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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에서 시작한 성경곡해, 지금까지 계속하는 사단.(C)
◎안티들의 성경곡해
구약과 신약의 내용은 악과 증오와 보복의 심리로 가득차 있다.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피해의식과 열등감과 위선으로 가득찬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하는 것이다. 모세도 그러했지만 예수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의 내면은 저주와 증오로 가득찬 사람이었다. 예수는 자신이 가난한 사회 하층의 문맹자이었기 때문에 권세자와 재산이 있는 사람들을 미워하였고 부자는 절대로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가진자나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저주하고 지옥에 보내겠다고 한 예수의 생각은 선(善)이나 성숙한 인격의 발로가 아니다. 그러한 예수가 원수를 끝까지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쳤다는 것은 자신이 위선자임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댓글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안에 생기를 불어넣어 살게 하시고 사람들에게 땅과 생물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세와 함께 죄악이 없는 생명체로 영생케 하려고 선악과를 따먹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사단이 거짓말로 사람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먹게 하고 사람도 악한 생각과 마음과 시각으로 생존해 볼 수 있는지 시험해 보았습니다. 즉 정직하고 선한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시각으로만 오로지 살아갈 것이 아니라, 사단 자신과 같은 악한 마음과 생각과 시각을 공유하고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든 제작자(부모)로서의 책임감 있는 간곡한 교훈을 가르쳤으나, 사단은 남의 자식을 자기가 개발한 사상으로 실험해 사육해 보려고 무책임한 교훈(거짓된 모략술수)을 만들어 던져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세상을 살아가기에 조금도 하자가 없는 완벽한 생명, 곧 악이 없는 사람들로 키우려 하였으나, 사단은 자신의 즉흥적인 호기심에서 발동된 탐심만 갖고 무책임하게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키려 하였습니다. 즉 잘되면 일확천금이 굴러들어오는 것이고 잘못되어 실패해 보았자 남의 자식들이 죽는 것이니 손해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남의 생명체(배아세포)를 갖고 확실성이 확보되지 않는 무책임한 발언(실험)을 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체에도 용납될 수 없는 치명적인 악독으로 작용해 그 말을 만들어 내는 당사자나 귀담아 듣는 자들 모두가 저주와 증오와 죽음에 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생명의 이단아로 돌변한 사단과 사람들... 이미 악과 죽음과 원한과 보복의 화신으로 굳어진 사단에게는 지옥형벌이 예정되었지만,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굳게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기형아가 된 생명의 사람들에게는 이미 전염된 사단의 마음과 생각과 시각, 곧 죄악을 발췌해 내기 위해 율법을 가르친 후, 다시 선으로 악을 이기고 지배할 수 있는 영(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새롭게 만들어 주어 하나님의 자녀된 분수와 도리를 깨달아 복음으로 영생케 하셨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에는 선되신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악이 된 사단의 마음과 생각이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선악 사상의 대립 현상이 개인적으로는 마음의 갈등으로... 사회적, 국가적으로는 종교적, 이념적 분쟁 등으로 확대되어 전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하늘에서도,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하셨고, 또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찐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 갔음이라 하더라"(요한계시록12:12) 하심 같이, 사단과 그 종들이 하늘에서 내어 쫓긴 일에 대하여 악과 증오와 보복의 불덩어리가 되어 땅에 있는 예수의 종, 곧 신앙인들에게 최후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하늘에서 내어쫓긴 일에 대해 심히 분노하자 마침내 성경을 뒤적거리며 사람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낱말이나 사건들만 들춰내 곡해하고 악플을 달았습니다. 성경의 대부분이 악행하는 자들을 심판하는 것과 하나님의 자녀들을 질책하여 교정하는 매질로 가득차 있게 되자 이것을 보고 안티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원한에 사무친 악마로 취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치 살인강도범이 자기를 철저히 뒤쫓는 경찰을 보고 "야! XX놈아! 너 전생에 나와 무슨 원한 관계가 있다고 이렇게 지독하게 쫓아오느냐, 응?"라고 욕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을 낙원에서 죽이고 우주에 하나 뿐인 지구를 죄악의 쓰레기 장으로 더럽힌 악인들이 지독한 것이지,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고자 하는 경찰관의 추적 행위가 지독한 것입니까...? 신.구약 성경 대부분이 죄인과 악인을 추적해 잡거나 또 정직한 의인을 구원하는 사건들로 기록되었는 데, 이런 경찰(천사)들의 추적행위와 인질 구출작전을 지독한 악과 증오와 보복심리의 발로라...?
그리고 예수님더러 가난한 사회 하층의 문맹자...? 그래서 선천적으로 권력층과 부자들을 미워해 천국에 못갈 악인으로 매도한다고...? 안티들 자신이 그런 마음을 갖고 최고최대의 기득권자이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매도하니깐 예수님도 아마 자기들과 같은 비뚤어진 성격의 소유자일 것이다...? 태생적인 반항아들의 사고방식에서 생각해 낼 수 있는 건 고작 그런 것들 뿐이니 어쩔 수 없구려... 그리고 인류 최고의 식자가 하나님이신데, 그 아들된 예수님이 죄된 인간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성경) 이외에 그 어떤 썩어빠진 인간들의 지식을 배워야 할까요...? 최소한 옥스퍼드, 하버드 출신은 되어야 인정해 주겠다...? 인간이 터득한 지식의 결정체가 우주선 개발과 유전자 조작 기술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지식과 지혜로는 예수님의 발가락도 닦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주복 한가닥 걸치지 않고 우주를 거닐며, 알약 하나 없이도 죽은 자를 살려냅니다. 그런 지식과 능력을 전수해 가르치는 곳이 이 세상에 있었다면...? 아마 예수님도 그런 학업을 분명히 수료하였을 것입니다.
◎안티들의 성경곡해
예수는 자기는 의인(義人)을 구원하려고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구원하러 왔노라고 말하였다.(누가 5: 32) 그렇다면 예수는 왜 그렇게 죄인들을 미워하였는가? 예수가 가진 죄인 판정의 기준은 다른 것이 아니고 자기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이었다. 명쾌하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구원의 조건이 되어 있다.) "나는 여오화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스라엘의 왕이다. 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믿는 자는 천국으로 받겠고, 믿지 않는 자는 지옥으로 보낼 것이다." 이것이 예수의 철학이었다. 예수는 스스로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하고(마태 27: 11) 혹은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였으므로(요한 10:33) 유태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였다.
◈댓글입니다.
예수님 더러 죄인을 미워하였다...? 그가 만일 죄인을 미워하였더라면 예수님 당시에 이미 인류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 곧 죄인들을 위한 속죄 제물이 되라는 지시가 없었더라면, 아무런 죄도 없는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무리들을 천군천사를 동원해 모조리 멸절시켰을 것입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마태복음26:53)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온 무리들을 향하여 베드로가 칼을 뽑아들고 싸우려 하자 예수님께서 만류하며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악인들은 이런 것도 모르고 그냥 예수님이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이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게 된 것으로 곡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남의 죄를 대신해 죽어야 할 사명을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죄인을 심판하는 율법으로 그들을 대하였더라면...? 그 때 그 당시에 불법을 행한 살인자들은 모두다 진멸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나 같은 성격이라면 하나님의 지시도 무시하고 그냥 율법대로 시행하여 그들을 다 진멸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육적 충동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끝내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과 동등하게 취급받을 수 있는 만왕의 왕이 되었습니다.
◎안티들의 성경곡해
예수는 어떤 사람인가? 이미 필자의 글을 수편 읽은 독자들은 여호와라는 신에 대해서 그 윤곽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모세에게 무수한 이방인들을 죽이도록 살인 명령을 내리고, 이방인 처녀와 가축을 탈취하여 누리게끔 하고 그 밖에 많은 잔혹행위를 교사한 신이 여호와인데, 예수가 스스로 자기를 여호와의 아들이라고 한 점은 그가 구약의 하나님을 자세히 알지 못했던 사람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예수는 그의 친구들이 미친사람으로 알고 잡으러 다녔던 사람이다.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이러라"(마가 3: 21)
지난 2000년 동안 기독교인들은 이유여하 없이 예수는 하나님이 보낸 구제주이고 그리스도라고 믿어왔다. 왜? 일점일획도 잘못이 없는(?) 성경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씌여 있기 때문에. 다른 이유는 없다. 씌여있는 대로 믿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지난 2000년 동안 예수의 아버지( 여호와)에 대한 올바른 연구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창조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말에 겁을 먹고 세뇌가 되어 성경에 나오는 그 수다한 죄악과 잘못과 모순을 보고도 전혀 이를 개의하지 않았다. 여호와의 실체를 모르고 예수를 논하는 것은, 김일성의 실체를 모른채 그의 아들 김정일의 위대함을 논하는 것과 같다. 예수의 사상과 심리분석은 후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댓글입니다.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또 여호와라는 신에 대해서 윤곽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라는 이 안티의 글만큼 새빨간 거짓말은 이 지구상에서 별로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개정하시면 누가 능히 막을소냐"(욥기11:7~10) 하셨는 데, 이 안티의 말대로 그가 만일 예수님과 하나님에 대해 만일 그 윤곽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었더라면...? 이런 헛 소리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그분들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란, 오직 사단처럼 성경의 뜻을 곡해해 악플을 달아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하는 지식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친속들이 예수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도 처음에는 이와 같았습니다. 엊그저께까지 아버지의 대를 이어 목수 일을 하든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 자라고 말하니 감당하기 어려웠울 것입니다.
◎안티들의 성경곡해
성경을 쓴 이들이 하나님의 자비와 구원과 사랑을 말한 것은 여호와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었다. 예수도 오직 유태인들만을 사람으로 간주하고 이방인은 개로 인식한 사람이다. 이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이방인 여인이 귀신 쫓는데 능하다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에게 찾아와 귀신을 쫓아달라고 간청하자 예수는 "구원은 하나님의 자녀(유태인)에게 해당하는 것이고 개(이방인)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찌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마가복음7:25~28)
참고로 말하면,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간질을 흔히 귀신들린 것으로 보고 귀신쫓는 푸닥거리 요법을 치료의 방법으로 알았다. (간질 뿐만이 아니라 모든 질병, 불행을 더러운 귀신의 조화로 알았다.) 그러나 간질은 푸닥거리로 치료되는 병이 아니다. 푸닥거리가 간질에 잠시 동안(귀신이 나가 있는 동안)은 효험이 있었을 것이다. 예수가 귀신을 쫓아준 것은 영원히 귀신을 쫓아준 것이 아니다. 귀신은 언제든지 다시 사람에게 들어올 수 있는 것이고 이는 인간의 죄의 탓으로 돌려졌다.
귀신들린 딸을 둔 어미의 간청에 못이겨 귀신을 쫓아 주었다는 이상의 일화는 마태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같으나 귀신들린 딸의 어미가 헬라인이 아니고 가나안인으로 되어 있다. 왜 마태와 마가는 동일 사건을 기록하면서 그 주인공(이방인 여인)을 다르게 기록했는가? 그 이유는, 마태, 마가, 누가는 예수가 죽은 후 약 40년이 경과한 후(A.D. 70년대 이후)에 서로 다른 저자가 구전으로 전해오던 예수의 소문을 피차 대조함이 없이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은 A.D. 90년대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4 복음서는 예수의 행적을 비슷하게 전하고 있으나 서로 다른 내용도 있고, 동일 사건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서로 다른 점이 수다하다. 이런 각 책들은 각기 다른 구역의 파들이 독자적으로 예배용으로 사용하던 것이다. 신약의 각 책들은 이렇게 산발적으로 전해지다가 대략 A.D. 200년경에 하나의 책으로 묶여지고 A.D. 400년에 가서 마지막으로 히브리서와 계시록이 추가되면서 현재와 같은 신약전서가 만들어 졌다고 한다. 그러나 각 책의 내용의 상이점에 대해서는 이를 교정하지 않았다. 그이유는 성경의 기록은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는 하나니의 말씀인지라 교정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까?
어떻든지간에 귀신들린(간질에 걸린) 딸을 둔 어미와 예수와의 일화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보여지는데 이 일화는 예수가 이방인들을 보는 관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예수는 딸의 어려운 일을 당한 어미(이방인)의 면전에 대고 "개들에게는 구원이 타당치 않다"고 했다. 이런 말이 과연 구세주의 입으로 나올 수 있는 말이라고는 보여지지 않는다.
여인은 자신이 개로 취급받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딸이 절박한 어려움에 있는지라 "상 아래 개들도 부스러기를 얻어먹지 않느냐" 며 막무가내로 붙들고 늘어졌다. 그 간절함이 뿌리칠 수 없을만큼 간절한지라 예수는 결국 귀신쫓는 푸닥거리를 해 주었다.(마가 7: 29-30) 이방인을 인간 이하로 취급한 것은 예수 한 사람의 개인적 관점이 아니고 이스라엘인들의 보편적 인식이었다. 대개의 민족들이 이웃 민족을 비하해서 모욕적인 명칭으로 부르는 것은 동서고금에 있어온 보통 일이지마는 이스라엘인들은 이방인의 신을 마귀로 보고 또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적으로 인식한 점에서 특이하다.
◈댓글입니다.
안티들이 성경을 곡해하는 글을 읽노라면, 참으로 분노가 치밀어 혈압이 상승합니다. 그래서 웬만한 믿음으로 인내하지 않으면 혈압으로 쓰러질 것 같습니다. 그 옛날 율법시대에 이들이 이런 곡해를 일삼았더라면, 그와 그들의 가족들은 이미 땅 구덩이 속으로 생매장 당하였을 것입니다. 모세를 근거없이 모독하고 곡해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자손들을 보십시오! "무리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을 떠나고 다단과 아비람은 그 처자와 유아들과 함께 나와서 자기 장막문에 선지라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일을 행케 하신 것이요 나의 임의로 함이 아닌줄을 이 일로 인하여 알리라 곧 이 사람들의 죽음이 모든 사람과 일반이요 그들의 당하는 벌이 모든 사람의 당하는 벌과 일반이면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심이 아니어니와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지니라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민수기16:27~33) 하심 같이 그들은 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보다 월등히 높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이 이토록 모욕하고 헐뜯었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 때문입니다.
선지자들 쪽에서 보면 그 옛날 구약시대가 훨씬 전도하기에 편하고, 악인들 쪽에서 보면 복음의 이 시대가 선지자들을 괴롭히는데 가장 편한 시대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은 악인은 쉽게 처벌할 수 있어도 억울한 일을 당하였을 때 참고 인내하며 용서해 준 의가 없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상급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복음 시대의 선지자들은 예수님과 같은 모욕과 천대를 받아도 그 즉시 율법의 권능으로 하나님께 고소하여 원수를 갚지 않는 대신, 참고 용서하고 권면하기 때문에 의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상급이 하늘 창고에 쌓였습니다. 육신적으로 천대받고 심령적으로 심히 괴롭긴 하지만 그래도 복음 시대의 선각자들이 율법시대의 선지자들보다 하나님께 훨씬 큰 상과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여! 이런 안티들의 곡해 때문에 속이 상해 전도 못해먹겠다라는 짜증을 하나님 앞에서 하지 마시길... 복음의 시대는 원수 갚는 쾌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의 기쁨과 희락이 저장되고 있습니다. 분발하시어 이런 안티들의 수욕으로 배를 채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 때보다 더 확실한 보복과 보상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귀신들린 딸을 가진 이방 여인에게 개라고 지칭하길 잘하셨습니다. 안티들은 그것을 인격모욕으로 간주하나 예수님은 결단코 남을 비하하여 욕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진실 그대로, 실상 그대로를 일러주시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의 말을 백퍼센트 믿는 그 사람에게는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처지와 실상을 그대로 파악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됩니다. 개 같은 사람을 보고 개라고 바로 일러주어야만 그가 개 짓을 뉘우치고 사람의 도리를 할려고 할 뿐, 개 짓 하는 자들에게 사람 대우하는 자들은 아첨하는 자들로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영원히 개 짓 하게 하여 하나님 앞에 영원한 지옥형벌을 받게 만듭니다.
김정일을 보고 소신있는 자라고 아첨한 김대중은 사기꾼으로서 김정일로 하여금 계속토록 그 주민들을 죽이게끔 방조한 죄로 형벌받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하나님(예수님, 그리스도인) 앞에 정직하여야만 모든 면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 뿐, "뭐야, 나더러 개라고...? 아니 그런 인격모독적인 말을 하고도 하나님의 아들이라, 구세주라...? 야! 더럽다, 더러워! 나 그런 소리 안 듣고 내 딸 안고치겠어, 퉤퉤!" 하며 욕질하고 떠났을 것입니다. 이런 글을 쓴 안티들은 자존심 상해서라도 예수님께 그런 말을 들으면 딸자식을 치료할 수 있어도 아마 치료받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개)들만 자기에게 나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죄인(개)이 아니야!"라고 고자세를 취하는 교만한 악인들은 벌레 이하로 취급당해 불구덩이에 던져집니다.
공관복음의 저자들이 녹음기를 갖고 있지 않은 이상 어찌 그리스도의 언행과 사건들을 동일하게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안티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 개입되었더라면 어찌 그런 실수를 할 수 있나 하며 비판합니다. 부모는 자식들이 하는 말의 어법이나 문체를 따져 대화하지 않고 오직 영감으로 말의 뜻만 찾아 대화합니다. 그러나 사기꾼이나 대적들은 말뜻보다도 그 말의 군더더기에 불과한 문법이나 그 년.월.일.시만 추궁해 허점을 잡아 그 말의 본뜻을 뒤엎으려 합니다. 성경이 문법과 문체를 갖추어 문학상을 타기 위해 출판된 문학작품인 줄 아십니까...? 무지한 자들은 영화를 보아도 그 줄거리와 핵심을 읽을 줄 모르듯, 진리에 둔한 안티급 인간들은 성경을 열번 백번 완독하여도 그 줄거리의 핵심(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판독할 줄 모릅니다.
영화를 볼 줄 모르는 자들이 명작 영화를 엉터리 영화라고 혹평하듯, 믿음이 없는 자들만 예수님을 횡설수설하는 자로 매도합니다. 이쪽 장면에서도 한 컷, 저쪽 장면에서도 한 컷, 때로는 암호 같기도 하고, 때로는 보물 지도 같이 난해하나 오직 믿음으로 따라 행하는 자들에게만 그 뜻이 해석될 수 있도록 성경이 기록되었습니다.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사도행전17:27) 하심 같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존재를 마치 보물 지도를 보고 보물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 같은 분들에게만 발견되도록 하셨을 뿐, 아무러한 악인들이 쉽사리 찾을 수 있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특히 안티들 같은 악인들에게는 옥스퍼드, 하버드 아니라 온 우주만물을 다 꿰뚫어 살피는 지식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발가락 하나를 찾아낼 수 없도록 하셨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로마서11:33) 하심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죄인)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 따라 지키는 자들에게만 해석되도록 암호화 하셨습니다.
◎안티들의 성경곡해
원래 예수는 이스라엘사람 이외의 사람들(이방인들)은 구원할 뜻이 없는 사람이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전도를 명할 때에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에게는 구원의 말씀을 전하지 말도록 하였다.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태10:5~6)
사마리아 사람은 가나안 북부 사마리아 땅에 살던 사람들인데 이들은 앗시리아가 가나안을 정복하고(B.C. 721년) 많은 이스라엘일들을 이곳에 이주시켜 이스라엘과 혼합 민족이 되었다. 이들은 모세의 5경을 받아들여 믿었으나 이질적 요소를 가졌다는 이유로 남부의 유다국의 사람(유태인)들은 이들을 이단시하고 상종하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유대민족에게서 분리되어 영원히 이방인들이 되었고 이들의 후손은 오늘날 알라신을 믿는 회교도들이 되어있다.
예수가 말한 잃어버린 양이란 유태인 중에서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 이방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가 이방인에 대해 가졌던 고정관념을 알려주는 다른 예를 들면, 예수는 이방인과 세리들을 동격으로 미워했던 점이다.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로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태18:17) 예수는 이방인과 세리에게는 구원의 가능성을 아예 부인한 사람이었다.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과 우물가에서 대화를 한 적이 있다.(요한 4: 7-9) 이때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에게, "왜 유태인인 당신이 사마리아인인 자기에 말을 합니까?"라고 의아해 하였는데 이 일화는 통상적으로 유태인들이 사마리리아인과 상종을 하고자 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예수는 선한 사마리아 여인에 관한 비유를 든 적이 있는데(누가 10:30-37), 이것은 실화가 아니고 유태인들이 자기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비유를 들어 제자들을 훈계한 것 뿐이다. 한편 예수는 유태인들이 자기를 믿지 않는 것에 실망하여 "이스라엘 본집의 자손들은 지옥으로 갈 것이고 천국은 이방인들이 차지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마태 8:11)
◈댓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3:16)라고 하신 말씀은 온 인류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라는 말은 "누구든지" 라는 뜻일 뿐, 육적 유대인이란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유대민족의 토속신으로 비하할려고 무척 애쓰고 있으나 그대들 같은 안티 수준들이나 그런 식으로 비하할 뿐, 믿음으로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뚜렷이 만물의 실세자로만 보입니다. 처음 열 두 제자를 육적 유대인들에게만 보낸 것은 그들의 전도 능력이 아직은 그 수준에만 이르렀기 때문이며 또 예수님께서 더 가까이 두고 가르쳐야 할 언행들이 많기 때문에 멀리 보낼 수 없었습니다.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로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태18:17)라고 말씀하신 "이방인과 세리"는, 하나님 앞에 죄인 노릇한 삶을 도저히 회개할 수 없는 원천적인 악인들과 또 재물만 전적으로 탐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일 뿐, 누구든지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영적으로 꽉 막혀 예수님이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하셨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선한 사마리아 여인과의 상종은 실제 사건이 아니고 한낱 꾸며 만든 비유라...? 다른 구절, 곧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한 부분에 대해서는 구구절절히 믿고 악평을 잘하면서도 왜 이런 구절은 또 믿으려 하지 않는지... 일관성이 없음을 스스로 자처하여서야... 예수님이 뜻하는 유대인이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이며, 예수님이 뜻하는 이방인이란, 하나님의 거룩함을 본받지 않으려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다음 페이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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