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봄이던가. 계명대에서 동천이랑 분숙이랑 같이 시전을 열고 찍은 사진

그리고 울산으로 이동하여 지금은 이름도 잊어버린 어느 찾집에서 시전을 열고..... 아마 영상분과 성진이가 따라와서 찍어준 사진인 듯 하다. 그리고 한가지.... 우리들 시를 본 백무산시인이 지식인적 낭만성에 대해 쓴소리를했다고 분숙이를 통해 들은 바 있다.

1989년 8월 대구민문연 문학분과 시절 문학강좌를 열었다. 아래 두장의 사진은 문학강좌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전단지의 앞뒤면이다. 참고로 목요일 일정과 토요일 일정이 강사의 일정상 바꿔 진행하였다.


문학강좌를 마치고.... 강좌내용을 직접 정리하였다. 수동타자기로 열심히 타이핑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연대표기를 민중문화건설투쟁 10년으로 한 게 지금보니 이채롭다. 광주민중항쟁을 시점으로 년대표기를 했던 것 같다. ㅋㅋ

그리고 2년뒤, 노문연이 통합되고 1년여가 지난 시기, 다시한번 문학강좌를 열었다. 이 포스트는 아래쪽에 수강권이 같이 인쇄된 관계로 수강권을 잘라내니... 이런 찌리몽땅한 모양이 되었다. 분숙이랑 동천이랑 셋이서 바케스에 풀을 담아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 곳곳으로 붙이러 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포스트의 제작은 (구)노문연 미술분과에 있었던 김진우형에게 맡겼던 기억이 난다.

여전히 적자를 봤지만... 그래도 꽤많은 사람들이 '예술마당 솔'을 찾아주었다. 강좌를 선전하기 위한 전단지의 앞뒤면. 노교협 이은경 간사가 전단지 모양을 내는 걸 보고 많이 배워서 이 전단지를 만들었다. 또하나 기억나는 것은 수요일에 강의한 올산의 정인화 시인이 목요일인가 금요일인가까지 강좌와 뒤풀이에 남아 있었다는 점과... 그래서 뒤풀이 비용이 많이 나왔다는 점.... ㅋㅋ


기타 문학분과 작품들은 틈나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첫댓글 ㅎ 재밌다. 아련하기도 하고.... .찻집 이름은 '차마실'이고 백무산 시인이 우리에게 한말은 '얘들 왜이래, 다시 살아'였지. 그말 듣고 나 오랫동안 글 못썼다. 많이 힘들었고 아팠다. 백무산 시인은 나의 스승이시다. 지금도 늘 옆에서 힘이 되어 주시는 분이다. 옛날에 나한테 그랬다는 말 하면 지금은 그냥 멋적게 웃으시지. 그리고 홍승룡 선생님 강의록 저거 내가 정리한 거네. 참 똘똘했네. 지금 저런 글 쓰라고 하면 죽어도 못쓸 것 같다^^ ㅎ 안재성 선생님은 가끔 연락하며 뵙고 정인화 선생도 지난 봄에 한번 뵈었지. 늦둥이 나아서 애 키운다고 바쁘셨더라. 최근에 시집도 새로 출간했대. 그리고 오철수 ㅎㅎㅎ 천재적 광기가 있으
신 분이지. 지난 해 서울서 뵈었는데 노문연 시절 이야기 하니까, 마치 그 옛날 우리와 밤새 퍼마시며 놀던 그날 밤 같은 분위기로 껄껄 웃으시더구나. 귀중한 자료들이다. 이미역사가 되었구나. 한 시절을 건너왔다는걸 실감나게 하는 자료들이다. 모아서 정리하고 올ㄹ줘서 고맙다. 오늘 밤 가슴이 먹먹했다.
고맙구나....분숙.....
참! 아련하네요.
풍물분과... 진동에서 날뫼로.... 그리고 해체하고 만든 이름이 가물가물하네.... 시민회관에서 한 공연을 보러 간적이 있었지...
오호!! 상태가 아주 양호한 빛염님의 사진이오.
고맙습니다....
나도 풍물분과 사진있는지...함 찾아볼까나? 사진은 상구형이 많을것 같은데....
그래라....다른 분과들 사진들도 올려주렴...
이 강좌를 듣고서 노문연을 알게 되었네..
아마 1989년 여름강좌인듯 합니다. 이렇게 발빠르게 방문해 주셔서 감사... 사실 이 카페가 겨울인데... 형이 찾아와주시 요즘 날씨처럼 봄같습니다.
아! 아름다고 아련한 시절이네요....
그리운 찌라시의 시절들...
그래도 이곳의 주인장 같은 분이 있어 그 시절을 추억하네요...
고맙습니다.
그대 참 열심히 살았네요..
숨고 싶어요
열심히가 아니고 함부로 살았답니다.
예전에 어떤 신춘문예 당선시를 읽었는데
함부로 살았다란 구절에서 확 다가왔던 기억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