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쌀가게처럼요, 종류별로 커피를 갖다 놓고 그냥 커피를 볶아 파는 건데요, 사람들한테는 우리 가게가 특이한가봐요.” 서강대 후문 쪽, 철물점이나 자전거 가게, 또는 중국집이나 들어서 있을 것 같은 그런 거리에 빈스 서울은 쌀가게처럼 문을 열었다. 첫 대면에 말을 아끼던 주인장은, 두 번째 만남에서는 느릿느릿 편안하게 말을 이어간다. 유럽의 골목마다 있는 수제 초콜릿 가게나 치즈 가게처럼, 일본의 동네 곳곳에 있는 커피콩 가게처럼, 그도 동네에 커피콩집을 열었다.
글·허경택(상지영서대 교수) | 에디터·김주현 | 사진·고지영 | 디자인·조유숙
나는 되도록이면 시간을 할애하여 맛있는 커피를 내리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보러 다니기를 좋아한다. 맛있는 커피란 생두의 품질, 로스팅 방법, 원두의 품질 관리, 그리고 추출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수를 만족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중에서도 나는 생두의 로스팅에 관해서 특히 관심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커피 로스팅은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학교 실험실에 소형 후지로열 배전기(용량 500g)를 들여놓고 또 올해는 비교적 용량이 큰 배전기(5kg)를 구입할 예정이라 최근 관심이 부쩍 높아지면서 가끔 실험실에서 400g 단위로 생두를 로스팅하고 있다.
커피 맛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로스팅을 생각해보면 로스터의 용량과 기종을 우선 고려하게 된다. 외국의 잡지와 국내의 유명한 자가 배전점을 보면 일반적으로 3~5kg의 일본 또는 독일 기종의 반열풍식 또는 직화식 배전기를 사용하는 숍이 대부분이다. 배전 전문가들은 커피를 마실 때 입 안에서 느끼는 무게감을 주기 위해서 이 정도의 용량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한다.
한편으로는 한 번에 로스팅할 수 있는 용량과도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다. 5kg이라면 4kg 정도는 한 번에 로스팅할 수 있으니 하루에 로스팅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을 생각한다면 적절한 용량이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이런 면에서 일본 도쿄의 ‘다이보’와 이번에 가본 ‘빈스 서울’은 좀 특이했다. 우선 2004년에 가본 ‘다이보’는 커피 경력 32년임에도 용량 1kg의 수동식 배전기를 하루 6~8회, 가스 직화식으로 배전하고 있었다. 이유는 풀 시티와 프렌치 배전 사이의 미묘한 맛의 변화와 차이는 수동배전을 해야만 그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 배전하는 데 30분이 걸린다니 맛있는 커피 한 잔을 얻기 위하여 쏟는 그의 정성과 인내심은 대단하다. 즉석에서 로스팅해주는 서울 변두리의 커피콩 가게 얼마 전 지인에게 소개받은 커피 로스팅 전문점 ‘빈스 서울’. 서울 압구정동의 ‘허형만의 커피 볶는 집’을 가 본 이후로는 국내에서 로스팅만을 전문으로 하는 숍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차가운 겨울 날씨에 외투 깃을 세우고 찾아갔다. 지하철 6호선 대흥역 2번 출구로 나와 150m쯤 가면 60년대 서울 변두리에서 자주 보던 복덕방만 한 규모의 작은 가게를 발견하게 된다. 좁은 가게 안에는 생두를 원산지별로 또는 블렌딩하여 진열해놓고 거기에 배전한 원두의 가격을 표시해놓았다. 전화로 이미 인사를 나눴는데 목소리처럼 수수한 옷차림의 주인이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신분을 밝히고 인사를 건넸다. 여기서는 손님이 찾아와 주문하면 그 즉석에서 커피콩을 볶아주며 인터넷상으로는 판매하지 않는단다. 커피는 식품이기 때문에 인터넷상의 커피원두란 공산품 이미지가 있어서 꺼림칙하다는 이유였다.
나는 주인이 드립해준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 배전을 주문했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만델링, 그리고 하우스 브랜드인 ‘카리브 브랜드’, 거기다 일본에서 직접 생두를 구매해서 가져왔다고 하는 ‘블루마운틴 NO.1’이 있다고 하기에 그것도 부탁했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 사이, 주인이 휘장이 처진 안쪽으로 들어가자 곧 실린더에서 생두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휘장 저쪽에 들어가본다는 것은 좀 실례라는 생각도 들고 해서 망설이고 있자, 마침 주인과 잘 아는 분이 와서 보라고 권해서 나도 휘장을 제치고 들어갔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2대의 배전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용량이 600g이라지만 배전기의 크기는 오히려 내가 실험실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보다 작았다. 사각으로 된 철판 안에 벌집처럼 구멍이 나 있는 실린더 안에서 생두가 로스팅되는 직화식 배전기였다.
로스팅하면서 주인은 일본 요코하마에서 수년간 사진 공부를 하던 중 평소 커피를 좋아해 단골 커피집이 있었다는 것과, 한국에 돌아와서 사진 일을 하다가 커피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예전에 사귀어둔 일본의 단골 커피집 사장에게 부탁하여 배전과 블렌딩 기술을 익히게 되었다는 것, 지금 본인이 사용하고 있는 배전기도 그 사장이 직접 제작한 것이며, 생두는 블루마운틴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내에서 구입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03년 11월에 가게를 오픈해서 아직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했지만 내가 그곳에 머문 2시간 남짓 동안 세 사람이 다녀간 것을 보면 단골 고객을 확보해가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일도 하며 커피를 하기 위해서는 카페를 여는 것보다는 배전을 전문으로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세 종류의 원두 200g씩을 소중히 들고서 가게를 나왔다.
원주로 들고 와 내려 마신 블루마운틴 커피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커피 이론서에서만 봤던 그대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커피의 균형 잡힌 맛이 그대로 재현된 블루마운틴이었다. 이 커피를 좋아하는 동료 교수 두 분과 함께 시음함으로써 나의 시음 결과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커피란 결국 음식의 하나이므로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최상의 식품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기계의 성능도 성능이지만 기계를 다루는 것은 사람이니 결국 사람의 손에 달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알아둘 사항]
찾아가는 길 : 지하철 6호선 대흥역 2번 출구로 나와 150m 거리. 메뉴 : 코스타리카 스프링밸리 마운틴 2만2천원, 빈스 서울 블렌드 1만8천원, 블루마운틴 No1 6만원 영업시간 : 오전 9~오후 8시(매주 일요일 휴무) 문의 02-706-7022 / www.bean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