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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을 노래한 길, 관동대로 서울에서 평해까지 옛길을 걷다! 『관동대로 關東大路』. 관동대로 답사기. 관동대로는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을 노래한 길이다. 한강을 지나 대관령을 넘어 동해에 이르는 자연과 생명의 길. 서울에서 평해까지 구백이십 리의 열사흘 길에 깃든 역사와 문화를 되새겨본다. 옛 선인들이 걷던 길을 따라 설렘과 두려움으로 걸어본다. 조선시대에는 아홉 개의 주요 간선도로가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줄기가 영남대로와 삼남대로, 관동대로, 관서대로, 북관대로. 20년간 걷는 일만 해온 ‘우리땅걷기’ 대표인 저자는 남녘에 있는 영남대로와 삼남대로, 그리고 이번에 관동대로를 걸으며 오랜 답사 여정을 일단락 지었다. 옛 길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역사의 고리이다. 옛 길 마다 깃들은 역사와 문화 또한 각기 다르다. 저자와 함께 옛길 관동대로를 걸으며 관동대로에 담긴 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우리 땅을 보듬고 사랑하는 길로 우리를 안내한다. |
차례 첫날. 흥인지문에서 남양주 다산 생가까지 - 밤마가 길을 걷는 꿈을 꾸다 이틀째. 마재에서 용문까지 - 매연은 보약이요 소음은 풀벌레 노랫소리이니 사흘째. 용문에서 원주 문막까지 - 산속이 넓게 열렸으나 지세가 깊이 막혔고 나흘째. 문막에서 횡성까지 - 원주는 몰라도 문막은 안다 닷새째. 횡성에서 문재 정상까지 - 돈 되지 않으면 걷지 마소 엿새째. 평창에서 대화장까지 - 좋은 경치 기묘하여 그려내기 어렵네 이레째. 진부에서 횡계까지 - 가을비는 지루한 장마처럼 내리지 않는다 여드레째. 대관령에서 강릉까지 - 한양에서 나귀 타고 이레 걸린 대관령 아흐레째. 정동진에서 망상 해수욕장까지 - 길은 거역할 수 없는 나의 운명이다 열흘째. 동해역에서 삼척까지 -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일수록 준비는 소홀해지고 열하루째. 삼척 동막에서 호산교까지 - 아는 것이 있어도 아는 척하지 말자 열이틀째. 삼척 신남리에서 울진 매화리까지 - 타관에서 온 나그네는 바로 길을 묻는 사람 열사흘째. 매화리에서 평해까지 - 길 끝에서 언제나 또 다른 길은 시작되고 우리땅걷기 길벗들의 답사후기 역사의 길에 발자취를 남기다 정말 원한다면 길을 나서라 |
저자소개 |
“길은 거역할 수 없는 나의 운명이다” 저자 신정일은 여간해서 집에 붙어 있질 않는다.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많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길 위에서 먹고 쉬고 자는 사람이다. 금강, 섬진강, 한강, 낙동강, 영산강을 따라 걸었고, 400개가 넘는 산을 오르내렸다. 최근 몇 년간 조선시대 주요 간선도로 걷기에 집중하여 부산에서 서울에 이르는 구백육십 리 길 영남대로와 해남에서 서울에 이르는 구백이십 리 길 삼남대로를 걸었고, 지난 2007년에는 서울에서 평해에 이르는 구백이십 리 길 관동대로를 열사흘에 걸쳐 걸었다. 《관동대로》는 《영남대로》와 《삼남대로》에 이러 ‘옛길을 걷다’ 시리즈를 일단락 짓는 책이다. 혼자 걷는 것만으로는 마음에 차지 않았는지 20년 전 ‘우리땅걷기’ 모임을 만들어 수천 명의 길동무와 함께 우리 땅 방방곡곡을 걸었다. 그는 요즘 마음이 설렌다. 동해안 해안선을 따라 부산 해운대와 두만강 하구를 잇는 동해 트레일 생각 때문이다. 아직 북녘땅을 밟는 것이 어렵지만 길만 열린다면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순례 길 못지않은 걷기 코스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물론 길이 열린다면, 누구보다 먼저 길을 떠날 사람이다. 그간 두 발로 써내려간 책으로는 《다시 쓰는 택리지》(전 5권),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고을을 가다》(전 3권), 《한강 따라 짚어가는 우리역사》, 《영남대로》, 《삼남대로》가 있다. 이외에도 《한국사의 천재들》(공저),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공저),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 《똑바로 살아라》등 다양한 역사교양서를 써왔다. 사단법인 우리땅걷기(http://cafe.daum.net/sankang)는 ‘우리의 산과 강, 문화유산과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지난 1989년 차를 타는 것보다 느리게 걸으며 우리 국토를 다시 보아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그해 9월 ‘남녘기행 - 소록도’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250여 차례의 답사를 진행했다. 다음 카페 온라인 회원이 2,500여 명이고 오프라인 회원들을 합하면 회원 수가 3,000명에 이른다. 길 관련 문화행사와 각 지역의 전통문화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누구나 무료로 가입하여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으며, 답사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신정일은 집에 있는 날이면 거의 매일 이곳에 길에 관한 단상을 남기곤 하는데, 그 글이 벌써 2,000개에 이른다. |
출판사 서평 |
한강 물길 지나 대관령 넘어 동해까지 지도 위 점선으로 남겨진 옛길 관동대로를 되짚어본다 - 이 책의 개요 관동대로는 조선시대 9대 간선도로 중 제3로로 수도 한양과 경기 지방의 동부와 강원도를 이어주는 길이다. 길이가 구백이십 리이고, 걷는 데 열사흘이 걸린다. 영남대로, 삼남대로 등의 다른 옛길과는 달리 자연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어 강바람과 산내음을 즐기며 걸을 수 있다. 또한 율곡과 신사임당, 허균과 허난설헌, 김시습, 정철, 이색 등 우리 역사를 수놓았던 인물들의 흔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영남대로와 삼남대로는 아스팔트가 옛길을 뒤덮어 먼지와 소음으로 가득했는데 관동대로는 서울을 빠져나가자 딴 세상이다. 첫 구간(서울에서 횡성까지 닷새간)에서는 남한강 두물머리와 원주 치악산을 만나고, 두 번째 구간(평창에서 강릉까지 나흘간)에서는 두메산골과 대관령, 관동별곡의 고장 강릉을 지난다. 마지막 세 번째 구간(동해에서 평해까지 나흘간)은 동해 해안선을 끼고 삼척과 울진을 따라 종착지 평해에 이른다.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바다까지 가는 길이다. 대관령 넘어 영동 지방은 관동팔경과 금강산, 설악산, 두타산 등 빼어난 경치로 수많은 문객들이 답사한 곳이다. 이승휴, 이곡, 이색, 김시습, 남사고, 김창협, 허균, 허난설헌, 허목 등 역사적 인물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 관동대로가 지나는 길목인 관동지이다. 이 지역은 조선시대의 이름난 유배지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특히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이야기는 관동대로 전체에 걸쳐 있다. 신사임당의 시댁이 파주의 율곡 마을이고, 평창군 봉평에서 이원수와 신사임당이 함께 살았으며, 강릉은 사임당의 친정이자 율곡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관동대로 답사에는 여러 길벗들도 함께 했다. 전문 답사가가 아닌 평범한 한 사람이 길을 걷는 과정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뻥 뚫린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산속을 헤매며 사라진 옛길을 더듬어가는 일은 무척 생소하고 신기한 경험이다. 때로는 지친 두 발을 어루만지며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자문하기도 했지만 걷고 난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살아 있다는 것이 축복이란 걸 느끼고 싶고 정말 원한다면, 길을 나서라 그리고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 아직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한 작은 희망이 있다면 옛길을 걸어보라. 옛길에는 우리와 같은 고민을 했던 누군가의 기억이 남아 있고, 우리와 다른 삶을 살았던 옛 사람들의 모습이 어려 있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옛길의 매력에 빠지면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옛길의 복원과 국토의 재발견 - ‘옛길을 걷다’ 시리즈 완간 조선시대에는 아홉 개의 주요 간선도로가 있었다. 이중 대표적인 줄기가 영남대로, 삼남대로, 관동대로, 관서대로, 북관대로이다. 영남·삼남·관동 대로는 남녘에 있고, 관서·북관 대로는 북녘에 있으니, ‘옛길을 걷다’ 시리즈 《영남대로》, 《삼남대로》, 《관동대로》는 아직 절반의 완성인 셈이다. 거의 매일 새로운 도로가 생겨나고 하늘 길까지 만들어진 요즘 세상에 왜 옛길에 주목한 것일까. 옛길에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이 있다. 영남대로에는 임진년 왜군이 한양으로 진격한 흔적과 조선 통신사가 일본으로 향하던 이야기가 있다. 삼남대로에는 녹두장군 전봉준과 동학혁명군이 꿈꾼 혁명의 기억들이 있다. 자연과 생명의 푸름이 가득한 관동대로는 송강 정철의 관동팔경을 절로 떠올리게 한다. 뿐만 아니라 현실의 어려움을 웃음과 해학으로 풀어낸 민초들의 역사도 이야기와 노랫말, 풍습으로 곳곳에 남아 있다. 구백육십 리 영남대로를 걷는 데 열나흘 그리고 구백이십 리 삼남대로와 관동대로를 걷는 데 각각 열이틀과 열사흘이 걸렸다. 고속철도를 이용하면 서너 시간,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왜 두 발이 부르트도록 걸었던 것일까. 조선시대 사람들의 보폭에 맞추어 길을 걷는 것은 그들의 삶을 온전히 느껴보기 위해서이고, 우리시대 사람들의 보폭과 다르게 걷는 것은 빠름에 치우친 삶의 모습에 제동을 걸고 소멸, 사라짐의 가치가 아닌 느림을 통한 재생과 복원의 가치를 제안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국토는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변화를 겼어왔다. 개항 이후 옛길이 새롭게 닦여지고 철로가 개설되는 변모를 겼었고, 이 길이 현대로 접어들며 국도와 지방도로 만들어졌다. 수백 년간 중요한 역할을 했던 길들이 불과 백여 년도 안 되는 사이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길이 사라지면 그 길을 지나다녔던 사람들의 이야기, 길 위에 남겨진 역사의 흔적들도 함께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우리가 급속한 근대화의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들이 옛길 위에는 여전히 살아있다. 발전과 편리의 목소리에 많은 것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오늘날에도 우리의 삶이 길 위에 남겨지고 있듯이 말이다. ‘옛길을 걷다’ 시리즈는 언제 사라질지 모를, 이미 사라져 버린 옛길에 대한 답사보고서이자 새로운 문화에 대한 제안서이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옛길을 찾아내고 직접 걸어본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여러 옛길들이 문화재(문경새재, 죽령 옛길 등)로 지정되었고, 길을 주제로 한 문화 축제(전주 길문화축제)도 열리고 있다. 이런 문화운동이 지속되면 머지않아 우리 옛길 걷기가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순례 길과 같이 많은 이의 관심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신정일은 옛길을 걸으며 “잊힌 줄 알았던 역사와 문화가, 이 땅의 자연환경과 소멸되었던 길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사람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를 향해 말을 걸어오는 경이(驚異)의 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옛길을 걷다’ 시리즈를 통해 이 감동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길, 그리하여 그들이 옛길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새겨가길 바란다. 민족의 대동맥 영남대로, 유배와 혁명의 길 삼남대로 - 《영남대로》와 《삼남대로》 개요 조선시대에는 9대 간선로라 하여, 서울을 중심으로 각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길이 영남대로와 삼남대로이다. 영남대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구백육십 리 열나흘 길이고, 삼남대로는 서울에서 해남 이진항을 거쳐 제주 관덕정에 이르는 열이틀 길이다. 영남대로는 거리가 960여 리에 달하고 실제 걷는 기간은 열나흘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이 길은 경상도 58개 군현, 충청도와 경기도에 각 5개씩의 군현에 걸쳐 있었고, 29개의 주요 지선이 이어져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서울을 향해 진격했던 길이자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향하던 길로 우리나라의 영광과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일제 강점기 이후 교통망의 근간이 되었다. 영남지역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부산에서 대구, 문경새재, 충주, 용인을 지나는 영남대로 외에도 영천과 안동을 지나 죽령을 넘어 서울로 가는 열닷새 길의 영남좌로(嶺南左路), 김천을 지나 추풍령을 넘어서 가는 열엿새 길의 영남우로(嶺南右路)가 있었다. ‘옛길을 걷다’ 시리즈 집필을 위한 답사에서 굳이 열나흘의 영남대로를 고집한 것은 밀양과 대구를 거쳐 문경새재를 넘어간 영남지역 선비들의 여정을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서이다. 조선시대부터 사람과 물자 이동의 중심 도로 역할을 했던 영남대로와 달리 삼남대로는 질곡의 역사를 겪어왔다. 고려 태조 왕건은 후백제를 열었던 견훤과의 악연 때문에 호남 지역 사람들의 벼슬길을 막았으며, 정여립의 난으로 일컫는 기축옥사(己丑獄死) 이후에도 차별은 계속되었다. 또한 중앙정계에서 밀려나 남도의 섬이나 제주로 귀양을 떠나던 유배길이 바로 삼남대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우암 송시열이나 조선 후기 대표적 지식인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의 이야기도 이 길 위에 남아 있다. 풍요로운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는 남도에는 유독 수탈과 핍박이 많았다. 실의에 빠진 삼남의 민중들은 동학농민운동이라는 혁명의 방법으로, 여러 민족종교와 신흥종교에 마음을 담는 믿음의 방법으로 이런 역사의 상흔들을 감싸 안고 살아온 게 아닐까 싶다. |
첫댓글 낮익은 춤추는 여인님도 뵈이구,, 관동대로에 관한자세한 역사 군요,, 감사 대장님 워요
기회되면 오세요 안내해 드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