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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시고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복을 받으소서.
44. 동방의 독수리 (장드보라)
(이사야 46:9-11)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하였노라.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1. 하나님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십니다.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분명히 이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인데 그러면 이 독수리가 누구일까요? 역사적으로 볼 때에 서방에서는 독수리를 높이 알았지만, 동방에서는 그리 높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십니다.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1) 우선 서방의 독수리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① 세계 여러 나라의 국기들을 살펴보면 독수리를 그려 넣은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옛날 러시아 국기에는 쌍두 독수리가 있고, 독일의 국기에도 독수리가 있었습니다. 멕시코 국기에는 독수리가 뱀을 잡아 가지고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제가 찾아본 국기들만 해도 적어도 10개는 됩니다. 그런데 미국 국기에는 독수리가 나오지 않지만, 미국의 국가 휘장에는 머리흰독수리 배후에 성조기가 휘날리는 그림이 있습니다. 이 독수리가 미국의 상징입니다.
미국은 동방의 독수리는 아닙니다. 서방의 독수리인 미국이 세상 그 어느 나라보다도 더 많이 도와준 나라가 있는데, 곧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입니다. 이 두 나라는 미국이 낳은 나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2) 모든 것이 다 그러하지만, 독수리도 좋은 뜻으로 사용될 때가 있고 나쁜 뜻으로 사용될 때가 있습니다. 나쁜 뜻을 먼저 봅시다. 독수리는 부정한 동물입니다. 레위기 11:13에 “새 중에 너희가 가증히 여길 것은 이것이라. 곧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라고 하였습니다. 곧 독수리는 다른 동물을 해치고, 죽은 시체를 찾아가서 피를 빨거나 살을 뜯어먹습니다. 예수님이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마 24:28)라고 하셨고, 욥기 39:30에는 “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살륙 당한 자 있는 곳에는 그것도 거기 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성질 때문에 독수리는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악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호세아 8:1에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의 심판하는 장면을 원수가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잠언 23:5에는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라고 하였습니다.
3) 독수리가 좋은 뜻으로 사용된 경우를 봅시다.
① 능력과 복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마가 들끓는 죄악 세상에서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자기 백성을 그의 능력의 손길로 붙들어 보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급에서 어떻게 구원하셨으며, 광야 40년 동안 어떻게 보호하셨습니까? “내가 애급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 19:4)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서운 바로의 권세를 꺾고 애급을 탈출하게 한 것과,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고 구름기둥 불기둥의 기적적인 사건들을 전개하면서 그런 일을 힘이 있는 독수리의 날개로 표현하였습니다. 다윗은 성도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할 때,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신다.”(시 103:4-5)라고 했습니다.
2. 독수리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적인 삶을 나타냅니다.
1) 첫째 특징은 시련과 인내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세상을 사는 동안 여러 가지 시험에서 견디고 이길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킵니다. 독수리가 새끼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듯이 자주자주 우리의 보금자리를 흔들어서 경각심을 갖게 하고 인내력과 담력을 키우는 훈련을 반복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7)라고 하였습니다.
세계 역사를 볼 때에 가장 시련을 많이 받은 민족은 이스라엘이고, 또한 대한민국입니다. 물론 더 큰 시련을 받은 나라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나 민족들은 다 없어졌습니다. 시련과 고난이 극심해도 기어이 이것을 이기고 민족을 보존하고 나라를 세워 나간 것은 이렇게 두 나라뿐인 것입니다.
2) 성도의 구별된 생활
거룩한 생활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금광석을 용광로에 넣어 뜨거운 불로 녹여서 찌꺼기는 다 떨어버리고 순수한 금만 뽑아내는 것같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시련을 주시고 성결한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지난 8월 15일 아침에 훼드럴웨이에서 건국대통령 이승만박사 기념사업회 주최로 건국 62주년 기념 조찬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저에게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한 기도를 하라고 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과연 무엇이 선진국입니까? 선진국은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GDP가 높아야 하겠지만, 그보다 훨씬 더 시급한 것은 도덕성입니다. 도덕이 무너지면 결코 선진국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선진국이라고 하던 구라파와 미국 같은 큰 나라들이 도덕적으로 말할 수 없이 타락해가고 있지 않습니까? 실로 오늘날에는 선진국이라 할 나라가 없습니다. 동성 간의 결혼을 허락한다니 짐승들의 세계에서도 꿈 꿀 수 없는 일을 어떻게 인간들이 합법화시킨다는 것입니까? 그래 가지고 어떻게 선진국이 됩니까? 우리나라는 도덕적으로 반듯한 나라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그런 도덕성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의 심판을 의식하면서 거룩하게 살아가게 될 때에 비로소 선진국이 되는 것입니다.
3) 신령한 세계를 보는 환상입니다.
① 포로시대의 선지자 에스겔은 그발강 가에서 신비로운 하늘나라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독수리의 얼굴이었습니다(겔 1:10). 독수리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두 날개로 크게 뻗어 구만리장천을 주유하며 세상을 내려다봅니다. 또한 독수리는 예리한 눈을 가지고 있어서 멀리서도 움킬 것을 찾아내고 날쌔게 잡아챕니다. 욥기 39:29에는 “거기서 움킬만한 것을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며”라고 하였습니다.
② 하나님의 백성은 신령한 눈을 가지고 있어서 세상을 살면서도 하늘나라의 환상을 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마음의 눈이 밝아질 때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의 소망과 하늘나라에 예비된 기업의 풍성함과, 날마다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능력의 원천이 무엇임을 발견하게 됩니다(엡 1:18-19). 이처럼 신비로운 계시의 환상을 품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고상한 소망을 향해 전진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빌 3:20).
③ 우리나라는 마지막 때에 신령한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아담은 생령이었기에 짐승들을 다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영의 사람이 되면 육의 사람을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육은 육으로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힘써서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주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이제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신령한 사람이 되게 하시지 않습니까?
3. 동방의 독수리는 복음의 마지막 주자입니다.
성경상의 기원으로 볼 때 한국인과 유대인은 뗄 수 없는 유대관계가 성립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 조상 에벨로부터 분리된 형제족속이기 때문입니다. 에벨의 큰 아들 벨렉의 후손 중에서 유대민족이 나왔고, 작은 아들 욕단의 후손 중에서 우리 한민족이 나왔습니다(창 10:21,25,30; 11:10~30). 그런데 성경은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잠 17:17)라고 말씀합니다. 형제란 자기의 형이나 아우가 위경에 처했을 때 끝까지 돕는 존재란 것입니다.
1. 본문은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동방의 먼 나라에서 시온으로 사람을 부를 것이라고 분명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2. 독수리를 부르신다는 말의 의미는 계시록 4장에 하나님의 보좌의 주위에 있는 네 생물에 잘 나타납니다.
3. 이 일을 위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동방의 독수리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성도의 시련과 인내를 통햐 성숙된 그리스도인으로 세워가소서. 모든 심령을 감찰하사 마음의 중심을 살피시는 아바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구한 것보다 더 넘치도록 아루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45. 옛 언약을 성취할 새 언약의 백성(장드보라)
(출애급기 19:3-6)
3)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4)내가 애급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보배로운 소유가 되겠고 6)너희가 나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1.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복의 특징
1)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너는 내게 구하라.”라고 하실 때에 그가 무엇을 달라고 하였습니까? 돈이었습니까? 권세였습니까? 적국을 멸하고 자기 나라 영토를 크게 확장하는 일이었습니까? 아니면 200살쯤 살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지혜가 무슨 큰 복입니까? 그런 것은 없어도 돈이나 권세 같은 것만 있으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지 않습니까? 당신도 정말 지혜를 구하겠습니까?
솔로몬은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라고 했는데,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도, 부도,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왕상 3:9-12)라고 하셨습니다.
2)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되, 먼저 약속을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도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실 땅으로 가면, 아브라함으로 큰 민족을 이루고 그에게 복을 주어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아브라함은 복이 될 것이라(창 12:1-2)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복(의 근원)이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2. 모세에게 약속하신 세 가지 복
1) 너희는 열국 중에 내 보배로운 소유가 되리라.
①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가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땅은 우리가 영원히 살 땅이 아닙니다. 잠시 후면 우리는 모두 이 땅을 떠나야 합니다. 그 다음엔 어디로 갈까요? 무신론자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다음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죽은 다음에 정말 아무 것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상을 가진 자들은 사람의 생명을 짐승의 생명보다도 더 가볍게 여깁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없음은 물론이고,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습니다.
이런 자들의 종말이 얼마나 비참하게 되는지 여러분들이 잘 알지 않습니까?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도 너무도 가난해져서 70년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중공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습니까?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과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그 살아가는 방법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 죄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습니다. 따라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여 짐승처럼 취급하며,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가장 악랄한 무신론 독재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성도가 다스리는 나라는 인권을 존중하고,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며, 법을 지켜 질서가 확립되며, 부정과 부패가 사라집니다. 백성들의 삶이 평안하고 항상 희망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2) 너희는 나에 대해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
① 하나님은 세계 모든 나라와 민족 중에서 한 나라를 세워 제사장 나라로 삼으십니다. 우리가 제사를 드릴 때에는 반드시 제사장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온 세계 인류를 위하여 하나님이 제사장 나라를 택하여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희 이스라엘이 이 제사장 나라가 되지 않겠느냐고 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제사장은 가장 어른이었습니다. 레위기 21:4-15에서 제사장은 백성의 어른이라고 하시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백성의 어른인 제사장은 자기를 더럽혀 욕되게 하지 말지니라.”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제사장들은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지 말며, 수염 양편을 깎지 말며 살을 베지 말고, 절대 거룩해야 하며, 결혼을 해도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이나, 이혼당한 여인을 취하지 말고,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을 것이며,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그의 머리를 풀지 말며 그 옷을 찢지 말며,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하지 말지니 부모로 인하여도 더러워지게 말며, 성소에서 나오지 말며 그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3) 너희는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①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에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명령하셨습니다(레 11:44-45). 이 말씀은 곧 “너희는 나를 닮아라.”라는 말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닮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닮은 줄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올바로 일깨워주셨습니다. 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마 15:8). 그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하였지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 아비는 마귀다.”(요 8:44)라고 하여, 저들의 분노를 격발시키시기도 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고, 하나님을 가장 잘 닮았다고 생각했겠지만, 주님은 그들을 가리켜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마 23:33)라고 무섭게 질책하셨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착각하지 말고, 겸손히 자기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거룩한 백성이란 성별된 백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과 가이사의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분별력이 없으면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참과 거짓을 분별하고, 의와 불의, 선과 악, 지혜의 길과 우둔의 길을 분별해야 합니다.
3. 이스라엘은 왜 실패했을까요?
① 광야의 이스라엘을 봅시다. 그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속에 남아 있던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였고, 따라서 그들은 걸핏하면 불평과 원망을 일삼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애급에서 살 때에 우상 숭배하던 나쁜 버릇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방의 우상만 보면 유혹을 받고, 그런 우상들을 가져다가 섬겼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실은 하나님과 우상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옛날의 습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 진노의 대상이 되어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② 또한 이스라엘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였지만,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마 15:8). 예나 이제나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그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 앞에 가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여기에서 불합격이었습니다.
③ 나아가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되 영의 새로운 것으로 하지 아니하고 의문의 묵은 것으로 하였습니다(롬 7:6).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습니다”(고후 3:6).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그들은 성령으로 행하기를 버리고, 다시 우상숭배와 노예근성에 돌아갔습니다. 따라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4.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 제안을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모세를 통해서 주신 약속은 옛 언약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당신 손의 못 자국을 보여주시면서 새 약속을 맺자고 하십니다. 옛날 모세 때에는 온 이스라엘이 합심하여 “우리가 하겠습니다.”라고 했고, 큰 감격과 결심을 가지고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계명을 영으로, 마음으로부터 지키지 못하고, 형식적으로만 지켰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외식하는 자가 되어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무서운 책망을 받아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정이 다릅니다. 예수님이 계십니다. 성령이 계십니다. 영의 사람이 되어 마음에 새기고 지켜 행하라고 하십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습니다. 열심히 읽고 듣고 깨달아 진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렘 5:1) 한 명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바로 그러한 백성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오늘의 세상을 보세요. 얼마나 살벌하고 위험합니까? 그런데 누가 있어서 이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며, 제사를 드리고, 이들을 위해 복음을 전합니까? 주님이 우리 민족을 부르시지 않습니까? 주님이 당신을 부르고 계시지 않습니까? 주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주님이 얼마나 안타까워하시는지 당신은 아시나요?
하나님과 약속을 맺고 이제부터 성령의 충만을 받아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새 언약을 맺으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신 은혜 너무 크고 감사합니다.
마음에 성령을 주셨으니 거룩한 성전된 몸을 하나님께 드리며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자로 세워지게 하소서!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며 진리를 깨달아 진리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아버지 뜻이 무엇인지 잘 분별하며 그 뜻을 쫓아 사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하루하루를 값있게 살게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46.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장드보라)
(신명기 4:5-6)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하리라.
1. 지혜와 지식을 가진 민족(개인)이 받는 복
솔로몬은 왕위에 오르자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고, 그는 하나님께 지혜와 지식을 간구하였습니다(대하 1:10-12). 하나님은 그 소원을 이루어주셨고, 이스라엘을 영화로운 나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1) 참 평화가 있습니다.
백성들이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소식을 듣자, 왕을 크게 두려워하게 되었고 따라서 범죄가 없어지고 율법을 잘 지키게 되어 나라가 평안하였습니다.
주변 여러 나라의 왕들이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와 그를 만나 지혜의 말씀을 듣고자 했고, 솔로몬에게 자기 딸들을 바쳐서 인척관계를 맺으려고 하였습니다.
2) 부귀와 영화가 있습니다.
①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다윗이 성전 건축을 그렇게도 원했지만, 그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을 하였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대상 22:8; 28:3; 왕상 5:3). 이어서 하나님은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지라. 그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어 그 나라 왕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대상 22:10)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약속에 따라 솔로몬 생전에는 큰 영광이 있었습니다.
3)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이 제사를 받아주셨다는 것입니다.
제사가 열납된다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복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일천 번제를 받으시고 그에게 꿈에 나타나셔서 소원을 물으셨고, 그의 소원대로 지혜와 지식을 풍족히 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이 이루어졌고, 기도가 응답되었고, 범사에 주님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4) 참 지혜와 지식은 곧 진리입니다. 진리를 찾는 사람은 죄 사함 받고 영생에 이릅니다.
진리란 성삼위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2. 지혜와 지식이란 무엇인가요?
1) 지혜란 무엇인가요?
① 국어사전에서는 “사물의 도리나 이치를 분별하는 정신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라고 물으면서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단정합니다.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고전 1:20-21). 여기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습니다.
②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가르칩니다(잠 9:10). 따라서 하나님을 더욱 경외할수록 지혜가 성장합니다. 또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잠 8:13)라고 하였으니,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모든 악을 미워하고, 마음의 교만과 거만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2) 지식이란 무엇인가요?
① 하나님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탄식하시면서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참 지식입니다. 또한 이 지식은 머릿속으로 아는 지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변화된 체험적인 지식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고, 늘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사는 것이 참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그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 곧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바울이 이 지식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빌 3:7-9a)라고 하였습니다. 나아가 성령을 알아야 합니다.
3) 더 나아가 지혜와 지식은 ‘그리스도’십니다.
①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강조하였습니다(고전 1:24). 이 말씀에 앞서서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이 세상은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가장 지혜롭다는 사람도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알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인데,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십니다. 지혜 있는 자는 어디 있으며, 선비(학자, scholar)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셨습니다”(고전 1:19-20).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놀라운 지혜와 지식의 사람이 됩니다.
3. 지혜와 지식을 얻는 방법
1) 지혜문학인 욥기에서는 심각하게 지혜와 지식을 찾고 있습니다.
2) 지혜의 왕 솔로몬으로부터 그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솔로몬은 겸손했습니다.
첫째로 그는 아버지인 다윗과 자기를 비교하여 “나는 작은 아이입니다.”라고 고백했고,
둘째로 그는 이스라엘 나라가 너무 크고, 백성들이 너무 많다고 고백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자기에게 지혜와 지식이 없어서 바른 재판을 할 수 없음을 고백했습니다(왕상 3:7-9).
3) 성경 전체에서 설명하는 바 지혜와 지식을 얻는 방법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요(잠 1:7), 또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잠 9:10).
경외의 신이신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예언 중에서 하나님의 영을 가리켜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권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사 11:2)이라고 하였습니다. 지혜와 지식은 성령의 은사로 옵니다(고전 12:8).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뿐 아니라, 지혜를 구하여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약 1:5).
“내가 살아온 날이 얼마인가?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은 얼마나 남았는가?”를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또한 내가 곧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할 터인데,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자문하면서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여기에 지혜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 2:2b-3)라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귀한 보물을 찾아내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아멘!!!
참 지혜와 참 지식을 가지신 예수님안에 거하길 소망합니다!
지혜와 지식과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주님이 주시는 것을 누리며 그 안에서 솟아나는 참 지혜로 이 험한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가는 참된 성도로 빛을 발하며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47. 장자권을 받은 민족(장드보라)
(히브리서 12:16b-17)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펴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1. 장자권이란 무엇일까요?
1) 장자권이란 창대해지는 복과 권리입니다.
① 아브라함에게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② 이삭에게는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 26:4)라고 하셨고,
③ 야곱에게도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동서남북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창 28:14)라고 약속하셨습니다.
2) 장자권이란 축복권과 저주권입니다.
① 아브라함 -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 22:18).
② 야곱 -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창 27:28-29).
3) 장자권이란 천하 만민에게 복을 받게 해 주는 특권입니다.
① “너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라는 말씀은 아무에게나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 소원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람은 모두가 이기주의자입니다. 특히 어릴수록 심합니다.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게 됩니다.
② 장자권을 가진 사람은 만민에게 복을 나누어줄 사람이기에 마귀의 유혹과 박해가 끊임없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고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패배자에게는 상이 없습니다.
③ 하나님의 소원은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일에 헌신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우리나라와 민족이, 또한 우리 개개인이 이 거룩한 일에 쓰임 받아야 하겠습니다.
2. 장자권의 승계
1) 장자권은 아브라함에서 출발합니다. 이는 선민의 역사와 궤를 같이합니다.
① 아브라함에게는 장자 이스마엘이 있었지만, “여종으로부터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로부터는 약속으로 말미암아, 또는 성령을 따라서 태어났기에(갈 4:23,29) 이삭에게 장자권이 승계되었습니다. 이는 장자권 승계의 대 원칙을 보여줍니다.
2) 야곱에겐 여러 종류의 장자들이 있었습니다.
① 르우벤은 혈통적인 장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기에 장자권을 상실했습니다(창 49:3-4). 우리가 영계의 이런 비밀을 알지 못하여 오늘도 얼마나 많은 특권을 놓치고 사는지 모릅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면 큰일 납니다. 당신이 가진 특권이 아무리 커도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마귀의 온갖 술수와 유혹과 싸우되 목숨 걸고 싸워야 합니다.
3) 요셉 다음에는 장자권이 누구에게 승계되었을까요?
① 요셉이 두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려고 찾아갔을 때에 야곱이 말하기를 “네가 애급에서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이들 후의 네 소생이 네 것이 될 것이며”(창 48:5-6)라고 하였습니다.
3. 우리는 우리 민족의 위대한 사명을 깨달아서 그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1) 이스라엘은 선민입니다. 장자권이 이스라엘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상실했습니다.
2) 이스라엘 민족이 장자권을 잃었으나, 하나님은 제2, 제3의 장자 민족을 일으키십니다.
요셉 이후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장자권은 숨겨져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거듭난 성도,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장자권이 임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나라와 민족에게 장자권이 찾아왔습니다.
3) 장자권은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장자권은 강자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자에게 왔습니다. 본래 이스라엘은 큰 나라가 아니지 않습니까? 신명기 7:6-7에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聖民)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라고 하셨습니다.
4) 우리는 인류의 장자입니다.
우리는 세상 모든 나라와 민족을 섬기는 나라요 백성입니다. 또한 그렇게 할 때에 더 큰 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제사장입니다. 얼굴 모양도, 복장도, 행동도, 말도 모든 것이 제사장다워야 합니다. 이 제사장다움을 잃으면 이미 제사장권도 잃은 것입니다.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갑절의 복, 곧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이 다 있습니다.
이삭이 장자권의 복을 가지고 야곱에게 축복할 때에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창 27:28)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장자의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지는 복”(요삼 2)이 임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늘의 복’이라든가, ‘영혼이 잘되는 복’이라는 말을 알지 못합니다. 땅엣 것만 찾다가 땅에 묻히고 마는 것입니다.
원숭이를 인류의 조상이라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이것을 받을 때, 드디어 장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멘!
장자권의 명분을 더 깊이 깨달아 알고 귀히 여기며 우리 민족의 사명감을 가지고 더 충성되이 살아가는 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이 주신 큰 은혜에 더 감사하며 주신 사명 완수하는 우리 대한민국이 되며 한국교회가 되길 간절히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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