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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감으니 선암사 가는 길에서 보았던 백파, 하얗게 부서지던 물결과 물결소리도 다 들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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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
| 눈을 뜨는 순간 모든 것이 깡그리 사라졌습니다. 그 좋았던 계곡의 물, 시원한 바람, 발아래 흙길에서 촉촉하게 전해지던 촉감은 물론 청아한 산색마저도 일순간에 사라졌습니다. 5월의 싱그러움이 뚝뚝 떨어질 것만큼이나 울창한 숲 터널을 여유롭게 유유자적하던 자화상도 더 이상 보이질 않습니다.
참 고약한 일입니다. 눈을 감고 평온한 마음으로 떠올리면 선암사 가는 길이 또렷하게 보이는데 이렇듯 눈을 뜨니 모니터와 그 안에서 깜빡이는 커서만 보일 뿐이니 말입니다. 눈 뜬 것을 후회하며 다시 눈을 감으렵니다. 팔짱을 끼고 몸을 뒤로 젖혀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대고 다시 한 번 마음의 눈과 마음의 귀로 선암사 가는 길을 더듬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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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암사 가는 길은 어둑하리 만큼 빼곡한 숲 터널에 평탄한 흙길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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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
| 함께 걷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그림자처럼 항상 함께 하지만 부담을 주거나 마음에 그늘로 드리우지 않을 좋은 친구랑, 흘러가는 구름처럼 불어오는 바람처럼 걸릴 것 없이 걷고 싶은 그런 길이었습니다. 발끝에 닿는 작은 돌 툭툭 걷어차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다 보면 들어서는 산문이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딱따구리가 목탁을 치고 다람쥐들이 길잡이를 해주는 계곡 길을 걷다 보면 산바람 물결소리에 일상의 번민이 녹아날 듯합니다. 저만치 앞서가던 사람들이 푸른빛 숲 터널로 빨려 들어가듯 들어갑니다. 한낮의 영향력을 시험이라도 하려는 듯 빼곡한 나뭇잎 사이로 힐끔힐끔 햇살이 파고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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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선교 아래에는 소불알처럼 용두가 매달려 있었고, 백파와 어우러진 승선루 자체는 바로 신선의 모습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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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
| 멀리서 나무를 쪼고 있는 딱따구리의 입방아 소리가 들립니다. '따따따딱' 거리는 딱따구리 부리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문득 만공스님이 왕가의 상궁들과 나인들 앞에서 하셨다는 딱따구리 법문이 생각납니다.
' 저 산의 딱따구리는 생나무구멍도 잘 뚫는데 우리집 멍텅구리는 뚫린 구멍도 못 뚫는구나'
콧노래를 부르듯 흥얼거리니 음탕한 생각이 떠오르고, 그 음탕한 생각에 히쭉 웃게 되니 오욕칠정의 겁이 무거운 아상인가 봅니다.
일부러 찾아야만 겨우 이파리 사이로 하늘이 보이는 울창한 숲길을 걷다보니 저만큼 아치형 돌다리가 보입니다. 꼿꼿하게 걷던 사람들이 허리를 구부려 다리 밑을 기웃거립니다. 신선만이 오른다는 승선교 아래, 소불알처럼 덜렁 매달린 용두를 보느라 그러는 모양입니다. 백파(白波)를 만들어내는 물길이 좋고, 그 물길을 따라 흐르며 부르는 물결소리가 더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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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먹코의 호법장승, 적멸의 경지에 든 고승들의 유혼이 담긴 부도 그리고 고사목조차 화염형상을 하고 있는 진입로 끝을 지나면 일주문으로 들어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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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
| 더듬더듬 비탈길을 걸어 내려가 양말 훌떡 벗고, 바짓가랑이 훌훌 걷어 올린 채 바위에 엉덩이 붙이고 흐르는 물에 두 발을 덤벙 적셔 봅니다. 흐르는 물의 신선함이 발가락을 통해 짜르르하게 전신으로 전이됩니다. 물은 정신이 맑아질 만큼 적당히 차갑고, 그렇지 않아도 몽땅한 발가락들은 맑은 물에 굴절되어 가일층 몽땅하게만 비쳐집니다.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린 김에 조심스레 계곡을 건너봅니다. 미끄러질까 조심스레 내딛는 발에 닿는 돌들이 전혀 미끄럽지가 않습니다. 물 속에 있으나 뽀송뽀송한 느낌입니다. 승선교 아래 저쪽으로 승선루가 보입니다. 주변 산세를 바탕으로 계곡의 백파와 어우러진 승선루 자체가 하늘을 오르려는 신선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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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찌감치 혼혈인의 아픔을 위대한 불법으로 극복한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는 선암사를 향해 일주문을 들어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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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
| 승선교 아래 거꾸로 매달린 용두는 혹시 목욕하는 선녀들을 훔쳐보던 나무꾼을 형상화한 것은 아닐까 하는 반문이 생깁니다. 전설 속의 나무꾼이 되어 선녀처럼 아리따운 처자들과 함께 등목이라도 즐기고 싶은 그런 곳입니다.
등선교와 승선루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니 불법을 수호하는 주먹코 호법장승이 맞아줍니다. 처처가 법당이고 곳곳이 선방이라고 하지만 선암사에서 득도를 하고 중생을 구제하며 한평생을 보내다 적멸의 경지에 든 고승들의 유혼이 담겨 있는 부도밭을 지나 휘적휘적 걷다 보니 일주문으로 들어섭니다.
혼혈출신인 아도화상이 창건한 선암사
1500여 년의 사적을 가지고 있는 선암사는 그 사적기에 542년(진흥왕 3) 아도(阿道)가 비로암(毘盧庵)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875년(헌강왕 5)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고 신선이 내린 바위라 하여 선암사라고 하였다고도 하였습니다.
지금이야 많이 시들해졌지만, 2006년 NFL 슈퍼볼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슈퍼볼의 스타가 된 하인스 워드(Hines Ward)로 인해 혼혈출신들이 감내하거나 겪어야 하는 불이익한 현실에 대해 많이 거론되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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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집에서는 흔치않게 고운 꽃신이 삼성각 댓돌위에 놓여있었고, 안에서는 나이 지긋한 보살이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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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
| 혼혈출신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질시와 경멸은 다시금 거론하지 않아도 그동안 보도된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검증(?) 되었을 것입니다. 선암사를 창선하였다는 아도화상은 바로 그런 질시, 혼혈아에 대한 놀림과 질시를 극복하며 뭇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신라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 고승입니다.
아도화상은 중국의 위나라 대신 아굴마(我堀麻)가 고구려에 사신으로 왔다 만난 궁녀 고도령(高道寧)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출신이었습니다. 아도화상의 '아'자는 아버지인 아굴마의 성에서 딴 것이며, 도자는 어머니인 고도령의 이름에서 딴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사회적 시선이 그렇지만 그때 역시 그랬던 듯 혼혈출신인 아도화상은 아비 없고 얼굴빛이 검다는 이유로 '묵호자'라고 놀림을 당하였다고 하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혼혈아들을 비하하는 호칭, '튀기'라고 부르던 모욕적 멸시가 그때도 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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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암사 뒷담길로 나서면 온통이 매실향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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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
| 그런 멸시를 받으며 성장한 아도화상이 불법에 귀의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신라에 불교를 전하였을 뿐 아니라 전국을 돌아다니며 불심을 심기 위해 도량을 마련하니 그 중 하나가 이곳 선암사인 모양입니다.
일주문을 들어서 경내를 한 바퀴 돌아봅니다. 법당에 들려 참배를 하고 법당 뒤쪽으로 돌아갑니다. 매실이 익어가는 선암사 경내는 향긋합니다. 매실 향에 향기롭고, 법당에 피워놓은 향불에 향기롭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예경을 올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향기롭고, 들려오는 목탁소리와 염불소리에 마음이 향기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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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장과 기와지붕 위에서도 매실은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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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
| 뒤쪽에 있는 삼성각 댓돌에 곱고 화려한 꽃신이 한 켤레 놓여 있습니다. 고무신이나 털신이 아닌 꽃신이 놓여 있는 댓돌로 마음이 끌립니다. 마음 끌리는 대로 댓돌로 다가가니 삼성각 안에서는 역시 곱고 화려한 한복을 입은, 나이 예순은 되어 보이는 보살 한 분이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댓돌위에 꽃신을 벗어놓고 지극한 마음으로 큰절을 올리는 이름 모를 보살의 뒤태에서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고운 한복에 자태도 곱게 큰절을 올리는 보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매실 향을 따라 뒷담 길로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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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실나무 터널, 바람처럼 한가롭게 매실나무 숲길을 걷고 있는 스님, 땅바닥을 뒹굴고 있는 매실에서 절집의 한적함과 향기로움이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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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
| 매실나무가 숲을 이룬 선암사 뒷담 길에는 온통이 매실입니다.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것은 물론 그렇게 달린 매실나무가 담장과 지붕 위에도 드렸으니 온통이 매실입니다. 장난스럽거나 짓궂게 흔들어 대는 바람결에 나무줄기를 잡았던 손길을 놓친 매실들은 땅바닥에서 뒹굴고 있었습니다.
스님 한 분이 매실나무 터널을 바람처럼 걸어갑니다. 평온하고 한적한 절집 분위기가 물씬 풍겨옵니다. 한참을 매실나무 아래서 서성이니, 넋 놓지 말고 정신 차리라는 듯 처마 끝 풍경이 '뎅그렁'하고 울려줍니다.
경내의 분위기와 향이 너무 좋아 맴돌이를 하듯 몇 번을 돌아봅니다. 이제는 일상 속으로 발길을 옮겨야 합니다. 선암사 가는 길을 거슬러 일상으로 가는 길을 향 숲길의 편안함과 산바람의 청아함 그리고 물결소리의 감로법문을 뒤로 하며 산문 밖으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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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한적해 보이지만 참구하는 수행자의 마음이야 곧게 자란 삼나무를 닮아갈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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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
| 눈을 감으니 보이고 들렸던 선암사 가는 길이 이렇듯 눈을 뜨니 다시금 깜빡이는 커서만 보일 뿐입니다. 다시 눈을 감으렵니다. 눈을 감으면 임과 함께 가고 싶은 그곳, 선암사 가는 길이 마음에 펼쳐지고, 그 선암사 가는 길에서 듣고 느낄 수 있는 온갖 법문이 사랑의 세레나데처럼 들려 올 테니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