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포교당 모범사찰 정법사 (1)
1912년 일제 식민지시대 속에 민생구제의 기치를 내걸고 창건된 정법사는 도심 포교당의 효시로 수원포교당, 강릉포교당과 함께 국내 3대 포교당 중 하나로 그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도시화 속의 숱한 부침을 겪은 끝에 그 기능과 역할은 점차 쇠락해져 1996년 당시로 돌아가 보면 정법사는 창건당시 사찰부지의 3분의 1밖에 안남은 상태에다 여러 신행모임 단체의 난립으로 사찰운영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였다. 근대 불교의 ‘도심포교당’ 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의 낙후되고 정체된 도량이였다.
이러한 정법사는 현재 지금의 주지인 지태스님 부임 후 16년간의 변화를 통해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어떠한 사찰 운영방식의 변화를 통해 정법사가 창원지역의 포교전법도량으로 우뚝 서게 되었는지 그 운영의 묘를 찾아본다.
‘스님은 수행자, 불자는 운영자’ - 확고한 사찰 운영관
“스님은 수행자일 뿐 결코 운영자가 아닙니다. 스님은 스님답게, 불자는 불자답게 살아간다면 사찰은 자연스럽게 운영되리라 확신합니다.” 오랫동안 통도사에서 종무소임을 맡았으며 통도사유치원, 창원유치원을 직접 운영하기도 한 지태스님은 사찰 운영에 있어 확신이 있었다. ‘스님은 수행자, 불자는 운영자’ 라는 원칙을 갖고 스님답게 산다면 신도들은 자부심을 갖고 포교는 저절로 된다는 확신이었다.
낙후되고 정체된 도량에서 오늘날 인구 110만 명의 창원지역을 대표하는 포교도량으로 거듭나기까지 스님의 이러한 사찰 운영관은 그 변화의 동력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사찰운영위가 구성되기까지
지태 스님이 처음 정법사의 주지 소임을 맡아 우선 한 일은 사찰의 저변 확대와 추후 사찰을 운영해 나갈 중추적 핵심신도를 육성하는 일이였다. 이 단계가 마련된 후에 사찰운영위원회 구성을 통한 보다 안정적이고 계획적인 신도참여의 사찰운영이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먼저 전국의 제방에서 덕 높으신 선지식을 초청, 매월 초하루 초청법회를 열었다. 지방사찰의 특성상 대중 법석이 극히 드물었던 마산에서 신도들이 평소 뵙고 싶어 하던 스님들을 초청해 법문을 들려주는 선지식 초청법회는 꾸준히 신도들의 발길을 절로 이끌었다. 지금까지도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 선지식 초청 법회는 입소문이 퍼져 사찰 신도 외에도 많은 지역시민들이 찾아 올만큼 정법사를 ‘신도 많은 도량’으로 탈바꿈 하게했다.
신도수가 점차 늘고 절에 활발한 생기가 일게 되자 다음으로 정법사 불교대학을 설립해 신도교육과 함께 불교대학 졸업자를 기수별로 조직, 활성화하여 사찰 운영의 중심역할을 하게했다.
또한, 그간 각각의 이름으로 꾸려진 신행모임 단체를 ‘정법사 신도회’라는 이름으로 통합, 신도 조직 체계를 정비하였다. 난립되어있는 신행모임은 사찰운영에 있어 일률성도 없고 신도 단체 간 반목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신도회를 하나로 통합하면서 구성된 것이 바로 ‘정법사 사찰운영위원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