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명서영
거실 정면에서 바늘이 앞뒤로 오락가락
고장 난 저것은
중심을 찾는 것이 분명하다
오르지 한 방향으로만 치닫던
생각들을 수선하고 있다
덜컹덜컹 달려온 길이
삶의 궤적으로 서있는 숫자 앞에
잠시 자신을 내려놓는 녹슨 바늘
새털보다 가벼웠던 세월을 추억하며
비로소 활짝 편 손은 편안하다
하늘을 꿈꾸던 나뭇잎이 바람에 날아가듯
몸은 뜨거웠으나 헛바퀴를 돌던 사랑이나
쉬지 않고 일했으나 빈손 일 때나
돌아보면 그립기만 한
휘돌린 생
발병 나고서야 제자리에서 맴돌았던
시계視界가 살짝 열린다
외각지대 2
-이끼
이끼가 그늘을 좋아한다고 가볍게 말하지 마라
어둠이 두렵다, 그는
출구 찾다가 온통 그늘을 뒤덮었다
얼마나 발버둥 쳤으면
햇볕을 받지 않고도 푸른 피가 돌고
잎과 줄기의 구별을 명확히 할 겨를도 없었겠는가?
어떤 것은 일 센티 크는데 백년이 걸린단다
무겁고 허기진 잎
그의 작은 키는 그늘의 슬픔이다, 평생
음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도 있다
외각 지대 3
홀로 앉아 있는 노인
연못을 낚시질 한다
회사를 그만둔 후 날마다 왔지만
물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한다고
목구멍에 낚싯바늘이 걸린 듯
타들어가는 그의 목소리
표정마저 바늘에 걸려 요지부동하다
시간을 엮고 있나, 노인과 물고기
바늘 없는 낚싯대만 서로 붙잡고 있나*
검버섯꽃 핀 손이 물고기의 낚싯대에 잡혀있다
마른 나뭇잎 하나 미끼가 되어 못에 빠진다
물결무늬 깊게 새겨진 노인의 얼굴에서
먹이 찾아 수심 깊은 곳까지 빠닥빠닥
밀물졌을 그의 삶을 상상한다
세상을 들여다보기엔 너무 큰 그의 눈
안에는 그렁그렁 갇히지 않은 물이
어디론가 파도를 일으킬 것 같다
입질하듯 그가 긴 숨을 내뿜으면
동글동글 연못에 꽃이 핀다
*姜尙의 一子釣針에서 차용
까치 마을
헐렁했던 산의 품이 금세 꽉 낀다
까치집을 가운데 두고
수컷인 듯 두 마리가 쫒고 쫒기고
암컷인 듯 두 마리 마주보며 우짖는다
숲의 내장까지 들여다보며 읽던 바람도
찔끔 눈 한번 감아버리겠다는 심사
나무 뒤로 숨고
바람 한 점 없는 팽팽한 숲은
한쪽 귀퉁이가 찢어지고 있다
작년 초 산자락에 들어선 아파트에
낚여 채인 산
한 나무에 까치집을 여럿, 겹겹이 들고
크게 흔들린다
나무들 점점 키를 높이는
바람이 숨차게 넘어간 능선 쪽으로
어린 까치의 눈들이 총총 박혀있다
거문고소리
나는 깊은 산중의 기도다
끝내 완성시키지 못한 채
내다버려진 목조부처의 곡이다
싸개를 풀어헤친 뿌리와 이파리의
오랜 울음이다, 노래다
세상이 나를 반 토막 내고
내 몸짓에 박수 보내지만
골방 한쪽 귀퉁이를 떠나
공명으로 하늘을 두드린다는 것을 모른다
내 소리의 근원은
심지 깊은 뿌리의 다짐이며
흔들려도 한쪽으로 쏠리지 않으려는
이파리의 정신이다
그 산의 푸른 기억들을 우려내어
미완성의 염불을 읊는다
한 옥타브를 낮춰 너를 끌어안는다
때로는 울음이 세상을 추스릴 것이다
카페 게시글
2009년 수상작
[시당선작] 시계 외4편(명서영)
미목이
추천 1
조회 451
10.10.0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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