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세미나책자에 올려진 최강식씨의 촐라체 등반기를 대신 올려봅니다.
1. 촐라체 등반기
촐라체. 네팔 쿰부에 자리한, 그 지역에서는 그렇게 높지 않은 봉우리이다.
2004년 로체와 가샤브룸2봉을 등정하고 귀국하여 2005년에 있을 다울라기리 등반(경상대학교 산악회)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던 중 정헌형의 등반 제의로 알게 된 봉이다. 자료라고는 2003년 한국산악회에서 등반한 기록과 사진, Himalaya Alpine Style 잡지에 실린 사진 한 장과 짧은 글뿐이었다. 미지의 산에 도전한다는 것에 대한 설렘과 단 둘이 떠난다는 기대감에 걷고 달리고 매달리고 휘둘러 되며 훈련을 하였다. 가면 알게 된다는 무지의 용감함으로.
2005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우리는 비행기에 올랐다. 챙긴 것은 식량 일부와 개인 장비, 그리고 망원경과 하켄 10여개, 몇 개의 러프와 스크류, 카라비너 20개등이었다. 타멜 장비점들을 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마저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타멜의 장비점들을 돌며 중고 케브라 로프 7mm와 5.5mm를 각 55m씩 구했고 스노우바 2개와 스크류 2개를 더 샀다. 텐트는 빌라에베레스트 창고에서 2동을 구했다.
장비준비를 마치고 카라반에 올랐다.
지도에 봉우리 명이 잘못 표기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타워체로 알고 있었던 곳이 지도에는 촐라체라고 잘못 표기 되어있었다. 그래도 사진으로 보아온 산이기에 타워체를 거쳐 촐라체 베이스에 도착했다.
<촐라체 인근 빙폭>
베이스를 준비하고 산을 바라보기만 며칠이었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근처에 있던 작은 빙폭에서 바일질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며칠이 지나 촐라패스를 거쳐 촐라체 남면 정찰을 다녀왔다. 하루 만에 다녀오는 계획이었기에 아쉽게도 남면을 세세하게 정찰하지는 못했다. 다만 우리가 하산하려는 능선을 바라보고 하산 계획 정도만 세웠다.
베이스에서 또 다시 며칠을 지내다 고소 적응 차 로부제 동봉을 가기위해 짐을 꾸렸다. 멀지 않은 곳이라 간단히 장비만 챙겨갔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동봉에 올라 에베레스트, 로체, 눕체, 아마다블람, 타워체, 촐라체를 마음껏 구경하고 돌아왔다.
베이스에 도착해서 촐라패스 2회, 로부제 동봉 1회, 빙폭 다수 등을 통해 우리는 고소에서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다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대략적인 루트 맵도 완성한 상태였다. 촐라체를 두개의 “V”자로 형상화하기도 했다. 첫날은 아래 ‘V’자를 넘고 둘째 날 위 ‘V’자를 넘어 정상으로 간다는 야심 찬 계획을 잡고 등반에 임했다.
2005년 1월 13일 새벽 3시에 베이스를 떠났다. 하단의 설벽은 프리로 별 어려움 없이 올랐다. 설벽에 눈이 적당히 있어 루트상에도 눈이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오르면 오를수록 눈은 없고 얕은 얼음과 바위가 섞인 믹스구간이 나타났다. 심지어 오버행으로 돌출된 바위까지 나타나면서 우리의 등반 속도는 한 없이 느려져갔다. 작은 바위틈이 나오면 하켄을 치고 고드름이 나오면 슬링을 걸어 확보지점을 만들며 정헌형이 앞서 올랐다. 자일의 길이가 50m이기에 크럭스를 넘어도 안전한 확보지점이 있는 곳까지 가기 어려워 적당한 곳에 확보를 하면 장비를 회수하며 뒤따라 올랐다. 점심이고 휴식이고 없는 등반이 오후 늦게까지 이어졌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비박지로는 안성맞춤인 곳이 우리의 시야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돌출된 바위아래에 두 사람이 비집고 누울 만한 곳이 있었다. 비박지에서 커피와 파워 젤, 간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 후 내일을 위해 아무 말도 않고 잠을 청했다. 말은 안했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루트에 서로 할 말을 잃었던 것이리라 생각한다.
둘째 날 우리는 얼음으로 뒤덮인 비박색을 비집고 나와 땅콩차와 파워 젤, 초콜릿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등반을 시작했다. 첫날보다 더 어렵다. 더욱 얕아지는 얼음과 스노우 샤워가 그치질 않았다. 말이 스노우 샤워지 얼음 알갱이들이 정상부에서부터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 얼음은 오를수록 강빙이다. 바일도 안 박히고 아이젠도 뜅겨 나온다. 첫 'V'를 넘어서니 경사가 눕는다. 아니 착각이었다. 눈이 쌓여 있어서 그렇게 느낀 것이었다. 우린 쉼 없이 올랐다. 두 번째 'V'를 향하여. 그러나 밑에서는 가깝게 보이던 그곳이 엄청나게 멀었다. 해가 지도록 올랐다. 그러나 어제같은 비박지는 찾을 수가 없었다. 해는 졌는데 우린 멈출 수가 없었다. 적당한 곳이 나오길 바라며 랜턴을 끼고 계속 등반을 했다. 하지만 우리의 오아시스는 없었다. 결국 등반을 멈추고 스크류를 박았다. 그리고 바일로 깨지지도 않는 강빙을 열심히 쪼았다. 등반보다 더 힘들게 마련했던 자리가 고작 꼬리뼈만 올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가지고 온 스노우 바도 얼음에 박았다. 아니 걸쳤다. 스크류와 스노바 그리고 자일을 이용해 발판을 만들었다. 그러고 나니 좀 쉴만하다. 아이젠을 벗는 것이 곡예수준이다. 만약 여기서 아이젠을 떨어트리면 죽은 목숨이다(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신고 들어갔어도 되었을 것을). 무사히 아이젠을 벗어내고 비박색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무릎위에 나무판자(등반을 위해 15cm*15cm 제작함)를 올려 버너를 켰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얼음을 깨서 녹인 조금의 물과 파워 젤, 초콜릿뿐이었다. 밤하늘에 별들은 쏟아져 내리고 우리는 무아지경에 빠졌다. 멀리 베이스(베이스 키퍼로 송성재형이 와있었음)에 등불이 보인다. 너무 많이 올라와 버렸나 보다. 정상에 가지 않고서는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목표한 시간을 훌쩍 넘어버렸다. 또한 식량과 1통의 가스도 거의 소모되어가고 있었기에 내일부터의 등반은 등반이 아닌 생존을 위한 것이리라. 그렇게 우리는 불안한 마음으로 벽에 매달려 밤을 보냈다.
사흘째 우리는 오전에 두 번째 'V'를 넘어 섰다. 그리고 대각선으로 진행했다. 경사는 누웠지만 능선으로 올라서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80°정도에서 흘러내린 눈들이 버섯을 형성하며 깨끗한 등반 선을 제공해 주지 않았다. 또한 우측으로는 천길 낭떠러지다. 오르고 내려가고 다시 오르고를 반복하며 우린 오후 늦게 능선 초입에 도달했다. 능선에는 눈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앉을 수 있을 정도의 눈 처마가 형성되어져 있었고 우리 그 속에 들어가 밤을 보내기로 했다. 제대로 먹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피로가 쌓여서 일까? 우리는 나약한 상태가 되어 갔다. 가스가 떨어져서 물도 마실 수 없게 되었다. 얼음을 깨서 입에 그냥 넣었다. 목은 타고 배는 고프고 후회가 저절로 밀려온다. 그래도 이 밤이 지나면 정상을 통해 하산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가슴 깊은 곳에서 샘솟아 올랐다.
나흘 째, 둘째 날 밤부터 손가락 통증이 있다고 말하던 형이 뒤로 빠지고 내가 앞서 눈을 다지며 정상으로 올라갔다. 한 스텝 한 스텝이 어려웠다. 눈을 밟으면 발이 허벅지까지 푹 들어가 버렸다. 다지고 또 다지며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쏟아 부었다. 정상에 도착해서 우리는 감격을 느끼기도 전에 서둘러 하산을 준비했다. 날씨가 나빠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고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노멀루트 능선으로 방향을 잡고 하산을 시작했다. 거세지는 바람과 눈보라가 우리의 시야를 가렸다. 간간히 보이는 능선을 따라 하산을 하는 중, 예상치 못한 가파른 경사를 만났다. 하산 시간을 단축하기 위하여 남면을 바로 내려가기로 하고 하산을 계속했다. 경사가 계속 가파라져 처음에는 스노우바를 설치하여 하강하다 그 이후에는 스크류를 설치해 하강하였다. 생각지 못한 하산 루트에서 하강을 하다가 다시 올라오고,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하강 끝에 크레바스 지역에 도착하게 되었고, 남은 장비는 스크류 하나와 하켄 하나, 자일 두 동뿐 이었다. 우리는 불필요한 장비를 정리하고(7mm 로프를 내 배낭에 넣고) 5.5mm 로프를 반으로 접어 안자일렌으로 크레바스 지역을 통과하기로 했다. 정헌형이 앞서 출발하고 그 뒤를 내가 따랐다. 앞서가는 형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가는데 아이젠에 스노우볼이 계속적으로 생겼다. 몇 발자국을 걷고 아이젠에 생긴 스노우볼을 제거하고 다시 출발하는 순간, 내 몸이 균형을 잃고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바일을 휘둘렀지만 제동이 걸리지 않았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몸은 크레바스 안에 매달려 있었다.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더 떨어지지 않고 멈추어 있다는 것이었다. 밑을 살펴보니 내가 멈춘 바로 옆에 올라서기에 충분한 얼음 테라스가 형성되어 있었다. 몸의 반동을 이용해 그 테라스로 올라섰다. 그리고 소리 쳤다. “형~~!!”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았고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몇 번의 외침 후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도가 되었다. 우리 둘은 짧은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 크레바스를 탈출하기 위해 등반을 시도하려 하였다. 그 순간, 왼 발이 뒤틀리면서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왼쪽 발목이 탈골 된 것이었다. 앞이 깜깜했다. 형에게 다시 소리쳤다. “형~ 왼발이 부러졌어요.” 그럼에도 살아서 나가겠다는 생각 하나로, 오른발과 양 손의 바일을 믿고, 위에 있는 형을 믿고, 크레바스 탈출을 시작했다. 쉽지 않은 일 이었다. 크레바스 안이 110도 정도의 오버행이었기 때문에 매달리는 것 자체도 힘들었다. 더욱이 왼발까지 뒤로 쳐져 있어 등반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형이 위에서 당겨주어 크레바스의 중간을 넘어섰다. 그러나 힘이 빠져 다시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 것을 한번 더 시도 했을 때, 크레바스의 2/3를 올라갔다. 그러나 그곳에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테라스가 있었다. 그 테라스를 넘어 설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 내려가야만 했다. 다시 절망에 빠졌다. 혹여나 배낭 속에 도움이 될만한 것이 없을까 생각하다 배낭을 뒤져 ‘등강기’를 찾아냈다. 형이 필요 없다고 챙기지 말라고 한 것을, 내가 무심코 챙긴 것이었다. 형에게 소리쳤다. “형~~ 등강기가 있어요!!! 자일을 바꿔야 겠어요!!” 배낭에 있던 7mm 자일을 위로 올려 보냈다. 형이 위에서 고정을 시켰고, 나는 등강기와 확보줄을 이용한(프루지크 매듭) 발스텝을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크레바스를 탈출했다. 극도로 피곤해진 우리 두 사람은 크레바스 근처에 비박지를 만들어 잠을 청했다.
닷새 째, 아침에 일어나 하산 방법에 대해 의논 했다. 발이 불편한 나는 자일을 이용해 앉아서(sitting glissading) 먼저 내려오고, 형이 뒤따라 내려오기로 했다. 순조로웠다. 세 번째 시도를 할 즈음, 내가 내려가고 있을 때 갑자기 형이 미끄러져 내려왔다. 나는 제동을 걸었고, 형은 나를 지나쳐 30여 미터를 더 미끄러져 굴러 내려갔다. 형이 멈춘 곳으로 다가갔다. 형의 안경과 바일 한 자루가 보이지 않았다. 얼굴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형이 최소의 장비만을 챙기고 다른 것들은 버리자고 했다. 7mm자일, 스크류 하나, 하켄 하나 만이 남았다. 배낭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크레바스 지역을 엉덩이로 앞서 내려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영화 Touching the void의 주인공들처럼 크레바스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너덜지대에 닿을 수 있는 끌르와르를 발견했다. 하켄을 박아 하강을 시도했다. 생각보다 구간이 길어, 내가 먼저 내려간 후, 형이 하켄을 회수해서 다시 내려와 설치하고 다시 하강했다. 마지막에는 하켄과 스크류를 박아 너덜지대로 내려섰다. 끝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날이 저물어 어두웠고 눈이 없는 곳은 기어가기도 쉽지 않았다. 우리는 얼어붙은 호수 하나를 지나 큰 돌 뒤에 누워 바람을 피해 밤을 지새웠다.
악몽 같은 밤이 지나고, 엿새 째 아침이 밝았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4일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배가 너무도 고팠다. 몸은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았고 어떻게 내려가야 할지 깜깜했다. 안전지대로 들어선 우리는, 형이 먼저 내려가 구조를 요청하고, 나는 그곳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형이 내려간 지 얼마나 흘렀을까. 눈은 계속 내리고, 목이 탔다. 결단을 내렸다. 형이 간 길을 따라 나도 내려가기로 했다. 발이 성치 않은 몸으로 길이 아닌 곳을 내려가는 것은 죽을 만큼 힘들었다. 내려오는 길에 눈에 들어 왔던 야크 움막을 향해 쉼 없이 기고 또 기었다. 야크 움막에 도착했을 때, 형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먼저 내려갔던 형이 쓰러져 누워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만났고, 하룻밤을 그곳에서 지냈다. 다음날 야크몰이 할아버지를 만났고, 그 분의 친절로 노부부의 집에서 이틀을 더 보낸 후 구조헬기를 탔다.
2. 촐라체 등반사
․ 1982년 봄, 미국대에 의해 남서릉으로 초정등
가을, 스위스 ․ 프랑스 합동대 남동릉 등정
․ 1984년 봄, 미국대에서 북벽 등반 시도
․ 1995년 가을, 프랑스대에 의해 북벽 초등
․ 2003년 가을, 한국산악회 북벽 등반 - 6,200m 도달
․ 2005년 겨울, 박정헌 ․ 최강식 북벽 동계 초등 - 프랑스루트와 흡사하다고 생각됨.
․ 2005년 가을, 우엘리 스텍 북벽 단독 등정
․ 2010년 봄, 러시아대 북벽 신루트 등정
3. 장비(기억이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