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1월 11일 화요일
11월 6일 전도를 출발하여 군산 정읍 광주를 지나 부산까지 전도를 하고 부산에서의 전도일정을 끝 마치고 대구로 전도를 가는 중이였다 대구 톨게이트를 나서는데 고속도로 요금을 계산하고 있을려니 뒤에 있는 차가 “빵빵”대길래 나는 내심 “어허 그사람 성미도 급하셔라 돈을 계산 하여야 차를 뺄 것 아닌가?” 했는데 계속 “빵빵” 하길래 무슨 일인가하여 후사경으로 뒷 차를 바라보니 뒷 차 운전수께서 차의 라이트를 번쩍 번쩍 하면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아! 저분이 나를 아시는 사람인가 보다” 생각하고 차를 톨게이트 앞 가장자리에 멈추었고 나는 차에서 내렸고 동시에 그가 나의 차 뒤에 바짝 붙혀대고 내리면서 나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안녕 하세요? 저어 어디로 가시는 길 이신지요 그리고 어느교회 목사님이십니까?”
“예에! 저는 부산에서 전도를 마치고 대구로 전도를 가는 길 입니다 그리고 저는 어느 일정한 교회를 시무하는 목사는 아니고 그냥 거리에서 전도를 하는 노방 전도자입니다만?”
“아아! 그렇습니까? 수고가 너무 많으십니다”라고 하고 난 후 자기의 차로 가서 옆자리에 탄 비서와도 같은 사람에게 무어라고 주고 받은 후 그에게서 무슨 봉투를 하나 끄집어 내어 거기에 돈을 잔뜩 넣어서 나에게로 가져왔다
그리고 나를 보고 우물쭈물 하더니만 이어서 “저어 저도 교회 안수 집사입니다 제가 전도사님께 헌금을 좀 하고 싶습니다 이것 얼마인지 세어보지도 않고 주머니에서 잡히는 데로 넣었습니다 다른 뜻은 아니고 그냥 헌금을 하고 싶어서 그럽니다”라고 하셨다
나는 순간 어리둥절 하기도 하고 또 이분이 뒤에서 “빵빵”대며 나를 향해 반색을 하면서 만나자고 할 때 나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나의 차 (코란도 패밀리)뒤에 달려있는 스피아 타이어 캐이스에 쓰인 전도 문구를 보아서 반가와서 그러나 생각 하였었다 그런데 이들은 나를 처음보면서 갑자기 헌금을 하겠다고 하니 나의 생각에 “아하! 이분들이 나의 차 뒤에 있는 전도문을 보고 감동을 받은 것이로구나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이들을 감화 시키신 가 보다”라고 생각 하고
“그러시다면 잠깐 제 차에 들어오실까요? 잠시라도 같이 기도를 한뒤에 그 헌금을 받도록 하지요”하니 그는 혼자서 나의 차에 들어왔다
*그 당시 나의 차 스피아 타이어 캐이스에 쓰인 전도문구는 이와 같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 하리요? 주 예수를 믿으라 영생을 얻으리라!]*
그러면 이 악기를 사용 하게된 경로를 하나하나 기록하여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법의 전도를 하게끔 인도 하신 데 대하여 간증을 하겠다 여기에 쓰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역사 하신 현장이므로 살아 계신 하나님이 증거가 여기에 생생하게 나타날 것이다
악기 하나하나를 구입하게 된 경로도 내가 그냥 사서 사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인도 하셨음을... 또 그 악기를 사용하여 전도를 했을 때 나타나는 반응을... 그리고 그러한 방식으로 전도를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말씀] 이러한 전도방식의 효과적인 면을 뒷받침 해주고 있음을...
그리고 전도자의 모든 일에 있어서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하나님께서 일일이 간섭하시지 않는 것이 없음을 여기에 간증하여 기록한다
*1990년 봄. 첫째로 작은북을 사서 찬양에 맞추어 치고 다니며 전도하게 하신 경로를 설명하겠다. 나는 당시 전북 군산에 외항선 선교를 하러 내려가서 그곳에서 알게된 청년 이 철원 형제를 만나서 전도에 동역하게 되었는데 그가 나를 따라 다니며 전도를 같이 하게된 동기와 그와 같이 전도를 다닐 때에 일어난 에피소드도 많이 있어서 기록 할만한 간증 거리이지만 여기서는 전도 장비를 갖추게 한 경로를 설명 하기 위하여 이분의 얘기가 잠깐 나온다 그분과 같이 전도를 하게된데 대하여서는 또 다음에 쓰기로 하고 이 경로를 먼저 설명하겠다
우리 두 사람은 누구보다도 열심을 내어 시간이 날 때마다 각 지방을 돌면서 전도를 했었는데 그때는 차가 없었던 시절이라 버스를 이용하여 다녔었고 더러는 형편에 따라 렌트카를 세를 내어서 이 철원 형제가 운전을 하고 다닐 때도 있었다 그때의 전도 여행은 버스를 이용하였으며 그 어떠한 일이 시작된 그날은 수요일 이였고 우리는 그날 전라도 순창읍내를 전도를 하고 있었다 해가 지도록 전도를 한 우리는 잠자리를 구해야 되었는데 일단은 어느 교회에 찾아 들어갔다 그 교회에서 수요일 예배를 드리기 전에 목사님 사택을 먼저 방문하여 우리는 순수한 전도자들이라고 소개를 하고 난 뒤 그분 목사님께서 나의 신학의 경력을 묻길래 나의 신학교 졸업한 과정과 외항선교 경력을 말씀드렸더니 나의 신학 경력이 그의 교회 소속의 신학과 같은 애장 통합측 이였고 같은 신앙관을 소유한지라 그는 마음을 놓고 우리를 영접하여 교재를 나누게 되었다
왜 그분 목사님께서 우리를 경계하여 이것 저것을 물어 보았는가 하면 그 당시에는 다미 선교회라는 사이비 이단 단체가 1992년 10월28일 예수님이 오신다고 설치고 다녔던 때이니 만큼 각 교회서도 전도자에 대하여서는 일단은 색안경을 끼고 볼 정도로 전도자에 대한 경계가 유달리 심한 때 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교회 목사님의 영접을 받고 차를 한잔 나누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수요예배 시간에 성도들에게 나팔로 특송을 불 것을 신청하여 약속을 받았다 그 당시 내가 불고 다니는 전자 나팔은 불고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 이였었다 (그것은 유럽 전도여행을 할 즈음부터 불었고 유럽에서도 불고 전도를 하였으며 그 다음부터 지금까지 불어온 악기였다)
그렇게 하여 그곳 순창교회에서 특송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에 나는 십자가를 들고 나가서 가슴에 꽂고 나팔을 불었다 제목은 거룩한성을 분 것으로 기억이 난다 나는 교회에서 특송으로 연주를 할 때에는 그 곡을 많이 불렀다 그 특송이 끝나자 많은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아멘으로 화답을 하였다 그후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께서 우리를 식당으로 데리고 가서 푸짐하게 대접을 해주고 난 뒤에 우리에게 물으시기를 “지금 전도사님과 형제는 어디로 갈 것입니까?” 하기에 “이왕에 전도를 나왔으니 오늘은 춥지 않으니 교회 의자에서 자도록 하고 내일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라고 하니 “안됩니다 잠을 잘 자야 전도를 많이 하지요” 하시더니만
“가만있자 사택은 비좁아서 곤란하고 참! 좋은 데가 있지!” 하시며 식사를 다 마친 우리를 차를 태우고 어느 기도원으로 안내하여 그곳 기도원의 원장에게 방을 얻어서 우리의 침실을 보아주고 목사님은 돌아 가셨다
그곳 기도원의 이름은 변화산 기도원 이였고 그 순창 교회의 이름은 순창 제일 교회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으나 그곳에 있는 유일한 예장 통합측 교회였었다 이제 우리는 그곳 변화산 기도원에서 하룻밤을 잘 쉬고 난 다음날 아침밥까지 대접을 받고 출발을 하였는데 출발 하기 전에 그곳에서도 붉은 망토를 어깨 너머로 차고 나팔을 미니복스에 연결 시켜서 불었는데 그 나팔소리를 듣고 나의 어깨에 걸친 망토에 쓰인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라는 문구를 읽은 원장님 부인이 갑자기 엎드려서 통곡을 하며 회개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울면서 회개하는 말이 지금도 생각이 나는데
“아버지 이년은 이곳에 가만히 앉아서 성도들이 하나님께 바쳐 드리는 헌금만을 받아서 넙죽 넙죽 쳐 먹고 놀기만 하는데 저 전도자들은 밥도 못 먹어 가면서 전도를 하러 다닙니다 아버지 이년은 아버지 앞에 면목이 없습니다” 하면서 한참 울면서 회개 기도를 하더니 자기 방에 가만히 들어가더니만 장롱 뒤에 숨겨 놓았던 돈인지는 알 수 없지만 꼬깃꼬깃 구겨진 돈 6만원을 내놓으면서 “이 돈은 나 혼자 알고 있는 돈인데 이것이 내 것이 아니고 아버지 하나님 돈인데 아버지께서 두분의 전도를 위하여 사용하도록 주시랍니다”라고 하시면서 내어놓았다 우리는 그 귀한 돈을 받아 쥐고 그와 그의 기도원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를 해 드리고 그의 기도원을 나와서 전라도 정읍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 기도원의 원장님은 장로님이었고 우리에게 헌금을 하신 분은 장로님 부인 권사님이셨다) 우리는 그의 회개하고 내어놓은 돈이 너무 귀하여서 둘이서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제일로 합당할까?
하고 의논을 했는데 악기를 사기로 합의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미니복스가 최초로 생겼고 그 미니복스에 찬송을 틀고 탬버린을 치면서 다녔었는데 이 철원 형제가 하는 말이 “전도사님 탬버린은 너무 약해요 북을 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네요” 하기에 “그럼 그렇게 하자 왜 진작에 그러한 생각을 못했지?” 하면서 정읍에서 최초로 작은북을 사서는 치는 연습을 하고 곧 바로 찬양을 틀고 작은북을 치기 시작하였는데 더없이 신명이 나고 효과적 이여서 그 이후로 작은북은 내가 치고 이 철원 형제는 작은북에 맞추어 큰북을 사서 치고 같이 다니게 되었다 이 북을 치게된 동기가 원장님 부인께서 회개하고 내어놓은 그 물질이 너무 귀하여서 그 돈이 계속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하여 궁리한 결과가 북을 사서 치게 되었으니 이일도 너무나 귀한 일이어서 전도 기록에 남긴다
훗일에 그곳을 한번 더 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그녀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전도사님 지난번에 하나님께서 저의 회개의 기도를 들으시고 또 두 분의 일에 도운 것을 보시고 기뻐하셔서 이 기도원을 확장하게 하시려고 땅을 3,000평을 주셨답니다 하시면서 우리에게 자기가 끼고 있던 금반지를 빼내어서 주면서 말씀을 하셨다 이토록 그는 신앙 양심에 따라 우리에게 선을 두 번 베푼 일이 있었는데 그 이후 지금까지 그분을 만난 일이 없었고 꼭 꿈을 꾼 것 같은 기억으로 나의 속에 남아있는 꿈이 아닌 분명한 사실 이였다
그때의 변화산 기도원의 위치는 정읍 부근 이였는데 어딘지 알 수 없었고 지금 차로 돌아다니다가 보니 전라도 강경 부근인지 논산 지나서 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가다가 보면 변화산 기도원이라고 쓰인 팻말을 발견하는데 혹 그 권사 님이 그곳으로 옮겨갔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들어가 보질 않았으므로 확인을 못했다 이러한 경로를 통하여 북을 치고 다니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악기를 사용하여 찬양하라는 성경의 말씀도 실감하게 되었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시편150: 3-6]
그리고 둘째로, 전도 장비 시스템 중에서 미니복스를 주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간증을 하겠다 참고로 말하자면 전도자인 나에게 있는 전도의 도구는 모두가 어떠한 경로를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지극히 사랑하시는 자들로부터 나에게 제공하게 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