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후에 서울 송파구 잠실 석촌호수로 나가다가 쓰레기장 옆에 내다놓은 큰 백도기 화분 하나를 보았다.
작은 나무도 들었다.
욕심이 나기에 바짝 다가가서 살펴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으나 입 꾹 다물고는 호수로 나갔다.
남이 내다버린 화분을 주워 오지 말라는 아내의 지청구와 당부를 숱하게 들었던 터였기에 어느 정도껏 주눅이 들었다. 귀가할 때까지 남이 주워가지 않았으면 하는 미련은 남겼다.
서호 쉼터 안에는 많은 사람이 나와서 몸을 풀고, 장기와 바둑을 두고, 산책하고 있었다.
나는 구경꾼이 되어서 장기판을 내려다보았다.
한 영감이 장기알을 만져서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도 또 다른 장기알을 옮겼다. 상대방 노인은 그런 사실도 모른 채 멍청히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바른소리를 냈다.
'왜 기물을 두 번이나 옮겨요?'
장기알을 거듭 옮겼던 노인네가 고개를 쳐들어서 나를 힐끗 올려다보았다.
하도 많이 늙으면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저 멍청해지는 것일까?
하수들이나 두는 장기이기에 나는 이내 자리를 떴다.
나는 오나 가나 미움받을 짓이나 한다. 나도 모르게 입바른소리를 내기에.
그냥 모르는 체하면 좋으련만 나도 모르게 바른소리가 새어나와서 이따금 남한테 미움이나 받는다.
귀가하다가 쓰레기장을 멀리서 바라보니 하얀 도기 화분이 그대로 있다.
반가워서 바짝 다가서서 살펴보니 도기에 금이 갔다. 키 작은 관목은 아직 살아 있다.
잎이 하나도 없고, 잎눈이 오를 기미만 조금 보였다. 손으로 잡아서 뽑으니 금세, 쉽게 뽑혔다.
손가방에서 비닐봉투를 꺼내서 관목 뿌리를 담았다. 입마개를 넣어두는 작은 비닐봉투.
집에 와 기존의 화분 하나를 비운 뒤에 여기에 관목을 심었다.
기존의 화분 속에는 새알 크기의 통마늘 예닐곱 개를 키우는데 요즘 들어와 줄기가 늘어지면서 말라죽고 있었다.
마늘을 뽑아 보니 가느다란 실뿌리는 엄청나게 많이 달렸으되 원래의 통마늘은 빈 껍질만 있었다. 줄기와 잎이 통마늘의 양분을 다 소모했다는 뜻.
나는 화분에 작은 통마늘을 심었다. 통마늘 화분재배에 관한 경험을 얻었다.
도시 아파트 23층에서 화분농사를 짓는다는 게 논리에는 맞지 않는다.
나는 땅이 있는 시골에 내려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화분농사를 지으면서 달랜다.
비록 새알만한 크기의 통마늘 예닐곱 개를 심어서 관찰까지 하고 있으니 나는 어쩔 수 없는 건달농사꾼이다.
오늘 주워온 관목에 새 잎 나오면 그게 어떤 나무인지를 확인할 수 있겠다.
우선은 살려야 할 터...
1.
밤 열 시가 넘어서 베란다에 나가서 화분을 들여보다가 깜짝 놀랐다.
화분 식물 위에 민달팽이 네 마리가 기어다니는 것을 보았다.
꽃삽과 티스픈으로 이들을 조심스럽게 옮겨 담은 뒤 티스푼으로 톡톡 쳐 토막을 내어 극락세계로 보냈다.
수돗가에서 물로 씻어낸 뒤 다시 여러 개의 화분은 찬찬히 살펴보았더니만 눈에 자꾸만 뜨었다.
징그럽고, 더럽고, 혐오스러운 작은 생명체를 무려 45마리나 천당에 보냈다.
민달팽이가 야행성 동물이라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끈적거리는 즙을 내고는 기어다니는 게 무척이나 께름직했다.
밤중에, 어둠 속에서 활동하는 습성을 알았으니 내일 밤에도 잡아내야겠다.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 60여 개를 올려놓았더니만 혐오스런 동물이 함께 한다.
앞에 좋은 것이 있으면 그 뒷에는 나쁜 것이 함께 한다는 경험을 또 얻었다.
민주주의는 51 대 49라는 내 신념이다. 어느 한쪽만 100% 좋은 것도 없고, 반대로 100% 나쁜 것도 없다.
선악미추(善惡美醜) 등은 상황에 따라서 늘 변한다는 게 내 신념이다.
찬반이든 반찬이든 상황에 따라서 늘 유동한다.
민달팽이가 야행성 동물이라는 사실을 또 배웠다.
화분농사 짓는데 유용한 경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