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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코이노니아를 빚는 곳 - 예수원
김 현진 (사귐의 교회), 빛과 소금
한국에서 기독교 공동체를 예기할 때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공동체는 예수원이다. 강원도 태백의 산골짜기에 있는 예수원은 이미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친숙한 대천덕신부의 가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서울 청량리 역에서 기차로 약 5시간 달리면 태백에 도착한다. 거기서 하장행 시골 버스를 타고 40분쯤 가면 하사미리란 마을이 나오는데 그 마을 산 속에 믿음의 식구들이 아름답게 모여 사는 ‘예수원’이라는 공동체가 있다.
예수원은 한국 및 한국교회의 쇄신과 세계 평화, 그리고 세계복음화를 위한 중보기도의 집으로 1965년에 설립되었다. 예수원은 “노동하는 것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이다”라는 정신으로 ‘십자가 지기’를 배우고 ‘받기보다는 주기’를 배우는 공동체다. 또한 공동생활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초자연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한 형제와 같이 진정한 교통(코이노니아)을 나누는 곳이다. 이 곳에서 배우는 어떤 실제적인 경험도 자신들의 집단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나누길 원하며, 그들이 깨달은 영적 체험을 교회와 나누길 원한다.
예수원의 설립자 - 대천덕 신부
설립자 대천덕 신부(성공회)는 본명이 Reuben Archer Torrey 로서 1918년 중국 산동성 제남에서 태어났다. 신부의 아버지는 그때 중국 산동성 주재 선교사였으며, 태평양 전쟁으로 한쪽 팔을 잃고서 중국과 평양에서 불구자를 위한 목회에 전념하였다. 특히 신부의 할아버지인 R. A. Torrey 박사는 D. L. Moody와 함께 사역한 훌륭한 신학자요, 전도자, 설교가로서 성령 운동에 앞장 선 것으로 잘 알려졌으며, 여러 권의 신학 서적을 남겼고, Moody Bible Institute를 설립하여 초대 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대천덕 신부는 중국 산동성과 한국의 평양 외국인 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중국 연경대학, 그후 미국에서 무디 성경학교, 데이빗슨 대학교, 프린스턴 신학원, 남부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영국의 성 어거스틴 중앙 신학원에서 수학했다. 그는 또한 선원생활, 목회생활, 정치참여 등 다양한 사회경험도 쌓았다. 그후 1957년 한국 선교사로 부름받아 성공회 미카엘 신학교 교장으로 있다가 1965년 예수원을 설립하여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는 그의 할아버지처럼 20c의 성령 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며, 이 시대의 영적 지도자이다.
대천덕신부 부부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서울을 떠나 강원도 깊은 산골짜기로 옮기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노동과 기도의 삶을 영위하며 기도의 실제적인 능력 여부를 실험해 보는 실험실을 갖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예수원은 ‘실험실’인 셈이다. 대천덕신부는 “신앙은 과학과 같은 것이어서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실험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원은 세 가지 실험을 의도하는데, 이 세 가지 실험이란, 첫째 하나님과 개인으로서의 인격적인 관계, 둘째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의 신자 상호간의 관계, 셋째 기독교 공동체와 비기독교적 사회와의 관계를 실험하고 검증 연구하는데 이 세 가지 실험은 구체적으로 기도와 코이노니아와 선교의 세 영역으로 이뤄진다.
중보 기도의 집
예수원은 대한 성공회에 소속되어 있는 예수원 교회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적인 삶을 통하여 본질적인 복음을 실천하는 장이다. 예수원은 전도를 위한 출발소로써 훈련소, 연구소, 파송소, 부담소, 보급소, 발력소의 기능을 가진다. 그들의 전도 범위는 일차적으로 90%에 달하는 농민들과 노동자들이 새로운 방식의 교회 생활을 통하여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고 다스리며 또한 전달할 수 있도록 전도한다. 선교 방식은 천막지기 방식으로 손수 생계를 유지하며 선교하는 것을 표방한다.
기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중보기도 사역이다. “예수원은 중보기도의 용사를 키우는 곳이다”라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할 일은 이 세계가 복음화 되고 교회가 순결해지도록 중보기도를 해야 한다고 한다. 예수원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사업은 정회원, 지원자, 수련자 모두가 기도에 진력하여 기도의 불을 일으키는 것과 그 기도의 불이 예수원에서 부터 한국교회와 전 세계에 퍼져 나가게 하는 일이라고 한다.
예수원의 중보기도 사역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 형태의 방법을 사용한다. 한 방법은 외향적 중보기도라는 것으로 매일 낮 12시에 공동 기도문과 요일별로 교회 및 국가의 제 문제들, 그리고 나라의 지도자들, 성직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편지나 직접 기도를 부탁하던 분들의 요청에 따라 다양한 제목을 두고 다함께 기도한다. 다른 하나는 금요일 오후 2-4시까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몇 가지 기도 제목을 정한 후 집중적으로 기도하는데, 이것을 “내향적인 중보기도”라고 한다.
믿음의 방식으로 자급자족하는 삶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 예수원 식구들은 기막힌 방법으로 지난 25년 동안 쓸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 받아왔다. 어떤 때는 그날 쓸 것을, 어떤 때는 일주일 단위로 필요한 것을 많지도 적지도 않을 양만큼 적당히 공급받는다. 또한 사도 바울의 자립정신을 본받아 그 동안 작물을 재배하고, 관목 숲을 쳐서 목초지로 만들어 젖소를 키우고, 나무를 깎아 공예품을 만드는 일, 한 때는 양을 키워 옷을 짜고, 치이즈를 만들기도 했다.
현재 주 수익 사업으로는 분수령 목장에서 양을 키워 나오는 양모로 양털 이불을 제작하여 주문 판매하고 있으며 목각 제품 제작, 도서 및 테이프 판매 등이 있다. 예수원은 시작할 때는 98%를 외부의 헌금에 의존했으나 자금은 50%정도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경제적 자립을 통하여 외부로 수익을 내보낼 계획이다. 예수원의 경제는 자립정신을 바탕으로 한 노동과 전적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의 방식으로 해결해 나간다.
60여명의 확대 가족
이들의 공동생활은 손님, 지원자, 수련생, 정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누구나 2박 3일 동안 방문할 수 있고, 자의에 의해 3개월이 지나면 1년 수련이 허용되며, 1년 수련이 끝나면 2년 수련 신청이 가능하고, 이것이 끝나면 정회원이 될 수 있다. 정회원은 평생회원으로 예수원 공동체의 의결, 집행기구를 구성한다. 현재 정회원은 22명, 1-2년 장기 수련자가 11명, 3개월 수련자가 14명이며 예수원 목장에 7명 총 54명의 식구가 있다. 대천덕 신부는 “적어도 40명의 정회원이 확보되어야만 공동체가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하면서 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한다.
하루 일과는 아침 5시 30분부터 6시 30분 아침기도, 조식, 오전, 오후로 각자의 분야에서 노동하며, 매일 12시에는 중보기도, 오후 1-2시, 밤10시 이후에는 침묵 시간, 주 2회의 성경공부 시간을 갖는다. 매주 저녁에는 월: 대신부님 강의, 화: 찬양예배, 수: 수요예배, 목: 은사의 밤, 금: 구역예배, 토: 감사예배로 드린다. 예수원의 손님맞는 사역은 중요한 한 부분이다. ‘나그네 대접하기를 천사 대접하듯 하라’는 정신을 갖고 섬긴다. 요즈음에는 방문객이 매년 8,000명에 달한다.
농촌 발전을 위한 모델
예수원에 대해서 얘기 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원에 대하여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산골짜기 에 있는 예수원이 사회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라는 의문을 많이 갖게 된다. 이에 대해서 대천덕 신부는 “예수원을 설립할 때에 우리가 강원도 산골짜기로 들어온 것은 도시의 땅 값이 너무 비싸서 땅 값이 싼 곳을 고르다 보니 이곳 산골짜기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라고 하면서 처음부터 예수원은 지역사회인 농촌 마을을 위해서 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원의 초창기에 마을에 한 전도사가 와서 교회를 세워 예수원과 대립되는 양상을 빚게 되자 예수원은 마을 교회와 대립을 피하고자 하여 그 교회가 마을 위해서 일할 수 있도록 양보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전도사님은 마을을 위해서는 봉사하지 않고 신학교만 다녔으며 얼마 후 마을 개척 교회도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 그 동안 예수원은 마을 위해서 꾸준히 기도하고 봉사하는데 노력해 왔다. 현재 예수원 회원 중 3가족이 마을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주민들과 함께 마을에서 살고 있다. 한국 농사의 문제와 농민의 문제, 벼농사 문제에 대비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탄광촌에는 문곡교회라는 교회를 지원하여 탄광촌 선교를 위한 노동자 교회로 운영하고 있으며 황지에 노인 복지회를 설립 중이다.
예수원은 농촌 발전을 위한 모델이다. 도시인들이 적응하기엔 제약이 있다. 예수원이 일반 사회와 많이 거리가 떨어져 있어 지리적으로 제한적인 여건 속에서도 예수원은 그들이 처한 위치에서 농촌과 탄광 지역 노동자들을 위해서 섬기고 이외에도 문서 사역을 통해 대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토지 실명제의 문제에 대해서도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또한 그 동안 손님들을 통해서도 그 영향이 계속 사회에 퍼지고 있는 중이다.
경제를 위한 예수원의 작업이 단순 노동을 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예수원은 유기농법으로 작물 재배하고 있고 메탄가스를 사용하는 대체연료 연구, 목장에서 나오는 산물들을 가공 처리하는 등 기술적으로도 도시에 못지 않게 실제로 일이 매우 많은 편이다. 공동체가 제대로 운영된다면 각자가 가진 달란트를 모두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대천덕 신부는 “여기가 우리의 직장입니다.”라고 말한다.
가난한 자와 동역하는 삶
예수원은 종종 가난한 자들과 더불어 함께 하는 현장성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에 대해 정회원 중의 한사람인 권요셉 형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원의 구성원들이 상당수가 밑바닥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수혜자가 아니라 동역자로 여겨서 함께 사역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과 24시간 정도 지내는 것이 아니라 몇 달 혹은 수년간 불우한 이들과 함께 삽니다. 가난한 자와 더불어 함께 사는 충분한 훈련없이 결코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일종의 기만 행위일 수 있습니다. 함께 사는 훈련없이 그들의 고통에 깊이 동참할 수 없습니다. 예수원은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광야 훈련장입니다.”
사실 한국인의 성향과 교육 풍토에 따라 한국교회 역시 가난한 자를 수용하고 노동자 계층과 동역할 준비가 거의 되어있지 않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를 연단시키는 것으로 생각하며 이 연단 된 것이 언젠가는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즉 가난한 자와 함께 하는 현장성이 중요하지만 가난한 자가 사역의 들러리나 구제의 대상이 아니라 동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들과 함께 깊이 동참하는 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공동체 생활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해준다.
이 점은 한국 선교사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한국 선교사들이 사역의 현장에 나가서 겪는 가장 큰 문제는 같은 교단 선교사들 사이에서부터 필요 이상의 갈등을 겪는 공동체성 결여의 문제이다. 한국 교회와 신학교에서 도무지 공동체적인 삶을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타인을 섬기는 법, 인정하는 법을 배우고 훈련하고 선교 현장에 나갈 때 큰 유익이 따르는 법이다. 현대 도시 선교의 가장 큰 문제도 거친 도시선교 현장에서 사역에 지친 사역자들에게 영육이 쉬고 충분한 자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는 홈(Home)으로서 작은 공동체의 받침이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내 자신이 빚어지는 곳
예수원에는 기혼자, 독신자, 어린이들 다양한 계층이 함께 살고 있다. 예수원이 훌륭한 이상과 목표를 가진 사랑의 공동체이지만 이곳 역시 문제를 품고 있는 사람의 집단이다. 2년 장기 수련생인 김인선 자매는 공동생활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은 역시 ‘타인과의 인관 관계’ 라고 말한다. 매일 서로를 보지 않을 수 없으며 늘 같이 일을 해야 한다. 자신의 생활이 거울처럼 환히 드러나는 생활이다. 이곳에서 장기수련하고 있는 한 형제 부부는 예수원이 살아볼 만한 집이라면서 “여기서는 남을 이해해 주고 사랑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라고 한다.
도시 출신과 시골 출신, 많이 배운 자와 무학자 등 교육 문화적 배경이 서로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 긴장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삶을 통해서 남에게 열린 태도를 같게 되며 자신과 배경이 다른 자를 존중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게 된다” 고 말한다. 교포 2세로서 미국 비블리칼 신학교 재학중 예수원에 와서 훈련받고 있는 최영선 자매는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삶의 의미를 배웠으며 노동하면서 기도하는 법을 배웠다”고 하였다. 그녀는 현대 도시 속에서 이러한 공동체 생활의 의미에 대해서 ”내 자신이 더욱 충만하게 빚어지면 더욱 힘차게 도시 속에서 타인을 위한 중보적인 삶을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내 자신이 얼마나 빚어지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입니다.” 고 하였다.
코이노니아 전파
현대 도시와 고립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산골짜기의 예수원 삶이 과소평가 되기 쉽다. 그러나 예수원을 통해서 대천덕 신부가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특별히 대천덕 신부의 사상은 한국교회에 여러 가지 의미를 던져 주었다. 대천덕신부는 성령론, 코이노니아의 신학, 희년 사상, 교회의 일치, 공동체 등 여러 분야에 대해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원래 그의 조부와 부친은 모두 장로 교인들이었으나 성공회가 교회의 일치와 선교에 협력적이었기에 대신부는 성공회에서 사역하게 되었다. 특히 그의 성령론은 신자들이 중생과함께 성령세례도 받아야 하며 방언, 예언, 신유와 같은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동시에 성령의 열매 맺는 삶을 강조한다. 종래의 한국교회의 성령론이 개인의 체험에 치중하는 개인적인 성령론이었다면 그의 성령론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지체를 세워나가는 공동체적 성령론이다.
그는 오순절 성령운동의 성령의 능력과 함께 ‘코이노니아’ 를 강조한다. 성령세례, 성령의 능력이 중요하지마는 성령의 보다 중요한 역사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수직적인 교제와 인간과 인간간의 수평적인 교제를 의미하는 코이노니아임을 말한다. 이 코이노니아가 교회가 공동체 됨의 기본이다. 대천덕 신부는 한국에서 성령의 코이노니아 신학을 소개한 최초의 신학자이다. 신약교회는 성령이 오셔서 이루어진 성령의 공동체이며 그 원리는 코이노니아이다. 그러므로 敎會는 交會로 고쳐 써야 한다고 한다. 교회 공동체는 개념적인 그리스도의 한 몸이 아니라 영적인 교제와 함께 정신적, 물질적인 교제도 함께 하는 실제적이며 철저한 공동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교회밖에 있는 고통 당하는 이웃과 더불어 함께 하는 대사회적인 코이노니아를 강조한다. 실제로 예수원은 어려운 이웃들과 더불어 함께 사는 집이다. 그는 또한 한국에 ‘헨리 죠지’(Henry George)라는 토지 연구가와 함께 토지문제를 다루는 희년 사상을 한국교회 앞에 본격적으로 소개하여 보수 교회가 사회를 위해서 봉사할 수 징검다리를 놓아주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경직된 성령론에 갇혀 있는 장로교에 새로운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는 데 영향을 주었고 한국 헨리 죠지협회, 가난한 자들의 집을 지어 주는 사역인 헤비타트 운동, 기독교대학 동역설립회, 전국 신학교 공동체모임 연합회 등의 단체와 운동을 낳게 되었다.
근본적 급진주의
대천덕 신부는 이러한 이론을 주장하기만 하지 않고 공동체로 살면서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그는 신학자이며 사상가이며 동시에 철저한 실천가이다. 그는 성경을 그대로 믿는다는 점에서는 보수주의자이나 그것을 실천하는 데는 매우 진보적이다. 필자와함께 ‘91년도에 영국 브라이튼에서 개최된 세게 성령운동 지도자대회에 참석했을 때 로날드 사이더(Ronald Sider)는 대천덕신부를 가리켜 ‘그는 진정한 급진주의자’(He is a real radicalist!)라고 평했다. 이런 점에서는 그의 신학적인 입장은 ‘근본적인 급진주의’(Fundermental Radicalism)이다. 현대 기술 문명과 정치를 철저히 해부하고 기독교의 본질을 제시하여 현대 기독교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는 쟉크 엘룰(Jacque Ellul)의 사상 역시 근본적인 급진주의이다. 대천덕 신부와 마찬가지로 엘룰도 성경을 그대로 믿는 개혁주의 토대 위에서 성경 말씀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실천하는 삶’(radical life)만이 이 사회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한다. 20세기 최대의 지성인인 엘룰도 역시 프랑스 보르도에서 출감한 청소년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살고 있으면서 예언자적인 지성의 메시지로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런 점에서 상통된다.
회개해야 할 한국 교회의 죄
최근 예수원 식구들은 낙태로 인한 무죄한 피흘림과 한국 교회 지도자들의 죄에 대한 회개의 표시로서 모두 삼베 리본을 옷에 달고 다녔다. 다음은 예수원으로 통하여 주님께서 한국 교회에게 하신 예언의 말씀이다 ;
“여러 해전 나는 성직자들이 그들의 탐욕과 간음에 대해 회개하기를 알렸다. 아직 나는 회개의 표시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지금 나는 그들이 탐심과 뇌물과 토지 투기와 사업에서 거짓말하는 것과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살인(낙태)과 그들의 믿지 않는 부모 및 그들을 다치게 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용서하지 않는 것에서 회개하기를 모든 나의 백성에게 명한다. 베옷과 회개의 눈물을 흘림으로 나에게 부르짖으라.”
예수님에 역사하는 힘
예수원이 비록 대천덕 신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지만, 일을 할 때 대천덕신부 혼자만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 권요셉형제는 “예수원에는 어떤 흐름이 있습니다.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확인되는데 저희들은 예수원을 이끌어가고 역사하는 븐명한 힘이 있음을 느낍니다.” 즉 하나님이 친히 공동체 안에서 진행하신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의 한 몸을 추구하는 ‘공동체’가운데 보다 온전한 그리스도의 현존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원을 방문하면 산골짜기에서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예수님이 제자훈련의 핵심 지침으로서 제자들에게 준 산상수훈은 ‘철저한 제자도’(radical discipleship)의 내용이며 이 철저한 제자도를 이루는 삶의 방식이 초대교회의 공동체적 삶이다. 공동체적 셍활방식은 세속 사회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삶이며 그것은 대조 사회로서의 삶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속 사회 사람들과 다른 점은 그들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A Way of Life)에 있는 것이다.
예수원의 존재 가치는 외형에 있지 않고 그 내적 생명에 있다. 공동체 생활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전달되는 온전한 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공동체적인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예수원도 그 중에 한 방식이다. 예수원엔 아직 부족한 모습이 있고 힘든 과정 중에 있지마는 참된 목적을 향해 매진하고 있다. 필자가 방문했던 그날 밤 대신부님이 하신 ‘충성’이란 멧세지에서 예수원이 어떻게 계속 존재할 수 있는 지를 새삼 깨닿게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충성은 믿음의 결과로 나오는 것입니다. 노아와 아브라함처럼 이 민족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무조건 복종한 것처럼 우리도 동일한 믿음과 충성된 태도로서 계속 살아갈 것입니다!”
예수원을 방문하는 손님은 연중 평균 8천명에 달한다. 방문객 중에는 개신교 신자들을 주축으로 하여 성공회, 가톨릭, 심지어는 승려들도 찾아온다. 또한 무의탁자들도 온다. 학생, 성직자, 평신도 등 다양하고 각 교파,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서울에서 7시간 걸리는 그 산골짜기에 찾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한 중보사역과 화해와 일치, 코이노니아의 현장을 통한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공동체의 실천 때문이며, 바로 이 시대에 희미해진 복음의 본질을 산골짜기에서 25년 동안 소리없이 조용히 증언해 왔기 때문이다.
예수원은 한국교회에 교회의 본질을 보여주는 공동체로서 영성과 쇄신의 진원지로서 기독교 공동체의 원조로서 30여년간 성숙해 왔다.
원장 대천덕신부는 지난 30여년을 회고하면서 “예수께서 친히 예수원의 머리되셔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계속 실험해 나갈 것이며, 예수원의 미래는 하나님만 아실 것입니다. 주께서 당신의 역사를 계속 이루실 것입니다”라며 감격해 했다.
- 실린 곳: 복음과 상황 1994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