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산성
황석산성
산성
거북바위
곰 두마리가
고스락을 넘어간다^^
돌고래 한마리도
황석산 지킴이~!
황석산 지킴이^^
아름다운 황석산
황석산성 지킴이~!
石築
남문아래 피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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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산성(黃石山城) 경상남도 사적 제322호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서하면과 안의면의 경계인 황석산[1,190m] 정상에서 좌,우로 뻗은 능선을 따라 계곡을 감싸듯 쌓은 포곡식산성(包谷式山城)이다. 성벽은 돌로 쌓은 부분과 흙과 돌을 석어쌓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체 길이는 2,750m, 높이는 3m 정도이다. 성문은 동, 서, 남, 북동쪽에 작지만 문루(門樓)를 갖추고 있다. 성안 동쪽의 계곡 주변에서는 크고 작은 건물 터가 확인되고 있다. 현재 면적은 446,186평방미터 정도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내용과 대제로 일치하고 있다. 영호남의 관문으로서 전북 장수와 진안으로 통하는 요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곡산성의 구조로 보아 가야를 멸망시킨 신라가 백제와 대결하기 위해 쌓았던 것 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 1597년(선조30년) 정유재란때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은 인근 주민을 동원하여 황석산성을 지키도록하였고, 왜군의 장수 모리 데루모도(毛利0元),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가 이끄는 주력부대 75,000여명의왜군 전투병력을 맞아, 함양, 안음, 거창, 합천 등 3,500여명의 관군과 주민이 1597년 8월16일부터 18일까지2박3일간, 20배가 넘는 왜군 전투병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조방장(助防將) 백사림(白士霖)이 성을 버리고 도망을가버리고, 왜군이 난입하여 황석산성 수성장이였던 충열공 곽준(郭俊)안음현감(安陰縣監), 충의공 조종도(趙宗道)함양군수, 충의지사 유명개, 류강, 정대익 등은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였다. 성이 함락되자 수많은 아녀자들이 바위에 몸을던져 순국하였던 바위가 지금도 당시의 처참한 모습을 연상케하는 피바위로 남아있고, 당시 전투 중 500여명이 순국하였다고 기록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