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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목) 화렌(花蓮) -까오슝(高雄)
<오전 : 방문> 06:40-11:00 자제정사(慈濟精舍),
자재병원(慈濟功德會)
6시 정확하게 문을 두드린 뒤 아침밥이 배달된다. 1분의 오차도 없다. 6시 20분 엊저녁 부탁한 대로 택시가 호텔 앞에 정확하게 대기하고 있다. 시내 교통표지판에 자제원구(慈濟園區)라는 표지가 있어 따라가면 된다. 엊저녁 내리던 비도 그치고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시내를 벗어나자 구름이 허리에 걸린 산을 배경으로 자제정사가 나타난다. 탁교수가 전화로 알려준 번호를 운전수에게 전해주자 핸드폰으로 통화를 한 뒤 6시 40분 자제정사 입구에 도착했고, 그곳에는 이미 한 담당자가 나와서 마중을 한다.
조금 걸어서 자제정사에 다다랐다. 이른 아침이지만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조용하지만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하는 Liu Chad(劉鈞安) 선생은 재단법인 불교자제(慈濟)자선사업기금회 비서실 책임자인데 유창한 영어로 정성껏 안내하고 설명해 주었다.
자원봉사 시스템, 물 흐르듯 …
마침 7시부터 강당에서는 자원봉사를 마치고 해단식이 시작되었다. 4일간의 자원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 가진 해단식은 1시간 동안 계속되었는데, 엄숙하면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원래 이 시간에는 창립자인 증엄 스님이 격려를 하는 시간인데, 증엄 스님이 지금 전국 순회중이라 제자 가운데 한 분인 덕안(德安)스님이 대신한다고 하는데 차분하면서도 지루하지 진행되고 있었다. 이른 아침 약간 어두운 강당이지만 촛불 하나 켜지 않고, 내가 차를 마시며 TV를 보고 있는 방에도 일체 불을 켜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모든 행사는 직접 생중계되고 있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서는 500만 회원 누구나 지금 이 시간에 그 설법을 들을 수 있는 현대식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현대적이고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철저하게 절약하는 정신이 바로 느껴졌다.
한 쪽에서 행사가 진행 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이른 아침인데도 수많은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물 흐르듯 돌아가고 있다. 나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 조직이 갖고 있는 자원봉사 시스템은 정말 우리가 배워야 할 덕목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는 크게 둘로 나뉜다.
<그림 1)> 말끔하게 차려 입은 자원봉사자들
위원(委員) : 현재 남녀 45,000명이 있고 ① 모금 ② 봉사를 한다.
자성(慈誠) : 봉사만 하는 자원봉사자로 20,000명이다. 자원봉사자는 모두가 유니폼을 입고 있는데, 유니폼에 따라 어떤 봉사자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각각 자기 지구에서 2년간 교육을 받고, 마지막 8일은 모두 본부인 화렌의 대학에 와서 철저한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그 교육에는 자제정신, 봉사 방법은 물론 사진 찍기, 비디오 촬영 같은 기능교육도 포함되어 있어 모두 일당백의 능력을 갖추게 되어 있다고 한다. 이 본부 말고도 그 뒤 까오슝과 타이베이에서 두 번 더 자제회를 방문했지만 자원봉사자들의 웃음을 머금은 친절은 지금까지도 향기로 남을 정도로 잊을 수 없다. 자성 봉사자들은 스스로 봉사만 하면 되지만, ‘위원’들은 이 조직의 핵심 봉사자들로 500만 회원을 한 위원이 40 가호씩 점조직으로 담당하여 관리하고 모금을 한다. 한 위원이 한 달 2,000달러 정도씩 모금한다고 하니 한 달 1억 달러의 모금이 가능한 조직이다.
이들 조직이 어느 정도 막강한가는 사후 시체기증을 약속한 회원이 23,000명이나 된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를 안내하고 있는 유선생도 나에게 시체기증증명을 보여주었다.
플라스틱 부처님
이 단체의 본부 사찰인 정사정사(静思精舍)는 아주 수수하고 단아한 절인데, 겉은 마치 일본시대 관사 같이 생겼다. 안으로 들어가니 석가모니부처님과 관세음, 지장 두 협시보살이 모셔져 있다. 바닥도 다른 절과 달리 나무 바닥으로 되어 있어 친근감을 더해 주었다.
<그림 1)> 플라스틱 불상. 한 스님이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부처님과 보살상은 모두 플라스틱입니다.”
언제든지 복제도 가능하다고 한다.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이야기였다. 부처님이 불상을 만들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으나 인간들은 그대로 행할 만큼 믿음에 자신이 없었다.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곳은 최소화한 곳이라는 점에서 너무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화렌은 대만에서도 대리석 공장이 가장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적어도 대리석이라도 썼으리라고 생각했는데, 플라스틱이라니 한편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참배를 마치고 경내를 둘러보았다. 500만 명 조직을 운영하는 본부라고는 전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수수하고 조용하지만 곳곳에 모두들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었다. 자제회의 5가지 수입원도 그곳에 모여 있었다. 먼저 초(燭) 공장, 공해를 막을 수 있게 2~3㎝ 높이의 짧은 초가 6시간을 간다고 한다. 이것도 이제는 연꽃등불로 바꾸고 있는데, USB로 충전하게 만들고 있었다. 석고보살상, 건강식, 특용 작물을 재배하는 밭에서 모든 스님들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당나라 백장(百杖)선사가 실천했던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신조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다.
전교생이 하는 이타(利他) 연습
경내를 둘러보고 절 앞으로 오니 갑자기 많은 유치원, 초등학교 학생들이 줄을 서서 몰려들고 있다. 언뜻 보면 자제학교에 속한 학생들이 본부를 참배하러 온 것이라고 간단히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두 가지 매우 특이한 점이 발견된다. 첫째 각 반에는 담임선생 말고 유니폼을 단정히 입은 자원봉사자가 한 명씩 함께하고 있어 수많은 학생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일사불란하다. 다른 하나는 모든 학생들 손에 무엇인가 들려 있다는 것이다. “자제학교 학생들은 한 학기에 한 번씩 헌금을 합니다. 오늘 첫 날이라 그동안 세뱃돈 받은 것, 저금한 것, 소비권(消費券) 같은 것을 가지고 헌금하러 오는 것입니다.”
자비행도 연습을 하지 않으면 부끄럽다. 그런데 이 학교 학생들은 일찍이 유치원 때부터 이런 이타행을 연습하고 있지 않는가. 학생들이 생긴 돈으로 불량식품이나 사먹고 게임이나 하는 것보다 얼마나 큰 복을 심는 것인가! 소비권이라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불황을 맞아 물건을 사라고 나누어준 것이다. 이것은 유가증권이나 마찬가지로 어디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것인데, 이것을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에 나누어주는 연습에 사용하는 것이다.
이 재단의 학생들은 유치원생부터 대학생까지 모든 학생들이 교복을 입는다. 마치 군대처럼 단정한 점은 자원봉사자도 마찬가지다. 다만 대학생들은 싫어하는 학생들이 많아 3가지 교복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하도록 한다고 한다.
<그림 1)> 모든 학생들 손에는 무엇인가가 들려 있다.
헌금을 한 학생들은 강당에서 노래도 하고 즐거운 놀이 도 하며, 마치 명절을 보내듯 시간을 보내는 사이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마실 음료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시판되는 음료수를 사먹을 수 없고, 대신 학교에서 건강음료를 제공한다. 아까 창립자 대신 훈시를 하시던 덕안 스님도 이곳에서 아이들 물병에 음료를 담는 일을 직접 거들고 있었다.
끝으로 이곳 게시판에 붙어있는 10계도 눈길을 끈다. 우리가 흔히 보는 5계(1. 살생하지 말라, 2. 투도하지 말라, 3. 사음하지 말라, 4. 거짓말 말라, 5. 술 마시지 말라) 말고 나머지 5계는 대단히 실용적인 것들이었다.
6. 담배와 마약을 피우지 말고, 빈랑(檳榔 : 대만 사람들이 즐겨 씹는 열매)을 씹지 말라.
7. 도박이나 투기(投機)를 하지 말라.
8. 부모에게 효도하고 말과 행동을 공손하게 하라.
9. 교통법규를 지켜라.
10. 정치활동과 데모에 참가하지 말라.
이어서 자제대학으로 갔다. 국제업무센터의 장부미(張芙美) 부총장님 일행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대학에 대한 비디오를 보고, 이 대학에서 특히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가진 모의의학센터를 방문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병원이나 대학병원들이 시체가 부족해 해부 연습이 어렵고, 골수가 부족해 수술이 어려운 곳이 많은데, 이곳에는 다른 병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풍부한 실습을 통해 경쟁력을 갖춘다고 한다. 특히 시체 기증은 가족들도 모두 참여하여 경건하면서도 의의 있게 마지막 이타행을 하도록 하는 의식을 하고 있었다. 인상적이었다. 대학병원 식당에서 유선생님과 낮밥을 먹었다. 너무 감사해 내가 낮밥을 대접했는데, 모든 채식 식단에는 달걀을 넣는가 안 넣는가의 유무를 반드시 표시해 놓아 선택할 수 있게 해 놓았다. 공항 가는 택시도 일반 택시가 아닌 것을 보면 아마 회원 차인 것 같다.
<비행기> 화렌(13:00) -MDA9734- 까오슝(高雄)(13:55)
● 대만 제2의 도시 까오슝(고웅)
예정대로 까오슝(高雄)에 도착하였다. 화렌에서 까오슝은 먼 거리는 아니지만 큰 산맥으로 가로막혀 돌아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비행기로 온 것이다. 비행장에는 이번 모든 일정을 완벽하게 준비한 탁교수와 홍리(宏立) 두분이 마중을 나와 주었다. 탁우리는 공항에서 바로 서방선사(西方禪寺)로 갔다. 까오슝과 함께 붙어있는 봉산시(鳳山市)에 있는데,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조그마한 시내 건물에 문 앞에 서방삼성전(西方三聖殿)이란 간판이 붙어있는 작은 법당으로 들어갔다. 처음 만나는 분들이라 명함을 교환했는데, 탁교수가 알려온 서방선사(西方禪寺)는 준비 중이고, 현재는 서방삼성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저녁은 서방삼성전에서 관정 스님의 마지막 제자 집에 자도록 주선해 놓았다고 한다. 호텔인지 아파트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의 규모와 서비스다.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까지 짐을 가져다주는 근무자들이 있는 아파트인데, 이런 아파트에서 처음 자본다. 젊은 사람들인데 남자는 은행에서 일하고 여자는 회계사라고 한다. 루이스라는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하나 있는데, 집에서 엄마가 모두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집에 있는 조그마한 불당에 놓인 수계증에 따르면 대만 제자들은 2005년까지 수계를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 까오슝(高雄) 1박(宏立 조카 집 민박)
3. 2월 20일(금) 불광사 - 까오슝(高雄) 정종학회
아침 7시 홍이(宏儀)와 아들 루이스와 함께 밥을 먹고 8시에 밖에 나와 탁교수를 기다렸다. 원래 탁교수가 오늘은 일정이 있었는데, 특별히 일정을 바꾸어 우리와 함께 불광사를 가기로 했다. 9시쯤 불광사에 다다랐는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도 많지 않고 한가하다.
입구에서 각국어로 된 안내서를 나누어주는데 한국어도 있는 것으로 보아 한국 사람들도 많이 참관하는 모양이다. 긴 복도를 지나 입구에 가니 엄청나게 큰 아미타부처님 입상이 있는 곳으로 바로 올라가는 길과 정문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정문에 들어서니 양쪽에 500나한상들이 있고, 계단을 올라서면 조산회관이 나온다. 건물이 마치 아랍의 첨탑 같이 생겼는데, 창설자가 이 절을 지을 때 전 세계의 여러 곳을 보고 국제적인 디자인을 한 것이 바로 이 아랍식 건물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방문하는 사람이나 누구나 식사시간에는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경내를 둘러보고 우리 함께 대중공양을 해보기로 했다.
조산회관을 지나 높지 않은 계단을 올라서면 바로 대웅보전이 마치 궁전처럼 나타난다. 전면의 대웅보전과 나머지 3면의 회랑이 바로 큰 궁전을 생각나게 한다. 오른쪽 회랑을 따라 가니 방문자들이 차를 마시며 비디오를 보는 방이 있다. 비디오를 보고나니 안내자가 원하면 스님들과 함께 공양을 들 수 있다며, 공양을 들 때 주의사항을 하나씩 가르쳐 주었다. 대중공양도 좋지만 전체 스님들과 함께 공양을 해보는 것도 좋은 기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림 1)> 소원(왕생)을 달고 종을 친다.
바로 대웅보전 앞에는 방문자들이 누구나 종을 쳐 볼 수 있도록 했다. 먼저 자기 소원을 써서 옆에 있는 나무 가지에 달고, 담당 스님과 함께 타종계를 읊으면서 종을 친다. 전에는 소원을 항상 ‘성불’이라고 썼는데, 이번에는 ‘극락왕생’으로 한 단계 낮추었다. 성취가능하면서도 확실한 길을 찾은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종을 쳐보게 하는 것도 참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여래, 다른 대만 절과 거의 같다. 부처님께 인사드리는 동안 탁교수가 한국에서 온 불자라고 소개를 하였다. 그러자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영어로 안내를 하는 스님이 왔다. 이번에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조용히 편안하게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려고 했는데 다시 정식 안내를 만난 것이다. 대웅보전 뒤에는 여래전이란 큰 건물이 있고, 양쪽에 금불루(金佛樓)와 옥불루(玉佛樓)가 있다. 가운데 여래전에는 보광산 역사관, 선정법당(禪淨法堂), 대강당이 있고, 옥불루는 정업림(淨業林, amitabha chanting hall)이 있고, 금불루에는 선학당이라는 선학교(meditation college)가 있다.
“아미타포(阿彌陀佛)”
자제회에서도 그렇지만 대만의 모든 절은 인사가 “아미타불”이다. 나이 들고 정확하게 하는 스님은 “어미타버”라고 정확하게 발음하는데 최근에는 “아미타바”로 바뀌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아미타불의 범어는 Amitābha Buddha이다. 뜻으로는 A(無)-mitā(量)bha(光) Buddha(佛)이라고 하는데, 범어에서 [ā]=아 [a]=어로 발음한다. 따라서 [Amitābha]=어미타버가 되는 것이다. 중국 본토에서는 아직도 ‘어미타버’라고 발음하는 스님이 많다. 영어 읽는 법에 익숙한 대만에서는 대부분 ‘아미타바’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일본어에서는 ‘어’ 발음이 안 되기 때문에 어렵지만 우리 같은 경우는 정확히 어미타버(Amitābha) 부처님(Buddha) 또는 어미타유수(Amitāyus, 無量壽) 부처님(Buddha)이라고 해야 한다. 사실은 아미타(무량)부처님이라는 말도 약해서 부르는 것이라고 하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부처님 수가 무량하다’는 말이 되어버린다.
“먼저 art gallery를 보겠습니다.”
스님의 말에 나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정토를 수련하는 곳을 먼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옥불루를 올라가 정업림(염불당)으로 갔다. 초현대식 대학 강당 같이 깨끗하고 호화스럽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스님 두 분이 맞이한다. 지금은 행사가 없지만 전면에 석가모니 불(옥불)이 있고, 입구에 아미타불을 모셨다. 염불당에는 대체로 아미타불을 모시는데, 석가모니불을 강조한 것이다. 전면 오른쪽에 “나무서방극락세계아미타불(南無西方極樂世界阿彌陀佛)”이라 써 붙여 놓고, 실제는 석가모니 옥불을 모신 것이다.
염불당을 나와서 찾아간 것은 바로 미술관(art gallery)이다. 한 유리공예가가 일생을 통해 만든 불교 작품을 대단하게 전시한 곳인데, 얼마나 자랑스러운 곳인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종교역사관, 선방, 학교, 복지시설 같은데 갈 시간이 없는데, 안내 스님은 처음부터 꼭 이곳을 안내하려고 한다. 장사하는 것 같아 불만도 있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덕분에 CD로 된 불광대장경(정토장)을 사는 개가도 올렸지만 씁쓸하다. 일본에서 나온 정토개론까지 많은 정토 자료를 한데 모은 전자책은 앞으로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시간은 이미 점심시간이 되었다. 먼저 엄청나게 큰 식당에 400명이나 되는 스님과 일부 신도들이 함께 공양이 시작되고 있었다. 3,000명이 한꺼번에 공양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일단 이곳은 시간이 맞지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안내를 따라 간곳은 고객용 식당이다. 대중공양을 해보려 했던 생각은 접고 적수방(滴水坊)이란 식당에서 맛있는 공양을 하였다.
비로소 스님과 헤어진 뒤 우리는 자유롭게 정토동굴과 아미타불 대불성(大佛城)을 둘러보았다. 2시에 시내에서 이미 약속이 있기 때문에 부지런히 서둘러야 했다.
<그림 1)> 3,000명이 한꺼번에 공양할 수 있는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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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경대학교 교수님이신 \uBCF4\uC815(\u666E\u6DE8)');">보정(普淨) 거사님이 금년초에 대만 방문기를 다음카페정토선http://cafe.daum.net/Jeongtosun 올리신 글을 옮긴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하신 원력의 보살님이신 증엄스님의 일대기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부처님께,
삼보제자에 감사 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