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윤회]의 주체는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는 인연(因緣)으로 생기(生起) 한다는 연기법(緣起法)으로 세상의 이치를 설명합니다. 이런 인연관계를 밝히는 것을 연기론(緣起論)이라고 하는데, 연기의 주체를 구사론에서는 업이라 하고, 유식론에서는 아뢰야식이라 하며, 기신론에서는 진여, 화엄경에서는 법계라 하는 등 그 주장하는 바가 각기 달랐습니다.
(1) 업감연기론(業感緣起論)
소승불교의 논서(論書)인「구사론(俱舍論)」등에서 주장하는 연기론(緣起論)으로 연기의 주체는 업(業)이라는 것입니다. 업은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데, 이 업이 연기의 주체라는 것입니다.
(2) 아뢰야식연기론(阿賴耶識緣起論)
아뢰야식연기론은 업감연기론에 뒤이어 이를 보충하기 위하여 일어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위의 업감연기론에선 만유가 생성하는 연기의 주제를 업(業)이라고 하고 그 업으로 인하여 윤회를 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업이 도대체 어느 곳에 저장되었다가 그 과(果)를 초래하는 것인가? 이에서 찾아낸 것이 곧 아뢰야식인 것입니다. 따라서 업감연기론에선 6식(안식ㆍ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ㆍ의식) 밖엔 없던 것이 이에선 제7식 말나식과 제8식 아뢰야식을 첨가하여 총8식이 되는 것입니다.
8식은 안식ㆍ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ㆍ의식ㆍ말나식ㆍ아뢰야식이 그것인데, 이 중 안식에서부터 신식까지는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의식은 제6식, 말나식은 제7식, 아뢰야식은 제8식이라고 합니다.
① 전5식(前五識) : 각기 색ㆍ성ㆍ향ㆍ미ㆍ촉을 인식할 뿐입니다. 즉 색(色)을 인식하고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알고 촉감을 느끼는 등 단순한 감각작용을 할 뿐입니다.
② 의식(意識) : 앞의 것처럼 감각기관을 의지하지 않고 다만 그들이 인식한 것에 대해 비교ㆍ추리ㆍ추억 등의 작용을 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우리가 어떤 소리를 들었다면 듣는 것만은 이식(耳識)이지만 그 소리가 어떤 소리인가? 남자의 소리인가? 여자의 소리인가? 등을 경험에 의해 분별 인식하는 것은 의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상의 전5식과 제6식의 특징은 모두가 외경(外境)에 대한 인식이요 요별(了別)이기에 이들을 외향식(外向識)이라 합니다.
③ 말나식(末那識) : 말나는 범어 마나스(Manas)의 음역인데 의역하여 의(意)라고 합니다. 제6식인 의식과 혼동될 우려가 있어서 원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말나식은 제8식을 소의처(所依處)로 하여 '아(我)다’, '법(法)이다’하고 집착ㆍ사량하는 사량식(思量識)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식(識)은 제6식과 제8식과의 중간에 있으면서 항상 제8식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이 바로 나의 주체라는 아집(我執)과 그것은 실재한다는 법집(法執)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6식은 이런 말나식을 의지하여 여러 가지 대상을 인식함에 실재하는 듯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결국 중생은 이 아집(人執)과 법집(法執)에 의하여 모든 망상이 생기고 악업을 짓게 되어 생사의 윤회를 면치 못하는 것이니 아집과 법집을 끊으면 망상도 사라지고 깨달음의 경지에 들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윤회도 막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④ 아뢰야식(阿賴耶識) : 아뢰야는 범어 알라야(Alaya)의 음역으로 현장은 이를 쌓아둔다는 뜻으로 보아 함장(含藏)이라 번역하였고 진체(眞諦)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보아 무몰(無沒)이라 번역한 바 있습니다. 결국 아뢰야식이란 말은 우리가 시시각각 행하는 업은 그에 따른 종자를 남기니 이 종자는 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없어지지 않음이라 창고에 물건을 저장해 두는 것과 같다는 뜻에서 명명된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하는 신구의의 모든 행동은 그 낱낱의 행동마다 세력적인 종자가 아뢰야식 가운데 저장되었다가 뒷날 어느 때인가 인연을 만나 다시 모든 세계를 전개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아뢰야식도 인연으로 생기는 것이라 생멸적인 것엔 틀림 없으나 무시이래로부터 아득한 미래를 향하여 끊임없이 현현(顯現)하되 제7식의 활동에 의하여 자체 안에 간직해 두었던 선악을 전개시키니, 이렇게 전개되기 시작한 선악의 종자는 다시 제5식의 선악업의 훈습력(薰習力)에 의해 다시 전개되어 삼계 육도 등의 세계를 전개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뢰야식에 저장한 종자가 현행(現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아뢰야식은 생사윤회가 거듭되는 미계(迷界)의 주체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아뢰야식이 오계(悟界)에는 없는 것이란 말이 아닙니다. 오계에도 비록 종자는 모두 무루(無漏)의 것이어서 바탕은 다르다 할지라도 그 전개 방법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뢰야식은 미오(迷悟) 모든 세계의 근원이요 본체인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3계가 한 마음이요 만법은 오직 식(識)이다(三界一心 萬法唯識)”이라던가,“3계는 오직 마음뿐 마음밖에 법이 따로 없다(三界一心 心外無別法)”이란 말을 듣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이 도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아뢰야식의 장(藏)이란 말엔 3가지의 뜻이 있다고 하니, 능장(能藏)은 모든 만유(萬有)를 내는 직접적인 원인인 선악의 종자를 간직하고 있다는 뜻에서 이르는 것이요, 소장(所藏)은 제8식엔 다른 7식에 의하여 염법(染法)의 종자가 훈습(薰習)되어 간직된다는 뜻에서 이르는 것이요, 집장(執藏)은 제8식은 무시이래로 없어지지 않고 상주함으로 제7식에 의해 자아로써 집착되는 식이란 뜻에서 이르는 말입니다.
(3) 진여연기론(眞如緣起論)
위의 아뢰야식연기론에서 우주만유의 연기의 주체를 아뢰야식이라 하였는데, 이렇게 놓고 보아도 거기엔 사실 문제가 있습니다. 즉 우리들이 항상하는 선악의 모든 행위의 종자가 저장되는 곳이 아뢰야식이요, 이런 종자가 다시 중연(衆緣)을 만나 우주만유를 변현한다고 하면 결국 아뢰야식 그것은 생멸변화하는 것이요, 생멸변화하는 무상한 것이라면 참(眞)이 아니라 거짓(妄)임이 틀림없으며, 또한 이렇게 보면 그것은 상대적인 고찰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로 우주만유를 변현(變現)하는 연기의 주체라고 한다면, 그것은 생멸변화하는 무상한 것이 아니라 상주불변하는 것이야 할 것이요 거짓된 것(妄)이 아니라 참된 것(眞)이어야 할 것이요, 동시에 그것은 현상을 초월한 보편 절대적인 불변의 본체라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진여연기론은 이러한 논리적 요청에 의하여 연기의 주체를 불변(不變)의 진여(眞如)라고 본 연기론입니다.
그렇다면 진여는 과연 어떻게 연기하는가? 언뜻 생각하면 진여는 참되고 불생불멸한 우주만유의 본체라, 이런 진여가 생멸변화하는 현상계의 만유를 연기시킨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대승기신론에서는 진여엔 불변하는 면과, 수연(隨緣)하는 면과의 2면(二面)이 있다고 하여 그 연기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으니, 그 본체는 절대 불변이지만 현상적인 면으로 볼 땐 연(緣)을 따라 생멸변화한다고 합니다. 즉 진여는 그 본성을 변치 않고 연을 따라 온갖 차별현상을 나타낸다는 것이니, 비유하면 금으로 팔찌 반지 귀걸이 목걸이 등 여러 가지를 만들어 제각기 현상은 다르지만 금으로서의 제 바탕은 한결같이 불변인 것과도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진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진여는 범부들의 마음(衆生心)이 진여이니, 이것이 곧 연기의 주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는 위에 말한 바와 같이 2면(二面)이 있으니, 그것을 각각 심진여(心眞如)와 심생멸(心生滅)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심진여(心眞如)라는 것은 중생심의 바탕으로서 불변하는 진여의 본체적인 면을 나타내는 말이요, 심생멸(心生滅)이란 것은 진여의 모양(相)과 활동(用)이 있는 수연(隨緣)하는 생멸적인 면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여엔 이 2면(二面)이 있어 본체는 항상 불변 무차별한 것이지만 현상은 위의 금(金)의 예와 같이 생멸변화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진여는 곧 중생심으로 이에 진여(眞如)와 생멸(生滅)의 2면(二面)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모순같이도 느껴지나, 그러나 이는 본체와 현상이 따로 없다는 것을 상기할 땐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본체를 떠나서 현상이 있을 수 없고 현상을 떠나서 본체가 있을 수 없으니 이런 관계를 일러“하나도 아니요 그렇다고 또한 둘도 아니다(不一不異).”라고 합니다. 그것은 마치 물과 파도가 구별하면 하나가 아니다(不一). 그러나 결국 물과 파도는 결코 별개로 존재할 수 없는(不異) 것과도 같다 하겠습니다.
(4) 법계 연기론(法界緣起論)
업감연기론(業感緣起論)에선 업을, 아뢰야식연기론(阿賴耶識緣起論)에선 아뢰야식을, 진여연기론(眞如緣起論)에선 진여를 각각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만유의 연기의 제일원리로 하고 있습니다. 즉 업ㆍ아뢰야식ㆍ진여 등이 제1원리가 되어 우리의 세계가 전개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위의 연기론은 어디까지나 연기의 제1원리를 규명하는 입장에서 또는 본체적인 면과 현상적인 면을 나누어 보는 입장에서 설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을 돌려 우주만유가 전개되어 있는 현실적인 모습을 직관(直觀)할 땐 산하대지 그 모든 것이 차례를 찾을 수 없이 서로 서로 끝없는 관계를 가지고 어떤 질서와 조화 속에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연기의 정의, 즉“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는 말씀을 되새겨 보더라도, 이 세상의 천지만물은 서로서로 인(因)이 되고 연(緣)이 되고 과(果)가 되면서 끝없이 생성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주만물은 그 어느 것도 홀로 생겨났다가 홀로 없어지는 것이 있을 수 없고 또한 이런 모든 연기하는 것이 어떤 본체를 떠나 있는 별개의 현상이라고도 할 수 없으니, 연기실상(緣起實相)을 사무쳐 보아 본체적인 실상의 면과 현상적인 연기의 면을 구분하지 않고 일관(一貫)하여 연기론으로 발전시킨 것이 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화엄종(華嚴宗)에서 말하는 소위 법계연기론(法界緣起論), 다른 말로 무진연기론(無盡緣起論)인 것입니다.
당나라 법장이 지은「화엄경채현기(華嚴經採玄記)」에 보면 법계라는 말을 해석함에 법은 자성을 가져 남이 알게 하는 것이란 뜻을 가진 말이고, 계(界)는‘원인이 된다’,‘성품을 변치 않는다’,‘나누어 구별 짓는다’ 등의 뜻을 가졌다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보면 법계(法界)란 일체의 모든 존재가 각자 그 영역을 지켜 서로 엇갈리거나 뒤섞임이 없이 잡다한 가운데서도 질서를 가지고 정연하게 조화를 유지해 가면서 연기하고 있는 우주 만법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법계연기설은 곧 이러한 우주만법(宇宙萬法)은 어느 하나의 원인으로서 연기된 것이 아니요, 만법 그대로가 서로 서로 인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존재하고 있다는 우주만법 그대로의 현실적인 모습에서 연기의 실상을 밝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