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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길 : 3단원 - 성령 충만
제 1과 지금 우리 시대에 임한 두가지 부흥
제 2과 성령 충만을 받으라!
제 3과 어떻게 성령충만을 받는가? ①
제 4과 성령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제 5과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린 자가 성령충만 한 사람입니다.
제자의 길
제 3단원 성령 충만
요절
엡 5: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제 1과 지금 우리 시대에 임한 두가지 부흥
1995년도 미국의 급성장하는 교회 탐방을 갔을 때, 일정에 시카고 감리교회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탐방 일정 중 유일하게 부흥이 사라진 교회였습니다. 교회 탐방 중 느낀 것은 성장교회는 교회 공기 조차 달랐습니다. 저는 시카고감리교회 예배당 의자에 앉아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부흥하는 교회'에서 사역하기 원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성장하는 교회는 한결같이 성령님에 대한 믿음이 분명하고, 매 시간 성령님의 역사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는 뚜렷히 두가지 형태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죄악의 부흥(세상충만)이고, 또 하나는 성령의 부흥입니다.
<질문> 성경은 말세에 대하여 두가지 서로 다른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① 딤후 3:1-5을 읽고 그 요점을 정리해 보십시오.
② 이 예언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우리 주위에서 나타나고 있습니까?
흥왕하는 악의 세력들, 음란, 폭력, 가정파괴, 정신병, 무당, 배도의 물결
신앙생활 바로 하기 점점 더 힘들다! 형편따라 신앙생활하면 망한다
③ 욜 2: 28-29을 읽고 그 요점을 정리해 보십시오.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 할
것이요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④ 이 예언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우리 주위에 나타나고 있습니까?
이사야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사 40:5)라고 예언했는데, 정말 그 예언대로 역사가 지나감에 따라, 성령의 능력은 더 점점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오순절 예루살렘의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문도에게 성령이 불 같이 임했습니다. (이 때의 성령강림을 요엘서 2장 28-29 예언의 성취라고 말할 수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예언 성취의 시작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결코 모든 육체에 성령이 임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② 성령의 역사는 초대교회를 통하여 더욱 강하게 퍼져 나갔습니다.
③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선포된 이후, 한 동안 성령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거스틴은 성령의 역사는 사도시대로 끝났다고 보았습니다)
④ 1738년 영국의 요한 웨슬리에 의하여 강력하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⑤ 18-19세기 영국과 미국의 부흥 시기에 성령의 역사는 더욱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⑥ 1900년부터 10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미국, 인도, 유럽, 남미, 한국 등) 성령의 불 같은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⑦ 20세기 말 성령운동은 전 세계 모든 부흥하는 교회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의 청년 학생들은 우리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하는 엄청난 죄악의 풍조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가지 놀라운 것은 청년들과 학생 들 사이에 우리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강력한 성령 충만한 역사, 경배와 찬양의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청산하고, 영적으로 각성하여 철저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하여 회심하는 일들이 급속히 많아 지고 있습니다.
<질문> 최근에 당신이나 당신 주위에 신앙적으로 새로운 결단을 하고 성령충만을 사모 하는 이들이 있는지 찾아 보고, 써 보십시오.
마지막 때, 세상은 점점 더 두 부흥의 열기로 갈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반드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제 2과 성령 충만을 받으라!
1. 성령에 대한 두가지 약속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실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수에 비유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생수의 비유가 두 종류입니다.
첫째는 샘물입니다.
[요 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 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둘째는 강입니다.
[요 7:37-38]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 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샘물]과 [강]은 물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역사하는 차원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목말라 죽어 가는 사람이 샘물을 마시고, 소생하듯이,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죄로 인하여 마귀의 종노릇하며,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던 삶이, 속죄의 은총을 받아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아 거듭나게 됩니다. 이것이 샘물과 같은 생명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도시의 사람들이 물을 마시려면, 큰 강이 있어야 합니다. 강은 주변 지역의 동, 식물, 바다까지 소생시킵니다. 강이 있는 곳에 도시가 서고, 나라가 세워집니다. 이것이 강의 환상입니다. 겔 47장에서 에스겔이 보니, 성전에서 물이 나오는 데, 처음에는 발목, 그 다음에는 무릅, 그 다음에는 허리에 차더니, 그리고는 건너지 못한 강이 되는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겔 47: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 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겔 47: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에 대하여 말씀하신 뜻입니다. 강같은 은혜의 역사는 곧 성령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요 7: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도시가 소생하고, 민족이 부흥되는 역사가 일어나리라는 것입니다.
1999년을 위하여 기도할 때, 요 7:38의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는 말씀을 주셔서, 새해 교회 표어를 "하나님의 은혜가 강같이 흐르는 교회'라고 정하였습니다. 그 표어를 정하고, 처음에는 흥분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중에,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낙심"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강 같은 역사를 이룰 수 있겠는가?" 하고 회의가 들었기 때문입니다. '교우들이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웃지나 않을까?' 지금 우리 형편이 어떻습니까? '우리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저는 산상성회 중에 내내 고민하였습니다. '내일이면 신년설교를 해야 하는 데, 큰일이구나!' 산상성회를 마치고 돌아 오는 차 중에서도 답답해 하는 데, 하나님께서 제게 갑자기 깨닫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마가 다락방의 120문도]였습니다. 그들은 온 아시아와 유럽에 복음을 전했고, 로마가 변화시켜, 전 세계로 복음이 전해지는 발판이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120명보다 적습니까? 그들은 우리보다 더 능력이 많았을까요? 건물이 마가 다락방 보다 작습니까? 저는 차를 멈추고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여, 저의 불신앙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왜 작다고 하느냐?" 는 책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도시와 민족의 문제가 우리와 우리 교회를 통하여 해결된다는 것입니다.성도 여러분, 이것이 망상입니까?
<질문>
① 행 1:4을 읽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을 써 보십시오.
② 엡 5:18에서 사도 바울이 누구에게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말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제자들에게 또 하나의 성령의 역사, 곧 성령충만을 기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제자들에게 성령충만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집사를 택할 때, 반드시 성령충만한 성도를 택했습니다. (행 6:1-6)
성령충만은 성도들에게 능력을 가져다 줍니다. 물론 생명이 더욱 중요하지만, 생명만 겨우 유지한다고 만족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역사는 알지만, 능력의 충만을 모르는 성도는, 병원 중환자 실에 있는 식물인간과 같습니다. 생명은 있지만,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2. 성령충만이 가져다 주는 능력
1) 이길 힘
① 죄를 이길 능력 요일 5:18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봉사도 많이 하고, 착하디 착한 한 청년이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어울려, 술을 마시고는 술김에 강도 강간 죄를 지었습니다.
② 마귀를 이길 능력 요일 3:8
③ 세상을 이길 능력 요 16:33
① 성도들이 예배당 안에서 찬송부를 때와 예배당 밖에서 찬송부를 때, 엄청난 느낌 의 차이를 경험합니다. 지하철에서 성경을 읽으면, 이방인이 된 것과 같은 이질 감을 느낍니다. 다른 책을 읽을 때, 그런 느낌을 받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참 이 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② 어느 성도가 한동안 직장 식당에서 식사기도를 할 자신이 없어서 점심식사 전에 화장실에서 기도했었고 고백하였습니다.
④ 자아를 이길 능력
<질문>
① 삿 21:25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다고 했습니까?
② 이렇게 사는 것이 무엇이 문제일까요?
삿 21:25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여러분은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사는 것이 죄임이 이해되십니까? 자기 생각에 그릇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자기 생각에 옳다고 생각하는 산다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좋아지겠습니까?
그러나 가정이든, 직장이든, 교회든, 나라이든, 싸우는 당사지들을 만나보면, 사람들이 모두 다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을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가 잘못 생각했다면서 싸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옳다고 판단하시는대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 어느 초등학교, 착한 어린이 상, 후보 두 아이가 치열하게 싸울 때,
*(김영헌목사) 한 공군장교 낙심, 하숙집 여집사, "할렐루야! 하나님은 살아 계시구나"
2) 봉사의 능력
복음서의 제자들과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같은 사람들이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3년동안 예수님과 동행하고도, 예수님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후 불과 50일, 그들은 완전히 변했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① 전도의 능력
요한 웨슬리 목사님이 1739. 1.1. 피터 레인에서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후 전도의 놀라운 결실이 맺혔고,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성령역사를 체험 한 후도 전도 의 놀라운 결실이 맺혔습니다.
② 기도의 능력 (방언) 고전 14:15
③ 사랑의 능력 고전 12:31
대전의 어느 가정, 2등한 고등학생 아들이 "효도 못할 바에야 먼저 갑니다" 하고 자살을 하였습니다. 그 부모가 아들을 사랑했지만, 자살로 몰고 갔습니다. 중고 학생 자살자, 대부분이 성적 상위권 학생입니다. 이것이 인간적인 사랑의 한계입니다.
④ 각 종 성령의 은사들
<질문> 당신은 어떤 점에서 성령충만이 필요합니까?
제 3과 어떻게 성령충만을 받는가? ①
어떻게 하면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까? 여기에는 방법론이 없습니다. 성령충만은 성령의 전적인 주권 아래서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아무에게나 기름부으심을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어 보면, 성령충만에는 조건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1. 성령충만의 약속을 믿고 계속 구하여야 합니다.
<질문> 눅 11:13에는 누가 누구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했습니까?
눅 11:13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질문> 당신은 정말 성령충만하기를 하나님께 구하십니까?
성령충만에 대한 열망 자체가 성령의 역사입니다.
교회가 성령충만을 하기를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교회가 원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걸려서, 정말 성령충만을 달라고 기도하는 지 알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우리가 사실상 성령충만을 구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어느 남자 성도가 은행 융자를 받아야 하는 다급한 사정이 생겨서 교회 기도회에 처음 참석하였습니다. 기도회 시간에 여러 기도제목으로 함심기도하였는데, 그 성도는 합심기도 시간 마다 "하나님, 융자를 받게 해 주십시오" 라고만 기도 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원한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지 보여 주는 예입니다.
<질문> 행 1:12-14에서 제자들은 마가 다락방에서 어떻게 성령충만을 기다렸다고 했습 니까?
10일간 전심으로 기도했던 제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2. 성령님께 완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이미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 분은 생명이고 능력이며, 스스로 충만하신 분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셨고, 홍해를 가르셨고, 나사로를 살려 내신 분이십니다. 그 분의 권능은 우리를 통하여 온 부산과 민족에게 생명의 강으로 흘러 가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현실은 흘러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은혜의 강을 막고 있는 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둑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자아(판단, 의지, 고집, 경험, 계획 등)입니다.
성령님은 능력으로 충만하신 분이시지만, 언제나 사람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초대교회 부흥도, 직접하시지 않고, 120문도를 통하여 역사하셨습니다. 그들이 순종하지 않으니, 한 동안 예루살렘에만 갇혀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의지적으로 성령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런 성령의 역사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성령님께 순종하여 도시 마다 찾아 가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도하고, 기도하고, 악령을 꾸짖고, 병든 자에게 안수할 때, 그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완고함, 불순종, 자기 계획, 안된다는 고정관념, 이것이 둑입니다. 우리의 완고함이 얼마나 강한 지 아십니까? 은혜의 강도 막아 버립니다.
여러분, 은혜의 강 둑이 터져야 합니다. 성도들의 각 가정에서 남편, 아내, 부모, 자녀가 성령님께 완전히 복종한다면, 강둑이 터진 것 같은 은혜가 넘칠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 직장 안에서, 학교 안에서 은혜의 강둑이 터져야 합니다.
강 둑은 어떻게 터지는 것입니까? 우리의 고집과 불순종이 꺽어지면 됩니다.
우리 교회의 은혜의 장애물을 기도하다가, 먼저 깨달은 것은 저 자신이었습니다. 목사인 제가 아직 완전히 성령님께 복종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성령님 안에서 꺽어지면, 강같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흐를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성령님께 완전히 복종하시면 반드시 우리 교회를 통하여 강 같은 엄청난 은혜는 흘러 갈 것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 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것이 성령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강같은 은혜의 역사를 이루실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어떤 성도가 전도하기 위하여, 성령충만을 구했으나, 성령충만이 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정말 전도하고 싶습니까?" "솔직히 싫습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는 전도하기 싫지만, 하실 수 있으면 성령님께서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짓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아직 완고함이 꺽어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성령충만을 자기 자아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성령님께 사로잡혀서 무아지경(無我地境)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은사나 능력을 나타내는 상태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곧 자기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성령에 의하여 저절로 모든 것을 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령충만에 대한 오해입니다.
전도도 힘들다! 기도도 힘들다! 하면서, "우리 교회에 부흥을 주옵소서!" 하는 기도는 가짜 기도입니다. 용서하기 싫어 하면서, 성령 충만을 구하는 것도 가짜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을 두려워 하면서, 성령충만 구하는 것은 가짜입니다. 완고함이 꺽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응답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난 성령충만 체질이 아닙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는 성령충만은 어떤 특별한 성향의 성도들의 전유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난 체력이 약해서 성령충만을 받을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성도도 보았습니다. 그는 성령충만이 <열광적인 찬송과 울부짖는 기도>에 의하여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성도는 "성령충만을 체험을 해도, 다음 날이면 그 열기와 감동이 다 사라지고 말아서, 안타깝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 모두가 성령충만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이란 성령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하리라!" 하는 결심이 어려운 것입니다.
<질문> 성령충만이란 성령님께 완전히 복종하는 것이라고 해도, 성령충만을 구하시겠습 니까?
한 여 성도가 이혼을 결심하고 상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아무리 대화를 해도, 진전이 없어서, 근본적인 것을 질문했습니다. "성도님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무조건 순종하시겠습니까?" 그 여성도는 머리만 숙인 채, 끝까지 대답이 없었습니다.
<질문> 당신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이라면, 무조건 순종하실 결심이 섰습니까?
깊이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지 않고, 무슨 복을 기대하십니까?"
"성령님께 완전히 순종하겠느냐?'는 질문이 성령충만 여부를 분별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느냐?"를 보면 그 사람이 어느 정도 성령충만한 사람인지가 그런납니다. 두려움인가? 기쁨인가?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결코 저절로 형성되 않습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성령충만은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하고자 하는 결심 위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힘으로는 용서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때, "나는 용서할 수 없어요. 사랑할 수 없어요" 하는 것과 "하나님, 용서하겠으니, 힘을 주세요, 사랑하기 원하니, 힘을 주세요" 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입니다.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꺽어져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강 둑이 터져야 합니다. "성령님께 완전히 복종하리라!" 결단하십시다. 은혜의 강이 흘러 날 것입니다.
제 4과 성령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것이 성령충만입니다.
1.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게 하실 때,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가장 싫어 하시는 것이 죄입니다. 근심하십니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시라, 성결함 위에만 기름부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에는 반드시 통회자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바로 이 회개의 역사가 어떠냐?에 따라 성령충만의 현상이 요란할 수도, 조용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살인 강도 죄를 저질렀다면, 얼마나 마음이 두렵고 떨리겠습니까? 그러나 살인, 강도, 강간만 죄가 아니라, 마음의 탐심, 음욕, 미움이 같은 죄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깨달아지는 자가 성령충만을 받기 직전에 있는 자입니다.
성격이 유순하고, 세상 죄를 짓지 않았어도, 영적으로 완악한 자가 많습니다.
저는 잘못했다는 말, 참 못했습니다. 언제나 변명하고, 합리화하고, 감추고, 거짓말하고,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저는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라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제 심령이 완악함 때문인 것을 알았습니다. 성령께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인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무서운 것입니다.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 신년 집회 마지막 날에, 길선주 장로는 온 회중들 앞에서 친구가 유언하며 맡긴 돈 200원 중에 100원을 가로 챈 사실을 고백하고 회개하였습니다. 길장로의 회개를 들은 온 회중들은 모두 자기의 숨겨 놓은 죄를 털어 놓으면 통곡하고 회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이 날부터 한국교회에 성령의 놀라운 충만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만약 어떤 그리스도인이 "저는 은밀히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세요" "미워한 것 용서해 주세요!" "나의 교만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저는 불평불만만 많았어요!""제가 불순종한 자입니다" 등등 자기 죄를 솔직히 고백하면서, 회개하면 그는 성령충만을 받고 있던지, 곧 성령충만을 받을 것입니다.
<질문> 당신은 성령님께서 회개하라고 지적해 주시는 죄에 대하여, 회개하지 않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2. 순종하기 어려운 것을 명령 하실 때, 순종해야 합니다.
어떤 성도는 "예, 저도 순종했습니다."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순종을 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은 것이 아닙니다. 온전히 순종하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질문>
① 어느 종이 주인으로부터 받은 10가지 지시 중에서 5가지를 순종하고 5가지는 순종하 지 않았다면 그 종은 순종한 종입니까? 불순종한 종입니까?
② 어떤 군인이 많은 명령을 다 지켰으나, 한가지 지키지 않은 명령이 있었다면, 그는 명 령을 복종한 것입니까? 명령 불복종한 것입니까?
마 13:18-23에서 예수님께서, 우리가 어떤 어려움도 각오하고 염려와 걱정을 다 주께 맡겨 버리고, 말씀대로 살면, 반드시 말씀이 30배 60배 100배로 성취되는 복을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마음이 분명치 못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 합니다.
제 딸 하영이가 [콩쥐와 팥쥐] 이야기를 듣고서, "너는 콩쥐가 되고 싶니, 팥쥐가 되고 싶니?" 하니까, 한참 고민하다가 "팥쥐가 되고 싶어요" 라고 대답을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하영이 생각에 콩쥐가 얼굴이 더 예쁘고, 나중에 복을 받았지만, 지금 당장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편하게 지낸 것은 팥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거지 나사로가 되고 싶습니까.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우리는 고난을 두려워 합니다. 이것이 성령충만 받는 가장 큰 걸림돌인 것입니다.
성령충만하면 순종이 됩니다. 그러나 순종하면서 성령충만이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중국 지하교회, 예수가정의 지도자였던 칭틴옌씨는 중국 개화기의 청년으로 유교전통에 뿌리깊은 사람이었으나, 선교사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 믿게 되면서, 성령님으로 인하여 그의 양심은 찔림을 받는 고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버린 아내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사랑도 없이 부모님의 결정으로 결혼했던 구식여인이었고 발은 전족을 하는 등, 시대감각도 안 맞고, 앞으로 평생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하여, 집으로 보내 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엡 5:25 "네 아내를 사랑하라"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성경에는 "아내가 예쁘거나 영리하거나 착할 경우"라는 단서가 없었습니다. 그는 무척 과로와 하다가, 결국 복종하게 됩니다. "하나님,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시니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칭 형제는 버린 아내의 집으로 가서 아내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를 집으로 데려 오고자 했으나, 24KM의 길을 전족을 한 아내가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칭형제의 마음은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했기에, 당시 중국인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을 했습니다. 아내를 등에 업고 집까지 온 것입니다. 그런데 집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칭 형제와 그 아내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1920년 일입니다.칭 형제와 그 아내는 훌륭하게 동역을 하였습니다.
1999년 1월 여동생 기옥이네, 다녀갈 때, 기차에서 지갑을 소매치기 당한 동생 남편, 30만원, 아내의 밤샌 회개기도, 하나님께 순종 , 30만원 씩 3곳에 씀,
성령충만하면 전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전도하다가 성령충만을 얻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국 [예수전도단]을 만들었던 오대원선교사가 1972년 서울공과대학 앞에서 서울공대 학생들에게 전도했습니다. 5명 정도 성경공부와 찬양모임을 가졌고, 점점 모이는 인원이 늘어났습니다. 그때 기도와 말씀을 하는 가운데 나가서 전도하라는 강한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그들은 사도행전 처럼 그들에게도 성령 안에 충만케 살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도하기 위해 명동으로 나갔습니다. 명동에는 다방이 많이 있었는데, 60- 70명이 주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각 다방마다 다녔습니다. 전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생이었는데 그 곳에서 믿지 않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으므로 힘들었으나,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기도하였을 때 5분 이내에 모두 강한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얼마 후에는 다른 나라에도 많이 나가서 세계선교를 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당시 70년대에는 비자 뿐만 아니라 여권도 안나오는 시기였으나 그날이 올 것이라는 말씀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성령충만하면 친양하게 됩니다. 그러나 찬양하다가 성령충만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정례권사, 100만원 소매치기, 양육 끝내고, 전도도 나간 뒤, 펑펑 울었다고, 아들 의대 수석합격, 6년 전액 장학금, 해외 유학 보장, 딸 전체 수석, 1년 학비 전액 장학금
정명남장로, 큰 딸 은선이 백혈병으로 세상 떠남, 새가족, 시험이 되어 교회 나오지 않음, 장로님의 눈물, 그런데 3년이 지나 지난 해 말 12월, 세례받음
<질문> 당신에게는 순종하기 어렵지만, 순종해야 한다고 마음을 눌러 오는 하나님의 음 성이 없습니까?
제 5과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린 자가 성령충만 한 사람입니다.
성령충만 하려면, 소유권을 하나님께 완전히 이전해야 합니다!
<질문> 당신이 가지고 있는 소유, 돈, 통장, 집문서 등은 모두 누구 것입니까?
많은 성도들이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고 고백하기를 두려워 합니다. "하나님의 것 입니다"라고 하면, 다 내어 놓아야 할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좋은 것을 빼앗아 가는 하나님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왜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의 것을 요구하실 때, 그것이 테스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믿음이 정확한 헌신을 가능하게 합니다.
<질문> 창 22:1-2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왜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했습니까?
"시험하사"
<질문>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고 고백해 보십시오. 그리 고 그 고백 뒤에 오는 성령의 감동이 어떠한지 써 보십시오.
우리는 소유에 대하여 하나님의 시험을 받을 때, 다음 두가지를 명심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의 허락을 받으시고, 우리의 것을 가져 가시거나 남겨 두시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안됩니다! 이것만은 드릴 수 없습니다" 한다고, 우리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져가시기로 정하시면, 우리가 아무리 움켜 쥐고 있어도 다 없어지고 맙니다.
둘째, 우리가 재물의 종 노릇하는데서 해방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 모든 소유권을 이전해 드리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질문> 마 6:24을 읽고, 우리가 선택할 주인이 누구 누구인지 찾아 보십시오
"하나님과 재물,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면 우리가 돈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우리의 주인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돈이 울리면 울고, 돈이 웃기면, 웃으며 사는 것입니다.
전 국제그룹 80 노인인 양정모회장이 사돈과 신한종금 130만주 때문에 법정에서 서로 싸웠으나, 승자 없이 모두 패자가 되었는데, IMF로 신한종금이 파산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돈 때문에 부모 자식 간에, 형제 사이에 원수되는 일이 생깁니다.
<질문> 사 43:1의 "너는 내 것이라"는 말씀이 당신에게 주신 말씀이라면 당신의 느낌은 어떻습니까?
성령님께 완전히 복종하면, 염려가 없어집니다. 두려움도 없어집니다. 불만도 없어집니다. 감사 뿐이고, 완전한 기쁨, 진정한 사랑이 넘쳐 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어집니다. 예수님의 복음만 전하고 싶어집니다. 도시와 민족을 향해 기도하는 우리의 마음이 불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성령님께서 하십니다. 은혜의 강이 터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 부산을 위한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우리 민족을 향한 부흥의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 일을 우리 같은 자를 통하여도 이루시려고 하심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제 생각이 망상이라고 여겨지십니까? 저는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이 부산과 이 민족에게 계획하신 부흥을 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교회 안에 갇혀진 우리의 생각과 사역의 울타리를 깨뜨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교회가 죽고, 성령님께 완전히 복종하면, 우리 지방에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고, 이 부산이 사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교회가 죽는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살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만을 위하고, 우리 것을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을 때, 은혜의 둑은 터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유권을 이전하고 나면, 물질로 인하여 염려, 조바심, 낙심이 다 사라집니다. 감정조차 하나님께 다 드리고 나면 섭섭하고, 억울한 것도 없어집니다.
"소유권을 이전한 자는 천국 가는 부자가 될 자격이 생깁니다"
저는 대학원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학원 마지막 학기 때, "석사 학위를 나에게 바칠 수 없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석사학위를 원하시나? 많이 고민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저의 완전한 복종을 받으시기에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가 '성적에 대한 자랑'임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일류대학에 갈 수 있다는 에비고사 성적을 가지고 신학대학에 진학하여 1등으로 입학하였고, 1등으로 졸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이 아니라, 올무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느냐? 실력을 믿느냐?" 제게는 끊임없이 제가 공부 잘 했다는 것을 드러내고, 의지하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회하기로 마음을 굳히고도, 대학원을 신학대학원이 아니라, 본 대학원에 입학한 것도 동기는 [자기 과시]였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깨뜨리시기 원하셨습니다. 제가 아무 것도 아닌 학교 성적에 기대하고 있는 이상, 진정한 성령 충만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머리 좋기로 따지면, 저 보다 머리 좋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도 미련하게 그것을 의지하니 얼마나 답답하셨겠습니까? 게다가 저는 주의 종이 되겠다고 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만 많고, 드린 것이 없었다!" 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대학원 등록 마감 전말 저녁, 무릅을 꿇고, "석사학위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고백했을 때, 저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마치 죽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 "잘 결단했구나!" 깨달아지면서, 마음이 얼마나 충만해 졌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많은 것을 갚아 주셨습니다.
성령충만의 증거는 육신의 체험으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하고자 하는 마음의 상태로 분별해야 합니다. "어떤 길로 인도하시던지, 어떤 것을 명령하실지라도 순종하겠습니까?" 이 중심이 변하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도 성령충만한 것입니다.
<질문> 당신은 성령충만하십니까?
완전한 순종, 완전한 헌신에 대한 마음의 벽이 무너졌으면 성령충만 한 성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