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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의 미해결 실종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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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시사 스크랩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몰려 자살한 사람들
水去順理 추천 0 조회 604 05.07.13 12:4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화성연쇄살인사건.

세간의 관심을 끌며 영화로까지 만들어지고 아직까지 범인을 잡지못한 우리나라 최대의 전무후무한 미스테리 사건.

그런데 화성연쇄살인사건과 관련하여 그 때 그 사건을 아시나요.

억울하게 용의자로 몰려 많은 이들이 자살을 했다는 사실.

아래 기사를 보시면 그 사실들을 알 수 있습니다.

  

 

 

화성 연쇄살인 용의자 / 대법, 무죄 확정 (중앙일보)

게재일 : 1990년 03월 15일 [18면] 글자수 : 361자 기고자 : 김영석

88년12월 경기도 화성군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구속 기소돼 지난해 5월 1심인 수원지법에서 징역3년ㆍ집행유예 4년의 선고를 받았던 김정태씨(33ㆍ전도사ㆍ수원시 율전동 105의5)가 13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무죄가 확정돼 누명을 벗었다.

김씨는 88년 12월21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능1리 산길에서 개척교회 부지 물색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이 마을 김모씨(56ㆍ여)를 폭행하려 했다는 김씨의 진술에 따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후 지난 해 5월 1심인 수원지법에서 징역3년ㆍ집행유예 4년의 형을 받고 항소, 같은 해 9월28일 서울 고법 항소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자 검찰이 항고했었다.



화성사건 조사받았던 30대 목공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 (중앙일보)

게재일 : 1990년 12월 24일 [23면] 글자수 : 1471자 기고자 : 정찬민

◎ 풀려난 뒤 “무서워 죽겠다”/심한 정신이상 증세 보여/세 차례 끌려간 고교생은 “경찰이 폭행” 주장

화성 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던 30대 목공이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다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또 용의자로 경찰에 세 차례나 연행돼 조사를 받았던 고교생은 심한 정신불안증세와 함께 요통·두통 등으로 1주일간 통원치료를 받은 사실이 밝혀져 수사과정에서 경찰의 가혹행위가 있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8일 오후 3시48분쯤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1리 병점역 부근 열차 건널목에서 화성사건 용의자로 연행돼 조사를 받았던 차겸훈씨(38·목공·태안읍 능2리 655)가 부산발 서울행 새마을8호 열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장 부근에서 전철기 교환 작업 중이었던 강원산업 직원 김재학씨(30)는 차씨가 51호 전철기 부근에 서있다 지나가는 열차 중간부분으로 뛰어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차씨는 지난달 27일 화성사건 용의자로 몰려 경찰에 연행됐으며 조사를 받고 12월초쯤 풀려난 뒤부터 오전 2∼3시 남의 집에 맨발로 뛰어들어 『나는 억울하다』 『누가 나를 죽이려한다』 『무서워 죽겠다』고 소리를 지르는 등 정신이상증세를 보여 왔다는 것이다.

주민 이모씨(56)는 차씨가 자살하기전인 지난 18일 오후3시20분쯤 수사본부가 설치된 태안지서 앞에서 『나는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자수하러 간다』며 지서 안에 들어가 5분간 소리 지르다 지서직원 등에 의해 쫓겨난 일도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차씨는 지서에서 나간 지 약 25분후 건널목에서 자살했다.

주민들은 장농공장 목공인 차씨는 미혼으로 혼자 살고 있으나 평소 정상적으로 생활해 왔으며 이웃과도 잘 어울려 왔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이후 세 차례나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던 김모군(18·평택 D공고 3)도 조사를 받고 풀려난 후 심한 정신불안증세와 함께 요통·두통 증세로 한때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까지 했다.

김군은 『지난 7,10일 두 차례 화성 수사본부에 연행돼 치안본부에서 거짓말 탐지기 조사까지 받고 풀려났으나 11일 오전 다시 연행돼 장소를 알 수 없는 호텔로 끌려가 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팔을 뒤로 꺾고 수갑을 채우고 범행 자백을 강요하며 1시간동안 머리와 허리 등 온몸을 마구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김군은 『범행을 계속 부인하자 경찰이 이날 오후9시쯤 자신의 손을 펴게한 뒤 20㎝ 길이의 빗자루로 손등과 머리를 때리며 자백을 강요하다 12일 0시쯤 태안지서 옆 H여인숙으로 다시 끌고 가 조사를 하고 오전10시쯤 풀어줬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경찰은 지난 7일 오후5시쯤 김군과 함께 형 기원씨(23·회사원)도 연행, 태안지서 부근 G호텔에서 조사하고 혐의가 없자 풀어주었었다.

이와 관련, 수사를 맡고 있는 이정길 경기도경 강력과장은 『이들의 고문사실에 대해 아는바 없으며 가혹행위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연행됐던 화성용의자/파출소 탈출 투신자살 (중앙일보)

게재일 : 1991년 04월 19일 [15면] 글자수 : 395자 기고자 : 이철희

열 번째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수사대상에 올라 경찰의 추적을 받아오던 장기영씨(32·경기도 화성군 동탄면 청계리 297)가 17일 오후 2시10분쯤 오산시 오산동 55 희망아파트 라동 4층 옥상에서 12m 아래로 투신, 자살했다.

장씨는 16일 오후 11시쯤 감기약 70알을 먹고 환각상태에 빠져 오산시 원동 역전갈비집 앞에 세워둔 차 밑에 누워있는 것을 주민이 신고, 화성경찰서 오산파출소로 연행됐으나 17일 오전 6시쯤 감시소홀을 틈타 달아났었다.

한편 경찰은 장씨가 절도등 전과 4범으로 10여 년 전부터 환각제를 상습 복용해 왔다는 제보에 따라 장씨를 추적했으나 혈액형이 9,10차사건 범인과 틀린 A형이며 사건 당일 행적이 밝혀짐에 따라 16일 밤 수사선상에서 제외시켰다고 밝혔다.



딱한 경찰”/서대문서, 화성사건수사 과욕 (중앙일보)

게재일 : 1993년 07월 12일 [23면] 글자수 : 1142자 기고자 : 이상열

◎ 재미 심령술사가 “꿈속의 범인” 제보/관할서가 무혐의 처리한 것 다시 조사/40대 애꿎게 두 차례나 연행당해 곤욕

서울 서대문경찰서가 11일 경기도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라고 밝힌 김모씨(41·수원시 권선구 세류동)에 대한 경찰수사가 「비상식적」이자 인권침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번 서대문경찰서의 수사는 심령학자·거짓말탐지기 등 법정 증거능력이 전혀 없는 「극적 근거」에 의존하고 있는데다 이미 6개월간의 조사 끝에 무혐의로 판정받은 용의자를 그것도 기존수사 내용을 알지도 못한 채 재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대문경찰서가 이 사건을 수사하게 된 것은 지난달 초 심령술사를 자처한 재미교포 김모씨(47)가 『꿈속에서 화성사건의 범인 이름을 적은 편지봉투를 건네받았는데 그가 바로 용의자 김씨』라고 주장하고 나선데 따른 것이다.

교포 김씨의 「계시」 제보에 따라 서대문경찰서 수사팀은 관할서인 경기도 화성경찰서에 공조요청을 하지 않은 채 즉각 김씨에 대한 독자적인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탐문수사결과 김씨가 ▲사건당시 현장주변인 화성군 태안읍 모 돼육농장에서 인부로 일했고 ▲가정불화가 심했다는 점 등을 발견해내고 이를 용의점으로 내세웠다.

경찰은 이어 지난 4일 김씨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연행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의뢰해 8일 17개 항목에서 양성반응을 나타냈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이에 경찰은 9일 새벽 김씨를 다시 연행해 40여 시간에 걸쳐 마라톤조사를 펼쳤으나 뚜렷한 물증이나 자백을 얻지 못해 김씨를 돌려보낸 상태다.

용의자 김씨는 이 사건을 5년째 수사해오고 있는 경기 지방경찰청이 교포 김씨의 제보에 따라 이미 2년 전 6개월간의 수사 끝에 혐의가 없어 수사대상에서 제외시킨 인물이다.

서대문경찰서가 수사 초기에 사건전담 경기경찰청에 수사상황을 문의만 했어도 김씨에 대한 조사내용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또 과학적·체계적 수사로 혐의자를 밝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한 심령술사의 「계시」에 따라 「미리 용의자를 찍어두고」 혐의를 짜맞춰가는 등 고질적인 수사관행을 다시 노출시켰다.

결국 경찰의 「욕심」과 「비상식」으로 인해 용의자 김씨는 모두 7개월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한 결과가 됐다.<이상열기자>



심령수사<분수대> (중앙일보)

게재일 : 1993년 07월 13일 [2면] 글자수 : 1099자

우리가 이른바 심령적 초능력을 실제로 체험해 본 것은 지난 84년 이스라엘인 유리겔라를 만났을 때였다. 그는 본사 편집국에서 기자들이 가까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연만으로 포크를 구부리고 그가 보지 않는 곳에서 그린 그림의 내용을 알아맞혀 보였다.

이 같은 「초능력」 또는 「염력」이라고 하는 심령술에 세계적으로 붐을 이룬 것은 70년대 중반부터의 일이다. 유리겔라와 그 아류들이 도처에서 놀라운 신통력을 과시했던 것이다.

예컨대 필리핀에서는 질병을 진찰하고 맨손으로 외과수술까지 하는 심령요법이 유행했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는 한 인도사람이 개발한 초험적 명상법(Transcend ental Meditation)이란 것이 인기를 끌었다. 짧은 시간의 명상으로 스트레스를 없애며 지각능력을 증진시킨다 해서 우리나라에서도 붐을 일으킨 적이 있다. 80년대 들어와서는 마인드 컨트롤(Mind Control), 이른바 정신조절법이란 것이 매스컴을 탔다. 정신력을 「초감각적 지각」으로 바꿈으로써 자기 전생과 사후세계의 형상까지도 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이 나타나 증언하고 다닌 적도 있었다.

최근에는 우주와 인체가 작도 있는 「기」를 활용한 양생기공·무술기공, 심지어 의료기공 같은 초자연적이고 초과학적인 비술이 정신과 육체의 건강은 물론 난치병 치료에도 영험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토록 사통팔달하는 초능력이라 해도 범인을 수사하는데 신통력을 발휘했다는 말은 아직 없다.

어는 심령술사가 꿈의 계시에 따라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지목한 사람을 경찰이 40여 시간이나 추궁해 범행을 자백 받았다고 한다. 진범 여부야 앞으로 가려내겠지만 수사의 단서가 물증이 아니라 심령술사의 꿈이었다니 흥미롭다.

예전엔 어느 집에서 도둑을 맞으면 종이에 사람의 화상을 그려 대문이 붙여놓고 『화상의 눈에 송곳을 꽂으면 도둑이 눈이 멀게 된다.』고 소문을 냈다. 도둑을 위협해 자백을 유도하려했던 것이다.

심령술사의 꿈을 근거로 수사하기보다는 차리라 경찰서 현관에 사람의 화상이라도 그려놓고 위협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과학수사가 아니라면 애먼 사람의 인권을 유린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화성사건 조사 40대/“경찰 가혹행위” 주장 (중앙일보)

게재일 : 1993년 07월 16일 [22면] 글자수 : 229자 기고자 : 엄태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던 김모씨(41·수원시 매탄동)는 자신이 4,5차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한 것은 경찰의 강압수사 때문이었다며 범행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김씨는 15일 경찰에서 풀려난 뒤 기자들과 만나 『서대문경찰서 형사들이 조사과정에서 수갑을 채운 채 가슴을 때리는 등 가혹행위를 하며 자백을 강요, 어쩔 수 없이 허위자백을 했다』고 말했다.



「화성연쇄살인」수사 해프닝/「무리한 짜맞추기」 씁쓸한 뒷맛(창)

발행일: 1993-07-17 기고자: 박종희 (동아일보)

화성부녀자 연쇄살인사건 중 4,5차 사건을 저질렀다고 경찰에서 자백했던 김모씨(41)가 다시 번복해버린 16일 경찰내부의 반응은 두 갈래로 엇 갈렸다.

한 달여간 김씨에 대한 수사를 벌여오면서 김효은 경찰청장으로부터 격려까지 받았던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가족과 변호사 앞에서까지 범행사실을 시인하더니 물증이 없어 풀어주니까 딴소리를 한다.』며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에 반해 지난 86년 9월 1차사건 이후 6년 여간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1건을 제외하고 9건을 미제사건으로 갖고 있는 경기도경찰은 김씨가 그동안 6차례나 수사선상에 오른 「단골용의자」였기 때문에 「혹시나」하고 긴장하다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김씨는 경찰에서 석방된 후 15일 기자들과 만나 『양손에 수갑을 채우고 말을 듣지 않으면 이를 죄어 가는데 어떻게 버틸 수 있었겠느냐』고 울먹이며 붉은 띠 모양으로 허물이 벗겨진 손목을 내밀어 보였다.

김씨의 부인(37)은 『경찰이 남편을 조사하면서 내내 술을 먹였고 구속되면 포상금중 3천만원을 우리 식구에게 나눠주겠다는 제의도 했다』고 폭로했다.

꿈에서 범인 이름을 계시 받았다고 한 시민의 제보를 토대로 수사에 나선 서대문서는 정작 6년간의 「노하우」가 있는 화성수사본부 계자들에게 조차 쉬쉬해 진술서는 마치 추리소설처럼 정황과 가능성만을 토대로 짜 맞춘 흔적이 역력했다.

4차사건의 경우 사인이 양손으로 목을 힘껏 조를 때 나타나는 설골 골절이었는데 김씨의 자백은 뒤에서 가는 끈으로 목을 졸랐다는 것이었고 피해자의 시계와 반지를 현장에서 50m가량 떨어진 농수로에 버렸다고 진술했지만 시계는 피해자손목에 채워져 있다가 가족들에게 인계됐던 것으로 수사기록에는 적혀 있었다.

김씨와 똑같이 변호사와 가족 앞에서까지 범행을 자백했다가 무죄가 입증돼 석방된 9차사건 용의자 윤모군(당시 19세)등 3명과 강압수사 끝에 자살한 차겸훈씨(당시 38세)에 대한 교훈은 아직 생생하다.

경찰은 이번 해프닝에 대해 사건해결을 위한 충정이었다면 여론의 관대함을 기대하기 전에 『공적만을 좇다가 자충수를 두었다』는 내부의 지적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화성용의자 몰린 40대/자살 기도 중태 (중앙일보)

게재일 : 1993년 08월 03일 [22면] 글자수 : 382자 기고자 : 정찬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여러 차례 경찰에 연행됐다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김종경씨(41·수원시 권선구 매탄동 196의 156)가 3일 오전 5시30분쯤 자신의 집에서 자실을 기도, 중태다.

김씨는 집 거실에서 흉기로 자신의 가슴과 복부 등을 찌르고 신음하다 부인 오윤자씨(40)에게 발견돼 인근 동수원병원으로 옮겨졌다.

이 사건 용의자로 지목됐던 김씨는 7월4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세 차례 연행돼 조사를 받았으나 경찰의 물증확보 부족으로 불구속 기소돼 풀려났었다.

부인 오씨는 『남편이 경찰조사를 받고 풀려난 뒤 계속 범인으로 몰리고 있는데 대해 심한 수치심과 갈등을 느끼며 직장을 그만둔 채 매일같이 술만 마셨다』고 말했다.



화성살인 용의 40대/"고문수사" 자살기도 (조선일보)

입력 : 1993.08.04

화성부녀자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의 조사를 받다 풀려난 김종경씨(41.수원시 팔달구 매탄동 196의156)가 3일 오전 5시40분쯤 자기 집 거실에서 자해, 동수원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나 중태다. 부인 오모씨(40)는 "남편은 서대문경찰서 형사들이 자백을 강요하며 이쑤시개로 손톱사이를 찌르고 목덜미를 수십 차례 내리치는 등 고문을 해 허위자백을 했다며 억울하다는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가정파탄 부른 「강압수사」/자살기도 김종경씨의 사연 (중앙일보)

게재일 : 1993년 08월 04일 [22면] 글자수 : 1120자 기고자 : 엄태민

◎ 화성사건 무혐의 후에도 경찰 끈질긴 감시/“고문실상 밝혀주세요” 유서에 “억울” 주장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에 연행됐다가 풀려난 뒤 계속 검찰의 감시를 받던 중 3일 오전 결백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기도, (본보 3일자 22면 보도) 중태에 빠진 김종경씨(41·수원시 팔달구 매탄2동)는 정말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가.

『어머니 제가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지만 결백합니다.』 『형님 경찰에서 억울하게 당한 고문의 실상과 저의 진실을 꼭 밝혀주세요.』 김씨가 자살을 기도하기 전 어머니와 형에게 쓴 유서에는 경찰에 대한 분노와 고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김씨가 처음 경찰에 연행된 것은 92년 6월.

당시 화성의 한 목장에서 목부 일을 하던 김씨는 경기도 경찰청에 의해 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몰려 6개월간 경찰을 오가며 지루한 조사를 받았다. 이때 무혐의처분을 받은 김씨는 그러나 지난달 4일 같은 내용의 한 「심령술사」의 제보에 따라 다시 서울 서대문경찰서로 연행된 뒤 열흘 만에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경찰에서 풀려난 후 범인으로 몰린 수치심과 억울함으로 남편은 매일 술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때때로 경찰에서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하반신 마비증세가 왔고, 언제 또 다시 경찰에 연행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문을 꼭 걸어 잠근 채 이불속에서 떠는 등 정신분열 증세까지 보여 왔어요.』

부인 오윤자씨(40)는 『경찰의 감시눈길 못지않게 마치 남편이 화성사건의 범인인 것처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 더 따가워 견딜 수 없었다』고 말했다.

증거 없이 자백 강요·가혹행위 등에 의존한 경찰의 무리한 육감수사가 한 시민과 그 가족을 파멸로 몰아놓은 셈이다.

김씨를 포함, 화성연쇄살인 사건이 만들어 낸 인권유린 피해자는 화성사건이 처음 일어난 86년 9월 이후 지금까지 모두 6명.

특히 90년 12월18일 경찰조사를 받았던 차겸훈씨(당시 38)는 무혐의로 풀려난 지 4시간 만에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며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하기도 했다. 이밖에 민모(23·오산시 양산동)·박모(29·오산시 원동)와 윤모(19) 등도 연행돼 각각 1∼2건의 변호인 접견과정 등에서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라고 진술을 번복해 석방되기도 했다.<화성=엄태민기자>



피의자 승낙한 임의동행도 본인 원할땐 풀어줘야 (중앙일보)

게재일 : 1996년 04월 20일 [23면] 글자수 : 608자

임의 동행한 피의자가 귀가를 원할 경우 풀어주어야 하는데도 도망치려 한다며 영장 없이 수갑을 채워 경찰서 보호실에 유치했다면 불법 감금에 해당돼 국가에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金在晋부장판사)는 19일 김종경(金鍾卿.경기도수원시 팔달구 매탄동)씨 가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국가의 항소를 기각,『국가는 金씨 가족에게 위자료 3천8백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임의동행의 「임의성」은 동행 당시뿐만 아니라 조사기간 내내 보장돼야 한다.』며 『48시간 내 귀가조치 시켰더라도 귀가를 원하는 피의자를 수갑을 채워 보호실에 유치한 것은 명백한 불법 감금』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金씨에게 범죄사실의 요지와 구금 사유, 변호인선임권 등을 고지하지 않아 이른바 「미란다」원칙을 위배한 점도 인정된다.』면서 『국가는 불법구금으로 피해자들이 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金씨는 93년7월9일 오전1시쯤 임의동행 형식으로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연행돼 세 차례에 걸쳐 조사받았으나 같은 해 10월8일 검찰에서 무혐의 처리되자 소송을 냈었다.(김진원 기자)



<일지>화성연쇄살인사건 (중앙일보)

게재일 : 1996년 11월 04일 [22면] 글자수 : 353자

▶ 86.09.15 = 이완임(李完任.71)씨 태안읍 안녕리 목초 밭

▶ 86.10.20 = 박현숙(朴賢淑.25)씨 태안읍진동리 농수로

▶ 86.12.12 = 권정분(權正紛.24)씨 태안읍 안녕리 축대 위

▶ 86.12.14 = 이계숙(李桂淑.23)씨 정남면 관항리 논둑

▶ 87.01.10 = 홍진영(洪眞英.18)양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

▶ 87.05.02 = 박은주(朴恩珠.30)씨 태안읍 진안리 야산

▶ 88.09.07 = 안기순(安基順.52)씨 팔탄면 가재리 농수로

▶ 88.09.16 = 박상희(朴相熙.13)양 태안읍 진안리 집 방

▶ 90.11.15 = 김미정(金美淨.13)양 태안읍 병점5리 야산

▶ 91.04.03 = 권순상(權順相.69)씨 동탄면 반송리 야산

▶ 96.11.03 = 20대 후반 여인 오산시 서랑리



화성 연쇄살인 혐의 수사 무혐의 40대 돌연사

1997. 2. 10. (경인일보)

평소 억울함 호소 자살기도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몰려 경찰수사를 받은 뒤 풀려나 경찰의 강압수사와 함께 자신의 결백을 주장, 자살을 기도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사람이 술을 마신 뒤 숨진 채 발견되었다.

10일 오전 7시 45분께 수원시 팔달구 원천동 190-7 김모씨(45세, 전기공), 김씨는 이날 집에서 아들 김모군(16세)이 사온 소주 2병을 밤늦도록 마신 뒤 새벽녘에야 일을 끝내고 돌아온 부인 오모씨(44세)에 의해 싸늘하게 식은 몸으로 발견되었다.

부인 오씨는 “공사 중 부상을 입어 입원치료를 받아오다 설날을 앞두고 퇴원한 뒤 이날 새벽 1시경까지 혼자서 술을 마시고 횡설수설하는 것으로 보고 아들이 잠들었는데 야식집 일을 마치고 귀가해보니 잠자던 상태로 숨져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93년 7월 서울 서대문경찰서로부터 화성연쇄살인사건의 4.5차 범행용의자로 몰려 수사를 받다 범행일체를 자백했으나 화성사건수사본부로 신병이 넘겨진 뒤 풀려났다. 물증도 없고 자백내용에 신빙성이 없다는 점 때문.

김씨는 앞서 처음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 지난 86년과 91. 92년에도 용의자로 지목, 수사를 받았으나 구체적인 물증확보가 이뤄지지 않아 풀려났었다.

부인 오씨는, 당시 김씨는 경찰이 폭행과 고문을 일삼은 자백을 강요했다며 억울함을 호소, 유서를 남긴 뒤 자살을 기도했으며 자포자기식 생활로 일관한데다 정신불안증세를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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