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중조의 위폐는 충북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원덕사에 배향되어 있다.
彦孚 - 太師公派祖(태사공파조)
諱 彦孚(휘 언부)는 신라 시조 朴赫居世의 37世孫이요 경명왕 의 장자 밀성대군(彦忱)의 8세胄孫(주손)이다 門下侍中 諱 讚行(찬행)을 아들로 公은 고려 11대왕 文宗(문종 - 서기1046~1083년)때 文科에 급제하여 崔沖(최충)과 더불어 太師(三公三師의 하나로 최고의 명예직)로 奉職했으며 中書令 門下侍中 都評議事를 역임하고 密城府院君에 冊封되었다. 유지(遺址)는 풍각 화산이라하나 전하지 않고 아들 둘이 있다.
충북 옥천군 원덕사에 배향하다( 향사(享祀)는 음3월1일)
彦祥 - 都平議事公派祖(도평의사공파조)
諱 彦祥(휘 언상 - 都評議事)은 太師公(彦孚)의 아우로 고려때 벼슬이 都評議事에 이르고 밀직군(密直君)에 봉하였다.
유지는 풍각화산이라 하나 전하지 않고 있다.
彦仁 - 左僕射公派祖(좌복야공파조)
諱 彦仁(휘 언인 - 左僕射)은 太師公(彦孚)의 아우로 고려때 벼슬이 壁上三重大匡平章事(벽상삼중대광평장사) 尙書 左僕射를 역임하고 密直君에 封해졌다.
良彦 - 密直副使公派祖(밀직부사공파조)
諱 良彦(휘 양언 - 密直副使)은 密城大君(언침)의 8世支孫 (시조37世孫)으로 고려때 奉翊大夫密直副使를 역임하였다. 上系 祖父 曾祖父 高祖父 4대를 失傳하였다. 公의 위폐는 沃川 遠德祠에 奉安되었다.
天翊 - 判圖判閣公派祖(판도판각공파조)
諱 天翊(휘 천익 - 版圖判閣) 密城大君(언침)의 8世支孫(시조 37世孫)으로 고려때 版圖版閣을 지냈다. 유지는 전하지 않고 원덕사에 배향하며 밀양시 삼랑진읍 검세리에 설장 재향하다. 음9월 20일 향사일이다.
乙材 - 三司左尹公派祖(삼사좌윤공파조)
諱 乙材(휘 을재 - 左尹)는 密城大君(언침)의 8世支孫(시조 37世孫)으로 고려 명종조 丁巳에 문과 벼슬이 三司左尹 密直副使에 이르다. 호는 雅川지(아천)이며 배위는 창녕조씨이고 直提學 繼芳高(계방)의 따님이다. 묘소와 기타문헌은 실전하다.
원덕사및
신남서원에 배향하며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 명방촌의 경현사에 봉안하며 음3월15일 음9월15일 향사하다.
元 - 四門進士公派祖(사문진사공파조)
諱 元(휘 원 - 四門進士)은 密城大君(언침)의 10世 支孫(시조 39世孫)으로 太師公 彦孚의 둘째아들 諱 義臣의 長子다. 父(義臣)는 당대의 文章家로 널리 알려진 工部尙書를 지내셨으며 고려조 인종조에 사문진사를 지냈으며 또는 國子進士라고도 한다. 유지는 밀양시 하남읍 귀명동이라 하나 전하지 아니한다. 배위는 계림김씨이며 원덕사에 배향하였고 전북 김제시 상동면 삼수리에 삼송재가 있어 설단하여 제향하다.
陟 - 忠憲公派祖(충헌공파조)
諱 陟(휘 척 - 密城君)은 密城大君(彦침)의 13世支孫(시조 42世孫)이며 工部尙書(義臣)의 次子 少監公(允)의 曾孫이다. 고려 26대 임금 忠宣王(서기1308~1313년)때 내부시승(內密部城侍君承으)이며 絶忠同贊化功臣(절충동찬화공신)으로 삼중대광 밀성군이며 시호를 충헌이라 증하고 贈賜牌地(증사패지)하야 공신자손으로 하여금 世受秩祿졌(세수질록)하다.
배위는 계림군부인 경주이씨이며 묘는 밀주 수산현에 있고 유지는 풍각화산에 있다하였다.
밀양시 하남읍 귀명리 경모재에 단을 세우고 음10월 3일에 향사하다.
元光 - 令同正公派祖(영동정공파조)
諱 元光(휘 원광 - 令同正)은 密城大君(언침)의 13世支孫(시조 42世孫)이며 密直副使 彦良의 6世孫이다. 謚은 襄惠公孫(양혜공)이요 고려조에 벼슬이 영동정에 이르고 行 宰相中書令(행재상중서령)을 지냈다. 공민왕조에 홍건적이 서경 함락시에 안유 이방실과 함께 격퇴하였으며 신축년에 박문거가 전몰한즉 홍언박과 함께 大駕扈從(대가호종)하여 평란에 공을 세워 보리공신보국숭록대부에 이르고 밀직부원군에 봉해졌다. 유지는 전하지 아니하고 원덕사에 배향하다.
中美 - 密直府院君派祖(밀직부원군파조)
諱 中美(휘 중미 - 密直府院君)는 密城大君(언침)의 15世支孫(시조44世孫)이며 工部尙書(義臣)의 次子 少監公(允)의 6世孫이 다. 太師公(彦孚)의 8世孫이기도 하다. 公은 고려 29대 임금 忠穆王(충목왕 서기1344~1348년) 때 문과에 급제하여 中書令을 역임하였고 고려 31代 恭愍王(공임왕 서기1351년~1374년)때 이방실등과 함께 紅巾賊亂(홍건적란)을 평정 輔理功臣 大匡輔國 崇祿大夫(보리공신 대광보국 숭록대부)를 追贈받고 密直府院君에 봉해졌다.
태조가 등극하여 三徵(삼징)하였으나 나가지 아니하고 卒하니 왕이 禮葬(례장)하고 시호를 文肅(문숙)이라 증하다. 묘는 풍각 묘봉리 酉坐에 있고 묘갈이 있다.
배위는 부부인 박씨이고 전리좌랑 대장군 문유의 딸이다.묘는 공과 동원하다. 청도군 풍각면 묘봉리 묘소아래 묘봉재(妙峰齋)가 있어 음 10월 7일 향사하다.
葳 - 靖國君派祖(정국군파조)
諱 葳(휘 위 - 靖國君 정국군)은 密城大君(언침)의 15世支孫(시조 44世孫)이며 三司左尹 乙材(삼사좌윤 을재) 三子 版閣公(판각공)의 7世孫이다. 고려공민왕조에 김해부사로 盆山城을 축조하였다. 또 공은 對馬島守令(대마도수령)을 격퇴하고 고려 마지막왕(34대) 恭讓王(서기1389~1392년)으로부터 忠義伯(충의백)에 봉해졌으며 李太祖(李成桂 이성계)의 威化島(위화도) 회군시 공으로 전민(田民)을 下賜(하사)받고 靖國君(정국군)에 봉해졌다.
묘소는 실정하고 밀양시 무안면 신남서원에 배향하고 원덕사 및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 수적재의 경현사에 배향하여 음3월15일 음9월15일 제향하다.
遺所(유소)는 창원시 용지공원에 신도비가 보존되고 김해시 분성 정상에 충의각 산성역내에 축성기념비가 있다.
鉉 - 糾正公派祖(규정공파조)
諱 鉉(휘 현 - 司憲糾正)은 密城大君(언침)의 16世支孫(시조 45世孫)이며 太師公(彦孚)의 長子 門下侍中 孝臣의 8世孫이다. 공의 손자 상장군공이 지은 묘지에 의하면 배위는 동래정씨 밀직의 함의 따님이며 고려조에 문과에 급재하여 벼슬이 사헌규정(司憲糾正-正三品)에 이르다. 노후에 향리에 돌아와 팔십칠세에 졸하다. 문장이 탁월하고 덕행이 높아 우리나라 유학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한다. 묘소는 알수없으나 장단군 장도면 사시리 박릉동 두매산 아래 자좌라 하였다. 고양 두응촌과 전주 봉서재 옥천 원덕사 경산 율산 서원에 배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