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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은 창조가 아니며 따라서 결코 구원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복종은 반응인 반면 창조는 명령 받지 않고 요구 받지 않은 순수 선택이다.
순수한 선택은 지금 이 순간에 가장 고귀한 관념이 만들어낸 순수한 창조를 통해 구원을
가져온다.
영혼의 기능은 자신의 바램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 주는 것이다.
마음의 기능은 여러 가지 대안들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몸의 기능은 그 선택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 조화롭게 하나가 되어 함께 창조할 때, 신은 현실 속에 구현된다.
그럴 때 영혼은 자신의 체험 속에서 스스로를 인식한다. 그럴 때 하늘은 크게 기뻐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너희 영혼은 너희가 ‘참된 자신’을 아는 데 필요한 것이 되고,
그것을 하고, 그것을 가질 기회를 창조하고 있다. 너희 영혼은 지금 이 순간에 너희가 읽고
있는 너희를 데려 왔다. 예전에도 너희를 지혜와 진리의 글들로 데려갔던 것처럼.
지금 너는 무엇을 하려 하는가? 어떤 존재가 되길 선택하려는가?
너희 영혼은 과거에도 무수히 그러했던 것처럼 기다리면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 나는 네 세속적인 성공에는 관심이 없다. 너만 거기에 연연할 뿐이지.
너희가 장기간에 걸쳐 특정한 존재상태를 이뤄낼 때 자신이 하는 세상일에서 성공하지
않기란 대단히 어렵다. 그러니 ‘생계를 꾸리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참된 스승들은 생계를 꾸리기 보다는 삶을 꾸리기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특정한 존재상태에 이르면 삶은 풍족하고 충만하며 장대하고 보상 받을 것이기에 세속적인 부와 성공은 조금도 너희의 관심을 끌지 않을 것이다. 삶의 역설은 너희가 세속적인 부와 성공에 아무 관심이 없어지는 순간에야 비로소, 그것들이 너희에게 흘러 들어올 길이 열린다는 점이다.
‘기억하라, 너희가 원하는 걸 가질 수는 없지만, 자신이 가진 걸 체험할 수는 있다.
‘나는 성공하길 원한다 (진실은 성공 못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는 이미 성공했다’ 라고
생각하도록 하라.
‘나는 이미 신이 됐다. 일체 부족함이 없다’
예수는 기적을 일으킬 때마다 그에 앞서 기적을 가져다 준 것에 대해 내게 미리 감사했다.
그로서는 감사하지 않다는 건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선언한
것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와
자신과 나의 관계를 굳게 확신하고 있었기에, 그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은 그의 앎을 있는 그대로 반영했다.
그러니 이제 네가 삶에서 체험하고자 하는 뭔가가 있다면 그것을 원하지 말고 선택하라.
*. 내세에는 어떤 심판도 존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이곳에서 말하고
행동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돌아보고, 너희가 말하는 ‘자신’과 ‘되고자 하는 자신’에
근거하여 다시 선택할 –만일 선택할 게 있다면- 기회는 주어질 것이다. 너희가 어떤
고통이나 두려움이나 심판 받는 일없이 자신의 전생을 다시 조망할 기회를 가지며 너희는
그것을 통해 이곳에서의 체험을 어떻게 느끼고, 그 다음에 어디로 가고 싶은지 판단하게
된다는 얘기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선택 받은 소수의 사람들은 이 지상에 오로지 남들을 도우려는 목적 하나로 지상으로
돌아온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기쁨이요, 영광이다.
그들은 봉사하는 것 이외는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이제 나는 이번 장의 서두에서 네가 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자 한다.
네가 진실로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하라! 그 외에 다른 건 일체 하지 마라!
네게는 시간이 거의 없다. 어떻게 생계를 위해 네가 좋아하지 않는 일에 시간을 낭비할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삶은 사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것이다.
어떤 삶이 주어져 그 책임을 다 하기 위해 자기가 싫어하는 일이라도 열심히 하는 자가
‘자신’이라면 네 일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그렇게 하는 게 네 자아 이미지, 네 자아
개념을 전폭 뒷받침해 줄 터이니. 누구든 간에 자기가 무슨 일을, 왜 하고 있는지 깨닫는
다면,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다. 스스로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 Sex 에 대해 >
; Sex를 즐겨라. 그걸 갖고 놀아라! 그건 굉장한 즐거움이다.
Sex 는 너희 몸으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즐거움과 거의 맞먹는다.
그러나 Sex를 오용하여 성의 순수성과 즐거움을, 그 기쁨과 즐거움의 청순함을 망치지 마라.
가장 순수한 기쁨과 더 없는 황홀경을 느끼거나 함께 나누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Sex를 이용하지 마라. 그런 기쁨과 황홀경을 느끼고 함께 나누는 것이야 말로 사랑,
재창조된 사랑이며 새로운 삶이다. 너희를 더 낳은 존재로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내가 아주 근사한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는가!
*. 바꿔야 하는 상황은 그것을 불평 함으로서가 아니라 스스로 상황을 주도할 때만 바뀔 수
있다는 확실한 신념을 가져라.
*. 어떤 일을 대할 때 한가지 마음과 단 하나의 목적만을 갖도록 하라.
그리고 네가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낼 때까지는 마음이 거기서 떠나지 않도록 하라.
초점을 맞추고, 중심을 잡고, 거기에 머물러라. 뭔가를 택할 때는 네 온 힘과 네 온 마음을
다해서 그것을 택하도록 하라. 겁먹지 마라, 계속 가라, 그것을 향해 계속 가라, 단호하게...
*. 너희 영혼은 과거의 만남들을 검토하고 분석하고 비판하는 일 없이 현재의 체험으로만
창조하기 때문에 결정은 쉽게 이루어지고 선택은 빠르게 현실화 된다. 영혼은 창조하고
마음은 반응한다. 영혼은 자신의 지혜로 “지금 순간”에 겪은 체험이 신이 너희에게 보내준
체험임을 알고 있다.
‘미리 보내진’ pre-sent (현재) 체험이라고 할 때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영혼이 의도하는 바는 자신을 체험으로 알고, 따라서 나를 아는 것이다. 영혼은 너희와 내가 ‘하나’임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 영혼은 느낌 feeling 으로 말한다. 네 느낌에 귀를 기울이고. 네 느낌대로 따르며, 네
느낌을 존중해라.
자신에게 진실인 것만을 따라 행동할 때, 너희는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내는 중이다.
네가 선택한 현실을 창조하는 데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느냐고?
그것은 네가 자신의 진실에 따라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을 자주 바꾸지
마라.
*. 너희가 자신의 진실을 사랑으로 표현할 때, 부정적이고 위험스런 결과들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행여 그런 결과들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대개 다른 누군가가 부정적이거나 위험한 방식으로 너희의 진실을 시험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라면 너희로서는 그런 결말을 피할 방도가 별로 없을 것이다.
자신의 진실을 표현하지 못하는 건 명백히 그다지 적절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한다. 그들은 불쾌한 일을 일으키거나 그런 것에 직면할까봐 무척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진실을 철저히 감춘다. 다른 사람이 네 진실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는 지는 네 책임이 아니다. 너는 단지 그것이 얼마나 잘 전달되는 지만 보장할 수 있다.
*. 이 시간 말고는 어떤 시간도 존재하지 않으며 이 순간말고는 어떤 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지금’뿐이다.
<어제와 내일은요?>
; 그것들은 네 상상이 빚어낸 허구이고, 네 정신이 지어낸 구조물이다. 궁극의 현실에서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껏 일어난 모든 일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일들도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다.
*. 시간은 연속 체가 아니다. 그것은 수평이 아니라 수직으로 존재하는 상대성의 요소이다.
‘시간’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다. 시간을 ‘지금이라는 영원한 순간‘을 나타내는
물레가락으로 생각하라.
이제 그 물레가락 위에 여러 장의 종이가 놓여 있다고 상상해보라. 차곡차곡, 이것들이 시간 요소들이다.
하나 하나의 요소는 뚜렷하게 구별되지만, 다른 것들과 동시에 존재한다. 물레가락 위의
모든 종이들은 한꺼번에 존재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도 예전에 일어났던 일들도 존재하는
것은 오직 ‘한 순간’, ‘이 순간‘, 영원한 지금 순간뿐이다. 모든 일이 바고 지금 벌어지고
있으며, 그래서 내 영광은 지금 찬미 받고 있다. 신의 영광을 기다리는 일 같은 건 없다.
*. 시간은 없다. 단지 운동만이 있을 뿐이다. 너희는 여러 레벨에서 여럿의 존재로
존재한다.
*. 너희는 자신이 ‘시공간 연속 체’의 모든 수준 레벨에서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즉, 너희 영혼은 ‘항상 존재했고’, ‘항상 존재하며’, 앞으로도 항상 존재할 지니‘,
끝없이 그러할 지니...
*. 너희는 자기 표현과정을 매개로 하여, 자신을 창조하고 자신을 실현하는 ‘영원한
순간’속에 있다.
너희는 지금껏 자신에 대해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을 ‘가장 웅대한 해석’으로 형상화
하기 위한 수단으로, 너희 삶의 사람들과 사건들과 환경들을 자신에게도 끌어들였다.
창조하고 재창조하는 이 과정은 결코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여러 층(層)의 과정이다. 그
모든 것이 여러 수준에서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다. 너희의 일직선 현실에서 너희는
체험을 과거나 현재나 미래 꿈의 하나로 본다
너희는 자신이 한번의 삶을 갖는다고 생각하거나 설령 여러 번의 삶이라 해도 당연히 한
때에 딱 한가지씩만 갖는 걸로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란 게 없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러면 너희는 모든 삶들을 한꺼번에 가지지 않겠느냐? 실제로 너희는 그렇다
너희는 이번 삶, 현재 실현되고 있는 삶을 너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속에서 모두 한꺼번에 살고 있다. 미래의 사건에 대해 ‘기묘한 예감’을 느껴본 적이 있느냐?
너희를 그 사건에서 돌아서게 만들 만큼 강력한 예감을.
*.
공간은 드러난 시간이다. 사실 공간 다시 말해 그 속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순수한 ‘빈’
공간 같은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어떤 것이다. ‘가장 빈’ 공간조차도 수증기로 가득 차 있다
너무나 엷고, 저 멀리 무한한 영역 너머로까지 뻗어나가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수증기로, 그리고 그 수증기가 사라지고 난 다음에 존재하는 건 에너지, 순수에너지이다
이것은 진동, 즉 떨림으로 드러나며, 특정 진동수로 이루어지는 ‘전체’의 운동으로 나타난다
보이지 않는 ‘에너지‘는 ’물질을 함께‘ 묶는 ’공간‘이다. 너희의 일직선 시간 모델을 써서
설명하면, 한 때 우주의 모든 물질들은 하나의 미세한 알갱이로 응축되어 있었다. 지금
존재하는 식의 물질을 밀도 높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너희로서는 이 알갱이의 밀도성
(密度性)을 도저히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너희가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이 공간이다. 모든 ‘고체‘는 2%의 딱딱한
’물질‘과 98%의 ’공기’로 되어 있다. 게다가 물체들 속에 있는 소립자들 사이의 공간은
어마어마하다. 그것은 마치 밤하늘에 보이는 천체들 사이의 거리와 같다. 그럼에도 너희는
이 물체들을 딱딱하다고 말한다.
사실 한때 우주 전체는 ‘딱딱했다“ 물질 분자들 사이에는 사실상 어떤 공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물질들이 자신에게서 ‘공간’을 제거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어마어마한 ‘공간‘이 사라지고 나자 그 물질은 바늘 끝보다 더 작은 영역만을
차지하게 되었다
실제로 어떤 물질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간’ 이전에 하나의 시간이 있었다
너희가 반 물질이라고 불렀을, 가장 순수한 ‘최고의 진동 에너지’ 형태만이 존재하던 시간이.
이것은 시간 전의 시간, 너희가 아는 대로의 물질 우주가 존재하기 전의 시간이었다. 어떤
것도 물질로서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낙원, 즉 “천국”이라 여긴다.
왜냐하면 어떤 문제도 없었기에.
태초에 순수에너지 - 나(神) - 는 아주 빠른 속도로 진동하여 물질을 형성했다. 이 우주의
모든 물질을!
지금 이 우주는 너희가 상상할 수 없을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계속 영원히 팽창하는 것은 아니고 그 팽창을 몰아가는 에너지가 다 없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대신하여 사물들을 함께 묶는 에너지들이 모든 것을 다시 ‘함께
뒤로‘ 끌어당길 것이다
*. < 우주가 계속 수축할 거란 말씀입니까? >
; 그렇다. 모든 것이 그야말로 글자 그대로 ‘제 자리로 돌아간다.’ 그러면 너희는 다시 한번 낙원을 가질 것이다. 아무 물질도 없고 오직 에너지만이 있는 낙원을. 달리 말하면-- 나를! 결국 그 모두가 내게로 돌아올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모두가 이것으로 돌아오리라“ 는 구절의 기원이다
*.<우주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군요>
; 물질 형태로는 그렇다. 하지만 너희는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너희가 존재하지 않을 수는 없다. 너희는 존재 자체이기에.
*. <우주가 무너지고 나면 그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 그 과정 전체가 또 다시 시작된다. 또 다른 소위 ‘대폭발’ Big Bang 이 있을 것이며, 또
다른 우주가 태어날 것이다. 그것은 팽창하고 수축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것은 다시 한번 똑 같은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다음 다시, 또 다시... 영원히 오래오래, 끝없이. 이것은 신의 들숨과 날숨이다.
*. ‘토 메리’(톰과 메리의 에너지 결합체)는 형이상학적으로는 이미 체험된 존재이기에, 톰과 메리는 그것을 물질로서 체험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들은 더 가까이 다가설 것이다. 그들 사이의 간격이 좁혀지고, 그들이 ‘그 끈을 줄여감’에 따라,그 두 사람이 토 메리에게 보내는 에너지는 더 짧은 거리만을 움직이게 되고, 따라서 더 강렬해 그들은 계속 더 가까워진다
그들의 ‘사이 몸체’는 무서운 속도로 진동하면서 뜨겁게 타 오른다.
‘토 메리’와의 가고 오는 ‘연결‘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 이전으로 더 두터워지고
더 넓어지며 더 맑아진다. 그 두 사람은 소위 ‘갈망으로 달아오른’ 상태가 된다.
이제 그들은 서로 닿는다. 거의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흥분과 격렬함이 인다. 드디어
접촉하는 순간 ‘토 메리’의 에너지 전체 ‘결합된 존재’의 빽빽하고 진하게 통합된 실체
전체를 느낀다.
그것은 특히 그곳(회음부)에서 강렬하게 ‘달아오를’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톰과 메리는 소위 서로를 향해 ‘욕정’을 갖는다. 두 사람이 끌어안게 되고 톰과 메리와 토 메리 셋 다가 거의 같은 공간을 차지한다.
두 사람의 육체가 결합하고 ‘톰과 메리와 토 메리’는 ‘하나’가 된다
그들은 글자 그대로 폭발하고, 그들의 육체전체가 경련한다. 그 진동은 그들의 발 끝까지
파문을 흘려 보낸다. 이 하나됨의 폭발에서 그들은 삶의 ‘본질’이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체험’인 신과 여신, 알파와 오메가, 전체와 무를 알게 된다.
*. Sex, 사랑, 인간관계 등 모든 것은 어린애처럼 가장 자연스럽게 하라, 신성을 향해서...
내면에서부터 체험하길 진심으로 원하면서 관념 관습으로 스스로를 억제하려 애쓰지 말고.
*. 교육의 목적
; 지식을 주는 게 아니라 지혜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지혜에 치우쳐 지식을 무시하지 말고, 지식에 치우쳐 지혜를 무시하지 마라
지식은 다음 세대로 전해져야 하지만 지식의 양은 적으면 적을 수록 좋다
아이들 스스로 발견하도록 하라. 지식은 잃어버리지만 지혜는 절대 잊지 않는다.
*. 자각 - 깨달음
정직 - 진실
책임 - 사랑
*. 수긍하기 힘들겠지만 모든 것에 완벽이 있다. 그 완벽을 찾아내라(깨달아라)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말고, 모든 것을 원하며, 드러낼 것을 선택하라
네 느낌을 느끼고, 네 울음을 울며, 네 웃음을 웃고, 네 진실을 존중하라
하지만 모든 감정이 다 하고 나면, 고요히 있으면서 내가 신임을 깨달아라
달리 말해, 엄청난 비극의 한가운데서 그 과정의 영광을 보라.
너희가 가슴을 뚫는 총알로 죽어가고, 깡패에게 강간을 당하는 동안에도.
이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신의 의식으로 옮아간다면
이렇게 할 수 있다.
물론 너희가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너희가 그 순간을 얼마나 체험하고 싶어하는 가에 달려 있다. 하지만 그 비극을 너희가 전혀 통제하지 못할 때, 너희는 저절로 이렇게 한다
너는 차를 타고 달리다가 뜻하지 않게 다리 아래로 떨어졌던 사람과 얘기해 본적이 있느나?
혹은 자기 코 앞에 총이 겨눠졌던 사람이나 물에 빠져 죽을뻔한 사람과는?
그들 다수가 시간이 멈춘 상태에서, 기묘한 평온에 잠겨, 아무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해 줄 것이다
“두려워 하지 마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니.” 이것이 비극을 직면한 사람들에게 읊어야 할 시이다.
나는 너희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 너희의 빛이 되고, 너희의 가장 암울한 시기에 너희의
위안이 되며, 너희의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너희의 힘이 될 것이다. 그러니 믿음을 가져라! 나는 너희의 목자니,
너희는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풀밭에 누일 것이며, 너희를 조용한 물가로
데려갈 것이다.
나는 너희의 영혼을 되찾아줄 것이며 내 이름을 걸고 너희를 올바른 길로 이끌 것이다
단언하노니, 선과 자비가 평생 너희를 따를 것이고, 너희는 내 집과 내 가슴속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 어떤 상황에서든 언제나 너희가 남과 만났을 때는 ‘나는 여기서 무엇을 바라는가?’ 라고
물어야 한다.
‘내가 여기서 하려는 것은 무언가?‘ 라고. 내 말을 알아듣겠는가? 너희의 첫 번째 질문은
언제나, ‘나는 여기서 무엇을 바라는 가?’ 여야 한다. 다른 사람이 여기서 무엇을 바라는가가 아니라. 너희가 사람이나 장소나 사물과 ‘신성한 관계’를 갖는 목적은 그들이 바라거나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아내는 데 있지 않고, 성장하고 너희가 바라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너희가 필요로 하거나 바라는 것을 알아내는 데 있다. 이것이 내가 다른 것과의 관계를
창조한 이유이다. 나는 너희가 자신을 새로이 창조하고 체험 속에서 깨닫는 방법을
창조해냈다. 다음과 같은 것들을 너희에게 줌으로써..
1. 상대성 - 너희가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특정한 뭔가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단계
2. 망각 - 상대성이란 단순히 속임수일뿐, 사실은 너희가 ‘그 모든 것’임을 모르도록
자신을 기꺼이 새까만 망각에 맡기는 과정
3. 의식 - 완전한 자각에 도달할 때까지 성장해가는 존재상태.
그러고 나서 너희가 의식을 새로운 한계로 펼칠 때, 너희는 ‘살아있는 참된 신’이 되고
너희 현실을 창조하고 체험하며, 말하자면 그 현실을 확장하고 개발하며 그 현실을 바꾸고 개조하게 될 것이다.
*. 불운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가?
첫째; 그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인지’ 판단하라
둘째; 만일 자신을 원조와 도움과 사랑과 자비와 배려로서 체험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그런 것들이 가장 잘 될 수 있을지 자세히 살펴봐라
사실 그들을 혼자 내버려 두거나, 그들에게 자조(自助)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때때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최상의 방법이자 너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도움일 수 있다
너희가 어떤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그를 깨어나게 만드는 것.
그에게 ‘자신이 참으로 누구인지’ 기억하게 만드는 것임을 기억하라
‘완벽한 사랑’에 대한 예수의 견해는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청하는 꼭 그대로의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예수는 단순히 자신이 주고자 하는 도움이 아니라 사람들이 청한 도움을 그들에게 준다면 그들이 받을 준비가 된 수준에서 그들에게 권능을 부여하는 것임을 알았다
*. 너는 네게 온 사람이 왜 나 아닌 다른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네게 이르노니 지금까지 너에게 왔던 모든 사람이 네게서 선물을 받았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 그들은 네게 한가지 은혜를 주었다. 네가 ‘자신’을 체험하고 실현해
보라는 은혜를. 너희가 이 간단한 진리를 이해할 때, 너희는 가장 위대한 다음 진리를
이해할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오직 천사만을 보내 주었다“
*. 삶은 영적인 만남, 영혼의 여행으로 모든 사람이 진화하면 ‘구하고, 애쓰고, 찾고, 뻗고,
성공하는 이유’가 완전히 달라진다. 어떤 일을 하는 까닭이 변하니, 그와 더불어 그 일을
하는 사람 역시 변한다
과정이 그 이유가 되니, 행위자는 존재자 be-er가 된다. 예전에는 모든 노력이 세속의 것을 마련하는 데 있었지만, 이제는 그 이유가 하늘의 것을 체험하는 데 있다. 예전에는 주요한 관심이 몸에 대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주요한 관심이 영혼에 대한 것이다. 모든 것이
움직이고 모든 것이 변한다
삶의 목적이 바뀌고 따라서 삶 자체도 바뀐다.
‘위대해 지려는 동기‘도 변하니 그와 더불어 세속의 부를 탐내고 확보하고 지키고 늘리려던
욕구도 사라진다. 너희가 위대해 지려는 동기와 ‘위대함’에 대한 규정을 바꾸는 날, 지금
미개한 너희 사회에서 일상사가 되고 있는 그 같은 도덕적 추잡성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너희의 새로운 동기는 내가 창조했던 대로의 너희가 되는 것, 즉 신성(神性) 자체를
물질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될 것이다
*. ‘지금이라는 영원한 순간’은 또한 끝없이 변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자이크와 같은 것이다. 언제나 존재하지만 끊임없이 변하는 모자이크, 너는 눈을 깜박일 수 없다.
네가 눈을 떴을 때 그것은 달라져 있을 것이기에.
보라! 잘 보라! 알겠느냐! 그것은 거기서 다시 진행된다. 나는 끊임없이 변한다.
나에 대한 너희들의 견해가 그 모든 것에 대한 너희들의 생각이 나를 변하게 만든다.
생각의 힘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다르지만 즉석에서, 때로는 ‘전체’ All(신을 말함)속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무척 미세하여 사실상 구별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집중된
생각이나 집단적 생각이 있다면 그 때는 거대한 충격,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신과 나눈 우정, 신의 계시록
0. < 많은 사람들이 나로 인해 상처 받고 고통 받고 버림받았습니다 >
: 자신을 기쁘게 하는데 잘못된 것은 없다. 무엇이 너를 기쁘게 하는가 라는 물음만 있을
뿐이다.
내가 보기에 너는 지금 너를 가장 기쁘게 하는 건 남에게 거의 혹은 전혀 상처를 주지 않는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하지만 네게 말하노니 여전히 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염려하는 한 너는 그 사람들의 것이다. 자기 외부에서 어떤 인정 받음을 구하지 않을 때 너는 너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다.
0. 그들을 진실로 축복하는 것은 오직 그들이 너를 불필요한 존재로 느낄 때뿐이다. 같은
의미에서 신에게서 더없이 기쁜 순간은 너희가 신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깨닫는 바로 그 순간이다.
0. ‘사랑이 너희의 실체다’를 깨닫는 것, 열정을 죽이면 신을 죽이게 된다
사랑도 기대가 아닌 열정이라야 신의 사랑이다.
0. 특정한 결과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자유‘이다
그것이 바로 ‘신성’이다. 신성은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기쁨을 창조하는 것.
0. 깨달음이란 존재를 Now Here 그냥 있음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
깨달음이 확실한 표식은 창조에 대한 감사다.
0. 몸 ; 생존하고 음식을 먹고 안전을 추구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
영혼 ; 자신이 공간적으로 발현된 삶 그 자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영혼은 그 자체이기에 이러한 것들을 추구하지 않는다
0. 너희는 몸이 아니다. 너희는 한계가 없고 끝이 없다
0. 너희 영혼은 너희 몸 안에 살지 않는다. 그 반대다.
너희 몸이 영혼이라고 불리는 힘의 장(Force Field) 내에 살고 있다
몸이 에너지장내에 우주적 영의 공간화 된 표현 내에 즉, 너희의 정수 내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힘의 장은 너희 몸을 감싸고 있는 에너지를 방사하며 진동시키고 있다
너희는 이 힘의 장을 때때로 오라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오라 이상이다
0. 한명의 스승이 와서 세상을 바꾸는 시대는 끝났다. 그래서 하나의 집단으로 일하여라.
개인적인 마스터들을 쫓지 말고 집단적인 의식을 개인적으로 마스터하라
0. 너희는 먼저 자신을 바꿈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
0. 이 우주에 그 자체로 나쁜 것은 하나도 없다.(일체가 신이기에)
단지 그것을 잘못 사용하기에 나쁘게 느끼는 것뿐이다
0. 신에게 이르는 일곱 단계
1. 신을 안다
2. 신을 믿는다
3. 신을 사랑 한다
4. 신을 받아들인다
5. 신을 활용한다
6. 신을 돕는다
7. 신에게 감사한다
0. 자신을 알리고 자신을 선언하라. 그런 다음 네가 선언했던 그 존재상태로 완전히
옮아가라. 지금이라는 모든 순간들마다 네가 지금껏 ‘자신’에게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숭고한 해석으로 너 자신을 새롭게 창조하라
0. 우리 방식이 더 낫지는 않다. 우리 방식도 또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대다수 종교들이
자기네 길만이 유일한 참된 길이니, 다른 방식을 믿다가는 영원히 저주 받을 위험을
무릅쓰게 되리라는 관념에 가장 먼저 호소한다. 그 때문에 종교는 사랑보다는 두려움을
이용해서 너희를 잡아본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이런 이유로 너희를 내게 오게 하지 않을 것이다
0. ‘게이’, ‘레즈비언’의 사랑에 대해
: 순수하고 진실된 사랑이라면 그 표현형태와 표현방식이 부적절한 경우는 없다
순수한 사랑이란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거나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거나 다치게 만들 가능성을 피하려 할 것이다
0. 사랑은 지금 무엇을 하려 하는가?
; 사랑은 조건 없는 것이고, 한계 없는 것이며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자유롭다
‘자유’는 신의 본질이고 사랑은 표현된 신이다. 모든 것과 하나일 때 참으로 자유롭다
0. 거짓 사랑은
1. 필요 2. 기대 3. 질투
0. 행복이 네 외부의 것에 좌우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라
그러면 너는 질투에서 벗어날 것이다
0. 삶의 목적은 너희가 삶에서 받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너희가 삶 속에 집어넣는 것 과만 관계가 있음을 기억하라
0. 삶의 목적은 ‘참된 자신을 선언하고’, ‘참된 자신이 되고’
‘참된 자신을 표현하고 이뤄내고 체험하고 아는 것이다’
0. 참 사랑은 상대가 무엇을 하던 그냥 사랑하는 것이 참 사랑이다
상대의 행동에 의해 좌우되는 사랑은 필요, 기대, 질투에 의한 인간 사랑이다
0. ‘
: 진실은 축하 받을 일이지 허락 받을 일이 아니다
0. 너희가 자신의 진실로 가는 길을 택하는 건 너희가 앞으로 모든 일에 대해서
모두에게 항상 진실만을 말하고 항상 자신의 진실에 따라 살겠노라고 선언할 때다
0. 너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자기 연인에게 말하는 건 부정이 아니다
그건 솔직함이다. “솔직함은 사랑의 최고 형태다”
0.
부탁에 의한 것이든 생략에 의한 것이든 거짓말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0.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는 것이다
0. 자각은 존재상태다. 그러니 너희에게 난처하거나 당혹스런 일이 생기더라도 너희는
그것에 신경 쓰지 마라. 너희에게 문제가 있거나 부정적인 상황에 놓이게 될지라도 절대
그것에 신경 쓰지 마라. 너희가 그것에 신경 쓰는 건, 그것에 굴복하는 것이다.
신경 쓰기 때문에 그것에 지배되고 있다.
0. 네가 느끼는 것이 네가 되어있는 것이다. 느낌은 영혼의 언어다.
그러니 너는 자신이 되어 있는 상태만 바꾸면 자신이 느끼는 상태를 바꿀 수 있다.
0. 네가 행복 하려면 행복해 지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행복하게 있기를 선택하라
그냥 그렇게 있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그렇게 있는 데서 생겨난다
0. 너희는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는 완전히 자각할 수 없다. 생각은 또 하나의 꿈꾸는 상태다. 너희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 자체가 환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이 현실을 창조하기에 네가 싫어하는 현실을 창조했다면 그것에 대한 생각을 놓고 네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그대로 행동하라
0. 함이 없는 함. 생각하고 있는 너를 관찰하라
0. 세상은 너희가 있게 할 것을 있게 할 것이고, 너희는 너희가 되어 있는 것을 있게 할
것이다
0. 너희가 신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너희 삶을 신중하고, 조화롭고, 은혜롭게 살 때다
내가 너희에게 준 창조 에너지와, 온화한 지혜, 순수한 사랑이라는 선물들을 사용할 때
너희는 이 세 가지 생활방식을 이뤄낼 수 있다.
0. 삶에서 우연히 벌어지는 일 같은 건 절대로 없고. 너희 삶의 어떤 일도 너희에게 도움이
될 기회를 낳지 않고 일어나는 일 같은 건 절대로 없다. 순간순간의 완벽이 너희에게
분명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 순간을 덜 완벽하게 만들거나 그 순간을
더 못한 선물로 만드는 건 아니다
0. 너희는 잠재의식이 아니라 초월의식에서 창조할 때, 가장 효과 있고 가장 효율성 높고
가장 빠르게 창조한다. 초월의식이란 초의식과, 의식과, 잠재의식이 둥글게 말려서 완전히
하나가 된 다음, 그것들을 넘어섰을 때 도달하게 되는 체험 수준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것은 생각을 넘어서 있는 자기다.
이것이 너희의 참된 존재상태이고 이 참된 존재상태가 ‘참된 자신’이다.
0. 자신의 참된 있음, ‘참된 자신’이란 건 모든 것을 앞선다.
너희가 지금 되어 있기를 원하는 자신을 생각할 때, 너희는 자신의 참된 있음,
자신의 전체 자아 속에 손을 뻗어 그 중에서 자신이 체험하고 싶어하는 그 일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전체 자기는 그 모두다. 그것은 행복이자 슬픔이다.
0. 신에 대한 네 생각이 신을 창조하지는 않는다
그건 그냥 신에 대한 네 체험을 창조할 뿐이다. 신은 그냥 있다
0. 너희가 선언하는 것 바로 이것이 자신의 존재상태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선언은 ‘참된 자신’을 불러내는 것, 지금 이 순간 너희가 체험하고 싶어하는 ‘참된 자신’의
그 부분을 불러내는 것이다. 이것은 창조력 있는 생각이 아니라 창조력 있는 존재함이다
존재함은 창조의 가장 빠른 방법이다.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있기 때문이다
0. 그렇지만 생각은 세 가지 -생각, 말, 행동-창조 도구 중 하나이기에
시간에 구애됨이 없다면 얼마든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도 상관없다
다만 있음은 즉각적이나 생각은 시간이 걸린다. 생각은 있음에 비하면 대단히 느리다
0. 창조에 대한 바른 새로운 이해는 창조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창조되어있는
것을 자각하는 - 영원히 있고, 항상 있었고, 언제나 있게 될 것을 자각하게 해 주는- 새로운 이해다
0. 너희는 사랑에 대해 생각하기도 전에 사랑에 빠졌고 사랑 속에 있었다
감사도 그와 같다. 너희가 감사함을 느낄 때, 아무도 ‘이제 감사함을 느낄 시간이다’고
말하지 않는다. 너희는 그냥 아주 자연스럽게 감사함을 느낀다. 너희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도 전에 감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감사함 역시 존재의 한 상태다. - 사랑,
기쁨, 축복, 지혜, 자유, 생명-도.
0. 내가 뭔가를 신에게 청하는 게 아니라 그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면 나는 그게 이미
제자리에 있음을 알고 있는 게 틀림없다. 신에게 감사할 때 우리는 삶의 모든 좋은 것들이 이미 자신에게 와 있음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택한대로 표현하고
체험하고 진화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 즉 딱 맞고 완벽한 사람과 장소와 시간들이 이미
자기 앞에 놓여 있다는 걸.
0. ‘나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대답하리라’ -이미 되어 있는 걸 자각, 깨침-
0. <5가지 마음가짐>
오로지 기뻐하고
“ 사랑하고
“ 수용하고
“ 축복하고
“ 감사하는 것
0. 기쁨 자체가 영혼의 천성이다. -순수한 기쁨, 무한한 기쁨-
미소는 너희 영혼을 위한 창문이고 웃음은 그 문이다
0. 너희 가슴은 영혼과 마음을 잇는 회랑이다.
너희 영혼 속의 기쁨은 너희 가슴을 거쳐 옮아가야 한다.
느낌은 영혼의 언어다. 너희 마음이 닫혀있을 때 느낌은 너희 가슴속에 묶여있게 된다
너희가 무척이나 슬프다고 느낄 때, 흔히 가슴이 무너진다고 말하고 너희가 무척이나
행복하다고 느낄 때 가슴이 터진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음을 열어서 네 감정이 표현되게 하고 밀려나오게 하라. 그러면 네 가슴은 무너지지도 터지지도 않고 너희 영혼 속 생명에너지가 자유롭게 흐르는 통로가 될 것이다
0. < 영혼은 기쁨이라면서 슬프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
; 기쁨은 생명의 표현이다. 생명에너지의 자유로운 흐름이 너희가 기쁨이라 부르는 것이다
생명의 본질은 ‘하나됨’, 존재 전체와의 합일이다.
이런 합일의 표현이 생명이고 사랑이라는 것이 바로 합일의 느낌이다
그래서 사랑을 생명의 본질이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기쁨은 사랑의 자유로운 표현이다
어떤 환경이나 조건이 생명과 사랑의 자유롭고 무한한 표현, 다시 말해 만물 및 모든 자각
존재와의 ‘하나 됨’과 합일의 체험을 금지하거나 제한할 때, 기쁨 자체인 영혼은 충분히
표현되지 못 한다
충분히 표현되지 못한 기쁨이 바로 너희가 슬픔이라 부르는 느낌이다
0. 이 우주에는 어떤 것도 분리되어 있지 않다. 단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뜨겁다 차갑다 도 어느 기준 온도보다 높으면 뜨겁고 낮으면 차갑다
그 기준 온도가 각자의 기준이고 그 기준도 각 개인마다 조금씩 다르다 슬픔, 기쁨, 행복,
고통, 사랑, 미움도 마찬가지다.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느끼는 게
이렇기 때문이다
0. 우주에너지는 자유롭지 못할 때 그 진동수가 떨어진다. -물질화 현상이 이루어진다-
0. 기쁨은 항상 거기에 있다. -네 영혼 속에, 네 가슴 속에-
네가 기쁨을 느끼려면, 네가 기쁨을 샘솟게 하려면 남이 기쁨을 느끼도록 도와줘라
남의 내면에 있는 기쁨을 풀어 줘라. 그러면 너희 내면에 있는 기쁨도 풀리게 되리니.
미소, 찬사, 격려, 자비로운 눈길, 사랑을 나누고, 노래, 춤, 그림, 조각, 대화로 남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남들의 기쁨을 풀어놓을 수 있다
0. 21세기는 깨어남의 때, 내면의 창조주와 만나는 때가 될 것이다
‘신 인류’의 황금기, ‘보편 인간의 시대’가 시작되는 때가 이때다
0. 사랑체험은 일시적이지만 사랑 자체는 영원하다
사랑체험이란 어디에나 항상 있는 사랑을 지금 여기서 체험하는 것일 뿐이다
0. 삶은 창조의 과정이지 발견의 과정이 아니다
이미 되어 있는 것을 자각할 때 현실화 된다. 이것이 창조다
0. 너희는 자신이 누구고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너희 관념을 바꾸지 않는다면 너희는 결코
완전히 사랑할 수 없다. 왜냐하면 너희는 자신조차 완전히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0. 신은 완전히 자유롭기에 완전히 사랑 한다
완전한 자유는 모든 기쁜 체험들을 위한 공간을 창조하니 완전히 자유로운 건 완전히 기쁜 것이다. 자유는 신의 본성이다. 인간 영혼의 본성이다
너희가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만큼 너희는 완전히 기쁘지 못하고 그만큼 너희는 완전히
사랑하지 못 한다
0. 사랑한다는 것은 완전히 자유롭다는 뜻이고, 그리고 남들을 완전히 자유롭게 해 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0. 귀결은 자연스런 결말인 반면, 처벌은 정상적(인간의 관념, 도덕, 율법에 의한)인 결말이다. 너희 사회에서는 벌하는 것이 정상이고 귀결은 자신을 주장하고 드러내도록 그냥 놔두는
것이다 처벌은 자연스런 결말을 기다리기엔 너희가 너무 조급하다는 선언이다
0. 참된 사랑은 조건에 따라 행하여지지 않는다. 완전히 사랑한다는 의미가 이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큰 비행이라도 받아줄 만큼 너희의 사랑이 완전하다는 의미다. 아니 그것은 그 이상이다.
그것은 어떤 행위도 ‘잘못된‘ 것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0. 오로지 사랑한다는 건 모든 성숙한 자각 존재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되고,
그것을 하고, 그것을 가질 수 있는 온전한 자유를 기꺼이 준다는 뜻이다
성숙하지 않은 존재 -즉 어린 아이들- 에게는 성숙의 길로 끌어주는 방법,
여건이 허락하는 한 이른 시기에 가능한 한 많은 선택을 할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다
사랑이 하는 일이 이것이다. 사랑은 놓아 준다. 필요는 붙잡는다
그리고 상대방이 너희가 바라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너희의 사랑을 묶어두지 마라
0. 너희의 물음에 대한 답이 올 때 그것을 놓고 사후평가를 내리지 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너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놀림감으로 만들 수 있다
그냥 사랑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서 네 모든 선택과 결정들이 그곳에서 나오게 하라
그러면 네가 평화를 발견하리니.
0. 너희에게 일어나는 것을 거부하면 그것은 지속된다. 그러니 지금의 환경이나 조건에
기뻐하고 그것을 즐겨라. 그리고 그것을 너희가 바꾸길 원하면 그것을 그냥 다른 방식으로 체험하길 선택하라
거부하지 말고 새로이 선택하는 것, 너희가 추구하는 것이 이것이다
너희의 외부 세계는 그냥 있는 그대로 있게 하고, 내면세계를 너희가 있게 하고자 하는
대로 창조하라. 삶을 깨닫는 건 너희는 이 세상에 있는 것이지 이 세상 출신이 아니라고
말할 때의 의미가 이것이다
0. 뭔가를 놓아버릴 수 있으려면 너희는 먼저 그것을 손아귀에 너희 현실 속에 꽉 붙잡아야
한다
0. 무언가를 축복한다는 것은 네가 그것에 네 최상의 에너지, 네 최고의 생각들을 줄 때이다
‘심판하지도 비난하지도 말고 다른 것을 선택하라’
0. 수용한다는 것이 그것에 동의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건 네가 동의하건 안 하던 상관없이, 그냥 그것을 껴안는다는 것이다
0.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그 사람들의 문제고 자신에게 솔직 하라 성실하고 겸허하면 된다
0. 다른 사람의 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자신을 절대 포기하지 말며 자신이
다음단계로 진화하는 걸 멈추지 말라 -셜리 멕레인
0. 이 세상에서 ‘더 낫다’는 없다. 유일한 참된 종교 따위도 없다.
참 진리는 ‘우리 모두 하나다’라는 것이다
자신의 조건과 기호에 맞게 삶을 살고 신과 하나 되는 길을 가라. 신과 우정을 나눠라
0. 너희는 살아남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고방식을 영원히 추방하라
‘너희가 꼭 해야 할 일은 없다’ 너희의 생존은 보장되어 있다
이것은 희망사항이 아니라 사실이고, 약속이 아니라 현실이다
너희는 언제나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다
삶은 영원하고, 사람은 불멸이며, 죽음은 단지 지평선일 뿐이다
0. ‘나는 신과의 대화’를 통해 너희의 생존은 보장되어 있다는 내 불멸의 메시지를 너희에게 보낸다. 문제는 너희가 살아남을 것인가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너희가 어떤 것을 자신의 체험으로 삼을 것 인가이다
0. 너희가 다음 생에서 체험하는 것은 이번 생에서 너희가 창조한 것의 반영에 불과하니,
사실 존재하는 건 다음을 창조하는 개개 순간들을 가진 체 영속하는 오직 하나의 삶뿐이기 때문이다
0. 너희가 자각해야 할 것 세 가지는
1) 우리는 하나다
2) 충분히 있다
3)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0. 삶은 변화다. ‘자신’이 변화 자체이거늘 그것을 불변의 상태로 묶어두려고 애쓰면서, 살아 있는 지옥을 만들어 내고 있다
0. 너희는 진화하고 있다. 어떻게 진화하는 가는 너희의 선택이지만, 너희가 진화한다는 사실 자체는 선택이 아니다
0.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우주 자체의 동의를 받아서 -다양한 형태-로 일어난다.
우주가 자신과 불일치할 수는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0. 너희가 남을 위해 하는 일이 곧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다.
자신에게 행하듯이 남에게 행하라
0. 너희는 정치관을 드러낸 너희의 영성이다.
너희의 영성을 정치화하는 문제가 아니라, 너희의 정치를 영성화 하는 문제일 것이다
‘영성‘이란 ’삶‘ 자체, 있는 그대로의 삶 자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삶과 신은 같기에 그렇다. 너희가 지금 관찰하는 과정이 형성중인 삶의 과정이라면,
너희 모두는 형성중인 신이다(Gods information). 다시 말해 너희는 신의 정보다
0. 너희가 정치를 창조한 이유는 조화롭고,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체계,
즉 삶 자체를 긍정할 수 있게 해주는 체계를 낳기 위해서였다
0. 기쁨은 곧 자유다. 자유를 제한하는 건 기쁨을, 사랑을 제한하는 것이다
0. 사람들은 너희가 평화를 위해 기도하기는 바라지만, 그것을 놓고 뭔가 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들은 신의 해결책을 찾기는 바라지만, 너희가 그 문제를 놓고 뭔가를 하는 게 바로 신의
해결책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배제한다. 사실 신은 세상 속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세상에서 일할 수 있기에 이것만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인데도 말이다
0. 마음이 아름다움을 부정할 때조차 그것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것, 이것이 영혼이다
너희 생각에 불협화음이 들리는 것 같다고 해서 너희가 연주하는 교향악을 그만두지는 마라. 그냥 너희 음조를 바꿔라
0.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라 하셨는데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닌가요?>
; 아니다. 그것은 네가 되어 있는 것이다. 너는 그 메시지를 할 수는 없고 그 메시지가 될
수는 있다. 왜냐하면 너희는 인간행위가 아니라 인간존재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그 메시지를 자신으로서 전하는 것이지, 그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가 전하는 것 이 아니다. 너희 자체가 메시지다. 이것이 행동하는 너희의 영성이다.
너희 메시지는 살아온 자신의 삶이고, 너희가 퍼뜨리는 그 말은 자신인 것이다. ‘그리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가 이 뜻이다. 한 마디로 ‘신이 되어라’. 그리고 너희는 ‘되기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 자체가 나다.
‘네가 오로지 기뻐하고, 오로지 사랑하고, 오로지 수용하고, 오로지 축복하고, 오로지
감사하는 것, 이것이 신의 삶이다. 이것은 너희가 되어 있을 때 자연스럽게 나온다
0. 신중하고, 조화롭고, 은혜롭게 자신의 삶과 일이 남들에게 이로운 것이 되게 하겠노라
작정하라. 그리고, 자각, 정직, 책임이 이렇게 살 수 있는 세 가지 도구다
0. 너희는 성장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참된 가르침은 너희가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기억나게 해주는 과정이다
참된 선각자는 자신이 가진 지식이 제자보다 더 크지 않다는 걸 안다. 다만 그는 더 많이
기억할 뿐이다
0. 자각은 지금 상황이 어떠하며 왜 그러한지, 또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왜 그러한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건 무엇이고 특정 선택이나 행동이 불러올 수 있는 –
가장 현실성 높은 – 결과들은 무엇이고 그런 결과들을 가능하게 하고 현실화 시키는 건
무엇인지를 예리하게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0. 정직이란 도구를 꾸준하게 사용하면 네 삶이 바뀌는 것을 보게 된다
0. 삶은 영원하고, 우리 중에 오직 하나 -진리이고 우주이고 신인-만이 존재 한다
0. 너희가 신과 우정을 나누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있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언제 움직여야 할지, 왜 사랑해야 하는지를 놓고 두 번 다시 궁금해 하지 않는다
내가 너희에게 그 답들 모두를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실상은 내가 너희에게 답을 주는 게 아니다.
나는 그냥 너희가 이번 생에 들어올 때 그것 들을 가지고 왔다는 사실, 너희는 그것들을
항상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만 하면 된다. 나는 너희에게 그것들을 불러내는 방법, 어떤 문제, 어떤 도전, 어떤 어려움의 영역에서도 그것들이 너희 존재에서 뿜어져 나오게 만들 방법을 보여 주는 것으로 문제와 곤란과 어려움들이 더 이상 너희 삶의 일부가 아닌 그냥 체험이 되게 할 것이다
0. 네 체험은 ‘참된 자신‘을 완전히 기억해 낼 때 바뀔 것이다
0. 남들을 내(神)게로 돌아오게 하는 것, 남들에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보여 주는 것,
남들을 그들 자신에게 되 돌아 가게 하는 것을 너희 기쁨으로 삼아라
자신의 가슴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거기서 나를 찾아내리니.
자신의 영혼과 다시 결합하라, 그러면 나와 다시 합쳐지리니.
너희의 차이를 축하하면서 너희의 분리를 끝내고, ‘나는 존재 전체’라는
유일 진리의 합일된 표현 속에 합류하라
*** 신과 나눈 교감 ***
0. 누구나 창조주와 만납니다. 문제는 만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언제 만날 것인가
입니다.
진지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좀더 일찍 그 만남을 체험합니다.
진솔함은 자석처럼 ‘삶’을 끌어오니까요. 그리고 ’삶‘은 ’신‘을 뜻하는 또 다른 말이고요.
진솔하게 추구하는 사람은 진솔하게 보상 받습니다. 삶은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입니다.
0. 어떤 게 신에게서 온 영감이고 어떤 게 그렇지 않은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굉장한 비책(秘策)이 있는데 그건 굳이 그것을 알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진리가 아니라 우리의 진리만 알면 됩니다. 이 점을 이해하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반드시 ‘진리’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의 진리로 이끌어 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입니다.
결국에는 그렇게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상황이 우리를 자기 내면의 진리로 이끌어 주니까요.
이것이 모든 상황의 목적입니다. 사실 이것은 ‘삶’ 자체의 목적입니다.
‘삶’은 진리입니다. 스스로에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신’은 삶입니다. 스스로에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이 과정을 멈추게 하고 싶어도 당신은 그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속도를 더할
수는 있습니다.
여기서 당신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0. ‘삶’은 해석된 신이다. 즉, 다양한 형상으로 전환된 신이다.
전환의 첫 단계는 통일된 비물질에서 개별화된 비물질로 바뀌는 것이고,
전환의 두 번째 단계는 개별화된 비물질에서 개별화된 물질로 바뀌는 것이며,
전환의 세 번째 단계는 개별화된 물질에서 통일된 물질로 바뀌는 것이고,
전환의 네 번째 단계는 통일된 물질에서 통일된 비물질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삶’의 순환은 완결된다.
계속되는 신의 전환 과정은 신의 통일체 내에서 한없는 다양성을 낳는다.
이 같은 통일체의 다양성이 바로 내가 “개별화”라고 불렀던 것이다.
개별 표현의 목적은 내가 내 부분들을 체험함으로써 나 자신을 전체로서 체험하는 데 있다. 게다가 전체는 부분들의 합보다 크지만, 그럼에도 부분들의 총합을 알아야만 전체를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너희다. 너희는 ‘신의 총합’ Sum of God이다.
이것을 신의 아들 Sun of God이라고 많은 이들이 말하고 있다. 이것도 맞다.
너희 주변에 있는 모든 것- 보이고 보이지 않는-이 다 ‘신의 총합’이다.
이것은 태초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나는 지금 새 천년이 시작되는 이 날 이 때에 너희에게 가고 있다.
새로운 방식으로 새 천년을 시작할 수 있도록.
너희가 마침내 ‘나’를 알고, ‘나’를 먼저 택하고, 모든 면에서 항상 ‘내’가 될 수 있도록.
신과 교감하는 이 체험을 선택할 때, 너희는 마침내 평화와 한없는 기쁨과 온전히 표현된 사랑과 완전한 자유를 알게 될 것이다. 이 진리를 선택할 때, 너희는 세상을 바꿀 것이다. 이 현실을 선택할 때, 너희는 그 현실을 창조할 것이고 마침내는 ‘참된 자신’을 온전히
체험할 것이다.
너희가 해야 할 일은 되는 것뿐이고, 너희가 되어야 하는 건 오직 나뿐이다.
이조차도 의지가 아니라 단순한 인정일 것이다. 필요한 것은 행동이 아니라 오직
받아들임뿐이다.
천국행 승차권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하나임을 인정하라.
나와의 합일과 다른 모든 사람과의 합일,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것과의 합일로 너희 앞에 천국이 펼쳐진다.
0. 인간의 열 가지 환상 인간 문화 이야기 (지어낸 신화)
1. 필요가 존재한다. - 신은 숨겨진 계획 an agenda을 가지고 있다.
2. 실패가 존재한다. - 삶의 결과는 불확실하다.
3. 분리가 존재한다. - 인간은 신에게서 분리되어 있다.
4. 부족이 존재한다. - 충분히 있지 않다.
5. 요구가 존재한다. - 너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6. 심판이 존재한다. - 그것을 하지 않으면 너희는 벌 받을 것이다.
7. 처벌이 존재한다. - 그것은 영원히 계속되는 천벌이다.
8. 조건이 존재한다. - 따라서 사랑은 조건부다.
9. 우월이 존재한다. - 그 조건을 알고 따르는 사람은 우월하다.
10. 무지가 존재한다. - 너희는 이것이 환상임을 알지 못한다.
앞의 다섯 가지는 육체적인 삶과 관련된 물질적인 환상들이고,
뒤의 다섯 가지는 비물질적인 삶과 관련된 형이상학적인 환상들이다.
이 문화 이야기는 너희 속에 워낙 깊이 배어 있어서, 이제 너희는 너무나도 완전하게 이에 따라 살고 있다.
그리고 서로에게 말한다. 이건 “원래 그래.”라고. 여러 세기 동안, 아니 몇 천 년 동안
서로에게 그렇게 얘기해 왔다. 사실 이런 환상과 이야기들 주위에는 신화가 자라난 것은
참으로 오래 전부터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 몇 가지를 개념화하면,
*. 인간은 누구나 결국 죽는다.
*.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 전리품은 승자의 것이다.
*. 인간은 원죄를 지니고 태어났다.
*. 죄의 대가는 죽음이다.
*. ‘복수는 나의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 모르는 게 약이다.
*. 신만이 아신다.
0. 필요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 이것은 너희에게 있어 가장 큰 환상이다. 우주에 필요는 존재하지 않는다.
뭔가가 필요한 건 특정결과를 요구할 때뿐이다. 하지만 우주는 특정결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우주 자체가 결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신의 마음에도 필요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어떤 특정 결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모든 결과를 낳는 존재가 신이기 때문이다
신(생명)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고, 존재했던 모든 것이며, 존재할 모든 것이다.
신은 지금 벌어지는 일 이외에 다른 어떤 일도 벌어지는 걸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것이 만물의 본성이다. 너희가 상상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것이 바로 세상의 이치다.
너희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필요’라는 발상은, 살아남기 위해서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는 너희의 체험에서 나왔다. 그러나 살든 죽든 개의치 않는다고 생각해 보라.
그럴 때 너희가 무엇을 필요로 하겠는가? 전혀 아무 것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살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보라. 그럴 때 너희가 무엇을 필요로
하겠는가? 전혀 아무 것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살지 않을 수 없는 존재다.
너희가 살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다.
다시 말해 어떤 형상을 취하고, 어떤 체험을 할 것인가의 문제다.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너희의 생존은
보장되어 있다.
나는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었고, 한번도 그것을 빼앗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너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맞습니다, 하지만 생존하는 것과
행복한 것은 다른 문제죠.” 물론 행복하게 생존하기 위해서는 뭔가가 필요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특정 조건에서만 행복해질 수 있는 거라고. 이것은 사실이 아니지만, 너희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어 왔다.
그런데 믿음은 체험을 낳으니, 너희는 이런 식으로 삶을 체험해 왔고, 따라서 신도 이런
식으로 삶을 체험하리라고 상상해 왔다. 그러나 너희에게 이것이 진실이 아니듯, 신에게도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차이가 있다면 신은 이 점을 안다는 것뿐이다. 그러니 너희가 이 점을 안다면 너희도
신처럼 될 것이다.
너희는 삶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현실을 완전히 바꿀 것이다. 자, 여기에 위대한 비책이
있다.
행복은 특정 조건들이 낳는 결과가 아니라, 행복하기 때문에 특정 조건들이 만들어 진다. 이것은 워낙 중요한 명제여서 다시 한번 되풀이할 필요가 있다.
행복은 특정 조건들이 낳는 결과가 아니라, 행복하기 때문에 특정 조건들이 만들어 진다.
이 명제는 다른 존재 상태에 똑같이 적용된다.
사랑은 특정 조건들이 낳는 결과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특정 조건들이 만들어 진다.
자비는 특정 조건들이 낳는 결과가 아니라, 자비롭기 때문에 특정 조건들이 만들어 진다.
풍요는 특정 조건들이 낳는 결과가 아니라, 풍요롭기 때문에 특정 조건들이 만들어 진다.
이것은 어디에 대입해도 맞아 떨어진다. 체험에 앞서 되어 있음 Beingness 이 있고, 그것은 체험을 낳음을.
0. 너희의 삶은 환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환상이 진짜 같이 보이는 이유는 그 환상을 진짜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환상을 제대로 보려면, 우선 환상에 대한 너희의 믿음을
바꿔라. 과거에 너희는 보아야 믿는다고 들었다. 그러나 최근에 제기된 새로운 발상은
믿어야 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가 환상을 만났을 때 그것이 환상이라고 믿는다면, 아무리 진짜처럼 보여도, 너희는 그것을 환상으로 보지 않겠는가? 그럴 때 ‘환상’은 원래 의도대로 ‘궁극의 실재’를 체험하기 위한 도구로서 이용될 수 있다. 이제까지 너희의 선택은 남들이 선택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선조의 방식대로. 남들이 너희를 위해 선택했던 것을 선택하기를 그만두는 날, 그 때가 바로 해방의 순간이 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환상’에서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환상에서 해방될 것이다.
너희 자신이나 현실에 대한 환상의 지배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환상과 더불어 살아갈
것이다.
일단 너희가 ‘환상’의 목적을 이해하고 나면, 자신의 목적이 실현될 때까지 너희는 절대
환상을 끝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의 목적은 ‘참된 자신’을 알고 체험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음에 자신이 되려는 존재’를 창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너희는 자신이 체험하고자 하는 대로 세상을 체험하기 시작할 것이다.
환상이 시작된 이후로’ 너희가 창조하기 위해 기다려 왔고 체험하기로 되어 있던
세상이다.
항상 명심해라. 너희는 ‘환상’을 견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하기로 선택하지 않는 한, ‘환상‘에 따라 살 필요가 없다.
너희가 여기에 있는 건 너희가 원해서이다. 만약 그걸 원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너희 삶의 믿음인 그 환상을 창조하는 건 너희 자신이지, 너희를 대신한 다른 누군가가 아니다.
0. 모든 행동이 자기규정의 행동이고, 모든 생각이 창조 에너지를 지니며, 모든 말이 너희의 진실을 선언한다는 걸.
오늘 너희가 하고 있는 걸 살펴보라. 그것이 너희가 자신을 규정하고 싶어하는 방식인지.
오늘 너희가 생각하고 있는 걸 살펴보라. 그것이 너희가 창조하기를 원하는 것인지.
오늘 너희가 말하고 있는 걸 살펴보라. 그것이 너희가 되기를 바라는 존재인지.
너희 삶의 모든 순간이 신성한 순간이고, 창조의 순간이다.
순간순간이 새로운 시작이니, 순간순간 너희는 다시 태어난다.
0. 인류가 진화하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것이 고요히 있는 것이다.
너희는 고요 속에서 참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할 것이고, 침묵 속에서 자신의 영혼과 신의 숨소리를 들을 것이다. 여러 번 말했지만, 다시 한번 이르노니, 너희가 고요히 있을 때
너희는 나를 찾을 것이다.
날마다 명상해라. 나는 누구인가?
참으로 나는 누구이고, 나는 지금 무엇이 되기를 선택하는가?를 통찰하며.
그리고 자문해 보라. 매일 아침 15분과 매일 저녁 15분을 신에게 바칠 수 있는지.
그럴 수 없다면, 그럴 시간이 없다면, 너무 바쁘다면, 다른 할 일이 너무 많다면,
너희는 아직도 ‘마야 Maya', 즉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너희가 생각하고 있는 것
보다 더 깊게.
0. 사랑은 측량할 수 없다. 언제나 이것을 기억하라.
사랑은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지만, 신의 왕국에는 사랑이 언제나 있다.
이것은 신이 사랑의 분배자가 아니라, 신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미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구하면서 평생을 보낸다.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것이니까.
사랑을 갖기 위해 너희가 해야 할 일은 사랑이 되는 것뿐이다.
너희가 ‘자신이 참으로 누군지’ 기억해 remember 낼 때 문자 그대로 그렇게 된다.
즉, 다시 한번 한 몸의 구성부분으로 재구성 re-member 한다.
0. 너희가 존재하기 위해서나 영원히 계속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필요의 환상은 너희가 필요를 체험할 수 있는 문맥 영역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환상’ 밖으로 나올 때, 너희는 궁극의 실재를 체험한다.
말하자면 필요의 환상이 ‘궁극의 실재’를 이해할 수 있는 문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궁극의 실재’는 너희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이미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너희 안에 존재하고 있다. 사실 그것은 너희 자신이다.
너희가 필요로 하는 건 너희 자신이니, 너희는 그 순간에 필요한 모든 것을 너희 자신에게 주고 있다.
이 말은 너희에게는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것을 이해하고 체험으로 알려면, ‘필요의 환상’을 환상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의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필요의 환상 밖으로 나오는 방법은 너희가 지금 이 순간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 즉 가져야 할 것 같은데 지금 가지고 있지 않다고 여기는 것을 살펴보고 나서, 자신에게 그것이 없어도 자신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엄청나다.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 없이도 너희가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존재한다면,
너희는 왜 굳이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이 핵심적인 물음이니, 모든 것으로 통하는 황금 문의 자물쇠를 열어 줄 것이다.
다음에 자신에게 뭔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왜 나는 이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라고.
이것은 진실로 해방을 가져다 줄 물음이다. 그것은 다섯 마디로 된 자유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무엇이든, 너희한테는 그것이 필요하지 않고,
한 번도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너희 자신이 그 모든 걸 만들어 왔음을 깨달을
것이다.
너희는 마시는 공기조차 필요하지 않다. 너희는 죽는 순간 이것을 알아챌 것이다.
공기는 너희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일 뿐인데, 너희는 너희 몸이 아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가진 것이지만, 너희인 것은 아니다. 몸은 멋진 도구다.
그러나 너희가 창조 과정을 계속하는데 현재의 너희 몸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0. 바라보는 모든 것에서 자신 말고는 아무 것도 보지 않을 때, 너희는 신의 눈을 통해 보고 있다.
그리고 합일의 느낌이 강해질수록 고통과 실망은 너희 삶에서 사라질 것이다.
언제나 이것을 잊지 마라. ‘합일’의 느낌이 강해질수록, 고통과 실망은 너희 삶에서 사라질 것이다.
0. 자신에 대한 생각이 확장될수록 체험도 확장될 것이다.
0.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과 관련하여, 그 문제에서의 원인은 자신이다.
0. 어떤 일이 너희에게 일어나면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자문하지 말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를 너희가 선택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를 너희가 결정하라
‘자신이 되고자 하는 것’을 밝히고 선언하고 표현하고 체험하고 실현하고, 그것이 되어라.
만일 너희가 세심한 관찰자라면,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할 때까지 똑같은 상황이나 환경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삶으로 끌어온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여정이다.
0. 내가 나라고 일컫는 것이 나이고, 내 체험이라고 일컫는 것이 내 체험이다.
내가 되어져있는 대로 삶이 펼쳐진다.
0. 아픔 없는 상태는 필요가 아니고 선호 preference다. 이렇게 필요를 선호의 차원으로 옮겨 놓을 때, 너희는 자신이 하고 있는 체험을 지배할 놀라운 힘을 가질 수 있다. 너희는 아픔을 지배하기에 충분한 힘, 사실상 그것을 무시하고 종종 그것을 실제로 사라지게까지 하기에 충분한 힘을 가질 수 있다.
0. 행복은 체험이 아니라 결정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없이도 너희는 행복해지기로 결정할 수 있다. 그러면 너희는 행복해질 것이다.
체험은 너희가 내리는 결정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반응이 아니다.
사랑은 결정이다. 이 점을 기억해 낼 때 너희는 깨달음에 다가가고 있다.
그러니 이렇게 결정하라.
“내가 이런 체험을 한 건 내가 바라는 성공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기 위해서야. 이 체험은 내게 주어진 선물이야.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소중히 여기고 그것에서 교훈을 얻고 있어“
0. 외롭다고 느낄 때, 자신의 “외로움”을 환상으로 보아라.
너 자신의 외로움은 자신이 주위 세상에 충분히 손을 뻗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결정하라.
그런 다음에는 사랑을 가지고 남들을 만나는 사람으로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하기로
선택하라.
삼일 동안만 이렇게 하면 기분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고, 삼주 동안을 이렇게 하면 외로움이 끝날 것이다.
석 달 동안을 이렇게 하면 너희는 다시는 외로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자신의 외로움은 순전히 환상이며, 자신이 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교도소 독방에 갇혔거나, 아파 누워 있는 사람도 자신의 내면 현실을 바꾸는 것으로 자신의 외부 체험을 바꿀 수 있다. 일단 너희가 내면의 창조주와 만나고 나면, 외롭게 느끼지
않으려고 자기 외부의 뭔가를 필요로 하는 일이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0. 운동은 몸의 명상이다. 또 운동은 ‘삶’ 전체와 ‘하나 됨’을 느끼게 해 준다.
운동할 때만큼 살아 있다는 느낌과 ‘생명’의 한 부분이라는 생생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때는 없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너희를 자연스럽게 고조 high 시켜주기 때문이다. 너희가 창조주와
연결되어 있을 때 너희는 높이 high 있다.
그리고 너희가 창조주와 연결되는 건 너희 몸이 건강하고 ‘생명’과 조화로울 때이다.
0. 너희가 스승의 지도를 바란다면, 그런 사람을 어떻게 알아보는 지가 중요하다.
외부에서 다시 말해 그들의 진리, 그들의 경전, 그들의 방식, 그들의 근거지에 신이 있다고 말한다면, 부디 조심하기 바란다. “경계 자세”를 취하고 이번 것은 환상임을 기억해 내라. 만일 너희 내면에서 신을 찾으라고 조용히 권한다면, 만일 그들이 너희와 내가 ‘하나’여서 그들의 진리와, 그들의 경전, 그들의 방식, 그들의 근거지가 너희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때 너희는 스승을 찾은 것이다. 너희가 내면 깊은 곳에서 그 스승에게
이끌렸다는 그 이유뿐이라면.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이끌더라도 자신을 가장 효과적으로 떠받치는 모습으로 몸을 유지하라.
음식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몸에 귀를 기울이면 어떤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신과 하나 되려는 열의와 내면의 사랑을 키우고 그 사랑을 남에게 베풀며 모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질 때 신과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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