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주 시인님의 신인상 수상을 축하해주세요 우수한 작품 평가를 받고 선정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모퉁이 중고책방 외 4편 지송
죽은 나무의 넋이 영웅의 서사와 함께 머무는 곳 무성한 열대의 기억이 쏟아진다 밀림에서 길을 잃는 건 그들의 기억이 잠을 부르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였거나 맨 아래 머릿돌이거나 은둔하는 수도승이라 해도 지금은 삭아버린 모서리 때 묻은 페이지마다 물결무늬가 새겨있다 벌레가 읽고 간 행간
밀림에는 환상이 빼곡하다 앞 못 보는 단어가 샛길을 따라가다 미로 속에 갇힌다 고여 있던 한숨들이 낡은 표지 아래 검은 혀를 내밀고 거꾸로 선 나무 위에서 옅은 잠을 헤매다 뿌리는 잉크가 되어 떨어진다
잠든 밀림은 소리를 삼킨다 찢어지고 더렵혀져도 말이 없다 그들을 따라 나도 침묵한다 죽은 넋이 깨어 스스로 말할 때까지 마른 지팡이에서 새순이 돋아날 때까지
인어공주
걸을 때마다 물소리가 난다 발가락마다 빛나는 조개껍데기 뭍으로 나와 이방인이 되어도 바다는 끊어지지 않는다 발뒤꿈치가 가난한 시간처럼 갈라져도 눈동자에는 파도가 출렁인다
이른 새벽부터 시큼한 시멘트 바닥을 닦고 무덤 같이 쌓인 생선을 다듬는 손 소금에 절인 향기가 난다 욕설과 주먹이 잘려나간 머리카락처럼 넘실대다 썰물을 타고 바다를 건넌다
다리와 바꾼 목소리는 깃털처럼 펄럭이다 막을 내린다 비늘 달린 꼬리가 떨어져나가며 반짝이던 눈물도 말라버렸다 굽은 무릎에는 바늘바람이 꽂힌다
마지막 숨을 바다에 보내려 떠날 준비를 한다 솔질로도 지워지지 않는 땅의 기억 손끝마다 박힌 가시로 녹슨 맨발을 파묻고 검푸른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환승지
6인용 객실에 앉아 창문을 바라본다 검은 커튼이 내려진 창문 너머 그녀가 사라지는 중이고 유리창은 그녀의 미소를 안고 있다 시간을 알 수 없는 무거운 공기 굵은 소음에 머리가 먹먹하다 숨소리가 바닥에 잠겨 발목을 누른다 어느 칸은 발톱을 세워 머리카락을 뜯고 어느 칸은 손가락에 숫자를 새긴다 간혹 울음을 낳아 키우는 칸도 있다 그녀의 체온처럼 따뜻한 의자가 한숨을 쉰다 그녀의 심장을 파먹으며 강을 건넌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창문 틈으로 날아오른다 느린 걸음으로 복도에 번지는 사람들 눈 밑이 어두워 깊은 샘이 고였다 저승 가는 기차가 덜컹거리는지 멀미가 올라온다 거센 물결 지나 마음도 무늬를 잃었을 때 여행이 끝났다 영생관리사업소 12번 관망실 커튼이 젖히고 작은 상자가 들어온다 다음은 어디가 될지 나는 뼈를 갈아타고 국경을 지난다
주사위 게임
하얗게 질려가는 일요일 검은 손이 머리채를 잡아끌면 칸과 칸 사이를 헤매기 시작한다 미끄럼틀을 타고 어제로, 한 달 전으로, 일 년 전으로 간다 공사 끝난 벽돌집이 공터가 되고 감독이 바뀔 때마다 묻어둔 설계도가 밖으로 나온다 턱없는 뱀을 피해 곁눈질하는 사람들 자리를 사고, 순서를 거래하러 부리나케 달린다 로켓이 말줄임표로 뛰어오르다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규칙
나는 스물두 칸 아래로 떨어지며 장애물 뒤에 몸을 숨긴다 출구는 우아함을 가장한 승자에게 열린다 병든 주사위 앞에서 나는 더 가난해진다 사랑하는 시늉을 하며 절룩거려도
다시 주사위를 던진다
기념식수
갈림길에는 바람이 산다 앞뒤 잘려나간 돌판과 흥정도 없이 뽑혀 온 나무 한 그루만 길목을 지킨다
속임수와 배신이 교차하며 낳은 문장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사람은 게임 바깥에 있다 펜을 휘두르는 사람은 혀를 잠근다 이름의 주인은 다시 오지 않고 뿌리째 옮겨진 나무의 사연은 이내 지워진다
어느 불꽃에서 점화되는지 알 수 없다 소문이 어디부터 둔갑할지 표지석의 숫자가 희미해지며 열매는 석탄이 된다 글자에서 과거를 캐면 구석구석 새로 칠해진 빈 상자가 잡힌다
흰 머리카락을 심었는데 천둥이 자란다 흔들리던 이정표도 내려앉고 솟아오른 발가락은 안개를 부른다 내장은 시간에 먹히고 길 잃은 바람만 남는다
당선 소감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는 복도를 헤매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걸어야 할지 모르면서 불 꺼진 길을 무던히 걸어왔습니다. 제 마음은 항상 삭발한 겨울이었고 혼잣말이 메아리치는 동굴이었습니다. 이제 어두운 복도에 한 걸음씩 불을 켤 수 있는 통행증을 얻은 기분입니다. 좀 더 깊은 샘물을 팔 수 있는 허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제게 소중한 신호등 하나를 켜주신 심사위원님과 애지 관계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열정으로 시의 길을 보여주고 열어주신 성은주 시인과 한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반 선생님들, 한남대학교 사회문화대학원 교수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신 여러 문우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릇은 음식을 담을 때 진정한 가치를 갖게 됩니다. 그릇이 아무리 예쁘고 보기 좋아도 음식을 담지 못하면 장식품에 불과한 것처럼 저도 제 시에 담기는 누군가의 마음을 돋보이게 하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시를 보는 사람과 시를 먹는 사람이 더 아름다워지는 시, 좋은 밑거름이 되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세상에 깊은 상처를 받고 통증이 밀려올 때 시를 쓰면 아픔이 사라지곤 했습니다. 시는 제게 진통제와 같습니다. 아픔을 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고받았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 시를 읽어주신 분들, 앞으로 제 시를 읽어주실 모든 분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성명 : 지송 (본명 : 박은주) e-mail : ending_2001@naver.com 약력 : 당진 출생 1990 한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졸업 현재 한남대학교 사회문화행정복지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학중 현재 한남대학교 중앙도서관 재직중 |
첫댓글 드뎌 지송님의 둥근해가 떳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문단에 거목 되시길 앙망하여이다.
ㅉㅉㅉ!!!
아니.. 언제 이런 게시물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아직 갈 길이 먼데요... -_-;;;;
시인님,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송님 등단을 축하합니다 ~~~
지송님의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시와 동행하시므로 더욱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축하! 또 축하합니다.
이런 인재와 함께 하는 문학회가 즐겁습니다.
박은주 선생님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박은주 선생님 등단하심을 축하드립니다.
좋은 시 많이 올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