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에 도착한 영덕 강구항은 완전 ‘게판 ’이다. 대게집 100여 곳이 빼곡하게 들어섰고, 다리
번쩍 쳐든 으리으리한 왕게 간판이 길손을 유혹한다. 오전 7시가 되면 어두컴컴한 가운데 경매가 시작되는데 광어, 우럭, 게르치 등 횟감이 팔릴
때다. “대게 사이소. 요거예? 한 마리에 2만원입니데이.” 길거리 좌판에서는 생선을 내리기가 무섭게 은근슬쩍 관광객을 대상으로 게도 함께 판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덕에서 이 게들은 대게 축에도 못 낀다. “그건 물게 아입니꺼? 살보다 물이 많아서 대게로 치지도 않아예. 대가리를 꾸~욱 눌러보이소. 사람 숨구멍모냥 딱딱하면서도 옹골져야 그게 바로 대게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박달게지예.” |
강구항의 포장마차 앞에는 배를 타고 나온 뱃사람이나 차를 타고 달려온 횟집 주인이나 불을 쬐며
질펀한 포구 사투리를 늘어놓기에 바쁘다. “어디 안 죽고 살아왔네.” “ 값 올라서 제대로 팔겠나? 그래도 오늘은 경매한다고
하대.” 본격 대게 경매 시간은 오전 9시. 게가 서식하는 수온이 3℃라 일부러 새벽 추위가 한풀 꺾인 시간에 경매가 시작된다. “대게 경매합니데이.” 사이렌 소리와 함께 스피커에서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자 포장마차 앞을 빼곡하게 메웠던 사람들이 굼떴던 발을 재촉한다. 위판장 앞바닥에는 일주일간 먼 바다까지 나갔던 20t급 배가 게를 쏟아낸다. 배를 드러내고 기선을 제압당한 게가 쭉 도열을 마치는데 크기순도, 무게순도 분명 아니다. 10년 넘게 대게잡이 배를 탔다는 이복희 씨(43)의 구수한 설명이 시작된다. |
“크기만 봐서는 몰라예. 대게는 배가 누리끼리 하고 물게는 배가 허옇습니더. 물게가 무거운 것은
물이 많아서 그런 거 아임니꺼. 그런 게는 먹으면 짜고 푸석푸석합니더.” 영덕 게 중 최상품으로 치는 박달게는 수심 500m가 넘는 곳에서만 잡히며 7~8년 가량 자란 것이다. 속살이 90% 이상 실하게 찬 이놈들 집게에는 녹색 라벨이 채워지며 한 마리에 10만원을 웃도는 가격에 거래된다. “대게는 몸통 옆구리의 줄이 두 줄입니더. ‘너도 대게’라는 별칭을 지닌 청게는 줄이 하나지예. 최하품인 홍게는 배가 뻘걸 뿐 아니라 줄도 하나밖에 없어예.” 1만~2만원짜리 물게는 길거리 좌판으로 실려 나가고 10만원이 넘는 박달게는 집게에 녹색 훈장을 단 채 애지중지 대접받으며 횟집 수족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속이 알찬 박달게의 속살은 짠맛이 아닌 단맛을 낸다. 대게는 11월부터 5월까지 잡을 수 있는데 설 전후가 가장 맛이 좋다. 알을 품은 암게는 ‘빵게’라 불리며 어획이 엄격하게 금지된다. 중매인은 예전에 비해 어획량이 30% 수준으로 줄었다고 푸념이다. “지난 연말에 동창 모임이 있었는데, 대게나 한 마리 들고 나오라고 하대예. 어이가 없어서 웃었습니더. 예전에나 일본에 팔렸지, 요즘은 영덕에서도 부족해서 못 팔 지경입니더.” 대게는 쭉 뻗은 다리가 대나무를 닮았다고 해서 대게라 불리는데 찜으로, 탕으로, 회로 먹는다. ‘ 게 맛’을 제대로 보려면 쪄서 먹어야 하고 15~20분간 찌는 게 요령이다. |
대게 맛보고 드라이브도 즐기고 강구항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달리면 짙푸른 918번 해안도로가 고래불해수욕장까지 수십 킬로미터 뻗어 있다. 그 길 자락에 자리한 강구항과 대진항은 영덕을 유명하게 만든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주요 촬영지였다. 박 선장(최불암 분)의 덥수룩한 수염과 깊은 주름을 이곳 해안도로 주민의 얼굴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해안도로를 달리면 창포, 노물, 경정, 축산, 사진, 대진 등 영덕의 포구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데 그중 첫 번째로 마음을 붙드는 곳이 창포리의 풍력발전단지다. 80m가 넘는 거대한 스물네 개의 바람개비가 바다를 등지고 도는 모습은 네덜란드 풍차마을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해가 뜰 때나 해거름에 들르면 더욱 좋다. 이곳에서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마지막 전투 장면을 찍었다. 풍력발전기 밑이 해맞이공원. 새해 첫날만 되면 사람들이 가득 모여든다. 탁 트인 바다를 향해 나무 데크로 해변 산책로를 조성했다. 해안도로 옆은 끝없는 낚시 포인트다. 새해가 되면서 학꽁치가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데, 그 덕에 해안도로 곳곳이 주차장으로 변했다. “기술이 필요 없어예. 처음 하는 사람도 낚싯바늘만 넣으면 학꽁치가 알아서 물고 나옵니더.” 바구니 가득 학꽁치를 잡은 사람들이 낑낑거리며 자리를 뜨는 와중에도 벼랑 아래 갯바위든, 방파제든 낚시꾼이 빼곡하게 자리를 채웠다. |
임금님께 대게를 진상했다는 대게 원조 마을의 죽도섬을 지나 대진항으로 향할수록 해안도로는
피데기(반건조 오징어)로 터널을 이룬다. 길 이름을 영덕대게로 대신 피데기로라고 붙이는 게 낫겠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다가올 정도로 정말
피데기가 많다. 한때 고래가 헤엄쳤다는 고래불해수욕장에서 해안도로는 끝을 맺는다. 언덕 위, 삼성 고 이병철 회장의 옛 별장에서 이곳
20리(4km) 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데, 지난해 이곳에 경비행장 활주로가 들어섰다. 1970년대에 영덕은 ‘노가리 트롤선만 있으면 딸을 시집 보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노가리가 많이 잡혔다. 1980년대에는 청어가 그 바통을 이었고 그 후로는 대게가 명맥을 유지한다. 그 속에서 삶이 분주한 큰 포구와 정겨운 사람 냄새 나는 어촌마을이 조화를 이룬다. 영덕은 그렇듯 한겨울에도 뜨겁고 따뜻한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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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게~영덕게 먹고 프네여~꿀꺽 ~언제 다녀와야겟네여
난 대게가 커서 대게인줄알았네요. 대나무를 닮아서 대게라..... 침 넘어가네요.소주도 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