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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곡을 중심으로 개설된 등산로를 따라가 본 궤적(푸른 선)
택당 이식의 산기(山記)와 산론부(山論附)(원문)
白鵝谷在京圻砥平縣東墳馬山下 백아곡재경기지평현동분마산하 北距縣治二十五里 東與關之原橫二界接 西南距驪江一舍餘 북거현치이십오리 동여관지원횡이개접 서남거여강일사여 其山自關東五臺山迤北而來 抵砥界西轉而爲右峴 右轉而爲惡峙池寺等峴 기산자관동오대산이북이래 저지계서전이위우현 우전이위악치지사등현 皆大山合沓 或起或伏 若驟若散 穿過平地深谷 轉折而東 突起爲馬山 개대산합답 혹기혹복 약취약산 천과평지심곡 전절이동 돌기위마산 直西北關障 中抽一支左轉而爲鴉谷 직서북관장 중추일지좌전이위아곡 五峯起伏諸阜散垂 其右一支爲長岡 宛宛若橫帶 環抱山面 오봉기복제부산수 기우일지위장강 완완약횡대 환포산면 若堂舍旣成而廓廡縵回 大官抱據凡而隊仗布列 周旋窈窕 氣象甚異 약당사기성이곽무만회 대관포거범이대장포열 주선요조 기상심이 此其墓地也 차기묘지야 外有曠陸周回數十里 當谷四面 復有諸山簇園扈環 望如一盖 외유광육주회수십리 당곡사면 복유제산족원호환 망여일차 右峴東支轉而爲竹杖,九嶺,惡峙 西支轉而爲西華峴大小松峙 兩山合勢於野 우현동지전이위죽장,구룡,악치 서지전이위서화현대소송치 양산합세어야 東南端正當鴉谷之口 동남단정당아곡지구 而左右群峯 差互交鎖 如人擧掌又指 白雲山距基南 若相接然 이좌우군봉 차호교쇄 여인거장우지 백운산거기남 약상접연 內有五溪 亦有東西諸峴而下 谷而出 同爲大川 寫出于兩山差互之間 내유오계 역유동서제현이하 곡이출 동위대천 사출우양산차호지간 縱橫十餘里 而不見水之去也 종횡십여리 이불견수지거야 鴉谷之內無溪澗 有泉源五六處 散入田疇 或引以爲池塘 大旱不渴 아곡지내무계간 유천원오륙처 산입전주 혹인이위지당 대한불갈 有一條大路 自京師向關東 或分爲小岐 穿谷前後而過 유일조대로 자경사향관동 혹분위소기 천곡전접이과 依出遂水而爲村落者 五六所 士民雜居 故頗有隣里之助賓旅之欸 의출수수이위촌락자 오륙소 토민잡거 고파유린리지조빈여지예 不覺山峽之窮寂也 불각산협지궁적야 總之鴉谷之地 土剛水淸 風順地幽 允宜安㝜之所 而惟無巖巒水樹之奇勝 총지아곡지지 토강수청 풍순지유 윤의안석지소 이유무암만수수지기승 足以娛人耳 嗟夫 余天之僇民也 生而不能養 歿而不能殉 沉沉而息 족이오인이 차부 여천지륙민야 생이불능양 몰이불능순 침침이식 蠢蠢而作 其所以異於窮山之禽鹿者幾希 준준이작 기소이이어궁산지금녹자기희 今但築居谷口 採山耕野 以供祭祀 歲時 扶挈老幼 羅拜墓前 금단축거곡구 채산경야 이공제사 세시 부설노유 나배묘전 退伏一室 省閱古今文學 以自懺悔 終吾身而己 퇴복일실 성열고금문학 이자참회 종오신이기
山論附산론을 덧붙임
地師李懿信論此山 지사이의신론차산 勢如蟠龍 세여반룡 案如玉帶(이하 생략) 안산옥대 |
구글어스를 통해 본 택당의 산기
산기(山記)
산기는 크게 백아곡의 소재와 위치.백두대간으로부터 아곡에 이르기 까지 산 줄기.아곡과 묘지의 산세.아곡에서 내다보는 전망.아곡의 내부.통한의 심경과 각오 등 크게는 6절, 작게는 15구절로 이루어 졌다. 산기가 택당 이식의 기록인 반면 손수 쓰지 못한 부분은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 ‘山論附’를 덧 붙였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절〛소재와 위치 [1구절]백아곡의 소재와 위치:경기도 지평현의 마산아래 [2구절]백두대간으로부터 아곡에 이르기 까지 산줄기
〚2절〛백두대간으로부터 아곡에 이르기 까지 산줄기 [3구절]백두대간으로부터 갈라져 내려온 큰 산줄기:한강기맥의 오대산~현의 경계(금물산) [4구절]아곡이 한강기맥으로부터 갈라진 성지지맥에서 갈라져 마산아래 위치함을 산모양과 줄기로 설명
〚3절〛아곡과 묘지의 산세 [5구절]아곡의 산줄기와 산세 등 [6구절]아곡 묘지의 모양을 비유하여 설명
〚4절〛아곡에서 내다보는 전망 [7구절]아곡에서 내다보이는 전체적인 전망 [8구절]아곡에서 내다 보이는 동서의 산 줄기:현재도 사용하는 지명-서화현(서화고개),죽장(계정리),대소송치 등 [9구절]아곡에서 내다 보이는 남의 산 줄기와 모양:백운산이 남쪽에보이는 모습을 감칠맛있게 표현했다. [10구절]아곡에서 내다 보이는 물 줄기
〚5절〛아곡의 내부 [11구절]아곡의 물(水) [12구절]아곡주변의 길(路)과 촌(村):관동대로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대소송치를 넘고 장대(場垈)를 지난 관동대로는 활거리에서 서화쪽과 구둔치쪽으로 갈라졌다가 구둔에서 다시 만난다. 이 두 갈래 길 중 구둔치쪽 길이 후대에 더 많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13구절]아곡의 총평
〚6절〛통한의 심경과 각오 [14구절]생전 생후에 조상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통한의 심경 [15구절]각오
山論附 |
이 사진 한 장이면 양동의 산 줄기는 물론 택당의 산기가 말하는 산줄기까지 잘 이해 할 수 있다.붉은 선이 한강기맥(용문산 산줄기),약간 덜 붉은 선이 성지지맥(양동의 산줄기),흰선과 희게 처리된 부분이 백아곡
백아곡(白鴉谷)은 京圻(경기) 지평현 동쪽에 (솟아)있는1), 마산(馬山)아래에 있다.
북으로 현의 소재지와 25리 떨어져 있고 동쪽으로 원주 및 횡성과 경계를 접하고 있으며 서남쪽으로는 여강(驪江)과 30여리 떨어져 있다.
그 산을 보면 관동의 오대산(五臺山)이 북에서 뻗어 내려오다가 지평의 경계에 이르러서 서쪽으로 휘돌아 우현(右峴,지금의 한강기맥)을 이뤘고2)., 다시 방향을 돌려 악치,지사 등이 고개를 이루었다.
이곳은 모두 큰 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불쑥 일어났다가는 납작 엎드려 있기도 하고 함께 치달렸다가 사방으로 흩어지기도 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하여 평지와 깊은 골을 뚫고 지나와서는 다시 방향을 동쪽으로 꺾어 뾰족하게 도드라져 마산(馬山) 3).이 되었으며, 여기에서 곧바로 서북쪽으로 가로막힌 산 가운데에서 한 가닥 능선이 뽑혀 나와 왼쪽으로 방향을 돌리면서 아곡을 이루었다.
이곳은 다섯 개의 봉우리가 일어났다 엎드렸다 하는 가운데 여러 구릉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오른쪽으로 한 가닥 장강(長岡)의 능선이 마치 허리띠처럼 휘둘러 산의 얼굴을 에워싸 보호해 주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본채가 낙성된 뒤에 사랑채들이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높은 관원이 궤안에 기대어 있을 때 의장대가 도열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주위가 그윽하고 아늑해서 다른 곳과는 기상이 매우 다르니, 여기가 바로 묘지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구글어스를 통해 본 백아곡(위는 입체,아래는 평면)
그 넘어 바깥에는 넓은 평원이 수 십리에 걸쳐 주위를 둘러싸고 있으며, 아곡 사면으로는 여러 산들이 쫑긋쫑긋 치솟아 마치 고리처럼 이어져 호위하고 있으므로 이를 처다 보노라면 하나의 큰 일산4).과 같은 느낌을 갖게도 한다.
우현 동쪽능선5).이 다시 방향을 돌려 죽장(竹杖)과 구령(九嶺)과 악치를 이루고, 서쪽능선6).은 휘돌아 서화현(西華峴)과 대소의 송치를 이루는데, 그 두 개의 산등성이가 들판에서 합세하여 동남쪽으로 단정하게 아곡의 어귀를 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좌우로는 여러 산봉우리들이 서로 교차하여 빗장을 채우면서, 마치 사람이 손바닥을 들어 손가락을 엇거는 것과 같은 형세를 취하고 있으며, 백운산(白雲山)7).이 그 남쪽에 떨어져서 서로 이어지려 하는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뒤에서 앞의 양쪽 산을 이어주고있는듯이 보이며 솟아있는 백운산(흰 원안)
그 안쪽으로는 다섯 개의 개울8).이 동쪽과 서쪽의 여러 산으로부터 흘러 내려와서 골짜기를 휘감고 빠져 나와서는 큰 내를 형성한다. 그리하여 두산이 교차해 있는 그 사이를 쏟아져 내려와 종횡으로 10여리를 흘러가는데 어디를 향하는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곡의 내부에는 개울이나 시내는 없고 대여섯 곳에서 샘물이 솟아나와 밭두둑 사이로 흩어져 나가고 있다. 어떤이는 이 물을 끌어와서 연못을 만들기도 하였는데, 큰 가믐이 들어도 물이 마르는 법이 없다.
*疇:밭두둑,밭 주
경사(京師)로부터 관동(關東)으로 향하는 길9).이 뻗어 있는데 그 길이 작은 갈래로 나눠지면서 골짜기의 앞뒤를 지나간다.
산에 의지하고 물길을 따라 대여섯 곳의 촌락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에 사민(士民)들이 뒤섞여 살고 있다. 그래서 이웃 마을끼리 서로 도와주고 길손을 정답게 맞아주고 있기 때문에 적막한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
이를 종합해 보건대 아곡의 땅은 토질이 굳고 물이 맑으며 바람이 온화하고 지세가 그윽하니 묘역으로는 참으로 합당한곳이라 하겠으나, 다만 사람을 즐겁게 할 만한 경치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巒:산봉우리 만
아, 나는 하늘로부터 형벌을 받은 사람이다. 살아 계실 때에는 제대로 봉양하지 못하였고, 돌아가셨을 때에는 따라 죽지 못하고 목숨만 부지하면서 무지몽매하게 행동하였으니 외진 산골의 금수(禽獸)와 다를 것이 별로 없다고 할 것이다.
*僇:욕보일 륙(육),*沉:잠길 침,*蠢:꾸물거릴 준
이제 골짜기 어귀에 집 한칸을 지은 뒤, 산에가 나물 캐고, 밭을 갈아 제사음식 마련하여 세시(歲時)에는 노소를 이끌고 묘소 앞에 나가 참배하고, 그리고는 방에 물러나 고금의 문자를 열람하고 스스로 참회하며 이 한 몸을 마칠 생각이다.
*挈:손에 들 설, 새길 계,*懺:뉘우칠 참
그러니 어느 겨를에 기이한 문자를 뽑아내 이목(耳目)을 즐겁게 해, 불효의 슬품을 더욱 중하게 할 수 있겠는가?
*侈:사치할 치,*㥻:근심할 척
백아곡 주변 지형도(지금의 '안골'이 백아곡)
산론부(山論附)-산론을 덧 붙임
지사인 이의신은 이 산에 대하여 논하기를
형세가 용이 서린 것과 같고
안산10).이 옥대와 같으며
조용히 처녀가 들어앉은 듯한 가운데
형국이 也자를 이루고 있다.
감좌의 혈 하나가 가장 기걸찬데
그 우측으로 두세 개의 지맥(支脈)도 모두 쓸만하다.(이하 생략)
백아곡의 안산인 당산(541m)
백아곡의 산 줄기
1).*圻:경기 기
*동쪽 경계:마산(馬山)아래 백아곡(白鴉谷)이 지평현의 동쪽경계에 있다는 점은 맞지 않고 원문은 ‘동분(東墳)’으로 墳은 ‘부풀어 오르다’라는 의미도 가짐으로 ‘솟아오르다’로 바꾸어 써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2).*迤:연할 이,가는모양 타
*우현(右峴):직역하면 오른쪽 고개이나 여기서는 오른쪽 산(山) 또는 산줄기로 보아야 함. 금물산에서 동(오른쪽)으로 한강기맥으로 산줄기가 벋어나갔음을 표현한 것으로 보임.
*여기서 ‘악치(惡峙)와’ ‘지사(池寺)’는 지명(地名)으로 보아야 함.
*악치(惡峙)와 지사(池寺):①지명(地名)
-근거:본문에 악치(惡峙)라는 문구가 한번 더 나오는데 문장의 앞뒤연결로 보면 지명으로 보아야 함. 악치 앞에 열거한 죽장(竹杖)은 당시 지평현 죽장리(지금의 양동면 계정리)임.
*악치(惡峙)와 지사(池寺):②지형 또는 지세로 볼 수도 있을 개연성은 있음.
-악치(惡峙):험하게 우뚝 솟은 산.*峙:산우뚝할 치
-지사(池寺):도랑(개울)과 마을 *池:도랑 지 寺:마을 사
3). *갑자기 솟구쳐 올라:마산(馬山)은 지금의 말미산으로 산 자체가 갑자기 솟구친 모습이 아니고 원문은 돌기(突起)이므로 ‘뾰족하게 도드라져’로 바꾸어 해석함.
4).*일산:日傘,해를 가려주는 우산,해가리개
*簇:가는대 족
*扈:호위할 호
*盖:덮을 개,蓋(개)의 俗字
5).*동쪽능선(금물산~성지봉~도덕고개~저두산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성지지맥),저두산에서 동쪽으로 죽장(竹杖,지금의 계정리),그 뒤에 나오는 구령(九嶺)과 악치(惡峙)라는 지명은 찾을 수 없지만 문맥으로보아 구령(九嶺)은 지금의 원주시 지정면의 구룡산줄기로 보임.
6).*서쪽능선:지금의 서화고개(西華峴,서화현)와 대송치와 소송치(대소의 송치)
7).*백운산(白雲山):강원도 원주시 귀래면과 충북 제천시 백운면에 걸쳐 있는 해발1,087m의 넓은 산. 양동에서는 안골(백아곡)입구~삼산댕이·쌍학교·삼산1리 등에서 간현유원지 밖으로 멀리 내다보인다.
8).*다섯 개의 개울:석곡천,매월천,계정천,단석천,솔치천
9).*경사(京師)로부터 관동(關東)으로 향하는 길:관동(경북 평해)~한양에 이르는 길로 관동대로(關東大路)
*欸:한숨쉴 애,성난소리 예,성난소리 해
10).*택당 조부묘에서 보면 안산은 당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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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잘 봤습니다.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대단합니다. 미처 몰랐던 것들이네요.
좋은 자료 올려 주시어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