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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민 |
[편집자 주] 이 인물화와 일본어로 쓴 이 시는 천재시인 이 상이 암울한 일본 동경에서 그리고 쓴 글이다. 이 시화는 시인 강 민 선생이 원본을 보관하고 있을 때 가까운 이들에게 이 귀한 시화 몇 점을 나누어주기 위해 복사를 한 뒤 비닐로 코팅해 놓았던 것이다. 이 시화 원본은 워낙 낡아서 잘 보관한다고 별도로 보관중 안타깝게도 강 민 선생이 불행을 당하고 어렵게 이사를 할 때 잃어버렸다 한다.
일간문예뉴스 <문학iN>은 얼마 앞 시인 강 민 선생으로부터 시인 이 상이 대학에 다닐 때 그리고 쓴 것으로 짐작되는 시화 복사본 한 점을 받아 독자들에게 선 보인다. 이 시를 읽으면 시인 이 상은 일제 강점기를 직접 혹은 은유로 비꼬는 뛰어난 참여시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시인 강민 선생은 “시인 이 상, 하면 사람들 대부분은 초현실주의자 혹은 모더니스트라고 여기기 십상이지만 그가 직접 그린 자화상과 일본어로 쓴 이 시를 읽으면 그렇지도 않다”며 “이 시를 통해 시인 이 상이 남긴 여러 시들을 다시 되짚으면 시인 이 상의 시세계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 ‘오감도’, 수필 ‘권태’, 소설 ‘날개’를 쓴 천재시인 이 상. 시인 이 상에 대한 새로운 평가는 이 시화 한 점을 통해 독자들 몫으로 남긴다. 이 상 시인이 일본어로 쓴 이 시 해석은 강 민 선생이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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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민 |
아, 이것은 딱지 붙은 요시찰 원숭이
가끔 인생의 우리를 탈출하기 때문에
원장님이 걱정을 하는 것이다
시인 이 상은 제목이 없는 이 시에서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스스로와 우리 민족을 “딱지 붙은 요시찰 원숭이”로 빗대고 있다. “가끔 인생의 우리를 탈출하기 때문에”는 어쩌지 못하는 식민지 조선의 젊은 시인이 암울한 일제의 수도에서 번민할 때 은연중 일제에 저항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원장님이 걱정을 하는 것이다”는 일제의 치안책임자를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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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민 |
1937년 사상불온혐의로 체포… 27살에 폐병으로 이 세상 떠나
13인의 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상 ‘오감도-시 제1호’ 모두
시인 이 상(1910~1937)은 본명이 김해경(金海卿)으로, 1910년 9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들이 없던 백부 김연필(金演弼) 장손으로 백부가 지닌 교육열과 도움으로 보성고보(普成高普)를 거쳐 경성고공(京城高工) 건축과를 나온 뒤 총독부 건축기수로 취직했다.
1931년 처녀작인 시 ‘이상한 가역반응’(可逆反應), ‘파편의 경치’를 <조선과 건축>지에 발표했다. 1932년에는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을 <조선>에 발표하면서 비구(比久)라는 익명을 사용했다. 같은 해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면서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을 처음으로 썼고, 그때부터 ‘이상’이라는 이름으로 작품활동을 했다.
1933년 3월 객혈로 인해 건축기수직을 떠나 배천온천에서 폐병을 이기기 위해 요양을 했다. 그는 이때부터 병으로 인한 절망을 이기는 방법으로 문학에 더욱 깊이 빠졌다. 1934년에는 시 ‘오감도’(烏瞰圖)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난해하다’는 독자들 항의로 30회 예정이던 것을 15회에서 마쳐야 했다.
1936년에는 <조광>(朝光)지에 소설 ‘날개’를 발표했다. 같은 해 결혼해 일본 도쿄로 가서 ‘봉별기’(逢別記) 등을 발표했다. 1937년에는 사상불온혐의로 체포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지병이었던 폐병이 악화되어 이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화장되어 경성으로 돌아왔다. 만 26년 7개월이라는 너무나 새파랗게 젊은 나이였다.
주요작품으로는 전기 외에 소설 <지주회시>(鼅鼄會豕), <환시기>(幻視記), <실화>(失花) 등이 있다. 시는 ‘이런 시’(詩), ‘거울’, ‘지비’(紙碑), ‘정식’(正式), ‘명경’(明鏡) 등이 있으며, 수필로는 ‘산촌여정’(山村餘情), ‘조춘점묘’(早春點描), ‘권태’(倦怠) 등이 있다. 1957년 80여 편에 이르는 이 상 모든 작품을 실은 <이상전집>(李箱全業) 3권이 나왔다.
첫댓글 귀한 자료를 통해 이상의 면모를 다시 떠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