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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토론방(출처있는글) 서태후와 광서제의 장례식 사진... 명나라의 복식이 많으며...겨울인데...청나라 여름관모란 삿갓을 썼습니다.
홍진영 추천 0 조회 1,525 10.08.05 09:28 댓글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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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8.05 11:46

    첫댓글 또 흑백 사진들을 왕창 올리셨군요... 한 번 분석해봅시다.

  • 작성자 10.08.07 20:01

    아이고 영광입니다.

  • 10.08.09 15:57

    토를 다셨군요... (하하하)

  • 10.08.05 12:02

    "겨울인데... 청(淸)나라 여름 관모라는 삿갓을 썼습니다"라고 제목을 작성하셨군요...
    서태후는1908년 11월 15일 사망하였으며, 광서제는 1908년 11월 14일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제가 사진들을 살펴보니까, "삿갓"형 모자보다는 "강시"형 모자를 쓴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광서제 장례식 사진 중에서 첫 번째의 모습은 비가 내리는 것 같습니다.

  • 10.08.05 12:34

    1908년 11월 15일에 서태후가 죽었고, 매우 미심쩍게도 그때까지 건강하던 광서제가 바로 전날에 죽었다고 공표되었다.
    서태후의 마지막 포고로 광서제의 3살 난 조카에게 황위가 넘겨졌고, 새로운 황제는 선통(宣統)이라는 연호로 즉위했다.
    [출처=다음 백과사전]

  • 10.08.05 12:52

    위 본문에 나오는... "헨리 보렐"의 글에는,
    "몇 개월전, 광서황제는 북경에서 4일 걸리는 거리에 있는 청서릉(淸西陵)에 묻혔다. 그곳에는 옹정황제, 가경황제, 도광황제등 청나라 황제가 잠들어 있다. 지금은 서태후의 장례에 관한 보도가 넘쳐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내용에 따르면, 광서제는 서태후 장례식 이전에 청서릉(淸西陵)에 묻혔다는 말이 되는데...
    광서제가 실제로 사망한 시기를 알 수 있을까요? 광서제의 장례일은 언제이었습니까??
    사실관계를 확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10.08.05 12:54

    또한... 위 본문에 나오는... "헨리 보렐"의 글에는,
    "금황색베로 뒤덥힌 태후의 영구는 천천히 그리고 장엄하게 북경의 회색토지위를 지나고 있다. 그안에는 자희태후의 시신이 누워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면서도 숭배하던 여인이며, 가장 위대한 여황제이며, 생활과 권력의 단맛 쓴맛을 다 본 여인이다. 그녀가 영구에 숨어 내 곁을 지나갈 때, 나는 모자를 벗어 예를 표했다. 나는 이 날을 잊을 수 없다. 1908년 11월 9일. 바로 음습한 겨울이었다"고 합니다.

    이 내용에 따르면, 장례일은 1908년 11월 9일이라는 것인데... 사망일 1908년 11월 15일과 차이가 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요??

  • 작성자 10.08.07 20:02

    여기 까진 답변할 가치가 없는 웅엉거림 혼자말씀으로 들리니 패스합니다.

  • 10.08.09 15:57

    마음대로 하시길... 늘 그렇게 하셨는데요...

  • 10.08.05 12:56

    위 본문에 나오는 "헨리 보렐"의 글에 따르면,
    "마지막에는 청나라의 고관들이었다. 그들은 검은색 상복을 입고 있었다. 그들의 관모에는 관직을 나타내는 장식물이 있었다. 즉 홍산호와 남보석으로 된 정자(頂子), 공작우모(孔雀羽毛)였다. 그들은 청나라의 최고위 관리들이었다. 여기에는 친왕, 어사와 대신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 10.08.05 12:59

    홍진영 선생님의 주장에 따르면,
    검은색 상복을 입은 관리들은 "타타르" 청(淸)나라 사람들이라는 것이고...
    흰색 소복을 입은 종친들은 "키타이" 청(淸)나라 사람들이라는 것인가요??

  • 10.08.05 15:25

    참고로 언급하면... 현재 일본에서 상복을 "검은색"으로 합니다만, 메이지(明治) 시대 이전까지는 "흰색" 상복을 입었습니다.
    "흰색" 상복이야말로 전통적인 것입니다.

  • 10.08.05 15:48

    에도(江戶) 시대에는 흰색 상복을 입었습니다.
    일본에서 "상복은 검은색으로 한다"고 규정된 것은 1915년입니다. 일본의 일반인들에게 검은색 상복이 정착된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 이후입니다.

  • 10.08.05 15:32

    자희태후는 현대과학문명이 이미 중국에 들어온 시대에 살았다. 그러나, 그녀가 죽은 후의 장례식에서 연출되는 것은 여전히 수천년 역사를 지닌 고래의 의식이다. 일찌기 8월에 이미 대량의 종이로 만든 명재(冥財)를 불사른 바 있다. 이런 것들은 그녀가 좋아하던 재물을 상징하는데, 아주 정교하고 진짜처럼 만들었다. 여기에는 시계, 화장대, 담뱃대 및 종이로 만든 사람까지 포함되어 있다. 종이로 만든 사람은 사후에 자희태후를 모시기 위한 것이다. 종이로 만든 현대적 군복을 입은 군인들도 열을 지어 만들었다. 이는 장례가 거행되기 이틀전에 자금성에서 궁문중의 어느 한 곳에서 불태워졌다.

  • 10.08.05 15:36

    위 본문에 나오는 "헨리 보렐"의 글에는 "장례 풍습"이 나오는데.....
    i) 일찌기 8월에 종이로 만든 명재를 불태웠고... ii) 서태후 장례식이 거행되기 이틀 전에 종이로 만든 군인들을 불태웠고...
    이런 행위들은 사람이 죽은 후, 곧 사후(死後)에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서태후가 사망한 구체적 시기는 언제인가요?

  • 10.08.05 23:04

    기록 사진 참 좋습니다...

  • 작성자 10.08.07 20:02

    격려 감사드립니다.

  • 10.08.06 20:39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shanghaicrab/16153095]에는 "왕위"(王偉)라는 사람의 글이 있는데...
    1908년 서태후의 영구는 제사를 마친 후에 "동릉"(東陵)으로 옮겨졌는데, 관리들을 포함하여 10만명의 인력으로 100킬로미터의 거리를 1년여동안이나 갔다고 합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규모 있는 장소에서는 법사를 행하였고, 이듬해인 1909년 10월 초하루가 되어 서태후의 영구는 비로소 "동릉"(東陵)에 안장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위 본문에 인용된 흑백 사진들 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복장을 분석할 경우에는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야 합니다.
    특히, 그 사진들이 실제로 촬영되었던 구체적인 날짜를 알면 좋겠습니다.

  • 작성자 10.08.06 21:18

    기사 작성할 즈음에 사진도 같이 찍는 이치지...기사 먼저 본국에 띄우고...사진은 다음해 여름에 게재할 수도 있단 모순된 말씀이신지여...?
    또한...청조의 관복은 동복과 하복을 착용하는 날짜도 정확히 정해졌단 사행록을 기록대로면 어쨋든지 통ㅇ일이 않됐단건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뭐 그럴수 있다손 쳐도...
    밑의 광서제 사진은 궁성에서 찍힌게 확연합니다...출발 당일날이란 것이져...

  • 10.08.07 08:47

    무턱대고 사진들만 올리지 마시고요.... 실제 촬영 날짜도 확인해주세요.

  • 10.08.07 08:54

    위 본문에 나오는... "헨리 보렐"의 글에는,
    "몇 개월전, 광서황제는 북경에서 4일 걸리는 거리에 있는 청서릉(淸西陵)에 묻혔다. 그곳에는 옹정황제, 가경황제, 도광황제등 청나라 황제가 잠들어 있다. 지금은 서태후의 장례에 관한 보도가 넘쳐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내용에 따르면, 광서제는 서태후 장례식 이전에 청서릉(淸西陵)에 묻혔다는 말이 되는데...
    광서제가 실제로 사망한 시기를 알 수 있을까요?
    광서제의 장례일은 언제이었습니까??
    저는 이것이 궁금합니다. 홍선생님, 답변해주세요.

  • 10.08.07 09:08

    "광서제의 장례일"을 정확하게 알아야 그 사진들이 촬영된 때를 알 수 있지요... 안 그래요???
    그 사진들이 궁성(宮城)에서 촬영된 것은 저도 알고 있는 거고요...
    모든 사람들이 동복과 하복을 동시에 교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시기적으로 다소 차이가 납니다.

    清朝改歷代的朝冠為禮帽,禮帽又稱為「頂子」或稱為「頂戴」、「頂戴花翎」。
    禮帽分為兩種,一種為夏天戴的涼帽,另一種為冬天所戴的暖帽,每年三月開始戴涼帽,八月換戴暖帽。

    매년 3월에 여름 모자를 쓰기 시작하고, 8월에 겨울 모자로 바꾼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기준이고,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그때에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지요...

  • 작성자 10.08.06 21:23

    그리고...장례일 몇 달 전부터 종이를 태우고 어쩌고 했으니...
    그 실제 사망날짜가 왜 발인날짜와도 다르고...그럼 가을에 죽었단 얘기가 되냐시는 질문 예리하셨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현 중화인들이 디미는 청나라 역사만큼은...그 년도나 날짜는 커녕...인물들의 동일인이냐도 의심을 하고 역사연구를 해야지...
    현 중화인들이 처 내미는 자료로 도배가 된 위키백과 나부랭이만 절대적으로 맹신해선 않된단 겁니다.

    잘 활용을 하되...
    님 말씀대로...다각도에서 크로스 체킹을 해서...걸러낼 쓰레기 정보는 무시하고서 조합해야 진실에 가까워 진단 겁니다.




  • 10.08.07 08:52

    <위키백과>든 무엇이든 간에 그것들은 모두 역사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그것들은 신봉의 대상이 아니라, 검토의 대상입니다.
    그 내용들이 서로 모순되면 문제가 있으므로, 세밀하게 검토하면 됩니다.

  • 10.08.07 09:11

    위 본문에 나오는 "헨리 보렐"의 글에는 "장례 풍습"이 나오는데.....
    i) 일찌기 8월에 종이로 만든 명재를 불태웠고... ii) 서태후 장례식이 거행되기 이틀 전에 종이로 만든 군인들을 불태웠고...
    이런 행위들은 사람이 죽은 후, 곧 사후(死後)에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서태후가 사망한 구체적 시기는 언제인가요?
    제가 질문한 것에 답변을 해주세요.
    (서태후와 광서제 장례 관련 사진들에는 촬영 날짜 표시가 전혀 없습니다.)

  • 작성자 10.08.07 19:56

    쌩뚱 맞으십니다...그걸 위키애들에게 따지셔야지 왜 저보고 해명하라 하시나여...?
    황실의 장례는 몇개월 장이란 말을 들은듯 하다고만 하겠습니다.

    여직까지의 사학자 나부랭이들은...그
    저 아무것도 모르고 발인일 근처를 사망일로 정하고 3류 소설들을 씨부렸던 거겠져 뭐...
    사망 연도나...구체적 사망원인...사망 당사자가 누구인지 제대로 기재됀 것인지도 믿을수 없는 거겠져...

  • 10.08.08 12:35

    의문점이 많은 자료들입니다. 다시 검토해보세요.

  • 작성자 10.08.07 11:33

    위키백과니 뭐니에 나오는 청나라 서태후나 관서제의 사망시기가...저 위의 기사시기보다 몇달 앞선단 겁니다.
    그 장례복장중에 젤 핵심인 근친들의 하얀 소복구절도..후대 해석자들의 고의인진 몰라도... 기사에 누락됐단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는 청나라의 역사는 철저히 왜곡됐을 가능성이 많고...그 청나라의 구한말기 역사가...황후들과 친왕들의 구도까지 조선과 판박이란 점에서..
    청나라의 정체가 바로 동국조선(청구국)이 아닐지란 의심을 해 보는 것인데...

    느닷없이 기존 사학자늠덜이 엉터리로 적시한 관서제와 서태후의 정확한 사망날자를 내 놓으시라니...저를 너무 크게 보시는듯해 난감합니다.

  • 작성자 10.08.07 11:38

    위키백과 애들은...어짜피 중원을 강탈한 현 중화족들 왜곡투성이 역사로 도배가 됐으니...너무 맹신하지 말고...
    저하고 찬찬히 찾아 보자는 말씀입니다.

    경찰서에 찾아가서...아무래도 우리집 족보가 도난당하고 가짜 족보책을 가지고 있는듯 합니다...했더니...
    그 진짜 족보책이 지금 어디 인는지 당장 입증해 보시여...않그럼 족보책 분실을 허위로 간주하겠소...허는 식의 무책임한 발언이...
    서태후의 진짜 사망일자를 명기해 주시여...어서 답변하시여...하는 엉뚱함이라 하겠습니다.

  • 10.08.07 12:16

    <위키백과>이든 <네이버 백과사전>이든 무엇이든 간에....
    서태후는1908년 11월 15일 사망하였으며, 광서제는 1908년 11월 14일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위 본문에 나오는 "헨리 보렐"의 글과 비교해보면 그 사망일이 문제됩니다.
    "광서제의 장례일"이 언제이었냐고요??? 그것을 알아야 "광서제 장례식 사진"을 분석할 수 있지요...
    그 사진들이 촬영된 때도 알 수 있고요... 동복, 하복 운운 하시니까...
    서태후와 광서제 장례 관련 사진들에는 촬영 날짜 표시가 전혀 없습니다.
    잘 모르시면, "모르겠다"고 답변하시면 되는데요... 무슨 해명이 그러신지...

  • 작성자 10.08.07 19:52

    여러가지십니다...해명을 하라녀...?
    기존의 사망일자가 기록사진과 어긋나니...그 정확한 사망일을 제가 해명해야 하나여...?
    저는 그저 그 장례식이 겨울인데...기존 사학자애들이나 김선생님이 주장하는 하계 관모들도 상당수가 쓰고 있으니...
    이는 사실은 서로 다른 정부(문화권)의 관복일 수 있다 예상했을 뿐입니다.

    정확한 사망날짜가 왜 들쑥날쑥인지는 위키애들에게 따지셔야지...왜 제게 해명을 요구하시는지여...?
    쌩뚱맞다 하겠습니다.

  • 작성자 10.08.07 20:03

    어쨋건..제가 책임질 사항은 이겁니다.
    김선생님이나 기존 사학자 나부랭이들이 주장하던...삿갓은 청나라 여름 관모다...강시형은 겨울관모다...
    요건 완전 틀렸단 증거...이겁니다.

    그리고 왜 기사나 그 기사해석에...
    청나라 황제 종친들이 우리 조선족같이 흰색 소복을 입은 아주 주목할만한 복장은 설명치 않았냔 의문이고여...

  • 10.08.08 12:36

    모자와 의복으로 2개의 청(淸)나라가 있었다고 주장하시는 것은 무리입니다.
    다른 증거들을 더 많이 확보하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 10.08.07 19:50

    위 기사의 장례식 발인날의 사진에 대한 설명에서...장례식 몇 달 전에 이미 종이인형등을 소지했다 함을 보건데...
    김선생님 말씀마따나...위키나부랭이들의 서태후나 광서제 사망일 정보는...거의 쓰레기 정보임이 간접증명됀다 하겠습니다.

    기존 사학자들이나 백과 나부랭이들이 왜곡 또는 엉망으로 저지른 실수를...저보고 해명하라시는 김홍필선생님의 억지가 어의없습니다만...

    발전적 토론을 위해 한가진 말씀 드리려 합니다.

  • 작성자 10.08.07 19:50

    황제나 왕의 장례는 최대 몇개월 장도 있단 예들이 있더군여...
    정식 사망날자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고...발인행사날만 눈으로 정확히 확인했기에...
    이를 받아 적는 외국기자들도 어쩔 수 없이 발인날자를 사망일로 기재해 버리는게 아닐지 싶고...
    그래도 차후엔 알 수 있을 현지의 사관애들이 이를 정확히 짚지 않았다 함은...그 청조의 사관들이 다 제거됐던지...
    후세의 사가들은 청나라를 인수한 적국의 짝퉁들이였단 반증으로 전 예상해 봅니다.

  • 10.08.08 12:39

    위에 인용된 흑백 사진들의 정확한 촬영 날짜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어느 것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 10.08.08 12:40

    서태후는1908년 11월 15일 사망하였으며, 광서제는 1908년 11월 14일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이것부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진 자료 또한 다시 검토하여야 합니다.

  • 10.08.08 12:58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shanghaicrab/16153095]에서 "왕위"(王偉)라는 사람의 글에 따르면.....
    서태후의 영구는 10만명의 인력으로 100킬로미터의 거리를 1년여동안이나 갔으며, 1909년 10월 초하루가 되어 서태후의 영구는 비로소 "동릉"(東陵)에 안장되었다고 합니다.
    위에 인용된 서태후 장례 사진들이 그 기간 동안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데... 무려 1년여동안이므로...
    구체적으로 언제인지 알 수 없으면 문제입니다.
    광서제 장례일도 마찬가지입니다.

  • 10.08.08 13:03

    삿갓형은 여름 모자이고, 강시형은 거울 모자라는 것이 완전 거짓이라고 주장하시는데....
    위에 인용된 흑백 사진들이 구체적으로 언제 촬영된 것인지 홍선생님도 잘 모르시는데, 그런 결론을 내리시면 안 됩니다.
    최종적으로 그것을 확인하신 후에 단언하시길...
    아직 논쟁이 끝난 게 아닙니다. 자료를 더 찾아보겠습니다.

  • 10.08.08 13:04

    다시 강조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동복과 하복을 동시에 교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시기적으로 다소 차이가 납니다.

    清朝改歷代的朝冠為禮帽,禮帽又稱為「頂子」或稱為「頂戴」、「頂戴花翎」。
    禮帽分為兩種,一種為夏天戴的涼帽,另一種為冬天所戴的暖帽,每年三月開始戴涼帽,八月換戴暖帽。

    매년 3월에 여름 모자를 쓰기 시작하고, 8월에 겨울 모자로 바꾼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기준이고,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그때에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10.08.08 16:59

    清朝的官帽和其他朝代不同。官帽分为暖帽和凉帽两种,暖帽为冬春所戴,凉帽为夏秋所戴。暖帽为圆形,有一圈向上反折的檐边,多用皮呢缎布制成,多黑色。中有红帽纬,帽顶有顶珠。凉帽无檐,形如圆锥,用白、湖蓝或黄色罗为表。红纱绸为里,帽表也缀以红色帽纬。
    [출처=百度知道, http://zhishi.baidu.com/zhishi/221428.html]

    위 자료에 따르면, 청조(淸朝)의 관모(官帽) 중에서 겨울모자(暖帽)는 "겨울과 봄"에 쓰고 여름모자(凉帽)는 "여름과 가을"에 쓴다고 합니다. 이것은 대략적인 기준이라고 봅니다.

  • 10.08.08 17:09

    清朝官帽分为夏冬两种服冠:

    夏常服冠 : /___\ (斗笠形)
    每岁农历三月十五日改御夏朝服,本藏品属夏季帽式,夏式帽冠也称
    为凉帽,夏帽冠檐并不上折而敞直,夏季官帽用的村料和尺吋多变,
    绩玉草或藤丝,竹丝为质,帽表裹以罗绢,帽体呈圆形,外罩白布,
    帽身覆有织网,红纱绸里,黑地织金包缘,缘上有黑带圆边,
    上缀朱纬,朱纬以红丝织成,以红线缝在帽冠上,帽前缘饰有东珠一颗,
    这类帽式为清朝高级官员日常戴用。
    [출처=http://wenwen.soso.com/z/q173340606.htm]

  • 10.08.08 17:09

    冬常服冠 : \___/ (倒梯形)
    每岁农历九月十五日或二十五日改御冬朝服,冬式帽冠也称为暖帽,
    冠檐反折向上围著帽顶, 以薰貂、青绒或黑貂皮毛制成 (一说是
    海獭、海狸或黄鼠狼皮毛薰染而成) ,上缀朱纬,朱纬以红丝织成,
    但较为短小,帽体呈圆形,粗厚纸圆边为质,外罩黑布及围上青绒
    在外,红纱绸里,帽胎两侧缝上系带。
    [출처=http://wenwen.soso.com/z/q173340606.htm]

  • 10.08.08 17:11

    여름용 삿갓형 모자를 "斗笠形"(두립형)이라고 하며, 겨울용 강시형 모자를 "倒梯形"(도제형)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중국에서 사용되는 정식 명칭이라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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