월 팔일에는 판옥선에서 뛰어내리기와 오랫동안 바다에서 버티는 시험이 있었다. 문답 시험은 사월 구일 오전부터 운주당 앞뜰에서 시작되었다.
정오 무렵,
합격자 100명이 가려졌다.
"이번 별시 장원은 거제 사람 강덕수!"
"권 도원수가 어떤 사람인지는 네가 더 잘 알고 있질 않느냐? 도원수는 결코 수군을 위해 술을 내릴 위인이 아니다. 제 장졸들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좀생원이지. 진주성이 무너질 때도 뒷짐만 지고 있었느니라. 그렇다면 왜 술을 내렸겠는가? 왜군을 치지 않으려고 이 통제사와 합치려는 수작이 아닌가. 나 원균을 막으려는 음모야. 제깟 놈들이 아무리 그래도 나는 부산포를 친다. 나는 꼭 부산포에서 왜놈들 피 맛을 봐야겠다. 도원수 아니라 그 누구라도 내 뜻을꺽지 못해."
"장군! 차라리 소장 목을 베십시오. 하나 먼저 한 말씀난 들으십시오. 이통제사 병환이 중하십니다. 오늘 오후에 조방장 여영담이 돌림병으로 죽었사온데 그직후 통제사께서 혼절하셨습니다. 급히 통제영으로 가셔야만 합니다."
멍나라와 왜국의 강화 회담을 지켜보자던 방침이 바뀐 것은 지난 팔월, 홍주에 있던 분조가 한양으로 돌아가면서부터였다. 도원수권율을 지지하던 광해군이 상경한 후 하삼도 군권은 도체찰사 윤두수 수중으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윤두수는 원균에게 밀서를 보내 결전을 준비시켰고, 김덕령 곽재우 등 의병장에게 수군과 합동으로 거제도에 상륙할 채비를 갖추라고 일렀다. 드디어 구월 초 도체찰사 책임 아래 왜선을 격퇴하라는 어명이 내려왔다.
시월 일일과 삼일, 조선 수군은 계속 왜군을 바다로 끌어내려 노력했다.그러나 왜군은 겁을 내어 해안에 배를 대 놓고 나아올줄을 몰랐다. 칠천량에서 밤을 지낸 이순신은 시월 사일 새벽 이억기, 원균, 충청 수사 이순신과 의병으로 합류한 호익장군 김덕령, 홍의 장군 곽재우를 불러 모았다.
김덕령은 스물여덟 살로 동안이었지만 키가 구 척에 힘이 장사였다. 분조에 가서 광해군으로부터 직접 호익 장군이란 군호까지 받은 그가 이번 전투에 참여하는 의병의 주장이었다. 부장으로 참가한 곽재우는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사흘 밤낮 쉬지 않고 말을 달리는 체력을 지녔다. 키는 크지 않았으나 짙은 눈썹 아래 안광이 남달리 형형했다. 이순신이 먼저 김덕령과 곽재우를 보고 말했다.
"세 차례나 장문포에 있는 왜군을 공격했으나 물러나 숨을 뿐 싸우려고 하지 않소. 오늘은 상륙해서 숨어 있는 적을 섬멸합시다. 군선들이 좀 더 해안 가까이 접근하여 통통을 쏘겠으니 두 분은 의병들을 거느리고 상륙하오."
"이상하오이다, 장군! 아무 저항도 없습니다."
기효근과 우치적이 꺼림칙한 표정으로 말했으나 원균은 그 염려를 간단히 무시했다.
"겁먹은 모양이지. 자, 우리도 상륙한다. 상륙!"
갑옷과 투구를 고쳐 쓴 원균이 배에서 내렸고 첩개와 활을 어깨에 두른 궁수들이 우르르 뒤를 따랐다. 원균이이끄는 궁수들 500여 명이 솔숲으로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장문포 왼쪽 언덕에서부터 총성이 들려왔다.
바로 그순간 오른쪽 언덕에서감여를 뒤흔드는 대포 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왼쪽에서 조통으로 시선을 끈 후 오른쪽에 숨겨 두었던 대포를 발사한 것이다. 순식간에 솔숲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조선 장졸들이 측면에서 날아오는 포탄을 피해서 이리저리 몸을 놀리는 사이, 칼을 빼어 든 왜병들이 수풀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활로 맞서기에는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왜병들이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자 의병과 궁수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이순신은 칠천량으로 물러나라는 명령을 내렸다. 힘껏 싸웠으니 매복한 왜군을 섬멸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며칠 더 장문포를 살피던 수군은 시월 팔일 한산도로 귀영했다. 다른 수군에 비해 장문포에서 큰 전공을 세우고 싶었던 원균과 경상 우수군은 더욱 지치고 힘이 들어 보였다.
조정이 환도한 직후에는 불타 버린 궁궐을 대신하여 월산대군과 양천 도정 이성의 옛집을 중심으로 선조가 묵을 행궁을 꾸미느라 바빴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대간들은 별 성과 없이 끝난 장문포 전투 책임을 물어 윤두수를 파직하라는 상소를 지난 이십일일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올리고 있었다.
"...한데 이번에 원균 장계를 보니, 원균이 선봉에서 싸웠고 오히려 이순신이 미적거린 듯하다. 도대체 어느 게 실상인가? 만약 원균 장계대로 이순신이 이렇게 행동했다면 어명을 어긴 것이다. 어명을 무시하는 장수는 결단코 살려 둘 수 없다."
류성룡은 이마에서부터 팥죽 땀이 흘러내렸다.
환도를 마친 조정은 동인과 서인의 갈등에더하여 동인이 다시 남북으로 갈라졌다. 이산해를 중심므로뭉친 북인은 서인을 조정에서 몰아낸 후 당장 부산포를 치자는 입장이었고, 류성룡을 중심으로 모인 남인을 서인과 협력하고 국정을 안정시킨 다음 왜와 명나라의 회담을 천천히 살피면서 앞날을 계획하자는 입장이었다.
류성룡은 고개를 들고 광해군을 쳐다보며 간곡하게 아뢰었다.
"저, 저하! 도원수와 통제사는 역심을 품을 인물이 아니옵니다."
"알아요. 나도 두 사람을 믿소. 하나 아바마마께서는 그 누구도 믿지 않으시오. 특히 전라도를 관장하는 장수들을 늘 의심하고 계시다오. 정여립 잔당이 남아 있다고 믿으시는 게지. 그리고 권율과 이순신이 영상 대감과 서찰을 은밀히 주고받는다는 사실도 감지하셨을 것이오."
분조를 따라 홍주까지 다녀온 이항복도 수군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광해군이 가볍게 웃어넘겼다.
"... 이순신도 사람인 이상 실수를 범하겠지. 이순신이 자그마한 실수라도 하는 날이 곧 그 제삿날이 될 것이오. 난 그걸 염려하고 있습니다."
류성룡도 광해군과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수군 통제사 자리가 바뀐다면 조선 수군 지휘 체계는 크게 흔들린다. 균율과 원균 사이는 이순신과 원균 만큼이나 나쁘지 않은가. 원균이 통제사가 되면 수군과 육군은 견원지간이 될 것이다.
을미년 1595년 오월 일일 아침.
비바람이 몰아쳤다. 한꺼번에 꽃을 피운 애기양지꽃, 털딱지꽃, 좁은입딱지꽃 잎들이 떨어지거나 뿌리부터 뽑히기도 했다.
노자의 인간됨을 묻는 제자들에게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달리는 짐승은 그물로 잡을 수 있으며,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시로 낚을 수 있고, 날아가는 새는 화살로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은 구름과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나는 용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가 없구나. 오늘 내가 노자를 만나보니 그는 마치 용과 같은 사람이었다."
'용과 같은 사람!'
서책에서 눈을 떼고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새처럼 물고기처럼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삶도 있으리라.
'공자는 결코 노자의 삶을 따를 수 없고, 새나 물고기는 용의 승천무를 배울 수 없다. 청운의 길과 백운의 길이 있다지만 나의 생은 과연 어떤 빛깔일까.'
이순신이 원균에게 위로를 건넸다.
"원 장군! 정삼품 경상 우도 수군 절도사에서 종이품 충청도 병마 절도사로 옮기는 것이니 승진을 경하하오."
원균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울분을 토했다.
"통제사! 이게 끝이라고 착각하진 마시오. 나는 돌아오겠소. 반드시 돌아오고야 말겠소."
왜군과 싸우는 것보다도, 원균과 다투는 것보다도 더욱 힘든 것은 군왕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군왕과 장수가 서로 대립하면 십중팔구 장수 목이 달아난다. 어심으로부터 멀어져 화를 당하기는 문반과 무반의 구별이 없구나. 일찍이 정암 선생도 이 나라를 더욱 강건하고 바르게 만들기 위해 나서셨다가 어심으로부터 멀어져 사약을 받지 않았던가.
소비포 권관 이영남은 그동안 세운 전공을 인정받아 충청도 태안 군수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순신은 못내 허우룩했으나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 충청 병사는 전날 이영남을 곤장까지 쳤던 원균이 아니던가. 이영남이 다시 그 밑으로 가서 곤욕을 치르지나 않을까 걱정이었다.
권준이 고개를 돌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바다 건너 육지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권준은 얼마 전 이순신이 지은 시 한 수를 떠올렸다.
한산도야음閑山島夜吟
수국추광모(水國秋光暮) 한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경한안진고(驚寒雁陣高)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우심전전야(憂心輾轉夜)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잔월조궁도(殘月照弓刀) 새벽 달 활과 칼을 비추네
수많은 장수들이 임지를 옮기고 있습니다. 경상 우수사였던 원 장군도 충청 병사로 갔지 않습니까? 한데 전혀 자리를 바꾸지않고 붙박이처럼 박혀 있는 장수가 둘 있지요. 바로 권 도원수와 이 통제사입니다. 이렇게 시간을 질질 끌면서 부산포 왜군을 쓸어내지 않으면 조정에서도 의론이 있겠지요.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테고, 비판의 화살이 이 통제사에게 미친다면 그 일이 어떻게 될까요? 다른 자리를 얻어 갈 수 있을까요?
"조선이 개국한 이래 통제사만큼 오랫동안 막강한 군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장수는 일찍이 없었어요. 통제사만큼 민심을 얻은 장수도 없었고, 통제사만큼 어명을 거역한 장수도없었지요. 그러니 시간을 끌면 끌수록 추락은 다가오는 것입니다. 주상 전하가 어떤 분이십니까? 정여립이 난을 일으켰을 때 전라도위포(벼슬하지 않은 선비)를 반 이상 잡아들여 참형에 처한 냉혹한 분이십니다. 통제사께서전라도 민심을 얻고 있는 것이 어쩌면 주상 전하 결심을 재촉할 수도 있을 테고..."
"글쎄요. 지금으로선 그렇게 할 수도 없지만 설령 그럴 기회가 온다고 해도 선뜻 내키지 않는군요. 부산포까지 쓸어버리면 통제사는 정말 이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됩니다. 문신들 두려움도 그만큼 커지겠지요."
송별연은 유시(오후 5시)부터 운주당에서 시작되었다. 이순신과 이억기, 선거이, 권준은 주안상을 앞에 두고 삥 둘러앉았다.
"몸은 어떠하시오?"
이억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물었다.
"괜찮소이다. 물러나 쉬면 곧 나을 테지요."
선거이가 웃음 지어 보였다. 그러나 누구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전라 병사였던 작년 초봄, 선거이는 합천 근처에서 인쪽 허벅지에 총탄을 맞았다. 그 후로 치료를 소홀히 해서 다리를 심하게 절었고 활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오른손까지 떨었다. 올해 마흔여섯, 세상을 버리기에는 아까운 나이였다.
"바로 보셨소. 히데요시는 최소한 조선 영토 반을 차지하고 명나라 공주와 조선 세자를 볼모로 잡아야지만 이 전쟁을 끝낼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전쟁을 일으킨 제 명분이 서지 앟을 테니까. 명나라 사신들이 왜국으로 건너가면 강화 회담이 결렬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오."
"왜 수군은 몰라보게 강해졌소. 군선도 우리 판옥선만큼이나 크고 단단하며, 해안 왜성에 대포를 배치하여 수륙 협공 전술도 마련했소. 다시 해전을 벌인다면 지난 임진년처럼 우리가 쉽게 대승을 거둘 수는 없을 것이오."
"형님! 이 아우 그렇게 쉽게 죽진 않아요. 걱정마십시오."
선거이가 이순신을 위로했다. 이윽고 이순신이 입을 열었다.
"녹둔도에서 함께 낚시하자던 약속 기억하나?"
그날 이순신은 선거이를 위해 이별시를 한 수 읊었다.
贈別 宣水使居怡(증별 선수사거이
北去 同勤苦(북거 동근고)
南來 共死生(남래 공사생)
一杯 今夜月(일배 금야월)
북쪽에 갔을 때도 함께 일하고
남쪽에 와서도 죽살이를 같이했네
오늘밤 달 아래 한잔 하고는
내일이면 우리 서로 헤어져야 하리
허균은 벌써 일 년 가까이 남산제비꽃보다 고운 청향에게 정성을 쏟고 있었다. 다른 기생들은 허균이 원하기도 전에 치마끈을 풀었지만 청향은 눈길 한 번 허투루 주지 않았다.
허균은 청향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적자와 서자 구별이 없고 양반과 상놈 차별이 없는 세상, 군왕도 잘못하면 벌을 받고 노비도 훌륭한 일을 하면 상을 타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허준은 언덕을 오르며 이제 칠십 고개로 접어든 스승 양예수를 떠올렸다. 무진년(1568), 스무살을 갓 넘긴 허준이 전라도에서 상경했을 때 제자로 받아 준 스승이다.
"어의는 왕실과 운명을 같이하는 것이야. 주상 전하나 세자 저하 옥체에 병이 깃들면 어의는 결코 살아서 대궐을 나서지못한다. 알겠느냐?"
"부디 이것들을 가져가서 자네가 서책을 쓸 때 참조하게나. 그리고 가끔씩 내 생각을 해 주게. 이 나라 의술을 위해 목숨 바친 친구가 있었노라고 말일세. 하나 내 이름 따위를 남길 생각은 아예 거두시게. 이 비참한 몰골을 역사에 남기고 싶지 않아. 허준! 자네와 나의 운명은 이렇게 정해져 있었던 걸세. 자네는 늘 양지에 서고 음지는 끝까지 내몫이군. 하나 자넨 날 인정해 주겠지? 떠돌이의원 최중화는 일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이야."
광해군 병은 삼월이 가기 전에 말끔히 나았다. 삼월 삼일, 선조는 허준을 비롯한 내의원들에게 광해군 병을 낫게 한 공을 다음과 같이 포상했다.
"동궁이 미령했을 때 돌보았던 내의원 도제조 김응남과 제조 홍진에게 각각 숙마 한 필을, 부제조 오억령 조인득에게 각각 아마 한필을 사급하라. 허준은 가자加資하고, 김응탁, 정예남 모두 승직시키라."
류성룡은 허리를 숙여 제일 위에 놓인 서찰을 집었다. 왜군 진영에 있는 겐소라는 중이보낸 서찰이었다. 그 글에는 조선과 강화를 바라는 왜인들 입장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조선 병력이 만일 우리 군사를 섬멸하여 하나도 남겨 두지 않을 수 있다면 사신을 보낼 필요가 없겠으나, 지금은 이미 그렇게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지금 처지로 보면 우선 사신을 보내 우리 군사를 모두 물러가게 하여 각각 자기 나라를 보전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조선의 이, 호, 예, 병, 형, 공 육조 관리 중 양조 판서를 차임하거나 또는 총병을 차임하여 보낸다면 군사를 다 철수할 수 있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철병은 요원합니다. 이후전쟁이 얼마나 빨리끝나게 될 것인가는 완전히 조선에 달렸습니다. 조선이 이번에 사신을 교류하고 나서 만약 천교淺交를 원한다면 우리 역시 천정으로 보답할 것이며, 후교를 원한다면 우리 역시 후정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만약에 다시 우호를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이에 대해 조처할 것입니다. 훗날 반드시 이 노승의 말이 망령되지 않았음을 알 것입니다. "
"스승님께서 아무리 이 나라를 예전처럼 만들려 해도 불가능할 겁니다. 웬지 아십니까? 백성들 가슴에 맹수가 한 마리씩 들어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청분이 사라진 조정 관리만 보면 달려들어 물어뜯으려 하는 사나운 짐승이죠. 이 전쟁을 적당히 끝내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들짐승이 물러가면 우리 가슴에 웅크렸던 짐승이 슬슬 활개를 치기 시작할 테니까요.
이 전쟁이 백성들 손에 무기를 쥐어 주었습니다. 한번 무기를 잡아 본 인간은, 왜병 심장에 창을 꽂아 본 인간은, 죽을 때까지 그 일을 잊지 못합니다. 언제든지 짐승이 될 준비가 되어있다, 이 말씀입니다."
허튼소리 말라며 꾸짖기는 했지만 류성룡도 전후 복구가 쉽지 않을 것을 진작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류성룡은 그쯤에서 말머리를 돌리고 싶었다. 더 논의를 하면 이덕형 결심만 굳혀 주게 되리라.
"영상 대감, 이까짓 목숨 하나 나라를 위해 바치는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러십니까? 어차피 전쟁이 끝나면 대감과 소생은 무사하지 못합니다. 대감도 아시지 않습니까?"
"명분을 앞세웠던 대신들이 우리를 비난하겠지요. 왜장과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만으로도, 부산포 왜군을 무력으로 몰아내기보다는 왜와 명나라의 강화 회담을 조금 더 지켜보자고주장한 것만으로도 나라 위신을 깍아내렸다 하여 파직될 게 분명합니다. 귀양 가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요."
윤두수가 거침없이 답했다.
"고니시와 심유경이 육조 판서 중 두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라고요구하였으나 결코 그에 응해서는 아니되옵니다. 신이 사신을 보내자고 한 것은 와신상담하는 심정으로명나라와 우리나라 관계를 고려해서 아뢴 것이지 결코 왜적과 화친을 맺자는 뜻이 아니옵니다. 육조 판서를 보내는 것은 곧 조선이 왜와 화친할 마음이 있음을 사해에 알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사옵니까? 왜가 사과하는 뜻을 담은 대차왜(왜국에서 보내온 사신)를 보내지 않는 시점에 우리가 격식을 갖추어 통신사를 보내면 아니 되옵니다. 오히려 조선이 영원히 왜와 싸우겠다는 의지를 은연중에 드러낼 수 있도록 사신 품계를 당하관으로 낮추어야 할 것이옵니다."
류성룡과 윤두수 시선이 다시 마주쳤다. 윤두수 입가에 웃음이 감돌았고 류성룡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윤두수는 큰 인물이다. 명분을 세우되 실리를 잃지 않는 방법을 찾아냈구나. 저렇듯 총명하고 사리에 밝은 정적만 있다면 정쟁을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당당하게 어전에서 입장을 개진하고 치열하게 논의하며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것은 사림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윤두수, 저 사람은 지금 그 힘든 덕목을 직접 실천하고 있다.'
이순신도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격군을 향해 위로와 격려의 연설을 시작했다.
"이 전란을 끝내기 위해 왜국으로 가는 대신들을 편안히 모시는 것 역시 조선 수군이 해야 할 임무다. 너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조선 수군을 대표하고 있음을 한시도 잊지 말라. 왜진에 가서 겁을 먹고 움츠러들면 왜군은 조선 수군을 얕잡아 볼 것이다. 반대로 너희들이 당당하게 걷고 말하면 왜군은 더욱 우리를 두려워하리라. 너희들 뒤에는 항상 삼도 수군 통제사 나 이순신이 있다. 너희들이 돌아올 때까지 나는 갑옷을 벗지 않겠다. 침소에 편히 등을 뉘지도 않겠다. 너희들 가솔들 역시 내가 직접 챙기겠다. 몸 건강히 무사히 다녀오라!"
소생 생각으로는 조정 중신들 합의와 전하 뜻이 약간 다른 것 같군요. 서애 대감을 비롯한 중신들은 명나라와 왜의 회담이 끝날 때까지는 조선 수군이나 육군이 독자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도체찰사 군령은 조정 중신들 의견이 반영된 것이겠지요.
전하께서는 지난 사 년 동안 계속 바닷길을 봉쇄하라, 부산포 앞바다를 점령하여 왜군들이 쓰시마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라는 어명을 통제영에 보내셨습니다. 이번에도 전하께서는 왜가 명나라와 완전한 합의를 이루어 철수하기 전에 어떻게든지 부산포를 쳐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듯해요. 그게 한 나라 군왕으로서 위엄을 갖추는 일이기도 하겠지요."
통제사 말씀처럼 두 가지를 모두 따르는 겁니다. 우린 이미 판옥선고라 격군 그리고 군량미를 부산포로 보냈습니다. 그럼 군령을 지킨 것이 되겠지요? 그 다음에 내일쯤 소장이 군선들을 이끌고 왜선이 모여 있는 칠천량 근해로 나가는 겁니다.'
권준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하나 우리가 왜선들과 맞서기는 하되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될 것이 아닌가요?"
문제는 원균이었다. 원균은 한 번만 기회를 주면 당장에 삼도 수군을 이끌고 부산포로 진격하겠노라고 쉴 새 없이 장계와 서찰을 올리고 있었다. 토굴에서 재기할 기회를 엿보는 원균 성품으로 볼 때 그 글에는 호언장담이 가득할 것이니, 현재 전황을 답답해하는 왕실과 대신들 귀를 솔깃하게 만들 수도 있다.
'어떤 이는 내가 부산포 왜적을 두려워하여 나가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원 장군도 틀림없이 그렇게 장계와 서찰에 썼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왜적이 두려워서 출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왜적은 두렵지 않다. 아무리 많은 왜 선단이 몰려와도 필승 전략으로 맞서리라. 그러나 잘못된 명령 때문에 장졸과 백성들을 다시 슬픔과 고통에 빠지도록 할 수는 없다. 수륙 병진이 아니고는 부산포를 탈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쟁이 무엇인지를,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느낌이 어떤지는 전혀 모르는 자들로부터 뜬구름 같은 명령을 받을 때면 울화가 치밀었다. 그게 어명으로 탈바꿈해서 내려올 때에는 더더욱 그랬다. 이순신은 그 그릇됨을 바로잡고 싶었다. 그자들에게 목숨을 걸고 싸워 이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려 주고 싶었다. 격군 하나도 헛되이 죽지 않는 완벽한 승리를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 이 바다를 어찌 지킬 것인가. 단 하나 헛된 죽음도 없이 저 왜군을 쓸어버리려면 어찌해야 할 것인가.'
이순신은 고개를 들어 한산도 밤하늘을 크게 살폈다. 이 수루에 홀로 올라 매번 다른 근심에 휩싸여 밤을 새울 때마다 가슴 밑바닥을 흔들던 시조 한 수를, 오늘은 소리 내어 읊기 시작했다.
한산 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笳)는 남의 애를 끊나니.
6권 終 2021.05.06, 19:48 아내는 로아 그네점프 영상을 하나 보낸 후 원당으로 갔다. 점프 선수가 따로 없넹ㅋㅋ 놀 때 좀 놀겠다고 하면서. 고스톱이 그렇게 재미있는 것인가! 나에게는 참으로 심심한 게임이던데. 자기가 좋아하는 것, 다른 이의 그 어떤 멋진 놀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윤화백은 골프가 세상에서 제일 기쁘고 즐거울테고 종균이는 아침에 배드민턴 칠 때 제일 즐겁고 기쁠 것이다. 나는 뭘 하는 게 가장 즐겁고 기쁜가. 시간만 되면 제1순위로 그것을 하고 싶을까?? 지금은 코로나 시대로 사람들 많은 곳은 피해야만 한다.
7권 2021.05.08 始 아침 퇴근해서 식탁엔, 카아네이션이 다정하고 은은하게 긴 목을 세웠다. 꽃들은 건강하고 아리따우며 자기 주장을 내세우려하지 않는 모습이어서 즐겁게 바라보았다.
퇴근한 아침, 식탁에 핀 카네이션花.
다정하고 은은한 광채가 식탁 주위를 감쌌지.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자기 주장을 내면에 가둘 줄 아는 카아네이션花 두 송이.
계절이 오월이구나!
엄마.아빠는 너무나 기쁘고 또 행복했다오~♡
집자시~작 김덕령은 윤두수 추궁에 답하지 않고 류성룡을 노려보았다.
"류 대감! 대감께서도 소장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보시오니까? 대감께서는 전라도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살피고 계신 줄 알았소이다. 이 통제사나 권 도원수께서는 대감과 같은 분이 이 나라에 한 분만 더 계셨더라면 전쟁을 겪지 않아도 되었으리라고 늘 말씀하셨지요. 후회는 없소이다. 다만 소장 뒤를 이어 수많은 장수들이 누명을 쓰고 목숨을 잃을 것이 안타까울 뿐이외다. 전하께서는 소장이 반란을 도모했기 때문이 아니라 소장에게 쏠리는민심이 두렵기 때문에 죽이려 하심이 아니오니까?"
윤수수가 고함을 내질렀다.
"닥처라, 이놈!"
"김덕령을 죽인 다음에는 곽재우를 죽이겠지요? 그 다음에는 이순신과 권율이 위험할 것이고, 어쩌면 류 대감께서도 전하 눈 밖에 날지 모르지. 어심이 이렇듯 좁은 줄 알았더라면 순순히 오라를 받아 이곳까지 끌려오지 않았을 것을......"
류성룡은 대패(왕이 죄수에게 은전을 베풀어 용서하고 풀어 주는 일)가 내리더라도 김덕령은 앉은뱅이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 김덕령이 풀려나 전라도로 내려간다면 백성들은 그 참혹한 몰골을 보고 더욱 분노하리라.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 그러나 김덕령이 죽게 되면 모든 장수가 왕실과 조정 공론에만 관심을 쏟으리라.
병신년 십일월 구일 해넘이.
먹구름이 낮게 드리우면서 날이 차츰 검기울더니 기어이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유난히 가깝게 들렸고, 함박눈을 맞으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궁녀들 발걸음도 가볍고 경쾌했다. 낙엽이 모두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은 상수리나무 가지에서 탐스러운 눈꽃이 피어났고, 사한(겨울의 모든 일을 맡아보는 신)에게서 기운을 받은 초겨울 높바람이 담벼락을 타고 넘어올 때마다 처마에 쌓인 눈들이 부스스 몸을 뒤채며 눈 갈기로 떨어졌다. 그 소리에 놀란 굴뚝새들이 흩어진 눈 위를 빠르게 날았다.
동부승지 허성은 말끝을 흐렸다.
"......임진년에도 방심하다가 의주까지 몽진을 갔어. 그때도 대신들은 왜군을 한낱 오랑캐라고 했지. 하나 저들은 강했고 우린 약했네. ...전쟁터에서는 오랑캐 군대도 없고 천자 군대도 없네. 오직 강한 군대와 약한 군대, 이 둘이 있을 뿐!"
광해군은 허성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며 물었다.
"또다시 몽진을 떠나자는 말이 들리던데, 사실인가!"
허성은 시선을 내리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조정 대신들 몇몇은 황해도 해주 쪽을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진년처럼 허둥지둥 몽진을 나서기보다 미리 준비를 해 두자는 것이다.
"세자! 군왕은 북풍 몰아치는 언덕에 선 푸른 소나무와도 같으니라. 군왕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해서는 아니 된다. 군왕이 마음을 열어 보이면 그 순간 신하들은 딴마음을 먹고 매서운 북풍처럼 군왕을 쥐고 흔들게 된다. 군왕은 언제나 어심을 숨기고 위엄을 유지해야 한다. 그 길만이 왕실을 만만 세세 평안케 한다.
세자! 특히 장수들을 가까이하지 말라. 그자들을 믿는 것은 곧 제 손으로 역적을 키우는 것과 같다. 장수들이 큰 공을 세워도 작은 상을 내릴 것이며 작은 잘못을 범해도 중벌로 다스려야 한다. 명심하라. 장수들은 필요악이다. 왕실 안위를 위협할 때는 가차 없이 내쳐야 한다.
세자! 그 동안 과인에게 실망도 많이 했고 때론 슬픔이나 분노를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군왕은 왕실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짐승과 같은 마음을 먹을 때도 있고 아녀자 같은 계교를 취할 때도 있다. 세자! 과인은 권율도 이순신도 이일도 원균도, 그 어느 장수도 편애하지 않는다. 누가 왕실을 위협할 힘을 지니고 있는가를 살필 뿐이다. 그리고 그 힘을 가진 장수, 과인 명을 어기는 장수는 지체 없이 내칠 것이다. 세자는 과인 말을 명심하도록 하라!"
정유년1597년 일월 십사일 오후.
고성을 떠난 판옥선 두 척이 통제영이 있는 한산도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서쪽 하늘에 모여 있던 양털 구름이 천천히 동쪽으로 움직였고, 제비갈매기 떼는 수면에 낮게 날았다. 역풍이 불었지만 된바람치고는 매섭지 않았다. 만선을 한 고깃배들이 벌써 흥청대며 육지로 돌아가고 있었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다.
강화회담이 결렬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조선 수군도 전쟁 준비가 한창이었다.
조선 수군 지휘부를 구성하고 있는 이순신과 이억기, 권준이 부둣가 처진 소나무 옆에 나란히 서 있었다. 판옥선이 닿자마자이순신이 나섰다.
"어서 오십시오. 권 도원수께서 친히 이곳까지 오시니 참으로 기쁨이 크옵니다."
"가토 기요마사가온다고 하오."
이억기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사실이오니까?"
권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생포로 온다 하니 마땅히 상륙하기 전에 바다에서 공격하여 수장해야 할 것이오. 이는 두 달 전부터 전하께서 어명으로 누누이 당부하신 바요. 상벌을 엄히 한다고 하셨소."
"그토록 중요한 첩보를 어디서 어떻게 얻으셨는지요?"
권율이 권준을 쏘아보았다. 권준은 온화한 미소로 조용히 대답을 기다렸다.
"
지난 십일일 밤 경상 우병영에서 알려 왔소."
권준이 말꼬리를 쥐고 다시 캐물었다.
"경상 우병사 김응서 장군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내었는지요? 부산에 간자를 보냈나요?"
권율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고니시 유키나가가 보낸 왜인 요시라로부터 얻은 것이오. 그 자에 따르면 가토 기요마사가 군사 7,000명을 이끌고 쓰시마 섬에 와 있는데 정동풍이 불면 서생포로 향할 것이라 했소. 마땅히 미리 서생포로 가서 가토를 기다려야 할 것이오."
작년 십이월 십이일, 부산 왜군 군영에서 큰불이 일어났다. 이순신은 그 방화를 주도한 것이 휘하 장졸인 거제 현령 안위와 군관 김난서, 신명학이라며 상을 내려 달라는 장계를 올렸다. 그런데 도체찰사 이원익 휘하 선전관 김신국 역시 도체찰사 휘하 장졸인 정희현, 허수석 등이 부산에 불을 질렀다고 보고를 해 왔다.
조정에서는 이순신과 이원익 두 사람 중 누가 거짓을 아뢰었는지 조사하였다. 권율이 책임을 지고 그 사건을 살폈는데, 이원익 휘하 조방장 정희현과 군졸 허수석이 부산 왜영에 불을 지른 것으로 최종 확인되었다.
권율이 허리를 젓히고 웃었다.
"허허허, 휘하 장졸을 제대로 거느리지 못한 것도 장수에게는 큰 실책이 아니겠소? 왕실과 조정 대신들은 이 일을 권 수사 말처럼 그리 간단히 여기지 않는 듯하오. 그동안 올라온 통제사 장계 속에 이번과 같은 거짓 장계가 몇 장 더 있지 않을까 의심하고 있소이다. 원균에게 돌아가야 할 전공을 권 수사에게 빼돌렸다는 의론도 있었소. 이런 마당에 조선 수군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참으로 큰 오해를 받게 될 것이오. 통제사! 내 말뜻을 아시겠소?"
권율이 군사를 일으켜 경상 좌도로 향했다면 이순신은 군선을 이끌고 부산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두 사람은 조선의 운명을 걸고 모험을 감행하지 않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현재 영토와 백성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지금은 강화회담이 결렬되었고 왜 대군이 다시 쓰시마에 건너와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고니시가 파 놓은 함정이오이다. 정동풍이 불면 서생포로 온다고 했으니, 만약 정동풍이 불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는 일이아니오이까? 또한 언제 오는지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소장 생각에 고니시는 이 첩보를 흘림으로써 오히려 가토를 무사히 상륙시키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소이다."
"어리석게도 조정 대신들은 그자가 펼친 간계에 속아 넘어간 듯합니다. 저들이 노리는 것은 소장일 겁니다. 조정에도 이 목숨을 노리는 신료들이 득실대니..."
"하나 통제사가 지금처럼 어려움에 처한 것은 원 병사 장계 때문이 아니오? 자기에게 맡겨 주면 당장 부산 왜영을 불바다로 만들겠노라고 흰소리를 늘어놓았기 때문에......"
이순신이 그 말을 잘랐다.
"부산을 치려는 건 흰소리가 아니라 진심일 겁니다. 전략 없는 머리를 탓할 뿐, 그 사람을 탓할 이유는 없지요."
권율이 목소리를 깔았다.
"통제사! 마음에도 없는 말씀 마시오. 통제사가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었으니 이를 제대로 활용할 이도 통제사뿐이오. 일이 잘못되어 원 병사가 온다면 내 기필고 그자를 용서치 않겠소."
권율이 탄 배가 고성으로 출발하자마자 이순신은 출정 명령을 내렸다.
"서생포로 간다."
산달도를 오른편으로 끼고 거제도로 빠져들려는 순간 척후로 나갔던 사도 첨사 김완의 경쾌선이 돌아왔다. 지휘선으로 옮겨 탄 김완이 상기된 표정으로 이순신을 찾았다.
"장군! 이미 늦었소이다. 지난 십이일에 왜선 150여 척이 이미서생포로 들어왔고 십삼일에는 왜선 130여 척이 가덕도로 상륙하였소이다."
'결국!"
이순신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꿈쩍하지 않았다. 예상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왜군은 이미 상륙했으니 바다에서잡으라는 명은 지킬 수 없게 되었다.
곁에 있던 권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오늘까지 우릴 묶어 두고 그 틈을 이용해서 왜선들을 상륙시킬 작정이었군요. 역시 함정이었습니다. 속히 이 일을 도원수께 알리시지요."
연합함대에 회군령이 떨어졌다. 왜군과 크게 싸울 것을 기대하며 출정했던 장졸들 얼굴에는 실망한 빛이 역력했다. 이순신은 말없이 장검을 탁자 위에 놓고 천천히 이물 쪽으로 걸어갔다. 투구를 벗어 옆구리에 끼고 하늘을 우러렀다. 어느새 어둠이 짙게 드리웠다.
이순신은 눈을 지그시 감고 흐르려는 눈물을 참았다. 전라 좌수사로 내려온 후 수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정운과 벌였던 궁술시합, 원균이 저질렀던 온갖 횡포들, 네 차례나 거둔 큰 승리, 이영남과 맺은 교분, 갑작스레 떠나버린 박초희, 충청 병사로 옮긴 원균, 첫 번째 통제사가 된 영광...... 그 모든 게 한낱 물거품처럼 느껴졌다. 가토 기요마사가 무사히 조선으로 들어왔으니 이제 그에 대한 책임 추궁이 있을 것이다. 통제사 자리를 지키기 힘들리라. 삭탈관직을 당할 것이고, 어떠면 김덕령처럼 누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이순신은 눈을 크게 떴다. 사라져 가는 붉은 기운 끝자리를 잡으려는 듯 서녘 하늘을 똑바로 응시했다.
'나는 그 치욕을 감내할 수 있을까, 권 도원수는 어쨌든 살아 남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군왕 마음에 들지 못한 장수에게 삶이 남아 있을까. 나로 인해 서애 대감과 권 도원수까지, 권준을 비롯한 휘하 장수까지 화를 당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밀담 그리고 타협
가토 기요마사가 벌써대군을 이끌고 경상도로 상륙하였고, 고니시 유키나가는 미리 귀띰을 했는데도 가토를 놓쳤다며 조정을 비웃는 서찰을 보내왔다. 삼도 수군 통제사 이순신이 고의로 가토 기요마사를 잡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긴 경상도 위무사 황신의 장계까지 검토하고 나자 선조는 분노가 극에 달했다.
'순신이 몰락하는 건 나 류성룡이 몹쓸 시련을 겪을 징조인지도 모른다. 영의정이라는 자리, 조정 대소사를 모두 관장하고 신하와 임금의 중개 역할을 하는 이 자리에나 역시 너무 오래 있었다. 홍문관에 있는 젊은 서생들로부터 노탐이라는 비판마저 들려오지 않는가.
물러날 때가 되었어. 이제는 정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다. 그곳에서 스승님이 남기신 단단하고 명철한 서책들을 읽으며 늦었지만 도학을 공부하고 싶다. 물러날 때를 아는 것 역시 사람의 도리인 것이다.'
류성룡은 영돈령부사 이산해, 판중추부사 윤두수, 좌의정 김응남, 지중추부사 정탁, 병조 판서 이덕형을 집으로 청했다. 선조 귀에 들어가면 중벌을 면치 못할 일이지만, 벼랑 끝까지 몰린 이순신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잠자코 대화를 듣던 이산해가 흠흠흠 헛기침을 했다.
"지난여름 김덕령을 죽이고 이번에 이순신마저 죽인다면 전라도 민심이 크게 흔들릴 것이오. 정여립과 이몽학의 난 때문에 전라도를 못 미더워 하시는 어심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계속 그곳의 장수들만을 벌해서는 곤란할 것이오. 따지고 보면 이번 전쟁에서 왜군에게 완패한 곳은 경상도입니다. 죄가 있다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그 또한 형평이 맞아야 한다 이 말씀이지요."
윤두수가 차갑게 웃었다.
"......대감! 왜 손수 유궁을 파시려는 겝니까? 대감께선 아직도 조정에서 하실 일이 많소이다. 생각해 보세요. 대감이 이순신을 살려 달라고 매달릴수록 전하께선 이순신을 죽이려 할 것이에요. 차라리 아무 말씀 말고 가만히 계시는 편이 백 번 낫소이다."
류성룡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윤두수가 지적한 대로 류성룡은 지금 몹시 불안하고 초조했다. 윤두수 목소리가 낮고 진중해졌다.
"전하께서 사약을 내리면 이순신은 어쩔 수 없이 죽는 것이오. 이순신을 납아 추국을 하라시면 어명에 따르는 것이 신하 된 도리외다. 하나 풍문에 기대어 이순신을 벌할 생각은 없소. 샅샅이 조사하여 잘잘못을 따져야 할 겁니다. 물론 임진년 전공도 참작될 것이고요. 어떻소, 영상대감 이 정도면 답이 되겠소?"
"제 뜻을 받아 주시니 참으로 고맙소이다."
김응남이 다시 자리에 앉으며 뇌까렸다.
"율곡이 낸 양병책만 따랐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외다."
정탁이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누가 임진년 전쟁에서 나라를 구했소이까? 바로하삼도 의병이외다. 그 의병장들은 대부분 남명 조식 선생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율곡은 말로만 양병을 주장했지만 남명은 몸과 마음으로 이 나라를 지키도록 가르치셨소. 전후가 이러한데도 케케묵은 양병책만 강조할 작정이시오? 좌상!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마시오."
김응남이 비꼬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지."
"지난 시절 훈척들이 저지른 터무니없는 모해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까. 이제 이 나라는 대대손손 정주학의 나라, 사림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퇴계와 율곡, 남명 같은 분들이 기반을 다졌다면 여기 모인 분들이 대들보를 세우고 지붕을 얹었다는 평가를 받게 되겠지요. 우리가 비록 조금씩 이견을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도 결국 정주학 속에서 하나로 묶일 수 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언쟁이 결코 훈척들과 언쟁할 때처럼 서로를 죽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아니 된다는 겁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이덕형이 고개를 돌려 윤두수를 쳐다보았다. 윤두수는 빙그레 웃으며 선선히 답했다.
"물론이오. 병판 말씀이 참으로 옳소이다."
전쟁 승패, 왕실 흥망
윤환시는 소매에 너허 둔 미혼단 환약을 확인했다. 명나라 사신 일행으로부터 높은 값을 주고 사 두었던 것이다. 풍과 해를 고통 없이 보낼 작정이었다. 어주에 미혼단을 섞어 잠재운 다음 검으로 단숨에 목을 찌르리라.
'나를 너무 원망하지 마라. 너희 운명인 것을'
도대체 사림이 무엇이냐? 겉으로는 공맹을 따르는 학인으로자처하지만 조정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학연, 지연으로 얽힌 무리일 뿐이다. 그자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언제든지 군왕을 질타한다. 군왕이 그자들 학연과 지연을 송두리째 뽑으려고 한다면 그들은 조선에서 桀紂를 몰아낸다며 반란을 일으킬 위인들이다. 정여립을 보아라! 그 역시 공맹의 가르침을 충분히 받은 사림이었다. 세자! 사림은 전쟁에서 거둔 승리로 자신들 세를 확장하려 한다. 군왕은 결코 사림의 허황한 말에 흔들려서는 아니 된다. 알겠는가?"
"세자! 과인도 이순신 전공을 알고 있다. 이순신을 비난하는 수많은 상소들 중 대부분이 터무니없다는 것도 안다. 하나 왜 그 많은 신하들이 이순신을 삭탈관직 하라고요구하는지 생각해 보아라. 이는 이순신이 가진 권력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니라. 전라도 백성은 이순신을 영웅으로 받든다는 풍문이다. 과인이 임명한 관리들 명은 어기더라도 이순신 군령은 틀림없이 지킨다는 것이다. 세자! 이제 이순신을 그 잘잘못을 가리기에 앞서 왕실 안녕을 위협하는 화근이 되었다. 화근은 뿌리를 잘라 버려야 한다. 군왕에게 이런 불안을 안긴 것도 장수의 도리가 아니야. 아니 그러냐?"
"그렇사옵니다."
'이순신을 죽일 생각이시구나.'
광해군은 어심이 이미 확고해졌음을 눈치 챘다.
'이순신이 없는 수군!'
생각만 해도 태풍을 만난 고깃배처럼 마음 한쪽이 일렁일렁거렸다.
9요시라의 간계를 물리치다
배흥립 역시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이순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제 고니시에 대한 미련은 버리시오. 처음부터 저 요시라를 사이에 두고 이런 연통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었소이다. 고니시와 가토가 서로 사이 좋지 않다는 것은 나도 아오. 하나 조선군과 고니시가 손을 잡고 가토를 고립시키자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방책이라오. 설령 고니시가 진심으로 그렇게 하고 싶다 해도 다른 왜장들이 순순히 고니시 뜻을 따를 리 없소. ......하나가토가 대병을 이끌고 다시 돌아왔고 강화 회담은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하였소. 이제는 싸울 수 밖에 없소이다. 우리가 이기든 왜군이이기든 끝장을 볼날이 가까웠다는 뜻이오. 그러니 이제 요시라를 통한 밀담은 끝내도록 하오."
조선 함대는 십이일에 배를 돌려 부산 앞바다를 떠났다. 가덕도 동쪽 바다에 도착할 때까지 이순신은 자꾸 뒤를 돌아다보았다 가까이 선 날발에게 혼잣말처럼 물었다.
"다시 저 부산 앞바다로 올 수 있을까?'
날발이 대답 대신 이순신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순신이 스스로 답했다.
"다시 온다면, 그땐 반드시 상륙하여 왜적을 전멸시키고 싶구나. 내 손으로 전쟁을 끝내고 싶구나."
생애 최악의 치욕
까치 세 마리가 운주당을 휘이 돌더니 무지개를 향해 날아갔다.
이순신은 옥색 비단 보자기로 곱게 싼 서책을 자개장에서 꺼내왔다. 이영남은 첫눈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통제사가 밤을 아껴 쓰던 일기였다.
"이것을 맡아 두게. 둘 데도 없고...... 서둘러 읽진 말게. 부끄러운 한살이일 뿐이야. 혹 일이 잘못되면 나중에 잠잠해지기를 기다려 큰아들 회에게 전해 주게. 알았나?"
"장군!"
'왜적을 물리치고자 출사표를 던진 지도 벌써 오 년이 지났다. 왜는 조선을 정복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왔다. 강한 나라가 힘없는 나라 재산을 노략질하고 아녀자를 겁탈하며 장정들 목숨을 빼앗는 것이다.
삼강도 오륜도 소용없는 나날들.
생존만이 유일한 바람이었고, 그 바람 앞에서는 부끄러움도 슬픔도 분노도 고통도 사그라졌다. 살기 위해서 임금은 몽진을 떠났고 백성은 고향을 등졌다. 이순신은 군사들을 전쟁터로 내몰기 전에 약조해야만 했다. '목숨을 아껴라. 그건 비겁이 아니라 너희들이 칼과 활과 노를 잡아야만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니라. 너희들을 결코 사해로내몰지않겠다. 살아서 복수하고 살아서 승리하고 살아서 영광을 누리자. 그러니자중하라. 진천뢰처럼 날아가 자폭할 생각일랑 아예 마라. 이기는 싸움, 죽지 않는 싸움을 하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버려라. 적에 대한 두려움, 장수에 대한 두려움, 나 자신에 대한 두려움을 넘실대는 파도 속으로 던져 버려라.'
'그런데 이제 상황이바뀌었다고 한다. 이런 내 신념 때문에 군사들이 한없이 나약하고 게을러졌으며 헛되이 군량미만 축내고 있다 한다. 승전 후 드는 축배에만 군눈을 파는 멍청이들. 그자들은 적선과 마주칠 때마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공포와 광기를 털끝만큼도 모른다. 열 걸음 뒤로 물러서기보다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모른다. 모른다. 절대 알지 못한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수루로장승 걸음을 옮겼다. 영원히 스러지는 오늘을 아쉬워하듯 紅霞(붉은노을)가 섬들을 이어주고 있었다. 어선들은 삼삼오오 무리 지어 해안으로 돌아왔고 태미원 별무리를 닮은 모닥불 서넛이 추위와 어둠을 쫓으며 피어 올랐다. 구슬픈 뿔피리 소리가 어둠을 끌고 산자락을 내려왔다.
경쾌선은 나대용이 탄 배를 앞질러 날듯이 부두에 가 닿았다. 갑옷을 입은 금부도사 이결과 조복 차림인 선전관 김현진이 원균 안내를 받으며 배에서 내렸다.
이순신은 운주당 앞마당에 돌비석처럼 꿈쩍도 않고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두어 걸음 뒤에키가 큰 종사관 황정철이 서책을 옆구리에 끼고 꾸부정하게 섰고 조카 분이 그 뒤를 지켰다.
"영에 따라 군량미와 화약, 총포 수량을 미리 조사해 두었소. 가서 확인하시오."
마침내 선전관이 굵고 낭랑한 목소리로 어명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순신은 남을 모함하여 공로를 빼앗았고 경상도에서 노략질을 일삼는 왜적을 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조정을 속이고 임금을 업신여겼으니 그죄는 사형에 처해도모자라지않다. 이에 그 죄를 물어 삭탈관직하고 의금부로 압송하라. 경상 우수사 겸 경상도 통제사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하니, 곧 왜적을 쳐서 큰 공을 세우도록 하라."
낭독이 끝나자 금부도사가 오랏줄을 들고 나섰다.
윤근수는 힐끗힐끗 이순신 몸뚱어리를 쳐다보며 오늘 신문한 결과를 쓰기 시작했다.
"신 해평 부원군 윤근수 삼가 아뢰나이다. 역적 이순신 그 죄를 극구 부인하였으나 엄히 문초한 결과 죄상이 차례로 드러나고 있사옵니다. 특히 전하 뜻을 어기고 삼 년이 넘도록 한산도에 숨어서 왜를 치지 않은 죄는 백 번 죽어도 그 벌이 과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쓰기를 마친 윤근수는 추안궤에 문서를 넣고 '신 윤근수 근봉'이라고써서 봉한 다음 서명을 했다. 그런 후 곁에 있던 승전색을 불러 추안궤를 곧바로 탑전에 올리도록 하였다.(2021.05.09 21:55, 오늘 집자 終. 바람은 조금 불었으나 하늘이 파랗고 양광이 쇳빛을 낸 날. 이런 날 나는 산하에 있지 않고 어디에 거하고 있느뇨. 그것은 하나의 깨달음이었달까. 관리원 70세가 되는 노인과 동급을 받는다는 걸 생각하면 한심하기도 해. 그런데 이 나이에 들어가면 다 똑같아진다고 김남주님이 말했지. 그 말 들으니 웃기기도 하더군. 정빈인 가족과 캠핑한 그림을 카톡에 올리공. 아내는 집이라며 당신 반찬을 만든다고 말랑하게 전활 걸어왔다. )
2021.05.10, 10:31, 주위가 온통 캄캄해지더니 그 위로 푸른빛 한 줄기가 내려앉았다. 푸른빛은 점점 자라기 시작했고, 곧 온통 푸른빛만 남았다. 낯익은 풍경이었다. 한산도와 여수를 잇는 푸른 뱃길이 펼쳐졌다. 더위와 글증을 단숨에 날려 버린 해풍이 섬과 섬 사이를 휘휘 돌며 갈매기 떼와 숨바꼭질을 했고, 만선을 자축하는 노랫가락이 넘쳐흘렀다. 전쟁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순신이 직접 성을 쌓고 군선을 배치했던 해안들은 평화로운 어촌으로변해 있었다. 어부들 어굴을 자세히 살폈다. 놀랍게도 모두휘하에 있던 장수들잉었ㄷ. 선거이, 정운, 이억기, 그리고 이영남. 이순신은 투구와 갑옷을 벗고 칼과 활을 내던진 후 그들과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다. 전쟁이끝났다면 더 이상 장수로남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이제 부끄럽지 않은 죽음보다 행복한 삶을 생각할 때가 온 것이다.
평복으로 바다에 뛰들기 직전, 갑자기 거대한 파도가 휘몰아쳤다. 삶을 구걸하는 조선인과 왜인들의 절규, 조통과 대포 소리가 바다를 뒤흔들었고 코와 귀가 잘려 나간 시체들이 움직이는 섬처럼 몰려다녔다.
벗어 둔 갑옷을 다시 입기 위해 뒤돌아섰다. 그러나갑옷이 없었다. 대신 그곳에는 사지와 머리를 동아줄로 꽁꽁 묶인 죄수가 엎드려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죄수는 바로 이순신 자신이었다. 주위에는 동아줄을 어깨에 걸고 코를 벌름거리며 사방으로 달려갈 준비를 마친 늠름한 황소 다섯 마리가 힘차게 뒵발질을 해 댔다. 파도가 흰 물보라를 튀기며 솟아오르는 것과 함께 황소들은 미친 듯이 붉은 바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몸통에서 찢겨 나간 머리와 두 팔, 두 다리가 황소와 함께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 어디에선가 날아온 갈까마귀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몸통을 움켜쥐었다.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서 한산도 앞바다를 빙빙 맴돌았다.
류성룡, 이순신의 유언을 듣다
'여해!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닐세. 자네를 사지로 몰아넣은 내게 속죄할 기회를 주어야지. 이 나라를 백척간두에서 구한 자네에게 무슨 죄가 있나. 반드시 기운을 차려 일어나시게. 이 전쟁이 끝난 후 자네가만들어 놓은 한산도 구경을 가야 하지 않겠는가. 자네와 뱃놀이 할 날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보냈건만...... 여해! 날 용서하게 어심을 붙들지 못한 내가 죄인이야.'
정탁이 신구차(죄인의 구명을 진정하는 상소)를 올리고 이덕형이 최선을 다해 이순신을 변호했으나 어심은 좀처럼 바꾸지 않았다. 고문을 해서라도 이실직고를 받아 내라는 하교는 이순신을 죽여도 좋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선조는 이순신 죄상을 낱낱이 밝히라고 위관들을 추궁하면서도, 이덕형과 정탁에게는 이순신을 꼭 처형할 필요까지야 없지 않겠느냐는 말을 넌지시 흘렸다.
류성룡은 이순신李純信에게 물었다.
"삼도 수군은 어찌하고 있는가?"
"짐작하시겠지만, 군사들 동요가 성난 파도와 같사옵니다. 탈영병이 속출하고 장졸들 사기가 땅에 떨어졌사옵니다. 이런 상태로 왜군과 맞선다면 십중팔수 패할 것이옵니다.
"원균이 수군을 잘 이끌고 있다는 장계가 속속 올라오고 있네."
이순신 음성이 커졌다.
"영상대감! 그 말을 믿으시는지요? 원 장군은 장졸들에게 호통이나 치고 힘으로 위협할 뿐이옵니다. 오직 이 통제사만이 삼도 수군을 이끄는 심장과 눈동자 노릇을 할 수 있사옵니다."
'심장과 눈동자!'
류성룡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짓감았다.
회생의 밤, 불효의 아침
반쯤 남아 있던 정신마저 차츰 흐려져 갔다. 손등을 꼬집어도 더 이상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렁그렁 거친 숨소리와 함께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저러다가 어느 순간 그르렁 소리가 멈추면, 그것으로 삶이 끝나는 것이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거친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심음 소리만이 이순신이 살아 있는 유일한 증거였다.
'장군 오랜만입니다. 정읍에서 헤어진 지도 벌써 칠 년이 흘렀군요. 장군 몸은 고문 때문에 망신창이가 되었고 소인 몸은 몹쓸 병 때문에 사람 형체를 잃었습지요. 장군! 패하지 않는 장수가 되려 하던 소원은 이제 이루셨는지요? 청사에 길이길이 이름을 남길 명장이 되셨는지요?
그동안 소인은 명의가 되기 위해 팔도를 돌아다녔답니다. 더러 신의라는 칭송까지 받았으나 덜컥 불치병에 걸리고 말았군요. 운명을 깔본 탓입니다.
장군은 또다시 백의종군을 당했고 소인은 이렇게 문둥이가 되었습니다. 장군께서 넘고 싶어 했던 원균 장군은 어디에 있나요? 소인이 넘고 싶어 했던 허준은 어딩 있나요?
최중화는 품에서 대침을 꺼내 엄지와 반쯤 떨어져 나간 검지 사이에 끼우고 빠른 속도로 이순신 몸을 찔러대기 시작했다.
'장군! 부디 쾌유하십시오. 장군을 괴롭히는 심고에서 벗어나 큰 깨달음을 얻으십시오!'
정신을 잃은 이순신에게 큰 절로 작별을 고하고 물러났다.
"누우시지요. 아직 일어나시면 아니 됩니다."
이순신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오늘 길을 나서야 하네. 기일을 어기고 싶지...... 않으이. 한데 누가 날...... 돌보았는가?"
이순신純信이 답했다.
"옛날 정읍에서 의원 노릇을 하던 최중화란 사람이 왔습니다."
"최 의원이......!"
이순신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벌써 아까 떠났사옵니다."
"무 무정한 사람! 육 년 만에 만났는데 그냥 가다니...... 혹 날 대면하지 못할 이유라도 있다던가?"
"아닙니다. 급한 환자가 있어서 인사도 못하고 떠나는 것을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약초를 팔아 꽤 많으 ㄴ돈을 모은 것 같았습니다. 곧 다시 찾아뵙겠다고 하였지요."
"약초를 팔아서...... 돈을 모아?"
이純信이 서둘러 말머리를 돌렸다.
"날발을 뱃길로 여수까지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님께 ......그래 주게."
이순신은 올해로 여든 세 살인 어머니 변 씨의 주름진 얼굴을 떠올렸다. 어머니 근심 걱정을 하루라도 빨리 풀어 드리고 싶었다. 통제사 아들 곁에 있고 싶어 했기에 한산도 근처 여수로 모셨던 터였다.
이순신은 조카 이분 등에 업혀 남행을 시작했다. 초사흘에는 수원성에 머물렀고 초나흘에는 오산에서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초닷새, 꿈에도 그리던 아산에 도착했다. 이순신은 곧장 아버지와 두 형이 묻힌 어라산於羅山으로찾아갔다.
"소식은 전했는가?"
"예, 장군!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서해안 뱃길로 이리 오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순신이 깜짝 놀라며 언성을 높였다.
"무엇이? 어머님이 배를 타신다고? 아니 될 일이야. 여든 노인이 그 험한 바닷길을 어찌 오신단 말인가?"
"아무리 말려도 한사코 고집을 꺽지 않으셨습니다. 장군과 만나 는 걸 한시라도 미룰 수 없다시면서...... 이미 길을 떠나셧을 겁니다."
"아, 어머니!"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온화하고 따뜻한 성품을 가진 어머니이지만 한 번 정한 일은 기어이 성사시키고야 말았다. 이제는 무사히 올라도시기만을 기원할 뿐이다.
도원수가 무군지죄를 범한 죄인게게 전령을 보내거나 서찰을 전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래서 충성심이 남다른 송대립을 택했으리라.
"도원수 말씀은 이렇습니다.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급히 내려올 생각 말고 고향에 머물러 잠시 몸을 치료하도록 하라. 필요하다면 군사와 양식을 보낼 수도 있다. 재회를 손꼽아 기다리겠다."
이레가 물처럼 흘러갔다. 그동안 이순신 몸은 몰라보게 회복되었다. 이제는 날발 등에 업히지 않아도 방화산芳華山을 마음대로 오르내릴 정도였다. 열사흗날이 되었지만 어머니는 도착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실은 배가 초아흐렛날 안흥량(충남서산군 근홍면)에 닿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방문 밖에서 목소리가 났다.
"아버님. 소자 면이옵니다."
"들어오너라."
어느덧 셋째 아들 면도 스물한 살이 넘었다. 얼굴이 갸름하고 눈매가 날카로운 것이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밤새 평안하셨사옵니까?"
"오냐, 너는 요즘 무슨 서책을 읽느냐?"
"『사기』를 읽고 있사옵니다."
"누가가장 마음에 드느냐?"
"오자서이옵니다."
"오자서라! 그 이유가 무엇이냐?"
"오자서는 초나라 평왕이 자기 가문을 멸하자 일평생 복수를 꿈꾸며 살았사옵니다. 소자도 오자서처럼 한 번 세운 뜻을 죽는 순간까지 지키고 싶사옵니다."
"하오나 아버님, 슨장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여 죽이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지요?"
이순신이 호통을 쳤다.
"넌 사기의 참뜻을 모르고 있구나. 역사가 무엇이냐? 대의를 지키고 도를 따르는 것이 역사이니라. 한 나라 장수된 자가 그걸 지키고 따르지 않는다면 어찌 역사에 맑은 이름을 남길 수 있겠느냐. 개개인이 맞는 사소한 죽음은 대의에 어긋날수도 있겠지만 역사는 거짓을 담지 않는다. 알겠느냐?"
면은 세 아들 중 장수 기질이 가장 넘쳤다.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할 뿐만 아니라 외가에서 배운 활솜씨가 보통이 넘었고, 장검을 휘두르는 실력은 이순신을 능가할 정도였다.
이순신은 채비를 차리고 길을 나섰다. 해암蟹岩 근처 바닷가에 숙소를 정하고 어머니를 기다릴 참이었다. 만류하는 손길을 뿌리치고 비릿한 바다 냄새가 불어노는 곳으로 점점 다가갔다.
'어머니!'
하늘을 향해 가슴을 활짝 폈다. 팔순 노모의 주름진 얼굴이 하늘을 온통 뒤덮었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으니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무슨 일아냐?"
차갑게 물었다.
"......대부인......마님께서......"
날발은 말을 맺지 못했다. 날카로운 비수가 이순신 가슴을 찔렀다.
"어머님이 왜?"
"지난 열하룻날... 안흥량에서...돌아가셨다 하옵니다."
이순신은 두 주먹을 치켜들다가 고목이 쓰러지듯 뒤로 넘어갔다. 날발이 재빨리 달려들어 부축했다.
동정록을 쓰고 환란 책임을 따지고
정칠품 세자 시강원 설서說書 허균은 아침 일찍 입궐했다.
"전쟁이다. 강화 회잠이 결렬되었을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이제 다시 전면전을 벌여야 해. 허 설서!"
"에, 저하!"
"이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느 편에 승산이 있다고 보는가?"
"저하! 임진년에 들불처럼 일어났던 하삼도 의병을 기억하시는지요?"
광해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진년에 조선이 승기를 잡은 것은 의병 역할이 컸사옵니다. 하온데 가토 기요마사가 대군을 이끌고 상륙한 지금 하삼도에서 의병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셨는지요?"
"듣지 못했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 보시옵소서."
"허 설서! 역사는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게 마련이며 인륜은 위에서 아래로 베풀어지는 법이다."
이무기를 품은 맑은 향기
"쓰고 있다던 서책은 어떠한가?"
허균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시원시원하게 답했다.
"재주가 짧아 죽을 지경입니다. 무엇보다 왜군이 평양에서 부산까지 후퇴한 대목을 쓰기가 힘이 듭니다. 아시다시피 왜군은 패퇴한 것이 아니라 자진해서 병력을 되돌렸지요. 극심한 추위와 굶주림, 돌림병 등을 이유로 들 수도 있겠으나 그 사실만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명나라와 밀약을 한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전하와 사서 편찬 총책임자인 해평 부원군 윤근수 대감은 명나라 장졸의 활약상을 부각시켜 사초를 정리하라고 하십니다. 평양에서 있었던 무자비한 학살, 하삼도 조선군이 왜군을 공격할 때 의도적으로 방해한 일 따위는 절대로 넣어서는 안 된다 하셨지요."
자네 큰 형 서성과 자네 딸 설경까지 죽음을 면치 못할 걸세. 그래도 좋은가? 그만큼 자네 신념이 확고한가? ......허허허허, 나는 아닐세. 나는 차라리 중심을 부수기보다 외곽을 떠돌겠네. 중심을 부수면 또 다른 중심이 생겨나는 법이지. 자네가 혁명에 성공하면 허균 자네가 중심이 되는 거야.ㅇ"
이달이 술잔을 비우며 물기가 배어 나오는 음성으로 말했다.
"우린 늙고 지쳤네. 얼마 남지 않은 생, 팔도 유람이나 하며 마감하고 싶으니. 한양은 답답해. 이젠 그 답답함을 배겨 낼 힘도 없다네. 허허롭게 한뉘 보내고 싶어. 알겠는가?"
"스승님!"
허균이 자세를 고쳐 무릎을 꿇었다.
"올해까지라도 소생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부족한 시문들을 청감(자기시문, 서화 등을 지체 높은 사람 앞에 보일 때 상대방을 존대하여 일컬음)하여 주십시오.'
이달은 그 간절한 눈빛을 외면했다.
"서산 대사가 그랬다네,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라고. 그러면 큰 잘못은 저지르지 않는다고 말일세. 참으로 옳은 말이야. 아니 그런가?"
한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달은 남아 있는 술잔을 비우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균은 저고리를 벗긴 후 양 볼을 두 손으로 어루었다. 앵혈처럼 붉은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저 입술에 입 맞추고 싶었던가.청향의 몸이 눈사태를 만난 된비알처럼 앞으로 쏠렸다. 그 봉긋한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향긋한 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청향!"
허균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청향 입술을 거칠게 빨았다. 앵무새 혀처럼 작고 날렵한 혀가 입 속으로 들어왔다. 눈을 꼭 감은 청향은 모든 것을 맡겼다. 얼음장처럼 차갑고 단정했던 몸이 벼락 맞은 참나무처럼 뜨겁게 넘실거렸다. 허리를 돌려 허균은 청향을 뉘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옷을 풀어 헤쳤다. 청향은 양손을 활짝 벌린 채 허리와 엉덩이를 들어 올려 허균을 도왔다.
허균의 거친 숨소리가 심장을 활활 타오르게 했고 허균의 손끝이 닿을 때마다 몸은 꽃보라로 흩날렸다. 허균이 구름이라면 청향은 소낙비였고 허균이 하늘이라면 청향은 옥토였다. 드디어 천둥 번개와 함께 허균이 몸속으로 들어왔다. 청향은 고개를 젖히고 밀려오는 파도를 기다렸다. 집채만큼 부풀어 오른 파도가 해일이 되어 덮쳤다. 그때 청향은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그러나 밤마다 독백처럼 되뇌었던 말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빝었다.
'사......랑해요!"
통제사 원균, 수군 장악에 나서다
그러나 이순신은 원균 바람과 달리 권율 막하로 내려오게 되었고, 원균은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지금 권율은 전라도 순천에 머무르고 있다. 순천에서 한산도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이순신이 순천까지 내려온다면 수군들이 다시 동요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통제영에는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했다는 뒷말이 좀처럼 자지 않았다.
이순신이 또다시 권율 막하로 가서 손을 잡는다면 부산을 치기 위해 육군을 움직이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 터였다. 그렇지 않아도 권율은 안골포와 가덕도 방향으로 육군을 움직이라는 원균 요청을 번번히 거절하지 않았던가. 두 사람은 그동안 자신들이 견지해 온 전략이 옳았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부산 진격을 거부할 것이다.
원균이 말꼬리를 붙들고 늘어졌다.
"이순신이 그런 말을 했단 말이오?"
김완이 자기도 놀란 듯 양손으로 입을 막는 시늉을 했다. 배흥립이 허허허 웃음을 뱉으며 말했다.
"니미랄, 저놈 주둥이가 문제라니까...... 허허허 들켜 버렸습니다그려. 이 통제사께서는 당신이 자리를 옮기고 난 다음 조선 수군이 어찌 될지 늘 걱정하셨지요. 지난 정월, 김 조방장과 소장을 불러 놓고 이런 말씀을 하시더이다. '벼슬자리야 갈리게 마련이다. 누가 통제사로 오든지 군령에 따라 최선을 다하도록 하라.'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 아니오니까? 그때 소장은 미처 그 뜻을 헤아리지 못했는데, 이제야 이 통제사 마음을 알 것 같소이다.'
원균은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원균은 갑자기 씁쓸해졌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기효근의 부리부리한 두 눈이 그리웠다.
'숙흠, 그대만 있었다면......'
기효근은 어영담처럼 돌림병을 얻은 탓에 벼슬에서 물러나 요양을 떠났다가 왜군 복병을 만나 목숨을 잃었다. 경상 우수군 선봉장이자 임진년에왜선을 무수히 격침시켰던 맹장으로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죽음이었다. 원균은 전라 병사로 있을 때 비보를 접하고 사흘 밤 사흘 낮을 통곡했다.
변방 장수가 조정 대신과 서찰을 주고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다. 군왕은 조정 대신들과 의논하여 장수를 임명하고 상벌을 내렸다. 따라서 장수들이 벼슬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정 분위기를 파악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문신들과 교분을 두텁게 할 필요가 있었다.
전라 우수사 이억기와 충청 수사 최호, 경상 우수사 배설이 휘하 장수들을 거느리고 운주당으로 들어섰다. 원균은 반갑게 사람들을 맞이했다. 이억기는 임진년에 전쟁이 나고부터 줄곧 전라 우수영을 지켰고, 최호는 충청 수사로 있으면서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여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배설은 경상도에서 조방장을 지낸 후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경상 우수사로 옮겨왔다.
원균은 삼도 수군 통제사를 맞기 전에 이순신 측근인 권준, 이순신純信 등을 먼저 교체해 달라고 윤두수에게 간곡히 청했다. 조선 수군이 한 몸처럼 움직이려면 통제사가 각 도 수사들을 휘어잡아야 하는 것이다.
저돌적인 최호는 원균의 젊은 날을 닮았고, 배설은 말수가 적고 겁이 많았지만 군령을 충실히 따르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억기는 여진족과 맞서던 육진 시절부터 오랫동안 함께 지내왔기 때문에 눈빛만 보고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최호가 혀를 끌끌 찼다.
"이보시오, 배 수사! 전투가 벌어지면 경상 우수군이 응당 앞장서야 할 것인데 그런 약한 소릴 해서 쓰겠소? 선성후실이라 하였소이다. 먼저 기세로써 상대를 제압하지 않고서야 어찌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겠소? 차라리 소장에게 경상우수군을 맡겨 주십시오."
후군으로 밀려나는 장수들
이억기가 배설을 편들고 나섰다.
"그렇소이다. 지난 전공을 생각해서 나대용, 이언량, 이영남을 이번 한 번만 용서하는 것이 어떻겠소? 정사준도 아직 그 죄가 밝혀지지 않았으니 통제영을 무단이탈한 죄만 벌하도록 하십시다."
순천 부사 우치적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지요. 지금은 장수가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한 때 입니다. 정사준을 문초하여 군량미 숨긴 곳을 밝히는 딜은 소장이 맡겠습니다. 정사준 고향이 옥과이니 그곳을 중심으로 비밀창고를 찾도록 하지요."
누가 겁장의 오명을 쓸 것인가
말발굽 아래 흙탕물이 튀고 채찍소리가 폭포수처럼 가빴다. 마상에 앉은 권율은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앙다문 입술, 부르튼 볼이 그 표정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원균, 이놈! 감히 나를 속이고 출정을 하지 않다니. 그러고도 네가 살기를 바라느냐.'
도체찰사 이원익이 토한 불호령이 아직도 고막를 찢는 듯했다.
권율은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의정 류성룡이 한양에 남아 조정 중론을 이끌면서 전세를 총괄한다면, 우의정 겸 도체찰사 이원익은 하삼도 장졸들을 거느리고 전투를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나이로는 권율이 열 살이나 위였지만, 이원익은 대하기가 늘 어려웠다. 이원익은 류성룡과 같은 남인이면서도 성품이 강직하고 꼼꼼한 원칙주의자였다. 왜군을 쓸어버리기 전에는 편히 잠들 수 없다며 권율이 선물한 비단 이불도 돌려보냈다. 지금 형은 모하고 있을까? 카톡 탈퇴를 한 이틀 방치하는 건 옳은 처살까? 왜 나이 먹어 늙으면 사람들은 제각각일까? 바깥은 곧이라도 비가 쏟아질까 말까분위기. 백현진의 보컬은 억지 쥐어짬이라 실망스러웠다. 한숨 자고 이력서를 생각해보자. 급한 건 아니다. 오늘은 화요일.. 내일이나 모래 제출해도 늦지 않다. 어쩌면 너무 빨리 넣는것도 작전실수일 수 있다. 눈이 피곤함을 하소한다. 그만 집자를 쉬자...
17:35, 쩡이와 이서방이 와서 usb 이력서 수정해 주었다. 줄 끝에 커서 위치하고 엔터 누르면 줄어들더라~~ 아내와 쩡이는 가재집, 참치집, 경복궁 소고기집을 호출하고 잠시 숨고르고 있다. 정빈이가 말한 동두천휴양림은 왕방산 서쪽계곡. 노고산 사진을 카톡으로 주다.
그러나 원균은 뜻밖에도 거꾸로 육군더러 안골포와 가덕진을 선제공격 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권율이 거절하자 조정에 장계를 올려 육군을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도원수 권율이 전투를 기피한다는 분위기를 은근히 풍겼다. 권율을 겁장으로 몰아 도원수 이일로 바꾸기 위한 포석이었다.
이원익은 권율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남의 탓만 하고 있을 때요? 명나라 원군이 남원, 성주, 전주까지 내려왔다고 하나 아직 그 수가 미미하오. 그런데 조선수군이 왜 수군에게 밀린다면 싸움이 어찌 되겠소? 권 도원수! 도원수가 직접 원 통제사를 만나서 조정 뜻을 전달하도록 하시오. 끝까지 항명한다면 군율로 다스리시오."
"군율로 다스리라시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조선 수군을 당장 부산으로 출정하도록 만들라, 이 말이오. 이번에도 조선 수군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땐 도원수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오. 알겠소?"
앞산 너머에서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원균은 쉬운 상대가 아니다. 벌써 몇 번이나 글로 꾸짖고 말로 타일러도 귀 기울이는 기색이 없었다. 권율은 언젠가 이순신에게 원균이 어떤 사람인지를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이순신은 씁쓸하게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장졸들 심장을 손아귀에 틀어쥐는 법을 아는 장수지요. 휘하에 둔다면 천군만마를 얻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나, 함께 쟁공을 하기로 한다면 백만 대군과 맞서는 것보다 더 힘이 듭니다."
묵묵히 내실을 기하는 이순신과는 달리 원균은 자기 의지를 다른 사람에게 관철하기를 즐기는 위인이었다.
이원익과 권율은 조정에서 시키는 대로 수군이 부산 앞바다로 나아가 쓰시마바닷길을 차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왜 수군에 봉쇄될 것에 대비하여 군선을 둘로 나눈 후 반은 부산 앞바다로 가고 반은 한산도에 머무르며 기한을 정해 교대하라는 어명이었다. 그러나 원균은 계속 육군을 움직여 달라 청하여 이원익과 권율 입장을 곤란하게 하고 있었다.
"통제사에만 오르면 당장 부산을 치겠노라고 장담을 한 자가 누구야? 이순신과 나를 겁장으로 몰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육군 없인 부산을 치지 못하겠다? 조변석개로 말을 바꾸는 네가 어찌 조선 수군 으뜸 장수일 수 있겠는가? 지금 당장 수군을 움직여라 그러지 않겠다면 군율로 다스리리라."
"불가하오. 육군이 선공하지 않으면 왜적들 주의를 돌릴 수 없소."
"정녕 명을 거역하겠단 말이냐? 에잇! 매우 쳐라."
나졸들 매질이 한층 매서워졌다. 권율은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퍽퍽, 퍽퍽퍽, 살이 터지고 피가 튀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원균은 매를 맞으면서도 으르렁거렸다.
"차라리......윽, 소장 목을......치, 치시오."
"멈추어라."
권율이이윽고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몸져누울 정도로 매타작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오늘 원균을 닦달한 것은 부끄러움을 알게 한 후 나아가 힘써 싸우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풀어 주어라."
군졸들이 손과 발에서 오라를 풀자 원균은 몸을 기우뚱거리며 가까스로 일어섰다. 터진 엉덩이에서 허벅지와 발목을 타고 내린 피가 바짓자락을 벌겋게 물들였다.
"내 갑옷과 투구를 내놓아라."
눈치를 보던 군돌들이 권율 턱짓을 받고 무거운 갑옷과 투구를 원균 앞에 내려놓았다. 원균은 천천히 갑옷을 껴입기 시작했다. 벌벌 떨리는 다리 때문에 비틀거리고 급기야 땅에 꼬꾸라지기까지 했지만 원균은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험상궂게 일그러진 얼굴과 흉흉한 눈에 권율은 몸서리를 쳤다. 온 몸이 땀과 피로 뒤범벅이 된 채 원균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두 다리는 눈에 띄게 흔들렸고 비대한 허리 살은 더욱 눈에 띄었다. 권율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명령했다.
"지금 당장 부산으로출정하라. 이번에도 출정을 늧추거나 싸우는 척하고 돌아온다면 목을 베겠다. 알아듣겠느냐?"
원균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짖었다.
"소장 지휘검을 주시오."
군졸들은 갑옷과 투구만을 내주었던 것이다. 장검을 앗아 든 원균이 고리눈을 뜬 채 권율엑 한 걸음 다가섰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니까? 승전이오니까, 소장 목이오니까?"
"승전이다!"
원균이 바람처럼 검을 뽑아 들었다. 군졸들이 달려들려 했으나 권율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소장 목숨과 승전을 맞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겠소이다. 소장이 수군을 이끌고 나서면, 도원수께서는 곧장 육군으로 뒤를 받치실 것이오니까?'
"그렇다."
원균은 권율을 노려보다 검을 다시 칼집에 꽂고 휙 뒤돌아섰다. 절뚝거리며 멀어지는 그 뒷모습을 권율은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원균! 그대는 지금 졌다. 하나 나를 원망하지 마라. 그대는 삼도 수군을 맡을 그릇이 아니다. 차라리 이순신 휘하에서 돌격장 노릇이나 충실히 했더라면 일신을 보전했을 것을.
그대가 지금 나간다고 얻어 낼 수 있는 승리가 아니다. 나 역시 그것을 알고 있다. 알고 있기에 지금껏 버텼으며, 알고 있기에 그대를 매질한 것이다.
아는가, 원균? 이 전쟁은 이순신 같은 장수만이 승리를 거둘 수 있다. 그대가 쫓아낸 이순신만이 수군과 그대를 살릴 수 있다. 그걸 알겠는가, 원균?'
와키자카, 원균을 기다려 함정을 파다
요시라는 고니시 유키나가가 보낸 서찰을 내밀며 히죽 웃어 보였다. 이순신을 삼도 수군 통제사에서 몰아낸 이간계 주역이었다.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소 요시토시의 심복인 요시라를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경상 우병사 김응서 군막을 오가며 이순신을 모함한 공은 인정했다.
"새 통제사가 호언장담을 하고 한산도로 넘어오긴 했지만 부산 출병은 미적거린다는 소식도 있다. 고니시 님이 너무 전황을 낙관하는 것은 아닌가? 조선 수군이 끝내 부산으로 나아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서 칠 순 없지 않느냐?"
요시라가 히죽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그건 과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순신이라면 어떤 압박이 가해져도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출정하지 않겠지만 원균은 다릅니다. 원균은 부산 진격을 자처했기에 통제사로 중용되었고, 도원수 권율을 비롯한 조정 중신들은 물론 이순신 총애를 받던 조선 수군 여러 장수에게 자기 실력을 입증해야만 합니다. 무엇보다 원균은 참을성이 없습니다. 몇 번 아래위로부터 모욕을 받으면 제 성을 이기지 못하고 나설 겁니다. 우리에게 그 분노를 폭발시키려 들 테지만, 그때 우린 옆으로 슬쩍 비켜 그 뜨거움을 피한 후 단숨에 거대한 폭풍처럼 조선 수군을 삼켜 버리면 됩니다."
와키자카가 지휘봉으로 칠천량에서부터 견내량을 주욱 훑었다.장수들이 시선이 동시에 그 좁은 바닷길에 머물렀다.
"조선 수군을 이 안으로 끌어들입시다. 칠천도와 거제도에서 포를 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고, 더욱 크고 강해진 우리 안택선으로 이 앞인 칠천량과 이 뒤인 견내량을 동시에 막는 것이오. 그 다음엔 학이 날개를 펴듯 크게 포위망을 펴고 달려들어 조선 수군을 궤멸하는 게요. 어떻소?"
육지에는 가토 기요마사, 바다에는 도도 가카도라 라는 말이 떠돌만큼 성격이 급하고 용맹한 장수였다. 임진년에 조선으로 건너왔다가 귀국한 도도를 정유년을 맞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특별히 다시 보냈다.
전쟁을 끝내는 단 한 번의 승리
배설이 최호 말에 이의를 제기했다.
"최 수사! 진정하세요. 지금은 왜선과 맞설 때가 아니오이다. 저들은 바다에서 싸우다가 육지로 피해 쉴 수 있으나 우리는 마음 편히 닻을 내릴 부두 하나 없소이다."
칠월 십사일
일찍 잠을 깬 이순신은 홀로 뜰을 거닐었다. 섬쥐똥나무 아래 황적색 꽃을 피운 하늘말나리를 바라보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어머니 장례를 치른 뒤 몰골이 더욱 수척해졌다. 재란은 예상한 일이지만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군사들이 수십만 명을 헤아린다는 풍문은 잠을 쫓기에 충분했다.
적은 더욱 강해졌다. 아군 약점이 모두 노출된 상황에서 왜적과 맞서 이기기는 극히 어렵다. 왜군이 강해지는 동안 우리도 강해졌는가. 몇몇 산성을 쌓고 훈련도감에서 장졸을 양성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여전히 명나라 원군에 기애어 싸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하삼도 민원이 완전히 조정에 등을 돌린 것이 걱정스럽다.
대청마루에 앉아 가볍게 허벅지를 주물렀다. 앙상한 뼈가 잡힌다. 쉰세 살, 이제 이순신도 늙은 것이다. 젊은 시절 강장,(변방)을 떠돌며 온갖 고초를 겪은 결과일까. 예순을 훌쩍 넘긴 노인보다도 더 자주 아팠다.
섬돌 위에 나란히 놓인 짚신 두 켤레가 눈에 띄었다. 이순신 병을 살피기 위해 아산에서 찾아온 훈련 주부 변존서와 지난 오월 삼일 이름을 위에서 열로 고쳐 준 둘째 아들의 신발이다.
'내가 급사라도 할까 봐 두려운 게지.'
아산에 남아 있는 아들들 얼굴이 떠올랐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대문 앞에 체구 건장한 사내가 서 있었다. 호탕한 웃음이 귀에 익었다. 이순신은 손등으로 눈지방을 비볐다. 나이를 먹을수록 힘을 잃어가는 시력이다. 이제는 스무 걸음만 떨어져도 사물을 구별할 수 없었다. 어느새 사내가 앞마당을 가로질러 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갑옷이 철그럭 철그럭 소리를 냈다. 사내는 투구를 벗고 긴 숨을 내쉬더니, 갑자기 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 이마에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서둘러 사내를 부축해 일으켰다.
"아니! 당신은......!"
이순신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원균이었다.
원균이 목소리를 낯우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조용히 하오. 모처럼 어렵사리 찾아왔는데, 동네 사람들을 모두 깨울 작정이오?"
솔직히 임진년 왜란이 시작된 순간부터 그대는 내가 닿을 수 없는 아주 높은 곳에 서 있었다오. 때론 시비도 걸고 때론 화도 냈지만, 그건 모두 내가 따를 수 없는 그대의 전략과 용병술 탓이었을 게요. 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오. 이 장군, 그대 삶을 가로막는 벽은 내가 아니라오. 차라리 나였으면 하지만 정말 간절히 바란 적도 있지만 어찌 내가 그대의 상대가 될 수 있겠소. 나는 그대가 부럽기도 하고 걱정도 되오. 이제부터 정말 운명을 건 싸움이 시작되는 게요. 말하기 좋아하는 놈들의 눈에 결코 보이지 않는, 그 지독하고 처절하며 외로운 싸움 말이오. 그대도 이미 그 기운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을 게요."
내 그대를 시기했을 지언정 적으로 여긴 일은 결코 없었소. 그것은 이 장군도 마찬가지겠지? 우리에겐 너무나도 거대한 적이 있지 않소? 오랑캐라고 업신여겨 왔건만 조선의 산하를 피로 물들인 왜놈들, 유박불수한 왜놈들이야말로 우리 적이었소. 그대와 내가 다투었던 일들은 그 적과 싸우기 위해 공을 다툰 것이었소. 그렇지 않소?"
원균이 오른 손바닥을 편 채 앞으로 쑥 내밀었다. 어서 그 손을 잡고 길을 나서자는 것이다. 이순신은 허리를 젖히며 손바닥을 노려보았다. 가느다란 불빛이 열린 방문을 통해 흘러 들어왔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자, 갑시다! 이 장군, 어서 내 손을 잡으시오."
그제야 이순신은 무엇이 이상한지를 깨달았다. 원균 손바닥에 손금이 없었던 것이다.
"아버님! 밤바람이 차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아들 열의 동그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 변존서의 뾰족한 턱이 보였다. 이순신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대청마루에 모로 쓰러져 깜빡 잠이 들었던 것이다. 원균의 너털웃음이 귀에 쟁쟁했다.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느냐?"
이열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답했다.
"누가 감히 이곳을 기웃거린단 말씀이옵니까?"
권율은 특별히 군졸들을 붙여 이순신의 처소를 보호했다. 호위병이 아니더라도 백전백승 명장 이순신의 잠자리를 방해할 이는 없었다.
'장주莊周의 꿈이로다.'
초계로 내려온 후 미움이 많이 누그러진 것은 원균이 연합 함대를 부산으로 이끌어 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라 병사로 있으면서 큰소리는 쳤지만, 막상 수군 통제사에 오르고 보니 쉽게 부산을 칠 상황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장군! 오늘 새벽 삼도 수군의 연합 함대가 부산을 향해 떠났다 하옵니다."
"뭣이라고?"
이순신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기어이 원균이 사해로 뛰어든 것이다.
'해안을 따라 견고하게 쌓아 올린 왜성들을 피해 무사히 부산까지 당도하기란 불가능하다. 거제도를 채 벗어나기도 전에 패배의 쓴잔을 마시리라.'
조선 수군, 칠천량에서 궤멸되다
칠월 십사일 어슴새벽
원균은 조선 수군 전부에 출정 명령을 내렸다. 90척씩 나누어 부산 앞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판옥선과 협선을 깡그리 동원한 출정이었다. 바다를 덮은 배는 300척을 훌쩍 넘었다.
칠천량을 지나 웅천과 가덕도 사이로 접어들자 바람이 점점 거세어졌다.
선봉장 최호가 왜 척후선 두 척이 안골포 근처에서 잠시 동정을 살피다가 몰운대 쪽으로 달아났다고 보고해 왔다.
조선 수군이 몰운대를 지나자 바람과 함께 파도까지 높아졌다. 월인이 권했다.
"장군! 배가 너무 심하게 흔들립니다. 이렇게 파도가 높으면 총통도 조준하여 발사하기 힘들고 열을 지어 당파를 하기도 어렵습니다. 회항하시지요.'
원균이 그 말을 잘랐다.
"회항이라니? 아니 되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면 권도원수는 정말 날 겁장이로 몰 게요. 싸워야 하오. 우리는 이길 수 있소. 이겨야만 하오. 전진하라! 더욱 빠르고 강하게 나아간다."
군선들이 부산 앞바다 물마루(수종)을 지났다.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사나운 파도가 군선 옆구리를 때렸다. 배들이 서로 뒤엉켜 부딪힐 위험에 빠졌다. 급히 좌우로 별려 서라는 군령이 내렸다. 부산 앞바다 가까이 노를 저었던 군선 십여 척이 물살에 휩쓸려 대열에서 이탈했다. 협선 십여 척도 표류하기 시작했다.
원균은 고개를 들어 군선들을 살폈다. 의기양양하던 모습은 사라졌고 바람과 파도에 시달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돌아간다. 가덕도에서 잠시 쉬었다가 내일 다시 오자."
군선을 수습하여 가덕도에 이르자 이미 깜깜하 ㄴ밤이었다. 먹구름까지 짙게 내려앉아 달도 별도 없었다. 하루 종일 바람과 파도에 시달린 격군들은 몹시 목이 말랐다. 물 한 그릇 벌컥벌컥 마신 후 아무 곳에나 쓰러져 자고 싶었다. 배가 가덕도에 닿자 장졸들은 우르루 배에서 내렸다. 그리고 한 모금 시원한 물을 그리며 어둠을 달렸다.
타탕!
느닷없이 조총 소리가 메아리쳤다. 매복하고 있던 왜군들이 조선 장졸을 에워싸고 일제히 조총을 쏘아 대기 시작한 것이다. 깜깜한 어둠 속에 장졸들을 어디로 피할 바를 몰랐다. 순식간에 수십 명 장졸들이 쓰러졌다.
"복병입니다. 장군! 피해야 합니다."
"후퇴하라. 배로 돌아간다."
혼란속에 간신히 배로 돌아오자, 원균은 거제도 영등포로 향하자고 명했다.
(2021.05.10, 22:29, 오늘 집자 終불고기 경복궁에서 보리굴비와 불고기 쏘다. 십일만원 소요. 아내와 딸 내외와 로아와 함께 멋있는 장식의 건물에서 맛있는 음식 먹으니 흡족했다. 돈 쓰는 맛이 이런것인가. 아침에 비 조금 오고 죙일 흐릿한 그런 날씨. 딸이 도와주어 이력서 usb 글자 자간 크게 띈것을 바로 잡았다. 이제 모래는 부흥로터리의 모 기업에 접수시킬 예정이다. 거긴 주 5일이다. 지금 이곳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 누가 특별히 뭐라는 사람도 없다. 관리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센터장은 이번에도 귀한 것을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토.일과 공휴일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역겨워져 간다. 되든 안 되든 이력서를 넣기로 작정했다. 경복궁에서 먹은 충주의 밤막걸리는 참 달콤하고 사이다 맛에 옥수수술처럼 노랑색으로 좋았다.)
지금 밖엔 비, 2021년 5월 15일. 어제 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올라왔다. 세상 일이란 어떨 땐 참 번갯불처럼 후다닥 해치운다. 다시 집자하려고 앉으니 상기 위의 글들이 먼 옛날 일만 같다. 민준이는 끝내 현충원에도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큰처형의 광진구 소속 국회의원. 의원. 농협회장 등의 흔적들을 보면서 '멋있다'고 생각했다. 막내처제는 작고 어렴풋했다. 아내는 늘 의젓하고 꼭 필요한 언행의 주도자인 채. 의외로 문학철이 조의금을 보냈고, 상희가 유일하게 장례식장까지 왔다. 곧 전광우샘 찾아뵈려하는데 아내와 딸들이 분위기를 망쳐놓았다. 가서 식사만 하고 조용히 돌아오려 한다. 그 플랜이 꼭 이루어지기를 소원한다. 월인이 말했다.
"영등포도 위험합니다. 가덕도에 복병을 심어 둘 정도라면 거제도에도 복병이 깔렸다고 봐야 합니다. 힘들더라도 옥포와 송미포를 크게 돌아 가배량으로 거쳐 한산도로 가셔야 합니다. 이곳에서 밤을 보내는 것은 적진 한가운데 서서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군사! 너무 겁 먹지 마시오. 웅천과 안곡ㄹ포에 왜군들이 진을 치고 있으니 가덕도에 복병이있다 하여 이상한 일은 아니오. 목이 마른 장졸들이 경계도 없이 상륙했다 당한 것이지. 하나 거제도는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아오. 거제도는 가덕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섬이오. 어찌 이 큰 섬에 복병을 깔아 둘 수 있겠소? 오늘밤 잠시 영등포에 내렸다가 내일 다시 부산으로 가도록 합시다. 한산도로 돌아가자는 얘긴 다신 마오. 난 이번에 꼭 끝장을 봐야 하겟소."
영등포 앞바다에 이르자 월인은 판옥선 추 척을 우선 상륫시켰다. 다른 판옥선들도 서둘러 상륙을 준비할 즈음 다시 조총소리가 울렸다. 월인의 ㅇ예측대로 영등포까지 복병이 깔린 것이다. 원균은 어둠에 묻혀 보이지않는 적을 향해 총통을 쏘고 불화살을 날리며 버텼다. 그러나적이 피해 입는 기미는 없었고, 날아오는 조총 탄환에 우리 군돌만 희생돼 갔다.
칠월 십오일은 새벽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원균은 날이 밝자마자 부산 앞바다로 가고 싶었지만, 최호도 이억기도 바다와 파도를 막아 줄 섬이 없는 부산으로 진격하는 것을 반대했다. 결국 칠천량에서 하루를 더 지내기로 했다. 거제도와 칠천도 사이에 낀 칠천량 바다에서는 바람과 파도를 피할 수 있었다. 풍랑이 너무 거셌던 탓인지 십오일에는 별다른 전투가 없었다. 어제까지 보이던 왜 척후선은 단 한 척도 보이지 않았다.
원균은 복병선 열 척을 따로 영등포 쪽에 세우고 나머지 군선에 휴식을 명했다. 장졸들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원균 역시 갑옷을 입은 채 지휘선 숙소에 쓰러졌다.
칠월 십육일. 날이 밝으려면 아직 시간을 남겨 둔 인시(새벽 3~5시)에 왜 수군 비거도 열 척이 조용히 조선 수군 진영으로 나아왔다. 비거도가 접근했음에도 조선 수군 복병선이 반응이 없자 곧 왜 비선 다섯 척이 마저 빠르게 다가왔다. 선봉을 자청한 도도 다카토라의 군선들이었다. 와키자카 야스하루와 가토 요시아키를 비롯한 왜 수군은 어둠 속에서 칠천도 주위에 집결을 마쳤다.
"불태워라!"
조선 수군 판옥선이 침몰하기 시작했다. 왜선은 조를 짜서 이편 움직임을 훤히 살피며 달려들었지만, 아군은 적의 병력과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한 채 살 길을 찾기에만 급급했다. 쏘아 대는 조총과 번뜩이는 칼빛에 놀란 판옥선과 판옥선이 서로 먼저 달아나려다가 부딪히는 일까지 벌어졌다. 불기둥이 치솟을 때마다 배에 기어오르는 왜병들 모습이 드러났고, 왜도가 시퍼런 빛을 뿌리며 피보라를 일으켰다. 순식간에 수십수백의 조선 수군의 목숨을 잃었다. 죽음을 부르는 궤멸의 바다였다.
"칠천량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벌써 절반이나 침몰했습니다. 앞뒤로 막히면 몰살당합니다."
월인이 소리쳤다.
원균은 고개를 들어 영등포 쪽을 바라보았다. 스무 척 남짓한 안택선들이 넓게 벌려 바닷길을 막았다. 길은 오직 하나. 남서진하여 견내량 쪽으로 나가는 것뿐이었다.
"물러나라. 일단 여길 벗어나야 한다. 퇴각의 북을 쳐라!"
진시(아침 7~ 9시)로 접어들자 칠천량 남단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조선 수군을 막으려는 안택선들과 활로를 뚫으려는 판옥선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함께 움직이면 포위된다. 함대를 둘로 나누어 탈출하자. 나는 견내량 쪽으로 가겠다. 전라 우수군과 충청 수군은 저도 쪽으로 향했다가 전황을 보아 한산도로 귀영하라. 어서 이 계책을 전라 우수사와 충청 수사에게 전하라."
"무슨 소린가? 장졸들이 빠져나가다니?"
"해안에 군선을 내버리고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라고?"
원균은 꼿꼿하게 서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견내량이 가까웠다. 그러나 원균 눈 앞에서 앞서 달아나던 판옥선들이 일제히 화염에 휩싸였다. 이미 견내량을 차단하고 조선 수군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왜군들이 일제히 불화살과 포를 발사한 것이다.
군선들을 모아 반격해 볼 여지도 없이 조선 수군은 삽시간에 궤멸되고 있었다.
화염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원균이 결단을 내렸다.
"춘원포에 상륙하자."
그때 조방장 배흥립이 황급히 배를 몰아 다가왔다. 고물에 올라서서 미친 듯이 소리쳤다.
"전라 우수사게서 전사하셨소이다."
"이억기마저......!"
더 이상 지체할 틈이 없었다.
원균의 지휘선이 춘원포에 대었다. 불화살과 조총과 포탄과 군사들의 아우성과 비명소리가 뒤섞였다. 포가 불을 뿜는 오른쪽 언덕을 멀리비켜나서 왼쪽 해안으로 올랐다. 왜군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원균은 아름드리 해송에 머리를 꽝꽝 처박으며 부들부들 온몸을 떨었다. 조선 수군을 한꺼번에 잃은 패배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장군! 고정하십시오. 속히 피해야만 합니다.
따르던 군사들은 배가 육지에 닿자 제 살 길을 찾아 뿔뿔히 흩어졌다. 우치적이 뒤를 쫓아가서 몇몇을 목 베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군사들은 어떻게든지 살아남아야겠다는 마음뿐이었고, 통제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장군! 먼저 가십시오. 소승이 뒤를 막겠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게요? 군사! 어서 갑시다."
월인은 뒷걸음질을 쳤다. 까맣게 밀려드는 왜병들 비웃음 소리가 귓전을 어지럽혔다.
'통제사는 어디까지 갔을까. 무사히 포위망을 뚫었을까.'
서산 대사의 독수리눈이 언뜻 떠올랐다.
'큰스님!
아무래도 소승이 먼저 떠나야 할 듯합니다. 변변한 작별 인사도 여쭙지 못하고 먼저 가는 소승을 용서하십시오.'
열 명이 더 쓰러졌다. 남아 있는 열 명도 허벅지나 옆구리에 총을 맞아 제대로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월인은 천천히 몸을 돌려 타오르는 판옥선을 바라보았다. 삼도 수군을 통솔하던 통제사의 지휘선이 넘실대는 불꽃 속에서검은 재를 날리며 형체를 잃어 가고 있었다. 월인은 장검을 내려놓고 지휘선을 향해 두 손을 모은 다음 이마가 무릎에 닿을 만큼 허리를 숙였다.
원균 일행은 편편한 산길을 외면하고 후미진 도린곁을 택하여 한참을 달렸다. 어느덧 군사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원사웅, 우치적, 천무직, 무옥, 원균 다섯 사람만이 울창한 수풀을 헤치며 나아갔다. 너덜경을 오르며 원균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빠르게 발을 놀렸지만 자꾸 뒤로 처졌다. 곤장을 맞은 지 채 열흘도 도기 전에 산을 타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원균이 우치적과 천무직 등을 힘껏 떼밀었다. 두 사람은 세 번 네 번 뒤돌아보며 산등성이를 올랐다. 원균은 천천히 장검을 빼어 들었다. 몸을 꼿꼿하게 세운 채 발길을 돌려 성큼성큼 도랫굽이를 내려왔다.
팔과 가슴에서 피를 흘리며 원균이 다가서자 왜병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고함이 오르고 다시 한 번 조총 총구가 원균을 겨누었다. 원균은 가슴을 쭉 펴며 소리쳤다.
"이놈들! 모가지를 분질러 줄 테다."
탕탕탕탕
조총이 불을 뿜었다. 원균의 양 가슴에서 동시에 피가 뿜어져 나왔다. 비대한 원균의 몸뚱이가 끝내 벌렁 뒤로 나자빠졌다.
7권 終
안온한 삶을 영영 등지다
정유년1597년 칠월 십팔일 아침. 이순신은 정좌하여 서책을 넘기고 있었다. 지난 사월 순천에 도착한 직후부터 읽기 시작한 『장자』였다. 초계로 숙소를 옮긴 후에도 계속 정독해 오고 있었다. 『사기』에 따르면 장자는 송나라 사람으로 몽 이라는 땅에서 칠원을 관리하며 한뉘를 보냈다고 한다.
"이 세상에 가을 짐승의 털끝보다 큰 것은 없으니 태산은 작다고 할 수 있다.
天下莫大於秋毫之末(천하막대어추호지말)
而大山爲小(이대산위소)
항상 크거나 작은 것도 없고 항상 선하고 악한 것도 없으며 항상 행복하고 불행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이순신은 지극히 가벼워진 자기 처지를 견디는 힘을 장자를 읽으면서 발견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새벽에 견내량으로 갔던 날발로부터 삼도 수군이 기어코 전멸했다는 보고를 받은 것이다.
'아, 어이하여 이런 참패를 당한단 말인가!'
이순신은 또 장자를 읽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림자를 떨어뜨리지는 못한다. ......그늘로 들어서면 그림자는 사라짐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림자를 떨어뜨리지는 못한다. ......그늘로 들어서면 그림자는 사라짐다. 그림자는 사라짐다. 그림자는 사라진다."
남궁두가 호방하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웃음을 뚝 그친 후 말했다.
"자기자신을 이겨 승리를 얻겠다, 이 말이지? 무기를 쥐고 적과 맞서는 일을 득도를 위한 수행의 길로 받아들이니, 산림으로몸을 숨길 필요가 없겠으이. 이제 자넨 도자기를 구울 때나 서책을 읽을 때나 활과 칼을 들고 적군과 맞설 때나 한결같은 자세를 가지게 되었군그래. 늙지도 죽지도 않는 법을 전하려 했건만 자넨 더욱 죽음에 가까이 다가갈 운명인 모양일세. 어깨를 부딪혀 그 죽음을 부수고 나아가는 것이 자네의 길이라면, 그 고통의 길을 또 자처하겠다면 그리하게. 자네가끝까지 원하는 바를 이루기를 기원하겠으이."
권율이 한산도를 손으로 짚었다. 이순신이 단호하게 고개를 젓더니 그보다 훨씬 왼쪽에 있는 완도를 가리켰다.
"최소한 여기까지는 밀린다고 봐야 하오이다."
"그렇다면 남해 바다를 모두 빼앗기는 형국이 아니오?"
"그렇소이다."
"그대가다시 수군을 맡는다고 해도 그렇단 말이오?"
순간 이순신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권율의 속마음이 은연중에 드러안 것이다.
"다른 수가 없소이다. 보화도나 고금도에서 군선을 만들고 군사를 모으고 무기를 다듬은 후에라야 왜선과 맞설수 있소이다. 그때까지 남해 바다는 왜 수군이 점령할 수밖에 없소. ......그리고 이 몸도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소이다."
권율은 물러서지 않았다.
"성심이 잠시 흐려진 것은 원 통제사가 그대를 모함하는 장계를 줄기차게 올렸기 때문이오. 이제 원 통제사도 없고 수군을 거의 잃다시피 한 지경이라, 필경 전하께서도 마음을 돌리실 것이외다. 아무 염려 마시오. 내 도체찰사 영감과 조정 대신들께 청하여 그대가 꼭 다시 통제사에 오르도록 하리다.'
"도와주오. 이 장군! 어명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오늘 밤에라도 당장 조선 수군의 상황이 어떠한가를 살펴주었으면 하오. 부디 밤을 좇아 노량으로 가 주시오."
송대립을 비롯한 아홉 명의 군관을 내어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권율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북녘에 도사린 전운
칠월 이십일일.
조선이 원병을 청하자, 명나라는 병부 좌시랑 형개를 총독 군문으로 삼고, 우첨도 어사 양호를 경리 조선군무, 도독 마귀를 총병으로 삼았다. 그리고 오만여 명군이 속속 압록강을 건너왔다. 부총병 양원은 남원, 유격장군 진우충은 전주까지 내려가서 왜군과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청향아!"
허균은 복긋한 젖가슴을 어루만졌다. 윗몸을 더욱 앞으로 밀착시키며 청향이 대답했다.
"에, 나리.'
"너는 이곳이 좋으냐?"
청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그리 좋으냐?"
"산도 높고 강물도 거울처럼 깨끗하고......"
"청향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다시 물었다.
"청향아! 우리 이대로 도망칠까? 심심산천으로 들어가 화전이나 일구며 살까?"
청향이 검지로 그 목을 어르더니 볼에 입을 맞추었다. 곱다. 금강초롱처럼 곱다.
"내가 못할 성싶으냐? 너만 좋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잒나."
청향의 눈가에 웃음이 감돌았다.
"나리, 나리는 손곡 선생과 다른 분이세요. 소첩은 그걸 알고 있지요. 나리는 노자와 장자의 세계를 동경하시지만 결코 속세를 등질 분이 아니에요. ......한데 나리께서 그들을 버리고 심심산천으로 들어가시겠다고요?"
곤양에서 출사할 뜻을 적어 보내다
칠월 이십이일 갓밝이.
이순신은 밀린 잠을 잠시 접어 두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상쾌한 남실바람이 온몸으로 훅 밀어닥쳤다. 멀리 언덕에 각시취가 어른거렸다.
십팔일 밤에 초계(합천)을 출발한 이순신 일행은 폭우 속에 길을 재촉해 삼가, 단성(산청의 초계와 삼가를 함친) 진주를 지나서 어제 아침 곤양(사천)에 도착했다.
"격군 수는?"
"사, 사백 명이 조금 못 되오이다."
"사백이라고? 판옥선 네 척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숫자가 아닌가? 다른 군사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흩어져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서애 대감께 목숨을 버려 출사할 뜻을 알리리라.'
눈을 떴다. 붓을 들어 단심을 내려적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곤양의 밤하늘을 떠나지 않습니다.
조선 수군이 칠천량에서대패한 후 왜군이 경상 우도를 지나 전라 좌도까지 넘보고 있으니, 이제 조선은 승하느냐 패하느냐의 위급한 때 입니다. 그동안 영상께서 이 전쟁을 하루라도 빨리끝내기 위해 밤낮없ㄷ이 노력하셨다는 것을 소장은 잘 압니다. 하나 정유년 왜군이 다시 경상 좌도로 건너온 후부터는 더 이상 좋은 말로 과거의 은혜를 일깨우고 귀한 재물로 창검을 치우도록 권하는 자리는 헛될 뿐입니다.
소장은 본디 가난한 부부로 영상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장졸들을 이끌고 군선에 올라작은 재주를 세상에 드러내지도 못했고 당상관인 수사이 반열에 오르는 영광도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소장이 목숨을 구하고 도원수 막하에서 백의종군 할 수 있었던 것도 영상께서 지난 인연을 가벼이 여기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소장 감히 한 가지 청이 있어 어리석은 붓을 들었습니다.
바다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습니다.
이 뜻을 조정에 간곡히 깨우쳐 주십시오. 생각하건대 이제 수군이 절멸하였으니 바다를 버리고 수군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 논의가 시작될까 두렵습니다. 우리가 바다를 포기한다면 왜군들은 비선을 타고 동해와 남해 그리고 황해로 나뉘어 동시에 우리 장돌과 백성을 괴롭힐 것입니다. 바닷길을 열어 두고 왜군과 맞서 승전하는 것을 꿈꾸는 것은 문이란 문은 모두 열고도 도둑맞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패전소식이 퍼지면민심이 어지럽고, 이 틈을 타서 흉악한 무리들이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변방의 장수들을 흔들 것입니다. 이 전쟁을 끝내지 못한 잘못을 칠천량에서 전사한 ㅅ구군에게 돌릴지도 모릅니다.영상께서 그런 자들에게 임진년부터 지금까지 수군의 전과를 상세히 가르쳐 꾸짖어 주십시오. 수군이 없었다면 명군이 압록강을 건널 시간을 벌 수 없었을 것이고 수군이 없었다면 조정이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는것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 사정은 크게 다르지않으니, 수군을 더욱 강건하게 만들어 남해 바닷길을 지키는 것만이 한 줌 왜군이 다시 준동하는 것을 막는 길임을 살펴 주십시오.
소장 성심을 흩은 죄 또한 아직 씻지 못하였으나 조선 수군과 함께 저 푸른 바다에 끝까지 머물기를 감히 청합니다. 단 한번도 지지 않았던 지난 전투를 되새기며 오직 승리할 방도를 찾아 섬과 섬 사이를 오가고 싶습니다. 출사를 염원하는 소장의 마지감 바람을 헤아려 주십시오.
생사도, 빈부도 명예와 불명예도 소장과 무관합니다. 소장은 오직 바다만 바라보고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피울음에만 답하려 합니다.
류성룡이 이항복의 손등을 토닥거리며 웃었다.
"허허허! 괜찮다는데 왜들 이러시오? 내 나이 겨우 쉰여섯이오이다. 물러날 나이는 아니지요."
"......명나라 원군은 조선 수군이 남해안을 굳게 지킨다는 전제 아래 남원을 비롯한 절라도에 주둔하지 않았는가. 도독 마귀가 이끈는 군사가 만여 명. 부총병 양원이 이끄는 군사도 삼천 명을 넘지 않는다. 한데 왜 수군이 경상 전라 바다를 완전 장악하고 강화도 근처까지 배를 몰아 들이친다면 어찌 우리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겠는가. 하삼도가 적 수중에 들어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로구나."
윤두수가 맞장구를 쳤다.
"속히 강화도에 군사들을 배치하여야 하옵고 의주 방면으로 논의되던 몽진 계획도 취소해야 하옵니다."
"그렇지. 강화도로 올라올 왜선이면 평안도까지 못 올라갈 이유가 없지 영상! 어찌해야 하겠는가?"
요즈음 선조는 아들 문후를 받을 때마다 점점 광해군이 두려웠다. 이 영특하고 겁 없는 아들은 분조를 이끌면서 하삼도 민심을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젊고 똑똑한 신진 관료들의 지지도 받고 있다.
별자리를 읊어 목숨을 살리는 법
새로이 모여드는 장졸들
팔월 삼일 어슴새벽.
어둠을 뚫고 달리는 이영남은 발걸음이 가볍기 그지 없었다. 어제 아침 옥과를 출발한 이후 왜군 복병을 피해 산등성이만을 타고 하루 종일 달렸다.
이영남은 이순신이 통제사로 복귀하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매일 매일을 기대 반 실망 반으로 보내다 보니 점점 딴 생각이 들었다. 이 기회에 수군을 없애고 육군만으로 왜적과 맞서야 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이순신은 운곡 정개산성 근처, 아름드리 검팽나무가 벗들어진 손경례 집을 숙소로 쓰고 있었다. 이영남은 단숨에 정개산성으로 내달렸다. 작은 마당에 꽃구절초가 피어 있는 허름한 초가집에 이르니 어둠이 걷혔다. 굴둑새 빙빙 도는 마당으로 드렁서는데 마루에 걸터앉은 사내가 철퇴를 휘돌리며 막아 섰다.
"멈춰! 누구나?"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배흥립이 소리쳤다.
"장군! 속히 나와 보십시오. 선전관이 옵니다.'
이영남이 먼저 방문을 열어 젖혔다. 선전관 양호가 말에서 내렸다.
"속히 나와 어명을 받으시오."
"......이제 특히 그대를 상복을 입은 채로 기용하는 것이며, 또한 그대를 평복 입은 곳에서빼어 올려 옛날같이 전라 좌수사 겸 충청.전라. 경상 등 삼도 수군 통제사로 임명하노니, 그대는 도임하는 날 먼저 부하들을 어루만지고 도망간 자들을 찾아다가 단결시켜 수군 진영을 만들라......."
운곡에서 회령포까지 내륙을 비스듬히 가로질러 붉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이미 배흥립과는 부임지까지 가는 길을 의논한 듯했다. 그러나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열흘이 넘는 육로로 가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지금 왜군은 남원을 치기 위해 서진을 시작하지 않았는가.'
"급히 가 봐야 소용없는 일이야. 배만 덩그러니 있을 뿐. 배를 저을 격군도 활을 쏠 궁수도 없지 않나. 가면서 군사도 모으고 옛 부하도 만나고 군량미도얻고 , 일거삼득이 아니겠는가?"
정오 무려브, 지난달 노량까지 동행했던 송대립을 비롯한 군관 아홉 명과 함께 길을 나섰다. 밤새 말을 몰아 두치에 이르니 동이 터 왔다. 팔월 사일 오후 구례로 들어갔고 오일에는 곡성에 도착했다. 고향으로 돌아와 있던 수군들이 삼도 수군 통제사 이순신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속속 대열에 합류하였다.
남원으로 향하는 왜의 선봉대는 이순신과 한나절 정도 차이를 두고 맹렬히 뒤쫓아 오고 있었다.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이영남은 속히 남진하여 뱃길을 이용하자고 다시 아뢰었으나 이순신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이순신은 오후에 조양창을 둘러보러 나섰다가 기어이 낙마를 하고 말았다. 원균이 남긴 유언이 가슴을 뒤흔든 탓이었을까. 이순신은 그 밤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고열에시달리면서 헛소리까지 해 댔다. 그로 인해 팔월 십칠일 아침까지 아흐레를 보성에 머물렀다.
팔월 십오일에는 선전관 박천봉이 가져온 유서를 받았다. 수군 패잔병을 수습하여 도원수 권율에게 의탁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순신은 병든 몸을 일으켰다.
"아직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장계는 하루 더 쉬고 쓰십시오."
이순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조정에서지금 수군을 없애려고 하지 않느냐? 바다를 지키지 못하면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자 어서 지필묵을 가져오너라.'
"임진년 이후 왜적이 감히 하삼도를 범하지 못한 것은 수군이 바닷길을 막았기 때문입옵니다. 이제 수군을 없앤다면 왜적은 너무나 다행스럽게 여기며 단숨에 호남을 거쳐 한강으로 올라갈 것이오니, 신은 이것이 두렵나이다. 신에게는 아직도 군선 열두 척이 있사오니, 신이 죽지 않는 한 왜적이 감히 조선 수군을 업신여기지 않을 것이옵니다."
팔월 십칠일, 이순신은 가마에 의탁하여 보성을 떠났고 백사정을 지나 군영 구미에 이르렀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생각을 해 보세요. 지금 회령포에 남아 있는 군선과 군사들은 모두 경상 우수영 소속입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원 통제사와 생사로락을 함께 했던 장졸들이지요. 배 수사를 따라 몸을 피하긴 했으나 그 누구보다도 원 통제사를 믿고 딸던 사람들이다 이말이지요. 그들은 아마 이 통제사가 부린 간계로 원 통제사가 목숨을 잃었다고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통제사께서직접 회령포로 가시지 않고 전라도를 돌며 군사를 끌어 모은 것도 그 반감을 힘으로 누르기 위한 포석이지요. 하나 어찌 군사들을 힘만으로누를 수 있겠어요? 궁극적으로는 그들 역시 이 나라 조선의 자랑스러운 수군들이 아니겠습니까? 해서 우리는 그들을 따뜻하게 품을 필요가 있어요. 앙금일랑 말끔히 씻고 말이오, 이 조방방! 원 통제사가 없는 지금 과연 누가 경상 우수영 장졸들을 다독더릴 수 있겠소? 배 수사라고 생각하시오? 배 수사는 아니오. 원 통제사에게 등을 보이고 줄행랑을 친 위인이니 우리보다도 더 장졸들 신망을 잃었소."
(2021.05.16 22:44 집자 終, 당신께서 그렇게 배려하신 듯이 느껴집니다. '나를 밟고 건너 가거라!' 당신 덕분에 5일의 휴가를 얻어 이처럼 쉬고 있습니다. 비가 어제부터 그리고 오늘 하루종일 내렸습니다. 내일도 내린다고 하니 과연 이 휴가를 나는 개인을 위해 방탕하게 쓸 수 없습니다. 나를 밟고 가라! 올라가라! 그 말은 어쩜 진영 처남을 위한 말이 아닐까요...... 그와 함께 담양의 시장을 걸었던 추억과 은행 출금의 기억. 길고 큰 다리 위의 꽃나무들을 팔던 여인. 뒷털이 어느덧 쉬어버린 진영 처남. 그러나 제사를 지내고 화장을 하면서 의젓하던 진영 처남. 과연 장남은 장남이더이다. 당신은 당신의 조용한 생애를 통틀어 가장 값비싼 돈을 큰아들에게 주신 것 같습니다. 자식들은 어버이를 죽이고 일어서는 그런 존재이니다. 마치 ~~거미가 죽음으로써 자식들의 먹이로 자신의 몸을 내놓는 것처럼! 나는 이번에 그런 생각을 줄곧 하였습니다.)
장례식 후 5일만에 출근(15:20 출근. 한팀장 새 부장과 인사 ) 어찐된 일이고? 머선129ㅋㅋ 제법 8권을 입문하여 썼는데 다 없어져버렸넹~~~
안온한 삶을 영영 등지다
정유연1579년 칠월 십팔일 " 이 세상에 가을 짐승의 털끝보다 큰 것은 없으니 태산은 작다고 할 수 있다." 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적잖이 위로를 받았다. 이순신은 지극히 가벼워진 자기 처지를 견디는 힘을 『장자』를 읽으면서 발견했다.
새벽에 견내량으로 갔던 날발로부터 삼도 수군이 전멸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삼도수군통제사 원균, 전라 우수사 이억기, 충청 수사 최호가 전사했으며 경상 우수사 배설만이 살아서 후퇴했다는 것이다.
이순신은 또 『장자』를 읽었다. 진시에서 사시를 지나는 동안 책장을 넘기지 않고 오직 한 부분만을 뚫어져라 읽고 또 읽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림자를 떨어뜨리지는 못한다. ......그늘로 들어서면 그림자는 사라진다."
이순신에게는 참으로 많은 그림자가 따라다녔다. 백의종군 두 번, 용기 없는 장수, 패배를 두려워하는 장수, 문신들에게 아부하여 단숨에 벼슬이 오른 장수, 무군지죄를 범한 장수, 나라 안위보다 개인 영달을 좇는 장수......그를 따라다니는 치욕스런 이름들이었다.
권율이 한산도를 손으로 짚었다. 이순신이 단호하게 고개를 젓더니 그보다 훨씬 왼쪽에 있는 완도를 가리켰다.
권율은 물러서지 않았다.
"성심이 잠시 흐려진 것은 원 통제사가 그대를 모함하는 장계를 줄기차게 올렸기 때문이오. 이제 원 통제사도 없고 수군을 거의 잃다시피 한 지경이라, 필경 전하께서도 마음을 돌리실것이외다. 아무 염려 마시오. 내 도체찰사 영감과 조정 대신들께 청하여 그대가 꼭 다시 통제사에 오르도록 하리다."
"도와중. 이 장군! 어명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오늘 밤에라도 당장 조선 수군의 상황이 어떠한가를 살펴주었으면 하오. 부디 밤을 좇아 노량으로 가 주시오."
송대립을 비롯한 아홉 명의 군관을 내어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권율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논의를 끝마치고 마당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잠시 남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거기 어딘가에서 나뒹굴고 있을 조선 수군들 시체가 눈에 선했다.
(오늘 집자 終. 21:27. 순찰 예정. 현재 기전실)
첫댓글 3권 終.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참 오랫동안 붙들고 놓고 있지 못하구나 나는.
일본군과의 7년전쟁이 임진왜란이고 그 이후
조선은 쇄국정책과 파당으로 자멸해 갔고
일본은 열강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외국문물을 받아들여 강대국이 되었다
나는 일본의 그역사의 변환점을 '명치유신'으로 기억한다
이후 우리는 점차 힘을 잃어 갔고 동학혁명이 터졌으며(이른바 호민이다)
일본은 조선의 칭병을 빌미로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일으켜 승리한 후
1910년 한일합방으로 결국 조선을 잡아먹히고 말았다.
우리는 그런 일본국과 이웃하면서 오늘을 살고 있다
독도는 자기네땅이라고 증등교과서에 버젓히 싣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고
일본우익들은 혐한이 하늘끝까지 닿아 있구,ㅡ조샌징 조선으로 돌아가라!고 외친다
여기에 서울대교수였던 이머시기는 일본우익의 자금을 받고
일본의 조선식민지를 근대화 시켰다...고 일본 우익의 대변자 노릇을 한다
그래도 어느 누구도 그 책과 인간들을 조리돌림하지 못하는 이상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언론의 자유가 그런 것인가??
2021.05.06 목요일
J타워 옥상의 아침에 떠오르는 불덩이를 보며 체조하는 남자
새삼 군대가 고마운 것이 '국군도수체조'ㅎ가 거의 기억난다
2회를 하고나면 호흡이 거칠어진다
나이 육십일세가 진행되는데, 근육손상됐던 우슬이 거리낄 정도로 굽혀지지 않고
왼손 엘보는 턱걸이하다가 근육이 하나 끊어진 모양으로 횡행이 부자유하다
목이 조이는 것이 마치 담배핀 원인이 되어 암인가? 마음 졸였는데
인근 3F의 의원은 '인후두 역류질환'이라고 개구리물갈퀴를 보여줬다
약을 열흘 쯤 먹었더니 말끔히 나았다 그래서 나 요즘
커피 안 먹는다는 거
종합병동의 세상!
어머니가 늘 여기저기 아프고 쑤시다며 끙끙대실 때
짜증나던 젊은날의 무지함을 어이할꼬
내 몸이 조금씩조금씩 어머니의 몸을 닮아가고 있으니
2021.05.08 어버이날
곧 세시에 쩡이네서만나 카페를 가기로.. 아내는 그리로 오는가
집에 와서 옷 갈아입어얄텐데..
큰딸은 저녁에 못 오리라고 했다
카네이션이 식탁에서 연한 분홍으로 곱고 어여쁘게 놓여 있다.
바람이 많아 화분을 베란다 밖 선반에서 들이었다.
2021.05.16
비가 종일 내렸다.
올 봄엔 비가 조금 많이 내린다 싶다
5월에도 추워서 농부들은 다시 모종을 해야 했지
나는 5일의 휴가를 얻어서 이틀은 썼고, 이틀과 반나절을
비속에서 보내야 할 듯하다
오후 5시경에 사돈네와 만나 로아를 두고 웃고웃으며 한 때를 보냈다
사돈처녀가 만나는 청년은 사기꾼 같이 보였으나 일견에는
나름대로 한 일가는 꾸밀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확한 관상을 볼 수 없게 너무나 가깝고 조명이 환했다
'이게 아닌데' 장사익의 깊은 음성의 볼륨으로 노랠 듣는다
지금 내게 J타워의 일상은 없어져버렸다
이게 아닌데... 일에 몰려서 사는 게 아닌데
그런데 이제 휴가 5일을 썼으니 그것도 쉽지 않게 되었다
태섭이가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고 못 와서,'
2021.7.20
김탁환의 상기 <불멸의 이순신>은
어수룩하고 엉성한 플롯의,
소장할 가치가 전혀 없는 잡동사니 나부랭이 짬뽕소설 그 이상은 절대로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