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동(蘇堤洞)
《大田地名誌》(大田直轄市史編纂委員會, 1994)
〔위치〕동구 동쪽 중앙에 위치한 동으로서, 대전역 동쪽으로 철도 건너에 있다. 소제동(蘇堤洞)은 동으로는 자양동(紫陽洞), 서로는 정동(貞洞), 남으로는 신안동(新安洞), 북으로는 삼성1동(三省1洞)과 가양동(佳陽洞)과 연접해 있다.
동의 중앙지점에 남북방향으로 대동천이 흐르고, 대동천 동쪽 옆으로 계족로(鷄足路)가 나란히 있다.
〔유래〕솔랑이에 소제호(蘇堤湖)가 이곳에 있었으며, 그 부근에 있던 ''소제(蘇堤)''라는 자연 부락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연혁〕백제(百濟) 때는 우술군(雨述郡), 신라(新羅) 때는 비풍군(比豊郡), 고려 초기에는 회덕현(懷德縣), 고려 현종 때는 공주부(公州府)에 속했다. 조선 초기에는 회덕군 외남면(外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동강리(東江里), 성동리(性洞里), 탁곤리(卓昆里), 대동리(大同里), 소제(蘇堤)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소제리라 해서 대전군 외남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35년 대전부제 실시에 의하여 소제정(蘇堤町)이라 하여 대전부에 편입되었다. 1946년 해방 이후 왜식 동명 변경에 따라 소제동(蘇堤洞)으로 고쳤으며, 그 뒤 대전시 동구에 속하게 되었다. 1989년 1월 1일 대전직할시 동구 소제동이 되었다.
〔특이사항〕행정동이자 법정동인 소제동은 1993년 12월 현재 15통 81반을 관할하고 있으며, 면적은 0.36㎢이다. 그리고 173세대에 7,633명(남 3,853, 여 3,780)이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지명>
동대전성결교회〔교회〕
〔위치〕소제교 동쪽, 도운교회와 대동오거리 사이의 계족로(鷄足路) 변에 있다.
동문교회〔교회〕
〔위치〕소제동 새마을금고와 대동오거리 사이의 계족로(鷄足路) 변에 있다.
며느리 바위〔바위〕
〔위치〕소제(蘇堤) 뒷산에 있었다. 산을 다 까뭉개서 현재 위치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자양동에 있는 대전실업전문대학의 서쪽이 되겠다.
〔유래〕전설에 따르면, 소제 마을에 사는 노랭이영감이 시주하러 온 스님을 푸대접하여 홍수가 나서 집이 몰락했다. 그 때, 며느리는 도승의 권고로 집을 뛰쳐 나와 이곳까지 도망쳤으나 천둥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본 것이 화근이 되어 바위로 변했다한다. 그래서 이 바위를 며느리 바위라고 부른다.
묘각사(妙覺寺)〔사찰〕
〔위치〕대전시 동구 소제동에 있다.
〔유래〕절로 1924년에 창건하여 대성산(大星山) 법주사(法住寺)라 하였다가, 1946년 산내면(山內面) 정생리(政生里)에 있는 묘각사(妙覺寺)를 옮겨 와서 다시 대성산(大星山) 묘각사(妙覺寺)라 한다.
소제(蘇堤)〔마을〕
〔위치〕솔랑이 서쪽, 소제호 부근에 자리한 마을로서 지금의 철갑교 동쪽, 우암 송시열 고택 부근에 있었다.
〔유래〕소제호(蘇堤湖) 부근에 있었던 마을로서, 소제호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특이사항〕조선시대 효종(孝宗) 때에 거유(巨儒)인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읽고 소요하던 곳으로서, 그 고택은 소제동 파출소에서 계족로 건너편에 있다.
소제동노인회관〔노인정〕
〔위치〕소제동파출소 남쪽에 인접해 있다.
소제동사무소〔행정〕
〔위치〕철갑교 남쪽, 대동천 변에 있다.
소제동우체국〔행정〕
〔위치〕소제동파출소와 가양교 사이의 계족로(鷄足路) 변에 있다.
소제동파출소〔행정〕
(위치)소제동사무소 동쪽, 계족로(鷄足路) 변에 있다.
소제호(蘇堤湖)〔못〕
〔위치〕소제 마을 부근에 있었다.
〔유래〕소제호(蘇堤湖)는 솔랑산 아래에 풍경이 으뜸가는 방죽이어서 차지기 소(蘇) 자에 둑 제(堤) 자를 따서 소제호(蘇堤湖)라고 하였다.
〔특이사항〕소제호(蘇堤湖) 부근에는 봄이면 개나리꽃이 만발하였으며, 일제시대부터 대전역 건설에 따라 마을이 커져 방죽을 메웠다.
솔랑이(소을광이, 솔광이)〔마을〕
〔위치〕소제(蘇堤) 마을 서쪽에 있던 마을로서, 지금의 철도아파트 부근에 있었다.
〔유래〕솔랑산 아래에 마을이 있으므로 솔랑이라고 불렀으며, 이것이 변하여 소을광이, 솔광이라고 하였다.
〔풀이〕솔랑산의 ''솔랑''에 접미사 ''이''가 첨가되었다. 아울러 ''솔광이>소을광이''에서는 ''ㅡ''모음첨가로 인한 음절확대이다.
〔특이사항〕 옛날부터 솔랑산에는 뗏집을 짓고 글을 읽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마을에는 글을 깨우친 사람들이 많았다 한다.
장승〔장승〕
〔위치〕철갑교 옆에 있으며, 작은 돌장승으로 천하대장군 하나뿐이다.
철갑교〔다리〕
〔위치〕가제교와 소제교 사이, 동사무소 북쪽 대동천에 놓여 있다.
철도아파트〔아파트〕
〔위치〕철갑교 서북쪽, 정동(貞洞)의 대전기관차사무소 사이에 있다.
< 역사인물 >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고택
소제동 새마을금고 동쪽에 있다.
우암의 고택은 서쪽에 자리한 소제못 동쪽 솔랑산 산기슭 제방위에 있었다. 그 둘레만도 무려 2만평(약 3만평임)이 넘었다는데 여기에 고택과 기국정(杞菊亭)을 짓고 공자(孔子), 주자(朱子)의 학문을 추앙하여 마을 이름마저 해좌궐리(海左闕里)라 하였다. 지금은 그 고택의 일부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