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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들에게 배우는
경건
The Practice of Piety
루이스 베일리 지음/조계광, 안보현 옮김
청교도 아카데미
교수 : 차 종 규 목사
이 책은 경건생활에 관한 최고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루이스 베일리의 원저(The practice of piety)중 일부를 발췌하여 번역한 것입니다.
17-18세기에 『천로역정』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힌 이 책은 본래 베일리가 그의 사역 초기인 1611년경 경건에 관해 설교 한 내용을 모아 소책자로 엮은 것이었습니다. 곧 이 책은 잉글랜드의 베스트셀러가 되어 집집마다 한 권씩 소장하고 있는 책,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손에 든 책이 되었습니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도 아내가 지니고 있던 이 책을 숙독함으로써 영적 생활을 시작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이 이 책을 성경의 권위와 그의 동일시하는 현상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만큼 개신교도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아울러 잉글랜드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게 되자 금서로 지정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출판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그 문제를 의회에서 논의했고, 사람들에게 “주머니에 성경을 넣고 다니시오.”라고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영국 웨일스의 카마르덴 태생으로 옥스퍼드 엑서터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루이스베일리는 1611년 잉글랜드 우스터셔의 이브셤에서 성공회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설교가로서의 명성과 함께 이 책으로 유명해 지는 바람에 영국 왕의 법정 계성자인 헨리 왕자와 영국 왕 제임스 1세의 전속 사제자리까지 올랐습니다. 1616년12월8일, 뱅거의 주교로 선임된 그는 1631년10월, 슬하에 네 아들을 두고 사망하기까지 그곳에서 봉직했습니다.
베일리는 청교도적 신념 때문에 자신의 교구로부터 자주 수난을 당했고, 왕실의 미움을 사 투옥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청교도에 속한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았는데, 청교도적 경건에 관해 쓰인 이 책의 명성이 워낙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베일리는 인간의 운명이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즉 우리 모두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로 가고 있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영생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로 가고 있든지 둘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는 비참한 인간의 상태를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며, 거듭나지 않은 채 죽은 자들을 위해 예비 된 “밑 없는 불구덩이”인 지옥의 참담한 광경과 그와는 완전히 대조되는 천국의 말할 수 없는 영광에 대해 상세히 설명합니다. 아울러 그리스도의 재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또 그 상태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지에 관해 언급합니다. 이를 위해 우선 경건을 방해하는 7가지 장해물에 대해 설명하고, 이어서 경건을 연습하기 위한 실제적인 방법들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온유하고, 순전하고, 겸손하고, 공의롭고, 평화를 사랑하고, 끝까지 인내하는 자들로 이루어집니다. 이들이야말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산돌이요, 이 영적 전당이야말로 영원히 지속될 유일한 것입니다. 그 밖의 모든 것, 즉 인간의 명예나 업적, 재능, 허영심 등은 영원히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훌륭한 것, 높이 평가받던 모든 것이 영원한 경멸 속에 잠기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온 몸이 오싹해지지 않습니까?
회심과 영생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이 책은 양심을 깨우치는 놀라운 능력으로 인해 지난 세기의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습니다. 마찬가지로 경건을 경멸하고 부끄러워하는 이 세대에도 커다란 도전과 영적 각성을 주리라고 기대합니다.
경건한 삶을
사모하는 당신에게
진정으로 경건한 삶을 살겠다는 결심이 없이는 아예 이 책을 읽을 생각조차 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모두가 이 책을 읽기를 바라는 것이 저의 진심입니다. 경건치 못한 삶을 살다가 뜻하지 않은 죽음을 당해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받기 전에 속히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요소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 인격 안에 삼위(아버지, 아들, 성령,)로 존재합니다.
둘째, 인간 스스로에 대해 알라야 합니다. 즉 인간이 타락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가정생활에서, 교회생활에서, 일상생활에서 경건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그분을 올바르게 경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참된 경건은 있을 수 없고, 인간을 알지 못하는 한 선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따라서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간의 비참함을 알아야만 합니다.
루이스 베일리
1
경건 Class#1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에 대한 참된 지식이 있어야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본질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설명할 수 없는 분이시며, “가까이 가지 못할 빛”(딤전6:16)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이는 우리 인간의 연약한 능력으로 그분을 이해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이름
삼위 하나님 가운데 첫째, 인격은 “성부”라 불리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며(마3:17, 11:27). 또한 선택받은 자녀, 즉 은혜로서 자녀 된 이들의 아버지이십니다.(사63:16, 엡3:15). 둘째, 인격은 “성자”라 불리십니다. 성자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 낳으신 독생자이시며 본질상 아버지와 동등하십니다(잠30:4, 시2:7, 빌2:6, 히1:3). 성자는 또한 말씀이라 불리십니다. 셋째, 인격은 “성령”이라 불리십니다(사63:10, 고후13:14). 영이신 그분은 아버지와 아들의 숨결로부터 나오십니다(요20:21-22, 갈4:6). 성령은 거룩한 본성을 지닌 영이시며(벧전1:15-16) 선택받은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는 분이십니다(고후3:18, 살전5:23, 벧전1:2).
하나님의 순서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순서로 존재합니다. 성부는 영원하신 하나님 가운데 첫째 위격이십니다(마28:19; 요일5:7). 성부 하나님은 다른 존재에 의해 창조되지 않으시고 스스로 계십니다. 성자는 영광스러운 삼위 하나님 가운데 둘째 위격이시며 성부 하나님의 외아들이십니다. 성자는 은혜로써 아들로 인정 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본질상 성부와 동등하십니다.
또한 성자는 성부와 함께 성령을 보내십니다. 성령은 영원하신 삼위 하나님 가운데 셋째 위격입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숨결로부터 영원히 나오십니다(요15:26, 16:15). 성부가 성자를 낳으신다는 점에서 성부는 성자보다 앞서십니다. 또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는 점에서 성령은 성자 다음에 계십니다. 이러한 위격의 순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알려 줍니다.
첫째, 삼위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시는 지를 보여 줍니다. 성부는 성자와 성령을 통해 일하시고, 성부로부터 나신 성자는 성령을 통해 일하십니다. 또한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십니다.
둘째, 삼위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근원이 성부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성부는 삼위 하나님의 처음이시자 근원이시고, 모든 사역의 시작이시며 위격의 순서상 첫째이십니다. 따라서 성부는 신조의 고백대로 창조주라 불리십니다.
삼위 하나님의 행위
하나님의 행위는 외적 행위와 내적 행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외적 행위는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를, 내적 행위는 삼위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를 각각 말합니다.
외적행위
창조 사역은 성부 하나님과, 구원 사역은 성자 하나님과, 성화 사역은 성령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부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 하셨고 성령 안에서 아들을 통해 세상을 다스리십니다(롬11:36). 그러나 성자와 성령도 각각 창조 사역에 동참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외적 행위는 삼위 하나님 모두가 함께 하시는 사역을 말합니다.
내적 행위
삼위 하나님의 내적 행위는 외적 행위와 달리 각자에게 국한된 고유한 행위를 말합니다. 성자를 낳으시는 행위는 성부 하나님께만 속합니다. 성부 하나님은 창조되지 않으셨고 다른 존재로부터 나지도 않으셨습니다. 성자는 나신 바 된 존재이십니다. 성자는 만들어지거나 창조되지 않으셨으며 성부께로부터 나셔서 성부께 속하십니다. 성령은 성자와 성부로부터 나오십니다. 이는 오직 성령께만 해당되는 행위입니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 속하십니다.
삼위 하나님은 모두 동일한 본질을 지니고 계시므로 우리는 성부도, 성자도, 성령도 모두 하나님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삼위 하나님은 본질상 서로 다르지 않으시지만 그 행위에서는 서로 구별되십니다. 삼위 하나님은 서로 하나이신 동시에 각 위가 서로 구별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동일한 신성 안에 삼위로 계십니다. 삼위 안에 하나로, 하나 안에 삼위로 계십니다.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속성은 신성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이는 연약한 신성이 인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성경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속성을 이해함으로써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에는 명목상의 속성과 실제적 속성이 있습니다.
명목상의 속성
명목상의 속성은 “하나님의 본질과 관련된 속성”, “동일한 신성을 지니신 삼위 하나님과 관련된 속성”, “하나님의 고유한 사역과 관련된 속성” 등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질과 관련된 속성
명목상의 속성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첫 번째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출15:3)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영원한 존재이심을 의미합니다. 다른 존재의 경우 시작도 있고, 끝도 있지만 하나님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존재이십니다(사42:8; 시83:18). 하나님은 영원한 존재이실 뿐만 아니라 은혜로운 모든 약속을 정하신 때에 이루시며, 전에 없던 것을 창조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본질과 관련된 두 번째 이름은 “야훼”(Yahweh)입니다. 야훼는 여호와와 같은 어근을 가졌으며, “나는 존재한다.” 또는 “나는 존재할 것이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속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피조물은 일시적일 뿐 아니라 변합니다. 그 가운데 “나는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본질과 관련된 세 번째 이름은 “야”(Jah)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의 단축 형으로, 하나님의 모든 존재의 근원이시자 존재중의 존재로서 만유의 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이 이름은 특별히 하나님이 과거에 약속하신 대로 놀라운 구원이나 은혜를 베푸실 때 사용되었습니다(시68:19, 101:8, 106:1,48. 111:1, 112:1, 113:1,9. 115:17-18, 118:5,14. 125:4)
하나님의 본질과 관련된 네 번째 이름은 퀴리오스(κύριο)로, 신약성경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이름의 동사형인 “퀴로”(κύρω)와 “퀴레오”(κύρέω)는 “나는 존재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이름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고, 그분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또한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그분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 줍니다.
하나님의 본질과 관련된 다섯 번째 이름은 “데오스”(θεύς)입니다. 이는 “하나님”으로 번역되며, 신양성경에 600회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모든 피조물 가운데 열과 빛과 생명을 만드셨습니다. 스스로 빛이신 하나님은 피조물을 통해 자신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떠 올릴 때마다 그분의 선하심을 기억하며, 동시에 그분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이 얼마나 편한지를 알게 됩니다.
실제적 속성
절대적 속성
실제적 속성은 절대적 속성과 상대적 속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절대적 속성은 오직 하나님만이 소유하실 수 있는 속성입니다. 여기에는 단순성과 무한성이 있습니다.
단순성은 혼합, 구분, 우연, 증가, 부분 혼합 등의 개념을 배제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있는 그대로 존재하시며, 본질적으로 항상 동일합니다. 무한성은 시간이나 공간에 적용되는 측량, 한계, 제한 등의 개념을 배제 합니다. 이 두 가지 속성으로부터 또 다른 세 가지 절대적 속성이 나타납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편재성입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십니다. 그 분은 하늘과 땅, 모든 장소에 거하십니다. 그분이 계시지 않는 공간이나 장소는 없습니다(행7:48; 욥11:7-10;대하2:5-6; 시139:7-10;렘23: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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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 Class#2
타락한 인간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거듭나지 못한 모든 인간은 끝없는 비참함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과 거듭난 신자의 결국은 상극입니다.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은 때가 반드시 옵니다. 인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앎으로써 우리는 빨리 돌이킬 수 있습니다.
인간은 비참한 존재입니다. 그 끝없는 비참함을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잉태된 순간부터 저주 받은 존재로서, 잠간 동안 살다가 영원한 죽음에 처할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인간의 불행은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습니다.
본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아 낙원에 살도록 배려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물론 그들의 후손 모두 땅을 다스리며 불멸의 삶을 누리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한 나무의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는 금지 조항이 주어졌을 뿐입니다.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는 점을 깨우쳐 주기 위한 상징이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2:17)고 말씀 하셨습니다.
결국 그들은 교만함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반역을 저질렀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종이 되어 그분을 섬기는 일을 못 마땅하게 여기고 스스로 하나님과 동등한 신이 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 버렸고, 회개하지 않는 한 마귀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후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반역의 피를 이어받아 이 세상에서 저주받은 비참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다가올 세상에서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위해 예비 된 불 못에 던져질 운명에 처했습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이 저질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발아래에서 지옥이 그를 삼키려고 입을 크게 벌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에게 과연 어떤 안식과 위로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죄인인 인간에게 일어 날 수 있는 온갖 불행, 즉 비탄, 탄식, 질병, 불명예, 재난 등은 일일이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전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에 심지어 거듭난 신자라 할지라도 이성보다는 정욕에 이끌려 죄를 짓기가 쉽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영혼은 죄, 정욕, 더러움, 욕망, 시기심, 탐심, 술 취함, 복수심, 분노 등으로 왜곡되고 오염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리고 추한 마귀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습니다(요8:44). 하나님이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창6:6)하실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노년기에 이르면 오랜 질병으로 고통을 당합니다. 그처럼 극심한 고통을 견디다 보면 자연이 ‘어서 죽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해 자연이 가져다주는 운명의 순간을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은 하나님의 저주이자 지옥의 문입니다. 죽음의 문턱에 이른 노인의 얼굴을 본 적이 있습니까? 죽음은 인체의 주요 기관, 즉 오장육부와 사지를 강타하며 찾아오고, 인간으로 하여금 두려운 재판관이신 하나님 앞에 서게 만듭니다.
죽음이 찾아온 순간 침상에 누운 노인의 눈은 퀭하고, 식은땀이 전신에 흘러내리고, 사지가 달달 떨리고, 머리가 쑤시고, 얼굴이 창백하고, 코는 검게 되고, 아래턱이 축 처지고, 안건이 늘어지고, 말을 더듬고, 숨을 헐떡이고, 한 번씩 숨을 내 쉴 때마다 심근이 부서져 나갑니다. 그러는 동안 비참한 그의 영혼은 자신의 육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간은 죽은 뒤에 하나님의 법정에 섭니다. 하지만 죽기 이전에 이성이 재판관이 되어 스스로 저울질 해 봅니다. 그의 상상 속에는 마치 스가랴의 환상처럼 거대한 두루마리가 펼쳐집니다(슥5:2, 겔2:10). 그 두루마리 안에는 자신이 저질은 악한 행위와 선한 행위, 죄로 인한 저주와 심판이 기록되어 있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자신이 저질은 과거의 악행에 관한 기억을 애써 떨치려 해도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다시 떠올라 마음속에서 이렇게 소리를 지릅니다. ‘우리는 네가 저질은 죄들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너를 따라다닐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온통 어지럽고 불안한 가운데 배우자와 자녀와 친구들은 곁에 서서 빨리 유언을 남겨 재산을 분배하기를 재촉합니다. 개중에는 슬피 우는 사람도 있고 가엽게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쉬파리 떼 같은 탐욕스러운 마음을 감춘 사람도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죽음의 순간에는 마치 예전에는 즐거움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리고 영원히 끝이 없는 고통만 남습니다. 과거에 지은 죄를 후회한들 소용없고, 죽어가는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한탄한들 소용없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며 도움을 요청하지만 어디에서도 도움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절망스러워 단 한마디의 위로의 말이라도 듣고 싶어 하지만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눈을 향해 “눈아, 전에 그토록 무엇을 잘 봤던 눈아, 이제 나를 위해 자그마한 위안이라도 발견해 주려무나. 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주려무나!” 하고 부르짖습니다. 사는 동안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지 못했던 귀가 과연 죽어가는 순간에는 즐거운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요?
친구도 없고, 아무런 도움이나 위로도 받을 수 없는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본 영혼은 결국 자신이 곧 영원한 고통에 처하리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나는 이제 비참히 죽는구나. ‘사망의 물결이 나를 에우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삼하22:5) 하는구나. 이제 첫째 사망과 둘째 사망의 덫이 즉시 나를 낚아채버리겠구나. 마치 눈으로 태양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없듯이 사망이 오는 것을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한 채 아무런 감각도 없이 죽게 되었구나.
하지만 이것이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고통이라고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영혼을 소유한 인간으로서 나 자신이 잘못되고 있음을 느꼈고, 또 몇 번이나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제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무시하고 하나님보다 죄를 더 사랑했지. 결국 마지막에 내가 심판을 받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짧은 인생을 이렇게 헛되이 살아왔구나.
아! 여러 가지 악한 일들에 써버린 시간들을 성경읽기와 설교 듣기, 성찬 참여와 기도, 회개와 금식에 사용하여 내 영혼을 위해 준비했더라면 지금쯤 영원한 구원의 소망을 확신하며 기쁘게 떠날 수 있었을 텐데…. 인생을 다시 한 번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헛된 것을 경멸하고, 경건하고 순결한 삶을 살고, 교회에 자주 나가고, 주일을 성수하며 살 텐데…….
하지만 이제는 늦고 말았다. 부패한 시체와 썩은 고깃덩어리같은 비참한 나여, 그동안 마귀에게 속고 말았구나. 지옥의 사자들이 하나님의 법정에서 나를 끌어내려 영원한 고통과 어둠이 있는 끔찍한 감옥에 가둘 거야. 오늘밤 나는 어디에서 안식을 얻으며 누가 나의 친구가 될까? 이제 나는 내 육체와 작별을 고하게 되었구나, 이 얼마나 슬프고 비참한 운명의 시간인가!
인간의 영혼은 죽은 자의 몸에서 빠져나와 지옥사자의 손에 붙잡혀 끝이 보이지 않는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최후의 심판이 이를 때까지 죄인처럼 갇혀 있게 됩니다. 믿음이 없고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마치 이 세상이 천국인 양 자신의 배를 신으로 삼고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아갑니다. 결국 그들은 헛된 삶을 살아온 대가로 죽음의 순간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사후의 저주에서 벗어 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끝이 없는 깊은 구덩이에 빠져 전능하신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됩니다. 이것을 지옥의 저주라고 합니다.(눅8:28, 16:23; 살전1:10; 마23:33).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순간 즉시 저주가 임합니다(눅16:22-23; 벧전3:19; 유6-7). 인간의 영혼과 육체에 임하는 저주는 마지막 날 온전히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날에는 하늘과 땅의 재판관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죽은 자들이 지옥과 무덤에서 나와 그들의 악한 행위에 따라 두려운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벧후2:9; 유7절; 계11:18).
다른 한 편에서는 천사와 성도들이 서서 그리스도의 정의로운 판결에 갈채를 보내며 기뻐할 것이고, 또 다른 죄인들은 끝없이 늘어선 채 웅성거리며 각자 판결을 기다릴 것입니다. 죄인은 자신의 저주받은 상태를 알고서도 어디로 숨지 못합니다. 그는 다만 산들과 바위가 떨어져 내려 자신을 가려 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계6:16-17). 모든 죄인은 한 결 같이 다음과 같은 판결을 듣게 됩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
“그리스도를 믿어 죄의 용서를 받으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라, 는 설교자들의 말을 거부하고 회개하지 않은 것이 철천지한으로 남을 것입니다. 지옥에 처한 죄인은 하나님의 복되신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 안에는 영혼을 위한 행복과 즐거움, 생명이 가득한데 그는 빛도 보지 못한 채 영원한 어둠속에 살아갑니다. 지옥에는 징벌, 비참함, 슬픔, 고통만 있을 뿐 동정, 긍휼, 위로, 구원 같은 것은 없습니다. 땅위의 잔디나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날들 동안, 즉 수천수만 년 동안 고통을 당한다 할지라도 조금도 끝날 기색이 없습니다. 정죄 받은 모든 죄인은 이러한 사망의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과 성도들은 영원한 천국에서 더 없는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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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Class#3
거듭난 신자
그리스도의 은혜로 거듭난 신자에게는 셀 수 없이 많은 특권이 주어집니다. 그는 세상에서나, 죽는 순간에나, 사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립니다. 이처럼 소중한 구원을 , 알게 되면 세상의 허무하고 악한 유혹들을 물리치고 경ㄱ너의 연습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신자란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패한 본성이 바뀌어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는 세상에서나, 죽는 순간이나, 사후에도 축복받는 삶을 삽니다.
세상에서의 축복
신자는 성령으로 난 존재입니다(요3:5). 다시 말해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자”(요1:13)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가 되십니다(갈4:6-7; 고후9:8).
신자는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원죄와 자 범죄 및 그에 따르는 모든 죄 책과 징벌로부터(롬4:8, 25, 8:1-2; 벧전2:24) 아무런 대가없이 온전한 용서를 받습니다. 사탄의 속박에서 자유롭습니다(행16:18; 엡2:22). 하나님은 신자를 마치 아들처럼 아끼십니다. 모든 잘못을 다 보지 않으시고 신자의 연약함을 감안하십니다(출34:6-7). 죄를 짓더라도 징벌하지 않으시고, 다만 꾸짖어 바르게 하십니다(시103:10).
하나님은 신자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은 신자를 점진적으로 거룩하게 하십니다(살전5:23). 성령은 신자에게 그가 양자 된 것을 증거 하십니다. 이로 인해 신자는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롬8:16). 성령은 신자에게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주십니다(롬5:1, 14:17).
신자는 아담의 타락으로 상실했던 권리, 곧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리를 회복합니다(시8:6; 히2:7-8). 신자는 날마다 아버지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확신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금세와 내세에서 신자의 영혼과 육체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마6:32; 고후12:14; 시23편, 34:9-10). 그분은 적시에 신자를 어려움에서 구해 내십니다(시34:19).
죽는 순간의 축복
하나님은 거듭난 신자가 죽는 순간, 하늘나라에 이르는 길 중간에서 사랑과 애정으로 그를 맞이하십니다(빌3:20; 골3:2). 신자는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천사들을 비롯해 거듭난 장자들, 재판관이신 하나님, 완전케 된 영혼들,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게 됩니다(계14:13; 고후5:6; 요14:2; 히12:22). 신자는 축복받은 영혼을 지녔기 때문에 자연히 경건한 유언과 축복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육체와 결별할 때가 오면(욥14:5) 신자는 양심의 가책이 없이 평화로운 상태로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압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모든 죄가 어린 양의 피로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늙은 시므온처럼 “주재여 이제는 말씀 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눅2:29)라고 고백하며 조용히 자신의 영혼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 드립니다.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 하셨나이다.”(시31:5)라고 말한 다윗처럼, 또 “주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7:59)라고 말한 스데반처럼 자신의 영혼을 내어놓습니다.
사후의 축복
신자의 사후 세계는 세 단계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죽는 순간부터 부활의 날까지를, 둘째는 부활의 날부터 공로에 대한 심판 날까지를, 셋째는 공로에 대한 심판 날부터 영원까지를 각각 가리킵니다.
죽는 순간--부활의 날
거듭난 신자는 자신의 영혼을 그리스도께 드리는 순간, 천사들이 그의 영혼을 보호하여 하늘나라로 데려갑니다(눅16:22). 세상에서 온갖 불행과 죄인들만 봐왔던 신자의 영혼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다니, 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신자들의 영혼이 거룩한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 앞에 서는 순간,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와서 네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라”고 말씀하시며 반겨 주십니다.
하늘나라에서 머리에 영광의 면류관이 씌워지고, 몸에 찬란한 의의 옷이 입혀지고, 손에 승리의 종려나무가 들려지는 순간(계7:9), 신자가 느끼는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형용할 수 있겠습니까? 신자의 영혼은 이렇게 기쁘고 행복한 상태로 부활의 날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누립니다. 구원받은 자의 수가 다 채워지는 날, 영광의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부활의 날--공로에 대한 심판 날
심판의 날이 오면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첫째,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해체되고 뜨거운 불로 정화됩니다(벧후3:10, 12-13)
둘째, 마지막 나팔소리와 그리스도의 목소리에(이미 흙이 되어버린)성도들의 육체가 부활합니다. 부활의 날이 되면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눅21:18)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사실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셋째, 감옥에서 요셉이 나오고, 사자 굴에서 다니엘이 나오고, 큰 물고기 배속에서 요나가 나오듯(살전4:14; 단6:23)신자들이 무덤에서 멀쩡하게 나옵니다.
넷째, 선택받은 모든 신자의 육체가 다시 살아납니다.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말은 부활의 몸이 지니는 특징을 암시해 줍니다. “우리가 다……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 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다섯째, 부활한 몸은 네 가지 초자연적 특성을 갖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부활한 몸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주어진 몸이기 때문에 연약함이나 육체의 기본적 욕구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 부활의 몸은 쇠퇴하지 않습니다. ‧ 부활의 몸은 영광 중에 있기 때문에 태양과 같이 밝게 빛납니다(마13:43; 눅9:31). ‧ 부활의 몸은 원하는 곳으로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갑자기, 순식간에 찾아옵니다. 그날이 되면 신자들은 모두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뜨거운 불이 세상과 그에 속한 모든 부패한 것을 소멸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맷돌을 갈다가, 어떤 이들은 잠자리에 있다가, 어떤 이들은 들판을 걷다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것입니다(벧후3:10-12; 고전15:51; 눅17:31).
여섯째, 산 자와 죽은 자가 모두 다시 살아나 영화로운 몸을 입고 하나님의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세계 도처로부터 몰려들어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합니다(눅17:34-36; 살전4:17). 그리고 주님과 함께 비신자와 악한 천사들을 심판하는 자리에 섭니다(고전6:1,3)다시 말해 열두 사도는 그리스도의 보좌 옆에 있는 열두 보좌에 앉아 복음을 거부한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고, 성도들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질서 정연하게 그들 곁에 서서 함께 악한 천사들과 비신자들을 심판할 것입니다(고전6:2-3).
“보좌에 앉으신 어린양, 곧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왕과 제사장으로 만드시어 함께 영원히 다스리게 하신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4:11, 5:9,13 참조) 그 후 구원받은 신자들은 모두 순서대로 자리에 앉아 그리스도의 의로운 판결에 동의를 표함으로써 함께 비신자들과 악한 천사들을 심판할 것입니다(고전6:1-3; 마19:13-14). 그리스도께서는 비신자들에 대한 판결을 마치신 뒤 두 가지의 엄숙한 의식을 거행하실 것입니다. 그 의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선택받은 모든 신자를 아버지께 바치십니다.
“보시옵소서. 의로우신 아버지시여, 이들은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이들입니다. 제가 이들을 보전했으며, 이들 중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들을 아버지의 말씀으로 가르쳤고, 이들은 믿었나이다. 세상이 이들을 미워했나이다.…아버지여, 이제 이들이 저와 함께 있게 하시고,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영광을 보게 하시고, 제가 이들 안에 있고 이들이 제 안에 있게 하시어 완전한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것처럼 이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요17:12, 14, 22-24)
둘째,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신 후 중보자의 직임을 중단하십니다(고전15:24).
이러한 의식을 행하신 뒤 그리스도께서는 심판의 보좌에서 일어나시어 영광 중에 거하는 선택 받은 신자들과 천사들을 거느리시고 질서 있게 하늘나라로 올라가실 것입니다. 그 때 하늘에서는 즐거운 함성과 음악이 울려 퍼질 것입니다.
공로에 대한 심판의 날……영원
거듭난 신자가 하늘나라에서 누리는 축복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누구도 그 영원한 축복과 영광을 다 생각할 수 없고, 다 묘사할 수 없을 것입니다(고후4:17; 롬8:18). 영원한 기쁨의 나라에서 삼위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그 축복과 영광을 누가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사후에 신자가 누릴 영원한 하늘나라의 삶을 네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장소, 목적, 선택받은 신자의 특권, 그리고 그 특권의 결과입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의 삶 : 장소
신자가 영원한 삶을 누릴 장소는 하늘 중의 하늘, 곧 낙원이라고 불리는 셋째 하늘입니다(시19:5; 고후12:2). 성경은 하늘나라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계21:2)이라고 부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과 구원받은 그분의 백성, 곧 생명책에 기록된 이들만 거합니다(계21:24, 27). 이처럼 새 예루살렘은 지극히 영광스럽고, 풍요롭고 안락한 곳입니다. 그곳의 왕은 그리스도이시고, 그곳의 법은 사랑이시며, 그곳에는 지극한 영광과 지고한 평화와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의 삶 : 목적
하늘나라의 삶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하늘나라는 기쁨도 없고 행복도 없습니다. 구원받은 신자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충만한 기쁨을 누립니다. 그들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볼 뿐 아니라 그분의 신성에 참여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영혼이 지향하는 중심이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 그분을 즐거워할 때까지는 노아의 비둘기처럼 쉴 곳을 찾지 못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십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의 삶 : 신자의 특권
선택받은 신자는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는 덕분에 네 가지 특권을 갖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고(마25장; 벧전1:4)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의 시민이 됩니다(엡2:19; 히12:22). 둘째, 신자는 왕과 제사장이 됩니다(계5:10; 벧전2:9). 셋째, 정오의 태양보다 더 밝게 비취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처럼(빌3:21; 행12:7) 신자의 몸도 밝게 빛납니다(마13:43). 마지막으로, 신자는 모든 수고에서 벗어나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누립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의 삶 : 특권의 결과
이러한 신자의 특권으로부터 다섯 가지 결과가 구원받은 신자에게 나타납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됩니다(고전1:10). 우리는 성부의 권능과 성자의 지혜와 성령의 은혜를 깨닫고 삼위 하나님의 속성을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장차 하나님을 알게 되면 창조와 구속의 신비를 알게 될 것입니다. 둘째, 피조물의 능력으로 드릴 수 있는 가장 완전하고 절대적인 사랑을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셋째,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해 집니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11). 넷째,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지극히 아름다우신 모습을 뵈옵는 순간, 신자의 영혼은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없었던 선함과 아름다움, 영광과 완전함을 보게 됩니다. 다섯째, 복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영원히 살게 됩니다(요17:3).
영생이야말로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행복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복되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어린양 앞에서 기뻐 찬양하고, 성도와 천사들과 함께 “할렐루야”를 외칠 것입니다. 하늘나라에는 결코 늙지 않는 영원한 젊음과 쇠하지 않는 아름다움, 다함이 없는 사랑과 아픔이 없는 건강, 끝이 없는 생명만이 존재 합니다.
구원을 소중히 여기라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완전한 분이신지를 살펴보는 한편, 우리의 영원한 행복과 기쁨이 그분과의 교제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의 심장으로 권합니다. 구원받은 것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우리는 현재 저주받은 비참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영생과 축복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세상의 거짓되고 허무하고 악한 것들을 경계하고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 애쓰십시오.
4
경건 Class#4
경건의 연습을 방해하는
7가지 장애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축복이 큰 만큼 그것을 누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장애물의 위력 역시 강합니다. 우리는 경건의 연습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관해 미리 앎으로써 죄의 유혹에 대비해야 합니다.
경건의 연습을 방해하는 장애물에는 다음 7가지가 있습니다.
장애물 #1 : 성경 및 주요 교리에 대한 오해
자주 오해하는 성경 말씀들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정의와 공의로 행하여……그가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겔33:14-16).
육에 속한 사람은 이 말씀을 읽고 자신이 원할 때 언제든지 회개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죄인이 회개하면 하나님이 용서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구했으나 버린바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히12:17; 눅13:24,27). 그렇다면 아직 회개하지 않았거나 앞으로도 하나님께 회개의 은혜를 받을지 못 받을지 알 수 없는 이에게 이 성경 말씀이 대체 무슨 위로가 되겠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아주 불손하고 더러운 사람은 이 말씀을 읽고 자신이 원할 때면 언제든지 그리스도께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의의 도를 아는 자, 우리 주되신 구주 예수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자(벧후2:20-22)외에는 아무도 그리스도께 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 오는 것은 회개하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사1:18; 요6:35).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분의 은혜로 이끌지 않으시면 아무도 그리스도께 올수 없습니다(요6:44).
자주 오해하는 주요 교리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됨
육에 속한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만 외롭게 된다.”는 교리를 듣고 선행이 전혀 필요 없다고 결론짓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선을 행하라고 명하면서 자신은 그런 것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알아둘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선행이 비록 칭 의에는 필수가 아니지만 구원에는 필수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따라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만 한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이후 선행의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사실 영생을 얻도록 예정된 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롬2:6; 고후9:6; 계22:12). 그리스도께서 일곱 교회의 사자들에게 편지하실 때 그들의 행위와 수고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게2:2). 그분은 또한 마지막 날에 선을 행한 자들, 즉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던 자들에게만 천국의 유업을 주실 것이고, 그들은 그날 의의 면류관을 쓸 것입니다(마25장; 딤후4:8).
의 없이는 면류관도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받은 달란트에 따라 선을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합니다.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의 보상만 따를 뿐입니다(롬2:8). 선을 풍성히 행하는 것이야말로 영생을 얻기 위해 좋은 터를 쌓는 가장 확실한 것입니다(딤전6:19). 그분의 순종을 깨닫게 하는 참 믿음의 진정한 열매이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외에 다른 것은 아무 효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정 교리와 작정 교리
하나님의 영원하신 예정 교리와 그분의 변치 않으시는 작정 교리에 관해 들을 때 육에 속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이미 구원을 얻도록 예정되었다면 나는 어차피 구원을 받을 것이고, 지옥에 떨어지도록 예정 되었다면 무슨 짓을 하든 아무 소용이 없을 거야. 그러니까 경건한 행위를 해서 뭐하겠어?’ 그러나 여기에 알아 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뿐 아니라 수단까지도 예정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누군가를 구원을 얻도록(목적) 예정 하셨다면(벧전1:9) 그는 또한 먼저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 받도록(수단) 예정 되었다는 것입니다(롬8:29-30; 요15:16).
선을 행할 자유 의지의 부재
“사람에게는 선을 행할 자유 의지가 없다.”는 교리를 들을 때 육에 속한 사람은 마치 자신의 타락한 본성을 억제하거나 제압할 힘이 자기 안에 전혀 없는 듯 타락한 의지에 자신을 다 맡겨 버립니다. 그러나 그는 다음 두 가지의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즉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가 하려고만 했다면 얼마든지 죄를 범하지 않고 똑 바로 설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인간이 자신의 자유 의지를 남용하여 스스로는 물론 그 자유 의지마저 상실해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유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8:36).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습니다(고후3:17). 성령은 그들의 마음을 조명하사 진리를 알게 하시고, 마음을 변화시키시어 진리를 사랑하게 하시며, 각각 자기가 받은 은혜의 분량에 따라 사랑하는 그 선을 행하게 하십니다.
타락 이후 율법과 계명을 다 지킬 수 없음
“타락 이후 아무도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다 지킬 수 없다”는 교리를 들을 때 자연인은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도 죄를 짓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가 알아 둘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타락 이후 하나님이시자 인간이신 그리스도 외에는 누구도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킬 능력이 없지만, 그래도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중생하자마자 하나님의 모든 진리의 계명들을 지키기 시작한다는 사실입니다. 은혜의 성령이 그들로 하여금 명령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욜2:28-29; 슥12:10).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행위보다 마음을 중시함
“하나님은 사람이 겉으로 내보이는 행위보다 그의 마음속을 더 중시 하신다”는 말을 들을 때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외적으로 표현하는 모든 경외의 표시와 신앙고백은 미신 행위 내지는 쓸데없는 짓에 불과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서도 무릎을 꿇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또한 그들은 마음은 하나님께 드리지만 다른 것들은 세상 방식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반은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 반은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는데 시용합니다.
하나님은 진실 된 마음이 없이 겉으로만 섬기는 봉사를 외식이라 하여 혐오하시듯 겉으로 아무 경외의 표시도 나타내지 않은 채 그저 마음속으로만 봉사하는 것을 신성 모독으로 간주하십니다.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오직 하나님만 거룩하게 섬겨야 합니다.
복음 설교를 경시함
거듭나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복음 설교를 듣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즉 자기 마음대로 설교를 들을 수도 있고, 듣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택함 받은 양 떼 중 하나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 말씀을 신중하게 귀담아 들어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복음 설교는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모든 영혼을 회심시키는 하나님의 주요 수단입니다(행13:48). 그래서 성경은 복음을 가리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1:16)이라 부릅니다. 둘째, 복음 설교는 그리스도의 모든 정병과 택한 받은 백성이 그 아래 모이는 그리스도의 깃발(사11:10)입니다. 셋째, 복음 설교는 성령이 우리 심령 안에 믿음을 만들어 내시는 수단입니다(롬10:14).
성례전의 진정한 의미 상실
세례 및 성만찬과 같은 성례전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를 인치는 단순한 표시라는 견해는 경건의 연습을 방해하는 주요 장애물입니다. 성례전은 하나님의 약속의 은혜를 인치는 것인 동시에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순종과 봉사를 인치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봉사하지 않으면 성례전은 우리에게 어떤 은혜도 인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세례를 가리켜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딛3:5)이라고 칭하고, 성만찬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씀 합니다(고전10:16). 만일 이 진리를 믿는다면 주님의 거룩한 성만찬을 좀 더 자주, 그리고 보다 큰 경외심을 가지고 받을 것입니다.
악덕 숭배
미덕이라는 이름으로 악덕을 숭배하는 것은 경건을 넘어지게 하는 만만찮은 장애물입니다. 예를 들어 술에 취해 흥청망청 노는 것을 가리켜 건강을 축배 하는 것이라 부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는 것을 용맹이라 부르고, 폭음과 폭식을 손님 접대라 칭하고, 탐욕을 근검절약이라 칭하고, 간통을 애인 사랑으로, 성직 매매를 선물로, 교만을 기품 있는 행동으로, 진의를 숨기고 아첨하는 것을 찬사로 칭하며, 벨리알의 자녀들을 가리켜 착한 사람이라 부르고, 진노를 조급이라 부르고, 천한 농담을 가리켜 유쾌하고 즐거운 것이라 부르는 것 등입니다. 이처럼 악을 선이라 부르고, 선을 악이라 부르면 참 경건이 많은 방해를 받아 발전하지 못합니다.
장애물 #2 : 악한 본보기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가르치는 교훈보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유명 인사들의 생활을 더 선호합니다. 자기 나라에서 최고 지도급에 속하는 인사들이 복음 설교를 듣지 않고, 주일을 지키지 않고, 성만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물론 독설가이고, 간음자이고, 술이나 마시며 흥청거리는 자이고, 압제자일 경우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성례전을 지키는 것이 대수롭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 세상의 신이 그들의 영안을 멀게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들은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1:26)라는 성경 말씀을 이해했을 것입니다. 또 가난한 자들이 복음을 영접하기 쉽고, 부자는 구원받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마11:15, 19:23-2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아주 적다는 것, 수많은 사람이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 받지 못했다는 것(마22:14)을 배웠을 것입니다.
장애물 #3 : 세상에서 받을 형벌의 유보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전8:11).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며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롬2:4).
인생들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악용하여 더욱더 죄를 범합니다. 하지만 마침내 그 죄가 무르익으면 하나님이 즉시 공의를 행하사 죄인으로 하여금 종말을 고하게 하십니다(삼상3:12; 겔39:8). 이 때 하나님은 그 형벌을 아주 중하게 내리심으로써 그동안 늦추신 심판에 대해 변상하게 하실 것입니다. 사실 심판을 받지 않으리라‘는 그들의 생각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가장 중한 심판, 즉 회개할 수 없는 심령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롬2:5). 그러므로 하나님이 오래 참으신다고 해서 회개를 늦추는 일은 없도록 하십시오. 오히려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더 회개해야 합니다.
장애물 #4 :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시리라는 그릇된 가정
사람들은 자신들이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즉시 방패 뒤에 숨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자비로우시다”라는 방패 뒤에 숨어 그리스도를 자기 죄의 후원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마귀의 일을 멸하려 이 세상에 오신 것(요일3:8)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지지, 강화하기 위해 오시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그리스도께서는 자비로우시고 긍휼이 많으십니다. 그러나 오직 회개하고 야곱의 불의에서 돌아선 자에게만 자비로우십니다(사59:20). 만일 누구든지 스스로에게 “내가 내 마음이 완악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이 멸망 할지라도 내게는 평안이 있으리라”(신29:19)고 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주께서 자비를 베풀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린 한 강도는 구원해 주셨지만, 나머지 한 강도는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눅23:43).즉 아무도 절망하지 않게 하시려고 한 강도를 구원해 주시되, 아무도 주제넘은 생각을 하지 않게 하시려고 오직 한 강도만 구원하셨습니다. 이처럼 회개하는 죄인에게는 즐겁고 기쁜 구원의 확신이 주어지지만, 회개하지 않는 죄인에게는 어떤 위로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것(거룩한)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장애물 #5 : 악한 친구들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첫 번째 표시는 악한 친구들을 저버릴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악한 자들이란 곧 고의적으로 계속 죄 가운데 거하는 자, 그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수단을 경멸하는 자, 다른 사람들의 진지한 신앙고백을 조롱하는 자, 더러운 행실로 기독교 신앙을 욕되게 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아 있는 자들입니다.(시1:1).
어떤 사람이 정말 그리스도를 믿는지, 안 믿는지를 알고 싶다면 그가 사귀는 친구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며 더럽게 사는 친구들은 경건의 주된 적이자 거룩한 행실을 방해하는 요인입니다. 그들과 함께 어울려 술에 취해 놀거나 농담을 즐기는 것은 사실 우리 마음속에 들어가시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 하셔야 할 그리스도를 구유로 밀어 내는 것입니다(눅2:7). 이 세상 죄인들과 짝하느라 천국의 성도 및 천사들과의 사귐이 방해받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장애물 #6 : 경건의 연습은 고달프다는 거짓 두려움
경건의 연습이 고달프다는 것은 사실 정반대입니다. 신실하고 경건한 그리스도인보다 더 즐거운 사람은 없고, 그보다 더 기뻐할 이유를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순간, 즉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기 때문입니다(롬5:2). 이 은혜는 다음 세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첫째, 의로 이루어집니다(롬14:17). 둘째, 평강으로 이루어집니다. 셋째, 성령의 기쁨으로 이루어집니다.
인간의 마음을 시시때때로 괴롭히는 이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근심이지만, 경건한 사람의 경건한 근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고후7:10)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불법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에는 평강이 없다(사57:21)고 이사야는 말했습니다. 따라서 “경건의 연습은 고달프다”는 거짓된 두려움으로 인해 경건의 연습을 하지 않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장애물 #7 : 회개를 늦추는 것
사람이 모태에서 태어나 무덤에 이르기까지는 아무리 오래 살아봤자 사실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 합니다. “여인에게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욥14:1). 그나마 그 적은 날들조차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따라서 경건의 연습을 제외하고 말 한다면, 어제 세례를 받고 오늘 죽어 무덤에 묻힌 어린아이의 상태가 969년을 살다 죽은 므두셀라보다 훨씬 더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기의 산 날수가 적으므로 죄를 덜 지었고, 그만큼 슬픔도 적게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오래 살 것을 믿고 회개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인생은 사실 코를 통해 숨 쉬는 호흡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인생을 의지하지 마십시오(사2:22).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제외하고 나면 인간의 전 생애는 어릿광대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강대상으로 가는 하나님의 사람은 귀담아 듣기 바랍니다. 설교 할 때마다 그 설교가 교인들에게 하는 마지막 설교인 양 설교 하십시오.
사망이 얼마나 일찍 찾아올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즉 우리의 때는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확실히 장담할 수 없는 장수를 꿈꾸며 현재 경건의 연습을 하지 않는 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하나님이 오늘은 은혜를 주셨지만 내일은 기약할 수 없습니다(시95:7; 히3:7,13). 지옥에 가보십시오. 늙으면 회개 하겠다고 다짐했던 청년들이 수두룩합니다. 언제쯤 회개하겠다고 스스로 정한 때가 되기 전에 사망이 찾아와 그들을 이 땅에서 끊어 버렸습니다.
죄악 된 영혼이, 지금 젊고 힘 있고 건강하여 아직 팔팔할 때 하나님께 돌아 서십시오.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전12:1). 하나님께 돌아 서십시오. 한창 때는 사탄을 섬기다가 노망들어서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릴 생각입니까? 한창 때 원기 왕성한 몸을 가지고도 할 수 없었던 회개를 나이 들어 지친 몸으로 침대에 누워 함으로써 죄악 된 영혼을 하나님께 돌이킬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 일이 지금 어렵다면 그 때에는 훨씬 더 어려울 것입니다.
‘죽기 전에 회개하겠다.’ 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사망의 두려움 때문에 억지로 하는 회개는 가치가 없고, 따라서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 사라져 머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이가 들면 회개하겠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아무도 자기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구하지 않을 때 갑자기 주인 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망을 보내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오래 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영생을 간절히 사모하십시오(신30:16; 잠3:2; 시34:11). 인간의 인생은 일순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고후4:17). 진심으로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하려면,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 누리거나 영고아중에 그분과 함께 교제하고 싶다면 그 전에 먼저 막달라 마리아의 일곱 귀신처럼 지금까지 언급한 일곱 가지 장애물을 쫓아내야 할 것입니다(막16:9; 눅8:2).
결론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는 한 우리는 죄의 노예요, 사망의 그릇이요, 벌레에 지나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것들이 허망하고, 그 소위가 악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쾌락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 반면 우리가 누리게 될 비참함은 끝이 없습니다. 지혜로운 자라면 이런 지옥 같은 고통을 스스로 초래하지 않을 것입니다.
죄는 뱀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독을 품고 있는 가시가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알면 뱀을 보고 도망치듯 죄로부터 도망칠 것입니다. 죄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죄는 어떤 사람에게도 유익을 주지 않습니다. 둘째, 일찍이 우리에게 닥친 모든 악, 고난, 상실, 수치, 질명은 죄가 가져다 준 것입니다. 셋째, 만일 우리가 속히 회개하지 않으면, 그 결과 지금까지 우리에게 임했던 어떤 재앙보다도 더 큰 재앙, 상실, 고난, 수치가 임할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자들이 만들어 낸 형식적 종교에 만족하지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헌신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수다한 종교적 견해들 속에서(대부분이 잘못된 견해들입니다.)그리스도인 다운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행동할 뿐 극악무도한 사람들만큼 그렇게 악하지는 않아’하며 선한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천국을 갈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 하신 것보다 더 쉬운 지름길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마십시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쉽고 넓은 길이 아니라 좁고 험한 길입니다.(마7:14).
너무 좁아서 부자는 들어가기가 몹시 어려운 곳이요(마19:23). 그곳에 들어가는 자가 많지 않을 뿐 아니라(마7:14, 22:14).들어가려고 힘써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많습니다(눅13:24). 확실한 구원 받기를 원하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바르고 안전한 길로 가고 싶다면 지혜로운 처녀들처럼(마25:1)즉시 대화의 등잔에 경건의 기름을 치십시오. 그래서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사망으로 찾아오시든, 생명으로 찾아오시든 항상 그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 하고 계십시오.
5
하루를 경건하게
시작하기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루하루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태양이 그 빛을 환히 드러내는 아침 시간을 경건하게 보내는 것은 경건한 하루를 보내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침상 옆에 무릎을 꿇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가장 먼저 마음에 들어오시게 해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나님 보다 세상의 다른 생각이 먼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음의 문을 닫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가장 먼저 마음에 들어오시게 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악한 생각이 감히 우리 마음속에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설사 들어왔다 해도 쉽사리 쫓겨 나갈 것입니다.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온 종일 어렵지 않게 경건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침 묵상
일으키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은 오늘 아침 우리를 깊은 잠에서 깨우신 것처럼 부활의 때에도 우리를 쉽게 사망의 잠에서 일으키시어 무덤에서 나오게 하실 것입니다. 부활의 날이 밝아오면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사 그분의 성도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실 것이고, 그분처럼 영화롭게 된 수많은 성도의 몸이 태양처럼 밝게 빛날 것이며(살후1:10; 유14절; 빌3:21; 눅9:31) 모든 천사도 영광 중에 빛날 것입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잠시 어떤 이익이나 쾌락, 혹은 헛된 영광을 즐기다가 의인이 부활하는 그 날 받게 될 영원한 지복과 영광 중에서 자신의 분깃을 놓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눅14:14).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잠자고 있는 동안, 그래서 스스로 도율 수 없을 때 우는 사자처럼 밤낮으로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마귀가 얼마나 우리 가까이에 있는지 모릅니다. 만일 하나님이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늘 우리와 우리의 소유물에 울타리를 쳐 주시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분의 거룩하고 복된 천사들을 시키시어 우리를 보호해 주시지 않았다면 그 악한 마귀가 우리에게 어떤 해를 끼쳤을지 모릅니다(욥1:10; 시121:4; 창32:1-2; 왕하6:16).
깨우시는 하나님 닭 우는 소리를 듣거든 베드로와 그의 행위를 기억하기 바랍니다(눅22:61-62). 또 그것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우리를 깨워 일으킬 마지막 나팔소리로 생각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현재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생각하고, 만일 그 소리가 지금 울린다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싶은지, 그 모습이 되도록 열심을 다하십시오.
지켜보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침상 곁에서 우리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다 지켜보시고, 우리의 생각을 헤아리시며, 우리의 모든 길을 살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시139:2-3). 우리를 밤새 지켜보며 보호하는 거룩한 천사들 역시 우리가 깨고 일어나는 것을 다 지켜보고 있습니다(창31:55,32:1-2). 따라서 무슨 일을 하든 항상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하듯 하고, 그분의 거룩한 천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하듯 하십시오(시91:5,11;행12:11).
덮으시는 하나님 옷을 입을 때는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맨 처음 옷이 주어졌을 때는 죄의 결과인 수치를 가리기 위한 것이었고, 또 그것은 죽은 짐승의 껍질로 만들어진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자랑할 이유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 눈에는 아주 화려한 옷을 입고 있으면서, 하나님 보시기에는 벌거벗은 채로 걷는, 그래서 우리의 불결함이 모두 드러나 보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계16:15). 옷으로 몸의 수치를 가리고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듯, 그리스도의 의(성도의 의)라는 신부복으로 우리의 영혼을 가려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마22:11; 고정1:30; 빌3:9; 계19:8; 엡4:24).
긍휼이 여기시는 하나님 아침마다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그분의 긍휼을 나타내시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은 매일 아침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애3:23; 시19:5), 어김없이 태양을 떠오르게 하시어 새 빛을 주십니다. 태양빛이 헛되이 타오르지 않게 하십시오. 태양이 떠 오르기 전에 일어나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눅12:48), 침상 곁에 무릎을 꿇고, 조용히 새벽 인사를 드리십시오. 이 때 우리의 죄를 겸손히 고백하고, 용서해 달라고 간절히 구하고, 그 동안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리고, 하나님의 교회와 우리 자신과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은혜 가운데 보호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6
성경을 가까이 하기
기도를 드리려면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 영혼의 양식입니다. 따라서 아침에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한 장 읽으십시오. 단 한 장을 읽더라도 그 말씀을 깨닫고 삶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는 것은 경건한 삶의 지름길입니다.
영혼이 구원을 받으려면 먼저 믿어야 하듯이, 기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따라서 아침에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한 장 읽으십시오. 그리고 다음의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첫째, 선행과 거룩한 삶에 대한 충고나 훈계의 말씀이 무엇인지 묵상하십시오.
둘째, 여러 죄에 대해 어떤 심판이 있으리라고 말씀 하시는지, 여러 모양의 죄인들에게 하나님이 내리신 벌과 보복 중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묵상하십시오.
셋째, 인내, 정결, 자비, 긍휼,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것,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앙, 그와 같은 덕행들에 대해 하나님이 어떤 축복들을 약속하고 계신지 묵상하십시오.
넷째, 하나님이 그분의 참되고 열심 있는 종들을 어떻게 은혜롭게 구원해 주셨으며, 또 어떤 특별한 축복을 허락하셨는지 묵상하십시오.
다섯째, 읽은 내용을 마음속에 적용하십시오. 성경에 쓰인 것은 무엇이든 우리의 교훈을 위한 것입니다(롬15:4).
여섯째, 성경을 읽을 때는 하나님이 우리 곁에 서시어 “그곳에 기록된 덕행들을 사모하고, 악행들을 행하지 말라”고 직접 말씀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경외심을 갖고 읽으십시오. 성경을 한 장 읽고 묵상한 후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출26:36). 하나님은 친히 “너희는 거룩 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고 말씀하심으로써 그 점에 대해 우리에게 자주 경고하셨습니다.
아침 기도
영화롭고 전능하신 하나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큰 능력과 위엄을 갖고 계신 하나님, 하늘의 하늘도 그 영광을 감당할 수 없는 큰 영광의 하나님! 보잘 것 없는 이 종이 아버지의 은혜의 보좌의 발등상에 이렇게 엎드렸사오니 저를 굽어 살피소서!--저는 그 동안 불결하고 더러운 언행심사들로 아버지의 거룩한 계명들을 모두 어겼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버지를 섬기라고 말씀하시며 주신 그 모든 의무를 게을리 하고, 아버지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므로 하지 말라고 금하신 악을 많이 행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우리의 양심에 가장 무거운 짐이라 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죄들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오, 하나님, 제가 비통한 심령으로 이러이러한 죄를 고백합니다.’라고 말씀드림으로써 그 죄를 고백하십시오.)
오, 하나님, 하나님의 흠 없는 어린양의 피로 저의 죄를 말끔히 씻어 주실 뿐 아니라 성령으로 제 마음을 새롭게 하사 이 타락한 본성으로부터 정결케 해 주소서. 오, 선하신 하나님, 이 땅에서 사는 날 수를 제게 더하실 때마다 그와 함께 회개와 개선도 더 하사 제 연수가 많아짐에 따라 은혜 안에서 점점 더 자라갈 뿐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점점 더 사랑스러운 자가 되게 해주소서.
성령의 역사로 복음 설교와 성례전을 통해 저를 유효하게 부르사 구원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어 하나님의 복되신 뜻에 순종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저를 사시어 지옥의 고통과 사탄의 속박으로부터 구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간구 하옵나니 이처럼 제 육신을 잠에서 깨워주신 것처럼 제 영혼을 죄와 육적 안일로부터 깨워주소서. 선하신 하나님, 오늘 제 손으로 하게 될 모든 연구와 활동을 축복하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며, 아버지 앞에서 마지막 셈을 치러야 할 때 저의 영혼과 양심이 위로를 얻을 수 있게 해 주소서.
제가 살고 있는 이 나라와 교회들을 평강과 공의와 참 경건으로 계속 축복해 주소서. 이 나라의 지도자들과 그 가족들을 축복해 주시고, 자신들이 맡은 소임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부여하신 모든 은사와 영적 축복을 더해 주소서. 이 교회와 나라의 모든 지도자가 참 경건과 참 공의와 참 순종과 참 평정 속에서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소서.
복되신 구세주여, 속히 임하시어 죄로 가득 찬 이 날들이 끝나게 해 주소서. 제게 은혜를 베푸사 지혜로운 처녀들처럼 신랑 되신 주님이 오실 때, 그것이 사망의 날이든 심판의 날이든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제 등에 늘 기름을 넉넉히 준비하게 해 주소서.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대로 겸손히 엎드려 간절히 구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아멘.’“
아침 묵상을 위한 조언
아침 기도를 할 때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혹시 기도하려할 때 사탄이 기도가 너무 기니까 생략하라든지, 아니면 짤막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속삭이거든, 기도는 하나님이 매우 기뻐하시는 영적 제사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히13:15-16).
둘째, 성령이 택함 받지 못한 자들에 대해 말씀 하실 때 특별히 기도에 대해 언급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들이……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 도다……하나님을 부르지 아니 하는도다.”(시14:4, 53:4). 하나님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해야 할 의무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히 그 안에 성령의 은혜를 갖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가 그 안에 있으면 반드시 기도하기 마련입니다.
셋째, 고기가 먹기 싫고 말하기가 귀찮은 것은 몸이 아프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귀찮고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 하시는 것을 듣기가 귀찮다면 그것은 곧 우리의 영혼이 아프다는 증거입니다.
넷째, 죄를 용서 받기 위해, 또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깨어 있기 위해 밤잠도 거르며 철야기도에 힘썼던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열심 있는 경건을 기억하십시오. 다윗은 아침, 점심, 저녁에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시55:16-17) 자정에 일어나 하나님께 기도드리곤 했습니다.(시119:62).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있을 수 없더 냐”(마26:40)고 하시면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다섯째, 만일 가톨릭 신자들이 맹목적으로 미신을 믿듯, 신비주의적인 바벨론 자녀들에게나 어울리는(고전14:14; 창11:9; 계17:5), 알지 못하고, 전혀 교훈도 되지 못하는 말로 염주 알을 굴리며 성모송과 라틴어로 된 주기도문과 우상숭배적인 기도를 매일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되뇌인다면 마지막 심판 날, 그들이 일어나 그리스도의 참된 예배자로 자처하는 당신을 향해 무슨 대적의 말을 할지 생각해 보십시오.
간단한 아침 기도 #1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아무 가치 없는 종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합니다. 저는 죄 가운데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불법 가운데 살아 왔으며, 저의 언행심사로 아버지의 모든 계명을 어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해 흘리신 보혈과 그 쓰라린 죽음의 고통을 인해 간구 하옵나니,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제 죄로 인해 받아 마땅한 모든 수치와 보복으로부터 구해 주소서.
오, 선하신 하나님, 간구 하옵나니 오늘 하루도 저를 해하려는 모든 악한 세력으로부터 지켜 주시사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해 드리는 어떤 중한 죄도 짓지 않게 해 주소서. 제 마음속에 온종일 아버지의 위엄을 기억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제 마음을 다스리사 오늘 저의 모든 언행심사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며,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고, 저 자신의 양심이 평강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소서.
바쁠수록 기도하라
첫째, 해야 할 일이 많고 중요한 일일수록 그 일을 신속히 처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더욱더 간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둘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을 때 배반당했습니다.
셋째,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대문을 나섰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실, 즉 아침에 기분 좋고 활기차게 일어나서 나갔다가 밤이 되기 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넷째, 기도하는데 바친 시간은 우리의 여행이나 사업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번영케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다섯째, 이 세상으로 나갈 때는 미지의 위험으로 가득 찬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곳에는 우리의 선한 이름을 훼손시킬 가시나무라든지 우리의 생명을 노리는 덫과 올무, 우리의 영혼을 삼키려는 사냥꾼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간단한 아침 기도#2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 하옵나니 저의 언행심사로 아버지의 위엄을 거스르고 범한 모든 죄(알려진 죄와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죄)를 용서해 주소서. 그리고 그로 인해 제가 받아 마땅한 모든 심판으로부터 저를 구해 주소서. 오, 하나님 아버지, 지난밤 제게 충분한 수면과 휴식을 허락하사 이처럼 새 힘을 주신 것에 대해 아버지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양합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하오니 허락해 주소서. 복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며,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다음과 같은 기도로 제게 필요한 다른 모든 은혜도 내려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아멘.“
7
일평생 하나님과
동행하기
평생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스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경건한 삶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루를 기도로 시작한 후에는 하루 종일 자신의 언행심사를 지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이 대는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규칙을 염두에 두면 좀 수월할 것입니다.
생각 다스리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어떤 악이든 악한 생각이 떠오를 때 아예 억눌러버리십시오. 죄는 마음에 주리를 틀고 앉기 전에 쫓아내야 합니다. 죄를 습관적으로 범할 경우 양심이 마비되어 점점 더 뻔뻔스러운 죄인이 되고, 결국에는 아무도 존중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보다 의미 있는 일을 생각하라 스스로 할 수 없는 일, 또 설사 가능한 일일지라도 아무 유익도 없는 것들을 쓸데없이 공상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오히려 결국에는 정죄 받을 세상의 허망함과 반드시 찾아올 사망과 피해야 할 심판 및 지옥과 간절히 사모해야할 천국에 대해 생각하십시오.
욕망을 부인하라 만일 우리가 우리의 욕망에 따라 그 모든 것을 얻는다면 사람들은 우리가 고백하는 기독교 신앙을 경멸하거나, 또는 우리를 증오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있어서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먼저 결국을 생각하고 행동 하십시오.
자신의 비참함과 하나님의 긍휼을 묵상하라 불신앙과 자기 사랑, 하나님의 법을 고의로 어기는 것 등으로 인한 스스로의 비참함을 날마다 좀 더 많이 보려고 노력하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의 고난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긍휼이 얼마나 절대적으로 필요한지 깨달으려고 노력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참된 종임을 증명하라 영혼의 구원을 소중히 여겨 어떤 죄도 고의적으로, 습관적으로 짓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전을 자주 활용하는 것 등의 일반적인 부르심 뿐 아니라 모든 알려진 죄를 단호히 피하는 것 등의 특별한 부르심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의 참된 종임을 증명하십시오. 왜냐하면 참 믿음과 죄짓는 것은 결코 병행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기에 영합하지 말라 사람들에게 아첨함으로써 인기를 얻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 결국이 결코 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롭게 잘 처신하여 인기가 오히려 경멸보다 더 위험한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유명해 지기 보다는 유능한 자가 되고자 애쓰십시오. 진실로 하나님과 스스로를 알 수 있도록 이 땅에 사는 동안 세상에서 가장 적게 알려진 자가 실은 가장 행복한 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라 이 세상 것들에 대해서는 의무상 반드시 해야 할 것 외에는 더 이상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늘나라에 속한 것들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신경을 쓰십시오. 우리가 이 땅에서 인내하면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그분의 공의를 나타내실 것입니다.
겸손하며 늘 조심하라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훌륭한 행위를 보고 칭찬하면 할수록 더욱 겸손해져야 합니다. 사람들의 헛된 칭찬을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다만 올바르게 처신하십시오.
작은 죄에도 애통하라 어떤 죄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가장 작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바로 그 가장 작은 죄로 인해 우리는 정죄를 받았을 것입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경건하게 살라 이생의 짧음과 반드시 죽을 목숨에 대해 자주 생각하며 오래 살기 보다는 선한 삶을 살고자 애쓰십시오. 오직 오늘 하루만 우리의 날로 간주하고 마치 오늘이 마지막 날인 양 그렇게 경건하게 사십시오.
말 다스리기
말에 책임을 지라 우리가 한 모든 무익한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과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말이 많으면 실수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되도록 말을 조금만 하되, 우리가 하려는 말이 상대방에게 과연 합당한지 먼저 생각한 후에 하십시오. 참말이라고 생각되는 말만 하고 그 이상은 하지 말며, 해가 되는 말이나 무익한 말을 하려면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낫습니다.
정직한 말만 하라 마음으로는 항상 정직하고 진실한 것만 생각하고, 혀로는 항상 정직하고 진실한 말만 하십시오. 만일 다른 사람 가운데 속임수나 거짓이 있으면 그것을 미워하되, 혹시 우리 안에서 발견된 경우 그것을 혐오하고 증오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로 인해 우리를 싫어하실 것입니다.
순결하고 진실 되게 말하라 음식물을 모든 독으로부터 보존하듯 우리의 말 또한 모든 불결함으로부터 깨끗이 보존해야 합니다. 말을 해도 은혜롭고 고르게 하고, 신앙에 대해 말할 때는 항상 더 진실하게 말하십시오.
비밀을 지키라 다른 사람의 말을 다 믿지 말고, 또한 그 말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진실한 친구를 오래 사귀지 못할 것입니다. 뜻밖에 일어날 어려움을 생각해 다음 두 가지를 명심하는 게 좋습니다.
첫째,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알고 지내더라도 그 중에서 진실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친한 친구로 삼지 마십시오.
둘째, 친구 앞에서 비밀이 보장되지 않는 한 자신의 안전이 위협 받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만일 우정이 하나님을 믿는 참 신앙 외에 다른 어떤 것에 근거하고 있다면, 그 기초가 무너질 경우 우정도 무너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 안에서 웃어라 만일 웃고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 다음 세 가지에 특별히 유의하십시오(빌4:4; 잠23:17). 첫째, 우리의 유쾌한 웃음이 참된 신앙에 반(反)하는 웃음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둘째, 사랑에 반(反)하는 즐거움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셋째, 오직 여호와 안에서 웃어야 합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말라 원수가 넘어지는 것을 보고 기뻐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특한 자가 벌 받는 것을 보고 기뻐하기보다는 그가 잘못을 고치는 것을 보고 더 기뻐하십시오. 아무도 미워하지 마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와 비교할 때 우리의 용서는 아주 보잘것없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원수를 용서해야 합니다.
담대히 진리를 말하라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아첨의 말이 결국에는 진실이 아님이 드러나듯, 진리의 말 역시 결국에는 진실임이 드러날 것입니다.
비난을 받아들이라 우리의 결점에 대해 은밀히, 그러나 아주 분명하게 말해 주는 사람을 진실한 친구로 여기십시오. 훈계가 필요할 때 훈계해 주는 이가 아무도 없는 사람처럼 비참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것이 정당하든 부당하든, 또 친구의 입을 통해 오든, 원수의 입을 통해 오든 비난이나 힐책은 지혜로운 사람을 절대 해치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존전에서 말하라 하나님에 대해 말할 때는 두려움과 경외심을 가지고 말하되 하나님의 존전에서, 하나님이 보고 들으시는 가운데 말하듯 하십시오(신28:58). 우리는 감히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입에 담을 가치조차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신실하게 말하라 다른 사람을 칭찬할 때는 조심해서 하고(벧전5:12), 인사할 때는 공손하게(롬12:10), 훈계할 때는 부드럽게(살전5:26; 살후3:5; 레19:17), 용서할 대는 자비롭게, 약속할 때는 신실하게(시15:4) 하십시오.
행동 다스리기
선을 행하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은 절대 놓치지 말고 행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일이라는(삼상30:8)사실을 확신하기 전에는(그것이 우리의 부르심에 해당되는 일이든, 해당되지 않는 일이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은밀한 죄를 두려워하라 악한 일을 하려는 유혹에 빠질 경우 사탄이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노예처럼 사탄의 천한 도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요셉처럼 비록 아무도 보는 이가 없을 지라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창39:9,11이하).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라 선을 행할 때 비록 선을 행할 수단이 부족하거나 미약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삿7:7).부르심에 합당한 모든 노력과 수고는 하나님이 그분의 자녀들에게 외적인 것들을 축복하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일반적 수단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그 방편위에 그분의 축복이 임하도록 기도하십시오.
원수를 두려워하지 말라 모든 선한 것을 사랑하되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친구이신 동안에는 원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시118:6-7; 롬8:31; 잠, 16:7). 하나님이 원수로 하여금 우리의 친구가 되게 하시든지, 아니면 우리를 해치지 못하도록 그를 억제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창3:3이하 31:7).
합당하게 존중하라 모든 사람을 존중하되 그 위치에 합당한 예우에 따라 존중해야 합니다. 그의 위대함 보다는 그의 선함을 더 존중하십시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축복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의 증거로, 경건한 삶에 박차를 가하라는 격려로 간주하면 됩니다.
영적 은사를 자랑하지 말라 세상의 외적인 것들에 대해서나 내적으로 받은 영적 은사에 대해 자랑하지 마십시오. 즉 세상의 외적인 것들의 경우 그것이 최근 우리를 찾아왔듯 얼마 안 있어 우리를 떠날 것이기 때문이요(따라서 그것들을 잃어 버렸다고 해서 너무 슬퍼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적으로 받은 영적 은사의 경우 하나님이 그것을 우리에게 주셨듯 그것을 취해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사람을 본 받으라 우리 보다 훌륭한 사람들에게 복종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을 잘 관찰하고, 정직한 사람들과 함께 다니고, 경건한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위선에 빠지기 쉽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종교적 의식이나 예배를 드릴 때 더 거룩하고 경건해 지겠다는 마음이 없이 습관적으로나 형식적으로 드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다스리라 아랫사람들을 두려움과 협박으로 다스리지 말고 사랑으로 다스리도록 애쓰십시오. 사랑으로 다스리는 것은 쉽고 안전하지만 횡포로 다스리는 것은 항상 공포와 염려를 자아냅니다. 그리스도인인 그들은 우리의 종이 아니라, 주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인 것입니다(몬16절; 고전9:5). 따라서 우리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그들을 사랑과 긍휼로 다스려야 합니다.
공의를 바로 집행하라 공의를 바로 집행하는 것보다 이 땅의 주관자를 더 하나님의 대리인답게 만드는 일은 없습니다. 따라서 다음의 내용들을 마땅히 행해야 합니다.
첫째, 부당한 처사에 대한 공정한 불평들에 대해 항상 귀를 여십시오. 둘째, 한쪽 귀로는 비난하는 자의 소리를 듣고, 나머지 한쪽 귀로는 비난받는 자의 소리를 들으십시오. 쌍방을 다 듣기 전에 어느 한 쪽을 위해 법령을 정하면, 설사 그 법이 공의롭다 할지라도 그 자신은 공의롭다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쌍방의 말을 들을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편을 두둔하지 말고, 자신이 싫어하는 편을 부당하게 대우하지 마십시오. 넷째, 가장 미천한 자에게 공의를 부인하지 마십시오. 불공평을 균등케 하는 재판을 해야 합니다.
오락을 일삼지 말라 이 땅에서 아무리 오랫동안 쾌락을 즐긴다 해도 그것은 순간에 지나지 않지만, 그로인해 얻게 되는 고통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할 일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으며, 또 이미 지나간 많은 세월동안 얼마나 게을리 일해 왔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게다가 주인 되신 그리스도께서 오늘 우리를 부르시어 계산하자고 하시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약5:9). 그러므로 허송세월 하는 것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상실 중에 하나로 여겨(엡5:16)세월을 아끼고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8
하루를 경건하게
마무리하기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자물쇠와 열쇠로 삼으십시오. 매일 아침마다 열쇠로 마음 문을 열고, 저녁마다 자물쇠로 마음 문을 잠그십시오. 하루를 하나님께 대한 예배로 시작해서 주께서 기뻐하시는 가운데 마무리 하십시오.
저녁 묵상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쉬는 시간인 저녁에는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우리에게 주어진 날 수에서(시90편; 욥14:5) 하루가 또 지나갔으며, 그만큼 마지막 날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둘째,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잠시 앉아 하루 동안 보고 듣고 읽은 것 중에 혹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중요하고 인상적인 것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셋째, 스스로의 연약함이나 강한 유혹에 못 이겨 어떤 중한 죄나 잘못을 범했다고 생각되거든 무릎을 꿇고 잘못을 고백하며 간절히 용서를 구하십시오.
넷째, 혹시 누군가와 다투어 사이가 나빠졌다면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엡4:26) 양심에 따라 행동하십시오. 설사 상대방이 잘못했다 해도 먼저 화해를 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섯째, 육신이 푹 처지도록 지나치게 잠을 자지 말고, 곤한 지체와 감각들이 충분한 휴식을 얻고 새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적절한 수면을 취하십시오.
여섯째, 많은 사람들이 잠자리에 든 후 무서운 마지막 나팔 소리를 듣고 깨어 날 때까지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기도 하는 가운데 잠자리에 들고 기도로 깨어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깨어 날 것입니다.
저녁 기도
“항상 곁에 계시며 제가 눕고 일어나는 모든 것을 지켜보시는 하나님 아버지, 진리 가운데 행하며 진심으로 아버지를 찾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하시는 자비롭고 사랑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이 악한 죄인이 간구하오니 제 모습 이대로 보지 마시고 긍휼이 여기는 눈길로 보시옵소서.…하나님 아버지, 그동안 아버지의 모든 계명과 의로운 율례를 어기되, 단순한 태만과 허약함 때문만이 아니라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어겼습니다.
아버지, 참으로 애통할 일이지만 저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깃드는 생각과 상상들은 모두 악한 것뿐이요, 제가 범한 죄는 제 머리카락 수보다 더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죄가 끔직한 문둥병처럼 무럭무럭 자라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어느 한 군데도 성한 곳이 없을 지경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죄를 짓는 것이 습관화 되어 이제는 죄의식조차 느끼지 않을 정도입니다. 제 마음이 얼마나 강퍅하고 둔해졌는지,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말씀을 신실하게 가르치는 설교자들을 통해 제 죄를 규탄하시며 심판을 선포 하시는데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아버지께 돌아가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해 흘리신 보혈을 기억하사 제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항상 흐르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샘을 제게 열어 주소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택함 받은 모든 백성에게 이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해 주겠노라고 약속하신 그 성령을 제게도 허락해 주소서. 또한 동일하신 성령을 통해 제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저의 타락한 본성을 치료하사 거룩하게 만드시며, 저의 영육을 성별하여 주소서. 오, 하나님 아버지, 간구 하옵나니 성령이 제안에 역사하심으로써 제가 진실로 회개하게 해 주시옵소서.
여호와 하나님, 그동안 이생과 내생을 위해 저의 영육 간에 필요한 모든 축복과 은혜를 그토록 풍성히 부어주신 것에 대해 마땅히 드려야 할 감사를 드립니다. 저를 창조하사 주의 백성으로 택하시고, 저를 불러 구원하사 외롭다 칭하시고 성화시켜 주시며, 어릴 때부터 이날 이때에 이르기까지 보호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제가 영화롭게 될 것에 대해 이처럼 확실한 소망을 주시니 감사드리며, 아울러 그동안 제게 허락하신 건강과 부요와 식량과 의복과 번영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영육간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저를 보호해 주시고 제게 필요한 모든 것을 선한 것으로 채워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저녁 묵상을 위한 조언
기도를 드린 뒤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마음으로 일어나 옷을 벗으며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묵상하십시오.
첫째, 지금 이렇게 옷을 벗듯이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벗어야만 한다는 사실, 그 때까지 청지기로서 잠시 그 모든 것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 그 날이 오면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계산해야 한다는 사실(눅16:2), 따라서 청지기로 지내는 동안 지혜롭고 신실하게 살아야만 한다는 사실(마24:45)을 기억하십시오.
둘째, 자신의 침상을 바라볼 때 자신의 무덤을 생각하십시오(욥17:13). 그것은 지금 그리스도의 침상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무덤에서 사흘 동안 누워 계심으로써(마12:40) 부활의 아침이 올 때까지 그분의 성도들이 거기서 잠자며 쉴 수 있도록 무덤을 거룩하고 따뜻한 침상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살전4:13).
따라서 그 이부자리는 앞으로 우리를 덮을 이 땅의 흙이요, 침대 시트는 시체를 쌀 천이요, 수면은 사망이요, 아침에 깨는 것은 부활이라 생각하고 잠자리에 누워 졸음이 오면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시4:8)라고 말하며 잠드십시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자물쇠와 열쇠로 삼아 매일 아침마다 열쇠로 마음 문을 열고, 매일 저녁마다 자물쇠로 마음 문을 잠그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