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피노체트'
두 사람이 부활하고 있다. 박정희는 두 말 할 것 없이 1961년 5월 16일 군부쿠데타로 민주 헌정을 유린한 후 18년 동안 대한민국의 '병영국가'로 만들었다가 1979년 10월 26일 심복 김재규에게 피살된 독재자였다. 그럼 피노체트는 누구인가? 본명은 '아우구스토 호세 라몬 피노체트 우가르테'(Augusto José Ramón Pinochet Ugarte, 1915년 11월 25일 - 2006년 12월 10일)로 칠레 대통령을 지냈다.
피의 독재자 피노체트
사람들은 피노체트를 '피의 독재자'라고 부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기에 피의 독재라고 불렀을까? 피노체트는 1973년 살바도르 아옌데 좌파정권을 쿠데타로 전복했다. 박정희처럼 민주헌정을 유린한 것이다. 아옌데 대통령이 누구인가?
피의 독재자 피노체트. 그가 죽인 사람은 3천명이 넘는다.
1970년 대통령에 칠레 대통령에 당선된 아옌데는 '사회주의를 향한 칠레의 길(La via chilena al socialismo)'라는 사회주의 정책 실행에 착수했다. '구리 광산과 은행 국유화, '정부의 의료 및 교육 복지 관리, 영양실조로 병든 어린이에 대한 무료 우유 배급', '사유 재산의 1/5에서 1/4을 몰수하여 국유화하는 토지개혁'- 아옌데 정부의 토지개혁정책은 관개된 토지 80 헥타르 이상의 모든 토지를 국유화하여,소수 대지주들이 토지의 대부분을 독차지 하여 대다수 민중들이 가난으로 고통받는 경제적인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의 마지막 라디오 연설을 보자. 우리 가카와 참 다르다.
이번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곧 마가야네스 라디오도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자 했던 나의 목소리도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계속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내가 이제 박해 받게 될 모든 사람들을 향해 말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내가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민중의 충실한 마음에 대해 내 생명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운명과 그 운명에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승리를 거둘 것이고, 곧 가로수 길들이 다시 개방되어 시민들이 걸어 다니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보다 나은 사회가 건설될 것입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입니다. 나의 희생을 극복해내리라 믿습니다. 머지않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고 여러분과 함께 믿습니다.
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이나 범죄행위로는 사회변혁 행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인민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아옌데 마지막 라디오 선언'
1973년 9월11일 미국의 지원을 업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당시 칠레 군참모총장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살바도르 아옌데(왼쪽) 대통령이 참모들과 함께 쿠데타군에 맞선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고 있다. 역사의 한 흐름은 이렇게 돌연 중단돼버렸다. <한겨레>
이런 사회주의 정책은 미국이 용납하지 않고, 군부 반대했다. 그리하여 1973년 피노체트는 미국 지원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다. 아옌데는 마지막까지 저항하다가 자살-일부 아옌데 지지세력은 피노체트가 처형했다고 믿고 있다-했다. 사후 시신마저도 군사정부에 의해 목이 잘리고 장기가 파헤쳐지는 등의 참시당하였다. 피노체트가 왜 피의 독재자인지 알 수 있다.
피노체트 부활, 칠레의 비극 부활
피노체트는 1991년 대통령에서 물러난 피노체트는 1998년 10월 런던에서 영국 사법당국에 의하여 체포되었으나 2000년 3월 건강을 이유로 석방된 뒤 칠레로 귀국하였다. 그는 가택연금 상태에서 인권유린 등의 혐의로 300여 건의 기소를 당하였으나 형사 처벌을 받기 전에 2006년 12월 죽었다. 참 어처구니가 없다. 수많은 사람을 죽인 학살자가, 그냥 자연사한 것이다. 장례는 피노체트 정권하에서 고문으로 아버지를 잃은 바첼레트 대통령의 거부로 국장(國葬)으로 치러지지 못하고 군장(軍葬)으로 치러졌다. 화장됐는데 그 이유가 흥미롭다. 피노체트는 자기가 죽은 수많은 피해자 가족들에게 자신의 시신이 훼손될까봐 화장을 원한 것이다. 하기사 아옌데 대통령 시신 목를 잘랐던 그 두려움이 배여있을 것이다
.
'피의 독재자' 피노체트 죽은 모습
그런데 그를 부활시키는 운동이 칠레에서 일어나고 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피노체트를 지지하는 시민 4천여명이 10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공연장 테아트로 카우폴리칸에 모여 17년 동안의 피노체트 집권기 재평가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관람할 예정이라고 9일 보도했다고 <한겨레>가 지난 10일 전했다. 이번 행사를 주도한 이들은 피노체트 집권기에 복무했던 전직 장교들로 구성된 '9월11일' 모임으로 알려졌다. 왜 그들이 9월 11일 모임을 가졌는지 아는가? 9월 11일은 피노체트가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린 날이다.
이 모임의 대표 후안 곤잘레스는 "이번 다큐가 칠레에 대한 진실을 보여줄 것"이라며 "피노체트는 칠레의 평화와 자유를 회복했고 테러리즘을 억제했다"고 주장했다. 피의 독재자가 진짜 칠레 평화와 자유를 무너뜨렸는데 피노체트 추종자들은 오히려 거꾸로 생각하며 추앙한다. 얼마나 비극인가. 피의 독재자 부활을 꿈꾸는 자들은 반민주주의 자들이다.
박정희 부활, 그 중심에는 딸 박근혜가...
대한민국도 박정희가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은 "5.16은 구국혁명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 19대 대통령에 가장 앞서있다. 그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 '5.16군사쿠데타'에 대해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당시 나라가 혼란스런 상황이었고 남북간 대치 상황에서 잘못하면 북한에 흡수될 수도 있었다"면서 구국의 혁명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2012년 6월 11일자 <한겨레> 그림마당
당시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면 5.16을 재조명할 기구를 만들 것이냐'는 질문에 "그런 생각은 없다. 정권 차원에서 '과거사위원회'를 만들어서 역사를 재단하는 것은 잘못됐다. 역사학자 등 전문가 등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고 했었다. 즉, 구국의 혁명인 5.16을 쿠데타로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되면 박정희는 화려하게 부활할 것이다. 박근혜 의원 민주주의관이 얼마나 그릇되고, 왜곡되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아니 벌써부터 조짐이 보인다. 지난 해 서울 상암동 소재 '박정희기념도서관'이 개관했고, 박정희 동상 및 기념관 건립했다. '육영수 일대기를 다룬 영화도 올 연말 개봉 예정으로 제작 중이다. 올 연말에 무슨 일이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바로 대통령 선거다. 대통령선거와 육영사 영화는 대놓고 박근혜 선거운동 하겠다는 발상이다.
1962년 10월 울릉도를 방문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오른쪽 두번째) 일행이 업무보고를 받은 후 울릉군청에서 나오고 있다. © 정부기록사진집
또 있다. <진실의 길>은 12일 울릉동에 박정희 기념관 건립이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울릉군청에 따르면, 박정희기념관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꾸민다고 한다. 즉, 박 전 대통령 방문 이전의 낙후된 울릉도와 방문한 이후 변화된 모습을 대비시켜 보여 줄 계획인데, 이를 위해 박 전 대통령의 울릉도 시찰 모습을 실물 밀랍인형과 사진, 영상 등으로 소개할 계획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얘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재미있게(?) 꾸려보겠다는 얘기라고 <진실의 길>은 전했다.
박정희 기념관·박정희 도서관·박정희 동상,반민주주의 부활...
박정희가 울릉도에 들려을 때, 하룻밤 묵었던 관사를 박정희 기념관으로 만들겠다는 울릉도. 재정 자립도가 13%밖에 안 되는데 15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들여 짓겠단다. 독재자 박정희 부활을 꿈꾸는 망령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학살자 전두환이 육사사열을 해도, 육사교장이 물러나지 않아도 된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박정희가 부활한다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이를 어떻게해서든 막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을 믿는 민주시민들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