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 초고속 인터넷만큼 빨리 달려온 조승우(22)와 손예진(20). 연극과 영화, TV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숨 가쁘게 자기 영역을 넓혀온 두 청춘 배우가 <클래식>에서 만나 60년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순백의 사랑을 나눴다. 백일몽 같은, 그래서 더 아픈 사랑을 연기한 탓에 여전히 미열에 시달리고 있는 두 배우. 그들이 현재의 한 여자가 과거 자신의 어머니가 나눴던 사랑을 되풀이한다는 ‘클래식’한 사랑을 얘기한다.
태양이 바다에 미광을 비추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희미한 달빛이 샘물 위에 떠 있으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손예진(이하 손) 사람들이 그러대. 내가 맡은 두 역할 중에 교복 입은 60년대의 주희 역이 더 좋다고. 조승우(이하 조) 클래식한 느낌이 어울리니까 그러는 거 아니겠어? 손 클래식한 게 아니라 촌스럽다는 얘기겠지.(웃음) 겉모습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오빠나 나나 생각은 좀 클래식한 면이 있지 않아? 난 사실 과거의 주희나 현재의 지혜 모두 애착이 가. 과거 신 찍을 때는 과거에 묻혀서 과거만 있는 것 같았고, 현재를 찍을 때는 또 다르더라. 과거와 현재이기 때문에 감정적인 차별점을 어떻게 잡을까 은근히 걱정은 했었는데, 결국 사람의 감정은 다 똑같은 거 같아. 게다가 이 영화 속의 두 인물은 엄마와 딸의 사이기 때문에 성격이나, 이런 게 그다지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그래도 조금씩 다르게는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어. 나한테는 두 인물 다 매력이 있거든. 조 내가 맡은 준하라는 인물이 60년대 순수한 문학 소년이다 보니까 60년대의 느낌을 가지려고 어떤 노력을 했냐고들 많이 묻더라고. 예진씨도 마찬가지겠지만 내 경우엔 60년대의 정서를 가져가기 위해 음악을 많이 들었어. 흘러간 올드 팝들이나 60~70년대 음악들을 곽재용 감독님이 4장짜리 CD로 만들어준 거 있잖아. 그게 그 시대의 정서로 접근해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아. 손 인물이 가진 시대성이라는 건 배우가 만들기보다는 카메라나 연출의 몫인 것 같아. 물론 옛날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빠 같은 경우엔 ‘뭐뭐 했군’ 따위의, 좀 클래식한 대사를 했고 나도 약간은 클래식한 식으로 말하긴 했지만, 굳이 그 시대를 알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고 신문을 찾아서 분석하거나 그러지는 않았거든. 조 사실 그런 것보다 감정을 잡아가는 게 더 힘들었어. 나 같은 경우엔 촬영 막바지에 감정을 잡아야 하는 신이 몰려 있었잖아. 주희와 헤어지면서 베트남으로 파병되는 신도 그랬고. 어쩔 땐 너무 울어서 집에 돌아오면 머리가 아플 정도였으니까. 우는 거 하면 예진씨가 일가견이 있던데. 집중력이 대단하더라고. 손 몰입할 수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다른 것 같아. 단지 슬픈 감정이 아니라 복합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우는 게 그냥 우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미묘한 감정을 알아서 표현해내야 하니까 너무 힘들었어. 게다가 주위에 보는 사람들이 많을 때 7~8시간 동안 감정을 끌어올린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지. 근데 난 오히려 끝나고 나니까 더 마음이 그런 것 같아. 오빠하고 사진 찍고 그럴 때 촬영할 때가 생각이 나서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그래. 조 주희가 측은해서? 손 주희가 측은한 게 아니라 준하가 더 측은해서 그래. 근데 준하는 왜 주희를 놔두고 군대에 가버렸을까? 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 상투적인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주희를 사랑하고, 또 주희를 사랑하는 친구 태수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현실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스스로 그냥 떠나는 거지. 잠정적으로. 손 준하는 주희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쟁취하고픈 욕구보다는 주위에 대한 배려가 더 강했기 때문에 순수해 보이는 것 같아. 그게 과거의 사랑이었기 때문에 순수로 포장되는 건 아닌 거지. 왜냐면 과거나 지금이나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요즘 사람들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 나만 해도 그렇고. 하지만 준하의 사랑은 말 그대로 베푸는 사랑이잖아. 사실 정말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은 상대방을 가지고 싶어하고 소유하고 싶어하거든. 준하의 사랑은 그걸 초월한 사랑인 것 같아. 그래서 더 가치 있고, 한편으론 더 가슴 아프고.
주희: 저 무겁죠.
준하: 아니. 하나도 안 무거워요.
주희: 저 몸무게 많이 나가요. 밥도 많이 먹고요.
준하: 걱정 마세요. 주희씨 정도는 업고 서울까지라도 갈 수 있어요.
주희: 공갈!
준하: 안 공갈!
주희: 공갈!
준하: 안 공갈.
손 이 대사할 때 좀 그랬지? 난 좀 닭살스럽게 보이면 어떻게 하나 걱정 되더라. 연기로 그걸 타고 넘어가기엔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조 그 장면은 오히려 닭살스러워도 괜찮을 것 같아. 난 개인적으로 그 장면 좋아하거든. 왠지 예쁘다는 느낌이 들어. 시대가 60년대이기 때문에 그런 설정은 어쩔 수 없는 거 아냐. 손 <연애소설>에서 수인이 무릎 장단 해가면서 ‘내가 찾는 아이’ 부르는 장면 있잖아, 너무 공주병 같아 보일까 봐 걱정했었거든. 하지만 그땐 일부러 그렇게 끝까지 안고 갔던 것 같아. 걱정해서 될 게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지. <클래식>도 마찬가지였어. “공갈, 안 공갈” 찍으면서 어색하긴 했지만. 조예진씨는 비를 많이 맞았지? 아마 나보다 훨씬 많이 맞은 것 같아. 손 난 비 맞는 신이 힘들었어. 가을에 비를 맞으니까 아무래도 춥고. 추울 때 촬영하는 게 제일 힘든 것 같아. 근데 이 영화에는 유난히 비 맞는 장면이 많잖아. 아마 우리 영화가 살수차 동원 기록으로는 한국영화 최대일걸?(웃음) 조 영화 속 비는 감정의 격변이 있을 때 어떤 계기로 작용하기 때문에 유독 비 내리는 장면이 많았던 것 같아. 손 준하와 주희의 사랑은 정말 너무 아픈 사랑인 것 같아.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알았을 때 사랑’이라는 노랫말이 있는데, 아냐, 난 너무 아픈 게 사랑이었을 거야, 라는 생각을 했어. 이 영화 속에도 관객들을 울리기 위한 감정 신이 있긴 하지만 봤을 때 슬프긴 하지만 울음을 참고 싶은 울음 있잖아. 가슴에서 뭔가 오는 그런 슬픔 말이야. 조 너무 슬픈 쪽으로만 얘기하는 거 아냐? 따뜻하고 감동이 있는 영화라고 이야기를 해야지.(웃음) <클래식>은… 뭐랄까, 기존의 멜로보다 훨씬 새롭고 굉장히 순수하다는 느낌을 받았어. 멜로라는 장르 속에 또다른 장르가 숨어 있어서 볼거리도 많고. 전쟁 신에, 곤충 신에 별게 다 나오잖아. 무엇보다 보는 내내 관객들의 감정을 한시라도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아. 웃길 때 웃기고 슬플 때 슬퍼지는 거 말야. 특히 나한텐 우연과 필연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얽혀 있어서 그걸 하나하나 풀어가는 재미가 매력적이더라고. 손 우리 너무 영화 홍보하는 거 아냐? 이러면 더 보기 싫더라고. 배우들이 나와서 자기 영화 좋다고 하면 더 안 좋아.(웃음) 조 엉뚱한 말일지 몰라도 처음 시나리오를 읽는데 신기한 거야. 지혜가 엄마의 일기장을 펼치면서 극이 흘러가듯이 <클래식>이라는 대본을 펼치면서 내 스스로 꾸밈없이 슬퍼하고 웃고 그랬던 거지. 여름 방학 소나기 신이 태수와 주희와의 연결 고리들을 만들어내고, 그런 우연들이 좋았던 것 같아. 이런, 말하다 보니 요지가 없군.(웃음)
창밖을 봐… 바람에 나뭇가지가 살며시 흔들리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널 사랑하고 있는 거야. 귀를 기울여봐… 가슴이 뛰는 소리가 들리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널 사랑하고 있는 거야. 눈을 감아봐…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널 사랑하고 있는 거야.
손 영화가 끝나고 나서 그 역에 대해 새롭게 매력을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야. 오히려 끝나고 나서 생각이 나고,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이런 느낌이 들고, 끝나고 나니까 이런 거구나 알 것 같기도 해. 조 작년 한 해는 연초부터 연말까지 정신 없이 달려왔어. 그 전에는 느긋하게 가다가 어느 순간 사람이 바빠진다는 게 순식간에 오더라. 그런 거 못 느끼면서 살 것 같았는데. 아쉬움도 많았지만 굉장히 행복했어. 영화와 뮤지컬을 병행했기 때문에 마음속의 빈 구석이 채워진 느낌이었고, 영화도… 흥행은 잘 안 됐지만 역할 좋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너무 행복했어. 작품 운도 좋았고, 역할 운도 좋았지. 손 내 경우엔 한 작품 하기도 힘든데, 드라마 <대망>에다 <클래식>까지, 동시에 두 작품을 했으니까 더 힘들었어. 연말에 바쁘니까 한 해가 다 바쁜 것 같은 느낌이야. 근데 하면서 보니까 더 욕심이 생기는 것 같아. 바쁘니까 더 바빠지고 싶고, 이걸 보여주면 저것도 보여줄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클래식> 하면서 이번에는 코믹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욕심들이 많이 생기더라. 물론 앞으로도 한참 더 가야 되겠지만. 조 올해는 다작을 하는 건 좀 버거운 것 같고, 아직은 좀 느긋하게 가야 할 것 같아. 조금 느긋하게 되돌아보면서 가고 싶어. 여유가 없으면 좀 불안해지는 성격이거든. 느리기 때문에 쉬엄쉬엄 가는 거지. 너무 오래 휴학을 해서 일단 학교로 복학하려고 해. 좋은 작품이 오면 하긴 해야지. 놓치긴 또 싫으니까. 손 난 굉장히 빨리 성장하고 싶어. 나는 그래. 조 욕심이 많군. 손 그게 욕심은 아니고, 난 왠지 ‘주목받는 신인’이라는 말이 되게 듣기 싫어. 그게 잘 못해도 커버할 수 있는 명분이 되고 또 자신에게도 위안이 되긴 하지만 이젠 스스로 그러고 싶지가 않거든. 조 신인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어. 손 신인, 계속 신인, 계속 유망주래.(웃음) 어쨌든 <클래식>은 나 스스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 자신감만 가지고 계속 해오다가 <클래식> 하면서 스스로 부족하다는 걸 너무 많이 느꼈고 혼란스러웠어. 하나하나 보완해가야겠지만 단점을 아는 것도 굉장히 큰 공부가 된 것 같아. 조 촬영이 끝나는 날 온몸에 힘이 다 빠지더라. 이 작품을 너무 사랑하면서 다 쏟아 부었던 것 같아. 이제 더이상 보여줄 게 없을 정도로. 남들은 이걸 자신감 부족이라고 하는데, 보여줄 게 없으면 불안하고, 그런 상태에선 더이상은 못할 것 같아. 지금은 내 모든 것을 다 끄집어낸 상태야. 탈진 상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