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머라켔노. 니 짐 야구부에 들어간다고? 그거 무슨 소리고. 니 지금 나이가 몇 갠데 이제와가 야구부에 들어가 뭘 우짤라고 그라는 거고. 안 된다, 민식아. 다시 한 번 단디 생각해 봐라.” 예상했던 반대였다. 집안 어른들 중 누구 하나 찬성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너무 늦었다고, 생각을 바꾸라고, 정 하려거든 취미로 이따금 하는 정도에서 끝내라고 충고했다. 그럴 만도 했다. 당시 소년의 나이 열다섯, 몇 달 뒤면 중학교 졸업반이 되는 마당에 갑자기 공부를 관두고 운동부에 들어가겠다니. 부모의 만류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특히 야구선수 생활을 해본 이모부(이현택, 전 삼성 1루수)의 반대는 더욱 심했다. 운동으로 성공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직접 경험해본 그에게는, 귀한 조카가 실패가 예정된 무모한 도전을 하려는 게 몹시 걱정스럽게 여겨졌다. 그는 오랜 시간을 들여 조카를 설득했다. 이모부의 애정 어린 충고에 소년의 마음이 바뀌었을까? 전혀. 소년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이모부, 저를 걱정해 주시는 마음은 잘 압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로 야구가 하고 싶어요. 장난삼아 하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요. 만약에 제가 야구를 시작해서 중간에 포기한다면, 그 날 이후 다시는 이모부 얼굴 안 보겠습니다. 그런 각오로 죽을힘을 다해서 해볼게요. 저를 믿어주세요.” 과연 소년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과는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지난 8월 열린 2011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개성고 좌완 김민식은 2라운드 전체 10순위로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았다. 야구 시작 4년 반 만에 이뤄낸 인간승리. 그날 그 자리에서 이름이 불린 70여명 중에서 김민식보다 늦게 야구를 시작한 선수는 없었다. ▶SK 지명을 축하한다. 얼마 전 신체검사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몸 상태는 어떻다고 하던가? 상태가 아주 좋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프거나 다친 곳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공식적으로 확인을 받으니까, 안심이 된다. ▶지난 얘기지만 드래프트 당일에 있었던 얘기를 좀 해보자. 이름이 불리던 순간에 카메라에 비친 표정이 그다지 밝은 모습이 아니라서 오해를 받았던 것으로 안다. 많이 당혹스러웠을 것 같다. 억울함 그 자체다. (웃음) 미니홈피에 ‘인상이 나쁘다’ ‘SK가 싫으냐’ 같은 악플도 많이 달렸다. 그런데 어쩌겠나. 원래 내 생긴 게 그런걸. 원래가 표정이 많지 않은 얼굴인데, 관계자들 많이 보고 있고 TV 생중계한다고 카메라도 비추고 하니까 더 긴장해서 얼굴이 굳어 있었다. 하필 그때 이름이 불리는 바람에... 많이 억울하다. 사실 행사 진행되는 동안 웃는 표정도 많이 지었는데 웃는 건 하나도 안 찍히고 굳은 표정만 나와 버렸으니. ▶SK에서 당신을 지명할 거라고 예상은 했었나? 전혀 몰랐다. 사실 그전까지 같은 지역에 있는 롯데나 삼성 스카우트 분들과는 인사도 하곤 했는데, SK쪽과는 일면식도 없는 상태였다. 아마 스카우트님들 말고는 아무도 예상한 사람이 없지 않았을까. ▶그럼 질문을 바꿔서, 왜 SK가 당신을 지명했다고 생각하나. 글쎄, 아마도 내 생각엔 SK가 원래 왼손투수를 많이 뽑는 팀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앞서 유창식과 윤지웅 선배가 뽑히고 이현호랑 내가 남은 상태였는데, 사실 최근 컨디션만 볼 때는 내가 현호보다 괜찮은 모습을 보였으니까 먼저 뽑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했다. 왠지 SK때 내 차례가 한번 돌아올 거 같더라. 그나마 열 손가락 안에는 들었으니 다행이다. 11번으로 뽑히는 것과 10번과는 느낌이 다르지 않나. (웃음) ▶확실히 그렇다. 좀 난처한 질문인지도 모르지만,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 묻겠다. 평소 SK라는 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나?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렇게 표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내가 야구선수로 성공하려면 SK 같은 팀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SK에 지명된 게 정말 복 받은 거라고 생각한다. 다들 야구를 열심히 하고 연습량이 많은 팀이니까. 물론 힘들 수는 있겠지만, 이왕 프로 선수가 된 이상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게 낫지 어영부영 놀다가 실패하면 본인만 손해 아닐까. 그런 이유에서 성공하려면 SK 같은 팀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어서 기쁘다. 그리고 SK의 지명에 기뻤던 이유가 또 하나 있다. ▶그게 뭔가. 김성근 감독님이 계신 팀이기 때문이다. 사실 김 감독님과는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 ▶SK에 지명된 게 정말 복 받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랬나. 전혀 몰랐다. 그런데 그 얘기는 조금 뒤에 다시 하기로 하자. 일단은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먼저 들어보고 싶다. 처음 야구를 시작한 게 언제였나. 중학교 2학년 겨울이다. ▶정말인가? 김상재 감독님(개성고)도 중학교 들어가서 야구를 시작하셨다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그렇게 늦게 시작한 줄은 몰랐다. 뒤늦게 야구를 하게 된 이유가 뭔가. 믿거나 말거나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공부를 잘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2학년 2학기 때인가, 갑자기 시험 점수가 확 떨어진 거다. 그때 혼자 ‘아, 이제 공부는 틀렸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사춘기 때였으니까. 그때가 마산중학교 다닐 때였는데 마침 그 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다. ‘이참에 까짓 거 운동이나 해볼까’하는 생각으로 체육부장님께 부탁해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가서 스윙을 힘껏 했는데... ▶홈런이라도 쳤나. 내가 친 공이 학교 운동장 우측 화단을 훌쩍 넘겼다. 그래서 이 정도면 해볼만 하겠다 싶어서 야구부에 정식으로 들어갔다. 그때가 2학년 동계훈련할 때쯤이다. ▶그전까지 정말로 야구는 한 적이 없었던 게 확실한가. 공부만 열심히 했다. (웃음) 체육시간에는 주로 축구를 했고. 아, 물론 운동에는 소질이 있는 편이었다. 중학교 들어가서 투포환이나 창던지기처럼, 뭔가 던지는 쪽의 운동은 잘 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씨름도 잘 했다. ▶재능이 있어도 중학교 2학년이면 너무 늦은 시기인 건 분명하다. 동기들을 따라잡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또 야구부는 기합도 심한 편인데, 견디기 어렵지 않았나. 죽기 살기로 했다. 당시만 해도 마산중을 비롯해 이쪽 지역 야구부가 구타가 심한 편이라서 많이 맞으면서 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계속 맞다 보니, 오히려 오기가 생겨서 더 악착같이 야구에 매달리게 되더라. 뭐랄까,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달까. ▶수도권 중학교를 다니다 경남으로 스카우트되어 내려온 케이스로 알고 있었는데, 원래 지역이 마산 쪽인줄은 몰랐다. 원래가 마산 출신이다. 마산중에서 유급하고 1년간 야구부 활동을 한 뒤에, 3학년 때 이모부 소개로 경기도에 있는 매송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거기 계신 김병조 감독님이 이모부 후배라서, 그분에게 야구를 배우러 간 거다. 이후 고등학교 진학할 때는 삼성 김응룡 사장님의 추천으로 개성고로 오게 됐고. ▶처음부터 포지션은 투수를 봤나. 그렇지는 않다. 정해놓은 포지션이 없어서 1루수도 보고, 우익수도 보고 여기저기 많이 해봤다. 그런데 해보니까 투수가 가장 재미있었다. 생각해 봐라. 야구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마운드에 올라가서 바깥쪽 던지면 타자가 헛스윙을 하고, 커브 던지면 꼼짝도 못하고 당하고. 얼마나 재미있었겠나. 그 맛에 계속 투수를 하게 된 것 같다. ▶지금은 체격조건이 엄청나게 좋은 편에 속하는데(키 188cm), 중학교 때도 지금처럼 신체조건이 우월했나. 처음 시작할 땐 또래보다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야구를 1년 정도 하고 나니까 그때부터 갑자기 키가 쑥쑥 자라서 180cm를 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줄넘기 같은 것도 많이 하다 보니 키가 자란 게 아닐까. 삐에로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늦게 시작한 만큼, 야구를 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기에 프로에 지명됐을 때 가족들이 느낀 기쁨도 더욱 컸을 것 같은데 같은데, 어떤가. 물론이다. 반대가 말도 못했다. 하지만 야구를 정말로 하고 싶었고, 잘 할 자신이 있었다. SK 지명을 받은 뒤 부모님과 친가, 외가 어른들이 모두 너무나 기뻐하셨다. 특히 삼성에서 선수생활하셨던 이모부가 대견하다며 많이 격려해 주셨다. 사실 운동 시작할 때는 가장 반대하셨던 분이 이모부인데, 막상 야구를 하는 동안에는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주셨다. ▶야구는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 중 하나다. 그동안 뒷바라지하신 부모님께 고마운 마음이 클 것 같다. 사실 집안 형편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교수도 하시고 사업도 하면서 잘 사는 편이었는데, 갑자기 부도가 나는 바람에 빚더미에 앉게 됐다고 하더라. 게다가 아버지께서 많이 편찮으시다. 당뇨에 합병증까지 생겨서 작년에도 잠깐 고비가 왔었다.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셨는데, 하필 그때마다 연습시합 잡혀있고 큰 대회 잡혀있고 해서 도저히 갈 수가 없는기라. 속으로 안타까워하다가,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다. ▶무슨 생각을 했나. 내가 이렇게 약해지면 안되겠다, 아버지 더 편찮으시기 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돈 벌어서 아버지 병도 치료하고 집안도 일으켜 세워야 할 것 아닌가. 그런 생각으로 아버지 입원하신 동안 나간 대회마다 이를 악물고 던졌다. ▶혹시 장남인가? 밑으로 여동생이 하나 있다. 그 녀석한테도 너무 미안하다. 야구한다고 나한테만 집에서 신경을 쓰는 통에 학원도 제대로 못 다니고... 꼭 성공해서 대학까지 내가 보내주고 싶다. 맏이의 어깨는 언제나 무거운 법이다. 지금까지 얘기하는 당신 모습이 하도 밝고 쾌활해 보여서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사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 많다. 생각해 봐라. 갑자기 집안 형편이 급속도로 기울면, 당연히 가족들 간에 충돌하는 일도 많아지는 법이다. 생활이 어렵다보니 화목한 가족과는 조금씩 거리가 멀어진 거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가, 그런 게 너무 괴로운 나머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 나이에는 다들 그런 생각을 한번쯤은 하지 않나? 나는 꽤나 심각했다. 아무튼, 그렇게 나를 괴롭히는 이런저런 문제들이 야구하는 동안에도 자꾸만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마다 다짐했다. 나는 장남이라고. 내가 이 고비를 어떻게든 이기고 헤쳐 나가서 우리 집안을 일으켜 세우겠다고. 우리 가족을 화목하게 만들고 싶다고. 그 생각으로 더 열심히 운동했다. ▶지금은 어떤가. 목표대로 된 것 같은가? 많이 좋아졌다. 아버지 건강도, 가족들 분위기도. 하지만 아직도 장남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이다. 꼭 해낼 거다. 이건 내가 피할 수 없는, 책임져야 하는 일이니까 부딪혀서 이겨내려고 한다. ▶감독님이나 동료들은 당신이 쾌활하고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지금 당신이 들려주고 있는 얘기들은 전혀 뜻밖이다. 혼자 있을 때는 자주 울적해지는 편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할 이유는 없다. 내가 팀에서 제일 나이도 많은데, 애들 앞에서 인상 쓰고 하면 어떻게 되겠나. 애들이 눈치보고 할 거 아닌가. 그런 걸 잘 아니까, 일부러 동생들에게 장난도 치고 자주 웃으면서 밝은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게 해야 동생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따른다. ▶후배들에게 잘해준다는 얘기는 들었다. 사실 첫 인상이 굉장히 강한 편이라 후배들이 무서워할 것도 같은데 (웃음) 실제로는 후배들이 잘 따른다고. 사실 지금까지 야구하면서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딱 한 번 있다. 그게 언제인지 아나? ▶글쎄. 개성고에 처음 입학했을 때다. 중학교 때보다 연습량이 많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건 선후배 간에 기합주고 때리는 문화였다. 중학교 때 선배들이 때리는 건 맞아도 별로 아프지가 않았는데, 고교 와서는 어휴, 힘 자체가 다르더라. 이러다 엉덩이가 찢어지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때는 정말 야구고 뭐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부모님 생각하면서 견뎠다. 그리고 그때 결심한 게 있다. ▶어떤 결심인가. 내가 당한 걸 후배들에게 절대 돌려주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때리고 기합 주는 문화를 없애고 싶었다. 그래서 선배가 된 이후에는, 동생들이 잘못해도 아직 어리니까 잘 몰라서 그런다고 생각하고 웃으며 넘겼다. 괜찮다고, 다음에 잘 하면 된다고 말하며 달랬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밥을 나르거나 청소하는 일도 동생들이 하기 전에 먼저 나서서 도와주면서 솔선하려고 노력했다. 지금도 동생들하고 같이 있을 때가 제일 재미있고 즐겁다. 슬럼프를 극복한 비결 ▶사실 지난해 무등기와 화랑기에서 눈부신 호투를 펼친데 비해, 올해 초엔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원인이 뭐였다고 생각하나. 여러 가지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한창 페이스가 올라올 때쯤에 청룡기에 못 나가서 쉬고 하다보니 컨디션 조절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또 내가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라서 여름에 좀 약하다. 공을 던져도 손에서 미끄러지고, 그래서 구속도 생각보다 적게 나오곤 한다. 연습으로 풀어가야 할 부분이다. ▶많은 선수들이 3학년 때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초조해하다가 스스로 무너지곤 한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 글쎄. 처음 황금사자기 시작할 때가 한창 날씨도 춥고 야간경기가 많을 때였다. 그래서 결과가 좋지 않아도 ‘날이 추워서 아직 몸이 덜 풀렸나보다’ 하고 편하게 생각했다. 선배들이 ‘고3병’을 앓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초조해하지 말자고, 편하게 하자고 스스로를 더 다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마음을 편하게 먹었더니 때가 되니까 몸도 풀리고 시합도 잘 되더라. ▶올해 들어 구속이 급격하게 빨라진 편이다. 지난해에는 130km/h대였는데 올해는 140km/h 중반까지 찍었다. 그러면서 투구패턴도 빠른 볼로 제압하는 스타일로 바뀌었다. 작년까지는 직구가 그렇게 빠르지 않아서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던지고 직구는 유인하는 공으로 구사했다. 그런데 동계훈련을 거치고 나니까 구속이 많이 올라오면서 140 이상까지 올라왔다. 그래서 이 정도면 직구로 승부해도 괜찮다 싶어서, 경기 초반에는 직구 위주로 가고 힘이 빠질 때쯤에는 슬라이더나 커브 등으로 완급조절을 해서 던졌다. ▶구력이 짧은 편인데도 던지는 변화구 구종이 꽤나 다양하다. 손끝 감각이 남들보다 뛰어난 편 아닌가? 확실히 그렇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있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어머니하고 같이 십자수나 바느질 같은 것도 자주 했고. (웃음) 그런 걸 하려면 조그만 거를 섬세하게 다루는 능력이 필요하지 않나. 물론 그렇다고 손재주에 의존하는 투수가 될 생각은 없다. 기본적으로 체격조건이 있고 힘이 좋은 편이기 때문에, 빠른 볼 구속을 더 높여서 타자를 압도하는 투수가 되는 게 나에게 적합하다고 본다. ▶십자수라. 정말 의외다. 갑자기 취미가 뭔지 궁금해진다. 제일 즐기는 건 낚시다. 6살 때인가, 아버지와 함께 배타고 섬 같은데 가서 스킨스쿠버도 하고 성게 같은 것도 잡아오고 했다. 최근에도 봉황대기 끝나고 바다 낚시하러 다녀왔다. 낚시를 하면 참을성이 길러져서 좋은 것 같다. 스타크래프트도 잘한다. 가끔 감독님과 PC방에 가서 대결을 할 때가 있는데, 감독님 상대로 이기려고 드는 선수는 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또... 노래부르는 것 좋아한다.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노래를 너무 잘 한다. (웃음) 발라드도 잘 부르고 랩도 잘 한다. 슈프림팀의 “땡땡땡”부터 디셈버나 버즈 같은 노래까지 소화한다. ▶팬들을 위해 한번 불러줄 수 있나. ▶대박이군. 내년 미디어데이 날이 몹시 기대된다. 예능은 여기까지 하고 다시 야구 얘기로 돌아가서, 본인이 생각하는 투수로서의 장단점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 장점이라... 일단 마운드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쫄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공을 던지는 팔각도가 높다는 것과, 시합마다 기복이 크지 않다는 게 장점인 것 같다. 어떤 경기는 잘 던지고 다음 경기에서는 무너지는 식의 기복이 거의 없다. 반면에 단점이라면 구력이 짧다보니 아직 밸런스가 일정하지 않은 점을 고쳐야 할 것 같다. 팔 나오는 각도도 조금씩 바뀌는 경향이 있고. 프로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스스로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주력이나 운동능력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는 어느 정도 수준인 것 같은가. 러닝에 소홀하면 좋은 투수가 될 수 없다. 장거리 달리기는 자신 있다. 그리고 감독님이 배트 잡지 말라고 하시긴 했는데, 안 보실 때 몰래 타격 연습을 자주 해서 배팅에도 자신이 있다. 좌타석에서도 치고, 우타석에서도 쳐보고. 투수가 왜 타격 연습을 하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은 그게 은근히 도움이 된다. 스윙하면서 힘도 붙고, 밸런스도 유지할 수 있고. 그리고 같은 학교 채태인 선배도 그렇지만, 사람 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글쎄, 아직까지 별로 부상에 시달린 일은 없지 않나. 사실이다. 이제껏 야구하면서 아파본 적이 없다. 야구를 늦게 해서 그런지 몸이 아직은 싱싱한 모양이다. 어깨가 뭉치는 적은 있어도 다음번에 나와서 던지면 풀리고. 원래 집안 내력이 키가 크고 몸이 튼튼한 편인 것도 이유인 것 같다. ▶사실은 감독님이 잘 관리해 주신 덕도 있지 않나. 자기가 살기 위해 선수를 혹사하는 지도자가 아직도 많은 학생야구에서 김상재 감독 같은 분은 흔치 않다. 정말이다. 가장 고마운 분 중 하나다. 감독님도 야구를 늦게 시작하신 분이라 그런지 도움이 되는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시합에 지고 나서도 따로 불러서 ‘괜찮다, 앞으로 더 잘하면 된다, 대신에 너무 잘 하려고 오버하지만 마라, 그러다가 다칠 수도 있다’고 다독여 주시고. 우리 감독님은 성적 내려고 선수 혹사시키는 일이 절대 없는 분이다. 게임에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좋은 선수를 만들어서 대학과 프로로 보내는 걸 목표로 하시는 분이니까. 아마 다른 팀에 갔다면 지금처럼 잘 되기 힘들지 않았을까. ▶개성고(전 부산상고)하면 삼성 김응룡 사장의 지원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데. 김 사장은 어떤 분인가. 사실 김응룡 사장님과 김성근 감독님은 중학교 때부터 알던 분들이다. 김 사장님은 나에게는 뭐랄까, 할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해야 하나. 항상 학교에 오시면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보시고, 밥도 사주시고, 시합도 보러 오시고. 사장님 오셨으니까 더 잘 보여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뭔지 모르게 가깝게 느껴지고 편안해서 힘이 되는 것 같다. 나를 개성고로 오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고. ▶김성근 감독과의 인연을 아까 이야기하다 말았는데, 중학교 때부터 알았다니 꽤 오랜 인연이다. 어떻게 알게 됐나. 중3때 운동을 열심히 했더니 볼 스피드가 130km/h 후반까지 나올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 그래서 국가대표로 뽑혀서 일본에 갔는데, 거기서 완봉승도 한 번 하고 굉장히 잘 던졌다. 마침 그때가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하는 해라서 야구계 원로들 모인 자리에 초대받아서 참석하게 됐는데, 그 자리에 김 사장님과 김 감독님 두 분 다 계셨다. 생각해 봐라. 그 대단한 분들 앞에서 내가 던지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틀었을 때의 기분이 어땠을지. 더 좋았던 건, 그분들이 영상을 보시고는 ‘저 녀석 괜찮네’라고 좋게 평해 주셨다는 거다. ▶그렇다면 입단해서 김 감독님을 뵈어도 낯설지는 않을 것 같다. 김 감독님은 어떤 분인가. 참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SK가 부산 원정 때마다 항상 우리 학교에 와서 특타를 하셨는데, 모자에 싸인도 받고 이런저런 조언도 듣고 했다. 한번은 감독님이 오셔서 나를 딱 보시더니, 대뜸 내 가슴에 손을 올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투수는 가슴이 많이 나올 필요가 없다’고. 지나가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은 다 도움이 되는 말씀인 거다. ▶사실 김응룡 사장 얘기만 나오고 김성근 감독 얘기는 안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런 인연이 있어서 다행이다. (웃음) 야구팬들이 워낙 그런 거에 민감하니까. 사실 드래프트 당일에도 ‘좋아하는 투수는 류현진’이라고 했다가 곤욕을 치르지 않았나. 안 그래도 인터뷰하면서 말 잘못했다가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팬들에게 꼭 이것만은 말해두고 싶다. 나는 남한테 잘 보이려고 마음에 없는 말을 지어내는 성격이 못 된다. 김광현 선배도 물론 좋아하고 굉장한 투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김광현 선배 쪽은 아니지 않나. 김광현 선배는 던지는 스타일도 그렇고, 또 얼굴 생김새도 그렇고... (웃음) 내 체격이나 투구하는 타입이나 어딜 봐도 김광현 선배보다는 류현진 선배에 가까운 게 사실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C.C. 사바시아(뉴욕 양키스)인데, 역시 류현진과 비슷한 타입이다. 제 2의 김광현은 잘생긴 서진용이 하면 되고, 류현진 같은 투수가 SK에도 한 사람쯤 있으면 그게 더 좋은 일이 아닐까. 이거 잘 써주셔야 한다. 안 그러면 또 오해를 받으니까. (웃음) ▶맞는 얘기다. 투구패턴이나 구종 등 어느 모로 봐도 당신은 김광현보다는 류현진 쪽에 가깝다. 그 부분은 앞으로 실력으로 보여주면 된다. 프로에 입단해서 이루고 싶은 개인적인 목표는 어떤 게 있나? 물론 입단 첫해부터 활약하고 하면 좋겠지만, 급하게 하고 싶은 맘은 없다. 선배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급하게 하면 다친다는 거다. 서두르지 않고 길게 보면서 할 생각이다. 2, 3년 정도 2군에 있게 되더라도 투구폼을 다듬고 몸을 차근차근 만들어서 제대로 된 모습으로 1군 마운드에 서고 싶다. 내년 당장만 보면 유창식보다 내가 못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낙담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야구 1년만 하는 건 아니니까. 마지막에 가서 웃는 사람이 진짜 승자니까. ▶많은 선수들을 만나봤지만, 김민식 선수는 반드시 프로에서 성공할 것 같다. 확신이 든다. 끝으로 묻겠다. 당신에게 야구란 어떤 운동인가. 야구는 ‘정직’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야구는 거짓말이 없는 것 같다. 연습하고 노력하면, 반드시 그만큼 결과로 돌아온다. 내가 직접 경험했다. 처음 야구를 시작할 때는 그런 말을 들어도 믿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동안 야구를 해보니까, 정말로 내가 최선을 다하고 노력을 다했을 때 야구가 거짓으로 대답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야구는 늘 내게 정직했다. 그게 내가 야구를 좋아하고 지금까지 하고 있는 이유다. 그게 앞으로 내가 SK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다. *<야구라>의 신인 선수 인터뷰는 삼성 심창민, 윤영삼으로 이어집니다. www.yagoora.net / 트위터 @kihotae |
첫댓글 민식아! 프로야구 유명구단 'SK와이번즈'에 입단하는것을 충심으로 축하한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실력을 연마하고 몸관리 잘하여 오랜동안 뛰어난 에이스가 되어 민식이의 성공과 개성고의 명예를 빛내주기 바라고 그동안 뒷바라지하며 애쓰신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집안의 든든한 장남이 되어주길 바란다. 51회 오태홍
sk 입단을 진심으로 축카하며 앞으로 열심히하는 모습 많이보여주고 tv에서 자주 보였으면 좋겠다.
화이팅!!!!
"게임에 이기는것도 중요하지만..그보다 좋은선수를 만들어 대학과 프로로 보내는걸 목표로 한다"......참 의미가 깊은뜻인데...정답은 뭘까?....성적없이 과정만 으로 미래를 받아줄 사회는 아직 오지 않은것 같은데....감독의 탁월한 역량이 있어야......어렵습니다.....정말...그래도 실력=성적으로 정진하는것이 기본이지 않을까 생각하는디..민식후배의 큰발전을 기원하며...모교사랑 잊지말고^^
김민식 후배님! 개성고 3년동안 정말 수고많았습니다. 물론 올해 같이 졸업하는 병우,동우,채원,세준이도 수고많았구요. 대학/프로 가서도 맹활약 하는 후배들의 모습이 계속 되었음 합니다. 민식이 아버님께서도 저희 백양리그에 회원 가입 하신줄 아는데... 건강도 좋지 않은 가운데 매일 100배/시합 전날 500배의 절을 올리며 간절한 기도를 하신 마음이 있었기에 오늘날 민식이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시한번 올해 개성고를 졸업하는 5인방 후배들의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