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八及께서 중국 唐나라 조정에 出仕하셔서 나이 18세에 한림학사( 翰林學士)가 되셨는데 간신들의 참소(讒訴)를 입어 축출(逐出)되시니 동료 7분(설인경,허동,유전,송규,최호,권지기,공덕수)과 함께 바다를 건너 동쪽으로 건너 지금 평택인 팽성 용주방에 다달아 머무시어 사시니 우리 東方의 林氏는 여기서 비롯되어 면면이 이어저 내려오고 있다.
시조 學士公 八及의 동도(東渡)시기는 당나라 문종조와 그후 후당의 명종조로 밝히고 있으나 년대로 보아 서기 827년에서 933년에 이르는 기간으로 약100년의 기간이되고 지금으로부터 약 1,100년 전후가 된다. 혹은 거금 3,000년 전으로 소급되는 주무왕원년 의 동도설도 있다.
그러나 薛氏의 시조 인경공(仁敬公)의 동도시기와 8학사의 동도시에 [李씨(唐王의 姓]의 운수가 다하였으니 현인(賢人)들이 참소(讒訴)를 당하는구나]라는 구절이 있어 미루어 본다면 8학사 동도시기는 최소한 당나라가 망하기 전이거나 이미 망할 징조가 농후(濃厚)하였던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당나라가 망한 시기가 907년이고 보면 시조 동도시기는 830년대(당 문종827~840년)에서 900념의 70년 사이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시기는 고려 건국된 918년과 신라가 망한 935년의 이전으로서 族譜의 기록으로나 여러 가지 史料의 면에서 무리없는 추정(推定)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