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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래 대하소설『태백산맥』은 여순사건이 있었던 1948년 늦가을 벌교 포구를 배경으로 제석산아래 자락에 자리잡은 현부자네 제각부근에서부터 시작하여 빨치산 토벌작전이 끝나가던 1953년 늦은 가을 어느날까지 우리 민족이 겪었던 아픈 과거를 반추해 내고 있는 장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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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트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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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부자네 집 소설태백산맥이 문을 여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집이다. 정하섭과 소화의 사랑이 묘사되기도 한다. 집의 위치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들판, 세도가처럼 집의 규모나 담장 출입구 등을 보면 왜색이 완연한 부잣집 가옥이며, 그 구조는 지주와 소작인의 역학관계를 설명한다. 현부자네집 앞에 소화처럼 아담하고 정겨운 무당의 집이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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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정리 교회 소설에서 서민영과 해직된 이지숙이 야학을 열렀던 곳으로 묘사된 석조예배당이다. 이지숙과 이근술이 이곳에서 야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상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벽에는 벌교교회라는 현판이 어둑하니 남아았고 지금은 유치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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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조정래 생가 조정래가 소설의 꿈을 키웠던 집이다. 지붕만 초가에서 슬레이트로 바뀌었을 뿐 옛모습 그대로 전형적인 시골집이다. 작가는 이집에서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때까지 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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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화다리 일제 강점기인 소화5년에 건립된 다리로서 본래 부용교라는 이음이 있었지만 친일의 상징으로 소화다리로 불렸다. 이 다리는 여순사건의 회오리로부터 6.25의 대격랑까지 우리민족이 겼은 비극과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양쪽에서 밀고 밀릴 때마다 이다리에서 총살형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 |
▶ 벌교공원(M1고지) 이곳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의 신사가 있었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전형적인 농촌인 모습인 고읍들과 현대화된 도시가 맞다아 있는 것 같은 벌교의 이중적 구조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슬프디 슬픈 가곡 『부용산』을 기리는 부용정과 민족음악과 채동선 선생의 육필 악보가 새겨진 기념비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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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여관 전형적인 일본식의 2층 목조건물로 옛모습 그대로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의 중심거리였던 이곳에 남아있는 이건물은 실제 보성여관이었다. 소설에는 임만수와 그 대원들이 숙소로 이용하기도 했다. 현재는 민가집으로 벌교초등학교 옆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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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다리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홍교, 부용교(소화다리)와 함께 포구의 양란을 연결하는 세개의 교랑가운데 하나이다. 소설에서는 염상진에게 항상 열등감을 사로잡힌 동생 염상구가 벌교의 주먹을 제압하고자 철교의 중앙에 서서 기차가 가까이 올때까지 누가 더 오래 버티나 담력을 겨루는 결투를 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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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애병원 양의사가 후생병원을 운영했던 곳으로 소설에서 자애병원으로 등장한다. 부상당한 경찰과 좌익을 차별없이 치료하고 그로인해 재판을 받고 처형 직전에 살아나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정하섭을 치료하는 전명환 원장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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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릿재와 율어 존제산을 넘는 주릿재는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좁고 구 볼거리는 험한 산길이었다. 소설에서는 산줄기들이 겹을 이루며 천연의 요새를 이루고 있눈 율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다. 염상진이 이끄는 야산대의 활동과 심재모의 모습을 이곳 주릿재에서는 느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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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막 소설태백산맥을 말하면 저절로 생각되는 것은 벌교 꼬막이라고 할 만큼 벌교하면 꼬막이다. 오염없는 여자만(람사습지원)의 깊고 찰진 갯벌에서 생산되기에 다른 어느 지역에서 잡은 꼬막보다도 육질이 쫄깃거리고 맛이 좋기로 이름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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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연사 벌교시가지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부용산에 있는 사찰이다. 소설에서는 책방주인이며 세포책인 문기수가 염상진의 최후의 명령의 접수하기 위해 불공드리는 신도로 위장하고 용연사로 향하는 대목이 그려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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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교역 벌교역은 상가들이 번창한 생활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었다. 소설에서는 발교역에서 여러가지 행사와 사건들이 펼쳐지는 것이 그려지고 있다. 즉 보성평야와 바다에서 생산되는 산물에 대한 일제의 가혹한 수탈이 한곳으로 집결된 곳 중 대표적 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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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조합 일본인들이 관공서 형 건물로 즐겨지었던 모습으로 원형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소설에서는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송기묵이 금융조합장으로 근무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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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교(횡갯다리) 벌교 포구를 가로지르는 세칸의 무지개형 돌다리로서 우리나에서는 그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워 보물 제304호에 지정 되어 있다. 원래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뗏목다리가 있었던 것을 1728(조선 영조 4년)에 홍교를 건립했다 한다. 벌교 상징일 수 밖에 없는 홍교를 건립했다 한다. 빨치산은 이 다리 중간에 설을 쇠라고 쌀을 놓아두는 등 심리전에 긴요하게 활용하기도 한 태백산맥의 중심공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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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우의 집 대지주 김씨 문중에서 살았던 집이다. 소설에서는 기품있고 유학자서의 양식을 가진 지주 김사용의 집으로 그려지고 있다. 집의 형태와 규모에서 전통적인 양반집의 풍채를 한 이 곳은 양심적 지주로 그려진 김사용과 그의 아들 김범우 생활상을 살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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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도방죽 일본인 중도(나카시마)의 이름을 따붙여진 간척지의 이름이다. 그가 살았던 집은 들판 첫머리에 지금도 남았다. 소설에서는 방북을 쌓던때의 그 어렵고 힘들었던 일을 하대치의 아버지 하판석 영감이 이야기하는 형식을빌어 묘사하고 있다. |
첫댓글 ,,,,,공부 잘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