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불화 기자설명회 현장
한국 서비스 1주년을 기념해 출시된 ‘신바람 탈 샤코’의 수익금이 100년이나 외국을 떠돈 조선시대 불화를 되찾아오는데 요긴하게 사용됐다. ‘샤코’의 초기 6개월간 수익금 3억원을 불화 환수 활동에 기부한 것이다.
1월 7일, 국립중앙박물관 사진실에서 미국 허미티지박물관에서 되찾아온 조선시대 불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번 기자간담회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주최했으며, 문화재청과 라이엇 게임즈가 후원했다.
이번에 한국에 돌아온 조선시대 불화는 ‘석가 삼존도’로 미국 버지니아주 노포크 소재의 허미티지 박물관애서 소장하고 있던 문화재다. 제대로 된 홀에 걸리지도 못하고 40년이나 미국 박물관 수장고 천장에 돌돌 말려 방치되어 온 불화를 이번에 찾아오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석가 삼존도’는 2011년 미국 버지니아주 박물관협회가 ‘위험에 처한 문화재 10선’으로 선정하며 재조명되었고, 이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발견하며 본격적인 환수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 버지니아주 박물관협회가 선정한 '위험에 처한 문화재 10선 영상' (영상제공: 문화재청)
라이엇 게임즈가 기부한 3억원은 작품을 되찾아온 허비티지 박물관의 운영자금으로 기부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안휘준 이사장은 “이 작품을 되찾아오게 된 부분에 라이엇 게임즈의 공헌이 매우 지대하다. 불화를 되찾아오는 과정에서 기업이 재정적으로 3억원이라는 돈을 문화재 반환에 지원하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또한 미국에 있던 한국의 문화재를 찾아오는 과정에 미국계 기업인 라이엇 게임즈가 참여하게 된 것 역시 의미가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 작품에 대해 설명 중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안휘준 위원장
라이엇 게임즈 이전에도 신한은행이나 MBC 프로그램 ‘위대한 유산’처럼 기업 혹은 개인의 후원 하에 외국을 떠돌던 문화재를 되찾아온 적은 많았다. 그러나 외국계 기업이 문화재 환수 활동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라이엇 게임즈 이승현 상무는 “한국 문화는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유산이라 생각하며, 이를 지키기 위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라며 “이 모든 게 가능하게 했던 힘은 리그 오브 레전드의 플레이어에게서 나왔다. 문화재 환수 활동에 대해 플레이어들 스스로가 자긍심을 가지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 라이엇 게임즈 이승현 상무
라이엇 게임즈 측은 한국의 ‘구미호’ 전설에서 따온 한국형 챔피언 ‘아리’나 탈춤에서 영감을 받은 ‘신바람 탈 샤코’, 그리고 K팝의 대명사 소녀시대를 모티브로 한 ‘팝스타 아리’ 등 한국 문화가 게임 제작에 미치는 영향이 많았다는 말을 전했다. 라이엇 게임즈 권정현 상무는 “플레이어 포커스라는 회사의 경영철학에 맞춰 한국 플레이어들을 위해 무엇을 할지를 고민하던 중, 우리의 우수한 역사를 보전하고, 이를 플레이어들에게 알리는 기회를 마련하면 어떨까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라며 “앞으로도 비용에 관계 없이 의미 있는 활동이라면 꾸준히 참여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 라이엇 게임즈 권정현 상무
일제 강점기부터 제 2차 세계대전까지, 아픈 역사를 몸소 겪은 문화재
이번에 돌아온 ‘석가 삼존도’는 1730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일제 강점기 초반이었던 1910년대에 무단으로 뜯겨 일본에 반출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렇게 반출된 ‘석가 삼존도’는 일본의 미술품상 야마나카상회에 넘겨져 1930년대에 미국에 팔려간 것으로 기록됐다. 이후 이 불화는 1942년까지 미국 톨레도 박물관에 전시됐다.
▲ 미국에서 환수된 조선불화 '석가 삼존도'
그러던 중 진주만 공습(1941년) 이후, 미국 정부가 자국 내 일본 재산 몰수를 위해 설치한 적국자산관리국에 의해 야마나카상회의 모든 미술품이 몰수되어 경매에 넘겨졌다. 당시 함께 시장에 나온 ‘석가 삼존도’는 낙찰가 450달러에 허미티지 박물관에 팔렸다. 그러나 당시 허미니티 박물관에는 길이, 높이 3미터의 거대 불화를 걸 자리가 없었고, 결국 1954년부터 1973년까지 약 20년 간 노포크박물관에 대여 전시되었다가, 돌아온 이후에는 2013년까지 수장고 천장에 돌돌 말린 상태로 보관되어 있었다. 사실상 40년이나 방치되어 있던 셈이다.
즉, ‘석가 삼존도’는 일제 강점기와 제 2차 세계대전 등 우리 역사의 아픈 시대를 겪으며 일본과 미국을 떠돌다가 약 2만 2000킬로미터를 돌아서 100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것이다.
‘석가 삼존도’는 미술학적으로도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 일단 3미터 이상의 거대 불화는 20~30점 내외로 수가 적은 편이다. 따라서 관련 기관에서는 이 그림은 대웅전과 같은 본당에 걸려 있던 후불탱화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또한 대체로 좌우가 긴 편인 기존 불화에 비해 가로와 세로 길이가 거의 동일한 정사각형 형태의 그림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작품의 구도 역시 독특하다. 보통 석가모니와 문수, 보현 보살 사이에 얼굴만 살짝 내민 형상으로 그려지는 석가모니의 제자 아난과 가섭 존자를 중앙 하단에 배치하고, 마치 서로 대화를 하는듯한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다. 이처럼 불교적 의미와 함께 그림에 일종의 이야기 요소를 담아낸 연극적인 연출방식이 도입된 불화는 한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에서도 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드물다.
조선불화 전문가 김승희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과장은 “이 불화는 지금까지 발견된 바 없는 파격적인 도상양식을 갖추고 있어 미술사적으로 희귀할 뿐 아니라 학술적 가치도 매우 높다”라며 “아난, 가섭 존자, 석가모니 부처의 좌우 협시불 등 등장인물의 섬세한 표정 묘사 등은 일찍이 조선 불화에서 보기 드문 수작에 속한다”라고 밝혔다. 불화를 보관하고 있던 미국 허비티지 박물관은 이 작품의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15만 달러(한화로 약 1억 6000만원)라 평가한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