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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용어”를 써가면서 논쟁하기 좋아하는 신학자들과 유사 “신학자들”이 성경의 영감과 보존을 논할 때, 너무도 당연하게 자신들의 논거로 삼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영감을 주신 때가 언제인가?”라는 질문이며, 당연히 그 때는 “최초의 원본이 기록될 때”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신자들도 별 이견 없이 “성경의 원본이 기록될 때,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셨고, 그 성경이 섭리적으로 보존되었다.”라고 이해하고 믿고 있다.
정말 그런가?
성경의 “영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어떤 책을 보더라도, 성경의 “영감”을 마치 예술가가 창작 과정에서 작가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형태의 체험을 통해서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듯이,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는 기록자에게 영적인 통제력을 행사하심으로 인간적인 오류 없는 원본을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이 공통된 설명이다.
“영감”(inspiration, 인스피레이션)이란 성경 용어를 성경 본문에서 끄집어내어, 보통의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하지도 못할 용어를 써가며 신학적 주제로 삼을 때는 “전문가들”만 알아먹을 수 있는 “신학적 논쟁”으로 발전하며, 대다수의 신자들은 뭐가 뭔 소리인지도 모를 수밖에 없다. 이런 데서 속되고 헛된 말장난이 나오게 되는데, 경건보다는 경건치 않음이 증가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본문에서 추출해서 개별적으로 논하고 있는“영감”은 분명한 성경 용어로서, 그 단어가 기록된 말씀 속에서만 정확하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세상의 예술가들이 사용하는 방식과 유사하게 “영감”을 개념 짓고, 더 나아가 어려운 말장난으로(기계적 영감1), 유기적 영감2), 축자 영감3), 개념적 영감4), 이중 영감5), 원본 영감...) “어린” 신자들을 미혹하는 짓은 우리 주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리석고 무식한 모든 질문의 핵심에는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 영감]이란 성경 용어를 가지고, 성경을 존중하지 않는 신학교 교과서에나 나오는 신학적 논쟁의 주제를 삼으려는데 있다.
이 글의 목적은 “인스피레이션”이란 성경 용어를 성경 속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도대체 “인스피레이션”(영감, inspiration)이 무엇이며,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를 살펴보자.
킹 제임스 성경에서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은 단 두 번 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욥기 32:8 But there is a spirit in man: and the inspiration of the Almighty giveth them understanding.
디모데후서 3:16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은 명사형으로 동사는 “인스파이어”(inspire) 인데, 그 뜻은 ‘호흡할 때, 숨을 들이쉬는 것’을 말한다. “호흡”(呼吸)에서 흡(吸)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오듯이,‘생각이나 감정을 불어 넣는다’는 의미가 파생 된 것이다. 한국에서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 영감)은 이미 언론과 예술이나 연예 분야에서는 외래어처럼 쓰이기도 한다. 한 가지 성경에 기록된 이 단어는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 명사임을 기억해야 한다.
“인스피레이션”의 반대말은 동사는 “익스파이어”(expire) 이고, 명사는 “엑스퍼레이션”(expiration) 이다. 그 뜻은 ‘숨을 내쉬는 것’을 말한다. “호흡”(呼吸)에서 호(呼)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공기가 폐 속에서 완전히 빠져 나가면 사람이 죽듯이, ‘숨을 거둠, 사망, 끝나다, 종료하다’는 의미가 파생되었다. 킹 제임스 성경에는 ‘기간이 종료되다’란 의미로 동사 expired 만 나온다 [삼상 18:26; 삼하 11:1; 대상 17:11; 20:1; 대하 36:10; 더 1:5; 겔 43:27; 행 7:30; 계 20:7].
욥기와 디모데후서 본문에서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을 보면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목적한 것을 사람들에게 주시기 위한을 위한 수단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명철[understanding]을 주시는 데 있어서,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에 의해서 주신다. 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성경기록[scripture]을 주시는 데 있어서도,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에 의해서 주신다. 두 구절 다 사람에게 “주신 것”(giveth, given)이 있다. 즉 “인스피레이션”의 결과물이 “명철”이고 “성경기록”이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목적하신 바를 사람들에게 주실 때 “인스피레이션”을 통해서 주신다. 실제 디모데후서 3장 16절 본문 자체에서도 “모든 성경기록 All scripture”가 가장 중요한 강조점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인스피레이션”은 숨을 들이 쉬는 것인데, 성경에서 두 번 다 하나님과 함께 쓰였다. 즉, “인스피레이션”의 창시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성경에서 “하나님의 숨”을 찾아서, 하나님의 숨결에는 어떤 특징들이 있는지를 살펴봄으로 하나님의 숨 가운데서 유독 성경기록과 관련되는“하나님의 인스피레이션”의 본질을 추론해 보겠다.
창세기 2:7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창세기 2장 7절에서 하나님께서 생명의 숨을 흙으로 된 사람에게 불어넣으시자, 사람이 살아 있는(living) 혼이 되었다. 이 말씀은 “전능자의 호흡이 내게 생명을 주었다”는 욥기 33장 4절의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욥기 33:4 The Spirit of God hath made me, and the breath of the Almighty hath given me life.
하나님의 숨이 들어가면 그 결과 흙으로 된 사람은 살게 되고, 생명을 갖게 된다. 하나님의 숨결이 임할 때, 거기엔 생명이 있게 된다.
여기서 성경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시는 숨이 사람에게는 영(spirit)과 같다는 사실이다.
욥기 27:3 All the while my breath is in me, and the spirit of God is in my nostrils;
욥기 27장 3절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영이 내 콧구멍에 있을 때, 나는 숨쉬게 된다. 숨이 끊어지면 그 영은 하나님께로 되돌아 간다 [전도서 12장 7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시면서 성령님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20:22 And when he had said this, he breathed on them, and saith unto them, Receive ye the Holy Ghost:
에스겔 37장 말씀도 일관된 사실을 제공한다.
에스겔 37:9 Then said he unto me, Prophesy unto the wind, prophesy, son of man, and say to the wind, Thus saith the Lord GOD; Come from the four winds, O breath, and breathe upon these slain, that they may live.
에스겔 37:14 And shall put my spirit in you, and ye shall live, and I shall place you in your own land: then shall ye know that I the LORD have spoken it, and performed it, saith the LORD.
에스겔이 바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대언했다. “...오 숨아, 사방의 네 바람으로부터 와서 이 죽임 당한 자들 위에 숨을 불어 그들로 하여금 살게 하라.”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을 다시 설명하시면서, “내가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하여금 살게 하겠고...”라고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의 숨이 사람에게 임할 때, 사람의 입장에서 그분의 숨은 그분의 영이며, 또 그분의 숨은 죽은 자를 살게 하는 생명을 준다.
위에서 인용된 성경 구절들에서처럼 하나님의 숨(breath)은 육체적인 것에 영향을 끼쳐, 살아 있게 하고, 생명을 주고, 영을 소유하게 한다.
이제, 육체적인 것과는 달리 영적인 것들에 영향을 끼치는 하나님의 숨을 성경은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 영감)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는 영적인 명철과 성경 기록을 우리에게 준다.
결국, “인스피레이션”이란 단어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그 결과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며 “생명”이 있느냐 하는 사실이다. 반대말이 ‘숨 거둠, 사망’을 뜻하는 “엑스페레이션”(expiration) 임을 기억하자.
하나님께서 그분의 숨결을 불어넣으셔서, “인스피레이션”에 의해서 성경기록을 주어져 있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숨결이 담긴 그 성경이 하나님의 영(spirit)이 함께 하고, 살아 있느냐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 기록을 보자면,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영(spirit)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살아 있다 (quick).
히브리서 4:12 For the word of God is quick, and powerful, and sharper than any twoedged sword, piercing even to the dividing asunder of soul and spirit, and of the joints and marrow, and is a discerner of the thoughts and intents of the heart.
요한복음 6:63 It is the spirit that quickeneth; the flesh profiteth nothing: the words that I speak unto you, they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즉,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려주는 영(quickening spirit)으로서 역사하듯이 [고전 15장45절], 현재 이 세상에서 살아 있고, 영(spirit)인 그 성경 기록(scripture)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그분과 같은 일을 수행함으로 “살리는”(quicken) 사역을 하고 있음이 “인스피레이션”의 핵심이고, 유일한 증거이다.
생명! Life!
생명의 역사는 하나님의 숨결이 담겨 살아 있는 성경 기록만으로 이루어진다. 죄인들이 하나님의 숨결이 담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게 될 때, 그들의 죽었던 영이 소생하며, 생명을 얻게 된다.
놀라운 사실은 성경에서 성경기록(scripture)이란 단어를 생명의 창시자이신 하나님과 동등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마서 9:17 For the scripture saith unto Pharaoh, Even for this same purpose have I raised thee up, that I might shew my power in thee, and that my name might be declared throughout all the earth.
갈라디아서 3:8 And the scripture, foreseeing that God would justify the heathen through faith, preached before the gospel unto Abraham, saying, In thee shall all nations be blessed.
이 두 구절에 의하자면, 감히 성경 기록이 하나님과 등등하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든 성경기록이 하나님께서 “인스피레이션”에 의해서 주어 졌는데, 디모데후서 3장 17절에 기록된 대로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숨결이 담긴 말씀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될 수가 없다.
학자들이 “영감”이란 말장난을 하면서, ‘디모데후서 3장 16절은 모든 성경 구절은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기록하셨다는 말인데, 근데, 그 시기가 언제냐?’라고 질문을 자주 하는데, 이 질문은 전혀 의미가 없다.
본문의 시제를 보자.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현재 수동태이다.
성경은 옛날에 기록된 최초의 원본이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씀은 없다. 디모데후서 3장의 문맥은 디모데가 당시에 읽고 있는 성경이 하나님의 “인스피레이션”에 의해서 주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절대로 과거에 기록된 원문이 아니다. “인스피레이션”은 “기록의 시기”와는 아무런 상관없다. 지금 내가 디모데가 본 것과 동일한 성경을 가지고 있고, 그 성경을 통해서 생명이 역사하고 있다면 그것도 하나님께서 “인스피레이션”으로 주신 것이다.
“영감”을 논하매 있어, “영감의 시기”라든지 “원본이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든지 하는 명제는 전혀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영감”이란 단어가 “기록”(written)과 함께 쓰인 적이 없다. 사실, 학자들이 주장하는 “영감 받은 원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그들의 생각 속에만 존재하는 관념적 실체일 뿐이다.
일례로 많은 신자들이 “헬라어 원문”하면 껌뻑 죽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학자들의 말장난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이다.
많은 신자들이 오늘날 히브리어나 헬라어 성경이 한 권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현재 이 세상에 “헬라어 원문”은 어느 한 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필사본만 해도 5,000가지가 넘고, 실제 책으로 편집되어 출간된 헬라어 성경만 해도 수 십 가지가 된다. 이 모든 것들이 서로 불일치를 이루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나의 서고에도 세 권의 헬라어 성경이 있는데, 세 권 모두 서로 다르다. 누군가 다가와서, “헬라어 원문”을 말하면, 우리는 과감하게 물어야 한다. “어느 헬라어 원문을 말합니까?”
실제, “헬라어 원문”을 강조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당신이 말하는 헬라어는 어느 출판사에서, 몇 년도에, 누구에 의해서 편집되어 출간되었습니까?”라고 묻자, 무척 당황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이는 히브리어 원문도 마찬가지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서 시제가 매우 중요함을 다시 한번 기억하자. “is given”이다. 당시 디모데가 손에 들고 있던 기록된 성경, 그것이 헬라어든, 라틴어든, 히브리어든, 영어든, 한국어든 그것이 무엇이었든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져 있었다. 디모데는 그 성경 말씀을 가지고, 설교했고, 가르쳐서, 그 성경 말씀으로 죽었던 영을 살릴 수 있는 사역을 했다.
요한복음 1장의 말씀과 비교함으로 시제가 왜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
요한복음 1:17 For the law was given by Moses, but grace and truth came by Jesus Christ.
위의 말씀은 과거에 시내 산에서 주어진 율법을 말한다. 율법은 모세에 의해서 주어졌다(was given : 과거 수동태). 말하자면, 진짜 최초의 원본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 율법은 하나님께서 직접 손가락으로 “기록해서(written)” 주신 것이다 (출애굽기 24:12). 물론, 유대인들은 그 돌 판의 내용을 “보존”하기도 했다.
그런데, 성경이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하셔서" 주셨던 ‘최초의 원본’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고린도후서 3:6 Who also hath made us able ministers of the new testament; not of the letter, but of the spirit: for the letter killeth, but the spirit giveth life.
이 말씀에서도 “생명”이란 단어에 주의하라.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최초에 직접 기록해서 주신“글자”의 사역자로 우리를 삼으시지 않고, 영(spirit)의 사역자로 만드셨다. 글자는 죽이지만, 영은 생명을 주고 있다. “최초에 기록하셨다”를 강조하고, 당시에 기록된 “글자”를 강조함은 “죽음의 사역”이다. 그것은 생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여기서 한 가지, 흔히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당연히“보존”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주장들을 우리는 들어왔다. 그런데 이 말 속에도 상당한 수준의 “미혹”이 담겨 있다.
“영감”과 “보존”은 전혀 다른 단어이다. 두 단어를 반드시 서로를 짝지어줄 필요는 없다. 사실 “영감으로 기록된 최초의 원본”을 강조하려다 보니, 영감과 보존을 하나의 세트를 묻게 되었다.
시편 12:6-7 The words of the LORD are pure words: as silver tried in a furnace of earth, purified seven times. Thou shalt keep them, O LORD, thou shalt preserve them from this generation for ever.
시편 1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순수한 말씀들(words, 단어들)을 보존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성경의 모든 단어들은 영원히 보존될 것이다. 난 그대로 믿는다! 그런데 이 말씀이 성취되기 위해서 반드시 “영감”이 전제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순수한 말씀들을 보존하시겠다고 하셨으면 그분은 그렇게 하신다.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보존하겠다.’가 아니다. 시편 12장 6-7절 말씀은 씌어있는 그대로가 진리이며, 사실이다.
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서 주어져 있다 (디모데후서 3:16). 이 말씀도 씌어있는 그대로 사실이다.
“영감”과 “보존”이란 두 가지 진리를 꼭 인과관계로 연결시킬 이유는 없다. “영감으로 기록, 섭리로 보존”등과 같이 조합을 이루게 함은 오히려 더 큰 “오류”를 만들어낸다.
보존하시겠다는 약속은 약속이고, 현재 가지고 있는 성경기록이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은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성경에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이 없듯이, “영감”을 “보존”하시겠다는 말씀도 없다. “영감”과 “보존”을 연결시키다 보니, “히브리어”와 “헬라어”와 같은 원어 성경 얘기가 자꾸 나오게 된다.
하나님께서 “보존”을 약속하셨는데, 그것이 반드시“히브리어”나 “헬라어”여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는가?
그렇지 않다. 흔히들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다음 구절을 보자.
요한복음 19:20 This title then read many of the Jews: for the place where Jesus was crucified was nigh to the city: and it was written in Hebrew, and Greek, and Latin.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분 위에 달린 표제가 히브리어와 헬라어와 라틴어로 기록되었다. 이 말씀은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보여주는 듯 하다.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기록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있었다. 십자가는 죽음이다. “인스피레이션”의 장소가 아니고, “엑스퍼레이션”의 장소다! 요한복음 19:30 When Jesus.....and gave up the ghost.
“보존”을 논함에 있어서 가장 큰 논리의 함정은 “성경”을 살려 주는 영으로서, 또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인식하지 못하는데 있다. 보존의 약속은 “살아 있는 말씀”의 보존이지, 학술용이나 연구용, 혹은 도서관용으로써의 보존이 아니다.
교회사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전념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데 헌신한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은 이미 2세기 중반 “성경”으로서 그 생명력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150년에는 올드 시리아어 성경이 번역되었고, 157년 올드 라틴어 성경이 번역되었다. 또 4세기에는 최초의 유럽어 성경인 울필라스 성경이 나왔다. 성경 보존의 역사는 순수한 신앙을 유지했던 교회의 역사와 일치한다. 그들은 자신들 손에 주어진 성경을 (라틴어일 수도 있고, 영어일 수도 있고, 동유럽의 고대 언어일 수도 있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믿었고, 그 말씀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성도를 양육했으며, 교회를 세웠다. 그들 손에 주어진 성경이 선포될 때, 생명의 역사가 나타났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그렇게 보존하셨다. 도서관이나 수도원, 아니면 불신 가운데 있는 유대인 학자들을 통해 보존하신 것이 아니다. 물론,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도 나름대로 가치는 있으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생생한 말씀과는 거리가 멀다. Preach the word! 중세 유럽에서 로마 카톨릭에 저항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고, 진리를 설교했던 수많은 “무명”의 그리스도인들 손에서 말씀은 보존 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올드 라틴어 성경과 라틴어화된 왈덴시안 성경으로 종교개혁 때까지 보존하셨다. 왈덴시안은 120년경부터 종교개혁 때까지 존재했었는데, 로마 카톨릭은 왈덴시안과 그들의 성경을 불태우기까지 박해했다. 왈덴시안은 모든 신자의 제사장직과 은혜의 교리를 믿었다. 킹 제임스 성경이 나오기 전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숨쉬는 그리스도인들의 손에서 보존되고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사용되지 않는 성경은 더 이상 성경이 아니다.
실제로 거듭나지 않은 유대인들이 모음 방점을 첨가시킨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보다는 훨씬 전에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오리지날” 히브리어에서 번역된 올드 라틴어 성경이 더 가치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사도 시대 이후 곳곳에 흩어져 있던 교회를 강성하게 해 준 살아 있는 말씀은 히브리어나 헬라어 성경이 아니라, 올드 시리아 성경과 올드 라틴어 성경과 같은 실제 사용되는 성경이었다.
성경의 보존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성경의 보존이지, 단지 연구용이나 학술용이 아니란 사실이다.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손에 들려 있던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써의 보존이다.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에 필요 이상으로 속박되지 말자.
또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베드로전서 1:23 Being born again, not of corruptible seed, but of incorruptible, by the word of God, which liveth and abideth for ever.
이 구절을 보면, 거듭남은 썩지 않을 씨로만 가능하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생명으로 역사하지 않는 “것들”은 하나님의 말씀도 아니고, “인스피레이션”으로 주어진 것도 아니다. 헬라어이든, 라틴어이든, 영어이든, 한국어이든, 일본어이든, 중국어이든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시지 않은 것으론 절대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생명! 이것이 “인스피레이션”의 증거다.
그럼 성경의 “인스피레이션”을 평가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킹 제임스 성경이다!!
왜냐하면, 킹 제임스 성경은 100% 완전무결한 성경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는 절대 기준은 오직 킹 제임스 성경뿐이다.
킹 제임스 성경의 모든 단어에서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지난 400년에 걸쳐 입증된 사실이다.
“실체 없는” 히브리어나 헬라어 성경을 가지고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한심한 자들이다.
그렇기에 이미 입증된 킹 제임스 성경에 하나님의 숨결이 담긴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명백한 사실이다. 두 말하면, 잔소리다. “인스피레이션”은 원문의 기록과는 상관없다.
킹 제임스 성경이 영감에 의해서 주어졌다고 가르치는 사람을 이단이라고 칭하면서 정죄하는 자들은 “영감”이란 말장난으로 순진한 신자들을 속이고 있는 사람들이다.
누가 헬라어 성경을 읽고 구원받았다면, 그 헬라어 성경 구절은 킹 제임스 성경과 일치할 때뿐이다. 근데 요즘에도 헬라어 성경을 읽고 구원받는 사람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절대로 킹 제임스 성경과 일치하지 않은 헬라어 성경을 읽고 구원받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며, 킹 제임스 성경과 일치하지 않은 개역성경 구절로 구원받은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킹 제임스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히브리어 성경을 읽고 구원받았다고 주장한다면, 그의 구원은 거짓이다. 근데 히브리어 성경을 읽고 구원받은 사람이 있기나 하는 걸까?
살아 숨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신 주님께 영광을 돌리자. 지금도 우리에게 주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성경을 주셨음을 감사하자. 생명이 함께 하지 않은 “성경”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영감”이든 “보존”이든, 그 어떤 단어이든지, 분명한 성경 용어를 성경 본문에서 끄집어내어서 독립적인 용어로 만들어 신학적 논쟁의 주제로 삼지 말자.
이는 당신께서 당신의 말씀을 당신의 모든 이름 이상으로 크게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4:12 For the word of God is quick, and powerful, and sharper than any twoedged sword, piercing even to the dividing asunder of soul and spirit, and of the joints and marrow, and is a discerner of the thoughts and intents of the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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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록자의 의식은 상실되고 단지 필기도구의 역할만을 했다는 이론
2) 기록자의 지식, 경험, 사상, 개성을 사용하셨다는 이론
3) 어휘의 선택, 자구 하나하나에 이르기 까지 하나님께서 지배하셨다는 이론
4) 하나님께서는 개념만 주시고, 어휘의 선택, 구체적 표현 기술은 기록자에게 맡기셨다는 이론
5)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