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11일, 2010 음악춘추 콩쿠르 본선이 한창인 서울 유림아트홀(강남구 압구정동). 피아노 앞에
앉은 재홍이의 심장이 유난히 쿵쾅거렸다. 큰 대회 출전 경험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번 대회는 특별했다.
손열음₩김선욱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젊은 피아니스트를 배출한 국내 3대 음악 콩쿠르(concours₩예술 분
야의 우열을 가리는 경연)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본선 과제곡은‘5분 내외의 고전(낭만)시대 작품 한 곡’. 재
홍이의 선택은 폴란드 작곡가 쇼팽(1810~1849년)의 스케르초 1번이었다. 호흡을 가다듬은 재홍이의 손이 건
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 단조의 어두운 음색에 힘 있는 연주가 곁들여진 재홍이의 연주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결과는 초등 5년부 1등. 또 하나의 차세대 피아니스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꿈의 무대에 한발 한발 오를래요"
유튜브로 피아노 독학한 박재홍 군 천재성 인정받아 궨대구영재원궩 발탁 3년 만에 급성장‐ 콩쿠르 상 휩쓸어
학원도 손든 천재성… 형편 어려워‘유튜브 귀동냥’으로 피아노 독학 박재홍 군(대구 복현초등 5년₩사진) 앞엔
늘‘피아노 영재’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지난해만 해도 음악춘추 콩쿠르 우승을 비롯해 2010 전국학생음악콩쿠르 피아노 부
문 초등 5~6년부 1위, 2010 국제하이든콩쿠르 초등 5학년부 1위 등 웬만한 대회의 큰 상을 휩쓸었다. 본격적으로 대회에 나가
기 시작한 2008년 이후 받은 상만 10여 개. 연평균 3개꼴이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재홍이는 피아노가 좋아 취미로 배우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재홍이가 처음 피아노와 친해진 건 목사인 아
버지의 교회를 드나들면서부터였다. 아버지 박주영 씨에 따르면 재홍이는 악보를 제대 로 읽지 못하던 여섯 살 때부터 자신이 들
은 멜로디를 외워 곧잘 건반으로 짚어낼 정도로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다. 엄마를 졸라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건 초등
1학년 때. 하지만 학원이 재홍이의 재능을 품어준 건 고작 8개월이었다. 학원 강사는“더 가르칠 게 없으니 전문가를 찾아가는 게 좋겠다”며 재홍이 부모님에게 재홍이를‘큰물’로 보내 라고 권유했다. 비싼 강습비를 부담할 만큼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재홍이는 그때부터
혼자서 피아노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 재홍이의‘선생님’은 인터넷이었다.
재홍이는 틈만 나면 인터넷으로 유명 피아니스트의 동영상 연주를 찾아봤다. 모르는 게 생기면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도움을 받았
다. 재홍이의‘즐겨찾기’웹사이트는 단연 동영상 전문 사이트 유튜브(www.youtube.com)였다. 세계적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키워드 하나로 검색해 감상할 수 있는 유튜브는 재홍이에게 더없는‘보물 창고’였다.
◆ 영재원 진학으로 재능에‘날개’…“라흐마니노프 같은 연주가 될래요”
재홍이 부모님은 피아노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는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늘 고민이었다. 때마침 아버지 박씨가 알고 지내던
박명기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현재 아시아 오페라단장)이 재홍이의 대구예술영재교육원(이하‘영재원궩) 시험 응시를 권했다. 2005
년 문을 연 영재원은 대구시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타악₩현악₩국악 등 부문별 음악 영재를 발굴, 지도해오고 있는 비영리 교육기관이다.
초등 3년 때던 지난 2008년, 재홍이는 영재원에 들어갔다. 딱 다섯 명 선발하는 피아노 부문 개인실기 학생 선발 시험에서
‘유일한 초등생이자 최연소 장학생’으로 당당히 합격한 것. 재홍이의 피아노 실력은 그때부터 몰라보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원
할 때면 언제든 들러 연주할 수 있고, 매주 전문 음악가를 사사(師事₩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음)해 이론수업을 받을 수 있는
영재원은 재홍이에게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엇비슷한 실력을 갖춘 또래 영재원생들 과의 경쟁도 도움이 됐다. 영재원에서 학생 지도를 담당하는 신병주 부장 선생님(대구
시교육음악협회장)은“지곤 못 사는 성격의 재홍이에게 영재원에서의 경쟁은 좋은 자극제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재
홍이를 가르치고 있는 이성원 계명대 음대 교수는 재홍이에 대해“음악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고 발전 가능성이 큰 아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재홍이의 가장 큰 장점이요? 연주하는 곡마다 기교를 부리는 대신 곡 특유의 자연미를 살려 연주할 줄
안다는 거죠.” 재홍이가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는 러시아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 (1873~1943). 라흐마니노프 같은 세계적 연주가가 되는 게 장래 희망이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예요. 러시아에서도 3대 협주곡에 꼽힐 정도로 유명한 음악이죠. 저도 라흐마니노프처럼 클래식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