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사람에게 / 문정희
사람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그리워한다
사람, 너는 누구냐
밤하늘 가득 기어나온 별들의 체온에
추운 몸을 기댄다
한 이름을 부른다
일찍이 광기와 불운을 사랑한 죄로
나 시인이 되었지만
내가 당도해야 할 허공은 어디인가
허공을 뚫어 문 하나를 내고 싶다
어느 곳도 완벽한 곳은 없었지만
문이 없는 곳 또한 없었다
사람, 너는 누구냐
나의 사랑, 나의 사막이여
온몸의 혈맥을 짜서 시를 쓴다
사람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그리워한다
별처럼 내밀한 촉감으로
숨 쉬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 나는 아름다우냐
나는 나쁜 시인인가 봐 / 문정희
나는 아무래도 나쁜 시인인가 봐.
민중 시인 K는 유럽을 돌며
분수와 조각과 성벽 앞에서
귀족에게 착취당한 노동을 생각하며
피 끓는 분노를 느꼈다고 하는데
고백컨데
나는 유럽을 돌며
내내 사랑만을 생각했어
목숨의 아름다움과 허무
시간 속의 모든 사랑의 가변에
목이 메었어.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눈물을 흘렸지.
아름다운 조각과 분수와 성벽을 바라보며
오래 그 속에 빠지고만 싶었지.
나는 아무래도 나쁜 시인인가 봐.
곤도라를 젓는 사내에게 홀딱 빠져
밤새도록 그를 조각 속에 가두려고
몸을 떨었어.
중세의 부패한 귀족이 남긴
유적에 숨이 막혔어.
그 아름다움 속에
죽고 싶었어.
알몸 노래 / 문정희
추운 겨울날에도
식지 않고 잘 도는 내 피만큼만
내가 따듯한 사람이었으면
내 살만큼만 내가 부드러운 사람이었으면
내 뼈만큼만 내가 곧고 단단한 사람이었으면
그러면 이제 아름다운 어른 으로
저 살아가는 대지에다 겸허히 돌려 드릴텐데
돌려드리기 전 한번만 꿈에도 그리운
네 피와 살과 뼈가 만나서
지지지 온 땅이 으스러지는
필생에 사랑을 하고 말텐데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 문정희
세상의 사나이들은 기둥 하나를
세우기 위해 산다.
좀더 튼튼하고
좀더 당당하게
시대와 밤을 찌를 수 있는 기둥
그래서 그들은 개고기를 뜯어먹고
해구신을 고아먹고
산삼을 찾아
날마다 허둥거리며
붉은 눈을 번득인다.
그런데 꼿꼿한 기둥을 자르고
천년을 얻은 사내가 있다
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사내가 된 사내가 있다.
기둥으로 끌 수 없는
제 눈 속의 불
천년의 역사에다 당겨놓은 방화범이 있다.
썰물처럼 공허한 말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에도
오직 살아 있는 그의 목소리
모래처럼 시간의 비늘이 쓸려간 자리에
끔지막하게 찍어 놓은 그의 발자국을 본다.
천년 후의 여자 하나
오래 잠 못 들게 하는
멋진 사나이가 여기 있다.
한 사내를 만들었다 / 문정희
과천 뒷산 작업실에서
조각가 K의 흙으로
한 사내를 만들었다
푸르른 내 시간의 물방앗간에서
고딕체로 쿵 쿵 방아를 찧던 남자
오늘은 흙 묻은 손으로
눈과 어깨와 전신을
꿈틀거리는 입술을
진종일 만지고 주물러
내 앞에 분명하게 세워놓았다
이제 남은 일은
수천 도의 불로 사랑을 깨우는 일뿐
그리고 그를 껴안고
당당하게 내 집으로 데려오는 일뿐이다
물 만드는 여자 / 문정희
딸아, 아무 데나 서서 오줌을 누지 말아라
푸른 나무 아래 앉아서 가만가만 누어라
아름다운 네 몸 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미는 소리에 귀 기울려 보아라
그 소리에 세상의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네가 대지의 어머니가 되어가는 소리를
때때로 편견처럼 완강한 바위에다
오줌을 갈겨 주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제의를 치르듯 조용히 치마를 걷어올리고
보름달 탐스러운 네 하초를 대지에다 살짝 대어라
그리고는 쉬이 쉬이 네 몸 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밀 때
비로소 너와 대지가 한 몸이 되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푸른 생명들이 환호하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내 귀한 여자야
몸이 큰 여자 / 문정희
저 넓은 보리밭을 갈아엎어
해마다 튼튼한 보리를 기르고
산돼지 같은 남자와 씨름하듯 사랑을 하여
알토란 아이를 낳아 젖을 물리는
탐스런 여자의 허리 속에 살아 있는 불
저울과 줄자의 눈금이 잴 수 있을까
참기름 비벼 맘껏 입 벌려 상추쌈을 먹는
야성의 핏줄 선명한
뱃가죽 속의 고향 노래를
젖가슴에 뽀얗게 솟아나는 젖샘을
어느 눈금으로 잴 수 있을까
몸은 원래 그 자체의 음악을 가지고 있지*
식사 때마다 밥알을 세고 양상추의 무게를 달고
그리고 규격 줄자 앞에 한 줄로 줄을 서는
도시 여자들의 몸에는 없는
비옥한 밭이랑의
왕성한 산욕(産慾)과 사랑의 노래가
몸을 자신을 태우고 다니는 말로 전락시킨
상인의 술책 속에
짧은 수명의 유행 상품이 된 시대의 미인들이
둔부의 규격과 매끄러운 다리를 채찍질하며
뜻없이 시들어가는 이 거리에
나는 한 마리 산돼지를 방목하고 싶다
몸이 큰 천연 밀림이 되고 싶다
*미국의 심리분석학자 클라리사 P. 에스테스가 한 말.
오빠 / 문정희
이제부터 세상의 남자들을
모두 오빠라고 부르기로 했다.
집안에서 용돈을 제일 많이 쓰고
유산도 고스란히 제몫으로 차지한
우리집의 아들들만 오빠가 아니다.
오빠!
이 자지러질 듯 상큼하고 든든한 이름을
이제 모든 남자를 향해
다정히 불러주기로 했다.
오빠라는 말로 한방 먹이면
어느 남자인들 가벼이 무너지지 않으리
꽃이 되지 않으리.
모처럼 물안개 걷혀
길도 하늘도 보이기 시작한
불혹의 기념으로
세상 남자들은
이제 모두 나의 오빠가 되었다.
나를 어지럽히던 그 거칠던 숨소리
으쓱거리며 휘파람을 불러주던 그 헌신을
어찌 오빠라 불러주지 않을 수 있으랴
오빠로 불리워지고 싶어 안달이던
그 마음을
어찌 나물 캐듯 캐내어 주지 않을 수 있으랴
오빠! 이렇게 불러주고 나면
세상엔 모든 짐승이 사라지고
헐떡임이 사라지고
오히려 두둑한 지갑을 송두리째 들고 와
비단구두 사주고 싶어 가슴 설레이는
오빠들이 사방에 있음을
나 이제 용케도 알아버렸다.
나의 아내/ 문정희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봄날 환한 웃음으로 피어난
꽃 같은 아내
꼭 껴안고 자고 나면
나의 씨를 제 몸 속에 키워
자식을 낳아주는 아내
내가 돈을 벌어다 주면
밥을 지어주고
밖에서 일할 때나 술을 마실 때
내 방을 치워놓고 기다리는 아내
또 시를 쓸 때나
소파에서 신문을 보고 있을 때면
살며시 차 한잔을 끓여다주는 아내
나 바람나지 말라고*
매일 나의 거울을 닦아주고
늘 서방님을 동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내 소유의 식민지
명분은 우리 집안의 해
나를 아버지로 할아버지로 만들어주고
내 성씨와 족보를 이어주는 아내
오래 전 밀림 속에 살았다는 한 동물처럼
이제 멸종되어간다는 소식도 들리지만
아직 절대 유용한 19세기의 발명품 같은**
오오,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 미당의 시
**매릴린 옐름, <아내>
꼬리를 흔들며 / 문정희
비밀이지만 나의 엉덩이에 꼬리가 하나 생겼네
이렇게 고백하면 사람들은
당신도 이젠 기교가 제법 늘었다고
말하겠지만
엉덩이를 직접 보여드릴 수도 없고
안 보이는 것은 그냥 믿어주는 게 상책이지
결국 날개는 안 생기고 꼬리가 생겼네
나는 이 꼬리가 싫지 않네
은근히 한 번씩 건드려보기도 하지
날개는 위험하지만
꼬리는 잘 흔들면 출세도 한다지 않는가
꼬리라는 말이 우선 맘에 드네
꼬리 꼬리 하고 입술을 자꾸 오므렸다 펴면
매우 인간적인 재미에다
꼴찌나 밑바닥이 주는 안도감마저 있어
본질에 닿은 듯
패잔병의 흉터 같은
아니 귀여운 여우 같은 꼬리
사랑하는 이 앞에서 슬쩍 흔들면
이 꼬리 붙잡으며 제발 떠나지 마라
애원해 줄까
오, 비너스에게도 없는 꼬리
나에게 생겼네
이제 이 꼬리 흔들어 당신을 잡아볼까
//
첼로처럼 살고 싶다 / 문 정 희
하룻밤 쯤
첼로처럼 살고 싶다
매캐한 담배연기 같은 목소리로
허공을 긁고 싶다
기껏해야 줄 몇 개로
풍만한 여자의 허리 같은 몸통 하나로
무수한 별을 떨어뜨리고 싶다
지분 냄새 풍기는 은빛 샌들의 드레스들을
넥타이 맨 신사들을
신사의 허세와 속물들을
일제히 기립시켜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박수를 치게 하고 싶다
죽은 귀를 잘라버리고
맑은 샘물을 길어올리게 하고 싶다
슬픈 사람들의 가슴을
박박 긁어
신록이 돋게 하고 싶다
하룻밤 쯤
첼로처럼 살고 싶다
문정희 시인
1947 전남 보성 출생
동국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서울여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1969 ≪월간문학≫에 시 <불면>, <하늘>이 당선
1975 제21회 현대문학상 수상
소월시 문학상 수상
제16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
시집 <꽃숨> 자가본 1965
시집 <문정희시집(文貞姬詩集)> 월간문학사 1973
시집 <새떼> 민학사 1975
시집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 문학예술사 1984
시집 <아우내의 새> 일월서각 1986
수필집 <사색의 그리운 풀밭> 자유문학사 1986
수필집 <사랑과 우수의 사이> 심지 1986
시집 <그리운 나의 집> 예전사 1987
시집 <찔레> 전예원 1987
시집 <우리는 왜 흐르는가> 문학사상사 1987
수필집 <사랑이 열리는 나무> 여학생사 1987
수필집 <우리 영혼의 암호문 하나> 문학사상사 1987
수필집 <젊은 고뇌와 사랑> 문음사 1987
시집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네> 나남 1988
수필집 <우리 영혼의 고뇌와 사랑> 문학사상사 1988
수필집 <우리를 홀로 있게 하는 것들> 문학세계사 1988
시집 <꿈꾸는 눈썹> 신원문화사 1990
시집 <어린 사랑에게> 미래사 1991
시집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 미학사 1992
수필집 <날개를 자르고 날아가라 한다> 도서출판 답게 1993
시집 <남자를 위하여> 민음사 1996
시집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중앙M&B 2003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민음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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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공간
문정희 시인의 깊고 뜨거운 사랑의 찬가
“세상의 남자들을 오빠라고 부르는 여류시인”
세상을 떠도는 집시, 낭만적 유미주의자, 문단의 페미니스트. 문정희 시인의 이름 앞에는 이처럼 붙는 별칭들이 많다. 그러나 딱 하나만 고르라면 주저않고 ‘사랑의 시인’이라는 말을 고를 터. 쓴내 나는 삶을 거쳐 드디어 물과 불이, 남성과 여성이 화해하는 조화로운 사랑을 꿈꾸는 그의 깊고 묵직한 시세계.
문정희 시인(55)의 절친한 친구인 소설가 윤후명씨는 “그녀는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른다. 희망과 절망을, 기쁨과 슬픔을, 아름다움과 추함을 다 곤죽이 되도록 녹여버리는 불꽃이다. 그것은 용광로 속 혼돈이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40년대, 그러니까 지극히 쓴내 나는 한국 여인네 중의 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70년대 중진시인으로 시력(詩歷) 30년에 20여권의 시집 등을 펴낸 저력의 소유자. 만만치 않은 글쓰기와 세상살이다. 솔직히 이 연배이면 시드는 ‘파꽃’이 되기 마련이지만 그이의 가슴은 여전히 뜨겁다. 여태 꺾이지 않는 ‘찔레’로 서 있는 그 힘과 배짱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는 영원한 자유인이다. 세상 떠돌기를 반복하는 집시의 여인. 인터뷰를 한 후에도 역시 외국으로 훌쩍 떠났다. 달포 후에나 귀국한다는 전갈이다. 역마살의 시인. 어느 문학단체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은 제도권의 이방인. 96년 여름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이런 소감을 피력했다. “군집을 이루는 것은 힘없는 작은 것들뿐, 이를테면 참새일수록 큰 군집을 이루고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홀로 저 대평원을 걸어가는 밀림의 왕에게서 고독하고 아름다운 시인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상을 못 받았다고 해서 제가 시 쓰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듯이 또한 상을 받게 되었다고 해서 제게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대단한 일갈이다.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뜨거운 가슴의 노래
또한 그는 홀로 세상을 떠도는 낭만적 유미주의자이다. 남자를 넘어 세상과 교배하며 사는 여자다. 사랑을 할 바에야 호쾌하게 하자는 것. 시에서 토해내는 그 직설적 관능미. 더 이상 끈적이는 것은 싫다. 사랑은 물 흐르듯 흘러가야 한다. 다시 불꽃이 되도록. 물과 불은 극이다. 그러나 그에게 물이란 양수의 욕망과 사랑의 생명이 샘솟는 샘물같은 것이다. 그러기에 젖무덤 밑으로 기어드는 뜨거운 불꽃 같은 사랑을 피우고 싶어한다. 그래서 “사랑의 불꽃과 향기로 숨쉬고 있는 생명”(‘시작노트’)이거나, “꿈결처럼/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찔레’). 하여, “허허벌판에 누워서/깨끗한 남자를 기다린다.//불꽃이 울면서 짐승같이/젖무덤 밑으로 기어든다.//나무들이 간지러워/푸른 소리를 지르고//드디어 그 남자가/길을 무찔러 오는 소리”(‘떠오르는 방’)를 듣는다.
자유분방한 상상력의 시인은 세상의 모든 사물에 사랑의 의미를 부여하며 생명의 불씨 혹은 물길질을 한다. 그러나 오해는 말라. 그가 노래하는 사랑은 사회적·이성적 개념의 벽을 치거나 값싸고 단순한 사랑은 아니다. 지극히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사랑. 사랑 노래에도 원칙이 있다. 생명성을 기본으로 하여 기존 질서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부수는 것이다. 그는 문학계에서 잘 알려진 페미니스트다. 그러나 시 속에서 분노와 탄식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게 그의 시의 매력이다. 성적 몸놀림이 생명의 환희, 창조의 원천으로 자리잡는 시각. “몸 속의 뼈를 뽑아내고 싶다./물이고 싶다./물보다 더 부드러운 향기로/그만 스미고 싶다.//당신의 어둠의 뿌리/가시의 끝의 끝까지/적시고 싶다.//그대 잠속에/안겨/지상의 것들을/말갛게 씻어내고 싶다.//눈 틔우고 싶다”(‘비의 사랑’ 전문)
‘어둠의 뿌리’ ‘가시의 끝’까지 적시고 지상의 모든 것을 씻고 눈 틔우는 사랑, 그것이 ‘비의 사랑’이다. 감싸 안아주는 사랑, 그것을 모성애라 불러도 좋으리라. 물과 불이 화해하고 남성과 여성이 화해하는 조화로운 세상.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그의 시에서 에로스는 진정한 사랑으로 가는 정점이다.
세상 떠도는 집시의 여인,자유분방한 상상력의 낭만주의자
그러기에 “키 큰 남자를 보면/가만히 팔 걸고 싶다”(‘키 큰 남자를 보면’), “오빠! 이렇게 불러주고 나면/세상엔 모든 짐승이 사라지고/헐떡임이 사라지고//오히려 두둑한 지갑을 송두리째 들고 와/비단구두 사주고 싶어 가슴 설레이는/오빠들이 사방에 있음을/나 이제 용케도 알아버렸다”(‘오빠’)라고 노래한다. 오빠라고 불러준 그 때부터 그에게 남자는 진정한 사랑이 되었다. 남자에게 팔 걸고 싶은 여자, 그런 여자에게 뭇 남성들도 어깨 걸고 싶지 않겠는가.
딸아, 아무 데나 서서 오줌을 누지 말아라
푸른 나무 아래 앉아서 가만가만 누어라
아름다운 네 몸 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미는 소리에 귀 기울려 보아라
그 소리에 세상의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네가 대지의 어머니가 되어가는 소리를
때때로 편견처럼 완강한 바위에다
오줌을 갈겨 주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제의를 치르듯 조용히 치마를 걷어올리고
보름달 탐스러운 네 하초를 대지에다 살짝 대어라
그리고는 쉬이 쉬이 네 몸 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밀 때
비로소 너와 대지가 한 몸이 되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푸른 생명들이 환호하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내 귀한 여자야
- 물 만드는 여자 전문
이 시는 해외 여행 때 어느 전람회장에 걸린 여성의 오줌 누는 장면을 보고 시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애잔하면서도 장엄한 모성애를 마주하게 된다. 힘들고 지친 이 땅의 어머니들은 용기와 희망을 갖자는 완곡한 메시지. “때때로 편견처럼 완강한 바위에다가/오줌을 갈겨 주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그럴 때일수록/제의를 치르듯 조용히 치마를 걷어 올리고” 대지에다가 몸속의 강물을 틀란다. 그 강물이 흙속을 스밀 때 푸른 생명들이 잉태하는 소리를 들어보란다. 정말 ‘쓴내’ 나는 세상을 헤쳐온 어머니의 심정이 아니면, 세상의 안과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시야가 없었다면 떠올릴 수도, 감동할 수도 없는 시적 묘사다. 이 땅의 아낙들이 감내해온 슬픔의 깊이와 자비의 깊이가 동시에 느껴진다. 이런 ‘물 만드는 여자’들과 함께 사는 세상은 얼마나 행복한 세상인가.
신데렐라 문학소녀에서 두 아이 둔 야간학교 교사·여류시인 생활
그는 전남 보성에 태어나 비교적 ‘토호’였던 아버지의 교육열 덕에 시골 초등학교 분교 4학년생 때 광주 서석 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시골뜨기 소녀였지만 글짓기 대회에서 주는 상은 모두 그의 차지였다. 어릴 적부터 부모 곁을 떠난 탓에 외로움이 컸던 소녀. 그때마다 일기를 썼다. 전남여중 2학년 때 서울로 전학했다. 이때 오빠와 합류했다. 오빠는 서울대를 나와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수학한 엘리트. 그해 가을, 아버지의 부음을 접했다. 열네살 소녀는 처음으로 마을 사람들에 의해 아버지의 관이 묻히는 장면을 바라보며 삶의 허무를 접했다.
진명여고 1학년 가을, 숙제로 휘갈겨낸 ‘형광등’이라는 시 한편이 이화여대 주최 전국 여고생 백일장에서 입상했다. 이후 시·소설·희곡 등 여러 문학 장르를 넘나들며 대학 백일장에서 장원을 휩쓸었다. 고교 3학년 때까지 무려 스무개가 넘는 문학상을 차지했다. 이 무렵 서정주 시인의 서문과 함께 고교생 최초의 <꽃숨>이라는 시집을 냈다. ‘꽃숨’이란 꽃 피기 바로 직전 터질 듯한 몽우리를 말한다. 이렇게 미당과 기막힌 인연을 맺은 소녀 문정희는 전국 대학가에 유명세를 탔다. 미당이 교수로 있던 동국대 콩쿠르 ‘장원’으로 입상한 후 특례입학 요청을 받았고, 동국대에 들어갔다. 쾌활한 성격에 연애, 멋 부리기, 잘난 체하기 등 오만할 정도로 열정적 젊음을 발산했다. 여학생 대표도 맡았다. 대학 4학년 초여름에 창간된 <월간문학> 신인상에 ‘불면’ ‘하늘’이 당선돼 문단에 데뷔하기에 이르렀다.
등단 후 여성지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뜬금없이 ‘결혼’이라는 것을 했다. 세상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신혼생활은 남편의 하숙집에서 시작했다. 미당이 주례를 섰다. 문단의 ‘신데렐라’ 문정희는 단숨에 벌거숭이가 된 아줌마로 돌변했다. 두달쯤 명성여중 야간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때야말로 세상 속으로 환원한 셈.
“소녀 시절의 문학적 재능과 오만한 처녀 시절을 기억하는 한 선배가 원고 청탁을 했을 때, 그 앞에 만삭의 여자가 되어 나타났어요. 그때 그의 눈가에 일어났던 경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단칸방에서도 글쓰기 작업만은 멈출 수가 없었다. 불을 켜면 다른 사람이 깰까봐 기역자 모양의 군용 플래시를 켜고 그 불빛 아래서 원고지 칸을 채워갔다. 73년 첫 시집 <문정희 시집>을 냈다. 시에 대한 열정만은 어느 남성들의 가슴보다 뜨거웠다. 야간학교 흐릿한 불빛 아래서 깨알 같은 글씨로 시 쓰기를 반복했다. ‘댓닢사’라는 제목으로 시·시극집 <새떼>를 펴낸 게 그 무렵이다. 데뷔 7년째에 현대문학상을 받았다. 시와 함께 시극을 문예지에 자주 발표했고 손수 쓴 작품이 지금은 사라진 명동 예술극장 무대에 올려지곤 했다. 불과 몇해 전만 하더라도 국립극장 의뢰로 창극 <구운몽>을 썼을 정도로 이 방면에도 일가견이 있다.
팔방미인적인 그의 면모 밑에는 폭넓은 경험에서 기인한 넓은 시야가 있다. 그는 뉴욕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유럽 11개국을 도는 긴 장정에 나서기도 했다. 방송사와 잡지사의 청탁으로 스리랑카, 터키, 러시아, 카리브해 등 수많은 나라를 동행 취재했다. 이런 여행을 통해 변방문화와 세계문화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민족적인 것,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제기도 깊이 했다. 이후 그는 1∼2년마다 과감히 한번씩 여행길에 올랐다.
“삶에 있어 여행계획 짜는 게 중요한 일이 되었어요. 제 성질에 딱 맞아요. 살다보면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잖아요. 그럴 때 잠시 모국어로부터 해방되어 제 자신을 들여다보고 갈고 닦는 거죠. 그러고 돌아와 보면 깊어지고 넓어지는 느낌을 받아요. …집시와 날라리가 아니면 당당하고 호쾌한 그 무엇으로 득음하고 싶은 거죠. 벼루가 늘 젖어 있는 사람만이 일필휘지할 수 있는 것처럼 이런 찬란한 자유혼, 자신감, 생명, 무한한 자연과 유쾌하게 사랑하면서 원고지 위에서 해결하는 길밖에 없잖아요. 이것은 오랜 경험으로 알게 된 거예요.”
디자이너 소니아 리키엘의 니트, 검정색 머플러, 은장신구, 샤넬 향수 NO 19과 같은 그의 세련된 패션적 기호들은 이런 해외에서의 떠돎을 통해 몸에 익힌 것이다. 3백여편이 넘는 영화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감상했던 뉴욕에서의 나날. 세계적 앵커우먼 바버라 월터스가 찬바람 쌩쌩 부는 모스크바 광장에서 안개를 맞으며 전세계인들에게 브리핑하던 그 환상적인 모습에 반하기도 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론적 체계를 접한 것도 이 시기. 남녀간의 값싼 ‘사랑타령’이 아닌 남성과 여성간 성(性)의 본질적인 문제로 접근해 들어간 것이다. 남녀의 평등한 공존과 화해야말로 그가 꿈꾸는 것. 요즈음에도 후배 시인들을 만나면 빼놓지 않고 ‘평등’이라는 주제로 갑론을박을 한다. 사회 속 통념, 형식이란 껍데기를 깨기 위한 그이의 고행(?)은 참으로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문정희.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사랑시’ ‘연애시’의 대가다. 그는 무엇보다 쉽게 읽히는 시를 쓴다. 그이 역시 한때는 깊은 시, 독자 입장에서는 어려운 시를 제조하기도 했다. 평론가들을 그것을 문학성이 어쩌고 저쩌고 평하지만, 그는 최근 “시란 쉽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고 한다. 그렇다고 밤낮없이 써대는 그런 시가 아니다. 항상 20여편의 시가 컴퓨터에 내장돼 있다. 여행과 떠돎을 통해 시가 적당히 익을 즈음에 한편씩 꺼내 시를 완성한다. 시가 쉽다고 시 속의 사랑마저 가벼울 수는 없는 일. 그는 요즈음 연애시에는 몸만 있고 가슴이 없다고 꼬집는다. 부모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을 주문한다. 사회적이고 민족적으로 확산된 사랑도 그속에 있다.
그 역시 유신시대라는 엄혹한 시기를 살았다. <새떼>에 수록된 3편의 시가 검열에 걸리기도 했다. 그래서 살고 있지만 사는 것 같지 않는 세상을 한탄했다. ‘그것은 무효’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무효다./이 침묵도 무효다.//강요당한 침묵의 밧줄./아, 아, 세상에/몸조차도/침묵으로 말하고 있다./내가 없다./그러나, 내가 살고 있다.//무효다./이 봄은 무효다”(‘선언’ 전문). 침묵하는 지식인을 나무라는 소리. 지성인으로서 이녁에 대한 자괴감, 비겁함에 대한 채찍.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이 터졌을 때 자궁파열로 죽은 유관순을 주제로 한 장편시집 <아우내의 새>를 출간하기도 할 만큼 사회의식이 두텁던 그였다.
외국 여행에서 얻은 페미니스트의 안목과 강한 사랑
그러던 그가 80년대 먼 여행길에 올랐다. 외교관인 오빠의 도움과 <여성동아> 주최 불교국 순례 동행 취재차 난생 처음 밟은 외국 땅. 여행을 통해 육체와 정신 속에 잠들어 있던 감성의 세포가 한꺼번에 눈뜨는 충격을 받았다. 한편으로 5월 광주를 떠나온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컸다. ‘군인들이 학생들을 쏴 죽이는 나라’에서 온 작가라는 주위의 시선, 그리고 가눌 수 없는 슬픔의 무게. 정신적 고통이 계속됐다. “시간이 갈수록/더 시퍼렇게 살아나는/이상한 무덤들 앞에서/흐르는 눈물조차 부끄러웠다”(‘부끄러운 날’)라는 시인의 고백.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학 석사과정을 공부했다. 참으로 힘들었다. 너무 외로웠다. 이국의 황무지에서 익명으로 내동댕이쳐진 자신의 모습은 처절했다. 날마다 망연자실했다. 비로소 모국에 대한 진실로 깊은 의미와 사랑을 실감했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진한 사랑과 함께 강한 비판의 안목을 겸비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맏며느리로서 1년에 일곱 차례의 제사를 감당해왔던 그이. 지금도 시어머니 병치레를 도맡고 있다. 억척스런 어머니상을 드러내지 않고 세상을 보듬으면서 ‘사랑시’를 쓰는 그의 이면이야말로 진정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없다. 어쩌면 그건 정서적으로 “그 시절/당산나무 건너 새로 지은 분교”(‘책보와 가방’)의 시골뜨기 출신이기 때문일까. 작품 중에는 향토적 서정시들이 적잖다. 그 가운데 한편 ‘파꽃길’.
“흰 파꽃이 피는 여름이 되면/바닷가 명교리에 가보리라/조금만 스치어도/슬픔처럼 코끝을 건드리는/파꽃냄새를 따라가면/이 세상 끝을 닿는다는 명교리에 가서/내 이름 끝에 부르는 바다를 만나리라/어린 시절 오줌을 싸서/소금 받으러 가다 넘어진 바위/내 수치와 슬픔 위에/은빛 소금을 뿌리던 외가 식구들/이제는 모두 돌아가고 없지만/서걱이는 모래톱 속에 손을 넣으면/차가운 눈물샘은 여전히 솟으리니/조금만 스치어도/슬픔처럼 코끝을 따라가서/그리운 키를 쓰고 소금을 받으리라//넘실대는 여름바다에/푸른 추억의 날개를 달아주리라”
- 파꽃길 전문
아름다운 명교리, 그것은 우리 모두가 돌아가야 할, 그리고 돌아가고픈 인간의 고향이리라. “떠날 적마다 데리고 떠나도/그대로 남은” “죄같은 육자배기 보성”(‘고향생각’)은 실컷 울어도 좋을 원초적 고향이다. 그리움의 고향이다. 그래서 “바람 속에 쑥부쟁이 냄새 나는/그리운 고향에 가서/오늘은 토란잎처럼 싱싱한 호미를 들고/진종일 흙을 파고 싶다/…수줍음 타는 처녀가 되고 싶다”(‘그리움 속으로’). ‘착하고 따스한 눈매를 가진’ ‘수줍음 타는 처녀’가 ‘겨드랑이에서 정직한 땀내’를 풍기면서 말이다.
그렇게 문시인은 사랑을 키워드로 시를 써왔다. 시인 이전에 한 가정의 어머니로서 자식들을 일류대 졸업시키고 국제 변호사로 키웠다.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환갑을 향한 연륜의 그림자. 남부럽지 않은 자식농사에 이제는 더욱 홀가분한 집시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위대한 예술가는 언제나 열렬히 사랑을 한 사람들이라고 했던가. 그의 20여권의 저작물 성과를 한마디로 갈무리하면 어느 유행가 제목처럼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그는 지금도 지칠 줄 모르는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단다. “한철 후면 어김없이/까맣게 시든 꽃”이련만 “나도 이제 농담처럼/가볍게 사랑을 보내고 싶다”고 노래한다. “세상이 메말랐다고 하는데도/유쾌한 사랑도 의외로 많다”며 “대장간에서 만드는 것은/칼이 아니라 불꽃”이니 희끗희끗 설핏설핏 살지 말고 이 한세상 한번쯤 가열차게 사랑해보잔다. 이 한여름의 출렁이는 저 푸르디 푸른 젖가슴이 왈콱 터지도록 말이다.
/ 글·박상건 시인. 문화선교대학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