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원각불교사상硏 ‘원각사상’ 주제 천태불교학술대회
원각불교사상연구원은 지난 5월 31일 서울 관문사 2층 대강당에서 ‘원각사상의 종합적 연구’를 주제로 2013년도 천태불교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상월대조사의 불교혁신관(김용표 동국대 교수) △상월대조사의 계율관(최기표 금강대 교수) △상월대조사의 수행관(세운 스님, 인천 황룡사 주지) △상월대조사의 신이(神異)세계(고우익 금강승가대 교수) △십일면관세음보살의 신행관 고찰(정성준 동국대 티벳장경연구소 객원연구원) △진(眞)의 세계를 향한 디딤돌 ‘의언(意言)’(안환기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 등의 글이 발표됐다. 이를 요약해 소개한다. 편집자
생활·대중불교 전환은 신대승불교 운동의 시작
I. 대조사 불교혁신관의 종교사적 배경 해방 후 한국불교계의 현실은 성스러운 교법이 희미해지고 그 복원력마저 상실된 채 방황하고 있었다. 당시의 불교는 민중들의 종교적 열망에 부응하기에 너무나 열악한 상황에 있었다. 상월원각대조사(上月圓覺, 1911-1974)의 불교혁신관은 이러한 종교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혁신이란 새롭게 하는 것이다. 성스러운 교법을 이 세간의 불교공동체를 통하여 다시 드러내고자 한 대조사의 원력은 불교의 대중화와 생활화, 그리고 역사와 국가 사회에 대한 봉사활동으로 구현되었다. 대조사의 새 불교운동은 불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받아 짧은 기간 동안 천태종을 한국의 거대 종단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이 혁신사상은 기존의 불교계가 그 이상을 잘 실천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반성이자 미래 불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이었다.
세계 종교사를 되돌아보면, 어느 종교 공동체이던 간에 그 교단의 전개과정에서 성스러움과 세속적인 요소간의 역동적 긴장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종교공동체는 세속적인 요소와 성스러운 요소가 혼재하여 있기 때문에 이 두 요소가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따라 그 교단의 종교적 정체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종교학자 멀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는 종교의 역사를 성과 속의 변증법적 원리에 의해 바라볼 수 있는 예지를 보여주었다. 모든 종교사는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전개되었다. 이러한 종교의 변증법적 발전 법칙은 종교 창시자의 성스러운 가르침이 바르게 전승되지 못하고 타락하고 변질되었을 때 여기에 대한 반작용인 개혁 운동이 필연적으로 발생되게 되는 것이다. 불교의 혁신운동도 이러한 종교사적 원리에서 그 운동의 방향과 당위성을 찾아볼 수 있다.
종교 개혁은 창시자의 가르침의 근본정신으로 되돌아가려는 운동이다. 1세기 전후 인도에서 일어난 대승불교 운동도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되돌아가려는 종교개혁 운동이었다. 상월대조사의 불교혁신운동도 세속화된 종교 현실에 대한 새로운 대안 제시였으며, 그 혁신관은 구습의 해체를 통한 본래의 거룩함으로의 복원이었다. 그러나 그 복원은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역사와 중생의 소리에 대한 현재의 응답으로 성취되었다.
조선조의 불교 탄압에 고사 직전에 있던 불교계는 구한말 1895년에 승려의 도성 출입금지 조치가 해제되면서 다시 부활할 수 있는 전기를 맞이했다. 이때부터 불교계는 이른바 유신과 개혁이라는 화두를 갖게 되었다. 개화기 이후 불교갱생과 유신운동은 권상로의 〈조선불교개혁론〉(1912) 발표와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불교서관, 1913) 출간을 통하여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한용운(韓龍雲, 1979-1944)은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보다 구체적인 불교혁신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염세와 독선적 수행 비판, 동정일여 참선법 강조, 대규모 선학관 건립으로 참선교육내실화, 염불당 폐지, 승려결혼 허용, 석가모니불상 외의 성상과 회화의 제거, 사찰의 제사와 의식 간소화, 사원의 도시 건립, 탁발금지, 교단 총괄기구 설립, 승려교육의 현대화와 해외유학, 포교사 교육 강화, 사찰 주지의 민주적 선출 등 당시로는 실로 파격적인 개혁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만해의 불교유신론은 상월대조사의 불교혁신론과 다소 다른 점도 발견된다. 특히 ‘염불당 폐지론’은 불교대중화의 이념과 배치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토왕생 신앙과 염불신앙을 부정하는 것은 다양한 구제 방편을 시설하고 있는 대승의 원리에서 볼 때 지나친 단견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용운의 불교유신론 이후 불교계는 일제의 불교정책에 순응하기 시작한 승려들의 증가로 점차 그 참신성이 상실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영재(金英宰, 1900-1927)가 〈조선불교혁신론〉(1922) 을 발표하면서 수구적 불교계와 대립각을 세운 새 불교운동도 다시 점화되기 시작했다. 그 후 왜색불교로부터의 자주성을 강조한 선학원 창립(1921)후 불교계는 백용성의 대각교 운동을 비롯한 자주적 불교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산중불교로 전락했던 500여년의 퇴락의 역사를 바로 되돌릴 수는 없었다. 불교계는 일제 강점기의 중일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해방 후 민족 분단과 불교계의 자체 분규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기개혁을 통한 불교 부흥의 실마리를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대조사의 불교혁신운동도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무관치 않다 할 것이다. 불교의 갱생과 중흥을 위해서는 불교 내의 자체 모순과 문제점을 먼저 직시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생활과 유리된 불교, 소수만을 위한 수행체제, 국가 사회와 이웃에 대한 봉사 정신이 결여된 종단, 자신만을 위한 기복신앙, 승가양성 제도의 미비, 재가신자 교육 체계의 미비, 한자로 된 불교경전 등 혁신해야 할 유산이 산적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조사는 먼저 불교의 대중화를 혁신이념의 중심으로 삼았다. 그리고 일상의 삶을 불교수행으로 삼는 생활불교와 국가 사회에 봉사하고 자비의 실천하는 애국불교를 제창하며, 조선 초기에 명맥이 단절되었던 종단 천태종을 다시 중창하고 현대 한국불교계의 신행운동에 새로운 방향과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II. 대조사의 세 가지 불교혁신 이념 1951년 겨울, 상월대조사는 〈법화경〉을 독송하다가 대각을 성취하였다. 대도를 깨달은 직후 3일 낮과 밤 동안 이른바 ‘대오설법’을 하였고, 그 후 제자들과 함께 정진하면서 전국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다양한 방편(方便, upya)으로 교화하기 시작했다. 대조사는 기존의 불교와는 다른 쉽고 생활과 밀접한 가르침으로 신자들에게 안심입명처(安心立命處)를 제시해 주었다. 이러한 새 불교 참 신앙 운동은 대조사의 구제중생의 대서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 누구나 구제 가능한 종교: 대중불교 불교에서의 대중(大衆)이라는 용어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를 통틀어 이르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대중불교란 말은 소수를 위한 불교가 아닌 ‘모든 사람과 사부대중을 위한 불교’라고 정의할 수 있다. 대중불교의 이념은 본래 석가모니 부처님의 교화 정신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대중불교 이념은 소수를 위한 승원불교에서 모든 이를 구제하고자한 대승불교 운동의 기본 동인이 되었다. 불법을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게 하기 위해서는 교리뿐만 아니라 수행방법도 단순하고 쉬워야 한다. 그러므로 대승불교는 출발부터 보다 많은 이에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방편을 제시했던 것이다.
대조사의 불교혁신운동도 소수를 위한 불교에서 보다 많은 사람을 구제하려는 대중불교로의 전환이 그 중요한 테마였다. 이 땅에서 불교는 출가중심주의 불교, 은둔적 산중불교, 난해한 전문가 불교적인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에 대중으로서는 이해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것처럼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불교는 언제 어디서라도 대중과 함께 있어야 하며 대중들이 쉽게 배우고 실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서 대조사는 대중과의 거리를 없애고 벽을 무너뜨려 모든 사람이 불교 안에서 함께 어우러지도록 하였다. 대조사의 대중불교 운동은 사찰불교에서 민중불교로, 출가불교에서 재가불교로, 염세주의가 아닌 구세주의(救世主義)불교로 방향을 구체화하였으며, 수행방법의 대중화, 계율의 단순화, 사원의 도시화, 사찰의 개방화, 사부대중의 일체화 등으로 전개되었다.
(1) 수행방법의 대중화 상월대조사는 기존의 간화선 중심의 수행법은 일반 대중들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수행법이라고 보았다. 또한 한자로 가득한 경전과 난해한 교리도 역시 불교를 대중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대조사가 관세음보살 주송 수행을 권장한 이유는 수행법이 쉽고 단순하여 누구나 접근하기 용이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현실 삶의 여러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불보살의 자비와 가피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대조사는 수행의 대중화를 위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염불(念佛, buddha anusmti)수행을 적극 권장했다. 누구나 신행할 수 있는 쉬운 수행의 길[易行道]을 가르친 상월대조사의 교화방식은 불교도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불법에는 한량없는 많은 방편문이 열려있다. 굳이 소수의 상근기만이 갈 수 있는 어려운 길을 택할 필요가 있겠는가? 불보살의 대자비 가피력에 의지하는 사람은 훨씬 쉽고 빠르게 불퇴전위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대조사가 항상 가르친 ‘관음주송(觀音呪誦)’ 수행법은 ‘관세음보살 명호를 칭념지송(稱念持誦)하는 것’이다, 즉 칭명염불과 주문수행법을 합한 수행법으로, 보통 1일 1만 번씩 100일을 기준으로 수행하여 100만번 주송을 목표로 수행한다.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불러 부사의한 공덕과 가피를 입어 소원을 성취하고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관음주송 수행이 이 시대 불자 대중들에게 적합한 이유를 대조사는 다음 여섯 가지로 설하고 있다. ①수행법이 어렵지 않고 복잡하지 않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다. ②유식무식이 관계없으니, 학식이 많은 사람이나 학식이 적은 사람도 구애를 받지 않는 수행방법이다. ③직위가 높거나 낮거나 아무런 관계 없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수행이다. ④출가ㆍ재가의 구애도 없다. ⑤염불수행은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아무 관계가 없어 누구나 수행할 수 있다. ⑥별도의 시간을 내지 않아도 염불수행은 할 수 있다. 길을 가거나 일을 하거나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수행방법이다. 관음주송의 수행은 근기와 학식, 남녀노소, 출재가, 사회적 신분의 차이 없이 누구나 항시 쉽게 수행할 수 있다는 데 대중적 종교성이 있다.
(2) 계율의 단순화와 수계의식의 혁신 한국불교의 전통 승단은 대승불교의 이념을 봉대하는 대승교단이지만 실제 계율은 소승 부파불교의 율장에 의거하는 모순을 갖고 있었다. 계율의 시설과 내용은 매우 복잡하여 실제로 지키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는 잘 맞지 않는 요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대승의 계율은 출가와 재가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계율이며 단순한 금계의 덕목보다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며 널리 일체 유정을 이롭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조사는 출가자와 재가자의 계율을 구분하지 않고 10선계(十善戒)로 통일하였다. 십선계는 인간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 인간의 선악 행위를 열 가지로 구분하고 10악을 10선으로 전환하도록 가르치는 계율이다. 상월대조사는 십선(十善, dasa kusala)을 근본 계(sia, 개인의 결의)와 율(vinaya, 불교공동체의 규칙)의 근본으로 삼았다. 십선계는 총상계(總相戒)라고 한다. 그 이유는 대승과 소승을 모두 포용하고, 출가 승려와 재가 신자가 공동으로 지켜야 할 윤리 덕목을 모두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전통 교단의 사분율 중심의 계율을 대폭 혁신한 것이다. 대조사는 어려운 여러 계율의 수지보다는 “아만심과 물욕과 색욕만 버려도 틀림없이 성불할 수 있다”고 설하였다. 재가신도에게는 십선계를 ‘십개조 생활 규범’으로 재구성하여 지키게 하였다. 출가자의 자격요건을 유연하게 하여 성별, 나이, 학력, 출신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행자들에게는 노동과 수행의 의무가 부과되었고, 대중생활을 하며 관음주송 중심의 수행을 하도록 했다. 대조사는 몸의 출가가 아닌 마음의 출가[心出家]를 중시하였으므로 불필요한 계율과 형식보다 구도심과 신행의 자세가 확고한 이는 출가를 허가했다.
(3) 사원의 도시화와 사부대중의 일체화 대조사는 산중불교를 도시 불교로 전환하는 혁신을 단행하였다. 총본산 구인사를 제외한 모든 사찰을 도시에 건립하여 사회와 불법이 서로 소통하는 공간구조를 만들었다. 이러한 사원 도시화의 의도는 세상으로 찾아가는 불교로의 전환에 있었다. 산으로 찾아오는 불교가 아니라 중생을 찾아나서는 불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사찰은 24시간 항상 개방하여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기도하고 수행할 수 있는 도량으로 개방케 하였다. 사찰은 단순한 승려들의 수행공간이 아니다. 교화의 공간이며 모든 중생들이 삼보에 귀의하는 성역이다. 또한 불교문화 유산을 전승하고 창조하는 도량이다. 이러한 현대 사찰의 기능혁신으로 불교사원이 사회교육과 국민교육 기관의 역할도 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대조사는 출가와 재가가 함께하는 대승적인 교단을 건립했다. 본래 불교는 출가자만을 위한 종교가 아니었으므로 사부대중인 출가와 재가가 함께 수행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새 불교 운동의 주요 방향이었다. 사부대중이 수행도 함께하고 사찰과 교단의 운영도 함께 해야 한다. 출가자는 낮에 농장이나 사무실 등에서 일을 하고 밤에 수행을 한다. 재가자들도 생업에 종사하면서 밤에 수행을 지속해야 한다. 이와 같이 출가 승려와 재가 신도가 함께 일하고 수행하는 전통은 기존의 출가자 중심 교단운영과는 매우 다른 혁신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재가불교의 중시는 상월대조사의 종단 제도와 운영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사부대중이 함께하는 사찰과 종단운영의 기본 원칙이 되었다.
(4) 민간신앙의 수용과 혁신 대조사의 민간신앙 전통에 대한 이해는 우호적이었다. 그러므로 오랜 전통과 관습을 배척하지 않고 가능한 한 방편으로 수용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불교 포괄주의 전통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법에 어긋나는 민속신앙은 수용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안택고사(安宅告祀)나 산메기제(산신제), 용왕제, 무속의 굿 등을 철폐하게 하였다. 대조사의 산신과 용신신앙 등의 철폐는 한국불교사에서 일대 혁신적인 조치가 아닐 수 없다.
불교는 한국문화에의 토착화 과정에서 ‘배타주의(exclusivism)’적 신앙의 강요보다는 불교 속에 모든 종래의 신앙을 포용하여 이해하는 이른바 불교 포괄주의(Inclusivism) 체제 안으로 끌어들였다. 본래 ‘포괄주의’란 자기 종교의 우월성과 구원의 궁극성을 말하면서도 타종교의 가치와 효용성을 일부 인정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논리에 입각하여 불교 이전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다양한 자연신과 무교(巫敎)의 신들은 불교적으로 변화되어 불교의 호법신중(護法神衆)이 되었다. 그러나 상월대조사는 대표적인 습합종교현상인 산신각과 용신각등을 사원에서 철폐하는 혁신을 단행하고 관음신앙을 중심으로 한 단순한 신행체계를 세웠다.
2. 일상의 삶에서 불법을 수행: 생활불교 대조사의 생활불교 이념은 ‘궁극적 진리와 세간이 둘이 아니고 연화는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항상 청정하다(眞俗不二 無染常淨)’는 법어에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천태법화의 근본 교설인 ‘회삼귀일(會三歸一) 삼제원융(三諦圓融)’은 불법과 세간을 둘로 보지 않는 가르침이다. 대조사는 일상의 삶속에 불법을 실천하라고 가르쳤다. 불법은 산중에 있는 것도 아니고 소수의 출가자만이 독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리는 항상 열려 있으며 누구나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상월대조사 법어’는 이러한 생활불교의 교학적 원리를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제법의 실상 자리를 있는 그대로 증득하여 무상대도에 머물러 생활하는 것이 바로 생활불교이다. 여기에는 세속과 출세간의 분별이 없고 출가와 재가의 구분도 없다. 실상 무상에 고요히 안주하는 이는 일체에 걸림이 없는 절대 자유의 마음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무애 자재한 삶을 살아가라는 가르침이 바로 대조사의 생활불교 법문인 것이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지만 항상 오염되지 않고 그 향기와 빛을 발하듯이 대승 보살의 삶도 역시 세속에서도 성스러움을 잃지 않는 것이다. 세속의 생활과 불교수행을 일체화하는 것이 진정한 제법실상을 체득한 불자의 삶의 길이다. 대조사의 생활불교로의 혁신이념은 기복불교에서 작복(作福)불교로, 유한(游閑)불교에서 생산불교로, 주경야선(晝耕夜禪)과 지혜복덕창조의 불교, 우상(偶像)불교에서 실천불교로 그 구체적인 실천 지침을 정하였다.
3. 국가와 이웃사회에 봉사: 애국불교 대조사의 애국불교관은 역사와 세간 속에서 보살도를 실천해야 한다는 데 핵심적 의미가 있다고 본다. 대승불교는 현실사회를 떠나서 열반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불법은 생사를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며 열반에 안주하여 집착하는 것도 참된 깨달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승의 이념은 자연스럽게 이웃과 사회, 국가와 민족, 인류 세계에 대한 관심과 봉사를 실천하는 대승보살도의 길을 열게 된다. 상월대조사의 애국불교 이념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대조사의 애국불교관은 부모ㆍ스승ㆍ사회ㆍ국가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이른바 사은(四恩)사상과 갚은 연관이 있다. 개인은 이 시대의 사회와 국가와 분리될 수 없는 존재라는 연기적 이해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서 국가란 단순히 어떤 권력집단이나 조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환경과 인연의 총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천태대사가 ‘호국은 곧 사제(진리)의 경계를 지키는 것’이라고 해석한 의도를 알 수 있다. 즉 호국이란 인간들이 의지해서 살고 있는 여러 인연들의 기반과 울타리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월대조사의 애국불교관은 ‘민족주의나 국수주의에 토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자리와 이타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다. 대조사는 애국불교관의 실질적 실천을 위해 나라의 융성에 필요한 일들을 실천케 하였다. 이 과제는 구체적으로 민족중흥의 과업에 헌신, 사회복지 사업과 사회정화운동 참여, 민족 도의 재건운동, 자연과 환경 수호운동, 국토 청정운동 등에 적극 동참하는 국민 불교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III. 불교혁신을 위한 신행조직과 교육 대조사는 대중불교로의 혁신을 위해 신행조직과 교육 사업을 강화하였다. 1969년 1월 동안거에 동참한 대중을 중심으로 중앙신도회가 창립된 이래 신도회의 조직은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대조사는 처음부터 신도회의 조직과 운영을 자율적으로 하도록 교시하였다. 신도회는 자율적으로 회관이나 사찰을 세워 정기법회와 임시법회를 개최토록 하였다. 또한 대조사는 수계와 득도제도를 확립하여 신자의 교육을 제도화하고, 지속적인 신행과 신자 재교육을 위해 안거제도를 정착시켰다. 대조사는 전통적 한국불교의 안거제도를 현대인의 생활 변화에 맞게 새 안거제도로 만들어 시행하였다. 신도 안거는 휴가철과 방학 기간에 맞추어 매년 하계와 동계에 1개월씩 실시한다. 신도단체 간부와 임원들은 반드시 본산에서 실시하는 안거에 동참해야 한다. 안거의 교육 내용은 1969년부터 관음주송 수행으로 통일하였다. 참가자는 안거의 일과표에 따라 철저한 수행을 경험케 한다. 승려는 신도 안거에 동참하며 따로 겨울철에 2개월 동안 별도로 안거 수행을 해야 한다. 이러한 안거제도는 천태종 신자와 승려들의 교육과 신심확립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 하는 수행은 사부대중의 일체화에 기여하고 있으며 출가자의 집중 안거는 승려의 종단 지도자로서의 자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대조사는 종단의 미래를 위한 교육 사업에 큰 원력이 있었다. 이 점은 위대한 종교 선각자들의 공통된 요소이기도 하다. 대조사는 교육을 통한 포교와 불교적 인격을 지닌 지도자를 양성하여 국가와 인류 발전에 기여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교육 원력은 애국불교의 이념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대조사가 구상한 교육 사업은 신도 교육기관 설립은 물론 중ㆍ고등학교와 대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체계적으로 불교적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IV. 대조사 불교혁신관의 불교사적 의의 이상 논의해 본 대조사의 불교혁신관은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출가중심의 산중불교에서 재가중심의 도심불교로의 혁신이다. 둘째, 신행의 대중화와 관음주송을 중심으로 한 단순한 수행법의 정립이다. 셋째, 복잡한 계율의 간소화와 실생활화이다. 넷째, 생활과 불교신행이 일치된 생활불교의 정착이다. 다섯째, 재가신자의 사찰과 종단 운영에의 참여이다. 여섯째, 기존 민속신앙의 수용과 정비이다. 일곱째, 대형사찰의 건립과 종단 행정의 일원화이다. 여덟째, 수행과 노동을 함께하는 주경야선 전통의 확립이다. 아홉째, 재자신도 교육과 학교교육 제도의 정착이다. 열째, 역사와 국가 사회에 봉사하는 국민불교의 실천이다.
대조사는 기존의 불교 전통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깨달은 정법에 바탕을 두고 법력과 원력으로 새 불교 참 신앙운동을 펼치고자 했다. 대조사의 불교혁신관의 중심은 법화천태 교관과 관음신앙을 중심으로 한 생활불교와 대중불교로의 전환에 있었다. 이러한 신행의 중심축 이동은 한국불교의 신행사에 있어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승려 중심의 불교에서 재가불교의 중요성을 일깨웠으며, 생활과 유리된 산중불교를 생활불교로 회귀시켰다. 수행의 단순화와 사부대중의 평등화, 교단조직의 일원화 등은 기존의 전통불교와 다른 새 불교의 모습이었다. 이와 같이 상월대조사는 천태종의 중흥조이자 불교전통을 혁신하여 현대 한국불교의 신행 패러다임을 역동적이고 생명력 있는 대중적 생활불교로 전환시킨 선지식이었다. 대조사의 불교혁신운동은 단순히 조선조 초기에 사라진 천태종을 중창한 것이 아니라, 불교의 본래 모습과 달리 왜곡되었던 이 시대의 불교를 새롭게 혁신한 신대승불교 운동의 시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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