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실루안이 드리는 기도는 자신을 전 세계에 연관시키고 모든 인류 즉 모든 아담과의 강력한 연대감을 갖게 해달라는 데 있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부활을 체험한 후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자신의 영원한 형제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함이 있으나 우리 모두는 영원 안에서 하나이다. 그러므로 우리 각 자는 자신을 위해서 뿐 아니라 이 하나된 전체를 위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22. 지옥의 고통을 경험하고 또 '지옥에서도 네 마음을 지켜라'라는 음성을 듣고 난 뒤 실루안에게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특별한 기도 제목이 되었다.(이 내용은 보통의 천주교인들이 드리는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의 의미와는 사뭇 다른 성격이라 생각된다) 그는 물론 살아있는 자들과 장차 태어날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의 기도는 시간의 간격을 뛰어 넘었고 이미 과거로 사라진 사람과 일, 원수까지도 포함하는 모든 생각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하나님을 아는 자들과 모르는 자들을 구분하는 것이 괴로움의 하나로 여겨질 정도로 모든 사람은 사랑이신 하나님 안에서 귀한 피조물이었다. 그는 이 세상 누가 저 먼 곳에 있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는 생각을 차마 할 수 없었다.
23. 하나님은 무신론자들을 영원히 활활 타는 지옥 불에서 고통을 당하도록 하실 것이라고 또 그것은 그들 자신 범죄의 결과이기에 우리로써는 어쩔 수가 없다고 만족스럽게 대답하지 말라. 천국에 가서 그 모습을 본다면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는가. 사랑은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24. 기도를 아주 천천히 한 단어씩 각각 전 존재에 몰두해서 드려 보라. 전 인격을 단일한 초점에 맞추고 호흡은 바꾸고 숨은 죽인다. 무모한 용기가 영혼의 사색과 집중을 방해하지 않도록 마음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 심령으로 기도하라. 정신과 심령, 그리고 육체는 모두 이 하나에 시선을 모은다. 보이지 않지만 정신은 세상을 사색하고 또 보이지 않지만 심령은 세상의 고통을 감지한다. 그리고 마음이 느끼는 아픔은 가장 깊은 곳까지 도달한다. 심령, 아니 전 존재는 눈물로 아파한다.
25. 실루안 수도사는 그렇게 오래 동안 기도하면서도 말을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참으로 기도는 외적인 모든 것을 침묵시켜야 한다. 그때 정신은 직관적으로 모든 것을 동시적으로 포착하게 된다. 기도하는 동안에 영혼은 어느 순간에 말과 몸의 모든 감각을 상실해버리고 정신은 단편적인 개념들에 대한 사고를 멈추며 나아가 영혼은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식할 수 있는 한계 상황에 봉착한다. 이런 순간에 사람은 세상을 망각하게 된다. 그의 탄원은 사라지고 얼이 빠진 침묵 속에서 그는 단순히 하나님 안에 있을 뿐이다. 정신이 온전히 하나님 안에 있으면 세상은 완전히 잊혀진다.
26.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에 이렇게 하나님 안에 거하는데 익숙해지면 기도가 없어도 영혼 속에는 사랑과 평화와 심원한 안정감이 넘쳐난다. 그러다가 만일 주님이 떠나시면 영혼은 하나님 안에 있기를 영원히 소원하기 때문에 일종의 막연한 슬픔이 치솟는다. 그 후부터 영혼은 명상을 통하여 제공되는 것들에 의존한다.
27. 심령의 기도를 드리는데 가장 필요한 외적 조건은 감각적 자극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평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둠과 고요이다. 모든 정적주의자들처럼 실루안 역시 이런 조건들을 소중히 여겼다. 그는 자신의 방에 홀로 앉아 기도할 때 시계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시계를 벽장에 넣어 버리기도 하였고 때로는 두터운 털로 된 모자로 눈과 귀를 막아버리기도 하였다. 기도하는 어떤 방은 고인이 된 수도사들의 관을 안치시켜 놓은 방들과 같은 층에 있었다. 그 방은 아주 어둡고 음침한 복도 안에 있었는데 이 돌방 안에서 그는 보다 깊은 고독을 체험하고 완전한 평화와 어둠을 맛보면서 기도에 몰입하였다.
28. 실루안은 자기 내면의 모습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았고 주님의 말씀대로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은밀하게 섰다.
29. 실루안은 결코 학자는 아니고 두 학기를 걸쳐 시골 학교를 다녔을 뿐이다. 하지만 성경을 지속적으로 묵상하고 교부들의 작품을 열심히 탐독하며 교회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름으로서 상당한 학식을 갖추게 되었고 수도원 안에서 박식한 독서가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아주 부드러운 마음을 가졌고 모든 슬픔과 번민으로부터는 극히 자유로운 특별한 감수성과 날카로운 민감성을 소유하였다. 계속되는 영적 갈등 속에서도 결코 불평의 눈물을 흘린 적이 없고 끈질긴 내면의 고투 속에서 신경질적인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30. 그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하나님만은 두려워하였다. 그의 인격은 강한 용기와 온건한 겸손이 조화를 이루었고 자기 주장을 강하게 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항상 고개를 숙였으나 남들이 자기에게 고개 숙이는 것은 참지 못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이해하려 노력하였다. 그는 결코 불만이나 좌절감이나 비판을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아무리 모순되고 불합리한 것에 대해 말할지라도 절대로 불평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내면의 평화를 깨뜨리거나 신경질적이고 불쾌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31. 눈물로 드리는 기도는 마음 깊은데서 우러나오는 기도이기 때문에 온전한 기도요 거기 응답도 단연코 있기 마련이다. 다른 육신의 감정과 같이 눈물 역시 말라붙을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에 의해 정련된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의식을 아주 강하게 가질 수 있고 모든 부질없는 상념들을 물리쳐 주기 때문에 조용히 사색하는데 도움을 준다.
32. 모든 사람을 대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일이라면 상대의 뜻에 나의 의지를 단순히 복종시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를 기억하는 것이다.
33.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영혼에 주어진 은총을 잘 보존하라'고 하셨다. 그제야 그는 이미 주어진 은총을 보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밤낮으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마음을 헤아려 자신도 사람들로 인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하였고 연민의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가면서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하였다.
그는 자신에게 울부짖었다. 그의 영혼은 가난한 사람들로 인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는 그들 자신에 대해서보다도 더 그들의 처지에 대해 눈물지었다. 그들은 무지로 인해 자신의 삶의 처지를 볼 수 없었으나 실루안은 영으로 그들의 비참한 삶과 함께 고통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의 기도의 대상이었다. 그는 자신을 잊어버리고 온 세상을 위해 기도를 쉬지 않았다.
34.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인격 속에 있다. 이 인격은 모든 종류의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의 신앙을 비판한다면 그들은 그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칭찬으로 그들을 먼저 받아들인 다음에 잘못을 지적한다면 그들은 그대의 말을 들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 말씀의 선포 역시 율법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언제나 사랑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35. 기도 할 때에 하나님은 인간 정신의 몰입이나 감정의 뜨거움을 통하여 역사 할지라도 정작 중요한 사실은 생명의 역사인 성령의 도움만이 기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6. 마음이 부요하면 오히려 기도의 간절함이 약해지고 감정 역시 메말라 열정적인 기도가 되지 못하는 수가 있지만 반대로 자신의 감정에 의지하는 기도는 그만큼 성령의 사역을 무시해버리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감정조차 초월하는 기도를 드려야 하는데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극복하거나 스스로 순수한 사색에 이를 수 없기에 성령에 의존하는 기도가 훨씬 생명이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기도는 인간의 노력에 의한다기보다 주님의 은총에 기인하는 것이다.
37. 감정의 승화나 정신의 집중을 자신의 애씀으로만 하려 할 때는 기도가 오히려 힘이 들지만 성령에 의해 감정이나 선한 상념이 떠올려질 때의 기도는 자신과 세상을 잊고 오직 하나님 안에서 기도가 이루어지게 된다.
기도할 때 정신을 다스리는 훈련을 쌓지 못한 사람은 잡스러운 것이든 선한 것이든 이런 상념들이 자꾸 정신의 집중을 방해하기에 이 상념을 비우기 위해 악전 고투를 벌이게 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선한 상념을 의도적으로 받아들여 정신을 온통 이 상념으로 채우고 이 생각에 따라 기도를 하려한다. 그러나 이 경우들은 오직 정신만이 유일한 중심이 될 뿐이기에 참 기도가 되지 못하고 자아를 잊지도 못한다.
이와 달리 참된 기도는 이 모두를 수용하지 않고 조용히 빈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그 기도는 순수하여 정신이 모든 상념을 버리고 오직 심령 안에서만 기도하게 된다.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이나 의지, 상념들이 아니고 정신이 마음의 깊은 곳, 심령에까지 내려가는 작업이다. 정신이 전체로 심령에 붙들려 기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정신이 심령 안에서 드려질 때 정신은 보존된다. 그러므로 먼저 정신으로부터 모든 것을 청산하려 하지말고 먼저 할 일은 정신을 심령 안에 드리우는 일이다. 그 후에 선한 상념을 좇는 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로 자연스럽게 된다. 이것이 영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38. 실루안은 어떤 자에게는 신학을 하라고 충고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학문과 기도를 병행하라고 당부하였으나 학문 대신 기도와 영성과 고행적 삶에 헌신하도록 권하는 사례는 흔하지 않았다. 이는 지금의 시대는 많은 학식과 더불어 수도사적인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한 시대에 이르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39. 실루안도 어떤 때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무슨 뜻으로 일을 진행시키는지를 몰라 답답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사도들에게도 주님은 그들이 잘못된 방법으로 행하는 것을 염려하셔서 자신의 뜻을 나타내지 않고 숨기신 경우가 있다.
40. 영혼이 세상을 위하여 기도하면 신문이 없어도 온 땅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사람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더 잘 알 수 있다. 그때 영혼은 신문에서 정보를 얻지 못하고서도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그 안에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