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民族이라고 일컬어지는 현재의 우리는 고대로부터 여러 민족이 혼합되어 혈연을 형성하고 초기문화의 틀을 서로의 도가니에 부어 융합해 발전시켜 지금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적어도 30년까지 우리는 단일민족 백의민족이라는 제국주의시절의 프로파겐다를 외우고 암송하였으며 유구한 역사 5000년동안 4.7년마다 침략을 받았어도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끌어온 위대한 민족이라고 세뇌되어 왔으며 근간에도 역사의식이 모자라는 친구들과 모임이 있는 자리에는 한두명 어김없이 위와같은 이야기를 지껄이는 친구들도 있다.
단연코 이야기 하지만 인종이나 문화의 100%순종은 없다.이민족의 문화를 수용하고 이민족의 좋은 형질을 선택적으로 이어 받는것이 그 종족의 majority를 살려가는 길이다.<잡종강세>는 어김없이 인간사에도 적용된다.지나족이 자랑하는 다양한 문화는 바로 잡종들이 한지역에 얽히고 섥혀서 만들어낸 잡종강세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거대하고 위대한 한족의 문화라고 치켜세운다.. 바로 약자였음에 주어진 기회에 <허장성세>하는 전체주의의 프로파겐다이다.
현재까지 대륙에서 발굴한 고대문화 유적은 총25개 이며 이 들을 문화적 상사성으로 분류하면 6개정도의 문화종류로 분리가 된다. 문화유적을 발굴할당시의 지역적 특성에 따라 양자강유역의 문화와 황하강유역을 따라 발달한 문화로 나뉘는데 지나당국에서는 양자강의 그것과 황하강의 그것이 발달하는 시점이 거의 같다고 하지만 같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 보인다,바로 현 지나공산당을 이끌어가는 대다수의 핵심 인원들이 양자강유역 출신들이기 때문에 이에대한 전체주의적 프로파겐다를 그대로 믿는것은 편안한 마음을 주질 않는다 학문적인 어프로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위의 도표에는 그저 간단하게 6개정도의 문화가 나오는데 2개는 양자강 유역에서 ,그리고 홍산문화를 비롯한 4개의 고대문화유적지는 황하강 유역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당연히 문화의 루트를 보면 서북지역에서 동북으로 이루어지는 문화의 띠고리가 이루어지고 ,황하의 원류지역인 섬서성에서 양자강으로 이루어지는 동남문화벨트로 되어 있다.
이중에서 우리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 고대문화벨트중 제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지나학자,당국자들이 그 실체를 뒤늦게 파악하고 발표하기를 꺼려하는 최고의 문화인 <홍산문화> 이다;
1. 大汶口文化(bc 4,300~2,400) ★
현 산동성의 陽嶺,泰安 즉 泰山지역에서 발굴된 조기신석기 문화로서 전형적인 북방인류 문화를 보여준다.
- 拔齒 (성인식으로 앞니 2개를 뺀다)이 전통은 전통적인 스키타이흉노,가야.신라,대만원주민,인디언등의 의식.
- 扁頭(cranial deformation-頭蓋骨變型 )미용 또는 부족의 상위그룹의 심볼로서의 위 민족들에게서 실행.
- 피장자 손에 어금니를 쥐게한다.
- 거북 등껍질에 문양조각(후에 갑골문 또는 한자의 원형적 문화원류로 추정)
2. 山東龍山文化(bc 2,500~2,000) ★
위 대문구문화의 지층바로 위에 형성된 지층으로 대문구문화의 전통을 계승한 문화로 판단.
흑도로 대표되는 문화이지만 가장 특징적인것은 바로 이문화가 殷,周時代의 청동제기의 문양을 포함하고 있다. 즉 대문구문화의 후계자인 산동용산문화가 대륙최초왕조인 殷(商),周 의 모태가 되었다.!!!
1)성자애 유적지 -산동성 장구현 용산진에서 발견(1928)
2)양성진 유적지 -산동성 일조현 양성진 (1934)
3)일조현 동해곡 유적지- " 동남부(1973)
4)요현 삼리하 유적지 -산동성 요현 삼리하 (1975)
***銅器의 鑄造 흔적***
5)사수 윤가성 유적지 -산동성 제남현 윤가성
6)추평현정공 유적지 -산동 장구현 용산진 (1992)
7)양분도사 유적지 -산서성 남부
8)변요왕 유적지 -산동성 수광현 (1984)
지나정부에서도 동이족의 문화로 인정하는데 이의를 다는 학자가 없다.
3.河南龍山 및 陝西龍山 문화도 대문구문화의 후계문화 (bc2,700~2,000)
4.仰昭文化 (bc 5,000~3,000)
1921년 스웨덴 Johan Gunner Anderson에 의해 하남성 존치현에서 발굴 되었으며 발굴결과 뚜렸한 동아시아 몽골로이드의 풍습이 발견.
- 헤드헌팅 풍습
- 영혼불멸의 사상
- 1차 매장하여 육신이 부패후 뼈를 추려 재매장하는 풍습(현 한국남부 전라도 등...)
한단고기에서 나오는 배달국이 바로 홍산문화(B.C.4500~B.C.2500), 더 나아가 홍산문화의 전신인 흥륭화문화, 신락문화(B.C.6000~B.C.5000)를 기반으로 세워졌다는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고 매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홍산문화는 요녕지역과 내몽고동부 지역에 광범하게 전개된 6천년 (B.C.4,000)의 신석기 시대중기에 해당하는 2단계 신석기문화로 인식된다. 홍산문화는 앙소문화의 채도와 이전단계의 연속고선문계 토기와 세석기등을 융합하여 한단계 발전하여 전개되었는데 후에 이 지역 하가점하층문화에 연결되고 대륙의 황하유역과 산동반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東夷族'의 활동지역을 문헌상으로 보면, 하북성 동북부와 산동일대, 양자강하류 유역등이다.
산동지역에서 가장 앞서는 신석기문화유적은 북신문화인데, 북신문화는 7천년전까지 소급되어지고 황하의 자산, 배리강문화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또한 B.C.4500년경의 이지역 대문구문화와도 직접적인 연원관계에 있다.
★ 홍산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석묘계(石墓系) 돌무덤이다. 돌을 쌓아 묘실을 구성하는 적석총(積石塚-돌무지무덤)과 돌판을 잘라 묘실벽을 짜는 석관묘(石棺墓-돌널무덤)가 대능하상류지역< 요녕성 우량하유적>에서 발굴되었다.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는 분야가 묘장법인데 죽은 사람을 장례치르는 의식이야말로 오랜기간 변하지 않는 그민족 고유의 전통이기 때문이다.지나의 경우 殷 (나라)이전에는 땅을 파서 묘실을 만들고 시신과 유물을 안장하는 토광묘가 유행하고 있고, 주대(周代)에 들어와서야 나무로 곽을 짜서 묘실을 만드는 목관묘가 유행한다.
역사상에서 <홍산문화와 동일한 석묘계의 묘장법을 채용하고 있는 나라가 古 朝 鮮 >이므로 고조선의 전단계인 홍산문화는 고조선의 선조들이 이룩한 문화로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이 그래서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돌을 이용하여 구조물을 축조하는 방식이 고조선 이후 夫餘, 高句麗 에도 계속하여 전승되는 고유의 산물이기도 하다
지나의 고전이나 사서에 나오는 황제헌원과 대결을 벌였던 치우의 세력 근거지로도 지적이 되기도 하는데 황제헌원과 결전을 벌이며 하북과 산동일대를 개척하여 청구국을 세웠다는 기록은 (사마천의)[사기]에 더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홍산문화 이후 하가점하층문화(B.C.2000~B.C.1300)가 그 지역에 보다 광범하게 확산되어 등장하는데 홍산문화는 하가점 하층문화로 이어졌고 하가점하층 문화는 바로 고조선의 문화였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홍산(紅山)문화는 소하연(小河沿)문화를 거쳐 하가점하층문화로 연결된다는 것은 지나학계에서 거의 공식화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하연문화에 이어지는 하가점하층문화, 구체적으로 풍하 (豊下)문화에서는 고조선의 건국연대보다 조금 앞서는 서기전 2천4백년경으로 보이는 청동기 유적이 발굴되었는데 출토된 유물을 보면 화살촉, 칼, 창 등도 발굴되어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이 건국되었다는 기록의 신빙성을 높여주고 있다. 이 요동, 요서일대에 발굴된 이 청동기 유물은 황하유역에서 발굴되는 청동기 유물보다 연대가 훨씬 빨라 중국 동부지역에 발견되는 청동기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예상 되기까지 한다.
홍산문화의 발견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고대역사를 다시 써야할 정도로 파장이 실로 크다. 지나의 학자들은 지금까지 지나의 <앙소문화>와 대비되는 문화로 <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로 보았었는데 <홍산문화>를 발견한 이후로 이 ★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의 주인공으로 홍산문화★ 를 들고 있다.
<<< 즉, 홍산문화의 주인공을 고조선이나 그 선조로 파악하였을 경우에는 지나의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하북,산동등지의 동이족이 한민족의 선조였다는 근거가 된다. 또한 북신문화-대문구문화-용산문화-악석문화로 이어지는 산동문화와 흥륭화문화,신락문화-홍산문화-하가점하층문화(풍하문화)로 이어지는 요령문화의 주인공이 韓民族의 先祖 가 되는 것이다 >>>
그래서 지나의 학자들도 산동문화의 주인공인 東夷族 이 동북에서 기원하였다고 주장을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느민족이었나를 밝히기를 꺼려하고 전백찬 같은 지나학자의 일부가 사적상에 보이는 辰國(고조선?)이 동이족의 중심지였다고 주장을 하고 있을 뿐이다.
과연 홍산문화는 고조선인의 선조가 일으킨 문명인가? 개인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지나학계에서도 은나라때까지 화하족이 하북성과 산동성을 넘어오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홍산문화의 주인공이 동이족이라는 것은 지나학계가 인정하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그 동이족이 과연 <고조선인>이냐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학계에서도 고조선의 중심을 예전의 평양에서 요서, 요동 등 요녕으로 보고 있다. 한민족의 기원도 그곳에서 발생하여 한반도로 이주를 해왔다는 이론이 점차로 신빙성을 더해 가고 있기 때문에 홍산문화의 주인공 나아가서 중국의 문화의 중요한 획을 그었던 세력이 누구냐 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있게 되었다. 이 홍산문화의 주인공이 누구냐 하는 것을 떠나서 분명한 것은 이 문화가 고조선을 건국하는데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실제 다른 문화처럼 아주 깊게 연구되고 있지 않은듯하다. 정치적 이유 아닌가 싶다.
위의 5개정도의 문화를 기반으로하여 고조선,신라,고구려,백제가 대륙에서 생성 발전하지 않았는가 판단이 된다. 북방지역에서 발견된 문화는 실제로 현재 용산문화,감숙성,청해성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하고 추정이 된다.왜냐하면 같은 문화대가 형성이 되고 동일한 유물들이 상호보완되어 발견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를 관장하고 있는 중국사회과학원은 순수 학문기관이지만 중공의 특정한 학문 이외에 정치적 프로파겐다를 위하여 연구하고 지배를 받기 때문에 소위<한족>의 정체성 확보를 위하여 타민족의 고대문화에 대하여 각별한 배려를 하기에는 어려워보인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도불원인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