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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모임에서 지키는 몇가지들
형제모임은 기본교리에 있어서 흔히 한국에 많이 있는 주류 교회들과 다른 점이 없습니다. 그러나 실천에 있어서는 그들과 달리합니다. 즉, 삼위일체, 그리스도관, 구속과 죄사함등에 관하여 같지만, 실천에 있어서는 세례가 아닌 침례, 성만찬의 자주 실행, 여자가 수건을 쓰는 것, 호칭을 형제 자매로만 부르는 점, 일인 목회를 인정하지 않고 다수의 장로 형제들에 의해 다스려지는 점등이 다른 점입니다.
성만찬 또한 장로들이나 일부의 사람들만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 모두가 감사기도에 일일이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참여합니다.
형제모임에서 지키는 분별중에는 이러한 믿음들이 있습니다. 구원의 방법을 새로이 인간들이 개발해낼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제시해주시고 가르쳐 주신 모임의 방법을 제쳐놓고 인간들이 새로운 모임의 방법들을 만들어 낼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효화 시키고 다시 어느 인간이 그것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모임에 관하여는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모임의 방법들에 관하여 하나님이 인간들의 자유 의지나, 재량에 맡기신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가르칠 수는 없듯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시해주신 것을 인간이 개선할 수는 없으며, 인간이 하나님을 가르칠 수 없고,성경을 정독하면, 하나님은 교회 모임에 관하여 충분한 교훈들을 성경에 기록하여 가르치시고 계심을 성도들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시대를 통해서나 진리입니다.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수많은 생각들은 수많은 문제들을 야기시키고 결국에는 죄로 이어집니다.
이제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1)예수님께서 침례에 순종하셨고 승천하시기전에 침례를 부탁하셨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침례의 명령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을 기꺼이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침례는 거듭난 이후 믿음을 공표하는, 성화의 중요한 단계이자 신앙생활의 큰 선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에서 헬라어 에크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세례는 전혀 근거가 없고, 침례가 옳다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침례받으시고 물속에서부터 나오셨습니다.
마태 3:1616.그리고 예수께서 침례받으시고 곧바로 물로부터 올라오시니
사도행전 8장
38 그가 병거가 서도록 명하고, 필립과 내시가 물속으로 둘이서 내려가, 저가 그를 침례하니라. 39 그러나 그들이 물속으로부터 올라왔을 때에,
뿐만 아니라, 침례의 어원인 밥티조가 의미하는 바는 물속에 잠긴다는 뜻입니다.
세례는 이교도들의 풍습으로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정식 화폐가 아닌 위조지폐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세례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례되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생명, 영원생명으로 부활하여 거듭났음을 믿게 마음에 새길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침례외에 침례를 대체할 방법을 가르쳐 주신바 없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로마카톨릭의 유아세례에 반대하여 침례를 순종한 수백만 혹은 수천만이 목숨을 잃어가며 침례의식을 지켰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례라는 말은 씻는 예식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이마에 물 몇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으로서 몸을 씻는 것도 아니며 얼굴마저도 씻는 예식이 안되고 물 몇방을 떨어뜨리는 적례(滴禮)라고 불러야 맞습니다. 따라서 세례교인이란 말도 없는 것이며 세례라는 실행도 없습니다. 물 몇방울 떨어뜨리는 것으로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음(갈 2:20)을 가르쳐 주기는커녕, 씻어주는 세례 역할도 못하는 것으로서, 잡신교, 샤마니즘에서 온 고시례에 불과한 것입니다.
(2)성경은 성만찬에 관하여 매우 소상하게 교훈을 주시며(고전11:23-31, 마태 26:26-) 그것으로 주님의 죽으심과 다시오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도록 부탁하셨습니다.
성만찬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유언으로 부탁하셨으며(마 26:26-)
바울에게 특별히 나타나셔서 부탁하셨습니다(고전 11:23)
주님의 만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며(룩 22:20, 막 14:22) 그분의 죽으심을 오실때까지 전파하는 것입니다(고전 11:26) 그것은 또한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되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며(고전 10:16, 11:27, 엡5:30) 성도들 모두가 한 떡이며 하나됨을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고전 10:17).
이것은 죄를 예방시켜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누가 죄를 범한채로 먹고 마시면 크나큰 징계를 받기 때문입니다(고전 11:27-32)
이 주님의 만찬은 어느 성직자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머리되시고, 성도들 모두는 명예로운 손님으로, 지체들로서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입니다. 어떤 성직자제도도 없거니와 누구든지 예수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그분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마 18:20)
이 만찬에서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소위 화체설은 성경적 근거가 없으며 그것은 오히려 바벨론 종교에서 나온 궤변에 불과합니다. 또한 떡과 잔에 예수님이 특별히 임재하여 그것이 변한다는 루터파의 임재설 혹은 공재설 또한 근거가 없으며 형제모임은 그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실, 그날의 위대한 승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행사로 믿고 실행합니다.
(3)킹제임스 성경은 as often as 로서 헬라어의 호사키스(11장 25절과 26절에) 가 두번 나오는 것을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자주라는 단어를 한글 성경은 빼먹었지만. 요한 웨슬레는 옥스포드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성만찬은 매주 한번씩 거행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년에 두번은 결코 자주가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일요일 곧 안식후 첫날에 모이는 목적이 바로 이 성만찬을 행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사도행전 20장 7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식후 첫날에 제자들이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
따라서 성만찬은 매주일 실행함이 합당하며, 그 성만찬이 주일 예배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만찬은 예배의 핵심이고 경배의 최정상이기 때문입니다.
(4) 우리는 고린도전서 1:2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 라는 말씀에서와 다른 모든 서신서를 통해 교회가 거듭난 성도들로 구성되었지, 구원얻지도 않은 자들과 구원 얻은 자들이 뒤범벅이 되어있는 교회들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 등록했다하면, 거듭난 것으로 간주하는 오늘날의 많은 교회는 자칫 구원의 확신 없이 거듭남없이 일생을 마치는 교회인들의 집단 양산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형제모임들에서는 입교한 자들에게는 구원상담을 실시합니다. 누가 구원을 얻었는지 여부는 여러 형제 자매들 앞에서 간증함을 통해서 분별하며 모든 성도들이 구원얻은 것으로 공감할 때 모임에 영접하기 위하여 침례를 실시합니다. 만일 누가 구원얻었는지 여부를 분별함에 있어서 일부는 인정하고 나머지 성도들은 그가 구원얻었다함을 인정하지 않을 때는 좀더 교제해보고 분별함을 통해서 분별의 차이들을 좁혀갑니다. 그 과정에서 1대1 간증교제도 해보고 이런 과정을 통해 믿음이 확인되는 분은 다시 침례에 순종하도록 인도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거듭남이 확실한 분들로 교회는 구성되며, 구원얻지 못한 사람들과 얻은 사람들이 뒤범벅이 되는 상황은 피하게 됩니다. 구원얻지 못한 분들로서 교회에 참여하는 분들은 구도자로서 대우받고 말씀교제를 통해서 믿음을 갖도록 도움을 얻습니다.
(5)그러므로 거듭나고 침례에 순종하였으며 모임에 영접된 자들이 매주일 베풀어지는 성만찬에 참여합니다. 초대교회가 " 제자들이 떡을 떼려하여 안식후 첫날에 모였던” 것처럼 행20:7 (한글성경: 우리가 떡을 떼려..) 주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 다시 오심을 기념하는 성만찬은 일요 예배의 중요한 목적이며 핵심입니다.
떡을 떼기 위함이 일요일 집회의 목적이었습니다. (행20:7) 성만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언이었으며, 부활하신 이후에도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부탁하셨습니다. (고전11:23-30) 예수께서 바울에게 개인적으로 다시 당부한 이유는 (고전11:23) 성만찬이 그만큼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이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을 기념하고, 다시 사심과 다시 오심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6) 또한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한다는 것은 (고전 11장1-16) 성경을 분별해보면 명백합니다. 만일 쓰지 않으면 깎을 것이요, 머리를 빡빡 밀어야 한다는 것이 가르침입니다.(6절) 이러한 말씀을 문화적 차이니, 시대적 상황이니(노예 문화시대) 변명하고 교묘히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둘러치기 변명들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저희는 그 말씀에 순종하며 이곳 캐나다에서나 제가 나갔던 독일 모임에서나 싱가폴 모임에서나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19세기 말까지는 거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것을 지켰습니다. 교회가 아닌 일상, 공공관서에서도 여자들은 모자나 수건을 쓰고 다녔습니다. (1차대전까지). 긴머리가 머리통을 둘러싸는 것이므로 그것으로 예배수건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만, 고전 11장 6절 말씀은 만일 쓰지 않으면 깎든지 빡빡 밀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머리털을 일정 센티 이상으로 길러야 한다는 뜻으로 하신 말이 아님은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쉽게 인정할수 있는 말씀입니다.
(7)성경 어디에도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목사라는 칭호가 에베소서 4장11절에 유일하게 나오면서도 그 자격요건에 대한 언급도 없고 그가 교회를 전횡으로 다스리는 현실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그 직책이 인간이 만든 것임을 보여줍니다.
포이멘은 다른 곳에서 목자로 번역되었습니다. 그것은 목양의 은사를 가르치는 것으로 분별합니다. 딤전 3장은 교회 안에서 약 20가지의 자격요건들을 갖고 실제 생활들을 통해 검증해보고, 책망할 것이 없으면 감독을 세우도록 말합니다. 이 감독은 장로들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장로들이 언급될 때마다 복수인 것으로 보아 일인 목회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늘날 목사가 반대하는데 이루어지는 일을 볼 수 없고, 목사가 하려하는데 안되는 일 없는 현대교회와는 다른 것을 볼 수있습니다.
(8) 왜냐하면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내어 (행 20:17) 말씀전하면서 "성령께서 너희를 감독들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교회를 목양하게 하셨으니"(행 20:28)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에베소 교회라는 단수의 교회에서 여러 명의 장로들이 왔는데, 그들을 감독들이라는 복수의 감독들을 세웠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즉 감독은 여러교회를 다스리는 카톨릭의 주교와 같은 것이 아니라, 단일 교회안에서 섬기는 여러명의 장로들을 감독들로도 불렀다는 뜻입니다.
그 장로들(감독들)의 자격요건은 디모데 전서 3장1-7절에서와 디도서 1장 5-9절에 소상히 나와 있습니다. 1)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2)아담하고 3)절제하며, 4)책망할 것이 없고, 5) 일을 사모하며, 6)근신하며, 7)나그네를 대접하며, 8)가르치기를 잘하며, 9)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10) 구타하지 아니하며, 11)오직 관용하며, 12)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13)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하는 자라야 하며, 14) 외인에게서도 선하다는 증거를 얻었어야 하며, 15)새로 입교한 자도 아니어야 하며(딤전 3:1-7), 16)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17) 의로우며, 18) 거룩하며, 1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키는 자여야 하며, 20)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며 21) 거스려 말하는 자를 책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디도서 1:5-9)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들(감독들)의 자격요건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자격요건을
못 갖추었어도 신학교 나오면 성경에 따른 검증없이 목사 안수받고 목사되어 일인목회 하며 교회 안에서 군림합니다. 이것의 결과는 수많은 범죄와 성경진리에서의 일탈을 가져옵니다.
신학교는 성경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제도이며 벽돌로 돌을 대신하던 바벨탑 쌓기(창 11:3)의 반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9) 성경에는 목사의 직함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도 안보입니다!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회의에서도 사도와 장로들 형제들은 보여도 목사라는 직책은 안보입니다.
베드로는 자기 스스로를 장로라고 불렀습니다.(벧전 5:1) 사도 요한도 스스로를 장로라고 불렀습니다(요한2서 1절, 요한 삼서 1절)
빌립보 교회에 바울이 편지할 때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과 형제들을 언급하면서 목사는 언급하지도 않았습니다.(빌 1:1)
목사직은 성경 어디에도 없었으며 그러한 직책을 만들어내기 위해 에베소서 4장 11절의 포이멘을 목사로 번역하였으나, 포이멘은 다른 모든 구절들에서 목자로 번역되었던 단어였습니다. 그것은 자격요건도 나오지 않는 목자의 은사를 목사로 변개시켜 교회안에 일인독재체제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바벨론 종교제사장제도를 교회안으로 들여오기 위한 사탄의 계략에서 나온 것으로 성경적 자격요건을 초월하는 초월적 존재가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아 계셔야 할 자리에 인간이 앉게 만드는 제도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싫어하시므로 예수님은 니콜라당의 교리와 행위를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계 2:6, 15)
(10) 현대교회들은 집사의 직분 또한 성경에 따라서 부여하지 않습니다.(딤전 3:8-13)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는 교회 얼마간 다니면 세례받고, 세례 받은지 얼마지나고 결혼하였으면 집사가 되며 형제 자매로 호칭하지 않고 집사님 집사님 합니다. 만일 디모데 전서 3장 8-13절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이 없다면 그 교회는 집사가 없는 것이 정상입니다.
디모데 전서 3장
8 집사들도 이와 같이 존경할만 하며, 일구이언하지 아니하며, 많은 술에 탐익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 9 깨끗한 양심안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들이라야 하느니라. 10 또한 그들 스스로가 먼저 검증을 받게 하고, 저희가 책망할 것이 없으면, 그후에 그들이 집사로서 섬기게 하라. 11 마찬가지로 아내들은 존경할만 하며, 중상하는 자들이 아니며, 절제하며, 모든 일들에 신실하여야 할지니라. 12 집사들은, 자녀들과 자기 집들을 잘 다스리며, 한 아내의 남편들이게 하라. 13 왜냐하면 집사로서 잘 섬기는 자들은 스스로에게 좋은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많은 담대함을 얻느니라.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집사들의 자격요건입니다. 이 성경말씀을 기준으로 성도들을 가르치고 그에 따라 선임한다면 그 교회안에 참된 집사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인간적 조직 관리 원칙에 따라 집사벼슬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11). 주님은 우리에게 다른 호칭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객관적으로 우리는 성도들이라는 신분이 일반적일 것입니다. 서로의 호칭은 주님께서 랍비라든가, 지도자라든가, 아비(신부)라든가 하는 호칭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 너희 선생은 단 한분 그리스도 뿐이요,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니라"(마태23:8)
하신 말씀대로 우리는 형제 또는 자매로 부릅니다. 장로일 때에는 장로의 일을 맡고 계시는 형제로 부릅니다. 어느날 제가 웨슬레안 교회에서 목사에게 형제라고 부르고 여전도사에게 자매라고 불렀을 때 엄청난 비난을 당하고 펄쩍 펄쩍 뛰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신의 교회에서는 그렇지 않습니까? 당신의 교회가 좋은 교회인지 돈안들이고 알아보는 방법은 목사에게 형제님, 여전도사에게 자매님 하고 불러서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수많은 교역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교만의 깊은 잠에 빠져있는지를 말해줍니다. 신약에 형제호칭은 약 330번 나옵니다. 베드로가 바울을 부를 때에도(벧후3:15) 바울이 두기고, 디모데, 디도를 지칭할 때에도 형제로 불렀습니다.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게 함을 받은 자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셨습니다.(히브리서 2:11)
오늘날 목사들은 예수님보다 높은 사람들입니까? 예!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예수님보다 그들 스스로가 더 높습니다!
(12) 우리는 교회 강단의 사용권이 성령님께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나 거듭난 형제로서, 주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고 싶으면 강단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고전 14:29-33)
고전 14장
29 그러나 둘이나 셋 예언하는 자들로 말하게 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하게 하라. 30 그러나 만일 앉아있는 다른-사람에게 어떤 것이 계시되어졌으면, 먼저의-사람은 잠잠하게 하라. 31 왜냐하면 모두가 배우도록 그리고 모두가 권면받도록 너희 모두가 하나 하나씩 예언할 수 있음이라.
오늘날 교회들이 이렇게 실행합니까? 형제모임은 바로 이렇게 실행합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무질서가 야기 되는 것은 한번도 못보았습니다. 성경대로 지키면 혼란이 올 것같아서 실행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지키지도 못할 계명을 성경에서 가르치셨습니까?
성경에 있지도 않은 직책인 목사라는 사람이 강단을 독점하는 관행은 성경상의 초대교회에는 없었습니다.
(13) 우리는 총회본부도, 총회장도, 교리책도, 헌법이나 헌장도 없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총회본부, 총회장, 교황, 추기경, 주교, 대주교, 등의 직책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총회본부는 하늘나라에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총회장이시며, 교리책과 교리 교본은 성경책이며, 우리의 헌장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친히 기록해주신 말씀들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많은 교파들이 총회장, 성가총회장, 증경총회장, 세계복음화 총본부장, 총감독, 감독회장, 교황, 추기경, 총대주교, 대주교, 등등 무시무시한 벼슬들을 만들어내어 갖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성경에 전혀 없는 직책명이며 인간들이 인간들에게서 높임을 받기 위해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예수께서 이땅에 오시면 총회장들을 소집하고 교황과 정상회담 하실까요? 그것들은 인간들이 인간들에게서 영광을 취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벼슬들입니다.
(14) 우리는 성경에서 로마 장로교회나, 에베소 감리교회나, 빌립보 침례교회를 찾아볼 수 없음같이 아무런 교파이름도 없이 모입니다.
단지 지역의 이름에 교회 혹은 예배당이라는 말을 붙일 뿐입니다. 한 도시에 한 교회라는 것은 근거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구 천만인 도시에나, 인구 5천명인 마을에 다같이 한 교회만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실 만큼 하나님은 미련하시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교파의 이름을 금하고 있습니다. (고전 1장 12-17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으로 모이는 형제자매들의 모임을 형제교회다 형제회다 하여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위 형제모임이라고 불리우는 자들이 원하여서 그렇게 불리우는 것이 아니고, 외부인들의 편의상 구분하기 위하여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모여야 정상입니다.
실제로 형제모임들은 세계의 어느 교회든지 신약성경의 가르침대로 실행하는 것이 확인되고 나면 그 모임 전체를 인정하고 교제에 참여케합니다.
(15) 성경은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가르칩니다.(고전 14:34) 소위 형제 모임이라고 불리우는 곳들에서는 그것이 그대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자들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과도 관련있습니다. 여자가 목사가 되어 남자들을 주관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교회안에서는 금하신 사항입니다. (디모데 전서 2:12) 다만 교회안에서 자매들은 어린이들을 가르칠 수 있으며, 자매들은 또한 불신자들에게 전도하며, 나이든 자매가 젊은 자매를 가르치고, 자매들이 찬송가를 작시, 작곡하는 것, 그외의 다양한 성경적 은사를 발휘하는 것을 돕고 있습니다.
16) 초대교회는 성도들의 이동이나 방문에 천거서를 사용했음을 보여줍니다.(고후3:1, 롬 16:1) 형제모임은 성도들의 이사나 방문등에 그것을 사용하며 때로는 전화로 천거하기도 합니다. 일반교회에서는 너왔느냐 나간다식의 집회가 많지만 형제모임에서는 그보다 훨씬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으며, 국제화 시대에 있어서 국제간의 교류에도 그러하고 있습니다.
(17)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를 친히 가르치시며(요일2:27),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모두는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벧전2:5, 2:9 계 1:6, 5:10).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아 계셔야 할 자리에 앉아 있는 인간이 있다면, 그 인간은 내려와야 됩니다.
(18) 교회는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모입니다.(마18:20) 이것이 수많은 형제단들이 믿음을 지켜왔던 방법입니다. 거기에는 목사나 신학교 출신이 있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가 특별히 안수받아야 한다는 요건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19) 교회에서는 반드시 징계가 행해져야 합니다. 징계는 성도를 거룩히 보전하기 위해 고통스럽지만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의 징계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기 보다는 교권주의에 반대했다거나, 일인목회자의 권위에 반대했거나 자기들의 이해에 안맞았을 때에 행해지고 반대로 음행이나, 악행들에 관해서는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비추어 옳지 않습니다.
(20) 헌금을 성경적으로 실행합니다.
오늘날 많은 한국 교회들에서는 누가 무슨 헌금을 하였다고 공표하기도 하며 감사헌금, 작정헌금, 십일조등 수많은 헌금종류를 만들어서 은근히 헌금을 강제화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른 손이 행하는 바를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을 하시며 또한 연보는 억지로가 아니라 마음에 정한대로 기쁜 마음으로 실행하는 것을 가르칩니다.(고후 9:7-8). 그러나 형제모임은 전국 어디에서나 헌금함을 뒤에 두고 아무도 모르게 각자 원하는 만큼씩 헌금합니다. 이것은 형제모임 안의 장로들은 원칙적으로 각자가 일하여 자기 생활비를 충당한다(데살후 3:8-12)는 방침으로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형제모임은 말씀전한다는 분들이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는 것이 아니며 그런 부담이 없는 까닭에 모임들의 재정이 거의 모두 넉넉한 것입니다.
헌금이 오른손이 행하는 바를 왼손이 모르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마 6:3)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헌금하는 자와 하나님만이 알고 드려지는 방식일때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고 축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제모임은 헌금액을 공개하여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는 나팔불기 방식(마 6:2)을 취하지 않습니다.
(21) 형제모임에서는 거듭남, 구원의 확신이 강조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에 의한 완전한 속죄, 영원한 속죄를 전합니다.
흔히 일반교회에서는 교회당 다니기로 결심하고 꾸준히 다니면 구원얻은 것처럼 여기고 교리문답을 거쳐서 세례를 베풉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이란 내면의 문제이며, 교회 다니기로 결심하는 것이나 교회 직분들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모임에서는 구원상담을 거치며, 구속의 진리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확신을 통해 성령님께서 변화시켜 주시고 그분의 내주하심으로 거듭났음이 확인되는 경우 구원간증의 청문회를 거쳐서 구원을 확인한후 침례를 베풉니다. 그러므로 많은 교회들이 예배당 다니면 구원얻은 것으로 간주하지만 실제로 무엇이 구원이며 무슨 근거로 구원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반면, 형제모임에서는 구원의 문제를 가장 중요시하며 영혼 구원을 위해 전도합니다.
(22) 성령님께서는 역사상 저희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며, 성경대로 모이고 성경대로 실천했던 모임들을 지구상에 항상 유지하여 오셨습니다.
바울파, 몬타누스, 보도아 형제단, 알비진, 왈덴지안, 보고밀파, 네스토리안, 서부독일 형제단, 프로방스 형제단, 롤라드파, 보헤미아 형제단, 재침례파, 모라비아 형제단, 플리머스 형제단등 수많은 형제단들이 하나님에 의해 보호되어지고 지켜져왔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왈도파 형제들에 의해 전해진 복음을 들었으며 웨슬레는 모라비아 형제단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23)그밖에 형제 모임이 옳다고 분별해놓은 바들에 관해서는 전도출판사에서 발행된 수백종류의 책들, 소책자들이 매우 쉽게, 모두 성경에 근거하여 모임의 진리와 성경진리를 제시해놓고 있습니다.
그 책자들은 대부분 작고 쉽기 때문에 전철에서나 어디서나 틈틈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 모임에 대한 성경의 원리(알프레드 깁스 형제)와 참제자의 길 (윌리암 맥도날드 형제)등이 매우 유익하며, 순례하는 교회사라는 책이 독일계 영국인 브로드벤트에의해 저술된 것으로 형제단들의 2천년 역사를 잘 서술해놓았습니다. 전국 교회들 중의 엄청나게 수많은 교회들이 전도출판사의 전도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24) 작은 일들에 충실함으로 (계3:8) 필라델피아(형제사랑) 모임이 주께로부터 칭찬 받았던 것처럼 하나님은 그동안 많은 축복을 모임의 형제들에게 베푸셨습니다.
죤 넬슨 다비는 형제운동을 1827년경 처음 시작하여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전개하였고, 죠지뮐러는 고아들의 아버지, 5만번의 응답받은 기도등으로 알려졌으며,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서,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 내륙 선교회로, 매킨토쉬는 모세 오경강해로, 죠셉 스크리븐은 “죄짐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구인지”로 알려졌습니다. 그외에도, 에드워드 크로닌, 다니엘의 70이레의 로버트 앤더슨, 로버트 채프만, 에릭 사우어, 해리 아이언사이드, 찬송가들의 제임스 데크등은 형제모임에 참여하였던 유명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또 앞으로도 하나님은 계속 축복하실 것이며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이 무수히 나올 것으로 기대하며 여기에 새로이 참여하는 분들 또한 앞서간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을 능가할수도 있음을 우리는 기대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그대로 실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25) 토론- 교회 안에 있는 두 가지 직책명
교회안에 감독이 있고, 장로와 집사가 따로 있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교회 안에는 오직 두 직책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장로이며 다른 하나는 집사입니다.
장로는 그 역할과 기능을 말할 때 감독이라고도 불리웠습니다.
교회 안에 감독이 있고 장로와 집사가 따로 있다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이제부터 성경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행 20: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행 20: 28
성령이 저들 가운데서 너희를 감독들로 세우고...
에서 바울은 장로들을 감독들로 삼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장로와 감독이 다른 것이며 장로들중에 감독 아닌 자가 있었다든지 감독 중에 장로 아닌 자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 없습니다.
빌립보서 1:1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및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빌립보에는 장로들이 없었을까요? 왜 장로들을 언급하지 않았을까요? 여기서 감독들이 복수인 사실은 주목할 일입니다.
교회 안에 성도와 감독들과 집사들이라는 부류로 분류되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합니다.
디모데 전서 3장1절-13 여기서 감독과 집사의 자격요건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만일 감독외에 감독 아닌 장로가 있었다면 장로의 자격요건 또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또 장로들 중에서 감독을 뽑아야 한다면 이렇게 기록했을 것입니다. " 그러므로 감독은 장로된지 수년이 경과한 자들로서...."
감독에 대하여 딤전 3장에서 기록하신 다음, 다시 5장17-20에서 잘 다스리는 장로에 관하여 말합니다. 그 장로의 자격요건은 왜 안나왔을까요?
디도서 1장5-9
5절에서 바울은 디도를 남겨둔 이유는 그로 하여금 각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함이었다 하고, 장로들의 조건들을 열거한 다음 단어를 바꾸어서 감독은 이러한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문맥을 잘 살펴보시면 두 종류의 직책의 요건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한 직책에 관하여 설명하는 도중에 갑자기 바꾸어서 호칭을 다르게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7절에는 한글 성경에는 없는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를 붙여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원문을 번역해보겠습니다:
5 이를 인하여 내가 너를 크레테에 남겨둔 것은, 내가 네게 지시한 바와 같이, 네가 부족한 일들을 바로잡고 성읍마다 장로들을 세우도록 하려함이니, 6 만일 누가 흠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고, 방탕하다거나 불복종한다는 비난이 없는, 믿는 자녀들을 가졌으면 이니라. 7 왜냐하면 감독은 마땅히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며, 쉽게 화내지 않으며, 술취하지 않으며, 구타하지 않으며, 더러운 이를 탐내지 않으며,
위에서 장로의 자격요건중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하고, 믿는 자녀들을 두어야 하고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는 말은 이미 딤전3장에서 감독의 자격요건으로 언급한 바입니다. 킹제임스는 FOR 를(그리스어 GAR) 살렸음을 주목하십시오.
(반론)
바울이 디도로 하여금 각성에 장로들을 세우라고 하였으니까 디도나 디모데는 사도이거나 속사도였으며 따라서 특별한 지위에 있었고 장로나 감독이었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그들이 속사도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도들의 뒤를 이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지요.
사도, 선지자, 속사도 이러한 것들은 직책명이 아닌 은사나 사역의 특징을 말합니다. 교회 안의 직책을 그렇게 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장로가 장로를 세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데 있습니다.카톨릭들이 초대 교황이라 부르는 베드로는 자기 자신을 장로라고 불렀습니다.(벧전 5:1) 그러면서 장로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벧전5:1-4) 그리고 그 장로들에게 양무리들을 감독하라고 말합니다. 제가 번역해보았습니다.
너희중의 장로들을 내가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들의 증인이며, 장차 나타날 영광에의 참여자라. 2 너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양떼를 목양하며, 감독하되 억지로 하지 말고, 자발적으로 하며,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유업으로 맡겨진 자들 위에 군림함같이 말고, 양떼의 본이 되어라.
장로들에게 감독하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디모데나 디도가 장로는 아니었겠습니까?
디도나 디모데 역시 감독이었으며 동시에 장로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에서 사도와 장로들이 모였습니다. 왜 감독들은 언급되지 않았을까요?
요한도 스스로를 장로라고 불렀습니다. (요한2서 1절, 요한 3서 1절)
왜 목사라는 직책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까?
사도행전 여러 곳에서 장로들을 언급할 때 왜 감독들은 언급되지 않았을까요?
빌립보 교회에는 감독들과 집사들만 있고 장로들은 없었을까요? 왜 빌립보 교회에는 목사라는 직책이 언급되지 않았습니까? 에베소 교회에는 반대로 장로들만 있고 감독들은 없었을까요? 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감독들로 세웠다고 말했을까요?( 행 20:17, 28)
사도 요한은 스스로를 장로로 불렀습니다(요한 2서 1절, 요한 3서 1절).
사도 요한위에 감독을 맡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까요?
사도 요한 위에 목사직책가진 사람이 있었을까요?
오늘날 장로들은 신학교를 안나왔다는 이유로 축도도 못하고, 설교도 못하며, 침례(혹은 세례) 베풀기도 못합니다. 사도 요한은 침례도 못베풀고 성만찬도 집례하지 못했을까요? 오늘날의 장로들은 초대교회에 비해 가치가 떨어지는 직책으로 하락했습니까?
호칭에 관한 한 소스데네, 디모데, 디도, 에바브라, 바울 모두를 형제라고 불렀음은 주목할 일입니다. 사도, 선지자, 속사도는 직책이 아닌 은사로 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오직 장로와 집사의 두 가지 직책이 있을 뿐이며 장로는 감독으로도 불리었습니다. 감독과 장로는 동일한 역할 범위를 가졌으며 그것이 다른 것처럼 하여 장로들 위에 감독이 있다든지 감독들 위에 장로들이 있다든지 하여 조직을 만들고 그것으로 총회본부를 세우며, 노회를 만드는 것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떠나기 위한 구실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총회본부는 없었으며, 노회도 총회도 총회장도, 교황이나 추기경도 그 용어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간들은 끊임없이 성경에 기록한 말씀은 지키지 않으면서 성경에 없는 직책과 호칭과 명칭이며, 새로운 계명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총회장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총회본부는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2절에 성령께서 안디옥 교회에 직접 지시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오늘날 총회조직을 생각하면 예루살렘 교회를 통해서 지시하셨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울에게 수없이 성령께서 나타나셔서 지시하실 때에 예루살렘 교회 통해서 지시하셨겠습니까?
성령께서는 개교회에 개인에게 나타나십니다.
교회에는 오직 두 종류의 직책이 있으며 오늘날의 목사제도는 성경에서 그 근거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바벨탑입니다. 그 바벨탑은 반드시 붕괴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나 사도 바울이 오늘날 오셔서 교회들을 세우신다면 오늘날 형제모임이라 불리우는 교회 모임들과 동일한 형태를 취하며 교회 생활을 그와같이 가르칠 것입니다. 그분들은 총회장으로 취임하려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http://cafe.daum.net/Eliyahu?t__nil_cafemy=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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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제가 속한 모임은, 외국에서는 특별히 불려지는 이름이 없이, 그냥 교회입니다만....국내에서는 <장기려 그사람>이라는 책에, ``종들의 모임``이라고 소개가 되어, 남들에게 <종들의 모임>이라고 불려집니다.....
위 형제모임의 21 가지 항목중,,,,20 가지가, 저희 모임과 거의 일치합니다. 딱 한가지만 일치하지 않은데.....적당한 때가 되면, 한 번 공개하여 서로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저번에, 하토브님께서 성경대로 순종하다보면 위의 사항들처럼 할 수 밖에 없다~~~하셨는데, 그렇습니다....동의합니다. 대개, 형제모임`과 종들의 모임`, 그리고 일부 독립침례교회, 극소수 킹제임스진영, 그리고 성경적인 가정집모임`등에서, 위 20가지 사항들이, 잘 실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요즈음 형제들 중 주요인사들, 이라는 영어 책자를 읽고 있는데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로 꽉 차있습니다. 그런데 그 책에서는 귀족들 출신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세밀히 분석해보면 형제모임 초기부터, 시작때부터 개방이냐, 배타적이냐, 하는 구별문제가 잉태된채 모임들이 시작되었다고 보입니다. 제가 쪽지들 보내드렸습니다. 읽으시고 연락주십시오. 그리고 제 이메일 주소는 한영키가 전환이 잘 안되어서 지금 못 적고 있습니다만 나중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에스, 에이취, 이, 케이, 아이, 엔, 에이, 에이취, 씨, 에이, 골뱅이 에이취, 오, 티, 메일 닷컴입니다.
현재 교권에서는 교회(예배당)가 아니면 큰 일나는 것처럼 가르치기 때문에 형제교회나 가정교회에 대해 생소하고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그랬구요~ 그러나 이제는 가장 성경적인 형제교회 모임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형제교회 모임이 많지않아서 그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형제모임은 국내에서 대략 250여개의 모임이 있습니다..조금 눈을 돌리시면 가까운 곳에서 찾을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네....형제모임의 여러 진리와 실행들을 볼 때, 형제모임은 좋은 모임이라 생각합니다.....본 카페는, 성경진리를 나누는 것을 목적으로하며, 모임 소개는 카페전체입장으로 하지는 않고, 개인적인 나눔으로 할 것입니다....즉, 본 카페는 특정모임을 소개하거나, 대변하는 곳이 아니라는 점을 밝힙니다...여러 모임에 속해있는 회원들을 환영합니다...두 분께, 무어라 하는 것이 아니고..참고하시라는 의미였습니다...^&^ 샬롬 ~~~
형제모임은 제가 볼 때 말씀대로 모이는 교회입니다..초대교회의 교회모습에 가장 가까운 모임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저는 장로교인 입니다만, 충청도에 사시며 형제교회에서 모이시는 분이 저를 기꺼이 형제로 불러주고 있습니다..저는 그 형제와 종종 전화할 때마다 우리의 구원과 믿음을 서로 점검합니다..저의 믿음이라는 것이 그 형제의 그것에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저는 장로교인 이지만 가장 장로교인 답지 않기도 합니다..저는 소위 이단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그런 대화와 논쟁 가운데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피아식별을 잘 하려면 이단을 접해 보는 것이 유익할 수 있습니다..이런 저런 사람들을 접해보면 우리 영혼 속에 숨어 있는 비밀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고헌님 정도의 믿음의분량과 분별함을 가진분들은 이단과의 만남에서도 분별하여 미혹을 따르지않고 도리어 배울점들을 취하겠지만..많은 다수의 사람들은 거짓을 믿고 미혹을따릅니다. 믿음이약한이들은 실족할수도 있습니다..
사탄이 고헌님을비롯한 우리모두를 이단..즉 거짓을가르치고 따르는곳으로 인도했지만..주님은 악의계획을 그분의 지혜로 선의계획으로 바꾸셔서 이단의가르침을 분별하는 믿음의사람들로 무장시켜주십니다. 사탄의의도를 놀랍게 바꿔버리십니다.
그러나 이단으로 인도되는것은 절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헌님의 말씀을 혹 오해하는분들이 있을까 우려가되어 댓글을 남깁니다. 여러부분을 부분적으로 옳게가르치나 갈수록 진리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이단가르침을 호기심 혹은 자만심등으로 접하는것은 위험합니다.
세상에 많은 이단들이 있습니다..실상 그들을 따라가서 논쟁을 붙거나 토론을 유도할 필요는 없습니다..다만 그런 기회가 생길 경우, 그 기회를 잘 이용하면 유익할 수도 있습니다..그때는 영의 분별을 잘하고 조심을 해야 합니다..이단들의 성경 지식은 아주 교묘해서 자칫 걸려들기 쉽습니다..적절한 선에서 들어주고 하고 싶은 얘기를 해 주면 됩니다..영광님께서 적절하게 보충을 잘 해 주셨습니다.
네 맞습니다..고헌님의 말씀을 알고있습니다 ^^
예전..약한 지체분들이 넘어지는 모습들을 보았었기에 약간의 보충을 하였습니다.
글이라는 한정된 전달 방법이라 혹 오해하는분이 계실까해서요..^^
전에 한국에서는 여증이 와서 천국이라는 단어조차 성경에는 없다고 해서 요한계시록에 보석으로 치장된 열두대문같은 걸 설명했는데 엄청 열받으면서 화를 내더라구요~ 여기 캐나다에서는 여증이 깨어라 파수대를 줘서 읽어보았고 질문을 했지만 기독교랑 다른 점을 발견치못했고 오히려 경건한 모습이 참 좋아보였거든요. 깊이있게 들어갈수록 정체가 나오더군요~ 삼위일체가 아니고 예수님이 젤 아래~ 십자가 희생과 사랑같은 알맹이는 그다지 강조하지않는 것 같고... 죽으면 수면상태, 이 땅이 곧 천국이 된다~ 전도하는 자의 보상~ 수혈반대,군대나 전쟁반대...
아,그리고 재림의 날 계산해서 예고하는 그런 내용이 있어서 책 도로 주면서 믿음이 같지는 않는 것 같으니 이제는 방문하지마시라고 부탁드렸더니 잘 안오시네요..... 나이드신 분들인데...
네 여증이나 구세군,안식교, 몰몬교 등등은 상당히 겉모습은 말끔합니다. 자선활동들도 합니다. 파수대등 주요 직책분들은 상당히 지식이많으며(진리의지식이아닌 진리와거짓의혼합지식들) 말도상당히 잘합니다. 그래서 더욱위험한듯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