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지도 (외 2편)
권기덕
미시시피강을 따라 동쪽으로 4킬로미터쯤 멤피스신전이 보이고 그 언덕에서 바람을 타고 벼랑 끝으로 가면 지도에 없는 길이 있다 북미 인디언에 의하면 그 길은 말하는 대로 길이 되는데 되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죽음뿐이라고 한다 말할 때마다 피는 꽃과 나무는 밴쿠버를 지나 알래스카까지 변화무쌍하게 변형된다 갈색펠리컨이 말했다 소리에 축척이 정해지면 풍문이 생긴다고 풍문의 높낮이는 산지와 평야를 만들고 때론 해안선을 달리며 국경 부근에선 적막한 총소리마저 들린다 말에 뼈가 있는 것, 수런대는 말은 지형의 한 형태이다 낭가파르바트의 눈 속에 박힌 새가 말의 시체라는 설은 유효하다 하지만, 완성된 독도법이 알려진 바는 없다 단지 찢어진 북소리 같은, 언술 너머 죽은 바람을 꽃으로 데려다줄, 음운이 춤을 춘다 죽은 자들이 남긴 것은 결국 어떤 지도에 관한 연대기일 것이다
세면대 위의 맘모스
냄새도 색깔도 투명한 맘모스
세면대 위에 우두커니 앉아 담배를 피운다
면도를 하고 넥타이를 맨 채
P의 머리를 툭툭 친다
립스틱을 바르며 P가 웃는다
눈을 떼어 코에 붙인 표정이 흘러내리고
혓바닥이 혓바닥을 친친 감아 물뱀을 낳는 아침
물뱀을 털며 세면대 거울이 쳐다본다
맘모스 뿔은 모자이다
모자는 낱말이다
낱말은 담배연기다
담배연기는 와이파이다
와이파이는 구름이다
부풀어진 구름이 둥둥 떠다닌다
구름을 베어 먹는 맘모스
비대해진 욕실에서 하모니카를 분다
툰드라의 노을빛이 거울에 비친다
맘모스가 구부러진 배수관 아래로 사라져 간다
간빙기 보고서
까마귀로 뒤덮인 하늘을 쳐다본다
공중에서 기어 나오는 벌레들
손목시계는 지상의 죽음을 계산하고
발 없는 하반신이 둥둥 떠다닌다
벌레가 닿는 족족 사물은 휘어진다
그림자는 선홍빛 거짓말을 한 뒤
콘크리트 바닥에 스며든다
외눈박이 늑대가 골목을 휘젓는다
툰드라가 땅속으로 사라진 건 우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리 하나가 없는 나는 맨홀에 숨어
우주의 부러진 빛 단면을 떠올린다
켈트족은 도로 위에서 사냥을 했고
가끔씩 북극여우가 신호등 근처에서 출몰했다
까마귀는 벌레 쪼려다 피를 흘렸고
밤이 되자 모든 형체는 흘러내렸다
빨간 운동화를 신고 토끼는 곧 태어날 것이다
사마귀가 로드킬된 짐승의 뼈 핥고
환생을 꿈꾸는 밤,
얼음을 주세요
크레바스를 주세요
변형된 사물 안고 벌레가 기어간다
차라리 추운 여름이었다
—시집『P』(201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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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덕 / 1975년 경북 예천 출생. 2009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P』. 현재 대구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