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사람이 있어요! 제발 우리 아들 좀 살려주세요!” 지난 3월 4일 새벽 4시경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주택화재 현장에서 진화작업을 하던 소방 대원들은 다급하게 외치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9명의 소방 대원들이 연기 자욱한 건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소방 대원들이 어둠 속에서 바닥을 더듬으며 수색하던 순간 2층 건물이 내려 앉으면서 대원들을 덮쳤다. 끈질긴 구조작업 끝에 3명의 소방 대원들은 구조 됐지만 나머지 6명은 이미 숨이 멈춰있었다. 우리나라 소방 역사상 처음으로 소방관 6명이 한꺼번에 순직하는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더욱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순직한 소방관들이 너무나 인간적이고 애처로운 뒷얘기들이다. 그 중에서도 결혼식을 1주일 앞둔 3일 밤 약혼녀에게 남긴 휴대폰 메시지에 “걱정하지 말고 잘자! 준우가 꿈에서 밤새 지켜줄게!” 하는 마지막 말을 남긴 박준우 소방관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또한 더욱 우리를 숙연케하고 감동을 주는 것은 순직한 박준우 소방관의 유족들이 “119 구조대원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숨진 아들의 시신이 마지막으로 한번 더 남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기증한다” 며 시신의 기증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소방 현실과 소방관들의 근무조건은 너무나 열악하다. 전국 소방관 수는 약 2만 3천여명, 소방관 1인당 담당 인구수는 2천 8백 여명으로 미국 (208명) 에 비하면 약 10배에 달한다. 안산시의 경우는 소방관수 150명, 1인당 담당 인구수는 3,533명이다. 인원의 부족 현상은 화재 현장까지 이어져서 소방차 1대당 평균 탑승인원이 일본 5명, 미국 및 영국 6명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2명에 불과하다.
화재 현장에서 1명이 소방호스를 잡고 불과 맞서 싸우는 사이에 나머지 한 사람이 펌프를 조작하고 지휘와 연락업무까지 1인 3~4역을 담당하다 보니 사고자 잦다. 목숨을 걸고 화재 현장까지 뛰어드는 소방관들에게 주어지는 한달 위험 수당은 2만원에 불과하다.
또한 이들의 근무 형태는 24시간당 비번 교대 근무이다. 당일 번은 화재 및 구급, 구조현장 출동과 대기 근무인데 안산 소방서의 경우 하루 평균 40여 차례를 구급 및 구조현장에, 10여 차례를 화재현장에 출동하고 있다고 한다. 비번 일에는 지(地) 수리(水利) 검사를 비롯하여 경방조사 등 화재 예방검사를 실시하느라고 제대로 휴식 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런 근무조건이 순직자 수를 증가 시키는 이유의 하나라고 이들은 말하고 있다.
이렇게 격무에 시달리는 소방관들의 처우는 아주 열악한 편이다. 10년차인 소방관의 작년 연봉이 2천만원 수준, 보훈혜택도 군경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군경이 순직하면 당연히 보훈 혜택을 받지만 소방관은 심의 결정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화재현장에서 부상을 당해 치료를 받는데 있어 특진이 안 될 뿐 아니라 화상으로 인한 성형수술 같은 것은 일체 인정이 되지 않아 자비로 치료를 해야 하는 형편이다. 입원 기간 중에는 근무수당 등이 지급되지 않아 불이익을 받을 뿐 아니라 보상 같은 것은 그 제도 자체가 없어서 최소한 산업체 근로자들이 받고 있는 산재혜택 정도라도 받게 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지난 3월 5일 저녁 TV 뉴스 시간에 서울 동대문 소방서에 기관 요원으로 근무 중이라는 소방관이 “지난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 때 현장에 출동해서 24명의 인명을 구출해 냈는데 그때 무리로 지금도 오른쪽 팔에 마비 증세가 오지만 치료비가 없어서 치료를 못 받고 있다” 면서 “화재현장에서 부상을 당하면 정부에서 치료해 주는 줄 알았는데 자비로 치료를 해야 한다니 이제 누가 위험을 무릅쓰고 화재 진압이나 인명 구출을 하겠느냐?” 고 절규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 순직 소방관 영결식에서 마지막 보내는 동료를 붙들고 “저 세상에 가서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말자” 통곡하던 소방관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이번 화재사고의 진화 및 구조작업은 이면 도로를 가득 메운 불법 주차 차량들 때문에 결정적으로 실패하고 만 인재였다. 화재사고 5분만에 도착한 소방차가 현장 30m 앞까지 밖에 접근하지 못 했고, 붕괴 사고후 긴급 출동한 구조용 중장비가 현장에 접근할 수 없어 구조 작업이 지연됨에 따라 살릴 수도 있었던 소방관들을 죽이고 만 것이다.
또 한 가지 건축 전물가들에 따르면 “부실공사를 하지 않은 이상 공법대로 지은 건물이라면 그렇게 한 순간에 무너질 수는 없다” 는 것이다. 결국 부실한 공사가 고귀한 소방관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는 결론이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인구 밀집 지역의 비상시 소방도로 확보에 나서지 않으면 화재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없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부실공사로 건축한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 할 때 수 많은 인명을 앗아 갈 수 있는 제2, 제3의 홍제동 참사가 재발 할 수 있다는 것도 우리는 똑바로 알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차제에 관계 당국은 시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소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 당국도 겨우 10여 만원의 수당을 올려주고 의무소방 제도를 구상한다는 등의 일시적인 미봉책으로 마무리 지으려 하지 말고, 그러다가 얼마간의 세월이 흐르면 망각해 버리는 전철을 되풀이 하지말고 법 개정과 제도의 개선을 통해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 해야만 한다.
이제 순직 소방관을 애절하게 추모하는 수 많은 국민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소방관들의 처지에 마음 아파하면서 줄을 지어 모금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나마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나, 아마도 저승에서 이를 내려다 보는 순직 소방관들을 말 할 것이다. “나는 국민들의 동정심이나 바라는 거지가 아니었다” 고 ….
우리 모두는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한 사람의 인명이라도 더 살려 내려고 불길 속에 뛰어 들어 순직한 영령들 앞에 옷깃을 여미고 삼가 명복을 빌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