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재개? 목욕재계! 계제, 게재, 게제, 개재, 개제, 그리고 내 이름
오늘자 중앙일보 우리말 바루기에 ‘목욕재계(沐浴齋戒)’를 ‘목욕재개’ 혹은 ‘목욕제계’로 잘못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내용이 다뤄졌다. ‘설마 그럴까?’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실제 잘못 쓰인 경우가 많았다.(물론 단순 오타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또 한 신문사 고정물에 ‘목욕재개’라는 것이 있었다. 이 고정물은 물론 오타는 아니고 글자 그대로 ‘목욕을 다시 이야기한다.’라는 의미로 붙인 제목이다. 이런 식의 제목 붙이기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 논하지 않는다.
‘목욕재계’를 다룬 글을 읽다 내 이름 ‘계재’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나는 항렬자가 ‘재(宰)’인데, 8촌 이내의 형제들이 40명 남짓 된다. 그 가운데 막내다. 그렇지 않아도 부르기 좋은 이름을 짓기가 어려운 돌림자인데 그나마 좀 나은 것들은 형님들이 모두 썼으니 내게 돌아올 수 있는 이름이 몇이나 되었겠는가? 아무튼 그래서 ‘계(啓)’자를 골라 ‘이계재’가 되었다.(당연히 내가 고른 것은 아닌데 문맥상 마치 내가 고른 것처럼 읽힌다.)
학교에 들어가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내 이름을 불러줘야 하는 경우가 무척 많았다. 그런데 내가 이름을 불러준 뒤 제대로 썼는지 확인해보면 열에 아홉, 혹은 그 이상은 잘못 쓴다. ‘계’는 ‘게’가 되거나, ‘개’(설마 犬을 생각하며 쓴 것은 아니겠지)가 되기도 하며 심지어 ‘괴’가 되기도 한다.(이 경우는 내 발음이 문제인지, 상대방의 듣기능력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재’는 제대로 쓰는 사람도 제법 되지만, ‘제’로 쓴 때가 더 많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 국어책에 ‘계제(階梯)’라는 낱말이 나왔다. 이 정도면 독음문제로 시험에 나올 만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출제되었다. 시험이 끝난 뒤 몇몇이서 책상에 걸터앉아 한담(閑談)을 나누는데 한 친구가 “계재야, 네 이름 생각하면서 썼다.‘라고 한다. ”그럼 너 틀렸다, 임마. 어떻게 썼는데?’라고 물었더니 ‘계제’라고 썼단다. 이런! 만난 지 지금 몇 달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내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니! 아무튼 이 이후로 누군가 내 이름을 정확하게 적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절대 서운해 하지 않기로 했다.
내 이름 ‘계재’는 국어사전에 등록된 단어가 없다. 그런데 내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말들은 빠짐없이 등록되어 있다. 계제는 앞서 이야기 했고, 게재, 게제, 개재, 개제, 심지어 괴재까지. 어떤 낱말들은 한자표기를 달리하며 여러 뜻이 있기도 하다. 쓸모없는 글이 길어지는 악덕(惡德)까지 더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 혹 궁금하여 찾아보실(그럴 분이야 없겠지만) 분들을 위하여 네이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검색되는 낱말의 풀이를 덧붙여 놓는다.
#마무리 전 에피소드 1: 이렇게 어려운 ‘이계재’라는 이름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꽤 여러 사람이 나온다. 물론 같은 이름을 지닌 사람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다.
#에피소드 2: 한글 이름뿐 아니라 한자표기인 ‘啓’도 흔히 쓰이는 글자는 아니다. 그런데 한산이씨 항렬자 중에 이 글자가 있다. 그래서 내 이름을 보고 ‘한산이씨임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 사람은 당연히 한산이씨다. 그 집안사람들 외에 ‘啓’가 그 집안 돌림자인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는 ‘네가 물어보는 이유를 다 알고 있다.’며 빙그레 웃는다. 그러면서 속으로 그런 생각도 한다. 아마 내가 당신보다 한산이씨 묘역을 더 많이 가봤을 걸 ㅎㅎ
계제(階梯) [명사] 1. 사다리라는 뜻으로, 일이 되어 가는 순서나 절차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된 형편이나 기회. 3. <운동>기계 체조에 사용하는, 옆으로 비스듬히 세운 사다리.
계제(階除) [명사] [같은 말] 층계(層階)(걸어서 층 사이를 오르내릴 수 있도록 턱이 지게 만들어 놓은 설비).
계제(計除) [명사] 셈을 따져서 제할 것을 제함.
게재(揭載) [명사] 글이나 그림 따위를 신문이나 잡지 따위에 실음.
게제(偈諦) [명사] <불교> 부처의 공덕을 찬탄하는 게구(偈句)의 참뜻이라는 뜻으로, 불교의 오묘한 진리를 이르는 말.
개재(介在) [명사] 어떤 것들 사이에 끼여 있음. ‘끼어듦’, ‘끼여 있음’으로 순화.
개재(開齋) [명사] <가톨릭> 단식재와 금육재 기간이 지남.
개제(改題) [명사] 제목을 바꿈. 또는 바꾼 제목.
개제(皆濟) [명사] 1. 빌렸던 돈이나 물건 따위를 남김없이 다 갚음. 2. 모든 일을 남김없이 정리하여 끝냄.
개제(開剃) [명사] [북한어]<역사> ‘개체3(머리의 가장자리를 깎고 정수리 부분의 머리털만 남겨 길게 땋아 늘임)’의 북한어.
개제(開題) [명사] <불교> 경론(經論)의 제목을 설명하고 내용의 대강을 풀이함. 또는 그런 것.
개제(開霽) [명사] 내리던 비가 멎고 하늘이 활짝 갬.
개제(愷悌/豈弟/愷弟) ‘개제하다(용모가 단아하고 기상이 화평하다)’의 어근.
개제(介弟) [명사] 남의 아우를 높여 이르는 말.
개제(改除) [명사] <역사> 감원 또는 기구 개편 따위로 말미암아 벼슬아치를 전임하거나 전보하던 인사이동.
개제(開除) [명사] 1. 널리 열어서 헤침. 2. 장애물 따위를 헤쳐 없애 버림.
괴재(瑰才) [명사]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
첫댓글 혹시나 이 글을 읽으신다면 오히려 제 이름이 더 헷갈릴 수 있겠습니다.
닉도 시나브로 쓰려다 밀려서 시니브로가 가고 이름도 ㅎ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 풀빛님 감사합니다. 50년 넘게 써와서 정도 많이 들었습니다~~
나는
빙기.뱅기 심지어는 변기로. . .
헉! 저는 쥔장님 이름에서 그런 생각 한번도 안해봤는데요...
'빙기'나 '뱅기'는 그래도 좀 나은데... '변기'는 좀 심했네요. 경상도에선 '변기'나 '병기'나 발음이 그게 그거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시니브로님의 이름때문에 머리가 어질어질....ㅎ...
제 이름은 용민(鏞珉)입니다...좋습니까?
알고 있었습니다. 뜻이야 잘 모르지만 발음하기는 참 좋은 이름이지요~~
점점 재상이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이름을 직역하면 그렇게 풀 수도 있지만, 그 길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ㅎㅎ
참 재밌네요. ~~그런데 다 읽고나서는~~이름이 뭐랬더라??
그렇다니까요 ㅎ
재미있어 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도 읽고 나서 시니브로님의 이름을 기억 못해 다시 찾아 보았습니다. ^^
조금이라도 재미있으시라고 적어본 글이니 성공했습니다 ㅎㅎ
ㅎㅎ 저도 할아버지 형제분이 12분이시고 막내인지라... 돌림자 夏에 붙일게 없어... 一, 동생은 二... 둘 더 있었으면 하사... ㅎㅎ
성은 제가 모르지만 하일이란 이름은 좋습니다^^
이름에 얽힌, 재밌고 알찬 글입니다. 제 전화 연락처를 보니 저는 '시나브로님이계재'라고 성함은 맞았으나, 닉네임을 틀리게 적어 놨네요. ㅎㅎ
시나브로가 더 좋아요 ㅎ
지금은 카페 닉을 바꿀 수는 있는데 그럼 또 불편해질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